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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 update

Journal of Japanology

  •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598-1134
  • : 2713-7309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1)~5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769
일본학
57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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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공로명 , 김환기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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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가와무라미나토 , 김환기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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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영호 ( Lee Young-ho ) , 이용규 ( Lee Yong Kyu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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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형성을 위한 재일코리안의 활동과 전개 양상을 잡지 『삼천리』를 통해 분석하였다. 1970년대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는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삼천리』의 경우 총81건의 해외 관련 기사를 수록했으며, 그 중 27건의 기사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다루었다.
『삼천리』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사는 소련, 중국, 미국 지역에 집중되었으며 디아스포라의 역사, 현황, 민족성 등 이민사 중심의 논의를 전개했다.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는 우리 민족을 넘어 재일중국인 등 일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와 연결된다. 이들은 교류 과정에서 각 디아스포라의 특징을 비교하고 일본 내 연대와 협력,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내 소수민족의 활동이 일본의 제도개선과 국제제도를 갖춘 국가로의 이행을 촉진했다고 평가하며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평가했다.
나아가 『삼천리』의 디아스포라 관련 기사들은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자료 관리에 활용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활동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실제적 영향력과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의 융ㆍ복합적 활용을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This thesis analyzed the aspect of activities and development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for the formation of diaspora network through a magazine 『Sanzenri』. The socie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of the 1970s paid much attention to overseas Koreans. The magazine 『Sanzenri』 included total 81 cases of overseas articles, and total 27 articles of them handled Korean diaspora.
The articles about Korean diaspora in 『Sanzenrii』 focused on the Soviet Unio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and mainly discussed the immigration affairs such as history, current status, and ethnicity of diaspora.
The diaspora network is connected to diaspora of people residing in Japan such as Chinese residents in Japan beyond Korean people. They compare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diaspora in the process of exchange, cooperated with the solidarity in Japan, and discussed the measures for establishing network. In this process, the roles of diaspora were evaluated by evaluating that the minorities' activities in Japan accelerated the institutional improvement of Japan and its development into a state equipped with the international system.
Moreover, the diaspora-related articles of 『Sanzenri』 are used for database creation and data management. This study could generally verify the actual influence of diaspora through the activities of Korean diaspora, and the convergent utilization of diaspora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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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사화 ( Safa Cho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9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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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60년대 말부터 일본 정부가 조선적 재일코리안들에 대한 재입국을 허가한 요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195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시작하면서 일본정부는 한국적 재일코리안과 조선적(朝鮮籍) 재일코리안 사이에 일본 재입국허가제도 운영을 다르게 전개해왔다. 유효한 여권이 발급되는 한국적 재일코리안은 재입국이 허가되는 한편, 유효한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조선적자(朝鮮籍者)에게는 재입국이 허가되지 않아 온 것이다. 조선적자를 북한 지지자로 인식한 한일 양국은 이들의 출입국을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한일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일어난 일본 국내의 법적/국제정치적 변용을 배경으로 일본 정부는 출입국관리의 운영을 바꿀 수 밖에 없어졌다. 데탕트기의 중미접근, 남북접근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정치적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일환으로써 조선적자에 대한 재입국을 허락한 것이다.


This paper elucidates the purpose behind the re-entry permission granted by the Minister of Justice in Japan to Zainichi Koreans who had Chosen (in English the Korean peninsula) nationality. By analyzing the complex triangular relationship among Japan, the Republic of Korea (ROK),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this study elaborates that the key objective in Japan's unprecedented re-entry permission was to adjust its policy to a new legal and political situation during the détente. With the beginning of normalization talk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the Japanese government permitted re-entry for Kankoku (in English South Korea) nationality holders, who were eligible to obtain a South Korean passport, considered a valid passport in Japan. However, Chosen nationality holders, who were regarded as pro-North Korean by both countries and who could not possess a valid passport, were denied re-entry to Japan. By strictly controlling Chosen nationality holders, these countries attempted to maintain its relationship. However, in the late 1960s, Japan was faced with a legal and political dilemma and had no option but to permit pro-North Koreans to re-enter Japan. This paper argues that this permission was Japan's political compromise to guard against its diplomatic isolation in a structural shift away from the confrontation of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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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계자 ( Kim Gae-ja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1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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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재일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제주 4ㆍ3사건과 북한 '귀국사업'(1959∼1984)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에 한반도의 남쪽에서 일본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제주 4ㆍ3사건과, 냉전시대에 일본에서 한반도의 분단된 북쪽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귀국사업'이 한 가족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 형태가 재일사회, 특히 오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연동된 재일코리안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가 대중매체인 영화로 제작된 의미는 크다.
무엇보다도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가족에게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기록을 추가하며 재일코리안의 삶의 궤적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온 프로세스에 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 이은 최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가족의 전사(前史)가 드러나며 제주에서 평양을 잇는 재일 가족사의 모습이 복원되었다.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가족의 생활사 기록을 통해 자신의 체험적인 재일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재일 2세인 양영희와 북한 귀국자 2세인 조카 선화가 연결되어 있는 이상, 그의 가족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질 접점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재일 가족사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의 남ㆍ북과 일본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전기(轉機)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The representative events that brought great changes to Zainichi society are Jeju April 3 Incident(1948) and the Repatriation Project(1959∼1984). Owing to two incidents, there was the movement of many Koreans between the South & North Korea and Japan. Since this realistic lives of Zainichi Koreans are not well known not only in Japan but also in Korea, the meaning that director Yang Yonghi's family history has been made into 3 popular media films is important.
Above all, what is interesting about director Yang Yonghi's documentaries is the process of continuous recording the trajectory of family history, adding records whenever something new happens to her family members. The previous history of her family was revealed through the latest works “Soup and Ideology” following “Dear Pyongyang” and “Goodbye Pyongyang,” which shows the appearance of the family history connecting Jeju to Pyongyang. These documentaries show the experiential history of Zainichi Koreans.
As long as Yang Yonghi, a second-generation resident in Japan, and his nephew Sunhwa, a second-generation North Korean returnee, are connected, her family story is expected to find a point of contact newly in future. Director Yang Yonghi's documentary can be said to show connects and expands between the South & North Korea and Japan through the records of her famil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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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곽동곤 ( Kwak Dong-ko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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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산시로』를 신문연재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 소설은 젊은 소설가 모리타 소헤이와 이후 히라츠카 라이쵸(平塚らいてう)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신여성(新しい女) 히라츠카 하루의 정사미수 사건에 대한 신문 미디어의 보도 담론을 소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소세키는 모리타 소헤이에게 들은 히라츠카 하루의 이미지를 모델로 하여 작중인물 미네코를 조형하고 있다. 물론 히라츠카 하루와 미네코 사이에 일대일 대응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속의 미네코의 이미지에는 신문 지면에 보도된 히라츠카 하루의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산시로』의 등장인물 미네코는 신여성으로 조형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포섭되고 만다. 그녀는 곧 결혼 예정인 오빠로부터 가문의 재산을 분할 받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민법에 의하면 아내의 재산의 관리권은 남편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 미네코는 결혼 전에 산시로에게 30엔을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산시로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부탁해 30엔을 갚아버린다. 결혼이라는 제도로부터의 약간의 일탈이 산시로의 빚 상환에 의해 제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시로가 미네코를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환원시켜버리는 장면에서 미네코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성서의 컨텍스트를 빌려 말하고 있는 미네코의 대사는 마치 위조지폐와도 같이 산시로를 현혹하고 있을 뿐 실제적인 “죄”의 고백이 아니라는 점을 본고에서는 고찰했다.


This thesis examines Natsume Soseki's novel Sanshiro from the perspective of a novel serialized in newspapers. The novel is a fictional reference to the discourse reported by the newspaper media about the attempted affair between the young novelist Sohei Morita and the new woman Haru Hiratsuka, later widely known as Raicho Hiratsuka. Soseki is modeling the character Mineko, modeled on the image of Haru Hiratsuka, which he heard from Sohei Morita. Of course, there is no one-to-one correspondence between Haru Hiratsuka and Mineko. However, the image of Mineko in the novel reflects the image of Haru Hiratsuka as reported in the newspaper.
Mineko, who is portrayed as a new woman, is incorporated into the system of marriage. She owns the family estate divided by her soon-to-be-married brother. However, according to the Civil Code, the right to manage the wife's property belongs to the husband. So, if she gets married, she cannot use her property. Before getting married, Mineko lends San Shiro 30 yen and refuses to get it back. But Sanshiro pays back 30 yen with his mother's money. As described above, Mineko's slight deviation from the system of marriage is eliminated by Sanshiro's debt repayment. And in this scene, Mineko confesses her sins. However, this thesis considered the fact that Mineko's words, spoken in the context of the Bible, only deceive Sanshiro like counterfeit bills, but are not actual confessions of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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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연이 ( Kwon Yeon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5-17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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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패전 후 일본이 강화조약 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일본의 선택에 대해 사회주의세력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분석하였다. 전후 일본정치를 논할 때 '보수-혁신' 대립의 2분법적 구도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호헌평화운동을 주도해온 혁신세력을 하나의 견해를 가진 세력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강화를 앞둔 시점인 1950-1951년에 사회주의세력 가운데 중심적 역할을 해온 인물, 단체의 견해를 살펴보고 그 차이를 통해 이들의 분열상에 대해 분석했다. 분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점은 첫째, 사회당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게 된 계기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여 강화ㆍ안보조약에 대한 입장이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는 점이다. 둘째, 사회당 좌파 내에 소수이지만 현실주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이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셋째,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졌던 견해는 총평과 사회당 좌파의 견해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넷째, 사회주의세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일본공산당은 다른 사회주의세력이 가지고 있었던 강화, 안보에 대한 인식과 달랐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전후 일본에서 강화와 안보, 헌법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사회주의세력 역시 다양한 입장을 지니고 분열, 대립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고정불변의 것이라기 보다는 국제정치 정세의 변동에 따라 국내 정치 세력의 결속과 분열에 따라 영향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discusses what were the views of Japanese Socialists on Japan's choices ahead of the peace treaty. When discussing postwar Japanese politics, it is common to explain in a dichotomized composition of the conflict between the conservative and the reformers. And it is easy to perceive the reformers that have led the Constitutional Peace Movement as an unified force.
However, in this paper, I analysis the views of the people and groups that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socialist groups in 1950-1951, which was the time before the peace treaty, and pointed out that it was not a solid mass through the difference of their's views. The first thing that was found through the analysis is that the Socialist Party was divided into the left and the right after the Korean War triggered a conflict in their positions of the peace and security treaties. Second, although it was a small number, there were present of leftists who had a realist view in the Socialist Party. Third, the views held by progressive intellectuals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SoHyo(the General Council of Trade Unions of Japan) and the views of the Left Socialist Party. Fourth,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which was a part of the socialist forces at that time, had a different view from other socialist forces of the peace and security perce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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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현 ( Kim Su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1-19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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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경지학협회(이하 지학협회)의 「연회기사」와 『동경지학협회보고』(이하 협회보고)에 기초해 19세기 말 지학협회의 해외 학술 교류를 살펴본다. 1880년대 전반 지학협회는 해외 단체와 적극적으로 교류를 전개하고, 이후 교류가 안정화하였다. 19세기 말 지학협회는 40여 개 해외 단체와 공식적으로 교류했으며, 그 대상은 주로 프랑스 및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아메리카의 지리학협회였다. 교류는 기본적으로 각각 협회가 발행한 보고 및 도서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협회2∼14년(1880∼93) 해외 단체가 기부한 도서는 총 657종 3,400여 권에 이르렀다. 해외 단체와의 교류는 지학협회가 지리 지식을 확충하는 데 주요한 축이었다. 특히 서구 제국이 식민과 지배를 확장하는 상황과 연동해, 지학협회는 유럽 및 아메리카 제국의 단체와 교류하며 직ㆍ간접적으로 지리 지식을 축적하고 지리적 관심과 시야를 확대하였다. 그것은 열강의 식민 및 지배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지학협회와 서구 지리학협회 간 교류에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교류는 세계정세와 긴밀히 연관해 전개되었다. 둘째, 교류는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확장되었다. 셋째, 지학협회는 프랑스 지리학협회와 활발히 교류했다. 지학협회는 창립 과정에서 영국 왕립지리학협회를 모범으로 하지만, 실제 프랑스 각지의 지리학협회와 활발히 교류했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and Western associations in the late 19th century, based on 'annual meeting article' and 'journal of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In the first half of the 1880s,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actively engaged in exchanges with Western associations, and later the exchanges stabilized.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officially interacted with more than 40 Western associations. Exchange was basically conducted in the form of exchanging reports and books issued by the association. In fact, more than 3,400 books were donated by 1880-1893 overseas associations. Interaction with Western associations was a major pillar of the Tokyo Geographic Society's expansion of geographic knowledge. In particular, as the Western Empire expanded its colonization and control, the Geographical Association interacted with the European and American Geographic Associations, accumulating geographic knowledge directly and indirectly and expanding geographical interest and vision.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ree characteristics appeared in exchanges between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and western geographic societies. First, it was developed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world situation. Second, it expanded by forming an international network. Third, it actively interacted with French geographical societies. The Tokyo Geographic Society modeled itself on The Royal Geographic Society, but in fact actively interacted with French geographical soci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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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9-23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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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 일본의 정치와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놓여있는 역학 구도를 살펴보고, 이를 배경으로 최근 일본에서 대두한 'K-페미니즘' 문학 붐의 맥락과 그 양상을 문화번역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여성이 부재한 민주주의, 사회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의 상대적 약세, 'K-페미니즘'의 수용이라는 각각의 맥락과 이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검토하면서, 정치, 사회 운동, 문화의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발신되고 상호적으로 접속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여성의 부재를 그 특징으로 하는 일본형 민주주의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사회적 의제화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가 있다. 한편, 1970년대~1980년대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비해, 1990년대 이후 일본의 페미니즘은 포스트페미니즘 상황의 도래와 젠더 백래시가 맞물리면서 대중적 기반을 상실했고, 아카데미즘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일상의 페미니즘 의제에 대처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을 매개로 언어의 경계를 넘어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이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하는 'K-문학'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의 'K-페미니즘' 문학의 수용은 일본형 페미니즘의 전개 속에서 생겨난 공백, 즉, 페미니즘적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일상 언어의 부재에 부응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회가 'K-페미니즘' 문학이라는 언어적 자원을 전유하면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일본 민주주의의 향방이 주목된다.


This study examines the dynamics surrounding women's voices in the realm of politics and social movements in contemporary Japan, and against this backdrop, the context and aspects of the recent “K-feminism” literary boom in Japan from a perspective of cultural translation. More specifically, by examining each context of and the correlations among democracy without women, the relative weakness of feminism as a social movement, and the reception of “K-feminism,” the study explores how the women's voices in the realm of politics, social movements, and culture are being transmitted and connected.
In Japanese democracy, which is characterized by the absence of women, there is a structure in which women's voices are not adequately reflected in setting the social agenda. On the other hand, compared with the women's movement and feminism developed in various forms in the 1970s and 1980s Japan, Japanese feminism in the 1990s lost its popular base as the advent of the post-feminist situation and gender backlash interlocked. Moreover, as feminism was incorporated into the realm of academia, it failed to address the everyday feminist agenda. Under this circumstance, it can be said that it was “K-literature” led by the novel, Kim Jiyoung, Born 1982 by Cho Nam-Joo that transgressed the boundaries of language and penetrated this void through translation. Thus, the reception of “K-feminist” literature in Japan is a response to the vacuum created in the development of Japanese feminism, namely, the absence of everyday language to talk about feminist issues. It remains to be seen what direction Japanese society and democracy will take while appropriating the linguistic resources of “K-feminist”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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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현아 ( Kim Hyun-ah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3-25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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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72년에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면서 드러난 무국적 아동에 초점에 맞추고 무국적 아동의 발생 요인과 무국적 아동의 생활 실태를 살펴보았다. 무국적 아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안된 부모양계혈통주의로의 국적법개정의 논의와 오키나와 무국적 아동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요건에 주목하여 포스트제국의 경계인에 대한 '포섭'과 '배제'의 논리를 제시해보고자 했다.
오키나와의 무국적 아동이 발생하는 근본요인은 미국인 아버지가 일본인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지 않은 점에 있다. 무국적 아동의 방치는 아동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결과를 낳았고, 그러한 실태에 주목한 오키나와 국제복지상담소는 부모양계혈통주의로 국적법을 개정하도록 제안하였다. 이와 달리 일본 본토에서는 일본국헌법의 남녀평등을 내세우며 부모양계혈통주의로의 국적법개정이 추진되었다. 개정된 국적법을 보면 무국적 아동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나이는 20세 미만으로 같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어도 1965년 이전에 출생한 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가 없다. 일본 정부가 1947년을 의식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이유는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인과 대만인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주변에 머물렀던 무국적 아동을 국민국가로 '포섭'하는 국적법 개정에 있어 일본은 과거 일본제국의 '식민지적' 시선으로 '포섭'과 '배제'라는 경계를 설정했다.


This paper explored the reason children of foreign residents in Japan became stateless and their living conditions by focusing on stateless children who appeared after the U.S. returned Okinawa to Japan in 1972. And the paper also intends to present the logic of “inclusion” and “exclusion” of the Post-Empire's boundary. To this end, this paper looked at the discussion on the amendment of the Nationality Law surrounding Jus Sanguinis proposed as a solution to the problem of statelessness and the requirements for Okinawan stateless children to acquire a nationality.
The main reason many children became stateless is their American fathers did not support their Japanese wives and children. The neglect of stateless children left them in a blind spot for human rights, and considering this reality, the International Social Assistance Okinawa suggested that the country revise the Nationality Act to adopt Jus Sanguinis of bilineal descent. Meanwhile, advocating gender equality under the Constitution of Japan, the revision of the Nationality Act to adopt Jus Sanguinis was promoted in mainland Japan.
Under the 1985 revision, the stateless under the age of 20 may acquire Japanese nationality but those born before 1965 cannot be granted Japanese nationality even if their mother was a Japanese citizen. Deliberately, the Japanese government did not specify the year 1947 in the revised law because they did not want Koreans and Taiwanese who were under colonial rule to acquire Japanese citizenship. In revising the Nationality Act to “include” stateless children who were once marginalized in Okinawa in a nation-state, Japan set the boundaries between “inclusion” and “exclusion” with the colonial perspective of the Japanese Empire in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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