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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스를 닮은 메넬라오스 ― 『일리아스』의 내적 포물라 연구

Ares-Like Menelaus: A Study of the Internal Formulae in the Iliad

이준석 ( Lee Joon Seok )
  •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논총 77권1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2월
  • : 41-56(16pages)
인문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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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일리아스』의 메넬라오스
3. 구송시 가설로 추측하기
4. 나가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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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에서 메넬라오스는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 빈번하게 아레스의 이름에서 파생된 수식어와 연결된다. 패리의 구송시 가설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이 현상을 전통적인 구송시의 시 짓기 재료인 ‘stock epithets’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즉, 이러한 명사 + 수식어 조합은 호메로스의 발명이 아니며, 호메로스 이전의 전통의 축적에서 비롯된 포물라로 간주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메넬라오스와 아레스의 연결은 호메로스 이전의 전통이 아닌, 『일리아스』 내부의 문맥에서만 의미를 갖는 내적 포물라로 간주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전투를 향한 의지와 그 결과의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일리아스』의 메넬라오스와 아레스는 서로를 절묘하게 닮아 있으며, 각자 개인적인 가정사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만용을 부리나 형, 또는 누이에게 심하게 제지당하고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 둘이 좌절과 모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메넬라오스에게 연결되는 아레스 수식어는 단순한 장식 내지 전통의 산물이 아닌, 문맥에 잘 맞는 의미 있는 수식어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In the Iliad, Menelaus is notably frequently connected with the epithets derived from Ares. Indeed, they ornament his name twenty-nine times whereas no one else is the subject of such an epithet more than twice in the Iliad. The Parryists have tried to explain this unexpected combination based on the traditional ‘stock epithets’ which go with a name in the formulaic phrases which are the building blocks of oral poetry. But it is not the only possible explanation. In that there is a discrepancy between his will to fight and the outcome of battle, Menelaus bears an uncanny resemblance to Ares in the Iliad. Both Ares and Menelaus are determined to take their family matters into their own hands, but are harshly rebuked for their recklessness by their own siblings. At last they have no choice but to put up with humiliation. Menelaus is Ares-like in that he shares frustration and humiliation with Ares in the Iliad. Thus, ἀρήΐος/ἀρηΐφιλος is eptheton significans, not ornans.

UCI(KEPA)

I410-ECN-0102-2021-000-00044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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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3021
  • : 2671-7921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2
  • :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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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권1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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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획의 말 : 인간과 물질 문화의 연결망

저자 : 서울대학교인문학연구원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8 (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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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점, 선 그리고 연결망

저자 : 김종일 ( Kim Jongil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7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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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고고학 연구는 1990년대까지 성행했던 과정고고학과 후기과정고고학의 경우처럼 고고학연구의 이론과 방법론과 관련된 거대담론 대신 이론적 측면에서 인간과 물질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거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위원소 분석이나 고유전체 분석을 비롯한 자연과학적 분석의 적극적 도입을 바탕으로 인간 집단의 형성과 이주 등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수학의 그래프이론에서 발전하여 사회과학적 분석에 도입되었던 연결망 분석 역시 고고학 연구에 도입되어 종래 무시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새로운 고고학적 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고학의 연결망 분석은 단순히 외부에서 개발되어 고고학에 새롭게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 혹은 논의들이 고고학 연구에서 주목받은 바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현상학과 분석철학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관계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비록 연결망 분석이 고고학이 아닌 분야에서 개발되어 적용되었지만 '단순한 공식의 적용'이 아니라 고고학적 사유와 맥락 안에서 충분히 고민되고 '길들여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 연결망 분석 사례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의 해석이 연결망 분석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결국 고고학적 맥락 안에서 재해석될 때 보다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In recent archaeological research, a close relation between material and human beings has been newly theorised and alternative hypotheses on the formation of ethnic groups and human migration has been suggested with dramatic developments of analytic technology in the natural sciences, such as archaeogenetics and bioinformatics, which has replaced megatheories which led hitherto archaeological theory and paradigm shifts in it. Social Network Theory, adopted first in social science, was introduced to archaeological research and enabled the finding of important archaeological phenomena that had been ignored or unrecognised thus far.
Nevertheless network analysis was not simply developed and introduced from the outside; there already existed some similar ideas and discussions with network analysis within archaeology. The ways of understanding objects through their contextual relation in Phenomenology and Analytic Philosophy are also closely related with network analysis. Therefore, network analysis was developed in other disciplines but was considered and 'domesticated' within archaeological thought and context, rather than just simply being adopted into archaeology. This fact suggests that the interpretation of results drawn from network analysis on actual data is not enough as long as it is limited to a simple description of visible patterns. Rather it can be clearly shown that the results should be significantly and sensitively interpreted when analysis is carried out within an archaeological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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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네트워크 시각화와 고고학 자료의 활용 : 낙랑고분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고일홍 ( Ko Ilho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8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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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진행된 대규모 구제발굴로 인해 1990년 이후 북한에서 조사·보고된 낙랑고분 자료의 양은 어느덧 그 이전까지 조사되었던 자료의 양을 능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정보가 정치하거나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적절히 활용하여 낙랑고분 연구를 진전시킬 방법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다량의 거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에 기반하여, 1990년 이후 북한에서 출간된 자료에 수록된 '고분 출토유물 목록'의 데이터에 대한 네트워크 시각화를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이 낙랑고분의 사례를 통한 '네트워크 시각화의 유용성 제시'인 관계로, 모든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 대신 네트워크 시각화의 효용성을 평가하기에 적절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낙랑 고고학의 핵심 연구 주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한경'이 출토되는 낙랑고분들에 주목하였다. 즉, 본고에서는 한경이 부장된 낙랑고분의 출토유물을 분석하여 목곽묘, 귀틀묘, 전실묘 부장품의 공반관계를 네트워크로 시각화하였다. 한경이 부장된 낙랑고분의 공반출토유물을 시각화를 한 결과, 시간적 차이 따른 고분 노드의 군집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로써 시간적 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목곽묘, 귀틀묘, 전실묘 단위로만 매장행위나 장례의식을 연구하는 다소 거친 접근도 충분히 타당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또한 연구 주제에 따라서는 '높은 해상도의 노드'가 아닌 '낮은 해상도의 노드'를 설정하는 것이 더 적절한 네트워크 분석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로써 '해상도 낮은 다량의 데이터'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음을 환기시켰다. 낙랑고분의 경향성을 네트워크 그래프의 형태로 나타낸 본 연구의 시도는 고고학에서 있어서 '네트워크 시각화'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낙랑고분에 대한 다양한 정보의 효율적 전달 방법을 소개하였다. 후자는 낙랑 고고학에 입문하는 문턱을 낮추어, 연구 저변의 확대, 새로운 연구 주제의 개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도입 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The amount of archaeological data on Nangnang (Lelang) Tombs published since the 1990s has come to exceed the amount of data previously accumulated as a result of large-scale rescue excavations undertaken in Pyeongyang. Therefore, there is a need to develop a method of utilizing that data, which is of low resolution. This paper adopts a network approach, which can be useful in dealing with large amounts of low resolution data, to undertake an analysis of the data retrieved from finds lists found in North Korean publications. A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illuminate the usefulness of network vitalization, tombs yielding Chinese Han mirrors were selected for analysis, as they were deemed suitable for the purpose at hand, as well as being a key topic of research in Nangnang studies. The results of analysis undertaken on the Nangnang tombs revealed that the clustering of tombs did not coincide with pre-established temporal phases, indicating that a rough study of mortuary practices at the tombs could be carried out according to tomb type, without putting too much weight on temporal elements, which could not be ascertained for many of the tombs published from the 1990s. In addition, it was illustrated how the lower resolution nodes could be more useful that higher resolution nodes, according to the research question, indicating that low resolution data could indeed be us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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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역사·고고학 연구를 위한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의 활용 가능성 : 고대 영산강유역과 가야 권역 출토 구슬 자료를 중심으로

저자 : 박준영 ( Park Junyo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5-11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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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네트워크 분석은 사람의 사회적 행위를 그들이 맺은 관계로 구성된 연결망의 특성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 분석은 연구 자료를 점과 선으로 시각화하여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역사·고고학의 물질자료 중 수량이 많은 고대 구슬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분석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고대 구슬 자료를 네트워크로 시각화한 결과 관념적으로 인식했던 구슬의 분포·유통·소비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영산강유역 출토 구슬의 경우 고대 구슬의 분포 양상을 네트워크로 표현함으로써 문화권 내에서의 복합성을 추출하여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다.
네트워크 분석은 특정 자료만이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분석 방식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자료에나 적용할 수 있으며, 자료의 특성에 따라서 적합한 방식을 고안하여 적용하면 된다. 앞으로 한국 역사·고고학계에서도 네트워크 분석이 활발히 이루어져 그에 대한 담론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Network analysis, which was formerly developed in the discipline of Sociology, represents an attempt to explain the social behavior of people in terms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twork of relationships they have formed. This method of analysis uses nodes and edges to visualize data and has thus been widely used. This article examines the applicable potential of using network analysis to study a large quantity of ancient beads which are valuable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materials.
As a result of applying network analysis on ancient beads, the distribution, circulation and consumption patterns could be visualized. Prior to this, such interpretations were only conceptually recognized. Furthermore, by expressing the distribution patterns of ancient beads as a network, one example being the excavated beads from the Yeongsan River Basin, it was possible to unravel more of the complexities of their ancient culture, as well as opening up other potential interpretations.
Network analysis is not only applicable to a specific type of data nor is the method a fixed one. It can be applied to any type or set of data and the details of the method can be considered and adjusted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data. The aim is for network analysis to be more widely and actively conducted and applied for studies in Korean History and Archaeology and also to deepen the dis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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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황화수창 시고의 작성과 간행 : 1537년 황화수창을 중심으로

저자 : 김덕수 ( Kim Deok-su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5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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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년 공용경과 오희맹, 두 사신은 한양에서 조서를 반포하기 전까지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접사 정사룡 일행과 수창하지 않았다. 두 사신은 같은 곳에서 같은 제재로 시를 지으면서도 다른 운자로 각자의 작품을 주로 찬술했고 작품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 오희맹이 압운을 잘못하자 조선 문인은 착오를 묵인하지 않고 중첩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어 시를 지었으며 심언광은 장편 배율 전별시를 선창함으로써 문학적 자부심과 대결의식을 드러냈다. 황화수창 자리는 양국 문사가 필력을 뽐내는 현학의 공간이자 조선이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황화수창은 시고를 통해 이루어졌고 찬술 시기에 따라 시고가 정리되었다. 개별 『황화집』과 1608년 간본 『황화집』에는 원시고 형태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반면 1773년 통합 본 『황화집』은 편집을 거치면서 시고 형태가 상당 부분 해체되고 유의미한 정보가 누락되기도 했다. 사신의 시편은 두목(頭目)이 대필하여 오류가 많았으므로 양측 모두 원고 교정에 만전을 기했다. 정사룡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고의 편차와 교정을 마쳤다. 정사룡이 복명하며 정사본을 올리자 중종은 교서관에 간행을 명했고 이후에도 홍문관대제학, 원접사와 종사관들이 교정에 참여했다. 당시 정사룡은 수본(手本)에 의거하여 원고를 수정했는데 『황화집』 1차 간본을 중국에 보내면서 사신의 열람과 교정을 기다렸다. 간행상 오류로 인해 『황화집』을 누차 간행하거나 이미 귀국한 사신이 『황화집』 교정에 참여한 사례도 여럿 보인다. 『황화집』 간행 시 교정에 힘썼지만 원고 자체가 불완전하고 일정이 촉박한 탓에 완정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This paper categorized the manuscript poems written for Hwanhwasuchang according to period of writing. There were found to be many errors in the poetry sections of the envoys because a dumok who did not have a profound knowledge of literature had ghostwritten them and both sides aimed at perfection in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Many transcriptionists were active at the event of Hwanghwasuchang because Chinese poems were simultaneously written and arranged. Gong Yong Qing wrote a letter to Jungjong of Joseon and ask him to assign a collator to Jeong Saryong. And he wrote several letters to Jeong Saryong and asked him to collate them thoroughly even after crossing the border. Jeong Saryong finished work on the main streets just in 7 to 8 days by editing and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of Hwanhwasuchang on the way to Hanyang. As Jeong Saryong reported and offered the original copy completed to Jungjong of Joseon, He gave and ordered gyoseogwan to publish it. Jeong Saryong then revised the manuscripts based on handwriting text, sent the first published book of Hwanghwajip to China, and waited until the envoys read and proofread it. Hwanghwajip was published several times due to errors in the publication. And the envoys who already returned to their own country directly participated in proofreading Hwanghwaj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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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10년대 지방 유림의 중국 이주 과정과 귀향의 동인 고찰 : 서천 조정규의 봉천 덕흥보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18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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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0년대 중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려 했지만 결국 귀환을 택해야만 했던 당대 유림의 실정과 내면을 살피는 논문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함안 유림 서천 조정규라는 인물을 통해 현지에서 그들이 마주했던 현실과 난간들을 조명하면서 '귀환의 동인'에 주목하려 한다. 강제병합 이후 '피세와 피지'를 염두했던 조정규는 1913년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유람하며 당지의 실황을 확인한다. 그곳에서 한인 이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목도한 그는, 귀국길에 당시 안동에 머물고 있던 이승희를 만나 구체적인 계획을 타진하였다. 이듬해인 1914년 8월경, 그는 마침내 중국 봉천에 당도하여 한인 유교공동체와 독립운동 근거지 구축에 착수했다. 그들은 요중현(辽中縣) 덕흥보(德興堡)의 황무지 56만여 평(현 여의도의 2/3 크기)을 매입하여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했지만, 대내·외적 재난이 겹치며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곡부로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의 이주를 타진했지만 그 역시 실패하였고 1916년 벗이자 동지였던 이승희 역시 죽음을 맞이하며 공교운동은 크게 위축된다. 이 사이 입적 강요와 비적들의 횡포, 일제의 회유 등으로 유림들의 재이주와 귀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1917년에는 국내 공교지회도 설립도 추진되었다. 국내 지회 설립을 지원한 그는1 918년 '귀환'하며 약 5년간의 재중 이민자의 삶도 종결된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국난을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또 유학의 인문정신으로 약육강식의 시대와 맞서 투쟁하려던 근대 유림의 '유교적 저항'을 보여주는 궤적이었다. 더불어 이민자들의 난간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함께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동포애와 이주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 실천을 잘 보여 주는 사례였다. 또한 그의 귀국은 공교운동의 방향이 국내로 전환됨을 상징하는 행보로 평가할 수 있다.


The Haman (咸安) scholar Seocheon Jo Jeonggyu (趙貞奎) planned to move away from the colonial reality, and in 1913 he crossed the Amnok River to Beijing to check up on the actual situation of the region. He discovered the disastrous lives of Korean immigrants living in Seogando, China. Accordingly, on his way back, he met Lee Seung-hee (李承熙), who was in Andong (安東) at the time, and made a detailed plan. After returning to his hometown, he hurried to prepare for immigration by selling his property, and in August 1914, he arrived in Fengtian (奉天), China, and began to build a base for the Korean community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His participation was of great help to Lee Seung-hee, who was leading it, and eventually 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immigration to Bongcheon. They expected a stable life by purchasing the land of Deokheungbo (德兴堡), which was 2/3 the size of Yeouido in Seoul. However, various disasters continued and unfortunately the community building at Deokhungbo ended. Later, he tried to immigrate again to the Qufu (曲阜) of Shandong Province, Confucius' hometown, but he also failed; in 1916, Lee Seung-hee, his close friend and senior, died. In 1917, the Confucius Branch in Korea was also established. In 1918, when he returned to his hometown due to illness, his immigrant life also ended. As a result, his trip to China can be judged as a series of failures and frustrations. However, his actions also meant meaningful Confucian resistance in the modern era, which included social responsibility and brotherly affection of the intellectual. Therefore, Deokheungbo is a meaningful historical site that retains the sadness of modern Confucian scholars and Korean immigrants. In addition, his return contains the symbolism of the transition of the center of the Confucius movement from China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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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근대인이 대면한 이율배반과 자유의 이행 : 한용운 시의 근대성과 관련하여

저자 : 김익균 ( Kim Ig-kyu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1-20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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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은 강화도조약(1876년)에 의한 개항직후인 1879년에 태어난 최초의 근대 청년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님의 침묵』을 출간할 때 한용운은 기성세대의 대표였다. 『님의 침묵』을 사랑시로 볼 때 이 시편들은 당시 청년들의 사랑시와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차이는 근대성의 층위의 다원성을 보여준다.
이번 논문은 『님의 침묵』의 사랑시를 기성세대의 백래시로 보는 문화사 연구의 표준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한용운의 근대적 기획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한용운의 시 「인과율」, 「자유정조」가 칸트의 이율배반 개념, 자유 개념과 만나는 지점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동아시아 근대 지성이 불교를 매개로 하여 근대를 올바로 인식하고 극복하려고 한 시적 사유를 발견하였다.


Han Yong-un was the first modern young man to be born in 1879, right after ports were opened by the Treaty of Ganghwa Island (1876). When Silence of Lover was published in the 1920s, Han Yong-un was a representative of the older generation. If Silence of Lover is regarded as love poetry, it can be said that the poem shows difference from the love poems of youth at the time. This Difference can be said to show the pluralism of the layers of modernity.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Han Yong-un's modern project, deviating from the standard approach of cultural history research that sees Silence of Lover love poetry as the backlash of the older generation. For this purpose, the point where Han Yong-un's poems “Causality” and “Freedom Chastity” meet Kant's concept of antinomy and freedom were reviewed. As a result, it was discovered that the modern intellect of East Asia tried to properly recognize and overcome modernity through Buddhism as a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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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한 1930년대 후반 동인시지(詩誌)와 시인

저자 : 이유미 ( Lee Yumi ) , 김바로 ( Kim Ba-r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4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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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0년대 후반 동인시지를 중심으로 구축한 데이터에 기초하여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하였다. 하나의 시지에 많은 개체가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함으로써, 시지와 시인의 관계를 살펴 기존 문학사를 새롭게 고찰하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2장에서는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하기 위한 연구 방법을 논하였다. 3장에서는 시지 간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시지와 시인의 그룹을 검토하였다. 당대 시지는 지방, 편집자 겸 시인, 시인의 겹침을 중심으로 세 그룹으로 나누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시지 간가중치를 통해 관계의 힘을 살필 수 있었다. 4장에서는 시인 간 네트워크를 중심성을 통해 분석하였다. 연결 중심성과 근접 중심성을 통해 영향력 있는 시인은 대부분 시지의 발행과 편집을 주도하였다. 매개 중심성을 통해 시지의 그룹을 연결하는 시인을 확인함으로써 작품 발표 외에도 시지를 운영하는 시인들이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학사에서 비가시적 시인들에 주목함으로써 문학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This article conducted social network analysis based on data built around the poetry magazines of literary coterie of the late 1930s. Assuming that many individuals are included in poetry magazines of literary coterie, the goal of this paper wa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poetry and poets and newly examine the existing literary history. An examination of research methods for performing social network analysis is followed by an examination of the groups formed between the poetry magazines of literary coterie as established through network analysis. It can be seen that the poetry magazines of literary coterie can be divided into three groups, focusing on the overlap of places, editors, poets. At the same time, the power of the relationships could be examined through the weight between each poetry magazine of literary coterie. The networks between poets were also analyzed through centrality. Most influential poets, according to degree centrality and closeness centrality, were found to have led the publication and editing of poetry. By confirming the poets connecting the groups of poetry magazines of literary coteries through betweenness centrality, it was found that there were poets who operated poems in addition to the presentation of works. Through this process, the new possibilities of literary history were reviewed by paying attention to invisible poets in lite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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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소년'의 발견과 전시되는 '국민-되기'의 서사

저자 : 김희경 ( Kim Hee Ky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8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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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기 염상섭 문학을 보다 폭넓게 살펴보려는 목표 아래 최근 새롭게 발굴된 염상섭의 『채석장의 소년』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염상섭의 다른 작품들과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단정 수립 이후 남한 사회에 조성된 반공주의의 흐름 속에서 국민보도연맹 결성을 통한 전향의 강제라는 사회문화적 측면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염상섭은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고,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정권은 반공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남한 사회의 '우익이 아닌' 정치이념과 사상들을 반국가적(혹은 반민족적)이라 규정하며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법제도적 차원에서의 국가보안법의 제정(1948), 이념·사상 차원에서의 반공주의의 강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국민보도연맹의 결성(1949) 등을 통해 이승만 정권은 남한 사회의 '불온한 세력들'(중도파·좌익분자)을 강제적으로 포섭하고 전향시키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중도파, 좌익)문화인들이 보도연맹에 가입했고 염상섭 역시 보도연맹 가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난날의 과거를 청산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염상섭이 기존과 같은 소설 문법을 통한 소설 쓰기를 선택하는 것 대신 아동문학의 알레고리 형식을 선택한 것은 견고한 반공권력의 감시 아래 자신의 글쓰기를 이어 나가기 위한 방편이라 판단할 수 있다. 『채석장의 소년』의 표면에서 발화되고 있는 전재민 소년의 '국민-되기'의 서사와 여기에 수반되는 '협력과 연대에 기반한 공동체의 통합'이란 주제는 아동문학의 알레고리적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시'될 수 있게 된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works of Yeom Sang-seop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more broadly, and the analytical object of this paper is Yeom Sangseop's Chaeseogjang-ui Sonyeon (A Boy of the Quarry) that was recently discovered. This work differs from other works by Yeom Sang-seop in that it takes the form of children's literature. However, this should be considered along with the socio-cultural aspect of forced conversion through the formation of anti-communism and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Guidance Allian in South Korean society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separate government. Yeom Sang-seop opposed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ce government, supported South and North negotiation, and did not give up the possibility of the unified nation-state. However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eventually established on August 15, 1948 and using anticommunism as a means, Rhee Syng Man regime solidifies its system by defining “non-right” political ideologies and ideas of South Korean society as anti-national. Rhee Syng Man regime intends to forcibly embrace and convert “seditious groups” (the moderate and the left-wing) of South Korean society, through enact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1948), strengthening anticommunism ideology, and forming the National Guidance Alliance (1949). In the process, numerous intellectuals joined the National Guidance Alliance, and Yeom Sang-seop couldn't avoid joining either. Considering this situation, Yeom Sang-seop chose the form of an allegory in children's literature instead of choosing to write novels through novel grammar same as before. This can be judged as a way to continue to write novels under the surveillance of anti-communist government. The narrative of 'becoming a Nation' of war refugees, which is being uttered on the surface of Chaeseogjang-ui Sonyeon and the theme of 'integration of community based on cooperation and solidarity' accompanying it can be effectively “displayed” through the form of children'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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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한국전쟁기의 (재)구성 : 염상섭의 『홍염』·『사선』론

저자 : 유서현 ( Yu Seohyu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1-31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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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홍염』·『사선』은 일상성·통속성에 매몰된 태작으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연구사에서 소외되어왔다. 그러나 이 연작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첫째, 『홍염』·『사선』은 한국전쟁에서의 가시적인 적(북한과 공산진영)이 아니라 전쟁을 불러온 비가시적인 책임자들(미국과 남한정부)을 주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50년 6월 말이 단지 한국전쟁의 전야가 아니라 중소조약 체결 이후 불안을 느낀 미국이 대일강화조약을 준비하면서 냉전을 심화시킨 시기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미국과 유엔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남한정부가 한국전쟁 초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서 혼란이 가중되었음을 폭로한다. 둘째, 『홍염』·『사선』은 해방기에 남북협상 및 평화통일을 지지했던 중간파 염상섭의 현재적 심경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염상섭은 1950년과 1948년에 벌어진 특정 사건들을 한 데 선별해 제시하는데, 이 사건들을 묶어주는 주제가 바로 좌우합작 통일론이다. '무소속=중간파'의 대두 및 평화통일론자 조봉암을 주된 키워드로 삼아 5.30 선거가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홍염』·『사선』의 연애서사는 1950년대 남성 지식인인 염상섭의 정치적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날의 독자들이 새로운 정치성을 발견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다. 염상섭은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린 책임자'와 '가정의 평화를 깨뜨린 책임자'를 중첩시키는 전략을 통해 냉전기 한반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가정을 이탈하는 중년 여성들은 작품의 핵심적인 비판 대상이 되지만, 이들의 모습이 주요하게 초점화된다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도리어 대항적 해독(oppositional decoding) 또한 가능해진다. 선옥-호남-취원의 삼각관계가 아닌 선옥과 취원의 관계 발전으로 시선을 돌리면 『홍염』·『사선』의 연애서사는 남성 가부장의 존재/부재가 아닌 여성들 간의 모방과 인정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Yom Sang-seop's linked novellas Hongyeom (Red Flame) and Saseon (Dead Line), have long been excluded from research as poor works mired in the popular and everyday. However, it is worth re-illuminating the following aspects of these works. First, in relation to the Korean War, Hongyeom-Saseon focuses not on the visible enemy (North Korea and the Communist Camp), but on invisible bearers of responsibility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n Government). These works remind us that late June, 1950 was not only the eve of the Korean War but also a period in which a United States anxious about the 1950 Sino-Soviet Treaty deepened the Cold War while preparing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t the same time, the novellas reveal how the South Korean government, relying too heavily on the US and UN, compounded the confusion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by acting irresponsibly. Second, Hongyeom-Saseon offers insight into the contemporary mind of Yom Sangseop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as a centrist and supporter of the 1948 North-South Conference and peaceful unification. Yom presents several specific events occurring in 1948 and 1950 which are connected by the idea of unification via left-right coalition. This context also explains the centering of the novellas' discussion of the May 30, 1950 elections on the rise of “independent (=centrist)” candidates and peaceful-unification candidate Cho Bong-am. Lastly, Hongyeom-Saseon's romance narrative not only reveals the limits of Yom Sang-seop's imagination as a male intellectual in the 1950s, but also offers contemporary readers the possibility of discovering a new politics within it. Yom conveys his concerns about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cold war by overlapping 'those responsible for breaking the peace on the peninsula' with 'those responsible for breaking the peace of the family.' In the process, middle-aged women characters who break away from the family become the central object of criticism in the two novellas, yet because these characters become the focal point of the narrative, oppositional decoding is made possible. Turning our attention from the love triangle of Seonok- Honam-Chwiweon to the relationship between Seonok and Chwiweon themselves, it is possible to see in Hongyeom-Saseon's romance narrative not simply the presence/absence of the patriarch, but also a process of women's identity formation via imitation and recognition between two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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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서양고전학의 현재와 미래

저자 : 김헌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13 (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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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메로스의 신들 ― 관객석의 신들

저자 : 이태수 ( Lee Tae So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3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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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필자는 일차적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여신 무사가 맡은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 무사는 제우스가 현장에 임하여 목격한 사건을 노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런 노래의 주제가 어떤 것인지 탐색해내고 그 노래를 신들에게 들려주고 나아가 인간에게도 들려주는 무사의 행위가 어떤 함축을 갖는지 논의할 것이다. 필자는 신들이 무사의 노래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을 인간과 구별되는 가장 신적인 특징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논변할 것이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신들은 작품 속에서 세상사를 주재하는 역사(役事)의 주체 노릇을 하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무사의 노래를 통해 들으면서 더없이 순수한 즐거움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에 관한 무사의 노래도 즐겁게 듣는다. 바로 인간의 괴로움을 노래로 듣는 것이 신적인 행복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만큼 신과 인간 간의 간격을 선명하게 확인시켜주는 것은 없다. 무사의 존재는 그 간격을 통해 인간이 신과 어떻게 다른 존재인지 그리고 신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부각시켜 보여주기 위해 호메로스가 동원한 탁월한 메타창작적 장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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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아레스를 닮은 메넬라오스 ― 『일리아스』의 내적 포물라 연구

저자 : 이준석 ( Lee Joon Seo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1-5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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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에서 메넬라오스는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 빈번하게 아레스의 이름에서 파생된 수식어와 연결된다. 패리의 구송시 가설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이 현상을 전통적인 구송시의 시 짓기 재료인 'stock epithets'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즉, 이러한 명사 + 수식어 조합은 호메로스의 발명이 아니며, 호메로스 이전의 전통의 축적에서 비롯된 포물라로 간주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메넬라오스와 아레스의 연결은 호메로스 이전의 전통이 아닌, 『일리아스』 내부의 문맥에서만 의미를 갖는 내적 포물라로 간주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전투를 향한 의지와 그 결과의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일리아스』의 메넬라오스와 아레스는 서로를 절묘하게 닮아 있으며, 각자 개인적인 가정사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만용을 부리나 형, 또는 누이에게 심하게 제지당하고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 둘이 좌절과 모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메넬라오스에게 연결되는 아레스 수식어는 단순한 장식 내지 전통의 산물이 아닌, 문맥에 잘 맞는 의미 있는 수식어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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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칼리마코스와 헤시오도스

저자 : 이름가르트유-군데르트 ( Irmgard Yu-gundert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7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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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마코스와 헤시오도스 사이에는 4세기라는 시간적 간극이 있고, 삶과 작업의 조건도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멀리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칼리마코스는 그 보이오티아의 옛 시인 헤시오도스를 사랑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쓸 때 그의 두 주요 서사시 『신통기』와 『일과 나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칼리마코스는 헤시오도스의 두 번째 서사시를 그리스 서사시들 가운데 “꿀처럼 달콤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헬레니즘적 학자풍의 시인 칼리마코스와 옛 보이오티아 시인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끈이 존재했던 것일까? 두 시인 모두 자신들과 함께 사는 보통 사람들에 관해서 말할 때, 모종의 모멸감을 품고 있다. 자신들은 그들보다는 더 높은 문화적 수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멸감을 품은 이유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헤시오도스의 경우에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인 반면, 칼리마코스의 경우에 그 이유는 미학적 가치에 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논문에서 두 묶음의 가치들이 한 훌륭한 시인의 작품에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비록 표면적으로는 오직 한 묶음만이 두드러지지만, 두 유형의 가치들이 모두 칼리마코스의 시에서 그랬던 만큼 헤시오도스의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는 것도 보여줄 것이다. 더 나아가 헤시오도스의 두 번째 서사시의 구조가 “꿀처럼 달콤한”이라는 칼리마코스의 미학적 원리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는, 비록 이 조화가 두 시인들의 측면에서 볼 때 전적으로 다른 전제조건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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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저자 : 김헌 ( Kim He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9-10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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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썼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당대 유대인들은 물론 특별히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 당시 이방인들이란 로마인들과 그 통치하에 식민지와 속주들의 주민인데, 이들은 그리스 로마 고전에 익숙했다. 누가의 글을 접한 독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학적인 텍스트에 근거하여 예수와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 누가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낯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그들에게 익숙한 서사 방식과 표현 방식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누가가 이용했을 그리스 로마 고전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누가의 이방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누가의 글을 받아들였을 지를 그리스 고전과의 관련성 속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이런 필요성에 부응하여 누가의 글과 호메로스의 서사시, 호메로스적 찬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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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오디비우스로 배우는 라티움어 ― Fabula docet

저자 : 김진식 ( Kim Jin Si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7-12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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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선 기원전 1세기 이래 로마가 희랍의 문법학을 수용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라티움어 문법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문법의 중요성 등을 살펴본다. 여기서 요점은 우리가 우리의 새로운 문법책 fabula docet에서 사용하게 될 문법용어들과 개념들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 출간된 라티움어 문법책들을 살펴보고, 최근 서양에서 유행하는 문법책들의 흐름도 검토한다. 이어 새로 출간된 문법서 fabula docet의 구성과 내용 등을 소개한다. 라티움어 기초 문법에 어떤 방식과 순서로 접근할 것인가, 기초 문법에서 다룰 문법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고전기 산문을 토대로 구성된 라티움어 문법을 전달하는데 오비디우스의 운문이 어려움을 주겠지만, 그럼에도 오비디우스의 신화이야기가 학습적 매력을 가졌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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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목탄분석을 통한 신석기시대 주거지 조영목재 선별의 모델화

저자 : 리브라이언 ( Li Brian ) , 김민구 ( Kim Minko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6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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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유적에 잔존한 목탄은 유적 점유 당시의 주변 식생과 인간에 의한 목재 선별 양식을 동시에 반영한다. 본고에서는 신석기 유적 5개소(봉담, 대능리, 문암리, 평거동, 삼거리)에서 수습된 목탄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석기시대(8000~1500 BC) 수혈주거지 조영에 사용된 목재의 선별 양식을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를 통해 볼 때, 신석기시대 주민의 목재 선별은 선별 기준의 유무와 엄격성에 따라 기회주의적(opportunistic) 이용과 선별주의적(selectivistic) 이용의 연장선으로 모델화할 수 있다. 대능리 유적에서는 주변 식생과 유사한 다종다양한 수목이 확인되어 기회주의적인 목재 이용 방법에 부합한다. 반면 봉담과 삼거리 유적에서는 참나무나 물푸레나무 등 소수의 수종만을 선별적으로 이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일한 식생을 점유하고 있었던 신석기시대 집단들이 상이한 선택전략을 취했음을 볼 때, 목재 선별에는 환경적인 요인와 함께 문화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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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순신 서사에 나타난 명(明)(인(人)) 인식 ― 신채호의 『이순신전』과 이광수의 『이순신』을 중심으로

저자 : 이경재 ( Lee Kyung-jae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7-20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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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영웅인 이순신을 다룬 신채호의 『이순신전』과 이광수의 『이순신』에 나타난 明(人)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민족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에 나타나는 민족영웅 서사를 통해 배제와 결속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두 작품은 한중일이 모두 참여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기존 논의에서는 이들 작품에 나타난 明(人)에 대한 인식에는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다. 민족국가가 형성되던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제와 결속의 메커니즘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고,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에서도 강력하게 드러난다. 신채호가 주로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에 바탕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했다면, 이광수는 일본(인)보다도 중국(인)에 대한 멸시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광수의 『이순신』은 중국과 일본에 대한 형상화라는 측면에서, 이인직의 「혈의 누」(『만세전』, 1906)에 이어지는 작품이다. 「혈의 누」는 제1차 조선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인직의 과도한 근대지향성(일본지향성)은 「혈의 누」에서 만국공법을 매개로 하여 일본을 문명국으로 이상화하고 중국을 야만국으로 열등화하였다. 「혈의 누」로부터 약 1세대가 지난 후에, 이광수도 임진왜란이라는 또 다른 한·중·일의 국제전을 무대로 하여, 자신의 왜곡된 정치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작가들의 기본적인 세계관에서도 비롯되는 것이지만, 두 편의 신문연재소설이 창작되던 당대의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신채호의 『이순신전』은 작품 속에도 나오는 것과 같이 제국주의 세력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대적 조류에 항거하며 쓰여졌던 것이다. 이와 달리 이광수의 『이순신』은 만보산 사건으로 배화열(排華熱)이 극에 달하고, 만주사변과 상하이사변이 발발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이광수의 『이순신』이 쓰여지던 시기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전시라는 상황은 과도할 정도로 명(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의 시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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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민, 식민, 난민 ― 식민지기 재만조선인 농민과 '세계 안의 자리'

저자 : 윤영실 ( Youn Young-shil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3-247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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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기 재만조선인을 조선민족의 일부나 일본제국의 식민자로 간주하는 기존의 해석들을 넘어 관국민적(transnational) 이동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이주민족으로서의 특이성에 주목했다. 2장에서는 현대 정치철학의 논의들을 참조하면서 근대 국민국가체제와 관련하여 이민, 식민, 난민의 의미를 고찰하고, '세계 안의 자리'(place in the world)가 지닌 다층적인 함의를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청계중일한관계사료』(淸季中日韓關係史料)에 삽입된 구한말 조선인 월경민의 편지와 박은식의 『몽배금태조』에 나타난 대종교의 민족 상상을 중심으로, 현실의 국가들(states)과 거기에 내속된 국민들(nations)이 아니라 세계 안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월경(越境)하는 기민(飢民, 棄民)들과 국민의 경계와 경합했던 다양한 민족 상상들을 상기하고자 했다. 4장에서는 『리튼보고서』와 안수길의 소설 「벼」의 겹쳐읽기를 통해 '만보산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재만조선인들의 삶의 조건과 권리들이 법과제도, 국가간 조약에 따라 상이하게 분절되면서 이민자나 식민자가 아닌 난민에 가까워졌음을 분석했다. 일본제국이 재만조선인의 난민화를 야기한 주된 요인인 동시에 이들의 '보호'를 자처하는 유일한 국가 권력이라는 역설 속에서, 자치와 안전에 대한 재만조선인의 열망은 만주국 수립의 논리로 재전유되었다. 역사의 이 아이러니한 과정을 재만조선인의 이데올로기(제국의식)나 도덕(친일 내지 협력)의 층위에서가 아니라, 국민국가들의 법적, 제도적 질서 속에서 이주민족이 처한 정치적 아포리아로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적 의의를 갖는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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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양하(李敭河)의 수필 연구 ― 자전적 수필에서 명상적 수필로의 변화에 미친 외국문학의 영향을 중심으로

저자 : 김미영 ( Kim Mee Yo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9-28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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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평론을 망라한 이양하의 문학세계는 셸리와 랜더의 낭만주의, 월터 페이터의 심미주의, 리처즈의 문예가치론, 아우렐리우스의 견인주의 철학 등, 매우 이질적인 요소들의 영향이 혼재되어 있어, 전체윤곽의 파악이 쉽지 않다. 수필로 한정해도 자전적 수필과 계몽적 수필, 명상적 수필이 혼재되어 있고, 이들 간은 교섭적이기보다 단절적이어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글은 이양하의 자전적 수필과 명상적 수필 사이의 연결점을 외국문학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그의 생애를 중심으로 살펴서 그의 문학세계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어머님의 기억」, 「송전의 추억」 등의 그의 자전적 수필들에는 결핍과 고독으로 점철된 내면이 그려져 있고, 「신록예찬」, 「나무」 등의 명상적 수필들에는 모럴로서의 고독이 심미적으로 예찬되고 있다. 전자에서의 결벽증, 우울증, 고독감의 근저에는 슬픈 가족사가 자리해 있고, 후자의 바탕에는 부정적 인간관과 염세적 세계관이 감지되며, 양자를 관통하는 주제는 '고독'이다. 이양하가 자전적 수필의 감상성에서 벗어나 명상적 세계에로 나아가 새로운 모럴을 추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페이터와 리처즈의 윤리의식, 아우렐리우스의 철학, 베비트의 인본주의의 도움이 컸고, 자신이 이룩한 영문학에서의 성취도 현실적인 힘이 되었다. 그의 고독은 그가 부정적으로 인식한 인간과 현실로부터 일체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을 자유, 즉 이사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에 해당하는 가치이자 모럴인바, 자연은 고독한 주체가 '소극적 자유'를 누릴 최적의 환경으로 예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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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구
6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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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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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
33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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