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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update

Paekche Kingdom`s Culture

  •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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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2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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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7)~66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12
백제문화
66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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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백제 무령왕 연구 동향과 과제

저자 : 김기섭 ( Kim Ki-seob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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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 연구는 아마도 백제사에서 관련 논문이 가장 많은 주제일 것이다. 1971년 무령왕릉 발견이 기폭제였으며, 늘 관심을 기울이는 거점 대학과 박물관이 학계 관심을 진작시켰다. 그런데 연구 논문의 수에 비해 분명한 성과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무령왕의 가계, 성장과정, 즉위기반, 상장례 등에 대한 학계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고 무령왕의 정치·군사활동, 영역, 제도 및 행정체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특히, 무령왕 재위 무렵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 전쟁, 섬진강유역 및 영산강유역의 정치상황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이 저마다 달라서 내용상의 진전을 매우 더디게 만들고 있다. 연구 성과의 교육적 활용을 감안하면 이제는 견해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더 주목하면서 한강유역, 섬진강유역, 영산강유역 등지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밝히는 데 힘써야 한다. 무령왕대의 백제 영토가 선명해진다면 백제의 관부 및 지방통치제도, 가야 제국과의 관계 및 마한지역 통합, 전방후원분 축조배경 등은 물론 이른바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更爲强國]'는 말이 얼마나 실효성 있었는지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The study of King Muryeong of Baekje is perhaps the most relevant topic in Baekje history. The discovery of the tomb of King Muryeong in 1971 was a catalyst, and the university and museum, which were always interested, stimulated academic interest. However, it is unfortunate that there are not many clear results compared to the number of research papers. There is still a lack of academic consensus on King Muryeong's family, growth process, foundation for his accession, and funeral ritual, and there are still controversies about King Muryeong's political and military activities, domain, system and administrative system. In particular, each researcher's interpretation of the territorial war between Baekje and Goguryeo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and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Seomjin River Basin and the Yeongsan River Basin is different, making progress in content very slow. Considering the educational use of research results, it is now necessary to focus more on commonalities rather than differences of opinion and strive to clarify the territorial issues over the Han River, Seomjin River, and Yeongsan River basins more clearly. If the Baekje territory of King Muryeong becomes clear, the government officials and local government system of Baekje, the relationship with the Gaya small country federation, the integration of the Mahan region, and the background of the construction of an ancient burial mound, square at the head and rounded at the foot, etc. it will become clea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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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령왕대 대외관 -영동대장군 작호를 중심으로

저자 : 정재윤 ( Chung Jae-yun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5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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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영동대장군 작호를 통해 무령왕 시대의 대외관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무령왕의 한강 유역 회복 의지와 양을 통한 백제의 위상 강화 노력을 알 수 있었다.
먼저, 무령왕은 즉위하자마자 고구려를 선제공격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무령왕 대 전쟁 양상을 보면 한강 유역을 일시적으로 확보하였으나 고구려와의 치열한 다툼으로 안정되게 영역을 확보할 수 없었다. 무령왕이 이처럼 한강 유역에 대한 회복 의지를 보인 것은 집권에 도움을 준 남래귀족과 왕족들의 염원에 부응하여 대내적인 결속과 대외적인 과시를 도모하는데 있었다. 무령왕이 단독으로 고구려와 전쟁을 수행하고, 다른 나라를 견인하여 한강 유역을 일시적으로 회복한 것도 무령왕 대 적극적인 고구려 정책을 토대로 이룩한 성과로 볼 수 있다.
백제와 양과의 교류는 3차례 확인되나 502년은 실질적인 교류라 할 수 없다. 512년 교류는 『양서』본기와 무령왕릉 출토 임진(512)명 벽돌을 통해서 확인된다. 백제는 발정과 겸익 등의 사례와 연결시키면 그 이전부터 이미 선진문물과 제도의 수용 등을 위해 양과의 사적인 교류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생각된다. 521년 양과의 교류는 여러 곳에서 확인될 정도로 매우 중요하였다. 이 시기는 양의 최전성기에 이르렀으며, 무령왕이 백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양의 권위를 활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양직공도』에 보이는 백제 주변의 9개 방소국은 실제라기보다는 백제가 큰 나라임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신라와 가야제국은 물론 상기문과 하침라 등에서 새로 백제에 편입된 광활한 지역을 방소국으로 지칭한 것이다. 521년 표문의 갱위강국 또한 고구려를 여러 차례 격파하였다는 구절에 주목하면 방소국과 비슷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외교적인 노력의 결과 무령왕은 양으로부터 영동대장군이라 만족할 만한 2품의 관작을 받았다. 무령이란 시호 또한 영동대장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영동대장군은 무령왕 대 대외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호임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view of the external worl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through the title of Great General Yeongdong. As a result of the research, it was possible to understand Baekje's status in the then international communities and efforts to improve that through King Muryeong's will to regain the Han River basin and exchanges with Yang(梁).
First, King Muryeong launched a preemptive strike on Goguryeo as soon as he ascended to the throne. Through the spectrum of wars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he could secure the Han River basin temporarily with this active effort; however, he was unable to occupy that stably due to its fierce fight against Goguryeo. King Muryeong showed his will to regain the Han River basin to promote internal solidarity and external showoff.
There are three confirmed times of exchange between Baekje and Yang; however, that made in 502 cannot be considered a practical exchange. The exchange in 512 is proven through records and bricks excavated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yeol. When connected to the cases of Baljeong and Gyeomik, it is judged that Baekje had already made efforts to make private exchanges with Yang to adopt their advanced cultures and systems. The exchange with Yang in 521 aimed to be recognized by Yang that led the international communities at the time, and it shows Baekje's status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ies well.
Nine small peripheral countries near Baekje seen in Yangjikgongdo (梁職貢圖) started from the intention to show off Baekje's being a great country rather than being a true reality. “Becoming a strong country again (Gaengwigangguk(更爲强國))” in the Memorial of 521 also came out of an intention similar to that of small peripheral countries when you focus on the line that it had defeated Goguryeo several times. As a result of such diplomatic efforts, King Muryeong was endowed the satisfactory senior grade of office and peerage of Great General Yeongdong from Yang. The posthumous name of Muryeong was also from Great General Yeongdong, and through this, it was noted that Great General Yeongdong is the title that best shows the view of the external worl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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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령왕릉 출토품의 미술사 연구 현황과 과제

저자 : 주경미 ( Kyeongmi Joo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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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굴 조사된 무령왕릉은 6세기 전반의 절대 연대를 가진 백제 왕실의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고분이다. 여기에서 출토된 각종 출토품들은 절대편년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삼국시대 6세기 전반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준작들로서, 발굴이후 50여년간 다양한 장르의 학자들에 의해서 심도깊게 연구되어 왔다. 이 논문에서는 무령왕릉의 발굴 이후 2021년까지 진행된 연구들 중에서 특히 미술사적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 성과들을 중심으로 연구 현황과 향후 과제들을 살펴 보았다.
현존하는 무령왕릉 출토품들은 고고학적 발굴품이므로, 발굴 당시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연구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연구는 미술사와 역사학, 고고학의 복합적 방법론을 응용하여 진행되어 왔다. 이중에서도 미술사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주요 작품들은 재질별 성격에 따라 ①도자기, ②금속공예품, ③기타 공예품, ④회화 및 문양 등 네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사의 독특한 연구 방법론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적 분석은 주로 출토 유물들에 표현된 회화 및 문양의 형상 분석에 적용될 수 있으며, 이는 무령왕릉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근 연구들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무령왕릉 출토품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왕과 왕비의 관식과 동경 도상 분석 연구를 통해서 무령왕 시대의 문화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국제 교류 양상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남조보다도 중국 북방의 북위 및 고구려의 불교 문화와 관련된 도상들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향후 연구는 좀 더 동시대 국제적 관계와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백제 문화의 정체성을 새롭게 살펴보면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The Tomb of King Muryeong was excavated at the Songsanri Tomb sites in Gongju city in 1971. The tomb owner was King Muryeong and his Queen consort of the Baekje Kingdom who lived in the early sixth century CE. Given the inscriptions from the tomb, it has been identified as the only undisturbed and clearly dated royal tomb in Baekje as well a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Korea. All artefacts from this tomb are the most important primary material resources for understanding the cultural history of the early sixth century, as absolute chronological datum were very rare during the period in Korea as well as in East Asia. Many scholars in Korea and Japan in various fields have seriously studied the artefacts from the tomb since its excavation. In this paper,I attempted a critical review of these previous studies over fifty years by focusing on the art historical view and future tasks.
For the artefacts in the Tomb of King Muryeong are important archaeological findings, most previous scholars have studied these artefacts using the hybrid methodology of archaeology, history, art history, or material culture studies. Most subject artefacts from previous studies can be divided into four groups according to their original material identities: ① ceramics, ② metalcrafts, ③ other material objects, ④ paintings and pattern designs. The last group, paintings and pattern designs, is the most important and characteristic group to research from an art historical view, for they can be studied and interpreted to understand the ideological background through iconological and iconographical analysis.
The most recent interesting researches in this art historical view are focused on the iconographical identifications and interpretations of the pattern designs of the royal couple's gold crown ornaments and bronze mirrors. Such new studies have revealed that the Baekje's material culture in the period of King Muryeong show wider, complex, and direct international relationships with Goguryeo and the northern China Beiwei Buddhist culture than previous studies, which only disclosed limited relationships with southern China or Daoism. Future research tasks concerning these artefacts should be processed in light of the contemporary international cultural relationships and identity of Baekje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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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공산성 역사관' 사례를 통해 본 역사 전시관의 전시 기법과 활용 방법 연구

저자 : 장수남 ( Jang Su-nam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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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웅진시대 왕궁지 및 왕궁부속시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 중 한 곳으로 등재되었다. 공산성 역사관은 세계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공산성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를 올바르게 제공하고자 조성된 것이다. 공산성의 역사적 가치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시대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 답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산성 역사관은 방문자센터 + 전시관의 성격을 결합한 곳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정보 + 휴식+ 전시를 관람 할 수 있다.
공산성 역사관의 휴게공간은 통유리로 공산성을 조망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하면서도 공산성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전시콘텐츠와 기법은 '공산성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유물이 없는 전시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였다. 가상현실 체험, 공산성 출토 갑옷 복원, 디오라마를 활용한 역사적 사건 재현, X-Particles를 활용한 공산성 복원 영상, 인터랙티브 체험 등 공산성 역사관은 공산성 자체가 유적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답사하지 않아도 체험할 수 있게 조성하였다.
전시기법에 있어 최신기술 활용은 전시물에 대한 생생한 입체감과 몰입감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신 기법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글이 아닌 디지털 매체로 이미지화 된 것이기 때문에 전시기법만 생각나게 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전시관의 전시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시기법의 활용에 있어 전시관의 규모, 성격, 접근성, 비용 등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이 가장 중요하다.


The Gongsan Fortress was registered as a historical district of Baekje on the World Heritage Sites list in 2015, being recognized for its values as a royal palace site and also attached facility to the royal palace during the Woongjin period. The History Hall of Gongsan Fortress was set up to provide the right information about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fortress whose value was recognized as a world heritage site. The fortress holds its historical value based on its temporal continuity from ancient times to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and access to its field survey. The History Hall of Gongsan Fortress is a combination of visitors center and exhibition hall. Even though its size is not big, it provides information, resting, and exhibition services under one roof.
The rest space at the History Hall of Gongsan Fortress is made of whole glass, offering a view to the fortress and access to its information while taking a rest. The exhibition content and techniques are based on the theme of "Today and Tomorrow of Gongsan Fortress. Trying to overcome its weaknesses as an exhibition hall with no artifacts, the History Hall of Gongsan Fortress makes use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to provide VR experiences, restore the armor excavated at the fortress, reproduce historical events with a diorama, play videos depicting the relics and artifacts of the fortress, and offer interactive experiences covering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fortress.
At the History Hall of Gongsan Fortress, they use analog and digital techniques for exhibitions. There was a recent shift toward interactive exhibitions involving viewers. In the utilization of exhibition techniques, it is important to match the nature of an exhibition hall including its size, access, costs, and focus on artifacts or the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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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무한(武漢) 웅가령(熊家嶺) 동진묘(東晉墓) 출토 과대김구(銙帶金具)의 제작 고찰

저자 : 劉德凱 ( Liu Dekai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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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漢 熊家嶺 東晉墓 출토 金銅銙帶金具는 帶扣金具, 圭形銙, 琵琶形銙, 帶先金具로 이루어진 東晉 전기의 대장식구이다. 금속공예품의 제작이라는 시각으로써 매크로 사진 촬영 방법을 이용하여, 가공 흔적으로부터 이 자료의 製作工程은 설계→ 모형 제작→ 雙范 제작→ 合范→ 녹여 넣기→ 鎔范 제거→ 硏磨→ 彫金→ 鍍金→ 組立이라는 프로세스를 복원한다. 鑄造로 과대금구의 부품을 생산한 것이 밝혀지고 소위 晉式帶金具의 제작 기술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제기하고자 한다. 또 조금 기법의 가공 흔적은 집계적으로 분석하여 분업화된 생산 체제를 추정할 수이 있다. 웅가령 과대금구는 서울 夢村土城 출토품과 형태, 문양, 제작 기술 등 방면을 비교하여 양자의 유사성이 분명히 보인다. 동아시아 진식대금구의 제작 양상으로써 관찰하면 우한 웅가령, 몽촌토성 출토품은 단기간에 동일한 공인집단이 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웅가령 동진묘, 몽촌토성 출토 과대금구는 제작지가 마찬가지로 연구사가 지적되었을 것이 같이 몽촌토성 과대금구는 대중교섭을 통하여 한성기 백제가 동진에서 이입된 유물이라는 견해를 방증할 수이 있다.


The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metal artefacts led by the Jin-style belt plaques in the 3rd to 4th centuries, represents an important and not negligible stage in the development of East Asian regional exchanges. Current research demonstrates they could significantly enhance our understanding about ancient metalworking, here the method of macro photography was used to investigate a set of gilded copper belt plaques, unearthed from the tomb in Xiongjialing “熊家嶺” site, Wuhan City, China and dated at the Eastern Jin Dynasty (317-420AD). It approaches production process involved in metal forming, processing of carving and assembly method through the observation of metal surface's trace phenomenon. This research suggests a kind of production process of the Jin-style belt plaques, namely Design →Make model→ Make mold→ Casting→ Remove mold→ truing→ carving patterns→ gilding→ assembly.
It was revealed that the parts of belt's plaque were produced by the method of casting, which intended to provide a new view about the manufacturing technology of the so-called Jin-style belt plaques(晉式帶金具). In addition, it is possible to estimate the division of labor system by analyzing the data of processing traces collectively.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Xiongjialing and Mongchontoseong's belt plaques are clearly visible by comparing the shape, pattern, and manufacturing technology.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same worker's group and produced in a short period of time for items excavated from Xiongjialing and Mongchontoseong through the observation of the Jin-style belt plaques in terms of East Asian. In short, as research history has pointed out that the belt plaques unearthed from Mongchontoseong was a relic imported from China mainland during Eastern Ji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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