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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

In The Name of Father? -Travelling Tutor in the Grand Tour-

설혜심 ( Hea Sim Sul )
  • : 영국사학회
  • : 영국 연구 2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08년 12월
  • : 157-185(29pages)
영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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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09-920-01988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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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6-8135
  • : 2713-6329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7-2021
  • :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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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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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전(聖戰)'을 위한 '선전(宣傳)' -17세기 후반 언약도 저항이론과 군중소요-

저자 : 신혜선 ( Shin Hyeseo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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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언약도는 찰스 2세의 주교제주의적 종교정착과 비국교도 박해에 맞서 '성전'을 결심하였다. 국왕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폭군에 대한 무력저항과 자기방어를 정당화하는 '저항이론'이었다. 언약도의 저항이론은 엘리트 계층 내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였고, 주교제주의자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민중(popular)'의 저항이라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후 언약도는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저항이론 팸플릿을 유포하고 조직적으로 군중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야외집회와 머켓크로스는 그들의 저항이론을 민중들의 실제적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 결과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사회에서는 반정부적 군중소요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666년 펜틀랜드 반란과 1679년 보스웰 브릿지 전투는 언약도 저항이론과 사회적 군중소요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그야말로 '이론'의 실제적 '적용'이었다.
결국, 언약도의 저항이론 선전전은 스코틀랜드 사회에 종교적 논쟁의 장을 활성화 시키고 나아가 이를 실제적 민중운동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의 사회적 군중소요의 성행은 언약도가 남긴 저항이론의 유산이었다.


This research aims to examine how the resistance theory of the Scottish Covenanters generated the popular violence in the late 17th century. The Covenanters decided to wage 'holy war' against Charles II's episcopalian church settlement and the persecution of nonconformists in the Restoration Period. The resistance theory which had been developed from the early Covenanters justified the holy war. While the war among the elites and intellectuals remained in the arena of discourse, the popular culture put the theory into practice.
Some theorists among the later Covenanters intentionally disseminated the resistance theory to their audience. The conventicles and Mercat-Cross of various towns were the best places for their propaganda. The anti-government riots of crowd became the order of the day in the late seventeenth-century Scotland. The Pentland Rising(1666) and the Battle of Bothwell Bridge(1679) were the two representative cases that showed the correlation between the Covenanter's resistance theory and crowd violence. It was a combination of 'the Doctrine' and 'the Use'.
In the end, the Covenanter's resistance propaganda revitalised religious debates in Scottish society and succeeded in leading it to popular movements. The prevalence of crowd violence in Scotland in the late 17th century seemed like an incantation of the resistance theory developed by the Covena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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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01년 영국-아일랜드 합방 -자유무역에서 문명화로-

저자 : 김철기 ( Kim Chulki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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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아일랜드 합방법의 형성에서 영국사회의 근면한 습관 때문에 영국이 아일랜드와 자유무역에서 유리하다는 시각이 영국사회의 관습으로 영국이 아일랜드를 문명화한다란 관점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유무역과 문명화의 논리는 영국의 경제적 강점을 습관이나 관습 같은 영국사회의 성격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논리적 기반 위에 있었다. 영국수상 윌리엄 피트는 영국사회의 근면한 습관 때문에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일랜드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합방으로 아일랜드의 이익을 증진한다고 말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피트정부는 영국의 습관과 관습을 아일랜드로 이식하여 아일랜드를 문명화하면 아일랜드의 번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유무역으로 국가통합을 한다면 영국 이익과 아일랜드 이익은 상충될 수밖에 없었지만, 문명화로 국가통합을 한다면 영국 이익과 아일랜드 이익은 상충되지 않고 두 나라가 함께 번영한다고 피트정부는 합방법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This article argues that in the making of the British-Irish Union, the view that the industrious habits of British society enabled Britain to outdo Ireland in their free trade developed into the perspective that British manners and habits were a means of civilizing Ireland. The rationales behind the Union's free trade and civilization had a similar logical basis that both cases understood Britain's economic strength in terms of the nature of British society such as habits and manners. British Prime Minister William Pitt believed that Britain's industrious habits ensured Britain's superiority in free trade with Ireland, but the very reason meant that free trade would not ensure the interest of the Irish economy after the Union. Yet Ireland's prosperity would be promoted, if the British government were to civilize Ireland by transplanting British manners into Irish society. While free trade as a means of national integration posed a difficult question that the interests between the two economic nations tended to be conflicting, civilization as a means of national integration underpinned the claim that the interests of Britain and Ireland could be mutually promo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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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세기 초 잉글랜드 급진주의 사상의 굴절 - 샤프츠베리 백작(The Third Earl of Shaftesbury)의 경우 -

저자 : 윤석민 ( Yun Seok-mi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9-10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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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샤프츠베리 백작의 정치사상은 그의 조부인 제1대 백작의 그것과 함께 잉글랜드 급진주의 사상의 전통 속에서 고찰되어 왔다. 철학과 정치적 의제에 관련된 그의 출판물은 급진주의 사상가로서 그의 면모를 물론 잘 드러내지만, 그가 1688-9년 혁명 이후 형성된 잉글랜드 헌정 질서를 승인했다는 점을 들어 그를 급진주의자로 분류하는 데 반대하는 수정주의적 해석 또한 존재한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두 견해에 반대하며, 샤프츠베리를 급진주의 사상가로 간주할 수 있지만 급진주의라는 개념을 그것이 사용된 구체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좀 더 정교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샤프츠베리가 일생동안 개혁에의 열망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급진주의자라는 명칭을,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하여 그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미진한 부분은 그의 정치 사상에서 급진주의라는 레이블을 제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의 다양한 면모를 자세히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그의 미출간 서신을 꼼꼼히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급진주의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국가연합이 논의되던 시기 동안 이념적으로 굴절되어 현상하였음을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그의 급진주의 사상이 변용되는 순간마다 잉글랜드 국민주의에 대한 그의 고려와 강한 심정적 애착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The political thought of the Third Earl of Shaftesbury has long been associated, along with that of his grandfather, the First Earl, with the tradition of English radicalism. Examination of Shaftesbury's political and philosophical writings demonstrates his credentials as a radical thinker of the time; however, revisionists oppose this view, shedding light on his endorsement of the constitutional status quo as it was established after the Revolution of 1688-9. This essay rejects both interpretations, arguing that it is possible to consider Shaftesbury a radical thinker, but that the notion itself demands rethinking in its own historical milieu. While it is clear that Shaftesbury never abandoned reformist aspirations during his lifetime, it is anachronistic to use the notion as defined in the nineteenth-century European experience in what Eric Hobsbawm calls “the Century of Revolution.” What is long overdue in Shaftesbury studies is not so much to remove such a label as radicalism from his political thought as to throw important new light on its varieties. A closer examination of his unpublished correspondence reveals that his radicalism was frequently being inflected at some crucial historical moments ― particularly those relating to the national political debate on the union of England and Scotland before and after the passing of the Acts of Union in 1707. It also demonstrates that at the heart of such inflections lay his consideration of and adherence to English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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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재흘수선 : Plimsoll mark인가 Hall mark인가?

저자 : 김성준 ( Kim S. Jun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4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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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선박의 '만재흘수선'은 '플림솔 마크'로 불린다. 이는 만재흘수선 입법 운동을 주도했던 플림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플림솔 이전에 제임스 홀이 만재흘수선 제정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플림솔 마크'를 '홀 마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만재흘수선 제정의 사회적 배경으로 해운 현황을 살펴보고, 제임스 홀과 사무엘 플림솔의 행적을 비교해 봄으로써 만재흘수선을 '플림솔 마크'로 부르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를 평가해 보고자 했다. 제임스 홀의 공적 사회 활동은 모두 자신의 사업과 긴밀하게 연계된 일들이었다. 따라서 제임스 홀이 만재흘수선 도입을 주장했던 것은 박애주의적인 소산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선주이자 해상보험회사 경영자로서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에 반해 플림솔은 해운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다. 비록 방법이 다소 거칠고 사실을 호도하기도 했지만, 그는 선원들의 죽음을 애도했고, 악덕 선주들에게 분노했다. 플림솔의 '소동'과 캠페인의 결과로 제정된 1875년 만재흘수선은, 선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플림솔이 원한 것이 아니었고, 결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대해운업 역사상 최초로 만재흘수선을 입법화했다는 점에서 '플림솔의 공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만재흘수선을 '플림솔 마크'로 부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The 'load line', which marks the maximum allowable loading of cargo on a ship, is today called the 'Plimsoll mark'. This is to commemorate Plimsoll's contributions in leading the campaign for enacting the load line in the 1870s. However, prior to Plimsoll's movement, James Hall, a shipowner of Tynemouth, led the petition for the introduction of the load line, and had provided Plimsoll with the information and data on the load line. Considering these, some argue that the Plimsoll mark should be called 'Hall mark'.
This paper presents the real situation of shipping industry in the UK as the social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the load line in the mid-to-late 19th century(section II), and compares the activities of James Hall(section III) and Samuel Plimsoll(section IV), who took the lead in the movement to enact the load line. Section V evaluates whether it is appropriate to call the load line 'the Plimsoll mark'. Hall's social activities, such as the abolition of light due, the foundation of the Tribunal of Commerce, and the establishment of floating institution, were all closely related to his own business. It is more likely that Hall's advocacy for the introduction of the load line was not purely philanthropist, but rather considered his interests as a shipowner and a director of marine insurance companies.
In contrast, Plimsoll had no interest in shipping business. Although his way was somewhat rough and misleading the truth, he purely mourned the death of the sailors, sympathized with the families' grief, and was angry with the immoral shipowners. It is true that the load line of 1875, which was enacted in accordance with Plimsoll's agitation and campaign, was not what he wanted in that the shipowners could mark it as he wished, and it was flawed. However, it was 'Plimsoll's achievement' in that it was the first in the history of modern shipping industry to enact the load line. In this respect, it is still valid to call the load line the 'Plimsoll 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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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영국 '국제연맹연합(LNU)'의 난민 보호 활동, 1935-1939 - 전간기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의 인도주의 활동과 그 역사적 맥락 -

저자 : 박은재 ( Park Eun Ja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3-17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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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영국의 '국제연맹연합(LNU)'의 난민 보호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1930년대 후반 국제 정세의 위기 속에서 전개된 인도주의 활동의 내용과 그 의미를 검토한다. LNU는 국제연맹을 통해 세계 평화와 진보를 촉진한다는 목표를 가진 영국의 평화운동 단체로, 산하의 난민위원회에는 LNU의 주도적 인물들뿐만 아니라 당시의 난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의원들과 주요 구호 단체 대표들이 모여 영국 정부와 국제연맹에 비판과 제안을 전달했다. LNU는 난민 문제를 세계 평화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요성을 지닌 사안으로 인식하여, 국제연맹을 구심점 삼아 각국의 적극적인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LNU는 영국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보였고 더 큰 기여를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LNU가 제안한 난민 문제의 해법은 큰 틀에서 영국 정부의 난민 정책의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즉 영국 내에서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수립된 난민의 해외 이주 정착, 그리고 그것을 통한 식민지 개발의 구상이었다.


This paper attempt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the League of Nations Union(LNU) upon the refugee crisis in the late 1930s, thereby tracing the liberal internationalist's views on refugees, world order, migration, and relation of Europe and the world. The LNU, a peace movement organisation aiming to secure world peace through public support for the League of Nations, facing the refugee problems of Europe, gathered LNU leadership and representatives of private relief organizations under its sub-committee, 'Refugees Committee'. They deemed the millions of refugees wandering Europe a serious problem threatening the peace and order of the world, and thought the problem could only be solved by international cooperation through the League of Nations. The LNU also criticized British government's passive attitudes toward helping refugees and relief organizations. LNU's proposals for resolving the refugees problem, however, accepted and were built on the contemporary views expressed in government's approach. Namely, that Britain and Europe have suffered chronic over-population so that the refugees had to be sent overseas lay at the bottom of British government's, and most western countries', refugee policies. The suggestion of overseas settlement led to the idea of colonial development, which reflected the liberal internationalists' view on the possibility of turning the suffering of the European refugees into 'civilizing mission' that would bring progress for the undeveloped areas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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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젠더와 섹슈얼리티

저자 : 설혜심 ( Sul Heasim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1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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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가 지난 100년 동안 누려온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그녀에게 무심하거나 그녀의 작품을 저평가해 왔다. 하지만 크리스티가 그려낸 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기에 더 현실적이고, 소설의 배경과 가치관 등은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사회사적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이 글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집중해 크리스티의 저작을 새롭게 분석했다. 크리스티는 여성 운동에 관해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인 견해를 피력했고 섹슈얼리티 묘사에서는 무심하거나 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인습적인 젠더규범에 도전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창조해 냈는가 하면, 젠더 역할 역전을 소설의 모티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섹슈얼리티 묘사에서도 아주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성애의 다양한 형태를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퀴어(queer)라고 불릴만한 동성애와 위장술도 소설에 적극적으로 녹여내었다. 특히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의 '남성간의 사랑'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아직도 재생산되고 있다.


Agatha Christie(1890-1976) enjoyed enormous success as the 'world's best-selling fiction writer' for over 100 years. But academia either ignored or under-evaluated her works. Literary critics severely denounced Christie for her wooden dialogue, the over-sentimentalism, the artificiality of characters and the absence of social reality. Her fictions, however, present a realistic world view and her characters are much more like those people we meet every day. In this context Christie's works are of great value as source materials for social historians.
This article analyzes Christie's novels focusing on gender and sexuality. Christie was criticized as being conservative or regressive in the wave of women's movement and her literary approach toward sexuality was often assessed to be somehow indifferent and even asexual. Christie, however, was conscious about social changes and her works clearly reveal the progressive attitude toward gender issues. She created the female characters who challenged the conventional gender norms, and she utilized the reversal of gender roles as an important motive for her works.
Christie's novels have a great significance in depicting an extraordinarily broad spectrum in sexuality. She not only dissects sexual appeal into many elements, but also offers various shapes of love in the heterosexual relationships, from a maternal-like affection to a ghastly obsession. Homosexuality and impersonation are another major subjects that Christie utilizes in her fictions. The manly love between Poirot and Hastings is still being adapted as a recurring motif in contemporary media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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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서양 좌측통행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민주당 진보파와 영국 노동당 좌파는 어디서 만났는가?

저자 : 김일년 ( Kim Ilnyu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4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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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노동당 좌파와 미국 민주당 진보파 사이의 교류와 그것이 양국 정치에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이들 영미 진보정치세력 사이의 교류는 제 3세력이라는 개념을 정치지리학적 전략으로부터 정치경제학적 이념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었다. 1940년대 중반 노동당 좌파 의원들은 영국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제 3세력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념적 선언임과 동시에, 영국이 미소 간 냉전에서 독립된 서유럽을 이끌어야 한다는 외교 전략이었다. 냉전 초기 미국인들에게 서유럽의 중립이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진보파는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만큼은 미국이 영국 노동당을 좇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난 제 3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모습은 노동당으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노동당이 끝까지 냉전을 거부한 채 독립된 서유럽의 정치지리학을 고수했다면, 만약 민주당이 미국의 예외성을 내세우며 사회주의의 정치경제학을 외면했다면, 클레멘트 애틀리와 해리 트루먼이 양국에서 추진했던 일련의 개혁 과제들은 훨씬 더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들 영미 진보정치세력 사이의 '대서양 좌측통행'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공산주의의 압제 사이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이념적 노력이자 냉전의 척박한 토양에서 두 나라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키워 나갔던 외교적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essay explores the transatlantic interaction between the liberals of the American Democratic Party and socialists of the British Labour Party in the years following World War Ⅱ. Drawing on evidence from archival collections in both countries as well as newspapers, personal memoirs, and party records, this essay demonstrates that these Anglo-American progressive political forces had converged on a similar position at the onset of the Cold War. At the heart of their ideological convergence was the reinterpretation of the “Third Force” from a form of political geography to that of political economy. Coined by the British Labour leader Aneurin Bevan during WWII, the Third Force originally connoted an ambitious diplomatic strategy, envisioning Britain-led “socialist Europe” that would be autonomous from capitalist America and communist Russia. In the late 1940s, a group of American liberal Democrats, especially those from the Americans for Democratic Action, recast the Third Force. They heartedly embraced the Third Force's ideological dimension―democratic socialism between capitalism and communism―while rejecting its diplomatic implication―an independent Europe neutral in the Cold War. Through their transatlantic conversation, the British socialists had gradually approached to the logic of their American friends, assuming that the Anglo-American democratic left could together construct a progressive third force across the Atlantic Ocean rather than Western Europe. Since the liberals and socialists were key members of the ruling party in each country, their convergence made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course of progressive politics in the United States and Britain. The Democratic Party pushed Harry Truman's Fair Deal accepting the Labour Party's political economy of democratic socialism, while the Clement Attlee government advanced a socialist experiment within the Cold War political geography of the fre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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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변화를 모색하는 이민사 연구 - 19세기 전반 영국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돌아보며 -

저자 : 이민경 ( Lee Min-kyou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7-2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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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국인들의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에 관련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연구 성과가 이민·이주사 연구에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하는지 생각의 장을 마련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우선 본 글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연구에서 다소 주변화 되어 있는 19세기 전반기를 주목하여 이 시기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연구가 어떠한 면을 탐구하고 있는지 검토한다. 특히 기존 학계에서 주목해 온 산업사회의 문제 또는 영국의 경제 중심 분석 외에 이 시기 이민의 증가와 관련한 제 문제에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고찰한다. 이를 통해 이민·이주관련 주체와 객체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목적과 의도, 다양한 측면의 정책과 상황, 이민자 중심의 사고 등, 연구대상의 다변화와 함께 확장된 안목을 가진 발전적 이민사 연구의 전환을 모색한다.


This essay examines current researches that present various perspectives on British colonial Australian immigration, and tries to set the stage for thinking about what these suggest for on-going studies of the field.
First of all, it focuses on the studies of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which are somewhat marginalized in the field of Australian immigration history, and examines what these studies are exploring with regard to the period. In particular, besides the industrial society's problems that have been noted by existing academia or the Great Britain's economic-centered analyses, this study considers what was the problems related to the increase in immigration & emigration during this period.
Above all it tries to seek for the development of immigration study with an extended perspective, requiring diversification of the subject, such as the purposes and intentions that may vary depending on immigration and migration-related subjects and objects, as well as aspects of policies and situations, and immigration-oriented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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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세 영국에서의 농민생산과 경제외적 강제 -농업자본주의의 성장과 관련하여-

저자 : 이연규 ( Yeon Kyu Le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1-2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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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엘리자베스 영국의 외국인 차별 -1593년 의회 입법 및 논쟁을 중심으로-

저자 : 허구생 ( Goo Saing Hur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31-5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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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잉글랜드 청교도 장로교주의 기원에 관한 고찰

저자 : 윤종훈 ( Jong Hun Yoo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57-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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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47년 종교관용 법안 -잉글랜드 혁명에서 독립파 의원들과 종교의 자유-

저자 : 정영권 ( Young Kwon Chu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87-12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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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투 길들이기 -스튜어트 시대 잉글랜드의 결투반대운동-

저자 : 김중락 ( Joong Lak Kim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125-15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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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

저자 : 설혜심 ( Hea Sim Sul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157-1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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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자유와 재산 방어 연맹(Liberty and Property Defense League)의 빈곤과 임금제에 대한 해석

저자 : 김명환 ( Myoung Hwan Kim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187-21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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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크로포트킨과 과학 -1890년대 과학평론 분석-

저자 : 이영석 ( Young Suk Le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213-24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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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처칠, 키치너, 그리고 해밀턴의 삼중주? -1915년 영국군 갈리폴리 원정 실패 책임을 중심으로-

저자 : 이내주 ( Nae Joo Le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245-26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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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영국 자유당의 몰락, 우연인가 필연인가? -계급정치의 한계를 넘어서, 1900-18-

저자 : 홍석민 ( Seok Min Ho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20권 0호 발행 연도 : 2008 페이지 : pp. 271-29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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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최신권호

한국프랑스문화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021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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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연구
62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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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논집
53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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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연구
6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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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연구
67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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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론
15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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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론
15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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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연구
50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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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논집
53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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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연구
61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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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연구
66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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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연구
4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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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론
149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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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연구
6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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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연구
49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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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논집
53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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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연구
64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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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론
148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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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연구
6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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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론
148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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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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