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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철학연구 update

Studies in Philosophy East-West

  • : 한국동서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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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5-1968
  • : 2713-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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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4)~104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704
동서철학연구
104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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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재권 ( Rhee Jae-kwo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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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인생의 최고 경지를 가리켜서 '깨달음'이라고 한다. 깨달음은 단순한 앎의 차원이 아니라 거기에 실천의 의미까지 포함하여 앎과 삶이 하나가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는 무위자연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서 해방과 자유의 삶을 살 수 있다. 노자가 깨닫고자 하는 것은 도이다. 도는 노자철학의 기본적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깨달음은 어떻게 오는가? 의식의 전환에서 이루어진다. 기성의 것·관행·관습 등의 문제점을 직시해서 부정하고 비판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깨닫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깨뜨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고의 틀', '인식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노자는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 논문은 노자의 철학을 깨달음의 방법적 측면에서 정리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노자가 말하는 도의 체득(깨달음)의 방해 요인과 도움 요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다음은 도를 체득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노자가 선택한 방법은 주로 부정적인 사유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도를 체득(깨달음)하는 직관적 방법과 내용, 즉 明觀에 관하여 정리했다. 도를 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훤히 꿰뚫어 안다는 것이며,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In the East, the highest state of life is called 'enlightenment'. Enlightenment is not just the level of “knowing something”, but also the meaning of “acting it”, and as a result, it means a state in which knowledge and life become one. The reason we need enlightenment is that we can live the life of Nature Itself(無爲自然). Human beings can live a life of liberation and freedom through enlightenment. What Lao-tzu wants to realize is the Tao. Lao-tzu is trying to master the Tao. Lao-tzu is a realist. The Tao is the basic premise and starting point of the Lao-tzu philosophy. The Tao is the ultimate metaphysical being.
How does enlightenment come to human being? This is accomplished through a shift in consciousness. We must face the problems of established practice, custom, etc., deny and criticize them, suggest new alternatives, and put them into practice. In order to become enlightened, you have to go through the process of breaking the existing ones. In a word, we need to change the 'frame of thinking' and 'structure of perception'. Lao-tzu teaches us the Ways. This thesis summarizes Lao-tzu's philosophy in terms of the method of enlightenment.
In this paper, we first examined the factors hindering Tao's understanding (enlightenment) as described by Lao-tzu. In addition, we investig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language and consciousness, need and desire, etc. in relation to the acquisition of the Tao. The following is a detailed look at how to acquire Tao. The method chosen by Lao-tzu is mainly the method of negative thinking. Lastly, in this thesis, intuitive methods and contents of acquiring (realizing) Tao, that is, Mingzhi(明知), are summarized. To know Tao is to fully understand the principles of the world, and that is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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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수진 ( Kim Su Ji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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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래 이후 불교가 전통사상계와 융합하는 과정은 중국 사상사에 있어 치열하고도 복잡한 전개를 거치며 진행되었다. 특히 육조시기는 불교가 크게 번성한 때로, 불교는 당시 수승했던 도교 세력과의 대립과 마찰을 거듭하게 된다. 이때 도사 고환은 도교를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이하론」을 제기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로써 촉발된 佛ㆍ道 간의 논쟁 가운데, 도사 장융은 「문율」을 통해 '道'를 전제로 '佛'을 포섭하는 이론을 제시하며 불ㆍ도 양교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에 대해 현학가인 주옹은 장융이 「문율」을 통해 제시한 이른바 '道佛本迹'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의 「삼종론」을 준거하여 불교와 도교 양교의 교의를 판별하고 그 위상을 재정립한다. 여기서 주옹이 내세운 판별의 쟁점은 非有非無로써, 이는 위진 현학 이래 승조에서 한차례 총결된 유ㆍ무 관념이 다시금 불ㆍ도 양교의 의리적 층차를 구분하는 잣대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문율」의 담론은 불교 세력의 확장으로 심화된 양교의 긴장관계를 온전히 보여주며, 동진시기 이래 일변된 佛道之爭 속 양교의 교의적 방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문율」에서 제시된 불ㆍ도의 의리적 위상과 그것의 재정립에 주목하고, 주옹과 장융 양자의 논변을 분석함으로써 육조시기 불도지쟁의 쟁점을 통괄하고자 한다.


After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o China, the integration of Buddhism into traditional thought spurred the most intense and complex intellectual process in the history of Chinese thought. In particular, as Buddhism thrived remarkably during the Six Dynasties, its confrontation with Taoism, which was regarded as a superior philosophy, gradually intensified. At this time, Taoist philosopher Gu-huan presented the argument of Yi-Xia (夷夏) that advocated Taoism and rejected Buddhism, stirring major repercussions. In the midst of this controversy between Buddhism and Taoism, Zhang Rong attempted to consolidate the two systems of thought by embracing Buddhism with the premise of Taoism. Zhou Yong, a philosopher of Xuanxue, responded to Zhang Rong's argument by re-establishing a distinction between the doctrines of Buddhism and Taoism in his San-zong-lun. The basis of the distinction proposed by Zhou Yong was fei-you-fei-wu (非有非無), which originated from Sengzhao's concept of existence and non-existence, and became the standard for the doctrinal stratification of Buddhism and Tao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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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은정 ( Lee Eun-j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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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설일체유부 문헌을 중심으로 연기설이 정신적 조건화의 가르침에서 사물의 인과법칙으로 확대 적용되는 과정을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초기불교에서 연기설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해명하는 실존적 가르침이다. 필자는 연기설이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게 된 토대로서 인과의 원리가 적용된 점에 주목한다. 유위법으로서의 연기는 원인과 조건의 관계성 속에서 결과를 발생시키는 법칙으로 설명되며, 연이생법과도 분리된다. 심불상응행법은 공간적인 점유를 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특징과 작용을 지닌 객관적인 원리로 현상 세계에 적용된다. 심불상응행법은 유정과 더불어 비유정에게도 적용가능한 물리적 법칙으로서 무형의 원리가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설일체유부 문헌에는 십이연기에 대해 네 가지 유형의 해석이 있다. 즉 찰나연기, 연박연기, 분위연기, 원속연기 등이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의 십이연기에 대한 해석은 현상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필자는 본 고를 통해 연기법이 유위법으로서 존재 일반에 적용 가능하며, 사물의 발생법칙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application of the theory of Pratītyasamutpāda from the teaching of mental conditioning to the law of causality of things, focusing on the texts of Sarvāstivāda. In early Buddhism, the theory of paṭiccasamuppāda is an existential teaching that explains the occurrence and cessation of suffering. This paper first was considered for the process in which the principle of causality was applied as the basis for establishing the metaphysical system of the Pratītyasamutpāda theory, centering on the texts of Sarvāstivāda. And Various interpretations of the citta-viprayukta-saṁskāra-dharma and the four types of Pratītyasamutpāda were studied. Pratītyasamutpāda as Saṃskrta-Dharma is explained as a law that produces an effec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cause and condition, and is also separated from Pratītyasamutpānna Dharma. Citta-viprayukta-saṁskāra-dharma is applied to the present world as an objective principle with its own characteristics and actions without occupying space. Citta-viprayukta-saṁskāra-dharma is a physical law that can be applied to non-living as well as sentient beings. In the texts of Sarvāstivāda, there are various interpretations of Pratītyasamutpāda such as kṣaṇika, sāṃbandhika, āvasthika, prākarāṣika. These four types of Pratītyasamutpāda have been broadly applied as principles for the laws of existence and occurrence of things. Through this study, the writer was able to confirm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metaphysical system as Pratītyasamutpāda can be applied to the general existence of being as Saṃskrta-Dharma, and interpreted broadly as the law of occurrence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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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종성 ( Lee Jong-s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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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성락서(1905-1988)는 국운이 다한 조선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격동의 20세기를 살다 간 인물로서, 탁월한 행정가이며 교육자요, 유교적 지식인이었다. 이 글은 운정 성락서의 유가사상에 반영된 리더십의 정신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첫째, 운정의 리더십 정신에는 인간의 주체성 강조와 인본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운정은 인본주의적 특성을 홍익인간의 정신에서 찾고, 특히 인권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가 인명 살상과 각종 테러 등에 대해 부정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운정의 리더십 정신에는 양심사회 건설의 의지와 윤리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운정은 자신의 시대에 양심과 윤리에 배치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병폐가 있다고 지적하고, 하루속히 윤리가 핵심이 되는 양심사회를 건설해야만 한다고 제창한다. 그의 <윤리선언>은 이러한 배경에서 제창된 것이다.
셋째, 운정의 리더십 정신에는 <유가유신론>의 제창을 통한 유가적 변혁사상이 발견된다. 운정은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유가의 한계로써 교조주의적 주자주의, 사대주의, 수구적인 칩거주의가 있다고 하여 이를 비판한다. <유가유신론>은 저와 같은 유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안으로 제창된 것으로서, 유림의 적극적인 주인의식과 참여의식을 고양케 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운정은 자신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 유림회를 창립하였고,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 유림의 역할과 책무를 강조하는 격문을 돌리는가 하면, 시의에 맞는 가정의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갖가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요컨대 운정은 유가적 리더십 정신을 소유한 지행합일의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Unjeong Seong Rak-seo was born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when national fortunes were exhausted, and lived through the turbulent 20th century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was an outstanding administrator, educator, and Confucian intellectual. This article examines the spirit of leadership reflected in the Confucian thought of Unjeong Seong Rak-seo from three aspects.
First, the emphasis on human subjectivity and humanistic characteristics stand out in Unjeong's leadership spirit. Unjeong finds humanistic characteristics in the Humanitarian Spirit (弘益人間精神), and shows leadership that emphasizes human rights in particular. It is in this context that the denial of human death and various types of terrorism was made.
Second, the will and ethical characteristics of building a conscientious society are strongly expressed in Unjeong's leadership spirit. Unjeong points out that there are various social ills that are contrary to conscience and ethics in his age, and proposes that a conscientious society in which ethics is the core must be built as soon as possible. His Declaration of Ethics (倫理宣言) was proposed against this background.
Third, in Unjeong's leadership spirit, the Confucian thought of transformation through the proposition of the Confucianism Renewal of Old Systems (儒家維新論) is found. Unjeong criticizes this by stating that there are dogmatist Zhuzism (朱子主義), toadyism, and conservative life in seclusion as the limits of Confucianism, which are still not getting rid of the old fashioned ones. The Confucianism Renewal of Old Systems was proposed as a way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Confucianism like that. It contains the purpose of raising Confucian scholars' active sense of ownership and participation.
Unjeong made various efforts like founding the Women's Confucian Association as a way to put his ideology into practice, hosting related seminars, circulating the manifesto emphasizing the role and responsibilities of the Confucian scholars across the country, and emphasizing the necessity of family rituals that fit the opportuneness. In short, Unjeong was a practical intellectual who possessed a Confucian leadership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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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한 ( Kang Ha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14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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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회학을 '고통의 미시론'으로 밝히는 것이다. 아도르노에게 사회는 본질적으로 과정이기에 말로 된 정의로 사회를 고정시킬 수 없으며, 수학처럼 투명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인간들의 사회가 비인간적인 사회로 전도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현실의 모순 속에서 투명하게 이해될 수 없는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개인과 사회를 각기 대표하는 베버와 뒤르켐의 논의를 경유한다. 이를 통해, 그는 개인과 사회의 매개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고통에 대한 해석을 사회학의 과제로 삼는다. 그래서 그의 사회학은 개인의 고통에서 사회의 비인간성을 해석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서 이론적 실천이다. 그것은 가장 미시적인 곳, 즉 개인의 내밀한 주관에서 가장 거시적인 사회의 강압을 폭로한다. 따라서,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회학은 잘못된 사회가 탈정치화시킨 개인의 고통이 주관적 고통이 아닌 사회적 고통이라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통의 미시론인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hed light on the dialectical sociology of Adorno as a 'micrology of suffering'. For Adorno, society is essentially a process that cannot be fixed by any verbal definition, nor can it be understood as a form of mathematical transparency. The reason is that a so-called human society has been inverted into an inhuman society, and this very contradictory state is exactly what has happened once we look at our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uffering deeply hidden in the individual. Adorno goes through the discussion of Weber and Durkheim, who respectively represent the realms of the individual and society. Through this, he takes as his task the interpretation of the contradictions and sufferings that arise from the mediation between the individual and society. Therefore, his sociology is a theoretical practice as a resistance to the society that deciphers the inhumanity of society from the individual suffering. In the most microscopic place, i.e., in the private subjectivity of the individual, it exposes the most macroscopic social coercion. Thus, the dialectical sociology of Adorno is a micrology of suffering that allows us to see the truth that the individual suffering depoliticized by the false society is not a subjective pain but social suff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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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영걸 ( Kim Young-geol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1-16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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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하이데거의 존재 이해 개념과 거리를 두려는 레비나스의 비판을 제시하려 한다. 레비나스의 하이데거 비판은 특히 전쟁(2차 세계대전) 이후 그의 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레비나스의 비판은 하이데거가 중시했던 것, 즉 철학과 실존 사이의 연속성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타인의 윤리적 의미화가 이 비판의 결과로서 이어진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우위에 대한 비판을 거치면서 하이데거와 결별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판적 간극을 세우려 했던 “존재론은 기초적인 것인가?”라는 논문을 참조함으로써 알 수 있다. 또한, 1950년 2월 장 발(Jean Whal)이 주최하는 철학 학교에서 “먹거리들”과 “가르침들”을 주제로 레비나스가 강연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앎의 발생 가능성과 관련한 레비나스의 철학적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하이데거 독해를 통해 형성된 레비나스의 고유한 입장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삶과 실존, 철학과 실존의 분리로부터 타인을 위한 윤리로 나아가는 이행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This article attempts to present Levinas' criticism of distancing himself from Heidegger's concept of understanding of being. Levinas' criticism is particularly noticeable in his post-war writings. Levinas' criticism of Heidegger targets what he valued, that is, the continuity between philosophy and existence. And the ethical meaning of others leads to the result of this criticism. Levinas breaks up with Heidegger through criticism of Heidegger's ontological advantage. This can be seen by Levinas referring to a paper called "Is ontology fundamental?" to establish a critical gap in Heidegger's philosophy. In addition, Levinas gave a lecture on "Foods" and "Teaching" at the philosophical College hosted by Jean Whal in February 1950, where you can see Levinas' philosophical position on the possibility of knowing. Through this, we can examine Levinas' unique position formed through Heidegger's reading comprehension. In other words, this is life and existence. With the separation of philosophy and existence, this will be an important starting point for Levinas to explain ethics for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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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영희 ( Kim Young-hee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3-18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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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는 만약 누군가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1819~1891)의 소설에 나오는 바틀비가 된다면, '바틀비'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기꺼이 바틀비의 선택을 따를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이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논문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부분은 근대적 통치성의 변화를 고찰하고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주체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관해 정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예속화의 과정에 순응하지 않는 주체, 자기 배려 주체의 가능성을 바틀비를 통해 검토하는 것이다.
통치성이 국가의 존재 이유로 등장한 것은 16세기 중엽 이후의 일이며, 18세기에 이르러 근대적 통치성이 형성된다. 자유는 근대적 통치성의 중요한 통치기술이다. 자유주의 통치성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그것과 대립적인 통제와 개입을 인정한다. 자유주의 전통의 뒤를 잇는 신자유주의 통치성도 마찬가지로 시장을 위한 조절을 수용한다. 신자유주의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조절과 경쟁을 시장의 본질이자 원리로 받아들인 주체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경제적 이성에 따르는 충실한 인적 자본이자 자기 자신의 경영 주체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라면, 바틀비는 탈예속적 주체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삶이 저항으로 서의 삶이기 위해서는 예속화된 주체로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바틀비의 삶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바틀비는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에 할당된 어떤 역할도 주어지지 않는 추방자로서의 삶을 스스로 택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로 돌아가기'라는 삶의 전향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된다. 따라서 바틀비는 전향을 통해 자기 부정의 삶이 아니라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배려'의 주체가 된다.


Suppose that one of these 'anonymous' is Bartleby in the novel by Herman Melville. Would you be willing to be Bartleby? If so, what does it mean to be 'Bartleby'? To answer this question, the direction of the discussion develops into two parts. In the first part, I compare the characteristics of liberal and neoliberal governance, and summarize the characteristics of 'Homo Economicus' as a subject subordinated under the present governmentality. In the second part, I examine the possibility of 'subjectivation' is to be explored through Bartleby who does not conform to the process of enslavement, a subject that takes care of himself.
It is only after the middle of the 16th century that governmentality appeared as the reason for the existence of a state, and 'modern governmentality' appeared in the 18th century. Modern governmentality is an economic reason, and Freedom is the art of government. Liberalism presupposes non-freedom. In order to preserve freedom, Liberalism introduced to control and management as opposed to freedom. Neoliberal governance intervenes in the market to achieve market freedom. The purpose of neoliberal government is to regulate and govern society for the sake of the market. 'Homo Economicus' accepts competition as a principle of the market. He is human capital following economic reasons and his own entrepreneur managing himself. If 'Homo Economicus' is a subject subordinated to the neoliberal government, then Bartleby is a 'subjectivation'. For the life of 'Homo Economicus' to become resistant, it must become a new subject. He must get out of life as a subordinate subject. 'Homo Economicus' is not a subject of rejection, so we should pay attention to Bartleby's rejection. Bartleby does not simply refuse actions or self. He refuses to be 'Homo Economicus' and to turn to himself. Bartleby denies the role given to him through refusal and becomes an outsider. Bartleby's choice is not a denial of the self, but a choice to set oneself free and self-care as a conversion to the self. The concept of conversion is important because Bartleby becomes the subject of self-care through conversion. Bartleby becomes a maker of his new life through 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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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은화 ( Shin Eun-hwa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7-20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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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뿌리 뽑힘(Uprootedness)'에 관한 아렌트와 베유의 견해를 함께 살펴보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는다. 아렌트와 베유는 여성, 유대인, 철학자로서 같은 시대를 살며 2차 세계대전의 격전장이었던 유럽의 참상을 목도했다. 전쟁으로 인한 수난을 몸소 겪으면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삶의 지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문제다. 또한 두 사상가는 이 문제를 '뿌리 뽑힘'이라 명명함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보인다. 물론 세부적인 분석에서는 양자 간의 차이점도 발견된다. 아렌트는 난민과 무국적자의 인권을 중심으로 삶의 근본적인 위기 상황을 조명하고, 베유는 노동자 및 농민의 소외된 삶과 민족의 위기에 초점을 맞춘다. 아렌트에 있어서 뿌리 뽑힘은 고향과 정치 공동체의 상실로, 베유에 있어서는 육체적·정신적 욕구의 좌절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렌트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베유는 '인간에 대한 영원한 의무'를 강조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타개책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아렌트와 베유의 관련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들의 견해를 상호 비교함으로써, 국가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난민)과 국가에 속하되 계급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노동자, 농민)의 문제를 상보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또한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의 보편적인 실현을 위해 베유가 제안한 '인류 모두에 대한 의무'의 인식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의 생각을 비교하여 해석해보는 시도는 유의미하다.


This article focuses on Arendt's and Weil's View of 'uprootedness'. As woman, Jew, and philosopher, Arendt and Weil lived in the same age and witnessed the devastation of European society which was the battleground of World War II. It is the problem of those who have lost ground to take root that Arendt and Weil have paid attention in common as they have suffered from war. These two thinkers also have a common point in naming the problem as 'uprootedness'. But in detailed analysis, they have also some of differences. Arendt illuminates the fundamental crisis of life, focusing on the human rights of refugees and the stateless, while Weil focuses on the alienated lives of labors and peasants and the crisis of the people. The concept of 'uprootedness' in Arendt is summarized as the loss of home and political communities, in Weil it is derived from a setback of physical and mental needs. In this regard, Arendt emphasizes 'a right to have rights', and Weil underlines 'the eternal obligation to human beings'. It is meaningful enough to examine Arendt's and Weil's view of these problems in that they are still important issues in contemporary society and require countermeasures. By comparing their views, we can review complementarily the problems of those who are pushed out of the country (refugees) and those who are neglected in a interior country (labors and peasants). It is also significant to compare the thoughts of the two thinkers in that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e 'obligation' proposed by Weil for the general realization of Arendt's 'right to have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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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범 ( Lee Sangbum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9-23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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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니체의 철학에 등장하는 “대지(Earth/Erde)” 개념을 지구인문학의 철학적 토대로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니체는 '대지의 철학자'이다. 디오니소스가 니체의 철학적 근본토대라는 사실은 이미 그의 철학이 대지의 철학임을 증명해준다. 전통 형이상학과 종교에 의해 폄하되어 온 대지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대지에 인간학적 의미를 부여한 니체의 철학적 시도는 “신의 죽음”을 통해 보다 명확해진다. 그리고 대지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유형으로서의 “위버멘쉬”를 제시함으로써 대지에 대한 니체의 철학적 견해는 보다 구체화된다. 대지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사상적 관점은 그의 철학이 지구인문학의 철학적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구인문학의 명제가 '세계에서 지구로'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이 명제는 그 어떤 철학자보다 세계를 이원화해 온형이상학과 종교를 파괴하고자 했던 니체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세계를 이원화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인간과 대지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는 니체의 철학적 시도는 지구인문학의 철학적 토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an attempt to present the concept of "Earth/Erde" in Nietzsche's philosophy as the philosophical basis of Global Humanities(Globalogy). Nietzsche is the philosopher of the earth. The fact that Dionysus is Nietzsche's philosophical foundation already proves that his philosophy is the philosophy of the earth. Nietzsche's philosophical attempt to give the earth a human meaning to revive the value of the earth, which has been denigrated by traditional metaphysics and religion, becomes clearer through "Death of God." In addition, Nietzsche's philosophical view of the earth is further embodied by presenting "Overman/Übermensch" as a human type living the life of the earth. Nietzsche's ideological view of the earth shows that his philosophy can be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Global Humanities. If the proposition of Global Humanities can be named "from the world to the earth," it is in line with Nietzsche's problem consciousness to destroy metaphysics and religion that have dualized the world more than any philosopher. Nietzsche's philosophical attempt to destroy the absolute value of dualizing the world and rethink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the earth could serve as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Global Humanities.

KCI등재

저자 : 한대석 ( Han Dae-suk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86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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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공간. 현실은 이해되어야 하고 현실 이해를 위해 상정된 이것은, 그 속에서 대상들이 사슬 연관한다. 이 글의 목적은 저 추상적 개념을 실증하는 데에, 그로써 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는 다. 문제의 실례는 뉴턴 역학이다. 뉴턴 역학의 전반적 행사가 운동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운동의 논리 공간을 상정하는 데에 있다는 사정, 이 사정은 저 역학의 표층 문법 때문에 우리의 시선에 가려져 있다. 뉴턴 역학의 인식론이 논리 공간의 그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이 글은 뉴턴 역학의 심층 문법을 추심한다. 추심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 글은 기존의 논의에서 적어도 명시적으로 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물음 둘을 꺼내어 묻는다. 첫 번째 물음은 “하나의 말 하나의 개념의 문제”이고 두 번째 물음은 “같은 하나의 문제”이다. 저 두 물음을 묻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뉴턴 역학의 논리를 안다고 자처할 수 있다. 선행 논문은 앞서 첫 번째 문제를, 등속 직선 '운동'이라는 (뉴턴 역학의 숨은) 계기를 추심 확인함으로써, 해결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뉴턴 역학을 안다면 우리는 등속 직선 '운동'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등속 직선 '운동'은 현실 운동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계 부호 속에 들어 있다. 등속 직선 '운동'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비현실(das Nicht-Wirkliche)이다. 그런데 “논리 공간”이란 현실 이해를 위해 상정된 비현실이다. 그러므로, 뉴턴 역학은 논리 공간의 방법론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비현실이 현실을 구축하는 논리 공간의 광경이 이제야 우리의 시선에 잡힌 것은, 무엇보다도 주되게, 우리가 세계가 사실의 단일 범주로 채워져 있는, 사실-편집주의라는 오랜 유습에 젖어 있어서다. 여기까지는 선행 논문의 내용이다. 선행 논문의 계속인 이번 글은 뉴턴 역학이 논리 공간의 방법론을 구현하고 있는 사정을 최종 갈무리한다. 먼저 (운동 일반의 공간을 구성하는) 앞서 등속 직선 '운동'이 비현실의 범주에 귀속되어야 옳음을 변론한다. 다음으로, 앞서 두 번째 문제 “같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다. 뉴턴 역학이 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대상들이 사슬 연관하는 어떤 뜻을 시사한다. 뉴턴 역학을 사례로 삼은 의의가 여기에 있다.


Abstract. Reality is to be understood. In logical space, which is stipulated for the understanding of reality, objects concatenate each other.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emplify the abstract concept of logical space and thereby materialize it. A case study is Newtonian mechanics. In a nutshell, Newtonian mechanics is all about constructing a logical space in order to understand the reality of motion. This fact is hidden from our view because of the surface grammar of the mechanics. In order to reveal that the logico-space epistemology of Newtonian mechanics, this article exposes the depth grammar of Newtonian mechanics. The most crucial part of exposition consist in asking straightforward a hitherto neglected question, which is the “one word one concept” problem. That problem is solved for the first time when we recognize the constant velocity linear 'motion' as Logische Richtlinien. The constant velocity linear 'motion' is something not-real stipulated for understanding the actuality of motion. Because logical space is a system of such non-real things, the conclusion is that Newtonical mechanics exemplifies logical space. We have been blind to the logico-space methodology of Newtonian mechanics, under the influence of the age-old fact-fanticism, to the effect that 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Up to this is the content of the previous paper. This article, a continuation of the preceding one, finally captur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Newtonian mechanics implements the methodology of logical space. First, it is argued that the constant velocity straight line 'motion' should belong to the category of the Not-Real. Next, the problem of “same one problem” is sovled. From the solution we acquire the sense in which objects are concatenated to one another. This is the significance of our talking up Newtonian mechanics as a cas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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