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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Current Status and Analysis of the Publication of reference books for beginner about Buddhist Meditation in Korea

문진건 ( Moon Jin-keon )
  •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 한국불교사연구 1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2월
  • : 233-258(26pages)
한국불교사연구

DOI


목차

Ⅰ. 서언
Ⅱ. 이론적 배경
Ⅲ. 불교명상입문서 간행의 현황
Ⅳ. 논의
Ⅴ.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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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불교명상 입문서의 발간현황을 양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여 불교명상 관련 국내의 출판계와 학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논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불교명상 입문서 간행과 관련하여 시기별 발간 종수와 저자 특성을 확인하였다.
2011년에서 2013년까지 볼 수 있었던 불교명상 입문서의 양적 증가는 이 시기에 국내 출판계에서 불교명상 전반에 걸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명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중적 인기가 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주로 심리치료와 관련된 명상(마음챙김 명상)의 연구 증가 및 힐링과 웰빙을 위한 명상에 관한 대중적 관심의 증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저자의 전공의 경우, 불교학을 전공한 비성직자 학자들이 불교명상 입문서를 저술하는 경우가 가장 적었다. 지난 10여 년간 발간된 불교명상 입문서의 42%가 외국서적이었다는 것을 보면, 국내 불교학자들의 불교명상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며 따라서 연구도 부족하다고 본다. 반면에 국내 저자들 중에서 비성직자이자 비전공자인 저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고, 해마다 증가하는 수치를 보인다. 이처럼 비전공자에 의한 불교명상 입문서의 저술이 지속되는 현상은 불교명상의 정체성 혹은 전문성이 강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명상의 관심이 급증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명상이나 웰빙 또는 힐링과 불교명상을 적극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교명상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고 명상에 대한 관심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같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에서 불교명상과 불교에 대한 관심을 함께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국내의 불교학계에서는 학제 개편과 학제 간 융합 연구와 같은 적극적인 연구 인프라 구축 작업이 실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불교명상 입문서 간행에 관한 양적 분석만 하였을 뿐, 연구대상에 관하여 일일이 정밀한 내용 분석을 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추후에 불교명상 입문서에 관한 보완적 연구로 더 깊이 있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This study is an investigation and analysis of the current status of reference books for beginner about Buddhist meditation from 2008 to 2019 in Korea. In the past decade, we have identified the number of species published and the characteristics of authors in relation to the publication of Buddhist Meditation.
The quantitative increase in reference books of Buddhist meditation seen from 2011 to 2013 suggests that interest in overall Buddhist meditation has increased in the domestic publishing world at this time. This can be attributed to the growing social awareness and popularity of meditation, mainly due to the increased research of meditation (especially, mindfulness meditation) related to psychotherapy and the increasing public interest in meditation for healing and well-being.
In the author's major field, non-clerical scholars who majored in Buddhism rarely wrote reference books or introductory textbooks on Buddhist meditation. Considering that 42% of reference books of Buddhist meditation published in the last decade have been foreign books, Korean Buddhist scholars are less interested in Buddhist meditation. On the other hand, the proportion of the authors who are not Buddhist monks and not majored in Buddhist study among domestic authors is relatively large and shows a yearly increase. As such, the continuation of the writing of reference books of Buddhist meditation by non-majors suggests that the identity or professionalism of Buddhist meditation is not strong.
This study has only limited quantitative analysis on the publication of reference gooks for beginner of Buddhist meditation, and has not been able to analyze precise contents on the subjects. It is hoped that further discussions will be conducted in the future as complementary research on reference books and introductory textbooks of Buddhist.

UCI(KEPA)

I410-ECN-0102-2021-200-000502285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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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287-56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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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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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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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기도 이천 안흥사(安興寺)와 이천향교(利川鄕校)의 역사와 인물

저자 : 고영섭 ( Ko Yo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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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경기도 이천 안흥사와 이천향교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안흥사는 경기도 이천(利涉大川)의 안흥동과 갈산동의 경계에 있던 절이다. 통일신라 말 내지 고려 초기에 세워져 고려시대 내내 흥성하다가 고려 말엽 내지 조선 초기에 폐사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 절터에는 통일신라 말 내지 고려 초기에 세워진 5층 쌍탑이 있었다. 안흥사는 이들 고층 석탑 조성의 상황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는 상당한 사격을 지닌 거찰이었음이 분명하다. 이곳에는 고려 초기 불교계를 주도하였던 고승들과 관련된 인물이 주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걸쳐 경기 남부지역의 정치 문화적 기반은 대개 경기 북부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특히 고려초기 이래 개성과 한양을 아우르고 있는 경기 북부는 양주의 도봉원(영국사, 법안선 惠炬)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고, 경기 남부는 여주의 고달원(고달사, 봉림산문 璨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서산 보원사(화엄학 坦文)와 문경 희양원(봉암사, 희양산문 兢讓)은 고려 태조 이래 광종에게 큰 영향을 준 사찰들이었다. 안흥사 또한 당시 고려 불교계의 주축이었던 화엄학과 선학 및 법안선풍을 주도한 고승들과 일정한 관계 속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천에는 여러 인물들이 있지만 역사성을 남긴 인물로는 서신일(徐神逸), 서필(徐弼), 서희(徐熙, 942~998), 서눌(徐訥), 서원(徐遠), 서공(徐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서필은 신라시대 서신일의 아들인데 광종(光宗) 때 활동하였다. 그는 광종 때에 벼슬이 내의령(內議令)에 이르고 정민(貞敏)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개국공신으로서 성종 13년(994)에 광종의 묘정에 유신성(劉新城)과 함께 배향되었다. 또 서희는 조선후기에 이관의(李寬義)와 김안국(金安國)과 함께 설봉서원에 배향되었다. 불교 성소였던 안흥사터를 고려 창왕 때(1389) 유교 성소로 탈바꿈시킨 현감 이우(李堣)는 이곳에 안흥정사를 지어 학생들을 모으고 강학을 시작하였다. 조선 태조 때(1401) 감무 변인달(邊仁達)은 이곳 서북부 1리에 이천향교를 지었다. 전의(全義) 이세관(李世珤)은 이천에 애련정을 지어 한양 주변의 지식인들을 불러와 이곳을 살롱(The Salon)으로 만들었다.
경기 남부의 이천 안흥사가 안흥정사(安興精舍)를 거쳐 이천향교가 된 이래 이 공간은 지금 유교의 성소로 기억되고 있다. 이곳의 당간지주석이 사라지고 오층 석탑이 경복궁과 일본의 오쿠라 슈고칸(大倉集古館) 정원으로 반출된 이후 이곳이 더 이상 불교의 성소임을 환기시켜 내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이곳을 발굴 조사할 때 '안흥사'(安興寺)라고 새겨진 기와 명문(銘文)이 출토되어 여기가 절터임을 확인해 줄 뿐이다. 시절 인연이 도래하여 용산 국립박물관에 반출되어 있는 석탑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반출된 석탑 모두가 안흥사지로 되돌아와 안흥사의 복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of Anhung Buddhist Temple and Ichun Hyang-gyo, at Ichon, Gyeong-gi province and the leading figures associated with it. Anhung Buddhist Temple was located in the city of Ichon on the border of Anhung-dong and Gilsan-dong. It is assumed that the temple was established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or early Goryo dynasties, prospered for hundreds of years, and was then abandoned during the late Goryo or early Chosun dynasties. It had twin five story stupas that are as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late Unified Silla or early Goryo dynasties. Because of their size, this temple is considered to be a mega-sized temple and to have been relatively important. It is also believed that it must have had high priests residing in it, who were influential in the Buddhist circle during the early Goryo dynasty.
Considering the political-cultural situation at the time, it is assumed that the southern and northern parts of Gyeong-gi province would have been closely related. It is also assumed that Dobongwon Temple (also known as Young-Gook Temple, represented by Bubansun Hyegeo) was dominant in the north, and Godalwon (also known as Godalsa Temple, represented by Chanyoo of Bonglim-Sanmum) took the lead in the south. It is also worth noting that Seosan Bowon Temple (represented by Tanmoon of the Huayan school) and Hui-yang-won in Moon-gyong (also known as Bong-am Temple, represented by Gung-Yang of Hunyang-Sanmoon) were temples that were greatly influenced by King Gwang-Jong, after the founding of Goryo by King Tae-Jo. Anhung Buddhist Temple would have had good connections with the high priests of the Huayan, Seon, and Buban Seon schools, who led the Buddhist circle of Goryo.
Some of the famous leading figures in the history of Ichon include Shinil Seo, Pil Seo, Hee Seo, Nool Seo, Won Seo, and Gong Seo. Pil Seo was a son of Shinil Seo. He lived during the Silla dynasty and was active in the era of King Gwang-Jong. He rose to the government position of Nae-Ui-Ryong and was given the posthumous name of Jungmin after being enshrined in King Gwang-Jong's shrine as a meritorious retainer at the founding of the dynasty in 994 (the 13th year of King Sung-Jong) with Shinsung Yoo. Hee Seo was enshrined in the Seol-Bong school with Gwan-Ui Lee and An-Gook Kim in the late Chosun dynasty.
The Hyungam of the municipal government, Woo Lee, turned the site of the Anhung Buddhist Temple into a Confucian shrine and named it the Anhung school. Soon afterwards, he gathered students and started to lecture in 1389, during the era of King Chang of Goryo. In 1401 (the era of King Taejo of Chosun), Gamboo In-Dal Byun founded Ichon Hyang-Gyo at the same site, the 1st Ri of the north western region. Junee Se-Gwan Lee built Ae-Ryun-Jung and converted it into a Salon, a place where intellectuals who lived in Seoul and surrounding areas could meet and converse.
From the moment the Anhung Buddhist Temple became Ichon Hyang-Gyo, it was recognized as a sacred place for Confucians. The supporting rocks for the temple flag pole had disappeared, and the stupas were relocated to other sites; one of the five-story stupas was sent to the Gyong-Bok Palace, and the other to the garden of Okura-Shugokan in Japan. Since that time, there has been nothing to remind us that the place was previously a Buddhist sanctuary. It was only verified as a Buddhist temple site when roof tiles with the inscription of the Anhung Buddhist Temple were excavated in 1998 by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and in 2004 by the Central Heritage Administration. I hope Anhung Temple can be restored by having everything returned to the original site.

2이천오층석탑의 반출과 조형

저자 : 손신영 ( Sohn Shin-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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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오층석탑 반출은 두 단계로 이뤄졌다. 첫 단계는 경복궁으로의 반출이다. 공진회 이전부터 조선의 우수한 문화재를 한데 모아두려는 일제의 의도에 따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우수석탑으로서 반출된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일본 오쿠라슈코칸으로의 반출이다. 오쿠라 측에서는 평양 정차장 앞의 탑을 넘겨받고 싶어 했으나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위원회를 동원하여 이천오층석탑 반출을 권했다. 우수하지 않고 역사적 자료도 없어 박물관에 소장할 가치가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천오층석탑은 관고리3층석탑과 함께 이천향교 앞 절터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층수와 조성시기를 달리하는 고려시대의 두 석탑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고려시대 사찰에 2기의 석탑이 조성되었던 바를 시사한다. 하남 동사터에도 고려시대의 3층석탑과 5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탑가람이 주류였던 고려시대 가람배치와 다른 유형이 경기 남부지역에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어 주목된다.


Taking Icheon Five-Story Stone Pagoda out of Joseon can be explained into two stages. The first step is to take it out from the original location to Gyeongbokgung Palace. Until now, it has been considered having taken it out from the original location to decorate the outdoor garden in front of Art Museum of Joseon Mulsan Gongjinhoe (Joseon Industrial Exhibition) held in 1915. However, through the article Maeil Shinbo in 1913, it can be understood that Japanese imperialists had tried to collect the excellent cultural relics of Joseon Dynasty before Gongjinhoe. Thus, It can also be inferred that Icheon Five-Story Stone Pagoda which has worth preserving were moved to Japan.
The second stage is the export from Gyeongbokgung Palace to Okurashukokan in Tokyo, Japan. Okura wanted to take over the tower in front of the Pyongyang train station, but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mobilized Historic Site Investigation Committee and recommended that Icheon Five-Story Stone Pagoda be taken out. That was the reason it was not worth keeping in Government-General Museum because it was not excellent and had no historical data.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could not but claim that on the contrary to its first export intention in order not to ignore Okura's request.

3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불상의 특징과 의의

저자 : 정성권 ( Jeong Seong-kw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1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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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불상의 조성시기와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의 조성시기는 9세기부터 고려중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에 반해 소고리 마애삼존불상은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소고리 마애불의 조성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마애여불이 위치한 장소에 대해 검토하였다. 소고리 마애불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주요 간선 교통망으로 활용되었던 봉업사지 - 설봉산성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이 교통로 주변지역 일대에는 다양한 시기의 불상이 분포해 있다. 본문에서는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양식적 특징을 비교할 수 있는 통일신라 9세기 석불을 비롯하여 10세기 및 11세기 석불과 마애불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은 11세기 조성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덕주사 마애여래입상과 같은 대형 마애불과 양식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이 위치한 곳은 11세기 번성하였던 대표적 법상종 사찰인 법천사, 북악사(영월암), 칠장사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본문에서는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이 11세기 법상종 사찰의 후원으로 사찰간의 중간지점에 조성된 미륵불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소고리 마애삼존불상은 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불상과 비교하여 조선전기 15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근에서 발굴된 15세기 주거지와 야철시설 유적은 소고리 마애삼존불상을 조성한 장인들과 관계가 깊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In this paper, the period of creation of the Buddha statue in Sogori, Icheon was examined. Opinions on the date of the creation of the Sogori Buddha in Icheon vary from the 9th to the 12th century. In this study, the location of the Sogori Buddha image was reviewed in order to determine the time of its formation.
Sogori Buddha statue is the midpoint between Anseong Bongeopsa Temple Site and Seolbongsanseong Fortress in Icheon, which was used as a major transportation network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Goryeo Period.
Buddha statues of various periods are distributed along the transportation route connecting theBongeopsaji site and Seolbongsanseong Fortress and the surrounding area. In this text, Buddha statues from the 9th to 11th centuries that can be compared with Sogori Buddha images are analyzed. As a result, Sogori Buddha statue was stylistically similar to the Yeongwolam Buddha statue created in the 11th century and the large Buddha statue carved into rocks such as the Deokjusa Buddha statue. Through this, it was found that the Sogori Buddha statue was made in the 11th century.
It has been known that the Sogori Buddha statue, in which three Buddha images are carved on a single rock, was made in the late Goryeo period. In this text, the Buddha statues of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ies were compared with the Buddha statue of Sogori carved with three Buddhas.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e stone carving of Sogori, in which the three Buddhas were carved together, was made in the 15th century.

4중국불교 초기 비판의 논점과 변용 ― 「난신멸론(難神滅論)」과 『주자어류(朱子語類)』 「석씨(釋氏)」편을 중심으로 ―

저자 : 박경미 ( Park Gyeong-mi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9-15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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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위진 남북조 시대 이후 불교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는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초기 불교 비판의 핵심은 정신이 멸하는가 멸하지 않는가인데, 불교의 윤회설을 부정하기 위한 출발이기도 하였다.
소침의 「난신멸론」에서는 정신과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영역일 뿐만 아니라, 정신이 육체와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독립적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지적되어 온 사회적 폐해에 대해서도 운용상의 문제일 뿐, 실제로 불교는 유교와 다르지 않게 충효와 인륜을 중시한다고 반박한다.
주자 말년에 제자들과의 문답을 정리한 『주자어류』 「석씨」편에는 주자의 불교 비판이 종합되어 있다. 성리학의 체계, 즉 이기이원론을 근간으로 철학적 바탕 위에서 불교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당시에 융성했던 선종을 염두에 두고 한 불교의 心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다. 유교의 심과는 다르게 불교의 심은 실체가 없음을 논하여, 불교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또한 도통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불교는 허무맹랑한 양주나 묵적에 가깝거나 그들의 논리를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침과 주자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외견상 달라보이나, 비판의 논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자에게서 종합되고 강화됨으로써, 불교비판의 정형화와 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This article deals with Buddhist criticism that occurred after Buddhism was introduced to China. First of all, we examine the issues of Buddhist criticism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reign of the Weijin North and South Dynasties. It is aimed at a paper with a note that says, “The spirit does not perish(「難神滅論」)” of Xiao Shen(蕭琛). It compares with the arguments of the 「Mr.Buddha」 of 『朱子語類』, It is a collection of Ju-hee's words.
The comparison results are as follows:
The question of mental destruction has been extended to the logic of Reason and Mind Neo-Confucianism. And The point about the evils of Buddhism also persisted. In conclusion, the logic and form of the argument have changed slightly, but the core of the criticism has not changed that much. Rather, we could see that it was becoming more solidified and formalized based on 'the Theory of 理氣'. Confucianism's criticism of Buddhism has not weakened over time, nor does the refutation on the part of Buddhism seem to be understood.
On the contrary, Zhu hee's criticism of Buddhism became an example it continued to criticize Buddhism not only in China but also in Korea.

5유교적(儒敎的) 불교(佛敎)의 변형(變形)에 관한 고찰(考察) ―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의 효(孝) 사상을 중심으로 ―

저자 : 명계환 ( Myung Gye-h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5-18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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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는 데에 있어서 유교의 장벽은 매우 높았다. 특히 유교의 중심사상이자 실천윤리인 효에서 보았을 때 머리를 자르고 출가를 하는 불교의 출가수행자는 그야말로 반인륜적인 불효자로 비난받았다. 양 종교의 첨예한 사상적 대립 속에서 마침내 불교는 두 종교의 공존과 조화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방법 중에는 불교에서 제시한 효가 유교의 효와의 타협을 가능케 했던 중요한 사상과 방식들이 있는데 이를 '유교적 불교'라고 이름하려 한다. 그 내용에는 유교의 근본원리인 오상을 불교의 오계와 같다고 주장하는 '오계오상의 일치론'과 위경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효를 주장하는 '경전의 유교적 해석'이 있다. 이처럼 불교의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불교의 중심사상인 연기법의 원리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연기법은 훗날 대승사상의 원리가 되었고 대승보살도의 자비실천의 바탕이 되었다. 대승의 공의 가르침은 무한한 개방성, 즉 끊임없이 열린 테두리 없는 마음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러한 열린 진리관은 모든 종교사상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Confucian barriers were very high for Buddhism to settle in China. Especially, in the view of Confucius 'central idea and practical ethics' Hyo (孝 filial piety) the Buddhist trainee who cuts his head and becomes a monk is really blamed as anti-human impiety to one's parents. In the twisted ideological confrontation of both religions, Buddhism finally began to search for ways to coexist and harmonize the two religions. Among such methods, it became an important clue that made possible the compromise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through the interpretation of filial piety proposed by Buddhism. This is called 'Confucian Buddhism' in larger aspect. In other words, there was 'Confucian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in terms of the consistency of Five Constant Virtues and Five Buddhist Commandments by compiling apocryphal scriptures in order to positively claim Hyo in Buddhist way. They insist that the basic principle of Confucianism, Five Constant Virtues is the same as the Five Buddhist Commandments. The reason why it was possible for Buddhism to tolerate other religions is that it was the law of dependent arising (Skt. pratītya-samutpāda), the central idea of Buddhism. The the law of dependent arising became the principle of Mahāyāna Buddhism in the future and the basis of the mercy practice of Mahāyāna bodhisattva path. The teachings of Emptiness in Mahāyāna Buddhism preach the infinite openness and a constantly open and boundless mind. Thus these open truths have become the basis upon which all religious ideas can be understood and accepted by Buddhism.

6유가의 봉사를 만난 한국불교 시식의식의 원융성 ― 16세기 이후의 의문과 의례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성운 ( Lee Seong-woon ) , 곽묘신 ( Kwak Myo-si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3-21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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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儒家)의 봉사(奉祀)를 만나 조선의 불교가 선택하고 있는 의례는 무엇이 있는가. 유가의 봉사에 대(對)하는 불교의례로는 일체의 망령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례(施食儀禮)가 있다. 이 시식의례는 불교의 무차(無遮) 사상 아래 불교 신행의 첫째인 보시바라밀의 실천으로 일찍부터 권장되어 왔다. 유가의 봉사를 만난 한국불교의 시식의식은 불교사상의 연기철학을 십분 활용하여 유가의 봉사와 원융하였다. 시식에서 영반으로, 영반은 다시 고혼을 품은 시식의식으로 되돌아가고, 자신을 위한 예수재에도 조상을 위한 영반과 시식이 더해지면서 조상과 나는 불이(不二)를 체득하게 한다. 또 일체존재들이 본래 무일물임을, 일체는 마음이 만들어냈음을 설파하는 화엄산림을 마친 화엄시식도 현교의 방법만을 고수하지 않고 밀법의 변공방법을 수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불교의 시식의식의 본회(本懷)가 흐트러졌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일체 존재에게 보시하고 그 존재들이 너나없이 해탈 열반을 이루도록 하는 데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불교 시식의식의 원융성이 빛나는 점이다.


This writing considers Korean Buddhist rites of Sisik(施食, banquet) accepting Confucian memorial service. Buddhist rites of Sisik, in which food is given to all ghosts, is a Buddhist ritual equivalent of Confucian memorial service. This rites has been encouraged as the first Buddhist practice of faith, the donation paramita since the Buddhist idea of None restriction. It is in utter harmony with Confucian memorial service utilizing the idea of Dependent Origination(緣起, paṭicca-samuppāda)
The rites of Sisik turns to Yeongban(靈飯, banquet for the soul of dead monks and nuns), which returns to The rites of Sisik for a lonely spirit of the deceased. And Yesujae(預修齋, performing the rites while in life in order to be reborn in Buddha's land after death) praying for oneself comes to include the rites of Sisik and Yeongban. These lead us to realize non-duality between my ancesters and me. Again, the Hwaeom Sisik finishes up with the Hwaeom forest(Dharma talk for the Flower Adornment Sutra), which teaches all beings are essentially No-one-thing and all things are the creatures of Mind. It seems to accept Byeongong(變供, changing offerings) of the esoteric teaching, not just adhere to that of the exoteric teaching.
However, it should not be asserted that the spirit of Korean Buddhist rites of Sisik has been disturbed. It can be said that it has not deviated a step from giving all of them to all beings and allowing them to achieve nirvana. This is the point that the utter harmony(圓融) of Korean Buddhist rites of Sisik.

7청한(淸寒) 설잠(雪岑)의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 연구

저자 : 전준모 ( Jun Joon-m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24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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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한 설잠은 어린 시절 전도유망한 유자(儒者)였으나, 단종 폐위 이후, 불자(佛者)로 전환하여 여생을 불자로 살았다. 평생 여러 저작을 남겼는데 그 중 『조동오위요해』는 그의 말년 작으로, 그의 사상의 정화가 녹아 있다고 평가 받는다.
조동오위 사상은 동산 양개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이 집대성한 사상으로, 선종의 수행, 실천의 요체에 대해 다섯 가지 측면으로 바라본 것이다. 설잠은 이에 대한 주석을 달아 『조동오위요해』를 저술하는데, 여기서 드러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설잠의 주석의 논지 전개 방식은 우선 적절히 절을 나누고, 세밀하다 싶을 정도로 단어와 구절의 의미 파악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후에 원문에는 상응하는 비유적인 시구를 덧붙인다. 이는 교학적으로 정밀한 분석과 선적으로 상징적인 접근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은 함허 득통이 보여주었던 『금가경오가해설의』 글쓰기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금가경오가해설의』가 교정·회편된 시기가 설잠이 막 출가 했던 시기와 비슷하기에 설잠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설잠보다 한 세대 앞의 선승으로, 유자에서 불자로 전환했던 이력까지 비슷한 기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둘째, 설잠은 조동오위 사상을 만년의 자신의 사상의 정화로 삼고 이에 『요해』를 더한 것으로 사려된다. 이는 조동오위가 진여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겸대(兼帶), 즉 중도의 진리를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좀 더 방점을 둔 조동종의 종지는 설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된다. 현실의 세계를 중시하는 그의 면모는 그가 평생 보여준 삶의 역정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설잠의 생애와 사상이 다면적이었던 만큼, 『조동오위요해』에서 드러난 설잠의 사상이 유교 중심인지 불교 중심인지에 관한 논쟁 역시 뜨거웠다. 여러 가지 주장들 속에서도 유교의 기일원론자로 보려는 주장과 선불교적 현실참여자로 보려는 주장이 그 중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종합하자면 설잠은 『조동오위요해』를 통해 조동선의 종지를 드러내려고 함이 핵심이었으며 그 와중에 유교의 기일원론적 관점을 내비쳤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가 불교와 유교의 회통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는 어느 한쪽의 우월함이라기보다, 시대정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자하는 지성인적 모습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Cheonghan Seoljam was a promising Confucian scholar in his childhood, but after the dethronement of King Danjong, he changed to a Buddhist monk and lived as a Buddhist monk for the rest of his life. He left several works throughout his life, including “Jo-dong-Oui-yo-hae”, which is considered to contain the purification of his ideas.
The idea of Jo-dong-Oui is a collection of images of Dongsan Yang-gae and his disciples, Jo San. The five aspects of Seonjong's performance and practice were viewed in five aspects. Seoljam writes “Jodong Ouiyohae” with a commentary on this, which reveal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the theory of Seoljam's annotation first divides the clauses appropriately and focuses on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words and phrases to the extent that they seem to be detailed. Later, the original text adds a corresponding figurative first pitch. This can be said to be both pedagogically precise analysis and shipping symbolic approaches, which are similar to the writing of the “The views of five people on The Diamond Sutra” demonstrated by Ham Deuk-Tong Above all, I think it had some influence on Seol-jam because the period of correction and reversal of the commentary was similar to the time when Seol-jam had just left. In addition, it is assumed that he was influenced by similar vaporization from Yuja to Bulja, a generation ahead of Seoljam.
Second, Seoljam is thought to have taken the idea of Jo Dong-ohi as a purification of his thoughts for later years and added “yo Hae”. This is because Jo Dong-ohi is explaining the truth of the middle course, which is not biased toward either the world of truth or reality. Jo Dong-jong's end, which focuses more on reality, is thought to have been attractive to Seol-jam. His aspect of emphasizing the real world is also revealed through the journey of life he has shown throughout his life.
As Seol-jam's life and thoughts were multifaceted, there was also a heated debate over whether Seol-jam's ideas were Confucian or Buddhist centers. Among the various arguments, the argument to be regarded as a Confucian monotheism and the argument to be considered as a prepaid reality participant are considered persuasive among them. To sum up, Seol-jam's attempt to reveal the end of Jo Dong-sun through “Jodong Ouiyohae” was the key, and in the meantime, it is thought that he hinted at the monolithic view of Confucianism. However, what he wanted to show through the repentance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is not the superiority of either side, but rather the intellectual figure who wants to stay out of the spirit of the times.

817세기 염불수행과 보살운동 연구

저자 : 이서련 ( Lee Seo-ry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1-28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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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백암성총의 『정토보서』와 『사경지험기』 그리고 진허팔관의 『삼문직지』에 나타난 염불관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조선후기의 염불관은 대승경전의 모든 사상을 종합한 수행관이다.
『정토보서』는 대승경전의 근거를 들어 정토사상을 믿어야 하는 타당성과 염불관을 닦는 법, 그리고 염불관을 닦아온 고승들을 나열하여 정통성을 알리고 있다. 또한 다양한 대중들이 염불수행으로 얻은 영험(果驗)들을 객관적인 사료를 통해 증명하고 정토수행을 권장하는 염불수행서이다. 『사경지험기』는 대표적인 대승경전 네 가지를 수지(受持)·독성(讀聲)·사경(寫經)·불사(佛事)하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험전을 기록하고 있다. 『삼문직지』는 염불개론서로써 정토사상의 염불행법을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이 논서들의 공통점은 대승경전 자체를 정토경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대승경전을 독성하거나 불보살의 명호를 염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염불관은 부처와 중생의 사이에서 구제자(下化衆生)와 피구제자(上求菩提)의 역할을 동시에 행하고 있는 보살의 수행이다.


This writing considers Chanting meditation in The Jeongtoboseo and The Sagyeongjiheomgi by Baekam Seongchong and The Sammunjikji by Jinheo palgwan. Chanting meditation of the late Joseon Dynasty is the method of meditation that synthesizes all the ideas of the Mahāyāna Sūtra.
The Jeongtoboseo, citing some of the Mahāyāna Sūtra, tells why we believe in the idea of the Pure Land, how to practice Chanting meditation and supports legitimacy of Chanting meditation with the eminent monks who have practiced it. It contains historical records that proves the spiritual experiences the variety of people obtained through the practice of Chanting meditation and recommends this meditation. The Sagyeongjiheomgi records the stories of the spiritual experiences that was obtained through observing and keeping, reading, copying, and putting into practice four representative Mahāyāna Sūtras as they cultivate belief, understanding, practice and evidence. The Sammunjikji is an introductory book on Chanting, detailing the methods of Chanting meditation in the idea of the Pure Land.
These books have the viewpoint in common that the Mahāyāna Sūtras are the Pure Land Sūtras. Reading the Mahāyāna Sūtras or chanting the name of a Buddha or Bodhisattva itself is to practice meditation. Chanting meditation is the practice of a Bodhisattva who simultaneously plays the role of a savior and a disciple of the savior between the Buddha and sentient be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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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적 전환점에서 마주한 현대 한국 불교의 도전

저자 : 박수호 ( Park Su-h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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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사회 변동의 차원에서 한국불교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자 한다. 즉,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회구조적 변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불교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한 결과에서 어떤 문제가 파생되었는지를 따져보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이 논문이 주목하는 역사적 전환점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탈근대화, 그리고 후기 정보화라는 거시적 사회변동과 맞닿아 있다. 먼저 개항 이후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의 격랑에 직면한 20세기의 한국 불교가 어떤 도전과 한계를 경험했는지 간략히 살펴 보았다. 이어서 21세기에 당면하게 된 새로운 사회변동을 탈근대화와 후기 정보화라는 차원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특성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탈근대화와 후기 정보화를 맞이하는 한국 불교의 새로운 도전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2송광사 새 발견 연희대본(演戱臺本)에 대한 검토 ― 『목련극각색(目連劇脚色)』의 분석을 중심으로 ―

저자 : 민순의 ( Min Sun-euy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98 (6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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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2018년 1월부터 약 1년 동안 진행된 소장 유물 전수 조사 및 정리 과정에서 펜글씨로 필사된 한권의 책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백지를 노끈으로 철하여 만든 가로 19.3cm, 세로 26.3cm 크기의 책자로서, 그 안에는 팔상극과 목련극의 연희(演戱) 대본 두 편이 적혀 있다. 본고는 이 중 목련극각색에 대한 검토를 시도하는 바, 먼저 책자 안에 실린 두 편의 대본을 모두 분석의 대상으로 하여 가능한 한 상세히 서지적 소개를 하고(1장), 다음으로 두 편의 대본 중 제목이 확실하고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다른 문헌 자료가 존재하는 목련극 대본에 한정하여 제작 및 유통시기, 공연의 실제, 대본의 내용 등을 중심으로 소개와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2~4장). 마지막으로 이상의 분석을 통하여 송광사 새발견 연희대본이 지니는 불교문화사적 의의와 가치를 점검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5장). 여기에서 우리는 송광사 새 발견 『목련극각색』이 세속화되어 연극의 형태로 행해진 목련존자 이야기의 설행 양식이며, 전근대시대에서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대중적불교 공연극의 전통을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봉인사세존사리탑의 이주내력과 조형

저자 : 손신영 ( Sohn Shin-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3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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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사는 광해군대 성릉의 능침사찰로 지정된 이래로 조선후기 내내 왕실후원이 이어졌던 곳이다. 1887년의 화재로 주요 불전이 소실된 이후 퇴락되어 그 규모와 장엄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광해군대에 조성된 사리탑이 현전하고 있어 주목되는 곳이다.
봉인사세존사리탑은 일제강점기에 불법적으로 약탈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60년 만인 1987년, 사리기·중수비 등과 함께 반환되었다. 사리탑의 약탈은 친일파 이호영이 가담한 사리기 절취로 시작되었다. 이후 사리기를 비롯한 사리탑 관련 문화재 일체가 일본인 이와다센소에게 매각되었다. 이와다센소는 1920년 봄에 사리탑을 신고·등록하지 않고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법적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남산에 있던 동본원사 별원에 위탁하였다. 1937년 들어, 일본으로 반출하였으나 기증 직전까지 오사카시립미술관에 맡기고 돌보지 않았다.
조형적으로 보면, 봉인사세존사리탑은 태종대 조성된 무학대사탑과 매우 유사하지만, 옥개석과 상륜부의 비례는 조선시대 조성된 세존 사리탑을 따랐다. 난간석은 창경궁 통명전 연지의 것과 동일하므로, 17세기 당시 國工에 의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봉안장소는, 흥천사사리탑이 사리전에 조성되어 있었던 것처럼 탑법당 내부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약탈과 반출, 반환을 거치며 봉인사세존사리탑은 훼손되고 원형을 잃은 부분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불법적으로 도난되었다가 관련 문화재 일체와 함께 동시에 반환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4불교사학 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 관점(觀點)과 그 거리(距離)를 중심(中心)으로 ―

저자 : 이성운 ( Lee Seong-wo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9-18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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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불교사학 관련 입문서에 대해 불교사료의 집성기, 불교사학의 정초기, 불교사화의 만발기로 분류하였고, 저자의 관점을 불교 내부자의 관점, 유행자적 관점, 외부인의 관점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세 가지 측면으로 그 특징을 분석해본 글이다.
첫 번째 측면 사화 선정과 그 거리를 보면, 내부자 관점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역사 사료의 액면 그대로와 교학 사상과 고승들의 활동이 주라고 할 수 있고, 유행자의 유추가 설득력이 있었고 다양한 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려고 하는 편이었으며, 외부인의 관점은 유행자의 관점과 근사했다고 보인다. 내부자의 관점은 긍정적인 측면 위주이고 그림자의 역사는 다루지 않는 경향이다. 이에 비해 유행자의 관점 사서는 어용승려니 무위도식이니 하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있고, 외부인의 관점을 견지하는 사서는 사실적인 서술로 일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측면 주체 복원과 그 거리를 보면 내부자 관점의 사서는 지나칠 정도로 고승 위주여서 여성 불자나 민중의 문제는 눈 돌리지 않고 있고, 유행자의 관점은 전직 승려출신과 순수 유행자의 관점과 차이가 있다고 보였으며, 외부인은 비교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배불을 바라보고 있다고 보인다.
세 번째 측면 통사 추구와 그 거리를 보면 사서들의 차례를 통해서 보면 사화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한국불교사가 왕조를 뛰어넘어 관통하는 역사로 기술되고 있다고 보이며, 전체 사서들이 국가불교 호국불교로 해석하나 한국불교통사만이 민중불교로 서술하고 있을 뿐인데 대체로 진정한 불교의 유지는 일재와 같은 불교 신앙인들의 신앙행위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불교사 주체들의 역할을 복원하여 온전한 불교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고승 대덕의 학문과 선법활동과 같은 거시 담론에 갇혀 있어서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땅에서 불교 하는 이들의 삶-신앙의 방식이 다뤄져야 한국불교의 성격에 걸맞은 인식의 전환이 실제로 이뤄져야 온전한 불교통사는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5불교철학 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 전문서와 개론서와 입문서를 중심으로 ―

저자 : 고영섭 ( Ko Yo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1-232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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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지난 반세기 이래 시중에 나온 불교철학 입문서(대중서)를 전문서(연구서)와 개론서(교과서)와 대비하여 분석한 글이다. 붓다는 중도와 연기의 교설을 통해 삶의 질과 앎의 질에 대해 쉬웁고 간결하게 전했다. 붓다의 자비로운 삶의 가치(중도)와 지혜로운 앎의 의미(연기)가 대중들에게 좀더 친절하고 보다 또렷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학자와 작가들의 상호 노력이 요청된다. 특히 불교학자들은 전문서인 연구서뿐만 아니라 교과서인 불교(학) 개론서와 대중서인 입문서 간행을 요청받고 있다. 불학자와 불교학자들이 쓰는 전 문서의 또렷함과 대중서의 친절함이 만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자비심(자비)과 보리심(지혜)이 요청된다. 왜냐하면 보리심에 입각한 또렷한 전문성과 자비심에 의거한 친절한 대중성이 아름답게 만나야만 새로운 불교(학) 개론서와 불교(학) 입문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이들 불교 입문서의 수요가 늘어난 것은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대,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의 요청, 중고등학생의 정서 함양과 일반인들의 지적 욕구, 저자들의 인문적 확장성과 불교적 글쓰기, 불교의 포교와 문화의 요청, 불교 입문서에 대한 독자의 수요 확대와 학계의 긍정적 평가, 주요 개론서와 입문서 번역의 요청, 불교의 수행과 명상에 대한 세계적 관심의 증대 등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또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틱 낫한의 평화론, 고엔카의 느낌관찰, 마하시의 위빠사나, 법륜의 즉문즉설, 혜민의 멈춤과 고요, 존 카밧진, 잭 콘필드, 조셉 골드스타인, 페마 쵸드론 등 불교 명상지도자들의 명상법 소개로 인한 불교와 명상의 만남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이해된다.
해당 학문의 정통 학자가 만년에 자기 전공분야의 교과서를 쓰는 것은 학자로서의 임무이자 권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 지식을 체찰(體察)시켜 주기 때문이며, 입문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 소양을 함양(涵養)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전문서(연구서)와 개론서(교과서)와 입문서(대중서)를 쓰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학자가 대중성을 가진 작가를 의식하면서 집필하는 방향과 대중성을 가진 작가가 전문적인 학자를 의식하면서 쓰는 방법을 병진해야 할 것이다. 즉 학자에서 작가로 나아가는 전문서(연구서) → 개론서(교과서) → 입문서(안내서)의 방향과 작가에서 학자로 나아가는 입문서(대중서) → 개론서(교과서) → 전문서(연구서)의 방향을 모두 고려하면서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논자가 근래에 불교의 기본 교리와 개념, 주제와 쟁점에 입각해 간행된 불교(학) 개론서와 불교(학) 입문서 중에서 몇몇 서적을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종래의 개론서와 입문서보다는 상당히 친절해지고 또렷해지고 있으며, 전문성과 대중성의 통로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불교의 주요 개념이자 주제인 중도와 연기, 윤회와 해탈에 대한 기술의 태도, 개론서와 입문서의 차례와 구성에서도 이전보다 진전된 기획 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불교학자들의 친절한 자비심과 또렷한 보리심에 입각한 보다 다양한 개론서와 입문서가 더욱 더 간행되기를 기원해 본다.

6불교명상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저자 : 문진건 ( Moon Jin-k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3-2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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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불교명상 입문서의 발간현황을 양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여 불교명상 관련 국내의 출판계와 학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논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불교명상 입문서 간행과 관련하여 시기별 발간 종수와 저자 특성을 확인하였다.
2011년에서 2013년까지 볼 수 있었던 불교명상 입문서의 양적 증가는 이 시기에 국내 출판계에서 불교명상 전반에 걸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명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중적 인기가 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주로 심리치료와 관련된 명상(마음챙김 명상)의 연구 증가 및 힐링과 웰빙을 위한 명상에 관한 대중적 관심의 증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저자의 전공의 경우, 불교학을 전공한 비성직자 학자들이 불교명상 입문서를 저술하는 경우가 가장 적었다. 지난 10여 년간 발간된 불교명상 입문서의 42%가 외국서적이었다는 것을 보면, 국내 불교학자들의 불교명상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며 따라서 연구도 부족하다고 본다. 반면에 국내 저자들 중에서 비성직자이자 비전공자인 저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고, 해마다 증가하는 수치를 보인다. 이처럼 비전공자에 의한 불교명상 입문서의 저술이 지속되는 현상은 불교명상의 정체성 혹은 전문성이 강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명상의 관심이 급증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명상이나 웰빙 또는 힐링과 불교명상을 적극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교명상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고 명상에 대한 관심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같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에서 불교명상과 불교에 대한 관심을 함께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국내의 불교학계에서는 학제 개편과 학제 간 융합 연구와 같은 적극적인 연구 인프라 구축 작업이 실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불교명상 입문서 간행에 관한 양적 분석만 하였을 뿐, 연구대상에 관하여 일일이 정밀한 내용 분석을 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추후에 불교명상 입문서에 관한 보완적 연구로 더 깊이 있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7불교예술 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그리고 대안

저자 : 백도수 ( Paek Do-su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1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9-28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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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불교예술 입문서 간행의 현황을 소개하고 분석하여 출간을 위한 대안을 다룬다. 불교예술 개념은 사전이나 학자마다 차이난다. 불교예술저서는 『韓國佛敎關係論著綜合目錄』에서 예술, 건축, 탑파, 조각 등을 다루며 2002년까지 373권이 발행되었다. 동국대 불교 예술분야 검색에서는 불교미술, 조각, 음악 순으로 단행본 부수가 많았다. 이에 국회도서관의 147권의 관련자료, 도서출판 운주사의 예술일반자료, 불광미디어의 불교예술자료를 분석하였다. 아쉽게도 불교예술 입문 중 불교미술이 다수를 차지하며 전체를 포괄하는 단행본을 찾기 어려웠다. 불교예술 관련자료는 『불교시청각교재』, 대원사의 출간본이나 조계종출판사의 『불교입문』이나 『Why? 시리즈』 등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어린이, 청소년, 일반대학과 불교대학용, 사찰신도용으로 세분화하되, 발간목적을 고려하고, 출간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동작업을 하며, 타켓인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 내용과 더불어 글씨크기, 표, 용어해설, 문답, 자료제공, 링크, 그림포함 등의 형식적인 측면도 고려하며, 문서출판과 더불어 전자출판도 병행되어야 한다. 불교예술 입문서 내용상, 전반적 연구를 포괄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불교미술, 불교건축, 불교조각, 불교음악, 불교무용 등 분야별 불교예술관련 입문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불교예술 입문서가 21세기 대중에게 불교를 전하고 불교적 삶을 유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므로 학술적, 대중적 논의를 통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불교예술입문서가 발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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