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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장(腹藏), 경전적 의미와 해석

Korean Bokjang, Scriptural Significance and Analytical Study

정은우 ( Jeong Eunwoo )
  •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 한국문화연구 3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2월
  • : 163-200(38pages)
한국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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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문헌 기록의 腹藏
Ⅲ. 경전에 담긴 腹藏과 伏藏
Ⅳ. 복장의 의미와 해석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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腹藏은 불상의 내부에 넣은 후령통과 발원문, 경전 등의 각종 물목과 이를 내부에 넣으며 행하는 의례를 의미하며,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논문은 처음 시작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腹藏의 어원과 의미를 경전을 분석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腹藏은 『대방광불화엄경』에 나오는 용어로서 단순하게는 臟器를 뜻하지만 ‘腹藏相’을 설정하고 부처의 금강신에는 심장만 있음을 강조함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는 복장 안립에서 심장에 위치하는 후령통의 위치에 대한 근거가 되며 五臟六腑를 만들어 불상의 몸 안에 넣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차별성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한 경전 해석에 충실한 우리나라 복장의 독창성으로도 해석된다. 『대방광불화엄경』에는 伏藏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즉 伏藏은 땅속, 누각 밑에 감추어져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싹이 보배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숨어 있는 보물인 伏藏은 부처님의 말씀이자 진리를 의미하며 여래와도 동일시된다고 하였다. 교학과 밀교경전에서의 伏藏은 땅 속에 있거나 깊은 곳에 묻혀있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하지만 구하는 방법은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밀교경전은 진언의 수지와 염송, 작법과 의식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화엄경을 비롯한 교학에서는 報施와 경전의 독송을 강조한다.
따라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줄곧 이어져 온 腹藏이라는 어원은 화엄경과 같은 교학적 불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밀교경전에 등장하는 의식적 행위와 결합하면서 의궤를 갖추며 체계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Bokjang(腹藏, Sacred Object) implies various objects deposited inside Buddha statues, such as Huryungtong (候鈴筒), votive inscriptions, scripture, and ritual inserting items inside statues. It is said that the objects first started in India and came to Korea via China. In this paper, etymology and significance of Buddhist Sacred Objects, which began in the Goryeo Dynasty and used to date is studied by analyzing its scripture.
Bokjang is a terminology in a Mahavaipuya Buddhavamsaka Sutra(『大方廣佛華嚴經』), which simply means organs. But it gives important meaning to Buddha’s Diamond body (金剛身) which sets up the Sacred Object (腹藏相) emphasizing only the heart. It serves as the basis for the location of the Huryungtong deposited in the heart. In China and Japan, they made internal organs (five viscera and six entrails, 五臟六) which were inserted inside the Buddha body, which are the big difference compared to those in Korea. Also it implies the originality of Korean Sacred Objects faithful to scripture interpretation.
In Mahavaipuya Buddhavamsaka Sutra, the word of Bokjang(伏藏) was mentioned. Bokjang(伏藏) was hidden under the ground, or underside of the pavilion, and explained the process of the sprouts from here being converted into treasure. Bokjang(伏藏) as hidden treasure means the truth and words of the Buddha, and is equated with Buddha.
In Mahayana and Esoteric scripture, Bokjang (伏藏) is described almost the same in the point of placing under the ground or into the deep place, but expressed differently in the finding way of method. Esoteric scripture emphasizes carrying and recitals of mantra recitals and rituals. On the other hand, Mahayana and the Avatamska Sutra (華嚴經) emphasize offering and scriptures reading.
Therefore, the etymology of Bokjang(腹藏), used from Goryeo Dynasty to present, has been influenced by the doctrine of Mahayana scriptures such as Avatamska Sutra, and has been combined with the conscious acts appearing in the Esoteric scriptures.

UCI(KEPA)

I410-ECN-0102-2021-900-000523325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4176
  • : 2733-8452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1-2021
  • :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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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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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궤를 통해 본 숙종~영조 연간(1674-1776) 상존호도감 보록 철제입사자물쇠의 시문기술과 금속재료

저자 : 김세린 ( Kim Serin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5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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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숙종~영조 연간 상존호도감에서 제작한 철제입사자물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숙종~영조 연간에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존호의례가 활발하게 시행되었다. 존호를 올릴 때는 여러 의물들이 제작되어 사용되었는데 존호를 받을 대상에게 올리기 위해 인장(印章)인 금보(金寶) 또는 옥보(玉寶)를 조성했다. 철제입사자물쇠는 이를 담는 함의 구성 의물 중 하나로 제작되었다. 의례에 들어가는 자물쇠는 다른 기물에 비해 소형이었고, 규모가 작은 제작 공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규범에 맞춰 정교하게 제작하기 위해 자물쇠를 제작하는 전문 장인인 쇄약장, 시장 등을 투입해 형태를 제작했고, 입사장이 문양시문을 담당하게 해 철저하게 제작을 분업화했다. 한편으로는 1770년 이후 보록과 주록, 호갑에 들어가는 자물쇠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보시장이 등장해 도감 내 쇄약장과 시장의 분화가 확인된다. 아울러 왕실 의례에 사용하는 자물쇠였기에 재료도 국내산 매우 양질의 순도 높은 금속재료를 활용해 제작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개된 현전하는 유물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유물 중에는 추후 보수해 넣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해당 의궤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자물쇠가 많았다. 이는 연구에 있어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조선시대 금속공예의 양상과 기술에 대한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왕실용 자물쇠에 대한 보다 면밀한 유물 조사와 문헌기록 수집 및 분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In this paper, a study was conducted on the iron inlaid locks made by the temporary government office of King Sukjong-Youngjo. During the year of King Sukjong and Yeongjo, national events were more active than other periods. When giving a formal name, I had to observe various manners, and I made a gold seal or a jade seal. An inlaid lock made of iron was used as a lock for the box that kept this seal.
The iron inlaid lock that locks the box was smaller than other pieces made in the same place. However, many craftsmen were put in to make this elaborately polite.
The locksmith made the shape of the lock, and the inlay craftsman was in charge of the decoration. And in 1770, a craftsman who specializes only in the keys to lock boxes appeared. This means that the division of labor has been made more thorough. The material used to make the lock is a metal material with high domestic purity.
However, there were not many artifacts open to the public, and many of them did not match the records due to various factors such as repairs. This was one of the research challenges. However, on the one hand, in order to clarify the whole aspect of metalworking and technology in the Joseon Dynasty, a more detailed investigation of the artifacts and the collection and analysis of literature records left the task of being ur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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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 영조대 연향의궤 속 도기의 용도와 조달방식

저자 : 한혜선 ( Han Hyesu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1-7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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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세기 조선 영조대 연향 의궤 두 건 『갑자진연의궤(甲子進宴儀軌)』(1744년)와 『수작의궤(受爵儀軌)』(1765년)를 중심으로 도기(陶器)의 용도와 종류, 조달 관사와 방식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분석을 통해 왕실에서 연향의례를 준비하는 많은 과정에서 도기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도기는 주로 사무용, 음식준비용, 장인에게 지급되는 제작도구 등으로 사용되었다. 연향의례에서 사용된 도기는 도동해(陶東海), 도소라(陶所羅), 도관(陶罐), 도소탕이(陶所湯伊), 도자박지(陶者朴只), 대옹(大甕), 중옹(中甕), 족정(足鼎), 토화로(土火爐) 등이다. 이 도기들은 크기에 따라 대소(大小)가 구분되기도 하고, 무엇을 담았는지에 따라서도 여러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연향의례에서 사용된 도기는 공조(工曹)와 공조 소속 와서(瓦署)에서 전담하여 조달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공조 소속 옹장(甕匠)이 조달을 책임지는 구조였지만 이들의 실제 제작까지 도맡았던 것은 아니고 큰 틀에서 세금의 형태로 납부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기가 화려한 조명을 받는 기물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의궤만 살펴보아도 왕실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에서 사용된 필수품목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의궤 속 도기의 양상을 살펴보는 작업은 특정 왕실 행사의 준비와 설행(設行) 그리고 마무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재구성하고 복원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연구주제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use, types, government office for supply, and method of pottery, focusing on two cases of ritual banquet Uigwe in Youngjo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18th century, such as 『Gapjajinyeonuigwe』 (1744) and 『Sujakuigwe』(1765). Through the analysis, this thesis verified various utilization of pottery in many processes of preparing for royal court ritual banquet. The pottery was mostly used for office use, food preparation, and production tool provided to craftsmen.
The types of used pottery include Dodonghae, Dosora, Dogwan, Dosotangi, Dojabakji, Daeong, Jungong, Jokjeong, and Tohwaro. The Uigwe is classified into small and large depending on its size, and it is stated as many names depending on what has been contained in it. And those potteries were mainly supplied by Gongjo and Waseo affiliated to Gongjo. Especial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potters belonging to Gongjo were in charge of supply. However, they did not handle the actual production. They must be paying in the form of tax to a larger extent.
Even though the pottery is not an article under glaring lights, the brief examination of Uigwe certainly shows that it was an essential item used for various events and daily life of royal court. Like this, examining the aspect of pottery in Uigwe needs to be handled importantly as a research theme that is essential to recompose/restore a series of processes such as preparation, execution, and wrap-up of specific royal court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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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48년 진찬의궤의 당화준(唐畫樽) 사용의 의의

저자 : 송인희 ( Song Inh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32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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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조선의 왕실 연향에는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19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왕권 강화의 노력이 새로운 정재(呈才)로 가시화 된 한편, 연향의 상차림 규모와 기물 사용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기물의 변화는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재질과 조형이 구별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과 결부되거나, 중국산 자기로 추정되는 당기(唐器)의 사용 규모와 범위가 확대된다는 점에서 중국자기의 애호와 사치 풍조가 확산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19세기 전반 왕실 연향에서의 중국 자기류 사용 증가와 관련해 주목되어 온 것은 1828년부터 새로운 정재 일부에서 꽃을 담는 용기로 쓰이다가, 1848년에 이르러 연회의 중심 영역인 전각 앞을 장식하는 기물로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1848년 이래 '당화준(唐畫樽)'의 사용은 이제까지 의궤 도식의 분석을 위주로 연회의 성대함을 보이는 화려한 기물 정도로 파악되어 왔지만, 조선시대 내내 권위의 상징으로 왕실 연회에 자리했던 용준(龍樽)을 대신한 만큼 그 사용에 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1848년 진찬에 당화준이 중심적인 장식물로 나타나게 된 맥락을 파악하고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해당 의궤 뿐 아니라 19세기 전반 연향 관련 의궤를 재점검했고, 전반적인 기물의 사용상 내에서 당화준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또한 도식(圖式)에 보이는 문양의 특징을 동시기 조선과 중국의 도자 문화와 함께 고찰해 그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19세기 전반 조선 왕실의 고급 기물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는 동시에, 19세기 조선의 물질문화에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a new, distinguishing phenomenon emerged in the royal banquets of the Joseon dynasty. While the reformation of music and dance performances in 1828 exemplifies the efforts to strengthen the monarch authority, the gradual change in the use of utensils has also been identified through the royal protocols of the early 19th century. It is particularly noteworthy that the usage of Chinese porcelain expanded from table-utensils to feast hall decorations and it became evident from the banquet in 1848.
Since their first appearance only as part of the newly introduced court dances in 1828, Chinese flower vases, recorded as Danghwajun, were placed in a pair at center stage of the banquet in 1848. Previous studies identified them merely as an eye-catching object of the sumptuous feast and primarily focused on the stylistic analysis of illustrations in the protocols of royal banquets around the time. However, Danghwajun in 1848 requires an in-depth investigation of its usage and style, as this Chinese vase replaced the blue-and-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design which had long been a symbol of regal authority in the royal ceremonies of the Joseon dynasty.
By scrutinizing relevant accounts in the royal protocols, this paper explores the context surrounding the appearance of Danghwajun as major part of the royal decoration in 1848. Stylistic analysis of the design aims to appreciate its value in the complex ceramic culture of the time. In doing so, this paper illuminates the significance of Danghwajun connoting the attitude of the royal house toward the items for their high-ranking events and further attempts to understand the burgeoning material culture in Joseon during the early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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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후기 왕실 연향용 주기(酒器)의 종류와 운용체계 -의궤의 기용도(器用圖) 분석을 중심으로-

저자 : 구혜인 ( Koo Hyei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183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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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왕실 연향용 주기가 구성된 배경, 종류와 조형 그리고 소비와 수급체계를 살펴본 논문이다. 현전하는 유물이 드문 연향용 주기를 조사하기 위해 조선후기 의궤 기용도를 주로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당시 공예문화에서 주기가 갖는 성격과 의미를 파악했다. 주기는 왕실 연향을 상징하는 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왕실 연향 절차에서 진작하는 순간이 의례의 핵심이고 왕실 구성원의 위차를 예를 통해 드러내는 중요한 기회이자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조선후기 연향의궤 속 기용도의 시작은 조선전기 국가전례서의 준작도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또 의궤 속 주기 중에서 잔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명칭의 수가 총 34개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각각의 명칭 안에는 기종, 구성, 재질, 장식 등의 풍부한 정보들이 조합되어 있다. 그 중에서 서배와 옥잔은 잔의 위계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연향용 주기의 공급과 사용양상에 대해 살펴본 결과 내하, 호조, 상의원 그리고 주원 등에서 주기가 조달되었다. 그리고 참석자의 위계에 따라 주기의 종류, 재질, 색 등이 엄격하게 구분되는데, 이에 비해 다정과 시접반의 기물들은 참석자 간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대조된다.


This article is a thesis that examines the background, types and format, and consumption and supply and demand systems of the liquor vessels of the royal family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As a result of the survey, the beginning of Kiyongdo in the Yeonhyangui-gw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found in the Junjackdosul of the national rituals in the early Joseon period. In addition, cups occupy the largest number of cycles in Uigwe, and the names are varied enough to reach a total of 34. In each name, the information such as model, composition, material, decoration, etc. are combined. Among them, Seobae and Okzan occupy the core in the hierarchy of the cup.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supply and usage patterns of liquor vessels, the liquor vessels were supplied from Nae-Ha, Hojo, Sanguiwon and Juwon. In addition, the type, material, and color of the liquor vessels are strictly classified according to the hierarchy of the partici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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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한제국기 유림의 존성운동(尊聖運動)과 그 의미

저자 : 노대환 ( Noh Daehwa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2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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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대한제국기에 일부 유림이 중심이 되어 전개했던 尊聖運動을 고찰한 연구이다. 존성운동은 호서의병에 참여했던 유림이 주도한 유학 진흥운동이다. 이들 유림은 국모 시해와 같은 패륜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문명개화론이 확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학이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보아 성균관 제도의 복구 등을 통해 유학을 재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1899년 고종이 우리의 종교인 유교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조령을 내리자 유림은 이에 고무되어 존성을 위한 출판 작업에 나서 1900년에 『尊華錄』, 1903년에 『大東正路』를 간행하게 되었다.
존성운동은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이 피탈되기 전에 시도된 유학 진흥을 위한 유림의 적극적인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1년 대대적으로 척사운동을 전개한 이후 유림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고종이 황제 지위에 오르자 고종에게 큰 기대를 걸고 존성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종은 유학을 진흥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존화록』과 『대동정로』가 각각 호서유림과 영남유림이 주도로 편찬되는 등 유림도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존화록』과 『대동정로』의 내용은 전통 유학을 고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존성운동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에 실망을 느껴 사상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유림이 속출하였다. 존성운동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도 여러 인사들이 계몽주의자로 전신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 과제이다.


This paper is a study that reviewed the Confucian promotion movement led by some Yurim during the Korean Empire. Confucian scholars judged that the main reason for the occurrence of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and the spread of the theory of civilization enlightenment was due to the decline of Confucianism. Therefore, they argued that Confucianism should be reinforced through restoration of the Sungkyunkwan system. In response to this request, Gojong issued an ordinance in 1899 stating that our religion, Confucianism, should be revealed. Inspired by this, Confucian scholars were encouraged to work on publishing to promote Confucianism, published 『Zonhwaroke』 in 1900 and 『Daedongjeongro』 in 1903.
The respect movement is noted in that it was Confucian scholars's last attempt to promote Confucianism during the Great Korean Empire. Confucian scholars did not show much movement after the massive retaliatory movement in 1881, but when King Gojong ascended to the status of emperor, they held high expectations on King Gojong and launched a campaign to promote Confucianism. Contrary to expectations, however, Gojong did not take any measures to promote Confucianism. Confucian scholars were not able to show their cohesion, and the contents of 『Zonhwarok』 and 『Daedongjeongno』 remained at the level of adhering to traditional Confucianism. As a result, the respect movement ended without any practical effect. Disappointed by this, Confucian scholars seeking an ideological transformation appeared. Among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Confucianism promotion movement, several persons became enlightenmentists. Confirming this movement is a new research t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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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식민지 조선의 사치 담론에 대한 여성의 대응과 의의

저자 : 권미경 ( Kwon Migyou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5-24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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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주도의 담론에서 여성은 종종 사치 소비의 주체로 비난받아 왔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여성도 그러했다. 특히 모던걸 이미지 속의 근대 여성은 그들의 외모를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사치 소비의 주체로 지목받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았다. 본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지배담론에서 여성이 사치 소비의 열성적 주체로 비난받는 현상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여성의 대응 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 등의 사료를 살핀 결과, 여성들은 자신을 향한 사치 담론에 침묵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기획하여 주도한 민족주의적 사치 배척 운동의 능동적 주체로도 활약했는데, 이는 지배 논리에 대한 동조인 동시에 여성의 사회 참여와 신장된 권력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또한 사치 담론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반응으로, 여성들이 담론장에 직접 등장해서 자신들을 둘러싼 사치의 비난과 오해를 적극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본고는 이를 지배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이상의 발견과 해석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사치 담론에 대한 여성의 능동적 역할과 전복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In male-led discourse, women have often been accused of luxury consumption. So did women in colonial Korea. Modern women in colonial Korea were consistently blamed for luxury consumption and were morally criticized in the luxury discours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women responded to this dominant discourse produced by males. After reviewing the historical data from newspapers and magazines at the time, it was concluded that women were not silent on the luxury discourse toward them. The reasons for this are as follows. First, women also played an active role in the nationalist anti-luxury consumption movement planned and led by men. This was interpreted as an agreement to the dominant discourse and a phenomenon showing women's participation in society and increased power. Second, as a more direct response to the luxury discourse, women appeared directly in the discourse to actively refute the criticism and misunderstanding of the luxury consumption surrounding them. This paper interpreted this as the possibility of women as active subjects who could crack the governing ideology. Based on the above findings and interpretations, it was possible to find the active role of women and the possibility of subversion in the luxury discourse in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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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근대 화전가 속 놀이문화의 재현 양상과 그 의미 -1950~7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유정선 ( Yu Jeongsu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9-28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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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20세기 이후 화전가의 통시적 흐름 속에서 1950년대가 변곡점이 된다고 보고, 1950년대~70년대 화전가의 작품 세계를 고찰하였다. 이는 화전가가 쇠퇴해간 향방을 탐색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시대추정이 가능한 작품 15편을 대상으로, 작품의 구성과 놀이문화의 재현 양상을 분석하였다. 1950~70년대 작품에서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규방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부자유한 삶의 애로사항을 술회하고 있다. 반면에 친정방문을 통하여 놀음에 참가하고 있는 작품이 등장하고, 도입부에서 개인의 이력을 술회하면서 시작하는 작품들이 출현하고 있는 점은 달라진 점이다.
또한 1950~70년대 화전가에서는 이전과 달리, 준비과정에서 놀이 장소의 상징성이나 물자의 경제적 동원력을 비중 있게 재현하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놀이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재현된 놀이는 '춤추기'와 '인물비평'이다. 놀음의 분위기도 절도와 품격 있게 노는 것을 추구하던 것에서 바뀌어 유쾌하고 분방하게 노는 것을 추구한다. 위계와 서열의식을 중시하며 결속과 화합을 다졌던 데에서 보다 소극적인 태도로서의 '원만하게 놀기'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놀음의 분위기와 인물비평의 재현은 마을과 문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개개 성원들의 개성에 주목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1950년대에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지역사회에서 문중의 사회적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중 또는 마을의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화전놀이가 지니고 있었던 문화적 의의는 퇴색한다. 위계와 서열로 대변되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고 놀이의 분방함과 다양함을 가져왔다. 반면에 문화적 교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화전가의 무게중심이 놀이적 요소로 옮아간 것을 보여준다. 이후 화전가에 투영되어왔던 놀이적 요소는 관광이 대신하였으며, 문화적 요소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대체해간 것으로 보인다.


In this thesis, I considered that the 1950s became an inflection point in the synchronic flow of hwajeonga after the 20th century, and examined the world of hwajeonga in the 1950s and 1970s. This is also a work to explore the direction of the decline of hwajeonga. To this end, 15 works that can be estimated of the times were analyzed and the composition of the works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play culture were analyzed.
In the works of the 1950s and 1970s, female writers are still living in a space of Gyubang, reminiscing about the difficulties of their unfreezing life. On the other hand, works that participate in noreum through parental visits are appearing, and the fact that works that start by retrieving personal history in the introduction are appearing which is a different point. In addition, unlike before, in the 1950s and 1970s, the symbolism of the place or the economic mobilization power of the place was not reproduced in a significant way, unlike before.
In the full-fledged play part, the plays that were mainly reproduced are 'dance' and 'character criticism'. The atmosphere of play is also changed from the pursuit of theft and dignity of playing, and pursuing to play cheerfully and liberally. It has been changed from having solidarity and harmony by placing an emphasis on hierarchy and sense of rank to 'playing smoothly'. This means that compared to the attitude that emphasized the positive sense of community, the attitude has changed to a passive attitude.
Reproduction of this atmosphere of noreum and character criticism has resulted in paying attention to the individuality of individual members rather than emphasizing the collective identity of the village and the clan.
In the 1950s, modernization was promoted in earnest, and the social influence of literati in the local community was weakening. Accordingly,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Hwajeonnori based on the community consciousness of the clan or village fades. The weakening of the sense of community, represented by hierarchy and rank, emphasized individual individuality and brought a sense of predicament and diversity in play. On the other hand, the function of satisfying the needs of cultural education has weakened. Accordingly, it shows that the center of gravity of the Hwajeonga has shifted to a playful element. Since then, tourism has replaced the elements of play that have been projected onto the Hwajeonga, and the cultural elements seem to have been replaced by a new popular culture that emphasizes individual aut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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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문화의 무형문화유산적 특징과 의미 -만경강과 동진강을 중심으로-

저자 : 정성미 ( Jeong Seongmi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3-32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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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강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각종 개발 사업과 강 문화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강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조사한 자료가 강과 관련하여 시간, 공간, 주제의 다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 연구는 강과 인간과의 관계를 무형문화유산적 관점에서 해석해보았다. 강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면담조사를 토대로 그들이 강을 기억하고 인식하는 관념을 무형문화유산 속성에 비추어 분석하고 핵심적인 가치를 찾아보았다. 특정 지역을 관통하며 흐르는 강은 친환경적 개발의 대상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삶과 문화가 가치 있게 조사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강 문화는 고유의 생태계와 통시적으로 인간의 행위가 다양하게 반영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강 문화라고 해서 강과 바다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합수 지점과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감조하천 구간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고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바라보고,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자연과의 상호조화를 이루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지속해온 사회문화적 속성에 주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It is necessary to change the perception of river culture. What are some approaches to understanding river culture?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various development projects and river culture? Can the data surveyed on people living near the river enable a multi-faceted approach to time, space, and themes related to the river? This study analyzed the relationship between rivers and humans and their influence on life from the perspective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Based on interviews with people living near the river, the idea of remembering and recognizing the river was analyzed in the light of the attributes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its core values were searched. Rivers flowing through a specific area should be investigated and documented in value, as well as eco-friendly development, and the life and culture of the area. This is because river culture can be understood in the process of variously reflecting human behavior with its own ecosystem.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rough the case of the Tidal River section that is affected by seawater that the river culture should not be divided into a dichotomy between the river and the sea. Academic research that can contribute to realizing a rich and prosperous culture should be conducted, seeing it as an important value resource that contains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region. In other words, research is needed to pursue mutual harmony with nature and pay attention to the socio-cultural attributes that have been shared and sustained amo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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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투와 법치

저자 : 이국운 ( Lee Kukwoo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59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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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반도의 역사에서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바깥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서구적 모더니티, 즉 문명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한다는 의미였으며, 더 나아가 그 흐름의 구체적인 방향에 관하여 앞서 언급한 다양한 구도를 동원하고 구사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자격을 획득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속에 관철된 법률가의 '이중-대리자 전략'(double-agent strategy)을 해명하기 위하여 1960년에 제시되었던 함병춘의 소송기피문화 테제에 주목한다. 함병춘의 테제가 설명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그에 대한 다양한 비판론과 특히 1998년 이후의 소송폭발현상에 비추어 명백하지만,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테제는 아직 제출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20세기 한국 정치의 기본 흐름을 '질투의 정치'로 놓고 그 본질을 '정치적 불안정의 제도화' 또는 '패자부활전의 끊임없는 제도화'로 동일시하면서, 그 속에서 '(근대)법의 동원으로서의 법치'가 수행되는 방식을 '부정적 동원에서 긍정적 동원으로', '주관적 동원에서 객관적 동원으로'라는 두 쌍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법률가집단이 '이중-매개' 역할을 비대칭적으로 수행해왔음에 주목하면서, 1998년 이후의 소송폭발현상에 관한 가설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서 '질투의 정치'를 확산시키는 핵심 매개였던 법률가집단이 개업 변호사 중심으로 바뀌었음에도 사법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이 그 골자이다. 마지막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끝나 '질투의 정치'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진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질투와 법치의 미래를 간략히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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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문학사'의 인식과 서술 체계 -『한국문학통사』의 갈래론을 중심으로-

저자 : 류준필 ( Ryu Junpil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1-10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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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분야 전반에 걸쳐 '통설'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적어도 '국어국문학과'의 두 가지 표준적 교과목인 '(한)국문학개론' 및 '(한)국문학사'와 깊은 연관이 있어야 한다. 본 논문은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이론이 이 두 교과목의 교과 내용에 적합할 뿐더러 또 이미 장시간에 걸쳐 『한국문학통사』가 교재로서 두루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문학통사』에 구현된 문학사 인식과 서술 체계는 통설로 인정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한국문학통사』는 5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분량이 방대한데다 1982년~2005년에 걸쳐 많은 수정과 개고가 진행된 저술이라는 점에서 복잡하다. 따라서 먼저 『한국문학통사』의 제 1판~4판의 서술 체제를 비교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참고문헌 목록의 변동에 우선 주목함으로써 『한국문학통사』와 선행 연구의 관련 양상을 확인하고 조동일의 갈래론이 시작되는 지점을 살폈다. 조동일의 갈래론은 선행 연구가 남겨놓은 연구사적 과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가사의 갈래 규정을 통해 교술 갈래를 설정하고 또 가사의 발생원천을 교술민요에서 찾는 시각 전환을 통해 갈래이론은 물론이고 문학사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는 『한국문학통사』의 기본 구도가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갈래론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한국문학통사』가 생성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조동일의 갈래론과 문학사의 이론은 이론적 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사적으로 이월된 문제해결 노력 과정에서 자연스레 선택된 연구 방법이자 시각이다.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이론은 갈래체계와 문학담당층을 핵심 요건을 삼는다. 문학사에서 역사적으로 공존하는 장르들의 상보적ㆍ경쟁적 관계의 총체를 뜻하는 갈래 체계라는 개념은, 문학사의 거시적 변동을 문학 자체의 현상에 근거해 해명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갈래체계의 거시적 변동은 문학담당층의 주도 세력이 교체됨으 로해서이다. 문학담당층의 교체는 대체적으로 세계관의 전환이라 할 만한 사상사적 전변을 의미하고 새롭게 등장한 담당층의 사상=세계관이 갈래체계의 변동을 야기한 다. 그러므로 『한국문학통사』의 통설적 지위는, 갈래론과 문학담당층론이 결합된 갈래체계의 이론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이론이란, 조윤제의 갈래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앞선 세대의 연구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으로, 그것과는 또 다른 계기를 품으며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그 계기가 무엇인지는 현재까지 통설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인식 이후의 계보가 구성될 수 있어야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인식과 서술 체계는 통설로 인정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한국문학통사』는 5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분량이 방대한데다 1982년~2005년에 걸쳐 많은 수정과 개고가 진행된 저술이라는 점에서 복잡하다. 따라서 먼저 『한국문 학통사』의 제 1판~4판의 서술 체제를 비교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참고문헌 목록의 변동에 우선 주목함으로써 『한국문학통사』와 선행 연구의 관련 양상을 확인하고 조동일의 갈래론이 시작되는 지점을 살폈다. 
조동일의 갈래론은 선행 연구가 남겨놓은 연구사적 과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형성되 기 시작하였다. 가사의 갈래 규정을 통해 교술 갈래를 설정하고 또 가사의 발생 원천을 교술민요에서 찾는 시각 전환을 통해 갈래이론은 물론이고 문학사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는 『한국문학통사』의 기본 구도가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갈래론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한국문학통사』가 생성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조동일의 갈래론과 문학사의 이론은 이론적 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사적으로 이월된 문제해결 노력 과정에서 자연스레 선택된 연구 방법이자 시각이다.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이론은 갈래체계와 문학담당층을 핵심 요건을 삼는다. 문학사에서 역사적으로 공존하는 장르들의 상보적ㆍ경쟁적 관계의 총체를 뜻하는 갈래 체계라는 개념은, 문학사의 거시적 변동을 문학 자체의 현상에 근거해 해명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갈래체계의 거시적 변동은 문학담당층의 주도 세력이 교체됨으로해서이다. 문학담당층의 교체는 대체적으로 세계관의 전환이라 할 만한 사상사적 전변을 의미하고 새롭게 등장한 담당층의 사상=세계관이 갈래체계의 변동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한국문학통사』의 통설적 지위는, 갈래론과 문학담당층론이 결합된 갈래체계의 이론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이론이란, 조윤제의 갈래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앞선 세대의 연구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으로, 그것과는 또 다른 계기를 품으며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그 계기가 무엇인지는 현재까지 통설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문학통사』의 문학사 인식 이후의 계보가 구성될 수 있어야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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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민족의 기원을 찾아서 -한국 상고 민족 담론의 창안-

저자 : 오영찬 ( Oh Youngcha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3-1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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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근대역사학에서 한국 상고 민족의 기원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어 나간 과정과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20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된 민족 기원 담론은 신채호와 박은식으로 대표되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단일민족론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단일민족론은 식민 통치와 동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제국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해 부정당했다. 일제는 조선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함으로써 민족 독립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논리를 펼쳤다. 시라토리구라키치에서 출발하여 이마니시 류 등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일제 관학자들은 조선사에서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주장하였으며, 한국사를 남쪽의 한족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1923년 이병도가 제시한 조선민족론은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의 통설을 보여주는 맹아적 형태로서 주목되는데, 만주와 한반도에 거주하는 숙신과 예맥, 한을 모두 조선민족으로 설정하는 단일민족론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일본 학계의 언어계통론과 문화전파론의 영향도 나타난다. 식민 지배 하에서 침잠되었던 이병도의 조선민족론은, 해방 이후 자주적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 속에서 다시 부활하였다. 당시 한국사의 민족 기원론은 1923년 이병도의 논의를 수정하여 재론하는데서 그쳤을 뿐, 새로운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연구 방법론적으로 중국 문헌에서 나타나는 선사 또는 원사시대 종족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의 동질성을 인식하는 작업이 과연 가능한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민족 기원 담론이 삼국 이전에 이미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고조선-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선험적인 한국사 통사체계를 역으로 소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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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후기 회화'의 연구사 -풍속화의 재발견과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저자 : 김소연 ( Kim Soyeo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3-1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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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미술사가 근대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서, 각별히 조선후기 회화의 연구사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회화의 주요 장르로 부각된 풍속화의 위상변화 및 시대적 인식을 이해하고,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檀園 金弘道(1745-1806)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했던 일본인들은 조선후기 회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김홍도 역시 미술사 서술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김홍도는 조선회화사의 중심적 존재로 인식되며, 특별히 풍속화는 김홍도의 特長이자 전통회화의 精髓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근현대기의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있어서 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한 인식변화와 서술양상을 면밀히 살피고,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풍속화가의 통설이 작동하는 계기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 미술관의 공적 전시를 위한 조사·수집과 일본인들의 초기 조선미술 연구가 깊은 관련 하에 있었다는 점, 『개벽』, 『문장』과 같은 문예지가 유교와 당쟁에 침몰해버린 시대로 비추어졌던 조선후기와 그 시대의 회화예술을, 민족 문화가 창달했던 새로운 전성기로 선양하는 무대가 되었음을 관찰했다. 또한, 조선후기 회화사의 형성과정에서 풍속화는 조선적, 사실적, 근대적, 때로는 혁명적 장르로 재발견되며 김홍도를 대표하는 장르로 부각되었으나, 동시에 신선도는 중국식, 비합리적, 비사실적이며 상상의 산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김홍도의 신선그림에 대한 텍스트는 점차 희미해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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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의 복장(腹藏), 경전적 의미와 해석

저자 : 정은우 ( Jeong Eunwoo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3-20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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腹藏은 불상의 내부에 넣은 후령통과 발원문, 경전 등의 각종 물목과 이를 내부에 넣으며 행하는 의례를 의미하며,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논문은 처음 시작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腹藏의 어원과 의미를 경전을 분석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腹藏은 『대방광불화엄경』에 나오는 용어로서 단순하게는 臟器를 뜻하지만 '腹藏相'을 설정하고 부처의 금강신에는 심장만 있음을 강조함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는 복장 안립에서 심장에 위치하는 후령통의 위치에 대한 근거가 되며 五臟六腑를 만들어 불상의 몸 안에 넣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차별성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한 경전 해석에 충실한 우리나라 복장의 독창성으로도 해석된다. 『대방광불화엄경』에는 伏藏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즉 伏藏은 땅속, 누각 밑에 감추어져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싹이 보배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숨어 있는 보물인 伏藏은 부처님의 말씀이자 진리를 의미하며 여래와도 동일시된다고 하였다. 교학과 밀교경전에서의 伏藏은 땅 속에 있거나 깊은 곳에 묻혀있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하지만 구하는 방법은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밀교경전은 진언의 수지와 염송, 작법과 의식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화엄경을 비롯한 교학에서는 報施와 경전의 독송을 강조한다.
따라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줄곧 이어져 온 腹藏이라는 어원은 화엄경과 같은 교학적 불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밀교경전에 등장하는 의식적 행위와 결합하면서 의궤를 갖추며 체계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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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 중-후기 왕실용 금속제 입사공예품의 제작도구 - 의궤기록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세린 ( Kim Serin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1-25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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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의 제작도구는 제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기물의 형태를 갖출 때 사용하는 도구와 표면의 가공 및 마연, 장식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포괄한다. 조선시대 공예품 제작에 사용된 도구는 현전하는 의궤 기록을 통해 구체적인 도구의 명칭과 도구가 사용된 분야, 사용자가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의궤 자체는 왕실공예품의 제작에 국한된 기록이지만, 의궤에 기록된 제작에 참여한 장인의 유형은 官에 소속된 官匠은 물론 때에 따라 私匠도 있다. 이를 통해 관영수공업과 민영수공업의 제작기술과 도구를 일정부분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의궤에 기록된 공예품의 구체적인 제작 및 시문 기술과 도구가 연계 분석되는 분야 중 입사공예품 기록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의궤 내입사공예품 제작 및 입사장에게 지급된 도구를 기록 유형에 따라 다른 문헌과 비교했다. 그리고 도구의 종류와 용도를 추출했다.
아울러 주요 외부 요인을 함께 고려해 Ⅲ장에서는 도구를 용도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이를 통해 문양의 세밀한 표현과 표면 마연, 입사 시문 시 충격으로 인한 기물의 파손 방지 등의 목적으로 도구가 매우 세분화되어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실제 입사공예품의 제작에 사용된 도구들은 현재 입사기법을 전수받은 국가무형문화재 입사장, 조각장 분야에 전승돼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재의 전승 상황은 Ⅲ장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도구와 의궤 내 기록과의 비교를 통한 용도와 용례 파악은 조선시대 입사공예품 제작 도구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존 미술사, 공예사 분야에서 활발하게 조망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연구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기초 연구방법론을 제시하는 단계에 머무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공예사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연구방법론을 적용해 제작도구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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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름에 젖은 머리를 턱 비어 던지고 -사회주의, 여성주의, 지역주의, 혁명가 정칠성의 겹서사 연구-

저자 : 진선영 ( Jin Sunyou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1-28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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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칠성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작업은 근대 사회주의 운동사, 여성사, 문학사, 언론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그간 정칠성의 이력 및 사상에 대한 조명이 성실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본고는 정칠성이라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여 살펴보았다. 3.1운동 이전-일본 유학과 함께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근우회 창립 전까지-근우 시대-근우회 해소 이후-해방이후 순으로 정리하였고, 정칠성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되도록 자기서사의 구절들을 직접 인용하였다. 정칠성이 발표한 논평을 사회주의, 여성주의, 지역주의로 구분한것은 사상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함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론과 운동을 종합화하고자 하였다.
정칠성의 삶은 전통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식민지 과도기를 살아낸 한 여성의 미시사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론적ㆍ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투쟁적인 방식으로 당대와 길항하였다. 이것이 굵직한 식민지 운동사와 겹쳐질때 정칠성의 삶은 식민지 여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정칠성은 삶의 목적의식을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강연, 논평을 통해 무산 대중과 공감, 소통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것이 세련되지는 못했을망정 최소한 정직하고자 했던 자기결백의 인물이었다. 핍진한 삶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사회적 쟁점들-계급, 젠더, 조직의 문제는 강렬한 주제의식으로 여성혁명가의 내러티브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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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행 전국 각지의 <정월대보름축제>들이 보여주는 보편적 형태와 특별한 차별성이 없으면서도 규모면에서도 소단위 법정행정구역 내부의 주민참여행사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칠보산달집축제>를 <수원화성문화제> 수준의 전국구 관광문화콘텐츠로 리모델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현행 수원 <칠보산달집축제>의 스토리두잉양상과 <달집태우기> 민속연행원형의 재매개화 배경을 살펴본 후에 현행 <칠보산달집축제>가 노정하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앞으로의 <칠보산달집축제> 발전을 위한 리모델링의 기반을 마련해 보았다.
현행 <칠보산달집축제>의 스토리두잉 시스템은 <풍물패 공연>·<지신밟기>의 스토리체험스테이지와 <쥐불놀이>·<달집 소원지 달기>·<연날리기>·<긴 줄넘기>· <널뛰기>·<투호놀이>·<윷놀이>·<원반 돌리기>·<떡메치기>·<고구마 구워먹기>·<석전놀이>·<박 터트리기> 등의 스토리체험부스들로 구성된 <달집 준비> 스토리체험존, <비나리>·<고사>·<풍물놀이>·<달집 태우기>의 스토리체험스테이지로 구성된 <달집 점화> 스토리체험존, <불꽃놀이>·<불넘기>·<강강술래>의 스토리체험부스들로 구성된 <달맞이> 스토리체험존으로 구조화된다.
이러한 <칠보산달집축제>는 전국 각지역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두루 행해지던 <달집태우기> 민속의 보편적인 연행맥락을 수원이라는 한 지역의 로컬 맥락으로 특수화 하여 현재적으로 재매개화 한 지역축제콘텐츠가 된다. 수원시 신도심인 영통구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전통적인 <달집태우기> 민속연행원형의 재매개화 스토리두잉 축제가 수원시 구도심인 권선구에서 <칠보산달집축제>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공존 지점에서 지역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수원시 구도심의 상대적인 지역문화적 차별성에서 찾을 수 있다.
현행 <칠보산달집축제>의 새로운 리모델링스토리두잉을 위해 기존 스토리두잉시스템에서 도출한 학술적 입안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스토리두잉 시스템의 구조적인 차원이고, 두 번째는 민속연행 원형과의 연관성 차원이며, 세 번째는 전국 <달집태우기> 축제와의 유사성 차원이다. 후속연구에서는 현행 <칠보산달집축제>를 수원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전국구적인 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상기 세 가지 입안점들을 중심으로 <칠보산달집축제>의 차별성·특수성 확보를 통한 대중성·상업성 확보 방향으로 리모델링 방안을 제시하였다.

KCI등재

9이탈리아에서의 한국학 동향과 전망 -시에나 외국인 대학을 중심으로-

저자 : 정임숙 ( Jung Imsuk ) , 김참이 ( Kim Charmy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9-36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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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ims to present the general panorama of Korean studies in Italy, by examining the universities from the introduction of Korean language course until the future prospects of Korean Studies. In Italy since long time Korean Studies are introduced through a single course and have been enriched by the curriculum of first and second language in BA, MA and Ph.D. degrees, but until 2017 only four universities have been offering those degrees in Korea-related Studies, in particular: University of Bologna, the University of Venezia Ca' Foscari, University of Napoli L'Orientale and the University of Roma La Sapienza. Starting from the academic year 2017/2018, responding to the continuous increasing interest towards Korean and Korean language education in Italy, the University for Foreigners of Siena launched the first courses related to Korean Language and Korean studies and is enjoying great success.
The present work intends to examine the current status of various universities involved in Korean studies, by focusing on the University of Foreigners of Siena specialized for the education of Italian and foreign languages, and to estimate the prospects of Korean studies through the adoption and the necessity of some concrete plans and projects, which must be emphasized so as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and the enrichment of Korean Studies curriculum. The proposals provided in this work might improve the current weak parts: to strengthen and guarantee the quality of the courses related to Korean studies; to invest in the publication of valuable books and articles; to consolidate the teaching staff and to invest in young scholars; to promote the academic research and activities through the collaboration with various universities and expanding the network between the scholars.

KCI등재

10도기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한혜선, 『고려 도기 연구』(역락, 2019)-

저자 : 강경남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63-372 (1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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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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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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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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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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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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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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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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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논총
5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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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문화
3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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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연구
9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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