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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퇴계학과 유교문화> 동강 김우옹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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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김우옹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

Kim U-Ong`s Monarch-Centered Political Theory

이석규 ( Seock Kyu Lee )
  •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5년 08월
  • : 233-270(38pages)
퇴계학과 유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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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동강 김우옹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김우옹은 사림정치가 시작되는 선조대의 정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를 민생의 안정을 위한 기강의 확립으로 보았다. 김우옹에게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군주였다. 왜냐하면 군주는 天道의 실현자로서 독자적이고 절대적인 지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시 군주에게 聖學을 요구하면서 賢臣의 역할을 강조하던 분위기에서 볼 때, 그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예컨대 이황이나 이이는 ‘군주의 표준’을 의미하는 『書經』의 ‘皇極’을 군주에게 수신을 요구하는 근거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김우옹은 오히려 황극을 동인과 서인을 초월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군주의 표준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숙종대 朴世采가 주장한 군주 중심의 皇極蕩平論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군주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한 만큼 김우옹에게 제왕학으로서의 聖學은 매우 중요하였다. 그는 오직 敬을 통해 민을 위한 왕도정치를 행해야 한다는 군주성학 론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경을 강조했다는 것이 그가 군주의 修身만을 중시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의 학문은 현실 정치에 확대 적용되어야 진정한 제 왕학이고, 왕도정치의 이념은 정치 현실에서 실질적인 공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내면의 修己는 오히려 治人과 관련될 때에만 의미있는 것이었다. 경을 강조했던 그가 경의 주재 대상에 치인까지를 포함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This essay deals with Kim U-Ong(金宇옹)’s monarch-centered political theory. Kim U-Ong thought that the most urgent political task during the reign of King Sunjo(宣祖) was to establish official disciplines for the stability of people’s ordinary life. According to him, the monarch himself was the key to the task, since only the ruler possessing absolute status could realize the teaching of the Heaven. In regard of the fact that most contemporary scholars required the ruler of Sage Learning(聖學) while placing emphasis upon the role of wise politician, his monarch-centered political theory was pretty much unique. For instance, Yi Hwang(李滉) and Yi Ih(李珥) used HwangGeuk(皇極) - ‘the standard of monarch’ - as the ground of their demand of king’s moral training. Although, Kim U-Ong considered HwangGeuk the standard of monarch as well, his stance was different; HwangGeuk was to him the basis for judging good and evil regardless of Dong-In(東人) or Seo-In(西人). This theory became the prototype of monarch-centered HwangGeukTangPyeongRon(皇極蕩平論) claimed by Park Se-Chae(朴世采) who lived in the reign of King Sukjong(肅宗). Since Kim U-Ong gave prominence to monarch’s existence and role, Sage learning as a discipline of kingship was very important to him. He advocated the idea of Sage Learning in which the ‘Rule of Right(王道政治)’ should be by and for people thorough ‘Awe(敬).’ His insistence on ‘Awe,’ however, did not necessarily mean that he valued only moral training of the monarch. King’s moral training was meaningful only when it was related to governing of people, because he thought that disciplines of kingship should apply to actual politics. That was why he paid attention to ruling of people when he dealt with ‘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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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6-150-000415981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2233-7032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3-2016
  • :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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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권0호(2016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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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韓中儒敎文化認知:唐前“四史”韓半島文獻源流疏證及現代闡釋

저자 : 이검청 ( Li Jianqing ) , 양쇠 ( Liang Zhao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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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前“四史”中的韓半島文獻資料是東亞儒敎文化圈的歷史書寫。對韓國而言,這些屬於一種“域外之文獻”。 本文對唐前“四史”的韓半島文獻進行源流疏證與現代闡釋,認爲唐前韓半島文化認知有三個的基本特徵:一、從文獻增量看,相較于《史》《漢》而言,《三國志》《後漢書》中關於韓半島文獻的累增性,體現了對韓半島文化認知的漸進性特徵;二、從敍事模式上看,唐前“四史”中的《史記》《漢書》延續著“在重大歷史事件中展現人物性格、命運”的敍事模式變爲《三國志》《後漢書》中的“山海經”敍事模式,體現了對韓半島文化認知維度的更新性特徵;三從地理空間格局來看,唐前“四史”對韓半島地理空間的認知發生了兩次飜天覆地的變化。具體說,一是司馬遷首次將韓半島納入史學視野之中,形成了“漢四郡”地理空間的認知。二是陳壽《三國志》中將高句麗、東沃沮、三韓等地囊括其中,擴大了對樂浪郡(今屬朝鮮)周邊地域的認知。20世紀初,中韓兩國雖已超越了朝貢關係,但兩國在文化上依然同根同源,是東亞“儒敎文化圈”的重要組成部分。因此,唐前韓半島文化認知具有以下三個方面的現代價値:一、對於韓半島文化而言,唐前“四史”中的韓半島文獻是韓國文化悠久性的一大確證。二、唐前“四史”中的韓半島文獻是理解中韓文化的同源性一大鏡像。三、唐前“四史”中的韓半島文獻是中韓文化交流的見證。總之,唐前“四史”中的韓半島文獻成爲理解東亞儒敎文化的同源性,實現中韓文化對話的基礎。


Rooting from Chinese Pre-Tang Dynasty, China-Korea cultural cognition literature, for the South Korea, is foreign literature. By analyzing the Koreans' Literature Origin of the Four Famous History Books in Pre-Tang Dynasty, this paper investigates that the Two Koreas' cultural cognition before Tang Dynasty has there characteristics as follows:Firstly, the cognitive historical data is progressive. Secondly, the cognitive dimension is renewal. Finally, the cognitive pattern is pioneering. The significance of the cultural cognition has three important points: Firstly, for Korean culture, the Four Famous History Books in Pre-Tang Dynasty confirms the Korean culture has a long history. Secondly, the Korean literature is the mirror to understand the homology of China-Korea culture. Thirdly, the Korean literature is the witness of cultural communication between China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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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황(李滉)의 「독유고산(獨遊孤山)」과 이야순(李野淳)의「고산구곡(孤山九曲)」에 대하여

저자 : 임노직 ( Lim No-jig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1-68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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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구곡은 청량산 가송협의 절벽 아래에 자리한 고산정 일대에 설정된 계류형 구곡이다. 고산정 주위는 외산과 내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건너편에는 獨山이 우뚝 솟아 奇絶한 풍치를 이룬다. 낙동강의 상류로서 이곳 낙천은 한국 유교가 꽃을 피운 장소이다. 퇴계는 바로 낙천가의 도산서당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 영남학파라는 큰 학맥을 형성했다. 이 낙천의 상류에 설정된 고산구곡은 퇴계의 철학이 완성된 사색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오늘날에도 피폐한 심성을 일깨우는 구도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곳이다. 퇴계는 46세 무렵 귀향해 있을 때 '홀로' 이곳을 찾아 노닐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발견할 때마다 그림 같은 시를 남겼다. 이것이 바로 퇴계의 산수관과 미의식이 응축되어 있는 「獨遊孤山」이란 작품이다. 그러나 '고산구곡'이란 명칭은 이황의 후손인 이야순에 의해 처음으로 설정되었고 그는 구곡설정과 아울러 「孤山九曲」 시도 지어 그 의미를 밝혔다. 이 글의 목적은 「獨遊孤山」과 「孤山九曲」을 각각 분석하여 두 시의 상관관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문학의 계승과 발전적 관점에서 두 시의 상호 영향관계는 조선후기 구곡 시가의 擬作的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향촌 사림들에 의해 이상적 문학 양식으로 수용된 구곡시가는 창작에서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구곡 설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산구곡의 경내에 고산구곡이나 大明山九曲 같은 중첩된 구곡 설정이 가능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컨대 李滉의 「獨遊孤山」은 영남학파의 학자들에게 도산구곡 설정의 명분을 제공했으며 李野淳의 「孤山九曲」은 도산구곡을 중심으로 전개된 퇴계학파의 구곡시가의 문학사적 맥락과 전통, 계승 과정을 살피고 이해하는 데 하나의 준거가 되는 주목되는 작품이다.


Gosan-nine Valley are equipped with nine flowing terrain located on the river set in gosanjeong(孤山亭) one located under the cliffs of Cheongnyangsan (淸凉山) Gasong(佳松). Gosanjeong surrounding mountains and is enclosed in and out like a folding screen, towering tall, the other side of the mountain shows off the beautiful scenery. As the River of Rakcheon here is where the Confucian Korea smoked the flowers. Toegye(退溪) teacher just to train a number of scholars from Dosan school near the Rakcheon River formed a huge flow of Yeungnam School. Rakuten is a journey of nine valley turn is equipped with a complete philosophy of Toegye contemplation, even today, it still has to frame value awaken the mentality torn regain himself. Toegye teacher was home to around 46 years of age. When he left the city the same picture every time you discover the beautiful scenery while walking alone to find this place often. However, the name of the nine valley was set for the first time by the descendants of Lee-Hwang. In other words, Lee-Yangsun set the order``s nine valleys as well as the creation of poetry and said to mean.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and compare the 「It is a stroll away from the mountain by himself.(獨遊孤山)」 and 「Gosan-nine Valley(孤山九曲)」 to suggest a correlation between two Between two works in detail. Two works of literature in succession and developmental point of view has a close relationship. In the late Joseon literary creation because it has important implications for imitative. Artwork nine songs valley is an ideal literary form was accepted by scholars residing in the province. Not only in the creative aspects of literature it affected the setting of the another regions. There are nine valleys of the other names are duplicated on the inside of the nine valley can be understood in this context. 「It is a stroll away from the mountain by himsel(獨遊孤山)」 of Lee-Hwang (李滉) and 「Gosan-nine Valley(孤山九曲)」 of Lee-Yangsun(李野淳) These two works are works that are noted to be one of the criteria to be examined to understand historical context and literary tradition, succession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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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임진왜란기 대구지역 한강학파의문학적 대응

저자 : 정우락 ( Jeong Woo-rak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69-11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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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의 한강학파는 김종직 학단으로 대표되는 영남 사림파의 성장, 이황과 조식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자장 속에서 성립된다. 채응린 등이 이끌던 대구의 학술계가, 정구가 이 지역에 등장하면서 곽재겸과 서사원 등 초기 제자들을 흡수하게 되고, 이로써 대구지역 한강학파의 성립을 보게 된다. 이것은 조선 중기 이래 정치적, 학문적으로 소외되어 가던 대구지역에 학문적 우월성과 정통성을 부 여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러한 자신감이 의병활동에 깊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에 대한 체험은 일기나 詩歌를 통해 제출되었다. 일기는 서사원의 『낙재일기』가 그러하듯이 대구지역의 전쟁체험을 사실적 기록을 통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시가 역시 전란으로 겪은 충격을 형상하는데 긴요한 구실을 했다. 이들은 주로 팔공산 회맹에 따른 義氣, 전사자나 부상자에 대한 위로, 우국에 대한 정서,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평화로운 일상의 복원에 대한 염원, 피란길에서 발생하는 사향의식 등의 주제를 형성하였다. 한강학파의 전쟁에 대한 문학적 대응은 구체적 실천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끊임없는 독서와 기록을 강조하였으며, 격문 등을 통해 의병을 일으켜 실제적인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남학파의 성숙과 한강학파의 학문적 경향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학이 心學과 禮學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실천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Hangang School in Daegu region was established within the influence of Yeongnam School, which was formed based on the thoughts of Yi Hwang and Josik, triggered by the growth of Sarim faction represented by Kim Jong- jik and his disciples. The academic circle led by Chae Eung-rin accepted early disciples including Gwak Jae-gyeom and Seo Sa-won with the appearance of Jeong Gu to form Hangang School in Daegu. The school injected academic superiority and legitimacy in Daegu region, which was getting isolated politically and academically after the mid-Joseon Dynasty, and the confidence resulting from that had a profound impact on rightous army movement. Experience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were described in diaries and poems. As shown by The Diary of Nakjae by Seo Sa-won, diaries explicitly show experiences of the invasion in Daegu region using factual information. Poems also played a critical role in demonstrating the shocks from the invasion. Poems at the time had the following themes: public spirit raised by the covenant in Palgongsan Mountain; comfort for those who were killed or injured in the invasion; sentiments of patriotism; desire for the restoration of peaceful daily life based on Confucian thoughts; and refugees`` longing for hometown. Hangang School``s literary response to the war could be practiced concretely because the school constantly emphasized reading and recording amid the war and developed actual experiences into literature by raising rightous army forces with appealing writing. This was the natural result from the engagement between the maturity of Yeongnam School and the academic trend of Hangang School. This result was possible as Hangang School emphasized practicing in society what had been learned while focusing on study of mind and study of 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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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순조(純祖)대(1800~1834) 안동지역(安東地域) 유림(儒林)의 정치적 동향

저자 : 이재현 ( Lee Jae-hyeon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11-15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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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순조 대 안동지역 유림의 정치적 동향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정조 집권 시 중앙정계에 등용되었던 영남남인이 도태되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1810년대에 병호시비가 촉발되는 과정을 이현일-이상정으로 이어지는 학통과 관련하여 추적하였다. 이후 병호시비가 호계서원을 넘어 지역 내 현안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1820년대에 향론의 보합을 위해 어떠한 시도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정조 즉위 이전 중앙정계에서 소외되어 있던 영남남인은 정조가 탕평책을 실시하면서 당시 근기남인의 거두인 채제공의 주선으로 중앙정계의 주변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면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남인은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였다. 순조 대의 영남남인은 중앙정계에서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이와 함께 병호시비라는 내부 분열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병호시비는 호계서원에 이상정을 추향하는 문제를 두고 크게 확산되었다. 호유 측은 자신들의 학맥을 잇는 이상정의 추향을 통해 퇴계의 적전임을 천명하려 하였고, 병유 측은 이를 결사적으로 저지하려 하였다. 이러한 분열 양상은 호계서원을 넘어 다른 지역 내 현안까지 확대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채제공 신원소 문제였다. 1820년대에는 『번암집』 간행작업과 을유도회를 통해 시비를 보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끝내 화합에는 실패하였다. 이것은 양측이 당대 정치 현실에 대한 정치적 지향에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유 측은 향내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정계와의 연계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호유 측은 정체성을 명확히 하면서 중앙정계에 배타적 입장이었다. 순조 대 안동유림은 중앙정계에서 다시 소외되는 과정 속에서 향론의 분열에 직면하였다. 이에 한 측은 중앙정계와 다각도로 연계를 시도하면서 현안을 해결하려 하였고, 한 측은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하였다. 이러한 인식 차이로 인해 일련의 보합 시도는 결국 실패하였고,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겨지게 된다.


This essay investigates the political trends of the class of Confucian scholars who had inhabited in An-Dong in the reign of Sun-Jo. Firs of all, I show the process that Youngnam Namin lost their power in palace politics, who were appointed in the reign of Jeong-Jo. Secondly, I explain the early process of the Byung-Ho conflict in the frame of the academic line from Lee Hyun-il to Lee Sang-jeong. Finally, I suggest the process which the conflict expanded from between the Byung-san lecture hall and the Ho-gye lecture hall to the provincial society, and the various efforts in order to reconcile this conflict. The Youngnam Namin did not take any posts in the court before the enthronement of King Young-jo. However the King carried into effort the Balancing policy, so that the Youngnam Namin could get some posts in the periphery of the court by the effort of an influential political man, Che Jae-gong, who was the leader of the Gungi Namin The Byung-Ho conflict was trigger by the memorial rite of Lee Sang- jeong. The Confucian scholars who studied in the Ho-gye lecture hall wanted to be the right followers of the Lee Hwang by the memorial rite of Lee Sang-jeong. However, the scholars who studied in the Byung-san lecture hall tried to blocked the try of the opposing party. Although, in the 1820s, there were some kinds of reconciling efforts, the final reconcile was not attained. The reason was that the political aims of two parties were different each other. The Byung-san scholars underlined the collaboration with the court politicians in order to resolve the provincial problem. On the other hand, Ho-gye scholars wanted to took a distance to the court, accenting a specific regional identification. As a result of this difference, the reconcile was fa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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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퇴계학의 오독:다카하시 도루와아베 요시오의 퇴계론 비판

저자 : 박균섭 ( Park Kyoon-seop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55-202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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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관제·관변학자로서 퇴계 연구의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두 인물로 다카하시 도루와 아베 요시오를 들 수 있다. 이들이 퇴계를 주목한 것은 조선의 청년·학도에게 퇴계를 매개로 삼아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황국신민의 도를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퇴계 연구물은 해방이후의 한국유교·퇴계학 연구자들에게 무비판적으로 흡수되었다. 조선시대 이래의 퇴계 관련 구전설화는 퇴계를 문화상품의 주인공으로 삼는 상업인문학의 소재로 활용되었고, 일제강점기의 퇴계 연구는 퇴계를 내선일체론과 식민교육의 근거로 내세워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과 죽음의 대열로 내몰기 위한 전쟁인문학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이는 해방이후의 한국유교 연구 과정에서 퇴계학의 정체성을 흔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상업인문학에 의해 오염되고 전쟁인문학에 의해 굴절된 퇴계학이 본연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설화적 미몽과 식민적 잔영을 걷어내는 가운데 퇴계학 연구의 지적 토대와 연구 역량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Takahashi Toru and Abe Yoshio can be the government sources scholars of Japan who are representatives of researching Toegye. They pay attention Toegye to achieve their colonial education aim with easy and they take advantage of Toegye to pass down the ideology of emperor system effectively since the Meiji Restoration. Korean Confucianism and Toegye Studies researchers uncritically accept two of their research results after the Liberation. A story that has been passed on orally related Toegye practical use for commercial humanities material which put up Toegye for main character with culture products since Chosun dynasty. Warfare humanities stir up young people of Korea to war field and also claim “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 and training for colony using Toegye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It makes devalue the identity of Toegye Studies in the research process of Korean Confucianism after the Liberation. We must secure intellectual probity and research capacity of Toegye Studies in order that we have to put away colonial relics for regaining original characteristics of Toegye Studies which is polluted and distorted by commercial humanities and warfare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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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내성외왕(內聖外王) 사상의 군자정치(君子政治) 연구-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중심으로 -

저자 : 박병구 ( Park Byoung-gu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03-2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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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聖外王의 주체는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이상적인 君子이다. 내성외왕은 君子를 역사의 창조의 주체로 보았다. 내성외왕은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 君子에게 修己治人ㆍ聖王을 요구하고, 仁과 德政을 하나가 되게 하였다. 孟子는 내성외왕 사상을 통해 정치와 윤리를 유기적으로 통일하였다. 내성외왕은 절대 진리를 모색하면서 仁政으로써 평천하를 실현하려 한다. 본고가 제시한 내성외왕의 분석 단위는 君子, 내성외왕의 필요조건은 君子의 修身, 충분조건은 知行合一ㆍ仁政과 天命이다. 본고는 내성외왕과 君子 지배 권력의 안정은 因果關係가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君子의 내재적 도덕과 윤리 행위ㆍ정치 행위의 합목적성을 분리하지 않았다.


The subject of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is not real people, but the ideal type gentleman.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considered that gentleman is main body to create history.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in order to achieve benevolent government politics to gentleman require self-cultivation rule people and saint king, make humanity and benevolence together. Mencius by way of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organic unite the political and ethical.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not only seek absolute truth, but also achieve harmony world by benevolence. This article suggest that analysis unit of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is gentleman, necessary condition is gentleman's cultivation mind, sufficient conditions ar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 benevolence and mandate of heaven. This article assumed that between Being sage inside Being kingly outside and the stability of gentleman domination power have a causal relationship, and did not separate intrinsic moral and ethical behavior of the gentleman, purposiveness of political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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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재고찰

저자 : 서근식 ( Seo Geun-sik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33-26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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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는 실제 일에 있어서 옳음을 구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 대해 다시 고찰해 봄으로써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였다. 이러한 실사구시가 한송절충론과 관련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부분은 청(淸)나라의 고증학과 같은 것이다. 추사의 학문관이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추사는 실사구시라는 학문방법론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하학(下學)·상달(上達)과 박학(博學)·독행(篤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점은 추사의 학문이 고증학과 깊게 연관됨을 보여주고 있다. 학문방법으로서 추사는 고증학을 내세운다. 고증학에서 추사는 한(漢)나라의 훈고학을 중시했고 그 가운데 정현(鄭玄)의 주석에 대해 신뢰를 보냈다. 또, 고증학의 방법으로서 추사는 금석학을 내세우는데 그 가운데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에서 북한산순수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 하고 있다. 「진흥이비고」를 자세히 보면 본래는 무학대사의 비석이었다가 추사의 손을 거쳐 진흥왕의 순수비로 되었다는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실제 있는 일에서 옳음을 구한다[實事求是] 정신과 꼭 들어맞는 것이다.


'Shishiqiushi(實事求是)' means looking for what's right in practical matters. In this paper, this meaning was examined again, and became clear. It was investigated that this 'Shishiqiushi(實事求是)' is related to 'Hansongzhezhonglun (漢宋折衷論)', which is similar to Kaozhengxue(考證學) of Ching(淸) Dynasty. It's been examined that ChuSa(秋史)'s view of learning was based on 'Shishiqiushi(實事求是)'. Regarding the matter of how to practice the academic methodology of 'Shishiqiushi(實事求是)', ChuSa(秋史) specifically emphasized Xiaxue(下學)·Sangda(上達) and Boxue(博學)·Duxing(篤行). It shows that ChuSa(秋史)'s studies were deeply related to the study of ancient documents. As for the academic methodology, ChuSa(秋史) insisted on Kaozhengxue(考證學). He attached importance to exegetic studies of Han(漢) Dynasty. among which, he paid credit to ZhengXuan(鄭玄)'s annotation. In addition, with regard to the methodology of Kaozhengxue(考證學), ChuSa(秋史) advocated epigraphy, and among which, the discovering process of the monument commemorating a king's tour in Bukhan Mountain in 「Zhenxingerbeikao(眞興二碑攷)」. When 「Zhenxingerbeikao(眞興二碑攷)」 was closely investigated. it's been found to have been recorded that it used to be the Buddhist Great Master Muhak's tombstone, but came to be recorded as the monument commemorating King Jinheung's tour through ChuSa(秋史)'s hands. It perfectly corresponds to the spirit of seeking righteousness in practical matters[實事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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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덕(德)개념 논쟁에 대한 일고찰: 『논어』 '덕구절(德句節)'에 대한 주자(朱子)와 다산(茶山)의 해석비교

저자 : 임헌규 ( Lim Heon-gyu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63-30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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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에서 德개념은 「갑골문」부터 출현하기 시작하여, 유가의 가장 오랜 典籍인 『詩經』과 『書經』에도 빈번히 출현하였다. 『詩經』과 『書經』의 德개념은 일반적으로 군주의 정치적ㆍ군사적 행위일반을 의미하다가 점차 가치 정향적 개념으로 정립되고, 나아가 '心'부가 추가되면서 가치 있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내면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공자의 『논어』는 이런 이전의 德개념을 계승함과 동시에 이상적 인간이자 인간의 이상인 君子개념과 연관하여 재정립ㆍ전개하였다. 이 논문은 『논어』 전체 약 498章 가운데 약31장에 걸쳐 40회 내외를 출현하는 덕이라는 용어가 나타난 章에 대한 何晏과 邢昺의 古注인 『論語注疏』, 朱子의 新注인 『論語集註』, 그리고 茶山의 『論語古今注』를 대조하여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는 신주가 고주의 해석을 1) 거의 그대로 수용하거나 약간의 부가적인 설명만 추가하는 곳, 2) '부분적'으로 수정ㆍ보완한 곳, 그리고 3) '전면적'으로 再定義하여 다르게 해석하거나 章節의 구분을 다르게 하고 있는 곳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국의 茶山 丁若鏞은 『논어』의 德개념이 출현한 구절들에 해석에서 고주와 신주를 어떻게 비평ㆍ재해석하였는지 살펴보고, 그의 주석의 창의성과 타당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 결과, 朱子는 고주에 대해 전체 31장 가운데 최소 7장에서 최대 19장에 대해 부분 혹은 전면 새로운 주석을 시도하였으며, 다산은 최소 약14장에서 최대 17장에 대해 고주와 신주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새로운 주석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Articles intend to articulate a commentary of Te(德) in Confucian analects(『論語』) Te(德) is key concepts in Confucianism. Tao(道) is the Way of human life, and Te(德) is the incarnation of the Way. Therefore, Confucius said, “Let the will be set on the path of duty. Let every attainment in what is good be firmly grasped. Let perfect Virtue be accorded with. Let relaxation and enjoyment be found in the polite arts.” This article``s aim is to contrast 1) Chu-Hsi's a commentary of Te(德) in assembled commentary of Confucian analects(『論語集註』) 2) Dasan's Criticism of it in old and new commentary of Confucian analects(『論語古今注』. Chu-Hsi' analyzed-deconstructed and re-interpretations Te(德)'s paragraph of commentary of Confucian analects(論語注疏). Dasan Cheong Yag-yong tried to rediscover and recover the original meaning of Te(德)'s paragraph in Confucian analects. Dasan collected, complied, and re-interpretation dispersed original material of Te(德)'s paragraphs of in Confucian analects. Chu-Hsi and Dasan Cheong Yag-yong reestablished Te(德) as maim concept of Confucius Analects. Dasan defined Te as Mind's a right Way in his Commentary of Confucian analects. Chu-Hsi' Te is substance of Mind(心之體) and principle of love(愛之理). He interpreted Te as an innate idea. but Dasan redefined that Te(德) is achieved only by Human beings's behavior(行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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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예천지역 성리학계의 지형도- 16~17세기를 중심으로 -

저자 : 장윤수 ( Jang Yun-su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301-34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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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17세기 예천지역 성리학의 전통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예천지역 성리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사변적 논변보다는 성리학적 가르침을 삶의 구체적 場에서 실천하는 데에 있었다. 특히 家學의 바탕 위에서 '孝行'을 실천하는 전통은 예천지역 성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퇴계의 거주지와 가까워 퇴계 학문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으며, 수많은 퇴계 문인을 배출했다. 또한 예천지역 성리학자들은 定住民 문화를 일궈온 토착민들과 移住民들 간의 성공적인 융합을 이루어냈다. 유력한 문중들이 함께 書堂을 건립하고 자녀 교육에 힘쓰는 등 지역민들의 협력과 단결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예천지역 학자들의 師承관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家學을 계승한 학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이 지역의 학문 전통이 자생적 토양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 마디로 말하여, 가학적 바탕에 기반한 자생적 학문토양에 퇴계학맥이 접목된 것이 예천지역 성리학의 정체성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in general the tradition of Neo-Confucianism in Ye-Cheon around the 16th~17th century. The main concern of Neo-Confucians in the Ye-Cheon area was to practice the teaching of Neo- Confucianism in real life rather than to argue speculatively. The tradition of filial conduct on the basis of family-study was the main characteristic of Neo-Confucianism in the Ye-Cheon area. This area is so close to Toegye``s residence that much influence of the Toegye-study remains and has produced many of Toegye``s literary scholars. Neo-Confucians in Ye-Cheon succeeded in integrating the native peoples, cultivating domiciled culture with that of the immigrants. They tried to unify and integrate the community; the major families built the village schools together and taught their children. The most typical characteristic in the succession of teachers among the scholars in Ye-Cheon is that there are many who inherited their family-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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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담 이윤우의 師承(사승)과 交遊(교유)에 관한 고찰

저자 : 구본욱 ( Bon Wook Koo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3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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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석담 이윤우의 師承과 交遊에 대하여 논한 글이다. 이윤우의 스승은 두 분으로 모당 손처눌과 한강 정구이다. 이외에 그는 낙재 서사원에게도 평생 종유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윤우가 율곡 이이의 문인이었다는 설이 제기되어 혼란 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박세채가 어릴 때 그의 內兄인 신경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것을 기록한 자료에 의거하였다. 그러나 송시열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도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윤우의 향리의 벗은 한강의 문인이 대다수이며, 특히 도성유는 이윤우가 경성판관으로 있을 때 꿈속에서 본 모습을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또 만년에 담양부사로 갈 때 준 관리들의 시를 살펴보면 그는 黨色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모당집』과 『모당일기』 등을 통하여 이윤우가 한강의 문인이 되기 이전에 모당에게 수업을 받았다는 것을 밝혔다. 또 이윤우가 한강의 문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당에게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또한 확인하였다. 본 논문은 이윤우의 사승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그의 학통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키고, 그가 한강을 통한 퇴계학의 계승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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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친일유림의 수사학 -유교적 가르침의 실종-

저자 : 박균섭 ( Kyoon Seop Park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7-7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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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친일유림은 제국주의 열강의 문명화 레토릭에 감염되어 식민화 논리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친일유림은 유교사상에 대해 여러 변형된 해석과 논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친일ㆍ반민족행위에 앞장섰다. 그들의 이론적 근거는 유교ㆍ주자학의 논리를 가장하고 있으나 궤변으로 일관한 경우가 많다. 그 궤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친일유림은 동화 이데올로기를 현창하고 식민정책을 표방하는 홍보의 전위대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이를 친일유림의 수사 학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일제강점자들은 지난날 온갖 특권을 누리며 지배세력으로 군림했던 전통유림을 특별히 주목했고, 유혹의 파시즘을 통해 이들을 친일유림으로 포섭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유교ㆍ주자학의 자체동력을 믿었다기보다는 식민지조선의 유림을 조정 관리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침략야욕을 드러내고 지배음모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근대적 기획은 유교적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기만적 에토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이면의 유교ㆍ주자학은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유교적 가르침의 실종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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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자의 인인시언적 방법과 철학상담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문답법을 중심으로-

저자 : 이기원 ( Gi Won Lee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75-10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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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공자의 문답법을 중심으로 공자는 어떠한 방법으로 내담자의 고통과 고민에 공감하면서 내담자를 다른 관점으로 변화, 유도해갔는지 대화의 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공자의 문답법에 대한 주된 소재는 『논어』이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 간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들의 질문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말했는지,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관점의 전환을 유도해 갔는지가 명확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특징은 공자가 질문자들의 성격이나 특징,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공자의 이러한 방법을 因人 施言的 방법이라 한다. '인인시언'이란 사람에 따라 말을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라도 각 사람의 성격이나 체질 등 개인의 특성에 따라 상담을 달리 해야 한다. 이것은 각 개인이 갖는 개별성과 다양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내담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의 상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와의 대 화를 통해 확고부동한 자신만의 개념을 구축하고 그 개념에 따라 삶의 의미를 다시 물으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내담자는 상담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의미와 그에 필요한 개념을 스스로 정립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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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유학의 심성론과 심리학 -중용과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저자 : 최일범 ( Il Beom Choi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09-14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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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심성론과 현대 심리학은 상호 소통할 수 있는가? 그것은 유학의 미래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그 가능성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첫 단계로 심리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유학의 심성론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특히 분석심리학과 유학의 중용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하자 한다. 심리학자들의 유학 심성론에 대한 연구를 보면, 조긍호와 이수원은 유학 심리학이 현대 심리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심리학을 전개할 수 있으며 이 는 미래의 인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심리학 체계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부영, 이죽내는 융의 분석심리학이 동양심리학, 유학심리학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며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석심리학의 근본적 원리는 대극對極이다. 대극적 사고는 정신 현상의 발생근거인 동시에 분석심리학의 일반적 기초요 인간본성에 내재하는 하나의 원리이다. 분석심리학자들이 중용의 원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중용의 원리가 바로 분석심리학의 대극 원리와 같은 형식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유학의 심성론과 분석심리학의 소통은 다음과 같은 점이 기대된다. 첫째, 유학의 심성론은 분석심리학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보다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분석심리학은 그 종극 목표인 '자기실현' 이론을, 유학의 심성이론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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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공(禹貢)》“청모(靑茅)” 연구

저자 : 마사원 , 송해연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45-156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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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貢』 편에는 荊州의 공물을 언급할 때, “靑茅로 묶는다”는 말이 있다. 靑茅는 평범한 야생의 풀인데, 荊과 楚의 땅에서 많이 자란다. 그 깨끗함 등의 특성 때문에 고대로부터 吉祥이나 神奇 등의 뜻이 부여되었다. 그리하여 옛날부터 공물로 바쳐서, 국가의 祭祀, 封禪, 封社, 封國 등의 중요한 활동에 사용되었고, 때로는 占卜의 기물이 되어서 길흉을 점칠 때도 사용되었다. 靑茅 문화는 중국 전통민속문화의 중요한 전승 내용으로써,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인 뜻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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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遜庵(손암) 申晟圭(신성규)의 『論語講義(논어강의)』 연구

저자 : 최석기 ( Seok Ki Choi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57-1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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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遜庵 申晟圭의 『論語講義』를 분석하여 그 특징과 의의를 고찰한 것으로, 요지는 아래와 같다. 손암의 『논어강의』는 그가 평생의 정력을 바쳐 이룩한 학문적 성과라 할 수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자의 『논어집주』를 저본으로 하여 『근사록』의 체제를 본떠 17개 주제에 맞추어 체제를 개편하였다. 이는 『논어』를 해체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종전에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경우이다. 둘째, 1章을 分章하여 내용 중심으로 재배치하기도 하였다. 이는 종래의 『논어』를 내용 중심으로 일부 개정하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셋째, 주자의 『논어집주』를 위주로 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대전본 소주 및 陸九淵·歸有光 등의 설을 취하고 있다. 이는 『논어집주』의 설만을 추종하지 않고 폭넓게 다양한 설을 수용한 것이다. 넷째, 전대의 설 가운데 본지를 밝힌 설 위주로 취사선택하고 있다. 이는 『논어집주』의 설 가운데서 다시 선택한 것이라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다섯째, 자신의 견해를 按說로 附記하여 본지를 더 심도 있게 해석하였다. 이는 종래의 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의리를 발명해 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문의 의미를 보다 심층적으로 명확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는 종래 해석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본지를더 명확히 해석하거나 심도 있게 해석하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둘째, 독자적으로 의리를 발명한 것이 다수 있다. 그 가운데는 자득을 통해 본지를 해석한 것, 문맥을 중시하여 본지를 해석한 것, 언외의 본지를 탐구한 것 등이 있다. 이는 전인이 밝히지 못한 의리나 본지를 새롭게 발명하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셋째, 『논 어집주』와 다른 해석을 한 것이 다수 있다. 그 가운데는 程子·朱子의 설과 다른 해석, 諸家說과 다른 해석, 『논어집주』 이외의 설을 제시한 것 등이 있다. 이는 손암의 『논어강의』 해석이 『논어집주』의 설만을 추종하지 않고 異見을 제시하거나 異說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의 폭이 넓고 다양해졌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러한 『논어강의』의 해석의 특징은 경학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종래의 『논어』를 해체하여 『근사록』의 체제를 본떠 재구성한 유일한 작품이다. 우리나라 『논어』 해석사에서 종래의 『논어』를 해체하여 재구성한 것이 없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는 旅軒 張顯光(1554-1637)의 論語圖에 各章을 내용 중심으로 분류해 도표로 그려놓은 것이 유일한데, 손암은 내용 중심으로 도표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근사록』의 체제를 본떠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만 유일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논어』해석사에서도 전에 없던 해석이다. 둘째, 주자의 『논어집주』를 근간으로 하여 본지에 적합한 설을 취사선택하였다. 이는 집주의 諸說 중에서 다시 가려 뽑아 본지를 명확히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셋째, 주자의 『논어집주』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설을 취하고 있다. 이는 주자의 설만을 절대존신하던 학풍 속에서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해석하고자 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심층적으로 본지를 해석하거나 독자적으로 의리를 발명하여 『논어』 해석의 지평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는 『논어』 해석이 근대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시야를 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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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남학인 孫德升(손덕승)(1659-1725)의 학자,관료적 성격 -嶺南學(영남학)과 近畿學(근기학)의 절충이 빚어낸 인간상-

저자 : 김학수 ( Hak Su Kim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95-23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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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집안에서 생장했으면서도 배움[學]과그것의 실천[行]에 있어 기존의 영남 학인들과는 일정한 차별성을 보였던 손덕승의 학자ㆍ관료적 면모를 조명함으로써 인물사 연구의 다양성을 모색하는데 초점이있다. 손덕승은 적개공신 鷄川君 孫昭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양반 중에서도 기득권층 에 속했고, 경주 良洞이라는 안정된 공간에서 생장했다는 점에서는 보수 유림층으로 불릴 수 있는 여지가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晦退라는 영남학의 줄기를 수용하면서도 近畿學[서울학]적요소를 아우르고 있었고, 李玄逸로 상징되는 산림의 존재와 역할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에서는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고자 했던 의식이 간파되었다. 특히 조선후기 노론학계의 상징 송시열을 향한 직설적 논평과 권력에 아부하는 세태를 일소코자 했던 결단력은 동시대 영남의 사대부 지식인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이 글은 손덕승의 이러한 학자 관료적 면모의 동인을 영남학과 서울학의 융합적 측면에서 찾고자 했으며, 이런 작업은 조선후기 인물사 연구의 形質을 세밀화 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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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동강 김우옹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

저자 : 이석규 ( Seock Kyu Lee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33-27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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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동강 김우옹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김우옹은 사림정치가 시작되는 선조대의 정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를 민생의 안정을 위한 기강의 확립으로 보았다. 김우옹에게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군주였다. 왜냐하면 군주는 天道의 실현자로서 독자적이고 절대적인 지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시 군주에게 聖學을 요구하면서 賢臣의 역할을 강조하던 분위기에서 볼 때, 그의 군주 중심의 경세론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예컨대 이황이나 이이는 '군주의 표준'을 의미하는 『書經』의 '皇極'을 군주에게 수신을 요구하는 근거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김우옹은 오히려 황극을 동인과 서인을 초월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군주의 표준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숙종대 朴世采가 주장한 군주 중심의 皇極蕩平論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군주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한 만큼 김우옹에게 제왕학으로서의 聖學은 매우 중요하였다. 그는 오직 敬을 통해 민을 위한 왕도정치를 행해야 한다는 군주성학 론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경을 강조했다는 것이 그가 군주의 修身만을 중시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의 학문은 현실 정치에 확대 적용되어야 진정한 제 왕학이고, 왕도정치의 이념은 정치 현실에서 실질적인 공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내면의 修己는 오히려 治人과 관련될 때에만 의미있는 것이었다. 경을 강조했던 그가 경의 주재 대상에 치인까지를 포함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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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慕堂日記(모당일기)』를 중심으로 본 孫處訥(손처눌)의 교육활동

저자 : 정재훈 ( Hae Hoon Jung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71-29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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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處訥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걸쳐서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趙光祖와 金宏弼로부터 내려온 학문적 영향을 받으며, 李滉의 학문을 鄭逑를 통해 전해 받았다. 그래서 『小學』이나 『心經』, 『近思錄』 등과 같은 교재를 講學에서 가장 중시하였다. 일기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 읽은 책들이 위의 교재였던 것에서 손처눌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전란을 경험한 이후 손처눌은 새로운 사회 재건의 목표를 교육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조선을 혁신하려고 시도하였던 사림들의 학문적 지향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지역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대구 지역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할 수도 있었고, 학문의 전통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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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看羊錄(간양록)』의 표현적 특징 고찰

저자 : 김미선 ( Mi Sun Kim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 : 퇴계학과 유교문화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97-32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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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임진왜란기 해외체험 포로실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看羊錄』의표현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먼저 수집된 정보를 치밀하게 기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항은 적중봉소 와 적중문견록 에 일본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았는데, 이는 신하로서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치밀한 기록으로 인해 『간양록』은 조선후기 실학자 등 문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다음으로 비극적 경험을 절제하여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항은 일본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기록한 반면, 본인이 겪은 비극적 경험에 대해서는 감정을 숨긴 채 절제하여 묘사한다. 일기체로 쓴 개인적인 글인 섭란사적 에서 조차 감정을 절제하여, 자식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상황만 묘사할 뿐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절제된 묘사를 통해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애절하게 느낄 수 있다. 절제된 표현 뒤에 남는 오랜 여운은 『간양록』만의 묘미가 된다. 마지막으로 감정표출 방법으로써 시를 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양록』소재 다섯 편의 글 중 섭란사적 에만 31수의 시가 실려 있다. 자식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감정 표현을 억제했던 강항은 시에서 만큼은 슬픔, 그리움, 기쁨,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표출하여, 시를 통해 또 다른 문학적 감동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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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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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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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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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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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
63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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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학연구
46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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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연구
86권 0호

哲學論考(철학논고)
3권 0호

철학 실천과 상담
11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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