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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 update

Journal of Japanology

  •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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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598-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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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1)~5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17
일본학
53권0호(2021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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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未完の沖縄構想と在日朝鮮人文学者の思想との連結のために

저자 : 呉世宗 ( Oh¸ Se-jo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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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では、1960年代の沖縄返還をめぐる言説をとりあげ、それを「沖縄構想」として示している。それとともにこの時期の復帰運動を、新崎盛暉の議論に拠りながら、米国政府、日本政府、第三世界などから規定される「沖縄」を受け止め、そして自治権を拡大させつつ「沖縄」を更新させ、外からの諸規定を変化させていく運動と捉えている。これもまた来たるべき「沖縄構想」の一環となっているものである。そしてそのうえで在日朝鮮人の立場からこの運動がどう見え、またどのように響き合うのかを検討する。
本稿で取り上げる在日朝鮮人は金達寿、金時鐘、金石範であるが、文学者である彼らは、60年代から沖縄の復帰直前のあいだに、それぞれ「故郷」、「主体」、「状況」などに関わる議論を行い、金達寿、金時鐘においては沖縄に直接言及している。すなわち沖縄返還あるいは「沖縄構想」への他者の視点を導入していると読む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在日朝鮮人が復帰運動にどれほどの関心を寄せていたかは、より本格的な調査を必要とするものの、思想的観点から見ると、両者の間には共振するところがある。


This paper gives the explanation of 1960's Okinawa Reversion and show it as 'Okinawa intiative'. In addition, this paper accepts at 1960's Reversion Movements, based mainly on the arguments of Arasaki Moriteru, as a movement that accepted 'Okinawa' as defined by the U.S. government,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Third World, and renewing 'Okinawa' to change regulations from outside. I Also, it is already a part of 'Okinawa initiative' which should have been done. This paper also examines how the reversion movements looks and affects Zainichi Koreans in the perspective of Zainichi Korean.
This paper explains Zainichi Korean Literary Scholars, Kim Dal-su, Kim Si-jong, Kim Sok-pom. Each of them discussed 'Home', 'Autonomy', 'Circumstance' and etc. Kim Dal-su, Kim Si-jong are also mentioned in Okinawa. In other words, we can read Okinawa Reversion or 'Okinawa initiative' by introducing the perspective of the others. It is necessary to research thoroughly how much Zainichi Korean gave attention to the Reversion movements, and both of them are resonating each other in the ideological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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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선의 정치학과 내부식민지의 탄생 - 1962년 산업박람회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동현 ( Kim Do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4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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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2년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있었던 해녀의 전시를 중심으로 당시 박람회의 성격을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962년 전시된 해녀들의 존재는 박람회가 지닌 근대성의 위계를 신체적 재현으로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재현의 장에서 해녀들이 직접 작은 수족관에서 해초를 캐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는 도시(문명)/바다(미개), '보는 자'/'보여지는 자', 남성/여성 등의 구분을 위계화한 식민지적 근대의 탈식민적 버전이었다.
해녀 전시는 '보는 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시각적 장치였다. 해녀를 보여지는 대상으로 시각화하면서 '보는 자'는 우월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다. 이는 해녀의 신체를 보여지는 물적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적 재현으로 이어졌다. 박람회 상품 전시와 함께 마련된 잠수관의 존재는 박람회가 근본적으로 지닐수밖에 없었던 근대적 지(知)의 본질과 한계, 즉 시선의 위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해녀 실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욕망이 박람회라는 근대적 시각 장치안에서 실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혁명'의 정당성과 '경제 재건'의 과제를 나란히 배치하고 있었던 시각적 미디어의 장에서 '해녀'의 조업은 '실연'되었다. 그 '실연'은 사실 '실연'이 될 수 없는 '거짓의 재현'이었다. 실제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녀 조업의 모습은 수족관에서 재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해녀 실연'은 실연이 아니라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시각적 재현물일 뿐이었다. 그것은 상품 전시와 같은 물적 존재로 보여지는 것이었다. 신체성이 소거된 재현 방식,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박람회의 지(知)에 내재된 식민지적 근대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exhibition at that time, focusing on the exhibition of Kaimyo, which was held in 1962. The presence of the nautical girls on display in 1962 shows the degree of modernity of the exhibition through physical reenactment. The act of showing the nautical girls at the scene of reenactment was a decolonial version of the colonial modern era, which falsified the categories of urban sea (civilized), viewer, visible person, male and female.
The exhibition was a visual device created by the desire of the viewer. It was visualized as an object to show the nautical woman, and the viewer was able to occupy a superior position. This led to a violent reenactment that turned the body of a seaman into a physical being. Exhibition halls) are an empirical example of the essence and limitations of modern wisdom, which the exhibition had to possess at its core, or how the scale of vision worked.
The problem with the exhibition is that this desire was realized in the modern visual device of the exhibition. “The Sea Girl” was exhibited in the visual media where the legitimacy of the “revolution” and the task of “economic reconstruction” were lined up.It was actually a “false reenactment” that could not be an “exhibition.” Since it was impossible to reproduce the actual fishing scene in the aquarium, the “performance of the nautical woman” was not a demonstration, but a visual reproduction. It was seen as something like a trade fair. The reproduction method in which physicality was erased was possible because the colonial modernity inherent in the knowledge of the exposition was lo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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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독자'로서의 편집자와 재일조선인문학의 네트워크 - 김석범 문학을 중심으로 -

저자 : 조수일 ( Cho¸ Su-il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1-7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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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자'로서의 편집자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로서의 일본인 편집자와 재일조선인문학의 네트워크를 추적함으로써 재일조선인문학 연구의 새로운 시좌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첫째, 재일조선인문학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1970년을 전후로 한 일본사회는 반전과 반핵을 외치는 시민운동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반목이 이어지던 상황이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재일조선인 문제와 그들의 사유는 차별과 혐오, 오염, 오키나와 반환 등의 사회문제와 더불어 일본어 공론장에 등장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둘째, 재일조선인 지식인이 일본어 공론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데에는 '독자'로서의 일본인 편집자의 역할이 있었고, 특히 김석범 문학에 있어서는 다무라 요시야라고 하는 '편집장정가'가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을 읽고 김석범에게 일본어 창작을 위한 장과 네트워크를 제공했다는 점을 밝혔다.
셋째, '독자'의 목소리를 통해, 제주4·3사건과 해방공간을 산 이들의 기억을 담은 『화산도』가 한국어로 온전히 번역된 지금, 이에 대해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한국어 공론장에서 그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고,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연구를 통해 국제적으로 공유해 나가야 한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 new perspective in the study of Zainichi Korean Literature. especially this study focus out the network of Japanese editors as the 'reader' and Zainichi Korean Literature.
First, this study examined that around 1970, when Zainichi Korean Literature began to show their presence, Japanese society continued to protest against the anti-war civil movement and US-Japan Security Treaty, and Zainichi Korean's works appeared in the Japanese public forum along with discrimination, hate, pollution, and Okinawa reversion.
Second, it figured out that the Japanese editor's role as a 'reader' was largely responsible for allowing Zainichi Korean intellectuals to show their presence in Japanese journalism. In particular, this study dealt out that in Kim Sok-pom's works, the editor and book artist Yoshiya Tamura read The Death of the Crow(鴉の死) and provided Kim Sok-pom with network for Japanese creation.
Third, this paper proposed that what is needed now is the foundation of interdisciplinary research, as Kazantō(火山島, Hwasan-do) has been translated into Korean, which contains the memories of the The Jeju 4.3 Incident and those who have lived the liberation space. In addition, it is important that through the translation and research of Hwasan-do into various languages, the task proposed to share the problematic consciousness of Hwasan-do interna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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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일 정치적 갈등이 무역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

저자 : 김용민 ( Kim Yong-min ) , 송정현 ( Song Ju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10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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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외교적 갈등이 한국의 무역과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 및 2019년 8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의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양국 간 정치적 쟁점과 외교 마찰이 경제적 지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정치학 관점에서 최근 한일 양국관계의 흐름을 분석함과 동시에 정치 및 외교적 갈등의 쟁점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강제징용피해 문제 갈등 시기에 이들 품목에 대해 일본의 수출 감소가 관찰되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주식과 투자 펀드, 중장기 채권에서 미국과 중국에 비교하여 변화가 크게 나타나 자본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하였다.
세 번째, 반도체 소재 등에서 한국으로의 수출 감소가 두드러졌다. 정치적 마찰이 경제적 영향으로 심화 될 경우의 부작용과 경계심을 향후 연구에서보다 면밀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political and diplomatic conflicts between Korea and Japan are affecting Korea's trade and investment. Japan's measures to regulate semiconductor exports in July 2019 and Korea's exclusion in the whitelist country in August 2019. These Japanese export restrictions are affecting Korea's trade and investment. Therefore, a comprehensive approach is needed on political issue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the impact of diplomatic friction on economic indicators. Therefore, this study analyzed the recent trend of Korea-Japan relations in terms of political perspectives and diplomatic conflict issues.
The analysis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due to its impact on the Korean economy, Japan's exports to such items were observed during the conflict over the issue of forced labor. Second, big changes were observed in stocks, investment funds and mid- to long-term bonds compared to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ccordingly, it was analyzed that capital movements are starting in earnest. Third, the decline in exports to Korea was noticeable in semiconductor materials. In conclusion, future studies should carefully grasp the side effects and vigilance of political friction when it intensifies into economic eff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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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근대 일본 식민정책학의 전후(戰後) - 아시아 연구의 관전사(貫戰史) -

저자 : 박양신 ( Park¸ Yang-shi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3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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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게이오기주쿠대학 교수 야마모토 노보루(山本登)를 대상으로 전전의 식민정책학 연구가 전후 아시아 연구로 이어지는 양상을 관전사(貫戰史)의 시점에서 추적함으로써 식민정책학 연구가 전후 일본의 아시아 연구의 한 원류였음을 밝힌다.
전전 야마모토는 조선과 대만의 경제를 원료 및 식량의 공급과 본국 공산품의 소비라는 전형적인 식민지적='외지적' 성격을 갖춘 것으로 분석했다. 그 위에 1940년대 들어 정부가 제창한 '대동아공영권'을 '동아광역경제권론'으로 이론화하여 동남아시아='남방'을 포함한 '동아' 지역 내 경제의 유기적 결합을 논하는 한편, '남방'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패전 후 일본의 식민지 상실에 따라 식민정책학은 존립 근거를 잃고, 각 대학에서는 '식민정책' 강좌를 세계경제(론) 내지 국제경제(론)으로 바꾸고, 식민정책학은 마침내 국제경제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야마모토는 세계경제로 전공을 전환하면서도 전전에 착수했던 남방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아시아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아시아 연구의 재건을 위해 아시아경제연구소의 설립, 아시아정경학회 창설 등에 관여했다.
전후 야마모토의 아시아 연구는 아시아 경제개발과 아시아 지역 내 경제협력체제의 형성에 집중되었다. 그는 아시아 경제개발에서 외자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으며, 지역 내 경제협력체 구성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을 했다. 그 결과 복수의 저개발국이 외국 원조의 공동 수용기구를 수립하여, 이것을 공동의 개발기구로 발전시켜간다는 '경제개발공동체'를 구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지론으로 주장해갔다.


This paper analyzes the academic achivement of Keio University professor Yamamoto Noboru and traces how prewar colonial studies research leads to postwar Asian studies from a trans-war history perspective. Through this, it is clarified that the study of colonial studies before the war was one of the sources of Asian studies in postwar Japan.
Before the war, Yamamoto analyzed the economy of Korea and Taiwan as having a typical colonial character, such as the supply of raw materials and food and consumption of domestic products. In the 1940s, he theorized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proposed by the government as 'East Asia Greater Economic Theory', while starting research on Southern Asia.
After the end of the war, each university changed the course of 'colonial policy' to 'international economy (theory)', and colonial policy studies finally reborn as international economics. Yamamoto continued his studies on Asia based on the study of the Southern Asia, which he had undertaken before the war, while converting his major to international economy.
Yamamoto's research on Asia focused on economic development in Asia and the formation of an economic cooperation system in the Asian region. He emphasized that the introduction of foreign capital is essential in economic development in Asia, and insisted on the conception of an 'economic development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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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스포츠 내셔널리즘과 재일코리안 선수들의 대응

저자 : 신승모 ( Shin Seung-mo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54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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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현대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의 친화적 상관관계에 주목하면서 스포츠계를 둘러싼 일본 내 '혐한(嫌韓)' 언설이 어떠한 환경에서 배태, 형성되어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권위를 획득해 갔는지를 살폈다. 주로 축구를 중심으로 일본의 프로리그인 J리그와 서포터 문화, 월드컵을 비롯한 국가 대항전을 둘러싼 소동, '넷우익(Net右翼)'의 등장배경을 검토하였다. 이어서 이 같은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확대와 한일 양국의 배외주의에 대해 3세대 이후 재일코리안 스포츠 선수들이 국적과 시민권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모습과 그들의 복수 아이덴티티를 이충성, 정대세 선수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피면서 그 대응방식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한일 양국의 배외주의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3세대 이후 재일코리안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의 선수 커리어를 위하여 국적을 바꿔가며 스타디움을 무대로 자신의 존재와 실력을 입증해왔다. 윗세대인 1, 2세대 재일코리안이 한국 혹은 북한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거나 조국지향이 강했던 것에 비해, 이들 3세대 이후 재일코리안 스포츠 선수들은 어느 한쪽, 즉 한 국가에 귀속, 구속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유연한 복수 아이덴티티를 지니면서 자신의 진로와 커리어를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국민국가의 굴레에 구속되기 보다는 재일로서의 자기 존재를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국경을 넘어 활약해온 이들의 활동은 스포츠계를 넘어 새롭고 다양한 재일의 존재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Noting the friendly correlation between modern and modern sports and nationalism, HQ examined in what circumstances the “anti-Korean” remarks surrounding the sports world were formed and formed to gain the authority of sports nationalism. It reviewed the background of the appearance of “Net Right” and the J-League, the culture of supporters, the World Cup, and the national competition. In response to the expansion of sports nationalism and the exclusion of both Korea and Japan, the two countries highlighted the meaning of the response by looking at the activities of Zainichi Korean sports players and citizenship after the third generation.
After the third generation, Zainichi Korean sports players have demonstrated their existence and skills by changing their nationality for their career, despite being attacked by the two countries. Compared to the older generation,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 of Zainichi Korean were forced to choose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the third generation showed Zainichi Korean sports players developing their careers and careers by having a flexible plural identity. Rather than being bound by the yoke of the nation's national anthem, their activities across the border while flexibly utilizing their presence as Japan are a history of “present progress” beyond the sport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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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의 '남양(南洋)' 소설론

저자 : 엄인경 ( Um In-ky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5-17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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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근 일본의 ACG 문호물에서 가장 활발하게 호명되고 있는 나카지마 아쓰시 문학과 작가적 경험에 주목하여 말년의 '남양' 관련 소설군의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확대와 그가 작가로 데뷔하고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며 지병의 악화로 사망한 것은 모두 1942년인데, 그는 1941년부터 42년에 걸쳐 일본의 식민지였던 팔라우에서 남양을 체험한다. 남양행을 전후하여 발표된 남양 관련 소설군 「빛과 바람과 꿈」, 「남도담」의 세 단편, 「환초――미크로네시아 순도기」의 여섯 단편 등을 대상으로 하여, 남태평양 원주민을 그려낸 특징과 남양군도라는 공간이 빚어내는 특수성을 고찰하였다.
남양으로 가기 전에 쓴 「빛과 바람과 꿈」에서는 원주민은 '토인'이라는 말이 갖는 미개와 원시라는 차별과 편견의 어휘가 보여주듯 소설 속에서 배경적 이미지에 가까운 존재로서 그려진다. 반면, 남양 체험 이후 그가 주목한 원주민은 신의나 의리나 자존심 같은 인간 보편의 정서를 가지며 현실의 고난이나 불행에 반역하여 행복과 자긍으로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들로 그려지는 변화를 확인하였다. 또한 '남양'은 나카지마 아쓰시에게 자아분열을 일으키고 인간의 꿈을 배태하는 공간으로 기능함을 도출할 수 있었으며, 부동의 '세계'와 변형의 '취향'을 살린 그의 남양 소설의 특질은 나카지마 아쓰시 문학 세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South Sea-related novels of his last years while focusing on the characterization of Atsushi Nakajima, the most actively called in Japanese ACG(Anime·Comics·Game) culture in recent years. The expansion of the Pacific War, his debut as a writer, nomination for the < Akutagawa Prize > and his death because of an illness happened all in 1942, but he experiences the South Sea in Palau(Japanese colony) from Summer 1941 to Spring 1942.
Targeting a group of novelties related to the South Sea published before and after arrival to South Sea, Light, Wind, and Dream, three shorts of Stories from South Sea Islands, and six short stories of Atolls : Records of traveling around the islands of Micronesia, it was able to contemplate the characteristic of depicting natives of the South Pacific and the specificity created by the space called South Sea Islands.
The indigenous peoples of the South Seas, which Atsushi Nakajima noted, have no choice but to be savage or primordial in terms of their environment and life, but they possess universal human emotions such as faith, loyalty, and pride, and can rebel against the hardships and misfortunes of reality, overthrowing them with happiness and self-esteem. In addition, it was possible to derive that the South Sea functions as a space that embodies self-division and human dreams through the literary techniques of “Sekai(world)” and “Shyukō(flavor)” for Atsushi Nak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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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의료사무 장면에서의 공통어와 방언 간 코드 스위칭에 관한 연구

저자 : 윤상한 ( Yoon¸ Sang-ha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7-20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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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의료기관의 접수와 수납 장면의 회화를 분석하여 공통어와 방언 간의 코드 스위칭이 어떻게 나타나며, 또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하여 분석·고찰하였다.
분석의 결과, 일본의 병원 접수 창구의 회화 장면에는 다양한 코드 스위칭이 나타나며, 이러한 코드 스위칭은 회화 참가자의 사회적·직무적 속성과 역할, 회화 주제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코드 스위칭에는 회화의 상황을 전환하거나 주제를 바꾸는 등 발화문 내에서의 기능과 함께, 대화 상대방에게 정서적인 유대감을 나타내거나 거리를 조절하는 등 화용론적 기능이라고 하는 참가자들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언어 사용 책략이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This research analyzes the conversation that takes place at the reception of medical institutions, and analyzes and examines how code switching between common languages and dialects appears and works.
According to the analysis, code switching in hospital reception and storage situations depends on various factors such as social and job attributes and roles of conversation participants, and changes in conversation themes.It was found that code switching is intentionally and actively used as a linguistic function such as changing the situation of conversation and changing the theme, expressing solidarity with the conversation partner, and adjusting the d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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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정책을 둘러싼 내무성과 조선총독부의 '갈등'

저자 : 이승희 ( Lee¸ Sung-hee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3-22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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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둘러싼 일본 내무성과 조선총독부 간의 갈등 양상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일조선인 문제를 둘러싼 양자의 입장 차이를 도출하고자 한다. 한일합방 이후 1920년대 초까지는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은 3.1운동 시기를 제외하고 일본 내무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심화된 전후 불황의 영향으로 취업난이 증가하자, 1923년 5월 내무성은 조선총독부와 협의하여 일본 전국의 각 하부기관에 「조선인 노동자 모집에 관한 의명 통첩」을 하달하고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유입을 규제하였다. 이후 내무성과 조선총독부는 상호협의를 통해 조선인의 일본 도항을 규제하는 공조체제를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일본 국내의 '치안유지'와 '경제 상황'을 이유로 1920년대부터 일방적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을 규제해온 내무성의 입장과, 조선인들의 축적된 불만을 직접 누그러뜨리며 통치해야 하는 조선총독부의 입장 사이에 1930년을 전후해 점차 괴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929년 12월 '내선융화'를 내세우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지나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 규제 방침에 불만을 갖고 내무성에 반대 의견을 보냈다. 사이토는 법리적으로 조선은 일본의 외국이 아니기 때문에 신민인 조선인의 제국 내 이동을 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내세워, '실업 문제 완화'를 구실로 조선인의 일본 도항을 저지시키는 조치는 '매우 불합리'하고 조선 통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내무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규제는 완화되지 않았다. 1938년 3월에는 '내선일체'를 표방하던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조선인에 대한 일본 도항 규제 정책을 비판하며 일본에 도항하는 조선인 노동자 및 재일조선인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을 6개 항목에 걸쳐 요청하였다. 내무성은 이중 절반인 3개 항목에 대해서만 일정부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내무성은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 제한 조치가 기본적으로 정책적인 문제로 법적 근거에 기인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의 지속적인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내무성은 '치안유지'와 '경제 상황'을 우선하면서 조선인 도항자에 대한 강제송환률을 높여나가 1939년에는 90%대까지 끌어올렸다. 내무성의 이러한 조선인 일본 도항 규제 정책은 패망 때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기본적으로는 '내선융화',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여 조선인을 '동화'시키고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하는 내무성의 '차별'적이고 '배제'를 내세우는 조선인 도항 규제 정책에 기본적으로 협력하는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consider the aspects of conflict between Japanese Home Ministry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bout planning and implementing policy for Korean laborers' voyage to Japan. By that, this study aims to draw differences between the two parties' positions regarding the matter of Koreans living in Japan.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till the early 1920's, Korean laborers' voyage to Japan was not controlled directly by Japanese Home Ministry except for the period of the 3.1 Movement. With the influence of after-war recession deepened from the 1920's, however, unemployment crisis got severer. Consequently, in May, 1923, discussing with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 Home Ministry issued 'On-order Notification about the Recruitment of Korean Laborers' to all the subordinate offices in Japan and controlled Korean laborers' inflow into Japan. After that, the Home Ministry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maintained a cooperation system to control Koreans' voyage to Japan through mutual discussion.
Meanwhile, a gap began to be created gradually around 1930 between the position of the Home Ministry that had controlled Korean laborers' voyage to Japan unilaterally from the 1920's due to Japan's domestic needs for 'security maintenance' and 'economic circumstances' and tha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hich had to rule Koreans directly softening their dissatisfaction being piled up. In December, 1929, Chosun governor Makoto Saitō sent opposing opinion to the Home Ministry complaining its excessive policy to control Korean laborers' voyage to Japan. Setting forth the point that Chosun was not a foreign country to Japan juridically, so there was no 'legal ground' to forbid Koreans, the subjects, from moving into the empire, Saitō criticized it saying it was 'too absurd' to make a move to stop Koreans' voyage to Japan in the name of 'resolving the problem of unemployment' and it should 'significantly influence' their rule over Chosun, too. The Home Ministry, however, was unwilling to accept that, and the control did not get relaxed. In March, 1938, Chosun governor Jirō Minami criticized the policy to control Koreans' voyage to Japan asking with six articles for improving the conditions of Korean laborers sailing for Japan and also Koreans living in Japan. About only three articles, half of them, the Home Ministry expressed its positive position partly. The Home Ministry adhered to its position that the measure to limit Korean laborers' voyage to Japan was basically a matter of policy and not an absolute thing attributed to legal grounds. Despite the continuous reques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for refraining, the Home Ministry stressed 'security maintenance' and 'economic conditions' and increased the rate of repatriating Korean passengers coercively up to 90% or so in 1939. The Home Ministry's policy of controlling Koreans' voyage to Japan continued until the collapse.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as in a dilemma as it was basically in the position to promote the policies of 'Harmony between Japan and Chosun' and 'Japanization' but had to maintain the system to cooperate with the Home Ministry's discriminative policy for controlling Koreans' voyage fundamentally which was contrary to the former.

KCI등재

10『소운입명기(笑雲入明記)』를 통해서 본 15세기 중반의 명(明)·일(日) 관계와 진공(進貢)·무역(貿易)

저자 : 임경준 ( Lim¸ Gyungjune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7-24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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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寶德度 遣明使에 참여한 笑雲의 『笑雲入明記』를 통하여 15세기 중반의 明·日 관계와 進貢·貿易의 양상을 고찰하였다. 寶德度 遣明使는 총 9척의 선단에 탑승 인원만 1,200명으로 19회에 걸친 明代의 遣明使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였다. 그런데 明朝의 입장에서는 進貢과 貿易은 그 자체로 朝貢이라는 외교의례에 대하여 특별히 허락한 恩典이었다. 반대로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朝貢과 관련된 업무는 어디까지나 무역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수속이나 절차적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明·日 양측의 同床異夢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明朝의 日本에 대한 경제적 우대가 전제조건으로 깔려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는 土木保의 變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明朝의 대외정책이 수세로 전환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笑雲入明記』는 이러한 배경 하에서 明·日 양국 간의 정치적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장면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일급사료라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Shoun-Nyumin-ki” by Shoun, an envoy dispatched to the Ming dynasty by the Muromachi bakufu, in order to clarif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ing dynasty and the Muromachi bakufu in the mid-15th centur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ing Dynasty and Japan was based on the tributary system. However, the Ming dynasty and Japan had different attitudes toward tributes. From Ming's point of view, trade with Japan meant a kind of reward for tribute. In contrast, for Japan, paying tribute to the Ming dynasty was merely a procedure necessary for trade. Therefore, in order to establish a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the Ming dynasty, which had different purposes, it was necessary to have a precondition that the Ming dynasty would provide economic benefits to Japan. However, the Ming Dynasty had to shift its foreign policy from active to passive due to the Tumu Crisis. This caused conflicts between the Ming Dynasty and Japan as well.  “Syoun-Nyumin-ki” is an important historical source that vividly conveys the scene of political cracks between the two countries under this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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