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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약수터 운동에서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와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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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운동에서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와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

From Excercise around Water Springs to Olympic Medal Winning Event: A Study on the Popularization and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 Badminton

이종성 ( Lee Jong-sung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3권3호
  • : 연속간행물
  • : 2018년 09월
  • : 37-52(16pages)
체육사학회지

DOI

10.24826/KHSPESD.23.3.3


목차

Ⅰ. 서 론
Ⅱ. 생활 체육으로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
Ⅲ. 엘리트 스포츠로서 한국 배드민턴의 발전
Ⅳ.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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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생활체육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와 엘리트 스포츠로서의 발전과정에 대해 분석했다. 생활체육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배드민턴 종목의 특징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배드민턴은 1970년대부터 동호회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현재 2백만~3백만에 이르는 동호인 인구를 가지게 됐다. 한편, 엘리트 스포츠로 한국 배드민턴은 1980년대에 한국 배드민턴은 황선애의 전영 오픈 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세계적 강호로 부상했고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1992년부터 올림픽 메달 유망 종목으로 각광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국제대회 성과는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이끌었고 늘어난 생활체육 인구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용품사의 거액의 스폰서십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에 기여했다.
This study attempts to analyse the popularization of Korean badminton as a participation sport and the development process of it as an elite sport. The popularization of Korean badminton has been impacted by the badminton’s characteristics of being able to practice with a relatively low cost in a little space. Building on these merits, badminton clubs began to disseminate nationwide from the 1970s developing enough to have 2~3 million members at present. Meanwhile Korean badminton began to rise as a power house starting from Hwang’s victory at the All-England Badminton Championships and took center stage as a medal winning event from the 1992 Olympic Games, the first Olympics including badminton as its program. In this process, the achievements of Korean badminton in the international stage impacted on the invigoration of the participation sport, and increased badminton club members contributed to Korean Badminton Association’s financial independence through a large sum of sponsorship from goods suppliers.

UCI(KEPA)

I410-ECN-0102-2019-600-001693973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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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1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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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세기 鄕射堂의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

저자 : 박근 ( Park G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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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행연구에서는 향사당이 현재 활터와 연관관계가 있을 것임을 제기한 바 있다. 본 연구는 15세기 안동의 두 편의 기문과 예천의 한 편의 기문을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향사당의 역할과 의미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제천행사와 애경사와 술과 활쏘기는 향사당의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유교적 이념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토착신앙과의 충돌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 왔으며, 안동의 향사당을 예천에서 수용하게 되면서 전개되는 변화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연구였다. 이를 통해 활터의 발전양상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으며, 향사당의 기원이 제천행사와 애경사와 놀이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활터는 조선이후부터의 역사성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의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도 추론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활이 우리민족에게 주는 자긍심 이면에는 반만년 역사의 문화적 축척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In a recent previous study, it has been raised that Hyangsadang may be related to the current archery field.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rapidly changing role and meaning of Hyangsadang through two articles in Andong and one article in Yecheon in the 15th century. Shamanism, events, festivals, and archery can be said to be the main contents of Hyangsadang. In the process of introducing Confucian ideology, it is considered to have been an interesting study to see how the conflict with the existing indigenous beliefs has been wisely resolved, and what changes have developed while Yecheon accepted Andong's Hyangsadang.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development pattern of the archery field, and it was confirmed that the origin of the Hyangsadang originated from shamanism, events, and play culture. Therefore, it can be estimated that the current archery site does not only contain historicality since Joseon, but also implies historical significance from before. Therefore, behind the pride of archery to our people, there was a 5,000-year historical and cultural sc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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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민세 안재홍의 한국근대스포츠 발전에 미친 영향

저자 : 손환 ( Son Hwan ) , 하정희 ( Ha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27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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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안재홍이 한국근대스포츠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안재홍의 생애, 일제강점기의 스포츠 활동, 광복 후의 스포츠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안재홍은 격동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민중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가로서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행정가로서 각종경기대회의 개최와 후원, 올림픽대회의 참가 후원, 그리고 청소년스포츠의 장려에도 앞장서며 한국스포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이처럼 민족지도자가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스포츠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일로서 그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특기할만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This study focused on An, Jae Hong's life, sports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sports activities after the independence, to find out the impact of An, Jae Hong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modern sports.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An, Jae Hong devoted his entire life to the nation and acted as an independent activist, journalist, and politician to make the world of the people in this turbulent Korean modern history. In addition, as a sports administrator, he took the lead in hosting and sponsoring various sports competitions, sponsoring participation in the Olympic Games, and encouraging youth sports, to contribute a lot to the qualitative improvement of Korean sports. It is rare in Korean sports history that national leaders have engaged in various sports activities so far, and it could be said that it has great significance and is a remarkable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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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패럴림피언 백재환의 생애와 체육활동

저자 : 최승아 ( Choi Seung-ah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4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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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장애인 사격과 교육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백재환의 활동을 통해 한국 장애인 사격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백재환에 대한 기초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그의 삶에서 의미가 있는 시기를 설정하고 해당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상의 연구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백재환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지만 사격 실력을 인정받아 일반 사격선수 생활을 한 최초의 장애인 선수이다. 둘째, 백재환은 차별이 있었지만 사격 종목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사격 최초로 패럴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셋째, 백재환은 은퇴 이후 장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수들과 소통하며 장애인 체육활동 보급에 힘쓰며 저변을 확대했다. 향후 한국의 체육사에서 사회적 소외계층에 관한 체험과 기억을 드러내는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history of shooting for the disabled in Korea through Baek Jae-hwan's activities dedicated to the continuous development of shooting for the disabled and education. To this end, a basic study on Baek Jae-hwan was conducted, and a meaningful period in his life was set and the corresponding part was examined in detail. Through the above research process,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First, Baek Jae-hwan is a polio disabled person, but he is the first disabled player to serve as a general shooter in recognition of his shooting skills. Second, Baek Jae-hwan overcame himself through shooting events, although there was discrimination, and won the Paralympic gold medal for the first time in Korea. Third, Baek Jae-hwan expanded his base by communicating with players and promoting sports activities for the disabled, based on a broad understanding of disabilities after retirement. In the future, it is expected that Korean sports history will actively reveal experiences and memories about the socially underprivile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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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국 씨름선수권대회에 관한 연구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6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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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 씨름선수권대회의 역사에 관한 재정립을 위해 실시되었다. 전국 씨름선수권대회는 1936년 제1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1941년 제6회 대회 이후 중단되었다가, 광복 이후 1947년부터 전국 씨름선수권대회로 개칭되며, 제7회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를 잇고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정설은 아무런 근거자료의 제시 없이 주장되고 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 개최된(1936-1941) 전국 씨름선수권대회에 관한 어떠한 1차 사료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동시대에 개최된 전조선 씨름선사권대회(1937-1941)의 기록을 전국 씨름선수권대회의 기록으로 잘못 정리한 결과였다. 새롭게 발굴된 1차 사료들을 분석한 결과 전국씨름선수권대회는 1947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947년부터 1958년까지 정설에 나타난 대회 회차, 우승자 명단, 규정에 대한 부분에서도 일부 수정할 부분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re-establish the history of the National Ssireum Championship, which boasts the most prestigious and long history in Korea. It is widely accepted that it began with the first Joseon Ssireum Championships in 1936 and stopped after the 6th tournament in 1941, and has been renamed the National Ssireum Championships since 1947 and has continued its history since the 7th. However, the widely accepted opinion is asserted without any evidence, and no primary data could be confirmed, especially the events (1936-1941) under the Japanese colonial era. It was the result of erroneously organizing the records of the Joseon Ssireum Seonsakwon (1937-1941) held at the same period as those of the National Ssireum Championships.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newly discovered primary materials, it can be seen that the National Ssireum Championship began in 1947 and has been inherited since then. Also, it was found that there is a need for partial revision of the competition rounds, winner list, and regulations that appeared in related studies from 1947 to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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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체육인 박성인의 삶에 대한 고찰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75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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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체육인 박성인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국가대표 선수, 지도자, 그리고 스포츠행정가로서 그가 대한민국 스포츠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고찰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박성인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공식적인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삶의 스토리를 조명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탁구 선수로서의 박성인은 한국전쟁 이후 스포츠 시스템이 전무하던 시기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계무대에 대한민국 탁구의 존재감을 알리며 선구자적 역할을 해 온 선수였다. 둘째, 탁구지도자로서의 박성인은 한일은행, 삼성 탁구단은 물론 국가대표 여자대표팀의 수장으로서 대한민국 여자 탁구가 당대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을 뛰어 넘는데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였다. 셋째, 스포츠행정가로서의 박성인은 남북체육회담의 실무책임자로서 성공적인 단일팀 구성을 이끌어 내었고, 대한레슬링협회와 대한빙상 연맹의 수장을 맡아 대한민국 스포츠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행정가였다.


This study was aimed to illuminate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sports as a national athlete, coach, and sports administrator by re-examining the life of sportsman Park Sung In. To this end, in this study tried to illuminate the life story that was not recorded through interviews with Park Sung-in. The research outcomes are as follows. First, he has been a pioneer in Korean table tennis since high school when there was no sports system since the Korean War, promoting the presence of Korean table tennis on the world stage. Second, he was the head of the Korean women's national team as well as Hanil Bank and Sam-sung table tennis team, laying the foundation for surpassing China, the world's strongest at the time. Third, he led the successful formation of a unified team as a manager of inter-Korean sports talks, and was the head of the Korea Wrestling Association and the Korea Skating Federation,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ustainable growth of Korean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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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의 메가스포츠이벤트 개최사

저자 : 윤거일 ( Yoon Geo-il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94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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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에서 개최한 역대 메가스포츠이벤트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시대별로 나누어 고찰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는데 목적이 있다. 태동기(1960∼70년대)는 직접적으로 메가스포츠이벤트를 개최하지 못했으나 대륙/세계선수권대회 개최를 통해 기반을 조성한 시기이다. 도입기(1980∼90년대)에는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메가스포츠이벤트 개최가 이뤄졌다. 성장기(2000∼10년대)는 세계적인 메가스포츠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역사적인 시기이다. 역대 한국의 메가스포츠이벤트 개최사를 통해 시대별로 개최된 주요 스포츠이벤트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세계적인 메가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고 개최하는 과정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영향을 미쳤으며, 대륙/세계선수권대회 개최도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over historical significance by examining previous mega sport event hosted in Korea and considering them by period. In the 1960s and 1970s, mega sport events were not directly held, but the foundation was established by hosting the Continental/World Championships. In the 1980s and 1990s, the first mega sport event was held in Korea through the 1988 Seoul Olympics. In the 2000s and 2010s, it achieved the Grand Slam by hosting all world-class mega sport events. Through the history of hosting mega sport events in Korea, major sport events held by era and their meaning were confirmed. In addition, the process of hosting world-class mega sport events was linked and influenced, and it was found that hosting the continental/world championships was also an important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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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군정기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의 처리에 관한 연구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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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미군정기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선행연구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던 점들을 제도사의 관점에서 분석, 고찰하여 그 의미를 찾는데 목적이 있었다. 연구방법은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와 관련한 1차 자료를 중점적으로 분석, 검토하였고, 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미군정당국의 군정법령 시행에 따른 귀속재산 처리과정은 체육·스포츠단체에 대한 미군정당국의 독점지배 기반을 창출하는데 기여하였다.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의 처리과정에서 이 단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처리과정에 참여하여 인적으로도 미군정당국의 독점지배 기반을 뒷받침하는 과정이 되었다. 미군정당국은 점령 초기에 일본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그 과정에서 '연고자'에게도 처리하였다.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였고, 이 단체와 연고가 있었던 이경석에게 인수되었다. 이 경석은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를 한국법인으로 재탄생시켰고, 이는 국가적으로는 법인과 그 재산이 공공의 자산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한국 유도 발달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점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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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역도의 뚝심, 원신희의 삶

저자 : 하웅용 ( Woong Yong Ha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3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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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희는 근성과 뚝심의 역도인으로 아시안게임 첫 3관왕은 물론 국내외 괄목할 만한 경기성적을 올렸으며, 지도자로써 후진양성에 힘써 세계 속에 한국역도를 자리매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다음의 결론으로 역도인 원신희의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그는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있는 유년기를 지냈으며, 건강을 중시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강건한 체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둘째, 그의 삶에서 중요한 점은 수많은 신기록과 메달을 획득한 것보다는 부상과 부진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었다는 것이다. 셋째, 원신희가 성취한 아시안게임 3관왕은 그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스포츠과학과 적절한 경기작전이 만들어낸 유효한 결과였다. 넷째, 그는 지도자로써 수많은 제자들을 육성하였고, 이제 그들과 함께 한국역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가 과거의 인물과 소통하고 그 역사적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나라 역도사에 의미 있는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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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약수터 운동에서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와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

저자 : 이종성 ( Lee Jong-s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7-5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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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생활체육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와 엘리트 스포츠로서의 발전과정에 대해 분석했다. 생활체육으로 한국 배드민턴의 대중화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배드민턴 종목의 특징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배드민턴은 1970년대부터 동호회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현재 2백만~3백만에 이르는 동호인 인구를 가지게 됐다. 한편, 엘리트 스포츠로 한국 배드민턴은 1980년대에 한국 배드민턴은 황선애의 전영 오픈 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세계적 강호로 부상했고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1992년부터 올림픽 메달 유망 종목으로 각광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국제대회 성과는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이끌었고 늘어난 생활체육 인구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용품사의 거액의 스폰서십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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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육상 여자포환던지기의 기록변천사

저자 : 정범철 ( Chung Bum-chul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3-67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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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여자포환던지기의 기록변천사 연구를 통해 한국육상경기사 발전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있다. 한국여자포환던지기 최초기록은 1930년 조선신궁대회로서 김덕실(평양여고)이 세운 8m28의 기록이었다. 1930년부터~50년까지는 평양여고 출신 김덕실, 타카하라와 경북의 박남옥과 김국자(숙명여중)가 기록을 달성하며 11m66의 기록성장이 있었다. 이후 1950~60년 후반대로 접어들면서 최명숙을 중심으로 이학자(서울), 이혜자(이화여고), 천순임(건대)등이 연도별 기록 및 한국기록을 수립하며 13m94의 기록성장을 한다. 1969~74년에 백옥자는 14m67를 시작으로 16m96을 기록,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하며 '아시아의 마녀'라는 호칭을 얻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이후 22년간 기록 정체기를 보이다가, 1996년도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명선은 5년에 걸쳐 8차례의 한국기록을 수립하며 17m02를 시작으로 마의 19m36의 대기록을 작성한다. 이러한 한국여자포환던지기는 1930년부터 시작되어서 2018년까지 약90여 년간의 역사 속에 꾸준히 도전해 왔으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종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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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MBC 청룡 팀 선수를 통해서 살펴본 한국 프로야구 출범의 사(史)적인 의미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9-83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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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프로야구의 탄생을 경험한 MBC 청룡 선수들의 구술 채록 및 문헌 고찰을 통해서 한국 프로야구 창단의 역사적인 가치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을 경험했던 MBC 청룡 팀 선수들은 서울연고지에 입단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과는 달리 MBC청룡은 초기 프로 팀으로서 야구팀 운영, 관리, 훈련 환경이나 체계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둘째,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알리는 개막식과 개막전은 대중들의 큰 관심과 호응 가운데 이루어졌다. 특히 화려하고 멋진 개막식과 양 팀의 치열했던 개막 경기는 한국 프로야구가 인기스포츠로 급부상되어 현재에 이르는데 기폭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있어서 다양한 요인 중에 이러한 MBC청룡 선수들의 노력과 최선이 토대가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 참여자들의 구술채록을 통해서 프로야구 선수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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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YMCA를 통한 소프트볼의 대중화 과정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우승호 ( Woo Se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85-99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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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YMCA 스포츠 보급 운동에 나타난 소프트볼의 대중화 과정을 파악하고자 진행되었다. 소프트볼은 19세기 후반 미국 사회의 야구 애호 열기의 부산물인 실내 야구를 모태로 조직화된 스포츠문화이다. 1887년 시카고의 핸콕에 의해 창안 된 실내 야구는 대중적 확산력을 기반으로 실외로 공간적 확대를 경험하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경기 용어와 규칙이 적용되었다. 20세기 초반 이러한 변형된 실내 야구게임들이 소프트볼로 명명되고, 통일된 규칙을 마련하는 과정에 YMCA와 그 체육지도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YMCA는 소프트볼의 보급 창구로써 대중적 확산을 도모하는 주체가 되었다. 실내 야구가 소프트볼로 문화적 진화과정을 거듭하는 과정에 YMCA가 일조한 것은 소프트볼이 YMCA 체육 사업이 추구했던 신체적 복음화를 위한 실용적인 교육 수단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YMCA를 통한 소프트볼의 확산과정에는 복음주의 운동이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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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 에어로빅스의 대모(大母) 이영숙의 생애사 연구 - 교육적 공헌을 중심으로 -

저자 : 곽애영 ( Kwak Ae-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3권 3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1-11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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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에어로빅스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 43년 외길 인생을 개척해온 이영숙의 생애를 교육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고찰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영숙이 월남이후 겪었던 파란만장한 교직생활에서 타고난 움직임의 재능과 열정의 가르침으로 일궈낸 업적들은 훗날 그녀가 미국 에어로빅스를 도입하여 한국화 된 에어로빅스 문화를 창출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둘째, 1975년 미국 에어로빅스를 국내로 처음 소개하고 한국형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을 거쳐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기까지 기울였던 이영숙의 헌신과 열정들은 사회적으로 만연했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올바른 에어로빅스 풍토가 조성되는 데 기여하였다. 셋째, 이영숙이 이룬 에어로빅스 생애의 최대 결실인 국제대학에어로빅스축제(1993)는 건전한 대학에어로빅스 문화의 정착과 우수지도자 양성 및 참신한 프로그램의 개발에 기여하였고, 더 나아가 한중일 운동문화의 교류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에어로빅스 특성을 파악하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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