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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철학연구 update

Studies in Philosophy East-West

  • : 한국동서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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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5-1968
  • : 2713-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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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4)~106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740
동서철학연구
106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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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백녕 ( Kim Baeg-nyeong ) , 이경무 ( Lee Kyoung-mo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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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피상적 대비는 맹자와 순자의 윤리 이론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도록 오도하기 십상이다. 또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구방심(求放心)과 과욕(寡欲)은 비논리적이고, 성악(性惡)과 위선(僞善)은 상반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피상적 대비와 오해는 다윈주의적 접근과 독해로 적절히 해결될 수 있다.
성선과 위선에 대한 다윈주의적 독해의 공통분모는 도덕성의 진화이다. 둘의 차이는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갈린다. 맹자는 도덕성이 본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반면, 순자는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후천적 노력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둘은 얼핏 보면, 서로 상반되는 듯하다. 그러나 다윈주의적 독해에 따르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모순 없이 양립 가능하다. 진화의 계열 속에 놓고 보면, 위선과 성선의 연속성과 의존성이 잘 드러난다.
진화의 전체 계열에서 보면, 성악에서 위선이 이루어지고 이 위선이 성선으로 내재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계열을 단선적인 흐름으로 볼 필요는 없다. 위선과 성선은 개인의 도덕성 발달 과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경험의 다양한 국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을 계열화하여 통합해 보면, 양육을 통한 도덕성의 획득, 진화에 따른 도덕성의 유전, 도덕 본성에 내재된 도덕성의 양육 순으로 이해된다. 위선과 성선의 도덕성 발달은 학문과 수양에 의한 진화의 계열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본능적 욕구를 다스리는 노력을 통해 도덕적 존재가 되면, 모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 도덕적 변화의 계열 속에 처하게 되어, 다시 학문과 수양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덕성을 계발해 간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선설과 성악설, 성선과 위선은 연속적이고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양립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다윈주의적 접근에 따른 통합적 이해다.


The superficial contrast between the xìngshànshuō (性善說) and the xìngèshuō (性惡說) is likely to misrepresent the understanding of the ethical theories of Mencius (孟子) and Xúnzǐ (荀子) as incompatible. In addition, it is easy to think that the hàoránzhīqì (浩然之氣) and qiúfàngxīn (求放心) and guǎyù (寡欲) are mysterious, and that xìngè (性惡) and wěishàn (僞善) are contradictory.
In the continuous and dependent context of evolution, it is understood that wěishàn (僞善) can be achieved in xìngè (性惡), and xìngshàn (性善) can be achieved in this wěishàn (僞善). Of course, it is not necessary to view this line of evolution as a linear flow. This is because wěishàn (僞善) and xìngshàn (性善) are not limited to the process of individual moral development, and they do not comprehensively consider the various aspects of experience. It can be explained in the order of acquisition of morality through parenting, the inheritance of morality according to evolution, and the parenting of morality inherent in moral nature. This line of evolution is accomplished by learning and discipline. Acquired efforts to control instinctive desires cause you to put yourself in the changes and flow of nature. The person who learns and practices unknowingly falls into this line of change. Humans can create and sustain this flow through learning and discipline. As a result the xìngshànshuō (性善說) and the xìngèshuō (性惡說),as well as the wěishàn (僞善) and xìngshàn (性善) also form a continuous and dependent relationship. This is also an integrated understanding of the Darwinian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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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창경 ( Kim Chang-gy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5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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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配慮)는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소통실천방법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체생활을 영위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겨서, 원활한 소통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또한 배려는 공동체사회의 현실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도덕윤리교육의 핵심가치 덕목이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유가철학의 '서(恕)'를 통해 배려윤리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서(恕)는 유가철학에서 인간 도덕성으로서의 최고 덕목이자 선(善)의 근본이며 사랑의 원리가 되는, 인(仁)을 실천하는 하위덕목이 된다. 곧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의 마음과 같이 미루어 타인에게 선을 지향하는 이타적 행위를 실천할 때, 그 바탕에는 사랑과 존중의 마음인 인(仁)이 담겨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곧 서(恕)를 통한 배려실천은 나 자신과 타인과의 상호호혜적 사랑과 존중의 상생(相生)적 실천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서(恕)의 실천 방법에는 유가철학의 네트워크적인 실천수양론인, 전후좌우상하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헤아려서 행하는 혈구지도 방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서(恕)를 통한 배려의 실천은 성실과 배려와 정의와 책임의, 다른 도덕함양 가치덕목과 함께 유기적 통합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유가철학 『대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유기적 확장과 통합으로 이어지는 수양방법체계와 부합한다. 더불어 이런 점에서 도덕윤리함양 덕목들은, 유가철학 수양론과 마찬가지로 유기적으로 확장 및 통합되어 함양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본 연구의 유가철학의 서(恕)를 통한 배려윤리 연구는, 현행 한국도덕교육 현실에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학술적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Consideration is a fundamental method of communication for human relationships with others. Significantly, humans put great importance on relationships with others for the sake of their communal life as social beings. It is a virtue of the core value of moral ethics education because it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to practice appropriate relations in the reality of communal societ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ethics of care from the perspective of consideration in Confucian philosophy. The ethics of care become the highest virtues of consideration of human morality in Confucian philosophy; the foundation of good, as well as the sub-virtue of practicing humanity, which becomes the principle of love. In other words, practicing altruistic acts for the good of others by applying one's heart in human relations implies that the loving heart must be contained therein.
The practice of consideration is a mutually beneficial strategy for oneself and others. This practice of consideration could be a moral path that one can use as a measure to think of and examine others and direct them to the proper path towards a network of practiced discipline of Confucian philosophy with fairness. In addition, the practice of care through consideration forms an organic integration system along with other moral values of sincerity, justice, and responsibility, and is consistent with the fostering method that leads to organic expansion and integration presented by Confucian philosophy. This implies that the virtues of moral ethics in this regard should be organically expanded and integrated into the theory of cultivation of Confucian philosophy.
As described above, studying the ethics of care through consideration from a Confucian perspective has an educational value and a significance that can be applied to the current reality of Korean mor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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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원혁 ( Suh Won-hyuk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9-8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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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논문은 조선시대 중기 금강문화권을 중심으로 전개된 예학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강문화권은 금강의 발원지에서부터 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강이 지나간 곳을 중심으로 발전한 다양한 사회문화들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조선중기 예학도 그러한 금강문화권의 문화에 속하게 된다. 예학은 조선유학사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학문 현상으로 금강문화권에도 크게 융성하였다. 예학의 종장이라 불리는 사계 김장생이 금강문화권에서 나왔으며 그의 아들과 제자들도 그의 뒤를 이어 예학을 발전시켰다. 이에 금강문화권에서 조선 중기 예학의 전개와 특징은 사계 김장생을 필두로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초려 이유태, 노서 윤선거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이들은 현실에 알맞은 예를 실현코자 예서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또한 형식적이고 엄격한 예의 집행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인정(人情)에 기반 한 예의 실행을 일부 허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예학을 전개하였다.


The paper researches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 of the Lixue of the Geumgang Cultural Area in the mid-Joseon Dynasty. The Geumgang Cultural Area is a generic term for various social cultures developed around the area where the Gemgang River passed from the origin of the river to the sea. Lixue, in the Mid-Joseon Dynasty, also belongs to the culture of the Geumgang Cultural Area. Lixue is an academic phenomenon that intensively appeared at a specific period spanning the 16th to the 18th century in the history of Joseon, and it also flourished greatly in the Geumgang Cultural Area. Sagye Kim Jang-saeng, who is called the leader of Lixue, came from the Geumgang Cultural Area, and his son and disciples followed him and developed Lixue. Here, led by Sagye Kim Jang-saeng, I would like to clarify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Lixue through research on Shindokjae Kim-Jip, Uam Song Shi-yeol, Choryeo Lee Yoo-tae, and Noseo Yoon Seon-geo. In order to make a suitable Lixue for the real world, they created and distributed Lixue texts. They developed various forms of Lix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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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상태 ( Kim Sang-tae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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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王覺一의 三敎合一論에 대한 고찰이다. 먼저 一貫道의 祖師인 왕각일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그가 주장하는 삼교합일론에 대하여 그의 저서인 『大學解』, 『中庸解』, 『三易探源』, 『一貫探源』, 『理性釋疑』와 이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談眞錄』을 기본으로 그가 표방하는 儒佛道의 삼교합일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재해석하였다. 일관도 왕각일의 삼교합일론에 대한 분석과 재해석은 두 가지로 다음과 같다. 첫째, 왕각일의 생애에 대하여 청조 말기 중국민간종교의 탄압 속에서 그가 성장하였던 배경과 일관도의 조사 전승 역사 속에서 그의 삼교합일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둘째, 왕각일의 삼교합일론은 그 저서에서 儒家는 存心養性, 佛家는 明心見性, 道家는 修心煉性을 핵심 수행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그의 이론에서 유학의 극기복례가 불가와 도가의 수련공부에 기초가 되는 것과 明心→存心→明心과 見性→養性→見性의 순환적인 공부론 임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는 왕각일의 사상을 통해서 유가, 불가, 도가가 어떤 공부를 통해서 연관이 되는지 고찰하였다.


This paper is a review of Wang Jueyi's theory of unity of the three religions. First, I briefly looked at the life of Wang Jueyi, Yiguandao's patriarch. Next, I analyzed and reinterpreted the relationships of Confucianism, Buddism, and Taoism based on his books, “Daxuejie大學解”, “Zhongyongjie中庸解”, “Sanyitanyuan三易探源”, “Yiguantanyuan一貫探源”, and “Lixingshiyi理性釋疑”. There are two types of analysis and reinterpretation of Yiguandao Wang Jueyi's three religious unity theory. First, I examined the background of Wang Jueyi's growth in the suppression of Chinese civilian religion at the end of the Qing Dynasty. I examined the history of the investigation and transmission of Yiguandao to see how his theory of unity of the three religions was formed. Second, Wang Jueyi's theory of unity of the three doctrines claims to be a key that Confucianism has 'mind preservation-nature cultivation' (Junxinyangxing存心養性), Buddhism has the 'clear mind- view nature' (Mingxinjianxing明心見性), and that Taoism has 'cultivate mind - training nature' (Xiuxinlianxing修心煉性). In his study, overcoming one's own selfish desires and returning to the moral laws of heaven in Confucianism is the basis for training studies in Buddhism and Taoism. It was a cyclical study theory of clear mind → conscientious mind → bright mind and viewing nature → cultivating nature → viewing nature clearly. This study examined how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re related through Wang Jueyi's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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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지웅 ( Yoo Ji-wo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3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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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농산 신득구(農山 申得求, 1850~1906)의 성리설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하늘에도 인심이 있다[天有人心]”와 관련하여 이 언설에 대한 신득구 자신의 문제의식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신득구의 성리설이 학계 내부에서 논란이 된 것은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1836~1905)이 편찬한 『근사속록(近思續錄)』에 대해 신득구가 교정을 부탁받고 이에 대해 의견을 제시 한 것이 발단이 된다. 신득구는 『근사속록』에서 이이의 “하늘은 혈육의 기라는 것이 없기에 도심이 있을 뿐이나, 사람은 혈육의 형체가 있기에 인심을 발한다”의 내용에 대해 기록자의 오류일 뿐 아니라 하늘에도 인심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 송병선을 비롯한 연재학파 문인들이 신득구의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심에 대한 리기론적 해석이 주요 쟁점이었던 한말 성리설 논쟁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논쟁이 전개된다.
신득구의 “하늘에도 인심이 있다”는 말은 하늘 그 자체가 선과 악을 함의하는 인심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즉, 현상적인 차원에서 봄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서늘하며, 겨울에는 추운 것이 천도(天道)의 유행인데, 천도의 유행이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에 이러한 현상은 올바름을 얻지 못한 위태로움과 같은 과불급(過不及)의 이상(異常)이므로 분명 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비적인 차원에서 인심과 같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득구가 하늘에도 인심이 있다는 말을 한 본질적인 목적은 바로 당시의 여러 가지 혼란상이 과불급과 이상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과불급과 이상한 현실을 인간의 실천적 노력을 통해 극복할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으로서 항상 도심이 사심인 인심을 억제해야만 과불급과 이상한 현실을 다시 정상의 현실로 되돌릴 수 있다는 진정한 도학자의 고민이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Nongsan Shin Deuk-gu's problematic consciousness related to "There is the human mind in Heaven, as well", which is the most controversial element in his Neo-Confucian theory, as well as practically examine the implications behind his problematic consciousness.
The Neo-Confucian community, especially the Kiho Academy, showed very diverse pattern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most prominent ones include the criticism of the Kiho Academy's traditional positions and the resulting branching of the academy. There were surely various factors behind the academic conflicts and the resulting branching in late Joseon Period, but the factors were expressed in synthetic ways. The factors include the unique circumstances of the late Joseon Period, reactions from intellectuals, academic conflicts which had accumulated inside the academy, and the problematic consciousness of Neo-Confucian scholars who were trying to end the conflicts. It is Shin Deuk-gu who actively expressed this philosophical problematic consciousness of the Kiho Academy in the late Joseon Period.
He gave the explanation: "There is the human mind in Heaven, as well." His explanation is not, however, an argument that Heaven itself is the human mind implicating both good and evil. According to him, abnormality in excess or deficit can never be called good in a phenomenological level, and thus can be explained with the human mind in a contrasting level. By saying "There is the human mind in Heaven, as well," he aimed to argue that the reality of excess or deficiency and abnormality represent the various confusing aspects of the times and should be overcome through people's practical efforts. That is, the human mind is the mind of Heaven and Earth. The evil human mind should be always controlled by Dosim. His statement reflects his worries as a true moralist trying to restore the reality of excess or deficiency and abnormality into the reality of norm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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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 여러 곳에서 “신과의 닮음(homoiosis theo)”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주제의 자연학적인 측면은 주로 『티마이오스』에서, 윤리적 측면은 『국가』에서 인식론적 측면은 『테아이테토스』에서 논의되고 있다. 인간이 신을 닮는다는 이상은 주로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뉘어 논의되고 있다. 첫째로 지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식론적-존재론적 측면이 있다. 둘째로는 윤리적인 이상인 정의를 중심으로 하는 도덕적 측면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양자의 결합을 통한 신적인 삶의 추구가 있다.
본 연구는 양자의 결합에 주목하여 이암블리코스의 신플라톤주의가 추구하는 신과의 닮음이 어떻게 인간 영혼의 변형을 낳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며 더 나아가 그의 철학 체계가 '테우르기아(theourgia)' 개념을 매개로 위디오니시우스에게 수용되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둘러싼 논의는 1980년대 이래로 라우스(A.Louth), 로렘(P.Rorem) 등이 주축이 되어 양자의 불연속성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쇼(G.Shaw)는 트루이야르(J.Troillard)의 주장을 근거로 이를 반박하며 연속성을 옹호해 왔다.
본 연구는 이암블리코스의 그리스 테우르기아(the Hellenic Theourigia)와 위디오니 시우스의 그리스도교 테우르기아(the Christian Theourgia)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 이유는 두 테우르기아 모두 지성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제의를 통해 영혼의 신성화를 추구하며, 신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두 학자가 주장하는 테우르기아의 원인(aitia)과 기능(ergon)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면, (부수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두 학자의 테우르기아 개념의 연속성은 타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속성은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을 관통하는 플라톤 철학의 종교철학적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며, 이를 연구의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In regard to the subject of “homoiosis theo” in the Platonic dialogues, with a special focus on concepts pertaining to human soul's transformation and divinization, some issues have been discussed in Timaeus as the physical aspect, Republic as the ethical aspect, and Theaetetus as the epistemological aspect. Also, several themes, including immortality, mania, eros, the way of divine life as well as rituals have been treated corresponding to the cultural soil of the Platonic tradition in the late antiquity. The ideal of man becoming Godlike is mainly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ly, there is an epistemological-ontological view of truth focusing on the intellectual aspect; secondly, an ethical view of Justice; and finally the pursuit of divine life as a combination of both. The term 'homoiosis theo (becoming Godlike)'is a key concept in which a Syrian Neo-Platonist Iamblichus strives to elucidate how the human soul is transformed into a superior form beyond the aid of discursive reasoning. I shall then make an effort to find the separate but connected elements between two theurgical systems, the Hellenic and Christian theurgies, on the basis of a key concept. The theoretical continuity between Iamblichus's and Pseudo-Dionysius's ritual systems should be legitimately examined in order to provide an opportunity to clearly understand the religio-philosophical characteristics of the late Neoplatonism in late antiquity.
Consequently, with the integral view of Platonism and Christianity I maintain that Iamblichus's neo platonic and Christian theurgies have no essential differences, since both have mutually shared features with the emphasis on ritualistic behaviors beyond the limit of human intelligence. In conclusion, since the cause (aitia) and the work (ergon) of two theurgical systems are similar, the continuity between the Hellenic and Christian theurgical systems could be enough to establish adequate grou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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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형주 ( Kim Hyeong-jo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8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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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나는 칸트의 철학은 일견 인공지능 혐오론의 방어자처럼 보이지만 이를 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한다면 그 안에서 인공지능 화해론의 근거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혐오의 전이 과정을 생물학적 혐오, 인지적 혐오, 도덕적 혐오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이 세 단계의 공통분모는 다름 아닌 경계 짓기에 있다는 사실을 추론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경계 짓기라는 가치 중립적인 개념이 차별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입은 개념으로 도약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계 짓기와 차별의 이면에는 자기가 혐오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부정이 있다는 사실을 너스바움의 이론을 빌려 설명하면서 혐오에는 본래 자기 투사의 속성이 수반됨을 밝힌다. 이러한 배경에서 인공지능 혐오를 조망해 보면, 그것의 본질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이식한 계산 능력에 대한 배척과 폄하라는 사실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칸트의 세계와 인간이해의 근저에 놓여 있는 감성계와 지성계의 동근원성과 정언명령의 이중적 속성을 들춰보면 그의 이론에서 오히려 인공지능 혐오에 대한 화해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n this article, I argue that Kant's philosophy, which at first glance may be seen as a defender of the disgust towards AI, can rather be the basis for the Theory of AI Reconciliation. To this end, I divide the transitional process of disgust into three stages: biological disgust, cognitive disgust, and moral disgust. And it is inferred that “bordering”, i.e. an establishment of borders, is the common denominator of these three stages. In the final stage, the moral disgust stage, it is argued that the neutral concept of “bordering” transforms into the negative concept of “discrimination”. Then, by explaining the fact that behind this discrimination there is the denial of the self-disliked based on Nussbaum's theory, it will be revealed that the concept of disgust entails the attribute of self-projection. Looking at disgust toward AI against this background, it is argued that the essence of this disgust is the exclusion and denigration of the computational function that humans have implanted in the AI. Finally, it is argued that a clue to reconciliation against the can be found in Kant's theory, which explains the homogeneity of the sensible world and the intellectual world and the dual properties of the categorical impe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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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용준 ( Bae Yong-ju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3-21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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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치(G. Lukács)는 헤겔의 미학을 “위대한 역사적 종합”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미학 이론은 절대적 관념론의 미학으로 현대에 이르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이론으로 분화되었으나, 예술이 갖는 절대적 이념에서 예술을 규정하고 있기에 아직도 예술적 가치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헤겔은 예술을 미적 이념의 가상화로 규정하고 있다. 예술의 한 분야인 회화작품 역시 미적 이념이 가상화되었을 때 미적 가치를 지닌 창작물이 된다.
그런데 현대 회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적 이념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미적 대상의 표현 방식에서 미적 이념의 가상화 개념은 한계에 직면한다. 또한 현대 회화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예술로 나타났다. 현재 디지털 회화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동시에 디지털 기술에 의한 회화의 창작활동 역시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회화작품들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 하는 기준의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본 연구는 현대적 의미에서 미학의 규정으로서 미적 가상화를 다시 규정하고 디지털 회화가 이 미적 이념의 가상화를 실현하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Georg Lukács commented on Hegal's aesthetics as “a great historical synthesis”. His aesthetic theory of absolute idealism has been criticized and subdivided into various theories in modern times. However, it still plays a role as a standard for evaluating artistic value because it defines art in the absolute Idea of art. Hegal defines art as the virtualization of aesthetic Idea. Paintings can also be creations with aesthetic value when aesthetic Idea is virtualized.
However, an aesthetic Idea of modern painting is revealed through a wide range of expressions. Accordingly, the concept of the virtualization of aesthetic Idea faces limitations in the way of expressing aesthetic objects. Digital art, using digital technology, has now emerged as a new art trend. Furthermore, many studies on digital painting are currently being conducted, and at the same time, creative activities with digital technology also progress through painting. Therefore, it is time to discuss the criteria for digital paintings and review their artistic value.
This paper aims to redefine aesthetic virtualization in a modern sense and investigates whether digital paintings can be a work of art that realizes the virtualization of this aesthetic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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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대석 ( Han Dae-suk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84 (7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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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원 현상이 개념의 정체라 규정한 「근원 현상 개념론 원론」의 후속 글이다. 괴테의 색학(Farbenlehre)에 이어, 근원 현상의 방법을 구현한 또 하나의 사례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다. 언급한 사례는 라그랑주 역학이다. 논리 공간의 방법과 근원 현상의 방법을 차별하는 한마디는, 대상이 그 자신의 척도라는 것이다. 논리 공간의 방법은 대상을  이 말의 추상적 의미에서  재는 방법이다. 전형적 사례는 뉴턴 역학으로, 제일 운동 법칙인 “등속도 무한 직선 운동”이 그것이다. 그런 운동은 현실에 없다. 등속도 무한 직선 “운동”의 범주는, 대신에, 운동 일반을 재기 위한 논리적 척도의 범주다. 저 논리적 척도의 존재는 인식을 위한 필연적인 조처였다. 그렇게 보였다, 라그랑주 역학이 우리의 시선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라그랑주 역학에는 척도가 없다. 대상이 있을 뿐이다. 굳이 척도를 운운해야 한다면, 대상 자체가 그 자신의 척도이다. 라그랑주 역학에서 운동은, 우리 눈앞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지레의 문제다. 저 지레라는 것은, 앞서 뉴턴 역학의 의미에서 운동 일반의 “척도”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대신에, 그것은 수없이 차이를 만들어 가며 자기 자신을 반복한다. 저 차이와 반복의 과정이 운동 일반이다. 지레의 균형은 운동의 근원 현상이다. “운동 일반”의 뜻은, 뉴턴 역학에서와 라그랑주 역학에서, 이토록 다르다. 스라파의 경제학은 근원 현상 방법론을 구현한 또 하나의 사례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onfirm another case reinforcing Urphänomen methodology, in accordance with the thesis in the existing article that a concept is an Urphänomen. The dividing line between the methods of logical space and of Urphänomen is that the object is its own measure. The method of logical space is a method of measuring in the abstract sense of the word. Newtonian mechanics is a classic example, regarding the first law of motion, to the effect that without net force an object suffers from infinite linear motion with constant velocity. Such a movement does not exist in reality. The category of the “motion” in question is instead that of logical baselines for measuring motion in general. The existence of logical baselines was acknowledged as an inevitable postulate for understanding motion. So it seemed, until Lagrangian mechanics came onto the scene. There is no measurement in Lagrangian mechanics. There is only an object, if only because the object itself is its own measure. In Lagrangian mechanics, motion is, all in all, a matter of levers balancing before our eyes. To be sure, a lever is not a “measure” of motion in general, however it always repeats itself while making a countless number of differences. That difference-and-repetition comprises motion in general. The expression “motion in general” has a different meaning in the context of Newtonian mechanics and in the context of Lagrangian mechanics. Sraffian theory of price is yet another example of the Urphänomen world-view.

KCI등재

저자 : 최용호 ( Choi Yong-h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5-30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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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넘은 독창적인 사고실험을 통해서 의미는 사고자의 머릿속에 있지 않다고 주장을 하였다. 퍼트넘의 요점은 의미가 개인의 심리 상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 분업에 의존하고, 또 자연종 명사와 같은 언어적 표현의 외연이 실제 세계의 사물들의 본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종래의 전통적 의미이론들이 간과했다는 것이다. 퍼트넘의 논증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보기에 퍼트넘은 프레게의 뜻 이론이 갖는 반심리주의적 성격을 간과했다. 나아가 필자가 제안하는 미래 사회의 언어적 노동 분업 사고실험 사례는 “의미는 머릿속에 있지 않다.”는 퍼트넘의 핵심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순서상 먼저 의미 외재주의 논증의 근거들―쌍둥이 지구 및 느릅나무 너도밤나무 사고실험, 언어적 노동분업, 지표사와 고정성―을 차례로 살펴본 다음, 그 논증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검토하겠다.


Putnam, through ingenious thought experiments, defiantly argues that meaning is not in the mind of the thinker. The point of Putnam's argument is that meaning does not depend on the individual psychological state, but on the social division of labor, and that the extension of linguistic expressions, such as natural nouns, depends on the nature of things in the real world. According to him, traditional theories of meaning have missed the point. Despite various reactions to Putnam's argument, in my view, Putnam overlooked the anti-psychologism of Frege's theory of meaning. Furthermore, my thought experiment of the linguistic division of labor in the future society opposes Putnam's core claim that “the meaning is not in the head.” But in order, I will first examine the grounds for the argument for externalism of meaning―the twin earth and elm tree-beech tree thought experiment, the linguistic division of labor, indexical and rigidity―and then examine the various responses to the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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