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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view of Korean Cultu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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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598-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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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74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918
한민족문화연구
74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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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함성호 시에 나타난 건축위상학적 상상력과 헤테로토피아

저자 : 엄경희 ( Eum Kyoung-hee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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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발달사는 공간-장소의 분할·배치에 의해 형성된 사회·문화적 위계(位階)를 지속시키려는 계층과 해체하려는 계층 간의 역학관계라는 측면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장소로서의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부정적 장소로서의 디스토피아와 추상적 '역'(逆)의 관계를 이룸으로써 비(非)역사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한 유토피아의 비역사성을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미로운 유토피아”로 지칭하고, 그에 맞서 “지도 위에 위치 지을 수 있는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들”로서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대항담론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현실화되는가? 이 질문을 바탕으로 공간-장소와 실존의 위상학(位相學, topology)적 관계를 규명하고, 공간-장소의 위상학이 어떻게 시적 상상력에 투영되어 근대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헤테로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하는지를 함성호의 시를 중심으로 밝힌 것이 본고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한 논지 전개를 위한 이론적 기초 작업으로 미셸 푸코가 제시한 헤테로토피아와 헤테로토폴로지의 배치원리가 지닌 내적 한계를 먼저 살펴보고, 그에 대한 보완으로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세속화'(世俗化, profanazione) 개념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헤테로토피아의 실천 전략이 공간-장소의 '재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세속화 방식,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수사(修辭)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위의 작업을 토대로 함성호 시에 나타난 1) '성'(聖)과 '속'(俗)의 장소적 '교직'(交織), 2) '실존'과 '역사'의 장소적 '교차'(交叉)라는 위상학적(=건축학적) 구도가 세속화를 기반으로 한 헤테로토피아적 전망에 있다는 것을 분석하고, 함성호 시의 시사적(詩史的) 의의가 80~90년대 한국 현대시의 주조를 이루었던 지식인들의 자기반성적 '해체' 경향과 달리 '장소-실존적 분투'로서의 해체를 실험한 '건축학적 헤테로토피아'에 있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했다.


A developmental history of civilization is explicable in the dynamic relation between two types of class. One type desires to maintain the sociocultural hierarchy that has been formed by the division-placement of space-place, and the other type desires to deconstruct the same hierarchy. Utopia as an ideal place in nowhere reveals its non-historical nature by its abstractly 'reverse' relation to distopia as a negative place in reality. By Michel Foucault who calls the non-historicity of utopia a “sweet utopia,” heterotopia as “utopias having their respective places to be posited on maps” is presented as a counter-discourse against it.
If so, how can heterotopia be realized? This paper purposes essentially to inquire, from this question, into the topological relation between space-place and existence, and to illumine, centering around Hahm Sung-ho's poetry, how this topology of space-place is projected to the poetic imagination and presents the distopian reality and heterotopian prospect of modern cities. To develop this argument, a theoretically basic study begins by considering the inner limits of the placing principles of heterotopia and heterotopology which are proposed by Foucault. And to supplement this study by connecting organically with Giorgio Agamben's conception of 'profanazione,' a close relation is discovered between the practical strategy of heterotopia and the method of profanazione, especially postmodernistic rhetoric, aiming for the 'reconstruction' of space-place.
On these studies, it is analyzed that the topological (=architectonic) composition of (1)the spatial 'fabric' of 'divinity' and 'profanity' and (2)the spatial 'cross' of 'existence' and 'history' in Hahm Sung-ho's poetry consists in the heterotopian prospect on the basis of profanazione. Consequently, a significance of poetic history of Hahm Sung-ho's poetry consists not in the self-reflective 'deconstruction' of intellects that was the main trend of the modern poetry of Korea in the 1980~90s but in the 'architectonic heterotopia' that experimented in deconstruction as a 'spatial-existential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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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0~80년대 재일(在日) 종합문예지 『한양』 게재 문학작품의 서지적 연구

저자 : 하상일 ( Ha Sang-il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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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60년대~80년대 일본 동경에서 발간된 재일(在日) 종합문예지 『한양』의 서지사항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분석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여 제시한 것이다. 1962년 3월 창간호부터 1984년 3월 177호에 이르기까지 전 목차를 바탕으로, 시, 소설, 비평 분야 발표 작품을 확인하고, 장르별, 작가별 목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 결과 시 분야는 241명의 시인이 총 1,474편, 소설 분야는 78명의 소설가가 372편, 비평 분야는 65명의 비평가가 261편의 문학작품을 게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국내 문인은 약 60%, 재일조선인 문인은 40%정도로 추정되는데, 당시 발간 경위와 주요 필진의 동향 등에 대한 실증이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러한 구분은 지금으로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한양』게재 문학작품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참여문학으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졌다. 또한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민족적 특수성을 구현하는 제재 및 주제의 방향성도 핵심적인 주제와 제재를 이루었다. 특히 일본에서 발간된 다른 재일조선인 매체와는 달리 한국어를 사용했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폭넓은 필진 구성으로 인해 특정 이데올로기나 국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편향된 시각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의 균형적인 목소리를 담아냈다. 따라서 『한양』은 한국문학 담론의 확장은 물론이거니와 재일조선인의 세대적 정체성을 넓히는 종합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한양』은 남북으로 이원화된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을 그대로 재현했던 재일조선인 사회의 정치적 긴장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 거주 조선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결집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This thesis organizes bibliographical points about 『Hanyang』, a general literary magazine published in Tokyo, Japan from the 1960's to 80's and presents the summary of contents analyzed briefly about it. Based on the entire contents contained in its first issue published in March, 1962 up to No. 177 of March, 1984, this author has checked all the works published in it including poems, novels, and critiques and arranged the genres and writers' list systematically. According to the results, about poetry, 241 poets' total 1,474 poems, about novels, 78 writers' 372 novels, and about criticism, 65 critics' 261 works are found in it. Among them, Korean literary persons are about 60%, and Korean Japanese are thought to form 40% or so; however, as of now, it is hard to verify the details of publishment or the trends of major writers of the time mostly, so this author deems that such distinguishment would not be much meaningful now.
Literary works published in 『Hanyang』 are noteworthy as participating literature associated with Korea's political or social circumstances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Also, about the directivity of topics or subjects, how they embodied their own identity or ethnic distinctiveness as Korean Japanese formed major topics or subjects. Particularly, unlike other Korean Japanese media released in Japan then, they used Korean, and with a wide range of writers that encompassed both conservatives and progressives, they did show not biased views supporting or criticizing certain ideology or national policy unilaterally but diversified standpoints in balanced voice. Therefore, 『Hanyang』 revealed not only the extension of discourse in Korean literature but holistic characteristics widening the generation identity of Korean Japanese all at the same time. In this sense, 『Hanyang』 is exceptionally meaningful in that it overcame political tension in Korean Japanese society that only reproduced ideologic stiffness resulted from division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just as it was and played pivotal roles in combining the ethnic identities of Chosun people living in both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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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통일이행기 한국문학-분단체제 이후의 모색-

저자 : 신철하 ( Shin Chul-ha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0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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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의 현 단계를 특징짓는 것은 미적 레짐으로서의 아포리아다. 그것은 분열의 내면을 거느린다는 점에서 분단체제와 변별되는 '통일이행기'의 문화적 구성을 자질로 한다. 통일이행기를 특징짓는 정념은 통일시대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분단체제를 수용하는 분열된 내면을 특징으로 하며, 그런 이유로 분단과 통일, 전쟁과 평화, 보수와 혁명, 밤과 낮, 남과 여, 증오와 사랑의 대립적 긴장을 하나의 주제로 내면화해야 하는 어려움을 요구한다. 통일이행기 한국문학의 전위를 보여주는 국경의 해체, 이데올로기의 해체, 국가주의의 해체는 그런 시대정신의 정확한 재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What characterizes Korea's current stage is Aporia as an aesthetic regime. It is characterized by the cultural composition of the “tongil-ihaenggi” which is distinguished from the divisional system in that it has the inner side of schizo. The virtue that characterizes the tongil-ihaenggi is characterized by the schizo inner part that accepts the divisional system while go forward toward the unification era. For that reason, calls for division and unification, war and peace, conservative and revolutionary, night and day, over the South, the difficulty of internalizing the oppositional tension of hatred and love as a topic. The dismantling of borders, dismantling of ideology, and dismantling nationalism, which show the dislocation of Korean literature during the period of unification, can be evaluated by the accurate representation of the spirit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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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시 이념 '문화'를 둘러싼 상징투쟁

저자 : 장인수 ( Jang In-su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1-14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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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념 '문화'는 국방부 정훈국,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주변의 관학적 지식 엘리트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은 한국전쟁의 대의명분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호로 부상한다. 지식 엘리트에게 '문화'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문화에 응전해가면서 새롭게 창조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는 정훈 계통, 문총과 종군작가단의 문인에 의해 전파된다. 이 기획과 전파의 구도 안에는 이미 '지식의 위계'가 전제되어 있었고, '문화'라는 기호는 전시기 상징투쟁의 장을 연다. 문인들은 이념으로서 '문화'와 구체적 '생활'의 괴리를 느끼며 번민한다. 임긍재는 '생활'의 문제를 '모랄'의 차원으로 다룸으로써 이 괴리를 봉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문화를 규범적인 것으로 성역화하는 길로 이어진다. 전시기 '문화'는 점점 초월적 기표가 된다. 적치하에서 부역 혐의를 받은 문인은 '문화'를 정치와 무관한 반공·자유주의적 기호로 전용한다. 그러나 이 전용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 행위였음은 물론이다. 전시기 많은 문인이 '문화'라는 기호로 상징투쟁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에 관여하고자 한다. 문화보호법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그들은 '문화'를 일종의 '칭호'로서 획득하고자 경쟁한다. 또 여성의 풍기 문란과 부산의 퇴폐한 세태 등을 '문화'가 아닌 것으로 상대화함으로써 '규율하는 언어'로서 '문화'를 전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칭호와 상대화의 상징투쟁을 통해 지배계급의 원리를 재생산하는 데 부지불식간에 가담하게 된다.


The wartime ideology “culture” is formed by the government-run intellectual elite around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s AFIED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s National Institute of Thought. It becomes an important sign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justification of the Korean War. For the intellectual elite, “culture” was not a matter of either capitalism or communism, but of responding to foreign cultures and creating new ones. The culture formed like this is spread by the AFIED, and the War Writers' Group. Within this composition of planning and propagation, “the hierarchy of knowledge” was already premised, and the sign of “culture” opens the stage for symbolic struggles during the wartime period. Writers suffer from the difference between wartime ideology “culture” and specific “life”. Lim Geung-jae seeks to bridge this gap by treating the issue of life as a “moral” dimension. But as a result it leads to a path to sanctifying culture as normative. The wartime 'culture' becomes an increasingly transcendent significant. Writers accused of collaboration under the enemy rule use “culture” as anti-communist and liberal symbols unrelated to politics. But of course, the appropriation itself was extremely political. Many wartime writers want to engage in “politics” by participating in symbolic struggles under the sign of “culture.” Amid the chaos surrounding the Cultural Protection Law, they compete to acquire 'culture' as a kind of 'title'. In addition, the writers aims to transfer “culture” as a “discipline language” by relativizing women's promiscuity and Busan's decadent world as not “culture.” However, they unconsciously participated in reproducing the principles of the ruling class through a symbolic struggle for title and relativ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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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어와 미얀마어 '손'관련 관용표현에 대한 비교 연구 -개념적 은유 이론을 중심으로-

저자 : Mya Myint Zu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6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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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인지언어학적인 측면에서 개념적 은유를 통해 신체 관용표현 중 '손'관련 관용표현을 중심으로 개념화 양상 및 특징에 대해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한국어와 미얀마어에 있는 '손'관련 관용표현의 개념적 은유는 어떻게 은유화되고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교하여 고찰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과 『Myanmar Language Dictionary』에 수록된 '손'관련 관용표현을 대상으로 하여 근원영역과 목표영역 간의 개념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어와 미얀마어에 있는 '손'관련 관용표현에서의 존재론적 은유로는 1) 그릇 은유, 2) 음식물 은유, 3) 끈 은유, 4) 물체 은유, 5) 온도 은유, 6) 이동 은유, 7) 행동 은유, 8) 문 은유의 총 8가지의 근원영역으로 나누어서 고찰을 진행하였다. 한국어와 미얀마어에 '손'관련 관용표현의 은유화 양상은 '그릇', '끈', '물체', '온도', '이동', '행위'에서는 서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한국어와 미얀마어에는 서로 다른 민족의 문화 및 사고방식이 담겨 있지만, 신체화된 '손'관련 관용표현에서는 유사한 점이 발견 되었다. 이 연구는 인지언어학 관점에서 양 언어 '손'관련 관용표현의 개념화 양상을 살펴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자료는 관용표현에 관한 한국어를 배우는 미얀마인 학습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conceptualization, focusing on the expression of idioms with related to the 'hand' through conceptual metaphors from the perspective of cognitive linguistics. The conceptual metaphor of the 'hand' idioms in Korean and Myanmar was compared by examining how it was metaphorized and what characteristics it has. The conceptualization pattern between the source domain and the target domain was examined by targeting the 'hand' idioms contained in 『Standard Korean Dictionary』 or the 『Myanmar Language Dictionary』. The ontological metaphors in Korean and Myanmar idiomic expressions related to 'hand' are 1) bowl metaphor, 2) food metaphor, 3) string metaphor, 4) object metaphor, 5) temperature metaphor, 6) movement metaphor, 7) action Metaphor, (8) door Metaphor which was divided into a total of 8 root areas. It can be seen that the metaphors of 'hand' idioms in Korean and Myanmar are similar to each other in 'bowl', 'string', 'object', 'temperature', 'movement', and 'action'. Although Korean and Myanmar language have different ethnic cultures and ways of thinking, the way of thinking perceived in the embodied “hand” idioms is similar, if not exactly the same. This study is meaningful in examining the conceptualization of idiom expressions related to the body from the perspective of cognitive linguistics in Korean and Myanmar Language. This data is determined to be a great help to Myanmar learners who are learning Korean in a way that can be imagined cogni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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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 영화 <아리랑> -6·10만세 운동 정국政局 속에서 영화 <아리랑>의 확산을 중심으로-

저자 : 임승범 ( Lim Seung-bum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5-20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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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1926년 나운규에 의해서 제작된 영화 <아리랑>이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흥행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민족의 영화로 자리매김을 했는지 그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살피는 것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콘텐츠 중에 하나이다. 오늘날 분단된 남·북한의 민족 동질성을 규명해 줄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는 국외 한인韓人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결속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토속민요로 불리던 아리랑이 한민족의 상징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흥행이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된 1926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서거한 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서 조선의 대중들은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에 맞추어 6.10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등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한편, 영화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1920년대는 무성영화의 시대였다. 영상에서 대사가 나오지 않는다. 변사에 의해서 즉석에서 영화의 대사와 내용이 전달된다. 그러므로 영화<아리랑>은 단 하나의 버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변사와 관객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이본異本이 만들어 진다.
그러면 영화<아리랑>이 어떻게 민족의 영화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까? 이는 6.10만세운동 사건과 그 이후 재판이 전개되는 상황이 <아리랑>의 제작, 상영시기와 시간적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만세 운동으로 고초를 겪는 학생들의 재판이 그 이듬해까지 기사화되고 보도되는 동안 영화도 함께 흥행한 것이다. 당시 조선 대중의 머릿속에는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았을 것이고, 훨씬 더 가혹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당시 조선 대중에 의해 재해석 되었다. 또한, 허리우드 스타일의 영화 구성과 서양 음계에 눈과 귀가 익숙해져 있었던 조선 관객들을 쉽게 매료시켰다. 나운규라는 천재 영화가가 흥행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여 영화를 제작하였다면, 이 영화를 민족주의적 색채로 덧칠한 것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대중들이었다. 이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나마 식민통치에 저항하고 자유를 되찾기를 염원했다. 6.10만세 운동의 실패를 경험한 당시 대중들에게 영화 <아리랑>은 그 울분의 감정을 소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결국 3.1운동의 실패, 6.10만세운동의 좌절을 겪으면서 1920년대를 살아갔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암울했던 자화상이 영화 <아리랑>을 통해서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historical backgrounds and meanings of Arirang, a film made by Na Woon-gyu in 1926, as to how it became a box office hit in the situations of the times and further established itself as the people's movie.
”Arirang” is one of representative content symbolizing the Korean people. Not only does it shed light on the ethnic homogeneity of divided North and South Korea, but it also functions to solidify Korean people overseas living a life of diaspora into one.
The movie Arirang became a box office hit in 1926 after which Arirang, which was sung as a local folk song, emerged as a symbol of Korean people. The movie was played at the cinemas in 1926 when the last emperor of Korean Empire King Sunjong passed away. The people of Joseon took the lead in the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on June 10 when the king's state funeral was held. As a consequence, many Korean people were imprisoned and suffered suppression from the Japanese Empire.
Silent movies dominated the cinema in the 1920s. Instead of actors saying lines, silent-film narrators would deliver the content of a movie at the site. The movie Arirang thus had numerous different versions according to silent-film narrators and the audience rather than a single version.
Made against this backdrop of situations those days, Arirang was reinterpreted by the people of Joseon. The movie, which was created in the social atmosphere of June 10th Movement, easily fascinated the audience around Joseon that was accustomed to the Hollywood-style film composition and Western scale both visually and acoustically. A genius filmmaker called Na Woon-gyu made this movie by making the most use of success factors, but it was the people of colonial Joseon that added nationalistic colors to it those days. They wished to resist Japan's colonial rule and earn their freedom back via the medium of film. However, March 1st Movement in 1919 failed, and they were frustrated with June 10th Movement in 1926. The gloomy self-portrait of Korean people that lived in colonial Joseon in the 1920s was projected in the movie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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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후기 화승(畵僧)의 활약과 불화(佛畵)의 변화

저자 : 신광희 ( Shin Kwang-hee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3-23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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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는 사찰의 불사 주도권이 사찰과 민간에게로 이행하고 불화가 거의 다 일반 사찰에 봉안되었다. 그 과정에서 승려화가가 크게 대두했으며 그 역할도 확대되었다. 이들이 발원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불화 제작을 전담했으며 불교조각의 조성과 채화는 물론 사대부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화주와 주지, 존숙, 통정대부, 그리고 도총섭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화승들이 대두, 활약하고 입지도 공고해지면서 불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변화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불화가 대부분 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역할의 분화도 구체화되었다. 다음으로, 화승의 개성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었다. 불화는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예배와 장엄이라는 특정 용도로 제작된 그림이고 화승들에게 수행과 공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역량있는 화승들은 불화에 각자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했으며 그 결과 이전에 비해 화풍이 매우 다양해졌다. 또한, 저명 화사들이 다수 동참한 불사에서는 각기 화폭을 나누어 제작하는 등 각자의 화풍을 고수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화승들은 불화에 각종 풍속과 풍물 등 세속 이미지를 적극 수용했으며 나한 등의 존상 표현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좀 더 부각했다. 이는 주요 발원계층이었던 민간의 정서를 반영해 그들과 좀 더 친숙하게 교감하고자 했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In the late Joseon Dynasty, Buddhist monk painters dedicated to the creation of the Buddhist paintings, regardless of patrons class. As the initiative of Buddhist affairs moved to the temples and the public, the status and role of the Buddhist monk painters expanded, and nearly all the Buddhist paintings were placed on the public Buddhist temples, Buddhist monks were greatly raised. As a result, there is a great deal of change in the attitude of production of Buddhist paintings. First, cooperation becomes more and roles of the monk painters are divided in the production process. Next, the personality of the monk painter is positively expressed. Buddhist paintings are traditionally conservative. Because the Buddhist paintings are basically made for worship and majesty, and the paintings to them is also the result of practice and merit. However, skillful monk painters actively expressed their individuality in the paintings. The monk painters wanted to communicate more familiarly with the public through the Buddhist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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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재일조선인 혐오의 계보와 인권운동 -고마쓰가와 사건, 김희로 사건, 히타치 투쟁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호 ( Lee Young-ho )

발행기관 : 한민족문화학회 간행물 : 한민족문화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3-26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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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대상으로 발생한 혐오 사건의 계보를 정리하고 고마쓰가와 사건, 김희로 사건, 히타치투쟁을 통해 재일조선인 인권운동의 의미와 역할을 규명한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부터 최근의 헤이트스피치까지 재일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인권운동을 전개하며 혐오에 대한 투쟁을 가시화한다. 1958년 이진우의 고마쓰가와 사건, 1968년 김희로 사건, 1970년 박종석의 히타치투쟁 등은 일본사회에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인권운동 발생 이후의 전개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언론의 조선인에 대한 부정적 표상의 확산, 공권력의 비상식적인 절차 수행과정, 일본사회 기저에 내재된 재일조선인을 향한 혐오감정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 인권운동은 일본의 혐오와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공론화하며 일본 시민사회 및 국제사회와 연대한다. 이와 같은 재일조선인의 활동은 공생사회 일본을 향한 행보이자 혐오와 배타적 내셔널리즘의 안티테제로서 재일조선인의 역할을 증명하는 것이다.


This thesis organizes the lineage of hatred incidents targeting Korean residents in Japan, and also examines the meanings and roles of human rights movement for Korean residents in Japan through Komatsugawa incident, Kim Hee-Ro incident, and Hitachi fight.
From the massacre of Koreans during the Great Kanto earthquake to the recent hate-speech, the hatred incidents targeting Korean residents in Japan have been continued. Under this situation,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visualize their fight against hatred by developing human rights movement. The incidents like Lee Jin-Woo's Komatsugawa incident in 1958, Kim Hee-Ro incident in 1968, and Park Jong-Seok's Hitachi fight in 1970 informed the existence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to Japanese society.
By examining the development after the human rights movement, it is possible to comprehensively verify the spread of negative representation of Koreans in Japanese media, irrational procedural performance process of governmental authority, and hatred against Korean residents in Japan, inherent in the basis of Japanese society.
The human rights movement for Korean residents in Japan brings up the hatred and exclusive nationalism of Japan to the public sphere, and also builds up the solidarity with Japanese civil society and international society. Such activities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re not only the movement towards Japanese symbiotic society, but also proving the roles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s an antithesis of hatred and exclusive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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