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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절명시(絶命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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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絶命詩) 연구

A Study on the Death Poem

박동욱 ( Dong Wuk Bak )
  • : 한국한문학회
  • : 한국한문학연구 5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5년 03월
  • : 501-531(31pages)
한국한문학연구

DOI


목차

Ⅰ. 서론
Ⅱ. 절명시의 현황과 창작 경위
Ⅲ. 절명시의 주제 구현 양상
Ⅳ.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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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를, 절명시(絶命詩), 절필시(絶筆詩), 임명시(臨命詩), 임형시(臨刑詩), 사세시(辭世詩), 필명시(畢命詩), 자만시(自挽詩)라고 한다. 병으로 인해 회복이 불가능할 때나, 스스로 순절(殉節)을 결심하며 결행하기 전, 또는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되기 전에 쓴 작품들로, 모두 죽음을 돌이킬 수 없을 때 전하는 마지막 전언(傳言)인 셈이다. 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임종게(臨終偈)라 한다. 다른 말로는 열반게(涅槃偈)·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한다. 통상 육신의 허망함, 대자유를 얻은 해방감, 삶의 부질없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 유자(儒者)들의 절명시가 삶의 연속성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임종게는 죽음이 삶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보통 임종게는 이승에서의 가치나 인연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을 깔고 있으므로 절명시와는 별도의 문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절명시나 자만시 모두 자신의 죽음을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절명시는 자만시보다 죽음과 더 지근(至近)한 거리에 있다. 자만시가 언제 맞을지 모를 죽음을 예비하는 성격이라면, 절명시는 회생(回生)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성격이 강하다. 표제(表題)가 자만(自挽)으로 되어 있지만, 죽음에 임박해서 지은 시라면 절명시로 분류하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 절명시는 다른 어떤 문학 작품보다 죽음에 근접해 있다. 죽음을 예기해서도, 타인의 죽음을 목격해서도 아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인 셈이다. 절명시가 아직도 유효한 메시지가 되는 이유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직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전언이기 때문이다.
The death poem means the last poem written right before death. It is written as the last message left when the death is only way to choose including when it is impossible to live due to diseases, when dying for one``s chastity or when being executed due to political reasons. The death testament is the last message or writing which high priests express their enlightenment through asceticism when passing into Nirvana. Although the death poem by Confucian scholars look death on the continuity of life, death is the complete severance from life in the death testament. Death poem or assumed death poem have the same feature that the authors wrote their own death. However, the death poem is closer to death than the assumed death poem. Assumed death poem is to prepare the death which they are not sure when it comes. On the contrary, the death poem more tends to settle the last moment of life without any possibility for recovery. The death poem is closer to death than any other literary works. It``s the records on the own``s death itself. It``s not written by estimation on death or by observing others`` death. The death poem is the message which is still effect because it is the last message to ourselves still alive at the last moment of life.

UCI(KEPA)

I410-ECN-0102-2015-800-002083351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8-128x
  • : 2733-491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2
  •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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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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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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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효전 심노숭의 역병 체험과 질병 서사

저자 : 정우봉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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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疫病이 유행하던 상황에서 역병 체험을 다룬 글을 질병 서사의 관점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특히 역병 체험을 다룬 많은 인물들 가운데 풍부한 자료를 남긴 孝田 沈魯崇(1762~1837)에 주목하였다. 심노숭의 글에서 역병과 관련한 질병 서사의 양상을 크게 '육체의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 '말하는 몸을 통한 공감의 질병 서사', '육체의 소멸과 애도의 질병 서사'로 구분하였다. 세 가지 양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육체가 반응하는 양상 및 그 변화의 과정을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육체적 고통만을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고통까지 함께 서술하였으며, '말하는 몸'을 통해 주체를 재발견하였다는 점, 이와 같은 육체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는 심노숭의 육체에 대한 인식과 연관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또한 심노숭에게 있어 성적인 욕망에 대한 긍정, 음식에 대한 감각과 취향 등은 모두 육체적 욕구와 욕망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연결된다. 인간을 살아있는 감각적 주체, 육체적 주체로 인식하는 연장선 위에서 심노숭은 역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육체적 반응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육체적 고통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자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었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욕망과 감정을 지닌 개별적 자아로서 긍정하였던 일련의 사고와의 관련 속에서 우리는 역병 체험 서사에 나타난 육체의 증언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This thesis analyzed the writings about the experience of the epidemic in the context of the epidemic in the late Joseon Dynasty using the perspective of the disease narrative. In particular, attention was paid to Sim No-Sung (1762-1837), who left a wealth of material among the many people who dealt with the epidemic experience. In No-Sung Sim's writings, the aspects of disease narratives related to infectious diseases are largely divided into 'disease narratives as testimony of the body', 'disease narratives of empathy through the speaking body', and 'disease narratives of the annihilation of the body and mourning'. And the meaning is that he observed the reaction pattern of the body and the process of its change in a very detailed and specific way and recorded it. The fact that the subject was rediscovered through this process, and that the narrative of disease as a physical testimony needs to be interpreted in relation to Sim No-sung's awareness of the body.
Also, for Sim No-Sung, the affirmation of sexual desire, the sense and taste for food, etc. are all connected with a natural understanding of physical desire and desire. On the extension line of recognizing humans as living sensual subjects and physical subjects, Sim No-Sung described his physical reaction to an infectious disease in a very detailed and detailed manner, and was able to reflect on his own self living in such physical pain. In connection with a series of thoughts that affirmed humans as living beings and individual self with desires and emotions, we are trying to interpret the testimony of the body in the plague experience narrative.
In addition, in relation to the literary response to infectious diseases, human conflict and anguish, as well as aspects of use as a material for memories and laughter were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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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질, 학을 떼게 만드는 고통의 기억 -심원열의 「침질기」를 중심으로-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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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遠悅(1792∼1866)은 학질에 대한 인상적인 기록인 「寢疾記」(권5)를 문집에 남겼다. 「침질기」는 총 118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인 沈魯巖(1766∼1811)의 發病부터 시작하여 투병과 臨終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기 형태로 상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病錄을 첨부한 임종 일기로 보아야 한다. 「침질기」는 병세가 심각해진 6개월을 그 대상으로 했으니 임종 장례 일기 중에 가장 긴 시간과 분량을 기록한 자료 중 하나다. 학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여러 명의 의원을 찾아 나서고 그들로부터 처방을 받아 이루어졌던 다양한 투약이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가족의 대응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당일에 있었던 일화, 담당 의원과 각종 처방, 아버지의 몸 상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루에 1-2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그날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여러 칙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당일의 기록을 적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해 훗날에 느꼈던 감회를 追思, 追念, 追書 같은 형식으로 보충해 놓았다. 중간중간에 먹으로 지운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초고의 상태로 보인다.
등장 인물은 심노숭, 심노암 형제와 심원열 그리고 의원 등으로 한정했다. 통상 내방객들을 다루는 다른 기록들과 달리 「침질기」에서는 다른 인물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하여 온전히 아버지 병과 관련된 일에만 중심을 두고 있다. 있었던 일들을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런 기록의 특성상 감정을 상당히 절제해서 건조하게 기술되기 마련이지만, 「침질기」는 서정적인 면모나 위트가 드러나서 문학성 또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침질기」는 어떤 기록보다 학질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관련된 의원과 처방들이 매우 소상히 남겨져 있어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투약에 대한 기록은 훗날 처방의 근거나 중복 투약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이러한 객관적인 기록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자 본인과 환자 가족들의 대처와 반응이었다. 심노숭과 심노암의 우애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침질기」에서 두 사람의 형제애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해질수록 안타까워하고 스스로 자책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죽음이란 사건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재 속에 남겨질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을 드러낸다. 부자가 죽음이란 사건을 함께 앞에 두고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Shim Won-yeol(1792-1866) wrote "Chimjilgi" (Volume 5), an impressive record of the quality of the school. The Chimjilgi consists of a total of 118 rules. The process from the onset of his father, Shim No-sung (1766-1811), to fighting and dying was recorded in detail in the form of a diary. This record should be viewed as the death diary attached with the records of the disease. Not only are various medications that were made by visiting several clinics to treat hemorrhoids and receiving prescriptions from them recorded, but the family's response to the patient is also written in detail.
The Chimjilgi is one of the longest records of time and amount of time during the dying funeral, as it was targeted for six months when the disease became serious. This record was completed on June 17, 1811, centering on the daily notes.
The contents mainly deal with anecdotes from the day, various prescriptions with the clinic in charge, and the physical condition of the father. It is based on 1-2 rules a day, but if there is an important change that day, it is composed of several rules. I am writing down the records of the day, but I supplemented the feelings I felt in the future in the form of memorial service, memorial service, and memorial service. As traces of ink erasing are found in the middle, it seems to be in an unprepared state.
The characters were limited to Shim No-sung, Shim No-am brothers, Shim Won-yeol, and lawmakers. Unlike other records dealing with visitors, other characters rarely appear in the Dormant Period. It focuses entirely on work related to father's disease by ensuring choice and concentration. Since the things that happened were organized in the form of dialogue, the situation at the time is vividly conveyed. Due to the nature of these records, emotions are often restrained and described in a dry manner, but "Darkness" is also excellent in literature because of its lyrical aspect and wit.
Bedroom is a more detailed record of the quality of the crane than any other record. Related clinics and prescriptions are left in great detail, so it can be said to be very important medically. Records of medication appear to be necessary to prevent future prescription grounds or duplicate medication. These objective records are also meaningful, but most impressive of all was the response and response of the patient himself and the patient's family. The friendship between Shim No-sung and Shim No-am was well known, but you can check the brotherly love between the two in detail in "Chimjilgi." The son felt sorry and blamed himself as his father's condition became more serious. At some point, the father admits the death that will happen to him and shows pity for his son who will be left in his absence. It is a very impressive work to see the father and son struggling from the perspective of patients and their families in front of the death incident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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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년의 홍역-權相一의 『淸臺日記』에 기록된 감염병의 시간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25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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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하나인 홍역에 초점을 두고 『淸臺日記』의 질병 서사를 구축하고자 했다. 46년간 홍역을 의식하며 살았던 저자 權相一(1679∼1759)의 생애를 다음 세 국면으로 나눠 기술했다.
1707년, 경상도 尙州에 거주하는 29세의 擧子 권상일은 홍역이 유행하는 가운데 향시에 응시하기 위해 昌寧까지 불안한 여정을 왕복했다. 홍역의 '未疫者'였던 그는 안전을 위해 감염병에 오염된 지역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동 경로를 통해 창녕 이북의 玄風과 善山, 金泉, 상주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홍역이 유행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719년과 1720년, 40대 중앙관료 권상일은 서울 倉洞의 우거와 상주의 고향집 사이를 오가며 홍역이 유행하는 양상을 기록했다. 권상일의 아들 權煜, 왕세자 李昀 등 어린이와 젊은이 들이 경향 각지에서 홍역을 치른 사례를 볼 수 있으며, 감염병에 오염된 구역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미역자' 권상일의 행동원칙이 관철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1752년과 1753년, 상주의 고향집에 머물던 70대 노인 권상일은 조정의 출사 요청을 거듭 거절해야 하는 명망 있는 노학자였다. 노년까지 홍역의 '미역자'였던 권상일은, 자신을 돌보고 가정과 지역 공동체를 보살피며 감염병 상황에서 관혼상제의 일상을 가능한 한 안전하게 이어나가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감염병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조심한지 46년 된 1753년 정초에 75세의 권상일은 마침내 홍역을 잘 치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여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46년간의 홍역을 기록한 권상일의 『청대일기』는 오랜 감염병 시절을 통과하는 개인 및 공동체의 삶의 모습과 그 시간에서 얻게 된 질병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를 갖는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tract a disease narrative on the topic of measles from Cheongdaeilgi, Kwon Sang-il's diary. I read this diary with a particular focus on Kwon's 46 years of measles-conscious life, and described the life of Kwon in three phases.
In 1707, a 29-year-old student Kwon was living in Sangju. Despite the epidemic of measles, he had to make an uneasy trip back and forth to Changnyeong to take a local exam. He, who has not yet acquired immunity to measles, tried to avoid areas contaminated with infectious diseases as much as possible for safety. Through his travel route, it is possible to confirm the widespread prevalence of measles in Hyeonpung, Seonsan, Gimcheon, and Sangju.
In 1719 and 1720, Kwon Sang-il, a central official in his 40s, recorded an epidemic of measles while traveling between his temporary residence in Chang-dong, Seoul and his hometown in Sangju. It is confirmed in his diary that children and young people, including Kwon's son and the Crown Prince of Joseon, suffered measles in various parts of the province and in Seoul, and that the principle of action of Kwon, which protects himself by avoiding areas contaminated with infectious diseases, is still being implemented.
In 1752 and 1753, Kwon Sang-il, an elderly man in his 70s who lived in Sangju's hometown, was a renowned old-age scholar who had to repeatedly refuse the government's request to work in a high-ranking public office. Kwon, who had not suffered from measles until then, took care of his health and took care of his family and local community during the infectious disease situation. And he tried to carry on the ordinary daily life of holding ancestral rites and welcoming guests as safely as possible. On New Year's Day in 1753, 46 years after recognizing and being careful about the dangers of measles, 75-year-old Kwon was able to overcome the measles well and expect the rest of his life with a grateful heart.
Cheongdaeilgi, which recorded 46 years of measles, reveals the lives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hrough the days of infectious diseases, as well as insights into diseases and life gained through that time. This diary has present significance in that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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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살 곳 찾기 현상의 동인과 다층성 -십승지와 『택리지』 그리고 그 주변-

저자 : 양승목 ( Yang Seung-mo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7-16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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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살 곳 찾기'라 명명한 조선후기 유력한 문화현상을 추동한 배경 및 그 성격과 양태를 탐구해본 것이다. 살 곳 찾기 현상은 17세기 전란 직후 소위 십승지로 대표되는 當亂保身의 땅을 찾는 움직임으로부터 태동한 것으로, 조선후기를 관통하여 20세기 초반까지도 상존하였다. 먼저 이러한 지속과 만연에 대해 인민이 마주한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그 실질적인 동인을 고찰해보았다. 군사행동이 동반된 역모, 이상기후에 따른 천변재이와 그로 인한 기근과 역병, 세금의 부과와 징수에 있어서 만연했던 비위 등 국가적 차원의 전란이 종국된 뒤로도 개인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위난의 상황은 끊임없이 박도하였으며, 이러한 자연적/사회적 재난 요소 및 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희구하게 한 동력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 살 곳 찾기 현상이 가진 다층적 면모에 대해 상론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논제에 대한 검토로 구성하였다. 하나는 십승지와 『택리지』의 긴밀하고도 상호적인 관계를 고구한 것이다. 재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움직임은 사대부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만한 고장을 물색하는 계기와 문법을 제공하였으며, 이로부터 탄생한 고 품질의 결과물은 다시 피란ㆍ보신의 공간을 찾는 관심과 시선이 진화되는 양분이 되었다는 것, 따라서 살 곳 찾기 현상은 기층의 可生處 찾기와 상층의 可居處 찾기라는 복수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특기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반류, 즉 대척점에 있었던 주장과 사유를 살펴본 것이다. 자신의 거처를 버리고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은 실로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 되는데, 이러한 비판의식은 결국 樂土在心, 곧 진정 살기 좋은 곳이란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유가의 전통적인 福地論으로 수렴됨을 짚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재난과 십승지, 십승지와 『택리지』, 이로부터 큰 조류를 형성했던 살 곳 찾기 현상, 그리고 그 반류에 이르기까지 각각이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하나의 입체적인 문화현상으로서 보아야 함을 논구하였다. 이는 재난과 십승지 그리고 『택리지』를 맥락화하여 이해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조선후기 다양한 형태의 공간탐색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동향을 조망하는 시좌와 논리를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번 논의에서 수립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문화사와 문학사의 연동 또 역동을 드러내는 것을 차후의 과제로 삼는다.


This article explores the background, nature, and aspect of driving the influential cultural phenomena of the late Joseon Dynasty, named Finding a Place to Live.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was born immediately after the war in the 17th century from the movement to find the land of Tenshelters, so-called Tenshelters, which existed through the late Joseon Dynasty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First, the reason why it could last and be prevalent for such a long time was found in terms of disasters faced by the people. Rebellions accompanied by military actions, natural disasters caused by abnormal climates, famine and plague, and misconduct in tax collection continued to be difficult to overcome as an individual even after the national war ended. These natural and social disaster factors and their experiences and memories were the actual driving force behind finding a land that could survive.
It then discussed the multi-layered aspect of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It was largely composed of a review of two topics. One is to examine the close and interactive relationship between Tenshelters and Taengniji. The movement to find a place to avoid disasters provided an opportunity and grammar to find a place to live a happy life as a nobleman, and the high-quality results resulting from this became an evolution of interest and attention to finding a space for refuge. In short,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consists of two layers: 'finding a place to survive' on the base and 'finding a place to live in' on the upper floor. Another is the argument that opposed this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Indeed, criticism of the situation of abandoning one's residence and leaving to find a good place to live is confirmed in various data. In the end, he pointed out that this sense of criticism is based on the traditional Confucian thinking system that it depends on one's attitude and mindset that it is a truly good place to live.
Through the above discussion, it was confirmed that disasters, Tenshelters, Tenshelters, and Taengniji,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which formed a large current, and its counterflow are closely related. This proves that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was a three-dimensional cultural phenomenon. This is primarily to understand disasters, Tenshelters, and Taengniji organically. At the same time, this is to prepare a view and logic to view the extraordinary interest and trends in various forms of spatial explor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phenomenon of finding a place to live established in this discussion, revealing the linkage and dynamics of cultural and literary hist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will be a next t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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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 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察'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호 ( Lee Young-h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5-1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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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중용장구』 「서문」에서 제시한 '16字 心傳'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유학의 중요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16자 심전에서 '정밀하게 살핌[精察]'은 핵심적 가치였다. 이 살핌으로서의 마음에는 살핌의 대상으로서의 人欲과 살핌의 주체로서의 道心이 공존한다. 주자의 이러한 논의는 『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이후 조선 경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퇴계는 '살핌[察]'으로서의 마음을 거론하면서, 주재성과 작용성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살핌의 주체로서의 도심과 살피는 대상으로서의 인욕을 통섭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 이후, 조선경학사에서는 그 주재성과 작용성의 한쪽에 치우치거나 이 둘을 통섭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 경학, 더 나아가 마음을 중심에 둔 조선유학의 양상을 다채롭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The 16-character teaching in the introduction chapter of Zhu Xi's Jungyong Janggu was appeared as an important ideology of Confucianism in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In particular, 'observing closely(精察)' in the 16-character teaching was an essential value. Humility as an object of 'observing' and the mind of the Way as a subject of 'observing' coexist in the mind through 'observing.' Zhu Xi's discussion on this matter was encapsulated in the chapter of Jeongsimsusin in Daehak Janggu, which later influenced on Kyunghak of the Joeson dynasty.
Toegye simultaneously considered both the substance and the function along with discussing the mind as 'observing(察).' This actually can be understood as an opinion which joins both humility as an object of 'observing' and the mind of Tao as a subject of 'observing.' Since Toegye, there have been discussions on supporting either the substance or the function or on supporting consillience of both of these in the history of Kyunghak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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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8세기 조선맹자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정전제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2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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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18세기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조선 맹자학의 특징적인 국면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맹자가 주장한 정치경제론의 중요한 논점을 이루는 「등문공상」 3장의 '井田制 논의'가 그 관찰 대상이다.
토지를 나누어 주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한 정전제 논의는 '어진 정치는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했다. 그 때문에 이후 유교의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데 요청되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식있는 경세가들에 의해 정전제는 꾸준히 호출되며 그 실현가능성이 검토되었다. 개인의 도덕수양이 아니라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방략의 차원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수기치인의 국면, 곧 경세적 실천인 治人의 맥락에서 이 논점은 그의 경전읽기가 얼마나 경세적 실천의 지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정전제 논의에서 조선의 儒者들은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도 그 문제의식의 심각성, 논의의 치밀함, 경세적 방략과의 연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 문제는 굳이 주자의 어떠함과 비교하는 데서 그칠 필요없이 그 자체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논제로 전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논의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던 경세적 기획의 진정성을 짚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접근법으로 '주석자의 지향과 태도'를 중시하여 그 부분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과 학술사적 전통을 지니는 나라들이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로 학술을 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경전을 주제로 서로 상이한 견해가 집결된 경학은 당대의 상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인 도덕수양의 논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전제의 논의와 그에 대한 비교는 단순히 경학 뿐만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널리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정전제는 조선학자들이 실현을 염두에 두고 깊은 학술적 노력와 고투를 거듭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take a look at the specific aspects of the under the Mencius Studies of Joseon for the prospect of East Asia in the 17-18th century. Detailed relevant points of observation is the 'Discussion of Jeongjoen-je (A land tax system advocated by Mencius)' of Chapter 3 of 「Deungmoongongsang」 that established important point of political economic theory that Mencius asserted.
The Jeongjoen-je discussed in more details for issues involving the land allocation sustained clear position that, 'good politics starts from the correctly establishing the boundaries'. Because of this attribute, it had been steadily called upon by the conscious statemen who intended to structure the economic foundation required for building up the idealistic Confucian state and reviewed for its possibility of realization. Since it was a level to discuss the fundamental policies to rule a country, not an issue of developing individual ethics that this point may be critically utilized for checking on how his script reading would strive for the governing practice on this discussion point under the context of the phase of ruler, namely, the governing practice for a ruler. Under the point of Jeongjoen-je, those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display a remarkable outcome in East Asia at the time in conjunction with seriousness of critical mind, refinement of discussion and governing policy. This issue may be developed as a general theme of East Asia without a need to stop in comparing with certain issue of Chu Shi.
Under this discourse, it is considered to be the minimal approach method to take a look at the genuineness of the governing planning that has not realized the direction of the noting party and issue of attitude and this aspect has been reviewed far more refined ways. It is not easy to discuss the academics with a single general theme by the countries that have different cultural environment and academic tradition. However, the Chinese classics that integrate mutually different opinion on a theme of scripture could be one of the barometers to understand the reciprocity of the respective time. In particular, the discussion of the Jeongjoen-je that may bring out the social changes, not an issue of the discussion topic of individual ethical improvement and the comparison thereto would have the possibility to visually expand on understanding of East Asia at the time, not just a simply critical mind of Chinese classic.
In particular, the discussion on the Jeongjoen-je has conspicuous implication with the standout struggle of Joseon scholars who completed with the profound academic endeavors with the respective concreteness in their m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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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周易』 「繫辭傳」의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一考

저자 : 서혜준 ( Seo Hye-joo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3-25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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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주역』 이해의 양상을 살펴보려는 취지로 『周易』 「繫辭上傳」 제5장의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이하 '一陰一陽',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일별하였다.
程朱는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을 성리학적 理氣論에 입각하여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周易大全』에 수록되어 조선 학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이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본고에서는 『周易大全』의 주석과 비교하여 『韓國經學資料集成』에 수록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程朱는 '一陰一陽之謂道'에서 陰陽과 道를 각각 氣와 理의 차원으로 나누었으며, '繼之者善'과 '成之者性'은 이러한 道가 유행하여 陰陽이 운행되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고, 이 과정을 氣와 理의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이와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조선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대체로 수용하되 天道와 人性이 연결되는 지점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를 性善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였다. 또 程朱의 성리학적 해석과는 전혀 다르게, 理에 대한 논의 없이 이 구절을 해석한 주석도 존재했다.


The Zhouyi 周易 or Book of Changes is one of the Chinese philosophical canon, and Xici 繫辭 is one of its canonical commentaries made in ancient period. In Song 宋 dynasty, the Cheng brothers (Cheng Hao 程顥 and Cheng Yi 程頤) and Zhu Xi 朱熹 interpreted Zhouyi with the view of Neo-Confucianism. Korean scholars in Joseon 朝鮮 dynasty understood Zhouyi based on the Neo-Confucian view, but there were also some differences between them, which reflected Korean scholars' own unique interests.
This paper examined the Korean scholars' commentary to Xici, comparing to the Cheng brothers and Zhu Xi. This paper especially focused on several phrases of Xici, which are highly abstract : "the alternation of yin and yang called dao" (yiyin yiyang zhiwei dao 一陰一陽之謂道), "carrying on with it is good" (jizhizhe shan 繼之者善) and "completing it is nature" (chengzhizhe xing 成之者性).
The Cheng brothers and Zhu Xi divided the world into physical world and metaphysical world. According to them, yin and yang 陰陽 belongs to the physical world, while dao 道 belongs to the metaphysical world. They thought that the world has created by yin and yang, and dao is the principle of yin and yang. This is how they understand the abstract phrases above.
Korean scholars mostly accepted this point of view, while they were more focused on the theory of human nature than the principle of nature. On the other hand, among Korean scholars' commentaries-although it's a minority view-there was also an opinion that interpreted these phrases in a way other than metaphysics, which is a far different perspective from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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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로 바라본 한문고전교육의 의미 -일제시대 총독부 출간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을 중심으로-

저자 : 홍유빈 ( Hong You-b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1-28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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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통치기에 출간된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를 통해 한문고전교육의 의미를 돌아본 논문이다. 유구한 漢學의 전통이 이어져 온 한국에 있어서, 과거 조선시대의 서당 교육과 향교 등에서 가르쳤던 훈몽서나 儒家 서적들과 그에 대한 학습은 '한문고전교육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개화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에서의 한문교육은 개별 교과의 하나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한문고전교육 역시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화기는 한학과 한문교육에 대한 열기가 여전히 유지되었던 시기였으며, 韓ㆍ日 병합에 의해 일본의 통치 하에 들어간 시기에도 어문정책에 있어서는 漢字ㆍ漢文의 몫이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논의하는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은 그 이전에 사용되던 『보통학교 학도용 한문독본』이나 『(고본)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등의 교재에 비해 한문의 비중은 적지만, 단문의 경우 우리말 번역을 붙이고 장문에는 제목과 출전을 밝히는 등 이전의 교과서에 비해 진일보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문으로 수록된 글 역시, 일제시기의 초창기 독본류 교과서의 경우 경서류 위주의 중국 문장 일색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에서는 중국 고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나 『증보 산림경제』와 같은 조선의 고전 문장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예문들 위에 頭註의 형식으로 저자 소개나 서지 및 어려운 어구에 대한 풀이를 간략하게 적어놓아 한문고전에 대한 교양을 쌓는 데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서는 한문과 한문고전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재에 있어서도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본서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본서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자세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본서의 첫 권인 1권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문고전 교육 교재로서의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였다.


This study reviewed on the meaning of Chinese classical education in the perspectives of reading books in Korean modern times focused on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 which was published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study of Chinese books for the children or Confucian books in Seodang and Hyanggyo are the Chinese classical literature itself in Korea which has had the long-lived tradition Chinese literature. However, from the Flowering period in Chosun late dynasty to the present, Chinese Education in public education has been considered as each subject and Chinese classical education also had been included. Nevertheless, The Flowering period was somewhat full of enthusiasm about Chinese literature and Chinese education. Even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part of Chinese education had a big portion in terms of language education. The book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 which discussed had the less portion of Chinese literature compared to 『普通學校 學徒用 漢文讀本』 or 『(稿本)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had more developed aspect than the previous textbooks in terms of revealing the title and the reference for the long sentences and Korean translation for short sentences. And in the case of the writings for the long sentences,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 had included Chinese classics and Korean classics such as 『三國史記』 or 『增補 山林經濟』. By the way, reading textbooks in Japanese colonical period had been composed of Chinese sentences focused on the Confucian textbooks. Furthermore, footnotes in each sentences had about the introduction of the writer and the references or the difficult sentences. Therefore, it had a guiding role for enhancing of general education through Chinese literature. In this perspective, this book can be a good guide for the present which has had the Chinese and Chinese literature education. However, in the previous study abut this book had not included the specific analysis. Therefore, in this study reviewed the book, especially the first book, and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as Chinese classical education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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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45년 李穀의 上都 행로와 心迹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u )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7-32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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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345년 이곡의 상도 행로를 고찰한 것이다. 상도 행로를 논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 14세기 중엽 麗元 관계와 이곡의 생애와 원대 兩都制의 운영과 大都 - 上都 사이의 교통로 운영 실태를 정리하였다. 당시 원의 大都와 上都 사이에는 네 개의 교통로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중 이곡이 이용한 길은 居庸關 - 八達嶺 - 岔道口 - 統幕站 - 槍竿嶺 - 李老谷 - 雕窠站 - 龍門峽 - 李陵臺 등을 잇는 驛路였다. 이곡이 이 길을 오가고 상도에 머문 체험은 9제 12수의 시로 남아있다. 이 시에는 북방 길을 걷는 여행자의 경이와 향수, 사방이 광막하게 펼쳐진 초원의 장관, 세계 제국의 위용과 황실 연회의 문화 등이 담겨 있다. 이곡의 상도 여행은 한 개인의 경험이며 동시에 역사의한 자취이다. 이곡이 여행에서 시를 지어 남겼으니 그곳은 또 우리 문학의 산실이며 배경이 된다. 이 글은 한국 역사의 현장이자 문학의 영토로써 오늘날 북경에서 내몽골 錫林郭勒盟 正藍旗 사이의 경로와 지리를 재구하고, 그 위에서 있었던 체험과 감회를 살펴본 결과이다.


This study investigated Yi Gok's path to Shangdu in 1345. As the preliminary work to discuss the path to Shangdu, this study summarized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eo and Yuan Dynasty in mid 14th century, the life of Yi Gok, dual capital system during Yuan period and the traffic route between Dadu and Shangdu. There are four traffic routes between Dadu and Shangdu during Yuan period. Of them, Yi Gok used the postal road linking Juyongguan, Bada Ling, Chadaokou, Tongmuzhan, Qiangganling, Lilaogu, Diaokezhan, Longmenjia and Lilingtai. The experience of Yi Gok passing through this road and staying in Shangdu was expressed in 12 poems in 9 titles. The poems described the wonder and nostalgia of a tourist walking on a road in the northern region, the magnificent meadow extended in all directions, dignity of world empire and banquet culture of a royal family. Yi Gok's journey to Shangdu is the individual experience as well as the trace in the history. Since Yi Gok created poems as travelling, the road became the cradle and background of Korean literature. This study reorganized the route and geography between Beijing at present to Zhenlanqi, Xilinguolemeng, Inner Mongolia as the domain of literature as well as the site of Korean history and investigated the experience and sentiments on that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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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발전사관을 넘어 국문학 연구를 생각한다

저자 : 강명관 ( Myeong Kwan Ka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9-3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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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이 근대로 발전한다는 관점은 20세기 이후 내셔널리즘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고, 사실이 아니다. 국문학이 내재적 근대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우회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를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도달한 자본주의적 근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실상 지옥의 불구덩이가 되었다. 따라서 국문학의 내재적 발전론 안에 내장되어 있는 발전사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곧 근대를 준거로 하여 전근대를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전근대의 문학은 전근대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전근대는 근대로 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폐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를 넘어가기 위한 사유의 저장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근대 문학은 이런 모색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근대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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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한국 고소설 연구와 "내발론", 그 갱신과 탈주

저자 : 김현양 ( Hyun Yang Kim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3-6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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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소설 연구방법론으로서의 내재적 발전론은 단일한가?', '내재적 방법론의 유효성과 그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논점을 다루고 있다. 이 논점을 통해 70년대 이후한국 고소설 연구사를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 이 글은, 고소설 연구방법론으로서의 내재적 발전론은 소설을 '대결 서사', '구체성 서사', '욕망의 서사'로 파악하면서 갱신해 왔다는 것을 서술했다. 그러므로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고소설 연구를 단일한 하나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갱신'의 역사를 한국 고소설 연구가 근대주의(유럽중심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로부터 탈주하는 과정이라 서술했다. 후자에 대해 이 글은,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고소설 연구는 '식민의 문제(민족문제)'와 '소유의 문제(계급문제)'를 중심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기에 유효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성주의'와 '중세주의(중세성론)' 등과 같은 탈근대주의적 문제의식을 주변적으로 사유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내재적 발전론'과 '탈근대주의'는 접점이 있으며 이 둘이 대화적 관계를 맺는 것이 한국 고소설 연구에서 긴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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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구술성"의 문화사적 기여와 인문학적 가치

저자 : 최원오 ( Won Oh Choi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65-10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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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구술(또는 구송)을 매체의 관점에서 보고, 그것의 문화사적 기여와 인문학적 가치를 고찰한 것이다. 일찍이 플라톤이 예견한 것처럼, 구송에서 기록으로의 매체의 변천은 젊은이들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리고 매체는 다르지만, 아날로그매체에서 디지털매체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류가 최초에 겪은 매체 변천을 탐색해보는 것은 매체변천으로 인한 세대 갈등과 교육 방법을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걸로 본다. 더욱이 인류 최초의 매체로서의 구술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써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술성의 문화사적 가치와 인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구술성과 기술성의 대비'보다는 구술성의 층위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일상적 구술성, 교술적 구술성, 언어예술적(미적) 구술성의 층위로 나누고, 구술문화적 사유와 표현이 기술매체(문자매체), 아날로그매체, 디지털매체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를 현실계와 상상계의 관계, 재현과 전달의 방법, 청각과 시각 등 감각기관의 결합,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심 등 네 가지 요소로 나눠 살폈다. 그 결과 구술문화적 사유와 표현이 매체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네 가지 요소가 구술매체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구술문화의 정수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구비문학을 구술성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구술성의 인문학적 가치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는 길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구술매체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는 매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규정하는 최초의 것들이고, 현재에도 구술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써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구비문학을 구술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곧 그에 내재된 구술성의 인문학적 가치를 통시적으로 탐구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구비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지혜'를 '지식'과 대비하는 것, 구술성의 층위에 따른 구술성의 실현 정도를 분석하는 것 등은 그러한 방법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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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한국고전시가 분야에서의 주요 연구 성과와 기대지평

저자 : 육민수 ( Min Su Yoo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03-13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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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고전시가 분야의 주요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미래의 기대지평을 전망해보고자 한 것이다. 한국고전시가의 주요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한국시가연구』의 기획 특집에 주목하고 그 대표적인 논의들을 일별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여 이 방법을 택하였다. 『한국시가연구』는 1997년부터 2014년까지 36집의 학회지를 발간하여 한국고전시가 분야의 명실 상부한 대표적 학회지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시가연구』의 성과를, 장르론, 예술사와의 관련 양상, 주제사적 탐구,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 동아시아적 지평, 근대성, 세계문학의 패러다임과 한국 고전시가의 보편적 가치 등 일곱 항목으로 나누어 주목할 만한 성과를 정리하였다. 한편 한국고전시가의 미래에 대한 기대지평으로는 노래를 통한 세계와의 통일성 회복,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대한 추구라는 두 가지 점을 제안하였다. 한국고전시가에 대한 연구가,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고전으로서의 위상을 찾기 위해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를 거칠게나마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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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고전문학의 지속가능성과 고전문학 교육

저자 : 고정희 ( Jeong Hee K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31-16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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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고전문학의 미래 환경을 생각할 때 고전문학의 어떤 가능성들을 찾아서 교육하는 것이 좋은지, 이를 위해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어떤 연구와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고전문학의 미래 환경을 '역량중심 교육과정', '다문화사회', '통일', '한국어교육', '세계문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폈다. 그 결과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다문화사회는 고전문학의 정전적 지위를 흔들고 있지만, 통일과 세계문학이라는 환경은 민족 정전으로서의 고전문학의 역할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어교육의 확대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고전문학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고전문학에 대한 교육적 요구는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요구들 속에서 고전문학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고전문학을 통해 '다중 정체성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가는 것, 고전문학의 '동시대성'을 강조하는 것, '비형식교육의 지원'을 받는 것 등을 제안해 보았다. 그러나 민족 정전으로서 그 자체로 양면성을 지닌 고전문학이, 복잡한 미래사회에서 어떤 가능성들을 지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미래사회의 핵심역량으로 꼽히는 '다문화 문식성'과 고전문학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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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획논문1: 한국고전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 경계의 확장과 한국한문학 연구의 미래

저자 : 김동준 ( Dong Jun Kim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63-19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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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장차 한국한문학 연구가 마주하게 될 상황, 그중에서도 특히 경계의 확장 추세에 주목하여, 근래 주목되는 연구 경향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조망해본 것이다. 경계의 확장이란, 국내·외 환경이 급속도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다문화·다국화하며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 연구 주체인 연구자들 간의 국제적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 연구 결과를 수용하는 지식시장 자체가 일국적 경계 넘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 동아시아의 동반 성장에 힘입어 근대·서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보편 지향의 연구가 동아시아에서도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한문학 연구의 시각과 방법, 자료와 해석에 능동적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였다. 논고의 제2장에서는 학술지 『韓國漢文學硏究』를 주근거로 삼아 1970년대 이후의 연구사를 개괄하였다. 그 결과, 한국 한문학계가 초창기부터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상대하며 학문적 성과를 축적해왔다는 점,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민족-근대-내재적 발전론을 비판적으로 보완하면서 동아시아 차원의 다국적 범위를 연구 영역으로 삼고자 했음을 살폈다. 이에 따라 제3장에서는 시야의 일국성과 민족문학의 고유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행되어온 대표적 연구 경향, 한·중·일의 교류에 대한 연구의 성행 양상, 근래 부각되고 있는 동아시아론과 문명론/문화론의 주장 근거와 윤곽을 주목해보았다. 마지막 제4장은 경계 확장 시대에 임하여 한국 한문학계가 어떻게 생산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전망해보았다. 첫 번째로 문명론/문화론의 추세와 관련하여 세계적 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연구 주제들을 제기해보았으며, 두 번째로는 동아시아론의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 '동아시아 문예공화국'의 고려 사항과 가능성을 진단해보았다. 본고는 구체적 예증과 가시적 과제를 충분하게 제안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학문이 세계화하고 다국화하는 미래에 상황에서 한국한문학 연구가 어떤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참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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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획논문2: 조선 중,후기 한문학(漢文學)과 명(明),청대(淸代)문학의 대가들 : 왕세정(王世貞)과 조선 중,후기 한문 산문

저자 : 하지영 ( Ji Young H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97-23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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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후기 문단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 단서로 왕세정을 주목하였다. 그의 문학과 문학론에 대한 반응은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감지되며 호불호가 크게 엇갈렸기에, 왕세정은 조선 문단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의 문학 중에서 특히 산문은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난해하고도 번잡한 문체, 이단적인 사유로 그의 산문은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러나 높은 형상성과 서사성, 폭넓은 식견과 대담한 상상력은 국내에 높은 호응을 이끌어내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왕세정의 산문은 국내 문단에 실질적으로 많은 흔적을 남겼다. 우선 직접적으로 자구, 문장을 차용하거나 패러디하는 양상, 심지어 표절하는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왕세정 산문이 일종의 새로운 전범으로 수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새로운 글쓰기 장르를 유발시키고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의론에서 서사와 형상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나아가 사유의 이탈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동기로 작용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문예의 독자적 가치를 중시하고 탈성리학적인 지향을 보이던 문인들에게 왕세정의 문장은 주요한 참조가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 문단은 정통적으로 송대 문풍의 영향이 컸기에, 조선 문인들은 왕세정의 문장을 수용하면서도 논리적이고도 유기적 구조를 견지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작가들은 왕세정의 글을 의식하면서도 독자적인 미감을 가진 작품을 산출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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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획논문2: 조선 중,후기 한문학(漢文學)과 명(明),청대(淸代)문학의 대가들 : 조선후기 지식인의 진계유(陳繼儒) 수용과 그 의미

저자 : 정우봉 ( Woo Bong Chu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33-26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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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국 晩明시대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陳繼儒의 저술이 조선후기에 유입, 변용된 양상과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陳繼儒는 明末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적 출판이 성행하는 가운데 晩明시대 지식인들이 추구했던 文人的雅趣와 교양을 확산시키고, 더 나아가 지식의 대중화, 통속화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다루어지 않았던 陳繼儒의 저술, 특히 『福壽全書』, 『萬寶全書』, 『春秋列國志』를 중심으로 조선후기에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들 자료는 조선후기에 비교적 널리 유통되어 읽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福壽全書』는 국내외에 여러 기관에 다수의 이본들이 존재하며, 더욱이 각 이본들간에 책의 구성과 내용상의 차이가 크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 이 책이 조선후기에 간행되어 보급된 예는 찾기 어려운 가운데, 각자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을 필사하여 유통하였다는 점에서 明淸서적을 조선인들이 읽고 수용하는 한 방식을 짐작케 해 준다. 『萬寶全書』는 明淸시대 때에 민간에까지 보급되었던 생활백과사전으로서 널리 보았던 생활백과사전이다. 그리고 『春秋列國志』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작품으로서, 진계유의 評批가 수록되어 있다. 더구나 이들 문헌들은 조선식으로 재창작되기도 하고 우리말로 언해되어 유통되었다. 明淸시대 서적의 적극적 변용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續福壽全書』는 『福壽全書』의 편제를 가져오면서도 실제 내용을 우리나라 인물의 일화와 언행으로 재가공하였다. 『만보전서』와 『춘추열국지』의 경우에는 우리말로 번역하였는데, 단순 축자 번역에 그치지 않고 독자의 요구와 취향을 고려하여 재편집과 개작을 하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춘추열국지』 개작 번역본은 17책, 44책 등 여러 종류에 이른다. 陳繼儒저술의 수용이 지니는 의미를 요약해서 말한다면, 문인적 아취와 교양의 추구 및 확산이라는 국면 이외에 '지식의 대중화 및 통속화'라는 국면이었다. 진계유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복수전서』를 善書제작 및 보급으로 연계시킴으로써 윤리 도덕의 세속화, 통속화의 길을 모색하였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陳繼儒가 편찬에 관여한 『萬寶全書』, 진계유가 評批를 붙인 『列國志』는 한글로 번역되어 유통됨으로써 민간 대중에까지 폭넓게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만보전서』와 『열국지』가 여러 판본이 존재하지만 조선후기에 주로 유통되었던 판본이 陳繼儒本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저본으로 하여 한글 번역본이 창출되었다는 점에서 陳繼儒의 저술이 조선후기 민간대중에게로 독자 범위를 확장하여 그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지식과 교양의 대중화, 통속화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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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획논문2: 조선 중,후기 한문학(漢文學)과 명(明),청대(淸代)문학의 대가들 : 유만주(兪晩柱)의 「전목재연보(錢牧齋年譜)」연구

저자 : 김하라 ( Ha Ra Kim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65-308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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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謙益(1582~1664)은 명말청초의 전환기를 살면서 그가 보여준 일견 이중적이고 모호한 처신 탓에 문인으로서 자신이 지닌 중요도에 비해 폄훼되고 심지어 배척당하기까지 했던 논쟁적 인물이다. 전겸익에 대한 당대의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유만주는 그를 중요하고도 문제적인 작가로 인식하였고,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의 생애를 균형 있게 재구하고자 했다. 유만주는 전겸익의 연보인 「錢牧齋年譜」를 저술하면서 빼어난 '문장가'이자 역량 있는 '역사가'로서 전겸익의 면모에 특히 주목했다. '문장가'이자 '역사가'로서 전겸익의 재능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어떻게 지속, 변화, 발전했는가라는 질문은 「전목재연보」를 지탱하는 두 개의 큰 축이 된다. 한편 그는 대상인물이 삶의 공적 부면에서 이룬성취뿐만 아니라 삶의 사적 국면을 소상히 밝혀 보여주는 일에도 공력을 기울였는데 이처럼 공사 영역을 두루 감안하여 대상인물의 생애를 재구하려는 유만주의 노력에서 傳記作家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다방면에서 설득력과 호소력을 지닌 문인이라 할지라도 전겸익이 조선과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중국의 臣民, 즉 자국중심의 협애한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외자에 불과했다는 점도 유만주는 이 연보에서 냉정하게 지적한다. 대상인물에 대한 치우친 비판이나 무비판적 상찬을 경계했던 유만주의 객관적이고 주밀한 태도를 여기서 짐작하게 된다. 유만주의 「전목재연보」는, 건륭 연간의 동아시아에서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뿐본격적 논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했던 전겸익의 문집을 면밀히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집필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겸익 연보의 제작은 조선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며, 중국에서도 전겸익의 정식 연보는 유만주가 연보를 만든 지 150년 뒤에야 비로소 간행되었다. 「전목재연보」가 동아시아 문학사의 유의미한 저작이며 전겸익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는 까닭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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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획논문2: 조선 중,후기 한문학(漢文學)과 명(明),청대(淸代)문학의 대가들 : 조선 후기 전겸익(錢謙益)의 수용 과정과 인식 양상

저자 : 류화정 ( Hwa Jeong Ryu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09-34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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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겸익의 수용에 관한 연구는 이미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의 저작이 들어온 정확한 시기와 경로, 그의 변절 사실을 최초로 인지하는 주체와 시점 등과 같은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직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이 부분을 엄밀하게 해명해 보고자 한다. 전겸익은 『列朝詩集』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열조시집』은 중국에서 1652년에 간행되었는데, 조선에서는 1680년 어림에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있었다. 李宜顯의 「陶峽叢說」에는 1683년에 김석주가 『列朝詩集小傳』을 구해왔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전겸익을 최초로 수용했던 주체는 중국으로부터 책을 구매해 올 수 있었던 서울의 경화세족들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경화세족들은 당파별·가문별로 분립하면서 서적과 정보를 폐쇄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겸익의 세 차례 변절 사실도 광범위하게 알려지기까지 100여 년이 넘게 걸렸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에서 명·청대 문학을 수용하여 계승 및 발전시켜나가는데 방해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전겸익은 지난 1세기 동안 조선을 지배해 온 의고파를 비판할 논리를 제공했고, 명대문학의 구도를 선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조선에서 전겸익이 보다 열렬히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명말의 유민이자 양명학에 반발한 정통 성리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겸익의 변절 사실은 조선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조선에서는 전겸익의 변절 사실을 내세워 그의 문학과 비평까지 폐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전겸익의 비평을 활용하고, 문학적인 면에서는 암묵적으로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는 변절 사실이 전겸익 문학과 비평의 효용성을 완전히 떨어뜨릴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에서는 변절이라는 문학 외적인 것으로 전겸익 문학과 비평을 서서히 배제해 나갔다. 그 속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개인의 처신과 재능(문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이는 오늘날 다른 연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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