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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군사문화학회> 한일군사문화연구> 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의 문학화와 전쟁 기억-오다 마코토(小田實)의 『깊은 소리(深い音)』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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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의 문학화와 전쟁 기억-오다 마코토(小田實)의 『깊은 소리(深い音)』를 중심으로-

The Literary Rendering of the Great Hanshin Awaji Earthquake and the Memory of the War ― Focusing on Makoto Oda’s Deep Sound ―

엄인경 ( Um Inkyung )
  • : 한일군사문화학회
  •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4월
  • : 297-322(26pages)
한일군사문화연구

DOI

10.47563/KJMC.27.9


목차

1. 들어가며
2. 1995년의 대지진과 환기되는 전쟁 기억
3. 『깊은 소리』의 재난 서사적 요소
4.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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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5년에 발생한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이를 정면에서 다룬 오다 마코토(小田實)의 소설 『깊은 소리(深い音)』(2002)를 재난 서사로서 분석한 것이다. 『깊은 소리』의 등장인물들은 1995년의 대지진 후의 모든 상황을 전쟁에 빗대어 인식하고 묘사한다. 그들은 ‘전우’로서 연민과 우정을 나누며 전쟁터로 빗대어진 폐허 속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은 한신·아와지대지진 50년 전의 1945년 전쟁을 환기시키는 특별한 소설적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재난 서사로서 이 소설이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첫째,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 재해에 비해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인재(人災)적 성격의 재난, 둘째, 전쟁을 체험한 기성세대와 정신적으로 미숙한 십 대와의 세대 갈등과 소통의 단절의 극적인 대비와 재난의 연속성, 셋째, 표제어인 ‘깊은 소리’가 인물들에게 죽음과 불안의 상징으로서 공유되다가 결국 여성 신체를 통해 태아가 발신하는 생명의 소리로 변화되어 재건과 희망을 보여준 점이다.
이를 통해 20세기 말 일본의 대도시를 강타하고 크게 동요시킨 이 대지진이 문학화 과정에서 환기한 전쟁 기억과 의도적 인물 설정 등을 통해 문학이 재난을 기억하는 수법과 의미를 고찰할 수 있었다.
This paper analyzes the novel Deep Sound(2002) by Makoto Oda, which deals with the Great Hanshin Awaji Earthquake that occurred in 1995, as disaster fiction. One of the most significant features of this novel is that the characters compare the post-earthquake circumstances to the situation that prevailed after the Pacific War more than 50 years ago.
I examined three dimensions of this disaster narrative: First, the novel criticizes the human contribution to the disaster, which makes it harsher for the socially vulnerable than for the more powerful or affluent. Second, it dramatically contrasts the generational conflict and the gulf between the older generation who experienced the war and the immature younger people, in this way hinting at a continuation of the disaster. Third, the ‘deep sound’ referenced in the title is recognized by the characters as a symbol of death and anxiety, but is finally transformed into the sound of life transmitted by the fetus, which ultimately makes it the symbol of reconstruction and hope.
Through the above analysis, I was able to grasp the techniques through which this novel conveys the reverberations of this great disaster at the end of the 20th century in Japan, and the multifaceted meaning it carried.

UCI(KEPA)

I410-ECN-0102-2019-300-001386849

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598-8732
  • : 2734-015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3-2022
  •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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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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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의 전략적 가치 고찰

저자 : 박종근 ( Park Jongkeun ) , 방준영 ( Bang Joonyo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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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가 가지는 가치를 알아보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 그리고 일본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분석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주일미군 및 유엔사 후방기지는 어떠한 능력과 위상을 가지고 있고, 일본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큰 틀에서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6·25전쟁을 통해 미국은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유엔안보리를 통해 신속하게 개입하면서 유엔사를 탄생시켰고, 일본에 있던 극동미군을 개전 1주일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한반도로 투입시켰다. 그리고 전쟁 기간 내내 일본은 전쟁물자 생산과 각종 기지 제공, 기뢰제거작전을 통해 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6·25전쟁 발발을 배경으로 창설된 유엔사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일 정부간에 협약을 통해 탄생하였다. 1951년 9월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을 통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엔군에 대해 시설 및 역무를 제공하게 되고, 1954년 2월 유엔참전국과 일본 정부 간에 '유엔군 지위협정'을 체결하여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은 평상시에도 일본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엔사 후방기지는 주일미군 기지중에서 지정된 것으로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90일 이내에 철수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유엔사를 볼 때 정전협정 등 한정된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엔사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해 주일미군과 일본 정부, 자위대, 유엔사 참전국 등 다양한 전쟁요소와 연계되어 있다. 전쟁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로서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국가안보전략 속으로 포함시킬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This study seeks to explore the value of the U.S. forces in Japan and UNC rear bases in Japan, which are important, but not well known to the public. For this, it was necessary to understand USFJ and UNC rear bases in a macroscopic perspective by analyzing their role, and the role of Japan in the case of the Korean War, what capabilities and status the current USFJ and UNC rear bases in Japan have, and how they are related to Japan.
Through the Korean War, the United States became aware of the importance of Korea; hence it intervened quickly through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nd created the UNC, and in a short period of time of less than a week, the US Army of the Far East appeared on the Korean Peninsula. On the other hand, Japan made a major contribution to the victory of the war by producing war supplies, providing bases, and clearing sea mines throughout the war.
In this context of the Korean war, the UNC rear bases were created by a treaty between the US and Japanese government in order for the UNC to carry out the war. In September 1951, through the 'Yoshida-Acheson Exchange Memorandum', the Japanese government provided facilities and services to the UN forces operating in Korea. In February 1954, by “UN Forces Status Agreement” between UNC member state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11 countries including the USA gained free access to the 7 UNC rear bases without prior approval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However, as these UNC rear bases were selected among the USFJ bases in Japan, it was accorded the UNC rear bases would withdraw within 90 days if UNC was disbanded.
When we look at the UNC, we tend to have a limited view considering it simply as an armistice agreement. The UNC is linked to various elements of war, such as the USFJ, the Japanese government, the Japan Self-Defense Forces, and the UNC member states through the UNC rear base. War is an essential matter that determines the fate of the country, and it is desirable as it will serve as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how to incorporate these important elements into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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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일관계 개선, 기회의 창은 오는가?

저자 : 문은석 ( Moon¸ Eunse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5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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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호기, 즉 기회의 창은 과연올 것인가?
이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 연구는 향후 한일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먼저 한일관계 악화의 양상과 원인을 밝힌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 위한 조건을 국제정치의 구조적인 측면과 한일 양자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양국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한일관계 개선 가능성은 한일관계의 양자적 측면보다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더 민감하게 나타남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한일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변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상황의 구조적인 변화에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의 양국관계 흐름에서 양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양국 국민의 상대국을 향한 악화된 인식에 기인하며, 이는 결국 양국의 정권 운영에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양자 간의 정치적 결단이 한일관계 개선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2022년은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해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 결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이며, 일본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 변화가 국제정치의 구조적 요인과 연계되어 양국 관계 개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아울러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새롭게 출범할 대한민국 정부의 대일 외교안보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Will the window of opportunity, come to improv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here the crisis continues?
Based on this problem,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possibility of improving Korea-Japan relations in the future. To clarify this, we first clarify the patterns and causes of the deterioration of Korea-Japan relations. Based on this, the conditions for the improvement of Korea-Japan relations are divided into the structural aspect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the bilateral aspect of Korea-Japan, and the possibility of improvement in bilateral relations is viewed.
It is argued that the possibility of improving the Korea-Japan relationship is more sensitive than the bilateral aspect of the Korea-Japan relationship depending on how the structural factors of international politics change. There are two reasons for this. First, the variables that historically brought about changes in Korea-Japan relations were linked to structural changes in the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East Asia. Second, it is very unlikely that the political leadership of the two countries will make a political decision to improve relations.
However, the direct impact of the bilateral political decision to improv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cannot be overlooked. 2022 is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the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Therefore, we will also analyze how these changes in the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will affect the improvement of bilateral relations in connection with structural factors of international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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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군의 다영역작전 발전과 교리적 고찰

저자 : 손경호 ( Son¸ Kyengho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7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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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경쟁국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다영역작전을 발전시켜왔다. 미군은 교차영역 시너지(cross-domain synergy)를 유용한 원리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한 전쟁 수행방식을 개발하였다. 공해전투는 상대방 영토에 진입하기 위하여 완전히 통합되고 서로 영역을 넘나드는 전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규정하였다. 공해전투는 지상 작전을 반영하고 상대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기 위하여 JAM-GC로 변화하였다. 이어서 출현한 MDO는 교차영역 시너지 생성과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적절한 전력 태세와 구조를 유지하고 융합을 달성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전장을 다영역작전구조를 통해 구분하였다. 한편 MDO는 미군이 경쟁국과 경쟁, 충돌 다시 경쟁으로의 복귀를 반복함을 주장하였다. 모자이크전은 인공지능과 자율무기체계를 활용하여 전력의 분산과 재조합을 시행하여 상대의 결심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JADO는 MDO가 달성하지 못했던 통합을 JADC2에 의해 달성하고 컴퓨터의 도움으로 결심을 상대보다 신속히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공해전투와 MDO는 영역을 중심으로 한 교리이며 교차영역 시너지 활용을 승리를 위한 핵심적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단순한 비대칭적 이익을 얻는 것에서 출발하여 시너지를 얻어 다른 영역으로 효과를 확대하거나 취약한 영역을 보완하고 기회의 창을 생성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JADO는 MDO와 달리 영역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며 모자이크전과 유사하게 결심을 중심으로 한 교리이며 방식은 모자이크전의 그것과 달리 기계의 도움으로 속도를 높이는 데 있다. 한편 미군은 MDO 보다는 훨씬 큰 차원에서 전 영역의 전력을 복합체계 개념을 통해 통합하여 경쟁 상대를 압도하기 위하여 JADO를 발전시키고 있다.


The U.S. military has developed multi-domain operations to deal with competitors represented by China and Russia. The U.S. forces employed cross-domain synergy as an effective principle to develop multi-domain operations. Air Sea Battle was the first case enabled integration of cross domain forces to enter into enemy territory. Later the concept was changed to JAM-GC to gain flexibility in competition. MDO, later version, stipulated force posture and structure, and convergence to maximize the cross-domain synergy. At the same time, the MDO suggested multi-domain operation frame to conduct operations. The MDO describes that the U.S. will compete, conflict, and return to competition with peers. Mosaic Warfare focuses on degrading enemy decision making process by dispersing and recombining its forces with the support of AI and automated weapons systems. JADO intends to enhance integration failed with MDO using JADC2 and attempts to raise the pace of decision with machine support.
Air Sea Battle and MDO attache great importance to cross-domain synergy for the way of winning wars. The U.S. armed forces have developed methods to use synergy from simply using asymmetric advantages to expand synergy to other domains, to cover vulnerabilities, and to create windows of opportunity. JADO does not rely on domains, unlike MDO but like Mosaic Warfare centers on decision making to increase the speed with the help of machine. In addition, JADO pursues further development in a large scale compared to the MDO to maintain significant upper hand over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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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본 지방정당의 성장과 정책적 딜레마 -일본유신회와 오사카도구상(大阪都構想)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이주경 ( Lee¸ Juky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11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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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레벨에서 당세의 부침이 심한 일본유신회는 어떻게 오사카에서는 높은 지지가 계속되는가? 또한 선거에서 오사카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오사카유신회는 간판 정책추진에 실패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본 연구는 국정-지방선거에서 유신회의 선거 전략과 오사카도구상 부결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첫째, 지방레벨에서는 정당 본위와 정책 퍼포먼스에 기초한 내연 공고화 전략으로 지지의 오사카 편중이 강해졌다. 둘째,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국레벨에서는 후보자 본위와 이념적 보수 전략을 병행한 외연 포섭 전략으로 지지구조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셋째, 오사카도구상이 부결된 이유는 유권자가 유신회 정치에 대한 선호나 평가와는 별개로 해당 정책의 장단점을 우선하는 비판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즉 유신회가 선거 전략적 정책 퍼포먼스를 강조한 결과, 선거-정책 공간에서 유권자 선택에 혼선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선거 승리와 정책 실패라는 지지의 불균형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Why does the Japan Restoration Party(JRP) continue to be highly supported in Osaka, despite its ups and downs nationwide? And why did the the Osaka Restoration Association(ORA) fail in their policies despite the election victory in Osaka?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study analyzes how the JRP/ORA's national-local election strategies are related to the implementation failure in Osaka Metropolitan Plan. Findings are as follow. First, the intensive consolidation strategy aimed at Osaka focused on party based policy performance led to a bias in support for Osaka. Second, in contrast to the local level, candidate-based with ideological conservative strategies were combined to incorporate the extension at the national level. As a result, the support for the JRP/ORA became more unstable. Third, the reason for failure of Osaka Metropolitan Plan lies in the rational choice of voters, who prioritized the pros and cons of the policy rather than evaluating the ORA politics in Osaka. There was a mismatch of support in the election-policy process, as the JRP/ORA strengthened its policy performance by linking with electoral strate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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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일협정 이후 일본의 '죽도 고유영토'론 악용 -일본 의회의사록을 중심으로-

저자 : 최장근 ( Choi¸ Jangkeun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13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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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한일협정 이후 일본이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한 사례를 분석하였다. 첫째,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일협정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독도는 분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동일하게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함으로써 분쟁지역이 된다는 것이다. 독도가 분쟁지역이 되면 독도와 그 주변 수역에 대한 일본의 권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이 독도 주변해역에서 먼저 대륙붕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1974년 일본은 해양 권익 확보하기 위해 공동개발 형태로 대륙붕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때에 일본은 한국이 주장하는 독도기점 12해리 영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한국에 대해 독도 기점의 12해리 전관수역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1982년 유엔해양법 협약이 채택되어 한국은 독도 주변에서 12해리의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도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한국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이 12해리 영해를 확보하였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둘러싸고 양국이 협상하여 양국사이의 수역에 대해서는 공동관리를 약속하였다. 넷째, 1998년 한일 양국은 새로운 어업협정을 체결하였다. 일본은 일방적으로 1965년의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해 공동관리를 강요하였다. 최종적으로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과 독도기점의 12해리 영해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독도의 영유권과 12해리 영해권 주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한국과 동등하게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단지 형식적으로 독도와 그 주변 영역에 대한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This study analyzed the case in which Japan claimed that Dokdo was Japan's own territory after the Korea-Japan agreement. First, Dokdo is Korea's indigenous territory. Dokdo is not Japanese territory. Nevertheless, Japan insisted that Dokdo is Japan's own territory in earnest after the Korea-Japan agreement. The reason is to turn Dokdo into a disputed territory. Because Korea insists that Dokdo is clearly Korea's indigenous territory without room for dispute, Japan also becomes a disputed territory by claiming that it is Japan's indigenous territory. This is because if Dokdo becomes a disputed area, Japan's rights and interests in Dokdo and its surrounding waters can be secured. Second, Korea first began developing the continental shelf in the waters around Dokdo. In response, in 1974, Japan signed a continental shelf agreement in the form of joint development to secure maritime rights and interests. At this time, Japan did not deny the territorial waters of 12 nautical miles from the origin of Dokdo, which Korea claimed. The reason for this is that the 1965 Korea-Japan Agreement recognized Korea as a 12-mile area from Dokdo. Third,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was adopted in 1982, allowing Korea to claim 12 nautical miles of territorial waters and 200 nautical miles of exclusive economic zones around Dokdo. However, Japan also claimed sovereignty over Dokdo, so it formally demanded equal status with Korea. In fact, however, Korea secured 12 nautical miles of territorial waters, and the two countries negotiated over the 200-nautical mile exclusive economic zone, promising joint management of the waters between the two countries. Fourth, in 1998, Korea and Japan signed a new fisheries agreement. Japan unilaterally destroyed the 1965 fisheries agreement, claimed sovereignty over Dokdo, and forced joint management of the waters around Dokdo. Eventually, Japan failed to secure sovereignty over Dokdo and 12-mile territorial waters of Dokdo's origin, but it did not give up its claim to Dokdo and 12-mile territorial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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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문화권력과 서벌턴 피폭자 문학 -전후 원폭, 원폭문학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저자 : 오성숙 ( Oh¸ Sungso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5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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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점령기의 검열과 그 이후 원폭문학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전후 원폭문학이 검열에 의한 위축과 더불어 문학의 보편성을 전유한 문단의 문화권력 아래, 하위문학으로 배척되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첫째, 원폭문학은 검열과 감사한 폭탄이라는 원폭신화에 의해 위축되며 출판의 기회를 잃거나 자비 출판되고 있었다.
둘째, 당시 유럽의 앙가주망 문학이 시대의 위기에 저항하는 문학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일본의 전후문학은 보편적 문학을 옹호하는 문단을 등에 업고 화조풍월의 유희적, 사소설적 신변잡기에 머무는 전통적 문학의 진부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후문학이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원폭문학은 비참함이 전부인 문학으로 폄하되고 히로시마 문단에서 고립된 서벌턴 피폭자 문학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셋째, 1차에서 3차에 걸친 원폭문학 논쟁을 통해, 원폭문학은 체험의 공유가 개인에서 집단의 체험으로 계승되며 미래 문학으로서의 길을 열고자 하였다. 하지만 문학의 보편성에 기댄 히로시마 문단과 중앙문단은 원폭문학을 체험으로 간주할 뿐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원폭문학은 문단이라는 제도권 안에 진입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서벌턴 피폭자 문학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폭문학은 일본문학의 보편성에 도전하고 있으며, 20세기 핵시대를 맞아 저항문학, 참여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This paper could examine the process in which the postwar A-bomb literature was dampened by censorship and degraded as sub-literature under the cultural power of literary circles monopolizing the universality of literature, based on debates around the censorship during the period of U.S. military administration and the subsequent the A-bomb literature.
In summary, first, the A-bomb literature lost its opportunity to be published or was published as authors' editions, as was dampened by censorship and the myth of A-bomb called a grateful bomb.
Second, the Japanese postwar literature supported by literary circles advocating for the universal literature exposed its traditionally literary staleness, in that it only focused on Hwajopungwol's amusement and one's memoirs specific to I-novel, while the contemporary European engagement literature emerged as the literature resistant to the crisis of the times. As the postwar literature secure the universality, the A-bomb literature was disparaged as the literature only with wretchedness and degenerated as the subaltern A-bomb victim literature isolated by the Hiroshima literary circles.
Third, the A-bomb literature attempted to open a path to the future literature, by succeeding individual experiences as those of groups, via the 1st to the 3rd debates on A-bomb literature. Both Hiroshima and central literary circles, which depended on the universality of literature, did not recognized it as the formal literature, but only regarded it as a set of experiences. It, therefore, could not but become the subaltern A-bomb victim literature which failed to enter the literary world, an institutional area. Nevertheless, this study can indicate that it has challenged the universality of the Japanese literature and has potential to be resistance and engagement literature in the face of the atomic age in the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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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최근 일본의 국제안보정세 인식과 안보정책 변화

저자 : 권태환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9-17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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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치과정-일본정치의 구조변동과 대한외교 전략의 상관-

저자 : 이주경 ( Lee Juky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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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부치 정권 시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성립과정에서 나타난 일본의 대응을 분석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일본 정치의 구조적 변동 속에서 나타난 정치행위자의 인식 변화에 주목하여 이것이 공동선언 결정과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추적한다. 그 결과 관저 외교의 영향력, 정치엘리트의 대한인식 및 상호관계의 변화가 일본의 대한외교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유인임을 확인하였다. 오부치 정권이 신속하게 합의에 도달한 데에는 수상-외무성 주도의 관저 외교를 중심으로 한국 측과 균형점을 찾는 한편, 어업협정 및 북한 문제에 대해서 자민당과 절충안을 모색하는 균형전략이 결합된 데 있다. 따라서 한일 공동선언은 일본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균형전략의 리더십이 갖는 경험적 유효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해당사례는 대한외교 전략의 경직성이 나타나는 현행 일본의 외교결정과정과 대비된다. 이는 관저 외교의 적용방식과 세대교체에 따른 정치가 행동양식의 변화가 대한외교에 부침을 가져왔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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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본 군사력 증강 관련 법체제 정비에 대한 고찰

저자 : 서인원 ( Seo Inwon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86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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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국가안보기본법, 안보관련법 등을 통해 미일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의 정치·군사적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런 일본의 군사역할 확대 정책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더욱 자극하여 동아시아 전체의 군비경쟁을 촉진시키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영토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안보관련법 11개의 개정안은 애매한 내용의 법안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타국군대의 전쟁지원 등에 대한 제한이 없어 아베정권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전쟁에 참전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아베총리가 말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론은 일본 군사행동의 비판을 회피하고 보통국가화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편법이며 집단적자위권을 평화헌법 개정없이 원활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포장하는 행위이다.
또한 현재 동북아 해역에서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은 해양자원 개발의 거점이 되는 인근 해역의 관할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권익보호 신법안 정비는 일본 국가의 권익을 추구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인접국과의 해양 경계 설정과 해양과학조사에 있어 분쟁의 요소가 되며 중첩되는 배타적경제수역내에서 관련국들간 또는 연안국들간에도 해양자원 확보를 위한 영유권 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일본에는 영해기선을 가지는 이도가 약 500여개의 섬들이 존재하고 이 섬들의 적절한 보전, 관리를 위해 유인국경이도법(有人國境離島法)과 특정유인국경이도지역에 관한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이도의 국유화와 특별관리 정책은 연안국가간의 분쟁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일본은 특정국경낙도로 지정된 섬에서 일본자위대의 활동의 범위를 넓히면서 미군협력을 받는 동시에 국제법적 근거자료를 만들어 영토 분쟁화 방지 및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위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일본은 유엔해양법협약이 정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 보완된 국내법을 제정하면서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일본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이런 일본의 국내법 제정은 동중국해의 양국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고, 국제사회에 있어 타당한지에 대해 국제적 시점에서 고려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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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본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 현황과 전망

저자 : 조은일 ( Cho Eunil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7-11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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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일본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은 변화할 것인가. 본고는 2차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의 현황을 진단하고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전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선언 이후 남북미 관계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긍정적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부터다. 아베 정권은 거시적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의 틀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고 있으며, 미시적으로는 남북관계 진전 정도를 관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은 국교정상화, 북한 핵·미사일 문제, 일본인 납치문제 등의 세 이슈가 포괄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즉, 일본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되면 북일간 국교정상화 협의가 진전될 것이라는 도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서도 매우 천천히 변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더라도 아베 정권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압력을 지속하고자 한다. 나아가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지역 안보정세는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해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따라서 아베 정권은 미국이 대북 관여 가능성을 열고 있는 상황에 유념하여 적극적인 정책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이 북일관계의 새로운 협력의 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아베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면서 관계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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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국의 해양진출과 아베 정권의 정책적 대응-동중국해 해상보안체제를 중심으로-

저자 : 조아라 ( Cho Ahra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56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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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베 정권기 일본 해상보안체제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의 정책 변화를 보다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10년 어선 충돌사건과 2012년 9월 센카쿠 국유화 이후부터 중국은 전략적·전방위적으로 그레이존 공세를 강화했고, 일본 정부는 센카쿠 전담체제 및 전략적 해상경비체제 강화 정책으로 대응했다. 중국의 그레이존 공세라는 외부 충격이 국내적 변화와 결합하여 정책 변화의 추동 요인이 되었으며, 기존 해상보안체제가 직면한 과제 및 목표까지 변화시켰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의 정책 변화는 '과제/목적의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2016년부터는 전국 규모로 해상보안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조치가 단행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정책적 변화를 분석해 보면, 이전 시기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대응 방식과 수단에만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변화'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해상보안체제는 세력면의 증강에도 불구하고 해상보안청의 능력과 권한 강화 및 양 기관의 연계 강화를 위한 법제적 정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아베 정권기의 안보개혁에도 불구하고 해상보안청과 자위대를 엄격하게 분리해 대응하는 해상보안체제의 본질적 제약이 온존하게 된 원인은, 예산과 법제적 측면의 한계, 해상보안체제를 담당하는 기관 간의 견해 대립과 알력을 조정하지 못하는 규범적·정치적 요인, 국제적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일본의 전략, 그리고 미일동맹에 의존하는 한계 때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자위대 세력의 증강 및 미일동맹의 강화에 상대적으로 집중한 반면, 이러한 해상보안체제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해상보안기관의 세력은 증강되었지만,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꾸준히 그레이존 공세를 강화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베 정권은 급속도로 방위력을 증강시키면서 기존의 전수방위 노선에서 사실상 벗어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 왔고, 그레이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외부 위협을 내세워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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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북한 급변사태와 일본(日本)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에 관한 소고(小考)-미·중·일 간 공격적 현실주의 관점을 중심으로-

저자 : 박성황 ( Park Seonghwa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7-19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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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일본 총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총리는 학원스캔들 문제를 무난히 넘겼고 2018년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어서 2020년 동경올림픽을 거치면서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아베정권 장기화가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아베정권의 우익 민족주의 성향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인해 긴장이 조성된 한반도 주변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미중 패권구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반도 특히 북한에서 불미스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과 중국의 세력이 격돌할 것이고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근거로 강력히 미국을 지원하면서 자국의 안보를 우선시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태가 악화될 경우 중국군은 북한 진출과 함께 연이어 동해출구(東海出口) 개척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급변사태 관련 일본 내 논의 기조는 지금까지 주로 해상 탈북자 문제 등 일본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목표를 둔 '소극적 대응'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2015)과 북한 핵·미사일의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일본 내 논의는 점차 공세적이며 적극적인 개입 필요성을 역설하는 분위기로 일변하고 있다. 북한에서 급변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 일본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에 대해서 검토해 보는 것은 통일한국을 구상하면서 다각도로 한반도 미래 외교를 설계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과거 군사전략, 강화된 미일동맹 신가이드라인의 미일 군사협력체제 그리고 일본 우익 민족주의들의 성향 등을 근거로 하여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명분과 예상되는 개입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주요 접근방법으로는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을 적용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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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비전투원후송작전관련 한일 안보협력 방안-한일관계, 미일관계, 국제비교의 관점을 중심으로-

저자 : 마츠우라마사노부 ( Matsuura Masanobu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9-23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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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평화안보법제의 성립으로 일본 자위대는 재외 일본인을 구출 수송하는 비전투원 대피활동(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s, NEO)에 관하여 '임무 수행형' 무기사용이 용인되었다. 한반도 유사시 영역국에서의 사전동의가 NEO실시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대중외교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대북봉쇄만을 고려한 대일 안보협력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또한 미일동맹에서도 NEO협력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왔지만 수송 능력이나 협정 체결 방법이 과제로 남아 있다. 주요국에서는 재외국 국민보호를 국가방위와 동일시하고 실시 요건을 공개함으로써 국제적인 비판을 최소화하고 있다. 일본은 한일 안보협력과 미일동맹을 강화함으로써 NEO 실효성을 높이는 동시에, 이와 병행해서 NEO독트린 작성, 전문관의 배치 등을 통해 제도적·운용적인 측면에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편 한국은 NEO협력을 포함한 한일 안보협력을 추진함으로써 대량난민이나 부상자 보호·수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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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종전선언, 정전협정과 유엔사령부

저자 : 송승종 ( Song Seongjo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5-26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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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종전선언은 쉬운 일”이라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계기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치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글의 목적은 오늘날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종전선언을 화두로 하여, 이와 더불어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 및 유엔사의 미래와 관련된 핵심 주제를 포괄적으로 조망해 보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전쟁상태 종식 → 소극적 평화 → 적극적 평화 → 항구적 평화'의 달성을 지향한 일련의 과정 중에서 첫 단추에 해당한다. 문제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노림수가 '항구적 평화' 달성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해체라는 점이다. 그래서 '미군철수-동맹해체'보다는 '평화'의 부드러운 이미지로 포장하여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마저 여의치 않자 빼어든 카드가 종전선언이다. 평화협정 → 미군철수/동맹해체'가 '종선선언 → 평화협정'으로 바뀐 것이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종전선언-평화협정이 실현되면, 구태여 미군철수/동맹해체를 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존재이유를 상실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평화협정 이후의 유엔사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평화가 일상화되면 6.25 전쟁을 계기로 창설된 유엔사가 '자동적'으로 해체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군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이뤄지면 비슷한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유엔사는 종전선언·평화협정이나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등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유엔사는 북한의 무력남침으로 발생한 '평화의 파괴'를 응징하기 위해 안보리 결의안으로 창설된 사실상(de facto)의 유엔 보조기관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 안보상황(북한 비핵화)에서 획기적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또는 유엔사 해체나 지위 변경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유혹에서 벗어나,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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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계백장군을 활용한 지역 관광콘텐츠 개발 방안

저자 : 김현정 ( Kim Hyunj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5-29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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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은 백제의 마지막 장수로서 부여와 논산 지역 관광콘텐츠의 중요한 테마이다. 계백장군의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이나 지역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현재보다 관광콘텐츠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계백장군을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크게 세 가지로 고찰해 보았는데, 우선 부여와 논산을 연결해서 '계백장군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로 개발하는 것이다. 부여와 논산은 계백장군이라는 테마와 관광지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고, 지리적으로 바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된 관광코스로 만들기에 적합하다.
또 전통무예와 인성 교육의 상징으로서 계백장군 유적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계백장군의 충혼 정신과 호국 정신을 통해 인성교육과 역사교육을 하고, 전통무예를 배우는 전통교육에 더해 군사박물관에서 군사 관련 정보를 익히고, 밀리터리파크에서 군사체험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전국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교육 콘텐츠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현재 계백장군을 테마로 한 축제가 없기 때문에 이를 개발하는 방안이다. 계백장군 사당제가 열리는 4월초에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좋으며, 계백장군이라는 인물과 백제시대라는 키워드 자체를 충실하게 살린 축제, 또한 스마트폰과 연계해서 홍보와 시작에서 진행 전반에 NFC, QR코드, 앱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와 같은 노력들은 다른 지역축제와 차별화되면서 계백장군이라는 키워드를 확실하게 살리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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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의 문학화와 전쟁 기억-오다 마코토(小田實)의 『깊은 소리(深い音)』를 중심으로-

저자 : 엄인경 ( Um Inky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7-32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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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5년에 발생한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이를 정면에서 다룬 오다 마코토(小田實)의 소설 『깊은 소리(深い音)』(2002)를 재난 서사로서 분석한 것이다. 『깊은 소리』의 등장인물들은 1995년의 대지진 후의 모든 상황을 전쟁에 빗대어 인식하고 묘사한다. 그들은 '전우'로서 연민과 우정을 나누며 전쟁터로 빗대어진 폐허 속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은 한신·아와지대지진 50년 전의 1945년 전쟁을 환기시키는 특별한 소설적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재난 서사로서 이 소설이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첫째,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 재해에 비해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인재(人災)적 성격의 재난, 둘째, 전쟁을 체험한 기성세대와 정신적으로 미숙한 십 대와의 세대 갈등과 소통의 단절의 극적인 대비와 재난의 연속성, 셋째, 표제어인 '깊은 소리'가 인물들에게 죽음과 불안의 상징으로서 공유되다가 결국 여성 신체를 통해 태아가 발신하는 생명의 소리로 변화되어 재건과 희망을 보여준 점이다.
이를 통해 20세기 말 일본의 대도시를 강타하고 크게 동요시킨 이 대지진이 문학화 과정에서 환기한 전쟁 기억과 의도적 인물 설정 등을 통해 문학이 재난을 기억하는 수법과 의미를 고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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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패전 후 혼돈 일본과 다자이 소설-다자이 오사무의 『화폐』를 중심으로-

저자 : 이지현 ( Lee Jihyun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23-34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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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46년 전후 일본에서 있었던 화폐 개혁을 소재로 집필된 다자이의 단편 「화폐」를 통해 전후 일본과 다자이의 후기 사상을 고찰한 연구이다.
원래 '돈의 여왕'이었던 백엔 화폐는 전후 인플레가 발생하면서 교환 가치가 떨어지고 새 지폐로 바꾸어질 처지가 되자 자기 혐오를 느낀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면서 신분이 몰락하고 신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당혹감은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느꼈던 것으로 다자이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몰락의 정서를 담아내고 화폐, 또한 일본이 재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려낸다.
암시장으로 대표되는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전후 일본의 사회 상황은 생존 의식만이 남아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고 기만하는 인간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욕심과 허영이 넘쳐나는 전후의 참혹함을 담아내면서 다자이는 댓가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접대부의 모습을 통해, 에고이즘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것이 전후 일본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인 것을 이야기한다. 다자이가 말하는 재생의 방법은 신일본에서 갑자기 태세를 바꾸었던 문화인들의 모습과 달랐을 뿐 아니라 다른 무뢰파의 작가들과도 구별되는 것이었다. 전시하에 그랬던 것처럼 다자이는 전후 혼란가운데서도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고 그것이 유일하게 재생을 이루는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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