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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금산지역 삼국시대 토기편년 -백제와 가야 세력 사이의 내륙교통로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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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지역 삼국시대 토기편년 -백제와 가야 세력 사이의 내륙교통로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Chronology of Three Kingdoms Age Pottery in Geumsan

성정용 ( Jeong Yong Seong )
  • : 호남고고학회
  • : 호남고고학보 1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02년 08월
  • : 53-78(26pages)
호남고고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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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09-910-00309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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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인류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229-1994
  • : 2799-468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3-2022
  • :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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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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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기조성으로 본 신석기시대 생업경제의 변동과 의미

저자 : 윤정국 ( Yoon¸ Jeongguk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3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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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 신석기시대 생업경제의 양상과 변화상을 검토하였다. 먼저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를 분류하고, 시기적으로 도구 현황과 석기 조성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신석기시대 생업경제는 크게 3단계로 구분되었다. 1단계에는 초창기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자연에서 식료를 획득하였다. 즉 홀로세 기후환경 변화에 맞추어 '수렵채집경제 : 새로운 획득경제의 적응'으로 나아갔다. 2단계는 조~전기로 이전 시기의 수렵과 채집에 초기농경과 어로가 추가된 혼합경제가 이루어졌다. 세부적으로 지역 환경과 시기에 따라 수렵과 채집, 어로와 농경 등의 생업 비중 차이가 나타났지만, 전반적인 생업 양상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이 단계는 낮은 수준의 식료생산경제로의 변화를 가지는 '혼합경제Ⅰ: 혼합경제의 도입과 적응'이라 할 수 있다. 3단계는 중서부지역에 자리한 집단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중기와 확산 이후 사회 전반에 잡곡농경이 정착화되고 지역성이 생성되는 후기이다. 생업경제는 잡곡농경을 기본으로 하고 어로와 채집, 수렵이 보조하는 '혼합경제Ⅱ : 혼합경제의 확산(남하)과 고착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석기시대의 생업경제의 현상과 변화의 동인은 기후 변동 및 초기농경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인구증감에 따른 공간점유압박(전염병 등) 및 내부결속도 등 다양한 가능성을 들 수 있었다.


This paper reviewed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es of the Korean Neolithic style of livelihood. First, Stone tools excavated from the Neolithic period were classified and organized. After that, the status of tools and stoneware combinations were analyzed.
According to the analysis results, The Neolithic life style was largely divided into three stages. Stage 1 is an infancy age. They adapted to the new environment and obtained food from nature through hunting and gathering. This can be said to be 'Hunting and Gathering Economy: Adaptation of a New Acquisition Economy' in line with the Holocene climate environment change. Stage 2 is Early age. Although the composition and contents of stoneware differ between regions, it is a mixed economy with the addition of early farming and fishing. And this is a transition to a low-level food prodcution economy, which is 'Mixed Economy I: Introduction and Adaptation of the Mixed Economy'. Stage 3 is the middle and late age. During this period, the spread of groups in the Midwest region, early farming became established, and locality appeared. This is 'Mixed Economy II: Spreading and Fixing of Mixed Economy', which is based on early farming and assisted by fishing, gathering, and hu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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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세기 광양만권 주거구조의 변천양상과 지역성

저자 : 김재훈 ( Kim Jae-hoo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4-62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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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동부지역은 기존 연구에서 마한 영역권으로 파악하고 그 변경지역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아울러 이 지역은 마한과 가야의 문화가 만나는 점이지대로 마한보다는 가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다루어지고 있어 이 지역에 살던 집단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전남동부지역 가운데 고고학적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진 광양만권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고대 문화상을 고고학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광양만권에서 1~6세기 대에 조성된 주거지를 중심으로 원래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과 출토유물을 대상으로 형식분류를 진행하였다. 그 후 광양만권 주거구조의 변천양상을 살펴 보고, 주변지역과 비교를 하여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지역은 1~4세기까지 주거구조 및 출토유물 양상은 경남서부지역과의 유사성을 보이며, 전남서부지역과는 다른 양상이다. 4세기 이후 가야, 백제, 왜 등의 세력과 교류하여 다양한 물질문화를 이루지만, 주거양식은 큰 변화가 없이 기존 전통이 유지되는 특징을 보인다. 6세기 이후 백제의 영역화과정에 의해 이 지역에 산성과 고분이 축조된다. 마한에서 백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며, 주거양상에서 뚜렷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는다.
이 지역을 바라본 기존의 시각은 외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자체적인 발전을 살펴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문화변동을 자체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외부 자극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본 연구를 통해 이 지역 사람들의 살아온 주거공간에 대한 검토 결과 외부 자극으로 인해 문화가 급격하게 바뀐 양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적인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외부 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점진적으로 그들의 삶을 개척한 것으로 보인다.


The existing eastern Jeollanam-do area was known as the territory of Mahan and was known as the border area of Mahan. In addition, there was no discussion of the groups living in this area by mentioning only the point where the cultures of Mahan and Gaya were confirmed together. This study tried to examine the culture of this region archaeologically from the 1st to 6th centuries centering on the Gwangyang Bay area, where archaeological research was actively conducted in the eastern Jeollanam-do region. For this purpose, we tried to examine the changes in the dwelling form identified in the Gwangyang Bay area an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local culture. First of all, type classification was carried out for those whose original shape could be identified among the dwellings surveyed and those from excavated relics. After that, the changes in the dwelling structure of the Gwangyang Bay area were examined, and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of this area were examined by comparing it with the surrounding areas.
As a result, this area showed similarity to the western Gyeongnam area in terms of residential structure and excavated relics from the 1st to 4th centuries, and different aspects from the western Jeonnam area were confirmed. However, since the 4th century, various material cultures such as Gaya, Baekje, and Japan have been exchanged, but the existing tradition has been maintained without significant changes in the residential style. After the 6th century, ancient fortress were built in this area by Baekje's territorialization process and this area was integrated.
Since the existing perspective of looking at this area looked at this area from an outsider's point of view, it was not possible to examine the development of the area itself and considered that culture was changed by external stimuli. However, in the residential space where people in this area have lived, the rapid change of culture due to external stimuli has not been confirmed in actual archaeological data. In other words, the development of this region is believed to have gradually pioneered their lives as external cultures were accepted in internal development, and only the necessary parts were adopted by contact wit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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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벽골제·눌제·황등제의 기능 재검토

저자 : 권정혁 ( Kwon Jeonghyuk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4-94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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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눌제·황등제는 호남의 시원임과 동시에 호남과 호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벽골제의 기능에 대해서는 경작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였다고 보는 견해, 경작지의 염수피해를 막기 위한 방조제였다는 견해, 방조제와 저수지의 기능을 겸하거나 기능의 변화로 보는 견해, 저수답으로 보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고지형 분석 결과 벽골제의 추정 담수범위는 최대 약 27,000,000㎡로 추정하였으며, 최소 약 7,700,000㎡로 추정하였다. 수문지도 구하도(수로)의 위치와 비교하여 유통거·수여거의 추정 위치를 확인하였다. 눌제는 담수범위(3,700,000㎡)와 3개소의 수문 위치를 확인하였다. 황등제는 담수범위(8,700,000㎡)를 확인하였으며, 수문의 위치는 1924년에 제작된 지형도를 통해 수문은 모두 3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제방 성토층 내 부엽과 목재에 대한 AMS분석 결과 BC 5세기∼3세기로 측정되었다.
추정 담수범위를 가지고 삼국∼고려시대 쌀 생산량을 환산할 경우 벽골제 추정 최소 담수면적에서 약 261.8t, 눌제 추정 담수면적에서 약 125.8t, 황등제 추정 담수면적에서는 약 295.8t의 쌀을 수확할 수 있다. 만약 벽골제·눌제·황등제가 저수지였다면 앞서 설명한 쌀 수확량을 포기하여야 한다.
벽골제·눌제·황등제는 평탄한 충적대지에 하천(수로)을 막고 제방을 축조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좁은 곡간부에 축조되었던 산곡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전북 서해안지역에서 확인되는 저수답과 입지와 형태가 유사하다. 따라서 벽골제는 상시 물을 채워 두었던 저수지가 아닌 가을에 수확이 끝나고 수로에 설치한 수문을 막아 제내지에 물을 채워 두었다가 농사철에 수문을 열어 제외지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답의 기능이 훨씬 경제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Byeokgol-je reservoir is one of the oldest in Korea and was the origin of Honam along with Nul-je and Hwangdeung-je reservoirs. It also functioned as a base line to distinguish Honam from Hoseo.
Based on the paleogemorphic map analysis of Byeokgol-je, the maximum water surface range is calculated to be about 27,000,000 ㎡ by estimating the expected water level to be within 6 m above sea through the elevation survey of the outsrktis of the land within the dyke and natural villages. The minimum surface area of filled water is calculated to be about 7,700,000 ㎡ by estimation of natural villages and trails on the basis of a topographic map made in 1924.
Nul-je reservoir, the location of three sluice gates and the surface range of filled water (3,700,000 ㎡) were confirmed. Hwangdeung-je, the filled water surface range (8,700,000 ㎡) could be confirmed, although the exact location of the sluice gates was unclear, but it was estimated that there were three sluice gates based on a geomorhpic map produced in 1924.
If we calculate the rice production volume (around 34 kg per 1,000 ㎡) during the period from the Three Kingdoms to Goryeo based on the surface range of filled water estimated through the paleogemorphic map analysis, we came to the conclusion that about 261.8 tons of rice could be harvested from the estimated minimum surface range of filled water (7,700,000 ㎡) in Byeokgol-je, about 125.8 tons of rice from Nul-je (approximately 3,700,000 ㎡ of estimated surface range of filled water), and about 295.8 tons from Hwangdeung-je (approximately 8,700,000 ㎡ of estimated surface range of filled water). Supposed that Byeokgol-je·Nul-je·Hwangdeung-je reservoirs were constantly filled with water, the rice yield described above should be forgotten.
The embankments of Byeokgol-je·Nul-je·Hwangdeung-je reservoirs were built on the flat alluvial plateau by blocking rivers (water ways). This is different from the reservoirs constructed most in narrow mountain valleys, but is similar in location and shape to water storage paddy fields utilized on the alluvial flat land with rivers frequently seen in the west coast of Jeollabuk-do.
In sum, Byeokgol-je seemed to be more economic not as a reservoir filled with water all the time, but as a water storage paddy field which keeps filled with water during the off season since harvesting is over and supplies water to outside of the reservoir by opening the sluice gates during the farming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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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남지역 장고분의 상대순서와 공간적 의미

저자 : 박형열 ( Park Hyoungyoul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121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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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호남지역 장고분에 대한 공간분포 양상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시간성과 공간적인 변화를 띠고 있는지 살피고자 하였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고분의 시간성이 배제된 채 영산강 유역권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검토되었으며, 장고분이 단독으로 분수계마다 분산적으로 분포하는 특징으로 요약되곤 하였다. 이와 같이 장고분이 분산되어 분포하는 현상은 동시에 여러 지역을 인위적으로 구분하여 배치된 형태로 인식되기도 하여 동시적으로 사용된 묘제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이처럼 장고분이 분산되어 분포한다는 동시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장고분에 사용된 석실의 변화상을 살핀 연구들에서는 시간적인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고분의 변화에 따른 공간적인 분포변화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장고분의 출토유물에 대해 살펴본 결과 장고분은 분수계별로 단독 입지의 양상이 진하지만 이와 달리 여러기의 고분이 축조되는 경향도 관찰되었다. 그리고 장고분들 간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호남지역 장고분은 네 시기의 변화양상을 거치는데, Ⅰ기에 횡구식 석곽과 함께 영산강상하류역에 도입된 후 Ⅱ기에 영산강의 주요 수계를 따라 점차 상류에서 중류까지 분포한다. Ⅲ기에는 영산강의 지류를 따라 내륙에서 확인되고 서북해안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Ⅳ기에는 해남지역을 비롯한 호남지역의 서남해안에서 확인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시기적 분포양상에서 주목되는 점은 옹관고분이 만들어지지 않는 지역에서 장고분이 축조된다는 점이다. 특히 원형이나 방형의 석실분과 동일시기이거나 좀 더 이른 시기에 축조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석실분이 등장하는 시점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석실분이라는 공통된 요소가 확인되는 것을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고분의 등장이 이 지역에 장고분의 수용이나 도입에 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다장과 추가장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석실의 도입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nalyzes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Key-holder shape burial mound of the Honam area. It is known that the Key-holder shape burial mound in the Honam region were made in various regions at the same time. Also, it appeared suddenly in the 6th century AD in the Honam area and then disappeared. Furthermore, the sudden appearance caused much controversy about the tomb owner and the tomb type. If these tombs were not made at the same time, the interpretation of the tombs could be different. This article confirms that these tombs were not created at the same time. In other words, it is possible that there is a time difference between the tombs. Therefore, in this article, the relative order was determined by compar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tombs. As a result, the tomb was divided into four period. And the area is expanded to the entire Yeongsan River aBsin.
In this process, the area of the representative Tombs of Jar-coffin in the Honam region is reduced. Next, these the Key-holder shape tombs also disappear, but the stone chambers used in these tombs appear in the Tombs of Jar-coffin. In the end, only the burial facility called the stone chamber remains in the next period. In other words, it should be considered that the cause of the Key-holder shape tombs appearing in the Honam area is the ease of burial rather than the acceptance of the tombs. In short, it is necessary to consider the function of the stone chamber, which is a burial facility, as the cause rather than the shape of the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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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남 동부지역 가야 제국(諸國) 무장의 추이

저자 : 김승신 ( Kim Seung-shi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2-150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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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동부지역에는 5세기 이후 남원,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후기가야 각국과 관련 깊은 정치체들이 확인되고 있다. 남원지역에서는 월산리 두락리고분군을 중심으로 상위집단을 형성하며 건지리 행정리고분군이 하위집단으로 파악된다. 장수지역은 동촌리 삼봉리고분군이 상위집단으로 호덕리 노하리고분군은 하위집단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양 정치체는 고총고분이 축조되기 시작하는 5세기 후반부터 고총고분을 중심으로 무장이 집중되기 시작하며 양 지역 간 무장의 집중도나 신형식 무장의 수용은 시기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남원지역은 남강 수계와 이어져 있는 이점으로 인해 안라국, 소가야, 가라국 등 가야 각국 양식의 문화가 빠르게 이입되었다. 현재 남원지역 내 가장 이른 시기 고총고분인 청계리 2 1호분을 비롯하여 월산리 M1호분이 대표적으로 5세기 중엽에는 안라국 소가야 문화가, 5세기 후엽 이른 시기에는 가라국 문화가 빠르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가야 각국의 문화와 함께 동시기 경남 서부지역에 이입되었던 다양한 무기 마구가 빠르게 수용되었으며 이후 장수지역 정치체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에 따른 무장의 수용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남원 운봉지역은 가라국 및 다라국 중심지역인 고령 옥전 정치체뿐만 아니라 함양 산청 등 남강 상류지역을 포괄하는 정치체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며 무장이 수용되었다. 반면 장수지역 정치체는 지역 내 재지계 무기체계와 남원지역에서 들어온 신식 무기 및 마구가 결합하여 독특한 지역색을 갖추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In the eastern part of Honam, deep political bodies related to each country have been identified since the 5th century, focusing on Namwon and Jangsu areas. The two politicians began to focus their arms around the ancient tombs in the late 5th century, when the ancient tombs began to be built, and the concentration of arms between the two regions and the acceptance of the new type of armament show a clear difference. Namwon area was quickly introduced into the culture of Gaya, including the Anra(安羅國), Sogaya(小加耶), and Gara(加羅國), due to the advantages connected to the Namgang water system. Currently, the M1 tomb in Wolsan-ri, including Cheonggye-ri No.2 the earliest ancient tombs in Namwon, seems to have had a rapid impact on the culture of the Anra and Sogaya in the mid-5th century and Kara in the early 5th century. Along with the culture of Gaya countries, various weapons and harnesses that were introduced into western Gyeongsangnam-do Province were quickly accommodated and were later delivered to politicians in the Jangsu area.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degree of acceptance of ramour by region. The Unbong area in Namwon seems to have been closely exchanged with politicians covering the upper reaches of the Namgang River, such as Hamyang and Sancheong, as well as the Goryeong and Okjeon political systems, which are the center of the Gara and Dara countries. On the other hand, it is believed that the politics of the Jangsu region had a unique regional color by combining the re-ground weapons system in the region with new weapons and harnesses from Namwo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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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북 동부지역에 진출한 가야와 백제의 접경문화와 지역 정치체 검토

저자 : 소재윤 ( So Jaeyu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2-182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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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동부지역은 서부지역과 달리 복합된 문화양상을 가진 유적들이 다수 존재함에 따라 이와 관련한 역사적 해석을 내놓는데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줄여보고자 본 논문은 유적 분포현황을 토대로 지역별 문화양상을 살펴보고 문화권과 지역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문화권별 검토를 통해 상사성과 상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부지역은 가야문화권역과 백제문화권역으로 크게 양분되고 이 문화권은 더 세분될 수 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금강 상류와 남강 상류 일원이 가야문화권에 포함되고 만경강 상류~섬진강 상류에 이르는 서부 일대가 백제문화권에 포함된다. 만경강 상류 지역의 경우, 백제 유적 외에도 가야와 관련되는 것으로 제기되는 봉화가 확인된다. 섬진강유역은 마한·백제·가야의 물질문화가 복잡한 양상으로 확인되는데 6세기 전반 이후에 진출한 백제의 유적들을 제외하면 주로 재지계 문화와 가야의 물질문화만 남게 된다. 가야문화는 남강유역의 소가야와 대가야 등의 가야문화가 혼재된 상태이나 6세기 전후한 시점에 대가야문화 위주로 바뀌는 양상이 확인되며 반대편의 섬진강유역도 유사한 문화적 흐름을 보인다.
따라서 각 문화의 비중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북지역의 섬진강 상류 일원과 남강 상류 일원은 5세기 대 유사한 문화적 복합양상을 보임에 따라 양직공도와 삼국사기 등에서 지칭하는 기문의 위치로 두 지역이 같이 검토되어야 한다. 기문 중 가장 유력한 정치체로 추정되는 상기문은 가야의 고총이 밀집된 남강 상류 일대가 유력한 거점지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에서 동시기에 보여지는 반파는 주로 6세기 전반에 백제·왜와 활발한 접촉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지역에서 대가야계 문화가 주요 문화로 유입 혹은 일시 정착되는 양상이 확인되고 있어 관련 정치체의 문화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Unlike the western part of the province, the eastern part of Jeonbuk Province has many historical sites with complex cultural aspects, causing confusion in historical interpretations. To reduce this confusion, this paper examines the cultural aspects of each region according to the distribution of historical sites and reviews the cultural regions and the regionality, confirming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regions through a cultural review. The eastern region is largely divided into the Gaya cultural region and the Baekje cultural region, which latter could be further subdivided. Centering around the Baekdudaegan Mountain range, Geum River and Nam River are part of the Gaya cultural region, and the western areas from Mangyeong River to Seomjin River are considered the Baekj ecultural region. Mangyeong River of the Baekje cultural region appears to have been a temporarily occupied territory because only beacon-related Gaya remains were identified in addition to Baekje ruins. Seomjin River shows a complex material culture with Mahan, Baekje, and Gaya elements; excluding the remains of Baekje, which expanded after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mainly indigenous culture and Gaya material culture were found. Gaya culture appears to have been a mixture of Sogaya and Daegaya culture in the Nam river basin, but there are signs of changes centered around the Daegaya culture around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and Seomjin River on the other side showed a similar trend.
Although the proportion of each culture varies from region to region, the upper area of the Seomjin River and the upper Nam River in the Jeonbuk region show similar cultural complex patterns from the 5th century. Therefore, these two regions combined should probably be considered the area referred to as Gimun in the Yangjikgongdo and the Samguksagi etc.
Sanggimun,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most influential political center of the Gimun region, is estimated to have had a stronghold around Nam River, where the ancient Gaya tombs were concentrated. The Banpa that appears in theN ihon Shoki during the same period had active contact with Baekje and Japanese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It is assumed that Daegaya culture was introduced or temporarily settled in the surrounding area around Jirisan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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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금식 갑주 분포로 본 고흥 야막고분의 성격

저자 : 이건용 ( Yi Gun-ryoung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4-217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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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야막고분은 일본 고훈시대의 매장시설과 대금식 갑주를 포함한 부장품이 확인되어 왜계 고분으로 상정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국내 출토 대금식 갑주의 시기별·지역별 분포 현황을 검토하여, 고흥 야막고분 갑주의 성격과 함께 출토 고분의 성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였다.
대금식 갑주의 분석은 국내에서 출토된 판갑, 투구, 경갑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분석방법은 대금식 갑주의 변화과정을 통해 선후관계를 제시하고, 출토유구 연대와 비교하였다. 유구 연대는 철촉과 대금식 갑주에 대한 기존 편년 안을 참고하여 상정하였다.
그 결과, 국내 대금식 갑주의 유입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었다. Ⅰ단계는 5세기 1·2/4분기, Ⅱ단계는 5 세기 3/4분기, Ⅲ단계는 5세기 4/4~6세기 1/4분기로 편년하였다. 국내에서는 Ⅱ단계 이후 혁철 판갑과 함께 병류투구가 확인된다. Ⅲ단계는 병류기법으로 제작한 판갑이 등장한다. 단계별 분포양상을 통해 전남 서남해안 지역을 시작으로 서해안에 인접한 마한·백제권의 내륙으로 점차 분포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남해안에서는 부산을 중심으로 대금식 갑주가 유입되는 정황이 확인되었다.
국내 출토 대금식 갑주 변화과정을 검토한 결과, 고흥 야막고분 갑주는 빠른 단계로 설정할 수 있었고, 갑주의 특수한 구조는 일본 출토사례에서 비교할 수 있었다. 고흥 야막고분은 왜인들의 서남해안 항해의 증거로써, 전남지역 세력과의 교류를 추측할 수 있는 증거로 보았다. 나아가 해안가에 고분을 축조한 이유에 대해 연안항로상의 상징적인 이정표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Goheung Yamak Tomb has been identified as a burial facility in Kofun period in Japan and a burial product including Daegeum type armors(帶金式 甲冑) and is assumed to be Wa(倭) style Tomb. This paper reviewed the distribution status of Daegeumsik armor excavated in Korea by period and region, and discuss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tombs excavated along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Goheung Yamak Ancient Tomb armor.
The analysis of daegeum armor was conducted mainly on laminar armor(板甲), helmet(冑), and neck armor(頸甲) in Korea. The analysis method suggested a precedence relationship through the change process of Daegeum type armors and compared it with the dating of excavated sites. The date of the sites was assumed by referring to the dating for iron arrowhead and degeum type armors.
As a result, the period of change in the domestic Daegeum type armors could be divided into three stages. Stage I was divided into the 1st and 2nd quarters of the 5th century, stage II into the 3rd quarter of the 5th century, and stage III into the 4th and 6th quarters of the 5th century. Stage I is the 1st and 2nd quarters of the 5th century, Stage II is the 3rd quarter of the 5th century, and Stage III is from the 4th quarter of the 5th century to the first quarter of the 6th century. In Korea, a helmet connected with nails along with a laminar armor connected with leather after stage Ⅱ has been confirmed. Stage Ⅲ, the nailed laminar flow armor appears. Through the step-by-step distribution pattern, it was confirmed that it was gradually distributed inland of the Mahan and Baekje Area adjacent to the South Western Coastal Area, starting with the South Western Coastal Area of JeoIIanam-do. In addition, in Southern Sea area, it was confirmed that Daegeum type arms wer eintroduced around Busan.
Also,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change process of Daegeum type armors excavated in Korea, the Goheung Yamak Tomb armor could be set at an early stage. The special structure of the armor was similar to the case unearthed in Japan. Goheung Yamak Ancient Tomb are evidence of the Wa's voyage to the southwest coast and are evidence of exchanges with forces in the early Jeonnam region. Furthermore, the reason for the construction of ancient tombs on the coast was suggested as a symbolic milestone on th ecoastal 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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