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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update

Paekche Kingdom`s Culture

  •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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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2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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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7)~64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504
백제문화
64권0호(2021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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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백제의 인명(人名) 표기법(表記法)과 백제인의 신분인식

저자 : 박중환 ( Park Joong-whan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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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나 『일본서기』 에는 백제 인명표기의 다양한 형태들이 혼재해 있지만 백제 당시에 제작된 출토 문자자료들에는 '지리정보 + 신분정보 + 인명'의 구조와 순서를 가진 기재원칙이 발견된다. 일부 요소들이 생략된 것은 문자자료 작성시 前提한 독자의 범위 때문에 생긴 축약표현이거나 표기된 인물의 신분적 특징이 반영된 생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의 백제 인명표기방법은 일정한 편찬 기준에 따른 簡略化된 기재법의 결과로 보이며 반대로 『일본서기』의 복잡한 표기법은 되도록 정보를 많이 채록하고자 한 부가적 기재 패턴의 결과로 보인다. 인명표기 관습으로 본다면 백제 사람들에게는 지리적 범주에 의한 귀속의식과 함께 관등 같은 신분적 귀속의식이 복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혈연집단의 표식인 姓에 의한 귀속의식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문헌에 다수의 여성 이름이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출토 문자자료에는 왕족부터 庶人에 이르기까지 백제 여성의 인명을 적지 않았다. 문헌에 실린 백제 여성의 이름들은 고구려, 한군현, 일본, 신라 등 다른 지역과 관련된 여성들이거나 백제 이외 지역의 기록문화에 의해 채록된 경우가 많다. 향후 백제 초중기 문자 자료의 발굴이 이루어지면 인명 표기에 반영된 시기별 백제 여성의 지위변화 양상이 더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백제 왕실 금석문에서는 1인 중심의 인명표기가 지배적이었다. 그 1인은 주로 왕이지만 왕비의 아버지이거나 장신구 제작기술자인 경우도 있어 그 정치적·사회적 함의가 주목된다. 하나의 기록물 안에 한 사람의 이름 만을 표기하는 것은 문장 내에서의 권력의 독점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왕흥사 사리기의 명문에서 창왕의 인명표기는 '國名 + 王號 + 諱'로 구성되어 있다. 무령왕 지석과 비교하면 諱와 王號가 바뀐 것이다. 諱를 직접 사용하여 1인칭으로 쓴 이 금석문은 '왕'의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 '昌'으로서 불법 앞에 자신을 낮춘 恭愍의 자세가 베어 있다. 반면 미륵사 사리봉안기에서 중국의 황제에게 썼던 최고의 존칭 '陛下'를 사용하고 있었던 데에는 대신라 전쟁에서 확보된 무왕대 전제왕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In Samguksagi - the Chronicles of the Three Kingdoms and Nihon Shoki, numerous name writing customs of Baekje times are visible. Due to such mixed tendency it is easily misunderstood that in Baekje times there were no clear rules or codes for name writing. However, based on the materials, which are contemporary to the Baekje times, it is possible to infer that there was a clear tendency of name writing employed consistently. When written, names usually followed the structure of “geographic information + status information + given name”. Though some parts of such structure were left out at times when it was inferable from the contexts by readers. For instance, Deoksol, which was the name for a local governer, because of the representation of the name, it was not necessary to mention the 'geographic information' of the person in the name. The Baekje name writing custom seen in Samguksagi may be the simplified version based on the name writing custom of the period when the book was written. On the other hand, the complex name writing custom that can be found in Nihon Shoki may be the result of an attempt to record as much information as possible in one name. It is possible to presume that Baekje people had a notion of belonging based on their geographic background in combination with the status/ positional background. Yet, belongingness based on their blood relations, which would be visible through the use of surnames, was not common.
From the epigraphies made in Baekje times, women were not referred to their names even though they wer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Therefore, inherent queen names or princess names are not found from these materials. This would be the reason for the absence of the queen names and princess names from the Baekje royal inscriptions. The names of Baekje women that are known to us are invariably obtained from the historical recordings. These known names are of the foreign figures who are related to the other countries like Goguryeo, the Military Prefecture of Han, Japan and Silla. Otherwise they were passed down through the historic recordings of aforementioned countries. From such phenomena, it is possible that there was a tendency in Baekje name writing custom that “women's names are not to be written down” in the official ceremonies and documents. In the ancient societies, the status of women were relatively mediocre in general. However, the fact that the women's names were not written down in official terms shows that such in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 was more severe in Baekje compared to the other neighbouring countries at the same period.
Wangheung temple's Stone Urn for the Cremeted Remains has an inscription with King Chang's name. The structure is consisted of “the country name + the official king name + the Whi (諱 - an official name of a king that was used when he has passed away). Compared to the inscription of King Muryeong, the order of the Whi and the official king name was switched. This inscription uses the Whi in the first person and it is to emphasize the human 'Chang' than himself as a king putting himself low with modesty in front of the Buddhist order such as Karma and rebirth. On the other hand, in the inscription of Miruek temple's Urn, the title of honor “陛下” was used, which was for the emperor in China. This can be understood as the reflection of the Authoritarian Royal Power that was newly establised during the King Mu period after the war against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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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대 수묘제와 백제 수묘(守墓) 연구

저자 : 박초롱 ( Park Cho-rong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5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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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헌과 고고자료를 통해 고대 수묘의 기초적 검토부터 백제의 수묘 흔적까지 그 일면을 그려보았다. 수묘와 관련한 기록은 백제를 제외한 고구려, 신라에서만 보이며, 이에 기존 문헌을 토대로 백제 수묘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수묘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순히 묘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청소와 관리,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업무까지 있음이 살펴졌다. 또한 『日本書紀』기록을 통해 능을 지키는 우두머리가 있었고, 백제 국명 성씨를 가진 '百濟春繼'라는 인물이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백제와 관련한 인물 혹은 집단이 일본의 수묘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백제 지역 내 수묘와 관련한 고고학적 성과를 살펴보았다. 백제에서는 익산 석왕동 유적과 부여 능산리 서고분군을 주목해보았다. 석왕동 유적은 쌍릉 옆에 위치하면서 어느 정도 위계를 가진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를 사비기 무왕이 익산 쌍릉에 안장되고, 수묘하기 위한 집단의 안치와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설의 조영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최근 주변에서 발굴된 주거지와 취사용기, 농경과 관련한 흔적이 보여 뒷받침되고 있다. 또한 이전 시기의 영향으로 능산리 서고분군을 주목해보았다. 서고분군에 인접한 2호 건물지와 수혈 주거지는 고분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난방과 취사시설, 그리고 옆의 의례적 성격이 있는 건물지 등을 보았을 때 빈장 혹은 수묘 등의 의례와 관련한 시설 정도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본 논고는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변 나라의 영향과 최근 발굴성과를 통해서 백제 내 수묘인의 모습을 상정해 보았다.


Literature and archaeological artifacts of the baekje guardian of tomb I checked out the traces. Guardian of tomb is related to the goguryeo, only visible in the shilla. So, to the literature of the baekje guardian of the possibility of tomb. Guardian of tomb simply about the role of the tomb as well as the cleaning and management, and Funeral rituals. In the “Nihon-Shoki” record, it is noted that there is a character named “bakjechungae” with the surname “bakje”. This suggests the possibility that a person or group related to baekje may have influenced the Guardian of Tomb in Japan. We looked at the archaeology related to the Guardian of Tomb in Baekje. We noted Iksan Seokwang-dong and west thombs of Neungsan-ri. Iksan Seokwang-dong is located next to Ssangneung, and artifacts with a high hierarchy are excavated. We looked at this as Sabi Muwang being buried in Ssangneung, a group's presence for Guardian of Tomb, and the contrast of facilities for managing them. We also noted the west thombs of Neungsan-ri due to the influence of the previous period. Located right next to the ancient tombs, a building site with heating, cooking facilities, and ceremonial characteristics was discovered in the Westombs of Neungsan-ri. This paper is not seen in the records, but the influence of neighboring countries and recent excavation results have assumed the appearance of the Guardian of Tomb in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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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영산강 지역사회와 외래 매장풍습의 동화

저자 : 이영철 ( Lee Young Cheol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7-8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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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 매장풍습은 해당 종족의 출자와 관련해 일체성과 정통성을 확인시켜주는 주요한 문화 요소이다. 옹관고분이 중심이었던 영산강 지역사회도 이런 관점에서 최근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외래 고분의 매장풍습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는 고분 자료에서 드러난 외래 매장풍습 요소를 검토하여 피장자의 출자와 출현배경 그리고 동화(同和) 과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외래 고분 속에 담겨진 현지사회로의 이식 과정은 '이주(移住)-정착(定着)·결혼(結婚)-동화(同和)'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설명하였다.
영산강 지역사회는 옹관고분사회로 대변된다. 'U'자형의 대형 옹관을 합구시켜 매장했던 옹관고분은 3세기에 출현한 이후 5세기에 정점을 이루다가 소멸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6세기 전반까지 지속되었다. 옹관 매장이란 풍습에 한정한다면 300년 이상 유지되고 있어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논하는데 중요한 지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산강 지역사회는 5세기에 접어들면서 커다란 문화접변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 중 하나가 외래 매장풍습의 출현과 동화이다. 5세기전엽 해남반도 지역사회는 외래 고분의 출현과 더불어 적잖은 문화접변 현상이 확인된다. 특히 외래인의 이주와 정착은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동화 양태로 나타났다.
일본열도의 왜와 가야지역 등지로부터 유입된 외래 고분의 출현은 백제 왕권과 일본열도를 잇는 국교 수립에 따른 통교 결과 형성된 해상 네트워크의 산물이었다. 백제의 대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해상 네트워크는 그 망 속에 포함된 지역사회와 외래인의 접촉을 유도하였으며, 결혼 등을 통해 점차 현지인으로 동화되어가는 프로세스를 완성시켰다. 해남 현산권역과 북일권역의 고분자료(5세기 중엽) 속에서 이러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사회 속으로의 이주-정착·결혼-동화는 해남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영산강권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데, 이는 외래 매장풍습의 유입과 변이 결과로 확인되었다.


The practice of being buried in ancient society is the highest ritual act to confirm its legitimacy. The study of the Yeongsan-gang River community centered on jar tombs Ancient Tombs also needs to look at foreign burial customs from this point of view.
So I investigate elements of foreign burial customs and give my views on the background and assimilation process. The background of this emergence was reviewed based on migration, settlement, marriage, and assimilation processes.
Mahan community in the Yeongsan-gang basin, which built the jar tombs Ancient Tombs, peaked in the 5th century, and some areas continued to have jar tombs Ancient the foreign burial customs until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If the Ancient jar tombs is limited to customs, it is possible to discuss the historical nature of the jar tombs Ancient Tombs, which lasted more than 300 years. however, as we enter the 5th century, small changes in the community begin to be detected. One of the changes is the confirmation of foreign funeral customs. According to the data review, it was confirmed again that the first immigrants were from Japanese descent in connection with the emergence of Japanese ancient tombs on the Haenam Peninsula in the early 5th century.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the Japanese Ancient Tombs can be found in Baekje's policy to secure the stability of the maritime network formed by the diplomatic ties between Baekje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And the process of settling down through means such as marriage that naturally came into contact with the community was confirmed, and gradually assimilated into the community. This appears in the mid-5th century in the Hyunsan area and in the ancient tombs of Bukil area. It is not limited to the Haenam Peninsula, but also found throughout the Yeongsan-gang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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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魏晉馬具考

저자 : 이현우 ( Lee Hyun-woo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9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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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구는 동한 만기에 이르러 두 가지의 명료한 변화 양상을 보인다. 우선 燒溝漢墓M1083호로 대표되는 형식의 동제 표비는 이전 시기 동 형식의 표비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며, 조위시기에 이르러 완전히 명기화되어 부장용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철제 표비가 점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며, 실용의 거마구와 기승용마구로 모두 사용된다.
서진시기에 들어 이전 시기 표비의 전통이 지속되는 동시에 전형적인 서진마구가 출현한다. 타원형과 역 U자형 안교, 언치, 장니를 갖춘 경식안이 유행하며, 가슴걸이와 후걸이가 사용된다. 특히 후걸이는 장식성이 증가하는데, 동한 만기의 단조식 후걸이의 전통이 지속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개량한 복잡한 형태의 단조식, 복조식 후걸이가 출현한다. 4세기대에 들어 삼각형의 윤부를 가진 單鐙도 사용된다. 이를 명기로 제작하여 부장한 것이 鞍馬이다. 晉制의 성립이 비단 묘제와 부장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서진마구의 생산'과 '飾馬문화의 정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위~서진시기를 거쳐 정형화된 마구는 4세기 중엽경 남방의 동진마구로 계승되는 동시에 북방의 삼연마구 성립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There were two significant changes on harness in Eastern Han Dynasty. First, a type of a bit represented by Shaogou tombs No.1038 became smaller than before. It changed to a miniature bit in Cao Wei period. Second, a percentage of an iron bit in one tomb gradually increased.
In Western Jin period, a bar type bit was continuously used, and the representative Western Jin harness appeared such as a wooden saddle with an oval or arch shaped pommel, a saddle flap, a saddle blanket, a breast harness and a saddle breeching. Especially, a saddle breeching decorated splendidly. A breeching that was popular in Eastern Han Dynasty was also used and a complicated lattice and multiple type breeching appeared. A triangle shaped single stirrup was also appeared in the 4th century. The miniature horse was made as grave goods that copied these harness. The emergence of the system of Jin was not limited to a tomb and grave goods, it also directly influenced to the production of representative Jin harness and settlement of decorating horse culture.
Through Wei and Western Jin period, the Wei-jin harness was standardized, and it had a direct influence on the Eastern Jin harness and became the base of SanYan harness in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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