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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조경학회> 한국전통조경학회지> 조선왕릉의 능제복원 연구 -김포 장릉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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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능제복원 연구 -김포 장릉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storation of the Royal Tombs in the Joseon Dynasty -Focused on Gimpo Jangreung-

이창환 ( Chang Hwan Lee ) , 정종수 ( Jong Soo Jung ) , 이원호 ( Won Ho Lee ) , 최종희 ( Jong Hee Choi )
  • : 한국전통조경학회
  •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8권2호
  • : 연속간행물
  • : 2010년 06월
  • : 86-97(12pages)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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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KEPA)

I410-ECN-0102-2012-480-001785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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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학분야  > 조경
  • : KCI등재
  • :
  • : 계간
  • : 1738-236x
  • : 2384-1478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2-2022
  • :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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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권1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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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시대 무장읍치(茂長邑治)의 원형경관 고찰

저자 : 심순희 ( Sim Soon-hee ) , 송석호 ( Song Suk-ho ) , 김충식 ( Kim Choong-sik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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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통도시인 조선시대 무장읍치(茂長邑治)의 입지특성을 고찰하여 원형경관을 규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요약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무장읍치는 태종17년(1417)에 축조된 무장읍성(茂長邑城)을 중심으로 동쪽에 향교를 세워 문묘를 조성하고, 서쪽에 사직단을 두었으며, 읍성 내에 성황사를 세웠고, 북쪽의 진산(鎭山)인 한제산에 성황단과 여단을 배치한 유교적 공간체계를 보였다. 진산에 위치한 성황단의 경우 읍성 내의 성황사와 공존체제를 유지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읍성의 남문 앞으로 V자형 풍수계(風水溪)가 흘러 안산(案山)인 남산 앞에서 수구(水口)를 이루는데, 고을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해 남지(南池)인 홍문제(紅門堤)를 조성하고 관풍정(觀豊亭)을 조영하였다. 19세기에 홍문제는 무흥제(茂興堤)로, 관풍정은 무흥당(茂興堂)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았다. 남지에는 원도를 비롯하여 읍수(邑藪)가 식재되고 송덕비와 당산목, 돌당산이 수구막이 역할을 하며 읍치 입구를 비보한 특징을 보였다. 그러나 1955년경에 남지가 매몰되고 이후 시장이 들어서면서 원형의 모습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府郡面 統廢合)으로 멸실 위기에 처한 고을의 칠거리 명칭과 위치를 구명하였다. 칠거리당산은 음양론에 따라 주로 할아버지당산 입석과 할머니당산 신목이 구성의 주체가 되었다. 칠거리당산은 마을을 수호하려는 공동체적 신앙장소로서 마을 경계에서 출입을 관장하는 일곱 관문 역할과 읍치 내맥을 비보하는 입지특성을 보였다.


This study focused on examining the location characteristics of Mujang-Eupchi(茂長邑治), a traditional city of Joseon Dynasty, and shedding light on its prototype landscape. The findings were summarized as follows: Mujang-Eupchi showed a Confucian space system with Munmyo(文廟) within Hyanggyo(鄕校) in the east, Sajikdan(社稷壇) in the west, Seonghwangsa(城隍祠) in the fortress and Yeodan(厲壇) and Seonghwangdan(城隍壇) in Jinsan(鎭山) in the north around the Mujang-Eupseong(茂長邑城), an old fortress, built in the 17th year of King Taejong(1417). It seemed that Seonghwangdan located in Jinsan maintained a coexistence system with Seonghwangsa(城隍祠) within the Eupseong. A Pungsu(風水) stream in a V-shape ran before the southern gate of Eupseong, forming a Sugu(水口) in front of Namsan(南山) that was an Ansan(案山). They dug a southern pond called Hongmunje(紅門堤) to protect the vitality of the village and built Gwanpungjeong(觀豊亭). In the 19th century, Hongmunje and Gwanpungjeong were renamed into Muheungje(茂興堤) and Muheungdang(茂興堂), respectively. Eupsu(邑藪) were planted in front of the southern pond including Wondo(圓島), and Songdeokbi(頌德碑), Dangsanmok(堂山木), and Dangsanseok(堂山石) served as a Sugumagi(水口막이) and protected the entrance of Eupchi. After the Liberation, the southern pond was buried in 1955, and a market was formed at the site, which resulted in the disappearance of its prototype. The study also investigated the name and location of Chilgeori(七거리) in the village as it was lost following the unification of Bu(府), Gun(郡), and Myeon(面) titles in 191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hilgeori Dangsan was based on Yin and Yang theory and became the subject of the organization mainly composed of Grandfather Dangsan menhir and Grandmother Dangsan tree. Chilgeori Dangsan was a religious place of the community to guard the village, serving as seven gateways to control access at the village boundary and it had a locational feature of protecting the inner mountain ranges of Eup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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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창덕궁 승화루(承華樓) 일곽의 화계(花階) 조성과 변화 양상

저자 : 오준영 ( Oh Jun-young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25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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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창덕궁 승화루(承華樓) 남측 공간에 위치한 화계(花階)의 조성 경위를 탐색하고, 화계 조성 전후의 실상을 파악하여 향후 내전(內殿) 지역의 복원정비에 유용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00년대 초반 승화루 남측 공간은 낙선재(樂善齋) 일곽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地帶)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북고남저 지형을 따라 행각으로 위요된 마당, 낙선재 서행각(西行閣)과 연결되는 장방형 공지(空地)가 조성되어 있었다. 특히 장방형 공지는 일정 간격으로 장대석 석렬을 배치한 계단형 경사지였다.
둘째, 승화루 화계는 1920년대 후반에 시행된 낙선재 서행각의 신관(新館) 개축공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신관 건립 과정에서 건축 및 부대공간 조성에 필요한 가용지(可用地)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승화루 남측 공간의 원지형을 절토한 이후 절개지를 따라 지형처리 목적의 화계가 조성되었다.
셋째, 화계 조성 이후 승화루 남측 공간의 지형지물에 많은 변형이 발생하였다. 승화루의 앞마당은 낙선재 일곽보다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화계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절토되어 사라졌다. 계단형 경사지 역시 신관 건축과 화계 조성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화계의 선형을 따라 승화루 기단과 담장이 새롭게 조성되었으며, 독특한 양식의 협문과 부속 계단도 신설 담장으로 이설되었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provide useful basic data for restoration and maintenance of the Changdeokgung Palace(昌德宮)'s inner palace area in the future by exploring the background of terraced flower beds installed in the front space of Seunghwaru(承華樓) and grasping the reality before and after terraced flower beds were installed. The main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n the early 1900s, the front space of Seunghwaru formed a relatively higher terrain than the Nakseonjae(樂善齋) area. In addition, along the topography of high north and low south, a yard surrounded by Haenggak(行閣) and a rectangular open space connected to the West Haenggak of Nakseonjae were created. In particular, the rectangular open space was a staircase-type slope in which rectangular stone columns were arranged at regular intervals.
Second, the terraced flower beds of Seunghwaru originated from the renovation of the new building of Nakseonjae West Hanggak, which was implemented in the late 1920s. This is because in order to secure enough available land for construction and auxiliary space during the renovation of the new building, the terraced flower beds for topographic treatment was created along the cutting area after cutting off the original topography of the front space of Seunghwaru.
Third,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terraced flower beds, many deformation occurred in the topographic features of the front space of Seunghwaru. The front yard of Seunghwaru was relatively higher than the Nakseonjae area, but most of them were cut off and disappeared as the terraced flower beds were created. The staircase-type also disappeared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new building and terraced flower beds. The stylobate and front fence of Seunghwaru were newly built along the alignment of terraced flower beds and the unique style of narrow gate and auxiliary stairs were also relocated to the new f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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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희궁 별원(別苑) 함춘원의 실지(實地) 경역 고찰

저자 : 정우진 ( Jung Woo-jin ) , 홍현도 ( Hong Hyeon-do ) , 소현수 ( So Hyun-su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42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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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러시아공사관 부지 이전에 존재하던 경희궁 별원 함춘원의 경역과 본래의 외곽 경계를 고찰한 것이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공사관 부지확보 및 신관 건립을 위해 작성된 3종의 도면을 살펴보면, 부지 내부에 함춘원의 원지형으로 보이는 2개의 낮은 봉우리가 남북 방향으로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공사관의 초기 계획안에는 출입문이 북서쪽 새문안로와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러시아 임시공사 베베르가 공사관 부지를 매입할 당시의 보고서에는 이미 좁은 출입구와 흙길이 있어 새문안로와 통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공사관의 출입문으로 계획한 부지 북서쪽에 함춘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관리 동선과 원문(苑門)이 위치했음을 알게 해준다.
둘째, 공사관의 건립 당시 높은 언덕 상부를 절토하여 대지가 조성되었고 그 결과 2단의 계단식 지형이 만들어졌다. 본관 및 서기관동 등이 세워진 지반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깎아 평평하게 다짐하여 만들어졌고 이때 다량의 토량이 정지작업에 사용되었다. 본관 북쪽 영역의 경우도, 산지를 깎아 평평하게 지형을 고른 흔적이 역력하고, 조망이 수월한 물리적 환경을 활용하여 산책로와 정자가 있는 전망형 정원이 조성되었다. 이는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형에 민간의 조망을 막기 위해 별원을 조성했던 지형 조건과 상통한 이용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국, 영국, 러시아공사관 주변의 공간 변화를 보여주는 1880~1890년대의 사진에 함춘원 담장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사진분석 결과 함춘원은 러시아공사관 부지 북측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사관의 북쪽, 서쪽, 동쪽 담장이 함춘원의 담장과 근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공사관 남쪽 영역은 본래 민간의 가옥이 있던 곳으로서, 여러 자료에서 수십 채의 민가와 농경지를 매입한 정황을 살필 수 있었다.
넷째, 광해군 연간 경덕궁의 별원으로 조성된 함춘원은 경복궁 중건 때 경희궁의 전각을 뜯어서 공사 부재로 사용하면서 별원으로서의 장소성을 상실했으며, 1885년경 러시아에 매각됨으로써 멸실되었다. 함춘원이 있던 경역은 신관의 건립 뒤로 주요 건물과 정원이 있는 러시아공사관의 핵심적 공간으로 변용되었다. 따라서 러시아공사관 북측 영역에 한정된 함춘원은 1897년 이후 조영된 경운궁 및 선원전과 시간적, 공간적 맥락이 닿아 있지 않으며, 선원전의 배후림 또는 배경림으로 보는 시각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and understand the area and the original outer boundaries of Hamchunwon(含春苑), which was the outer royal garden of Gyeonghuigung Palace, which existed before the site of the Russian legation.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examining the 3 types of drawings prepared for securing the Russian legation's site and constructing a new building, it was confirmed that two low peaks, which appear to be the original terrain of Hamchunwon, existed in the north and south directions inside the site. According to the initial plan of the of the legation's site, it appears that the entrance of the legation building is connected to the Saemunan-ro in the northwest. However, according to the report made at the time when the Russian temporary minister Veber purchased the legation's site, it was recorded that the site already had a narrow entrance and a dirt road in place, and hence, it was connected to Saemunan-ro. This fact makes it possible to learn that the line of movement for officials and the original gate were located to the northwest of the site planned as the entrance of the legation building towards Hamchunwon.
Second, the site was created by cutting the top of the high hill at the time of the construction of the legation building, and as a result, a two tiered staircase typed terrace was built. The ground on which the main building and the secretary's building, etc., were erected was made by cutting the highest peak and solidifying it flat, and a large quantity of soil was used for grading. In the case of the northern area of the main building, the traces of leveling the terrain by cutting the mountains are apparent, and an observation typed garden with a walking path and pavilion was formed by utilizing the physical environment equipped with an easy view. This may be considered as a use which is consistent with the topographical conditions of creating an outer royal garden to block the civilian views on a high terrain overlooking the palace.
Third, Hamchunwon's fences were partially exposed in the photos from the 1880s through the 1890s, which demonstrate the spatial changes made around the US, UK, and the Russian legations. As a result of the photo analysis performed, Hamchunwon occupies the northern area of the Russian legation's site, and it is estimated that the north, west, and east walls of the legation resembled those of Hamchunwon. The area to the south of the Russian legation was originally a place made available for civilian houses, and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circumstances of purchasing dozens of civilian houses and farmlands according to various materials.
Fourth, Hamchunwon, which was formed as the outer royal garden of Gyeongdeokgung Palace of Lord Gwanghaegun, lost its sense of place as an outer royal garden when the entire building of Gyeonghuigung Palace was torn down and used as a construction members during the reconstruction of Gyeongbokgung Palace, and faded away as the site was sold to Russia around 1885. The area where Hamchunwon used to be located transformed into a core space of the Russian legation where the main building and garden were located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new building. Hence, Hamchunwon, which was limited to the northern area of the Russian legation, does not carry the temporal and spatial context with Gyeongungung Palace and Seonwonjeon which were constructed after 1897, and it is determined that the view of Seonwonjeon as Baehoorim or Baegyeongrim is not va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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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전통사찰 전각과 봉안(奉安) 불·보살(佛·菩薩)에 따른 주련(柱聯) 양상 및 공간 인식 고찰 - 조계종 25교구 본산을 중심으로 -

저자 : 신현실 ( Shin Hyun-sil ) , 박소현 ( Park So-hyun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3-54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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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계종 25교구 본산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 사찰의 주요 법당 내 주련의 내용과 봉안된 불·보살과의 공간의 인식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주련의 출전에 해당하는 고문헌과 공간배치도를 비교·분석하였으며, 도출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찰 봉안 제불(諸佛)의 분류 특징은 『대승기신론』의 기록을 바탕으로 체(體), 상(相), 용(用)에 따라 분류하여 설명이 가능하였다. 구체적으로 석가모니불은 '상(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은 '용(用)', 비로자나불은 '체(體)'에 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주요 법당의 주련은 주존불과 협시불을 중심으로 각 봉안 불·보살의 서원(誓願)과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주련의 내용은 봉안한 주존불을 중심으로 각 주불이 항상 자재(自在)하고 존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의미하는 것으로, 찬불(讚佛)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넷째, 사찰의 각 주요 법당의 주련은 참방하는 구도자(求道者)들에게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내용과 중생들을 제도하는 주존불의 입장에서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표현하여, 사찰의 각 공간이 '피고득락(避苦得樂)'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Focusing on head temples in 25 parishes of Jogye Order, this study compared and analyzed the ancient literatures involved in the writing source of pillar tablets and the space layout drawings in order to examine awareness patterns of space in terms of contents of pillar tablets and Buddha and Bodhisattva enshrined in major temple sanctums in Korea. The research findings are briefed as follow:
First, the different Buddhas enshrined in sanctums can be categorized and explained in accordance with their body(體), form(相) and use(用) based on Awakening of Mahayana Faith. In particular, Sakyamuni Buddha is for form(相), Amitabha Buddha and Avalokiteśvara for use(用), and Vairocana Buddha for body(體).
Second, the pillar tablets of main sanctums signify oath and thoughts of the enshrined Buddhas and Bodhisattvas focusing on main Buddhas and serving Buddhas.
Third, the content of pillar tablets is to symbolize and signify Buddha land where main Buddhas are always existing as they are focusing on the enshrined main Buddhas. That is, such content is to praise for Buddha.
Fourth, every sanctum pillar tablets of temples express the content of attaining spiritual enlightenment for the self-cultivating truth seekers and saving all sentient beings for main Buddhas who are saving human. That is, every space of temples are perceived as “escaping torment and achieving pleasure(避苦得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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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시대 양양(襄陽) 하조대(河趙臺)의 유래와 경관에 따른 명승의 향유 방식

저자 : 김세호 ( Kim Se-ho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64 (1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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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양양 하조대의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그 유래와 경관의 내용을 분석하여 조선시대 문인들이 향유한 하조대의 문화사를 조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에 따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조대는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유람한 고사가 전하는 공간이다. 다만 이러한 전설이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았기에 역사에서는 다양한 이견이 공존했다. 조위한(趙緯韓)은 양양 부로들의 의견을 인용해 조준이 아닌 조인벽(趙仁壁)일 수 있다고 하였고, 조덕린(趙德鄰)은 '멀리 보는 대'라는 의미의 '遐眺臺'로 기록했다. 문헌적 근거를 밝혀 하조대의 유래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둘째, 하조대는 조선 중기 관동 최고의 명승으로 회자되었다. 당대 문인들은 하조대를 관동 최고의 명승 가운데 하나로 거론했고 이는 곧 양양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하조대의 기록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는 관동팔경이 정립되고 낙산사(洛山寺)가 명성을 얻으면서 하조대의 위상이 다소 줄어든 데 기인한 결과로 판단된다.
셋째, 조선의 문인들은 하조대의 다양한 경관을 통해 명승을 향유했다. 삼면이 탁 트인 지세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었고 호연지기를 기르거나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편, 근경에 해당하는 기암절벽은 유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하조대 일대에 핀해당화는 기이한 매력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는 하조대가 지닌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이와 같은 경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넷째, 하조대를 읊은 한시는 하조대가 지닌 그 공간적 의미를 보여준다. 하조대를 주제로 한 한시의 면면을 살펴보면, 경관을 바탕으로 회포를 풀어낸 경우, 자연경관에 자신의 존재를 견주거나 의식을 투영한 면모, 조선 전기 명신 하륜과 조준을 회고한 사례 등이 확인된다. 경관을 통해 자신의 소회를 표출하고 역사를 회고하는 양상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shed light on the cultural history of Hajodae(河趙臺) enjoyed by writers of the Joseon Dynasty by analyzing the origin and the contents of the landscape based on the literature materials of Hajodae in Yangyang(襄陽).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Hajodae is a space that is said to have been visited by Ha Ryun(河崙) and Jo Jun(趙浚). However, since this story has not been confirmed in the literature, various opinions coexisted in history. Jo Wi-Han(趙緯韓) quoted the opinions of aged people who lived in Yangyang, saying that it could be Jo In-Byeok(趙仁壁), not Jo Jun(趙浚), and Jo Deok-Rin(趙德鄰) recorded it as "遐眺臺", which means "a stand for a distance view." There is a need to clearly present the origin of Hajodae by revealing the literary authority.
Second, Hajodae was talked about as the best scenic site in Gwandong(關東)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The writers of the time mentioned Hajodae as one of the best scenic sites in Gwandong, which soon became a symbol of Yangyang. These records of Hajodae show a relatively decreasing trend entering the late Joseon Dynasty. It is believed to be the result of the slight degrading in the status of Hajodae as the Eight Views of Gwandong were established and Naksansa Temple(洛山寺) gained fame.
Third, the writers of Joseon enjoyed the scenic sites through various landscapes of Hajodae. The open terrain on three sides allowed a sea view and provided an opportunity to develop a great spirit or to reflect on oneself. On the other hand, the strange rock formations and cliffs, which correspond to a close-up view, drew the attention of tourists, and the Rosa rugosa Thunb. blooming in the Hajodae area was enough to show a bizarre charm. This shows the various charms of Hajodae, suggesting that the management of such landscape is necessary.
Fourth, a Chinese poem about Hajodae shows the spatial meaning of Hajodae. Looking into all sides of the Chinese poem about Hajodae, a case of unburdening one's mind on the landscape, and the aspect a person compared oneself to the natural landscape or projected one's consciousness onto it, and a case of recalling Ha Ryun and Jo Jun, illustrious retainer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re confirmed. It can be seen that it results in the aspect of expressing one's impressions and looking back on history through the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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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촌락 역사문화공간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 설정 방안 연구 - 중국 굉촌을 중심으로 -

저자 : 신현실 ( Shin Hyun-sil ) , 대개영 ( Dai Gai-rong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73 (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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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굉촌 고촌락의 특성과 변화과정을 통해 변화된 굉촌 역사문화공간의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의 재설정 방안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굉촌과 관련한 고문헌, 고화, 각종 보호 관련 정책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굉촌 내 보존지역과 활용지역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보존지역의 재설정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굉촌은 유교, 불교, 도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촌락으로 공간구성은 유교의 위계에 따라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의 보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선조들의 유산이 계승 보존될 수 있었다.
둘째, 굉촌 고촌락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문물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온 협의적 보존의 개념이 적용되어 왔으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하여 촌락 공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굉촌 보호계획을 계기로 신축 및 증축 등의 규제를 통하여 고건축물, 수체계, 수림 등이 보존되었으나 지속된 개발 압력과 개혁개방으로 인한 원주민의 생활 변화로 보존지역 내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셋째, 고촌락 원주민들은 유산에 대한 가치 인식은 높았으나 생활의 개선과 수익 창출을 위한 방안 및 이를 위한 촌락의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하였다.
넷째, 노거수로 이루어진 수림은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나 고택 내 정원들은 활용을 위하여 원림공간이 축소되거나 변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도로는 본래 고 촌락 진입구인 서측 지역에서 확장된 남측지역에 다리와 주차장이 신설되어 기존 진출입구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관광객의 진출입이 편리하도록 도로체계를 변형한 것으로 고촌락 공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기존의 보존지역을 월소를 중축으로 하는 보존 루트로 재설정하여 보존을 진행하는 한편 주변 지역을 직접·간접체험공간으로 설정하여 각 공간의 위계에 따른 보존과 활용을 교차하여 보존 가운데 활용이 진행되어야 한다.


This paper analyzed the characteristics of ancient villages in Hongcun and the method of resetting the preservation area for the preservation of the changed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 in Hongcun through the process of change. To this end, the current status of preservation areas and utilization areas in the village was identified through ancient documents, old paintings, policy materials, and interviews related to the village, and through this, the problem of resetting the preservation area was examined. As a result,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First, Hongcun is a village built under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the spatial organization was created according to the hierarchy of Confucianism.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inherit and preserve the heritage of ancestors even though the central government did not preserve it.
Second, the concept of preservation in a limited sense has been applied as Hongcun has been recognized as a cultural heritage that has been passed down since ancient times, but the Great Leap Forward and the Cultural Revolution brought about changes in the village space. Since then, ancient buildings, water systems, and forests have been preserved through regulations on new construction and expansion of a building with the Hongchon preservation plan, but the development within the preservation area is underway due to changes in the lives of original inhabitants, which were followed by continued development pressure and reform and opening.
Third, the original inhabitant of ancient villages had a high perception of the value of the heritage, but they demanded the preparation of measures to improve living conditions and create profits, and the active use of villages for this.
Fourth, the forest consisting of old trees is being restored, but the gardens in the old house are showing a phenomenon that the garden space is reduced or transformed for use. The bridges and parking lots were newly built in the southern area, which was extended from the western area, the original entrance to the ancient village, resulting in changes in the existing entrance. This was found to be the primary cause of the spatial change of the ancient village, as the road system was modified to make it convenient for tourists to enter and exit.
Fifth, the existing preservation area should be reset and preserved by resetting the preservation route centered on Wolso(half Moon Pool), while the surrounding area should be set as a direct and indirect experience space, and according to the hierarchy of each space, the utilization should proceed while the preservation is carried out by crossing the preservation and the ut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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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서울 백제역사유적지 관리를 위한 현존식생과 과거 대상식생 비교 연구 - 풍납토성(風納土城)과 몽촌토성(夢村土城)을 중심으로 -

저자 : 차두원 ( Cha Doo-won ) , 오충현 ( Oh Choong-hyeon )

발행기관 : 한국전통조경학회 간행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40권 1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80 (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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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의 식생은 일부 과거부터 잔존하는 식생형태이지만 근·현대 이르러 산업화에 따른 도시개발로 인해 식생과 지형이 변형되거나 훼손이 많아졌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유적지 내 잔존하는 식생과 경관을 지표로 참고하여 복원 및 관리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서울 백제역사유적지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대상으로 입지 특성, 현존식생, 과거 대상식생의 잔존식생을 비교·분석하여 서울 백제역사유적지 식생 및 경관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입지 특성은 한강 본류 부근에 위치하며 풍납토성은 자연제방과 범람원으로 구성된 평지에, 몽촌토성은 구릉지에 입지하고 있다. 현존식생의 경우, 풍납토성은 조경수목식재지가 주로 나타나는 반면 몽촌토성은 마을과 구릉저지대에 생육하는 과거의 잔존수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과거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주민들에 의해 관리된 대상식생은 입지 특성과 현존식생을 바탕으로 종합한 결과 구릉지에는 갈참나무, 신갈나무 등, 건조지에는 소나무, 하천 및 지류에는 버드나무, 가래나무, 오리나무, 산림 주연부에는 상수리나무, 마을 초입에는 신목으로 소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등이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 이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내에 외래수종의 도입과 시가지 조성 등으로 과거의 대상식생은 모두 사라졌으며 경관 또한 훼손되었다. 다행히도 성벽을 따라 일부 분포하는 잔존수종과 기후, 입지 특성, 시대상을 고려하여 대상식생을 추정하였으나 본 연구는 문헌과 현존식생 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이므로 향후 식물 유체 분석 등 정량적인 실험을 통해 서울 백제역사유적지 내 과거의 대상식생을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The vegetation of historical sites has been a form of vegetation that has remained since some years ago, but in modern times, vegetation and terrain have been deformed or damaged due to urban development, which was followed by an industrialization. As a solution to this,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plan for restoration and management by referring to the vegetation and landscape remaining in the historic site as indicators. This study was conducted to provide basic data for vegetation and landscape management of Baekje Historic Sites in Seoul by comparing and analyzing location characteristics, existing vegetation, and remaining vegetation of past substitutional vegetation for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Baekje Historic Sites in Seoul. As a result of the study,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are located near the main stream of the Han River, Pungnaptoseong is located on a flat land consisting of natural embankments and floodplains, and Mongchontoseong is located on a hilly area. In the case of existing vegetation, it has been confirmed that Pungnaptoseong mainly has ornamental trees planting sites, while Mongchontoseong has a distribution of residual species from the past that grow in villages and hilly lowlands. The Substitutional vegetation of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was synthesized based on the location characteristics and actual vegetation, it is estimated that the hilly areas may have been divided into “Quercus aliena Blume.”, “Quercus mongolica Fisch. ex Ledeb.” and so on,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on dry land,“Salix koreensis Andersson.”, “Juglans mandshurica Maxim.”, “Alnus japonica (Thunb.) Steud.” in rivers and tributaries, “Quercus acutissima Carruth.” in the main part of the forest,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Salix koreensis Andersson.”, “Zelkova serrata (Thunb.) Makino.” as a divine tree in the beginning of the village.
Since the 1960s, all substitutional vegetation in the past has disappeared due to the introduction of foreign species and the creation of urban areas in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and the landscape has also been damaged. Fortunately, the substitutional vegetation was estimated in consideration of the species of residual trees distributed along the walls, climate, location characteristics, and times, but this study was conducted based on literature and existing vegetation survey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supplement the past target vegetation in Baekje historical sites in Seoul through quantitative experiments such as plant relic analysis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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