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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현실 update

Journal of Society for Music and Reality

  • : 민족음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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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음악과 민족(~2020)->음악과 현실(202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1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028
음악과 현실
61권0호(2021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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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음악과 현실』의 힘찬 출발을 축하한다! 『음악과 민족』이 부활(復活)하다

저자 : 조선우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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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종태의 해방전후 음악활동 고찰

저자 : 이수정 ( Lee Su J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6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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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는 음악교육자·작곡가·지휘자·아악 전문가이자, 군인이다. 1930년 일본음악학교를 졸업한 인텔리로서 해방 이전에는 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해방 후에는 모든 음악 경력을 접고 군대에 들어가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해방을 기점으로 격변한 인생사를 반영하듯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반되게 나타나 있다. 음악인 이종태는 친일 및 전쟁협력 단체에서 활동한 행적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물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반면, 군인 이종태는 1958년 국방부장관 공로표창, 1966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으며 승승장구하여 현재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묻혀있다.
음악인 이종태는 서양음악, 궁중음악, 음악교육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수십개의 음악 단체에 소속되었으며, 식민지 관변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중동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 경성고등음악학원, 이화여자전문학교, 이왕직아악부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경성관현악단, 영미합창단 등에서 지휘를 하였다. 1930년 <소년>이라는 작품을 작곡한 이래, <내일>·<그리운 소년>·<우리들은소년>·<김소좌를 생각함>·<총 후> 등의 친일 작품을 양산하였다. 『보통학교조선어독본』을 토대로 음악 레코드를 제작하거나, 경성방송 '군가공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전시 시국 가요를 교육 보급시켰고 강연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또 이왕직아악부에 10여년을 재직하면서 서양음악 교육과 오선보 채보사업에 관여하며 아악 전문가로 행세하고, <기미가요>와 <우미유카바>를 아악기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는 등 이왕직아악부의 친일활동을 지원하였다. 일제강점기 음악계에서 보여준 활동 내용과 양상은 놀라운 정도이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이종태는 해방이 되자, 초창기 대한민국 군대와 군악대가 만들어질 당시 42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하였다. 군예대 창설에 관여하였고, <상이군인의 노래>·교향시<조국찬가>·교성시<광복10년> 등을 군대 내의 음악 행사를 맡기도 하였다. 군인이라는 신분 제약이 있어 일반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군대 내에서 승승장구하였다. 태세 전환에 성공하면서 친일 행적은 감추어져 국가유공자로 대접받았으며 사후에 부인인 스즈키 미사호(鈴木美佐保)와 나란히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던 과오를 이종태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Lee Jong-tae was a music educator, composer, conductor, and soldier. Lee, an intellectual and a graduate of Japanese Music School(日本音樂學敎) in 1930, worked actively as a musician before liberation. After liberation, he gave up his career in music and joined the army and was appointed as a brigadier general. As if reflecting the dramatic convulsion of his life after the liberation, historical evaluations on Lee have conflicting arguments.
Lee as a musician was listed in the pro-Japanese Biographical Dictionary as a result of activities as a pro-Japanese and working with war cooperation organizations. On the other hand, Lee as a soldier had a successful career, being commended for his service by the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in 1958, and receiving an Order of National Security Merit, Cheonsu Medal in 1966.
As this research is the first to study Lee, we examine Lee's musical activities, and take a brief contemplation on projects he put parts in as a commissioned consultant of Iwangjikyangyakbu (Yi Royal Household Music Band). Lee as a musician worked in all areas including Western music, court music, and music education. He was a member of dozens of music organizations, and worked in a colonial government organization. Under a war footing, he distinguished himself in pro-Japanese groups and thereby entered major musical circles. Furthermore, after joining the Yi Royal Household Music Band, he participated in the project of the Staff(stave) transcription as an expert of court music during ten years of his incumbency as an editor of omnifying court music ('A-akumbopyeonchansamuimsichoktak' 雅樂音譜編纂事務臨時囑託). He also actively supported the pro-Japanese activities of the Yi Royal Household Music Band by rearranging Kimigayo and Umiukaba to be playable for court instruments.
His decision to change his stance after liberation was surprisingly quick.
In the early 1947, when the Korean military and military band were formed, he joined the army at the age of 42. He became a military band master in the eighth regiment and after the recapture of Seoul in 1950, he participated in establishing the KAS (Korean Army Arts Service 陸軍軍藝隊). Since then, he was unable to actively engage in music due to his status as a soldier. However, he did not stop interacting with musicians until 1970, revealing his presence at international music festivals. Since 1961, when he was serving as the head of the National Cemetery, he cooperated with the National Gugak Center to hold Confucian ceremonies in the National Cemetery on Memorial Day.
It is desperately necessary to criticize Lee's pro-Japanese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reflectively view the fact that Lee has never been discovered until now and is still presently being treated as a man of national me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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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음악에 담긴 전쟁의 기억: 피난지 전시동요 연구

저자 : 신혜승 ( Shin Hye Se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9-11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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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전쟁 시기의 동요에 내재되어 있었던 순수주의와 반공주의 사이의 여러 측면들을 당시의 사회상과 함께 살펴보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학교교육이 국가 주도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선택과 배제가 이루어지는지를 한국전쟁 당시 발행된 초등학교 임시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악곡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국가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아 전하려 했는지도 파악해 보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의 전쟁시기의 동요들을 통해 피난지 교과서 속 동요의 양상과는 다른 또 어떠한 맥락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이것은 전쟁 시기 동요 교육과 보급에 있어서 어떤 의미와 역할로 자리 잡게 되는지, 혹은 배제되는지 역시 파악해 보고자 했다.
대상으로 삼은 주요 텍스트는 전쟁 시기 발행된 초등학교 임시 음악 교과서 『전시음악공부』(1951)와 부산 및 경남지역에서 사용된 임시 음악 교과서 『소년 기마대』(1951)와 『새음악』(1952), 그리고 윤석중이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9월 한 달 동안에 서울에서 쓴 동요를 엮어 출판한 『노래 동산』(1956)이다. 이처럼 한국전쟁 시기에 창작되고 보급된 동요와 동요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을 통해 이념적 대립 상황과 반공교육의 형성과정을 추적해 보았으며, 특히 1950년대 초반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등장하는 동요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의 연속성 문제와 함께 반공교육의 전유 및 냉전의 논리 등에 대해 재고해 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various aspects between purism and anti-communism, which were inherent in children's songs during the Korean War, along with the social aspects of the time. First, I would like to examine what kind of choices and exclusions are made in the process of nationally-led educational content, through the songs contained in music textbooks published during the Korean War. Through this, I tried to figure out what kind of ideology the country tried to convey. On the other hand, through the children's songs of Yun Seok-Jung (1911-2003) during the Korean War, it was examined what context could be derived that was different from the aspect of the children's songs in the textbook of the evacuation site. In addition, I tried to find out what meaning and role would be established or excluded in the education and distribution of children's songs after the war.
Through the various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children's songs composed and distributed during the Korean War, I traced the ideological confrontation situation in Korea during the war and the formation process of anti-communist education. In particular, by examining the aspects of children's songs appearing in elementary school textbooks in the early 1950s, I reconsidered the continuity between the colonial and division periods, the appropriation of anti-communist education, and the discourse of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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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50년대 대중음악 속 사랑의 제 모습: 노래책 『대중가요』 제1, 2, 3집 수록곡을 중심으로

저자 : 장유정 ( Zhang Eujeo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4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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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50년대 말에 발간된 노래책 『대중가요』 1, 2, 3권 속 사랑 노래를 고찰한 것이다. 노랫말을 중심으로 노래에서 사랑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몇 가지 형태의 사랑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특히 누가 누구를 향한 어떤 사랑인지를 중심으로 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연인에 대한 미련과 집착, 이국 여성에 대한 동경과 환상으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출한 노래는 대체로 아이가 부모 내지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이나 남매 중 오빠가 여동생에게 건네는 말로 이루어진 노래가 있었다. 이러한 노래들은 1950년대 당시 전쟁 이 후 발생한 전쟁고아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전장에서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사들의 목소리와도 연관된다.
다음으로 연인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보여주는 노래들은 성별을 단정할 수 없는 노래 화자의 방백으로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드러냈다. 특히 이별 후 노래 화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노래들은 그 이전 노래들이 보여주었던 이별의 정서를 계승하는 측면이 있었다. 즉 '현재는 없으나 과거에는 존재했던 임'과 '시적 화자의 수동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떠난 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1950년대 사랑 노래에는 이국 여성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드러났다. 이는 6.25 전쟁 이후에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무수한 이국과 관련이 있다. 영화를 위시한 수많은 서양 문화를 접하면서 이국 여성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키웠다. 이국 남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선정한 노래가 거의 없는 것과 달리, 이국 여성이 노래 화자의 사랑과 이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대중가요의 작사자가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가 많이 나왔음에도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이것이 실제라기보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한 환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는 그 누구도 6.25 전쟁의 영향과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랑을 다룬 노래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연인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들은 그 이전 시기나 이후 시기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노래에서 남매를 위시한 가족이 소환된다든지, 이국 여성과의 사랑을 다룬 노래들은 1950년대 대중가요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즉 전쟁 이후의 특수한 상황이 노래에서 가족이나 이국 여성을 소환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대중가요에서 가족이 소환되더라도 군인 신분의 아들이나 부모 잃은 남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더 이상 이국이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접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면서 이국 여성과의 사랑을 다룬 노래도 찾기 어려워졌다.
연인간의 사랑의 경우, 시대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대중가요의 중요 소재이다. 노래는 그러한 사랑을 반영하고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울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노래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1950년대 남녀간의 사랑 노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연인간의 사랑 노래에서는 1950년대만의 특징을 찾기 어려웠다.


This paper considers the aspects of love in a song book, Popular songs vol. 1, 2, 3 published in the late 1950s. We divided how love is portrayed in the song with the words of the song into several forms of love. They include longing and love for family, lingering and obsession with lovers, yearning and fantasies about exotic women.
First of all, there were songs that expressed longing and love for family, which consisted mostly of words delivered by a child to his parents or mother, or words given to his younger sister by his brother and sister. These songs are related to the war orphans that occurred after the war in the 1950s. It is also related to the voices of soldiers who miss their mother and hometown on the battlefield.
Next, the songs that show lingering attachment and obsession with lovers were characterized by the gender-definite release of the song speaker. In particular, most of the cases focused on the loneliness and longing felt by the singing speaker after the breakup. These songs inherited the sentiment of parting that previous songs showed. In other words, "lover who is not present but existed in the past" and "passive attitude of poetic speaker." However, according to the contents, it shows the lingering attachment and obsession of the person who left.
Finally, love songs of the 1950s revealed their yearning and fantasies about foreign women. This is related to the myriad foreign countries experienced directly or indirectly by Korean people after the Korean War. By experiencing numerous Western cultures such as movies, he developed his yearning and fantasies for foreign women. Few songs have selected foreign men as objects of love. However, the fact that foreign women have become the subject of love and farewell by songwriters is also linked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song's lyricists were male.
In the 1950s, no one could be free from the effects and aftermath of the Korean War. Such traces can be found in songs about love. Songs that deal with love between lovers have many similar aspects to the period before or after that. However, songs about family members such as siblings are summoned in the song, and love with foreign women are particularly prominent in popular songs in the 1950s. In other words, the special situation after the war can be said to have summoned family members or foreign women in the song. This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even if a family is summoned from a popular song after the 1950s, it is difficult to find a son of military status or a brother and sister who lost their parents. In addition, it has become difficult to find songs dealing with love with foreign women as foreign countries are no longer subject to admiration, but are subject to actual 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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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냉전시기 음악연구의 현황과 전망

저자 : 김은영 ( Kim Euny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8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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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현대음악사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인문사회학계의 냉전연구의 최근동향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음악연구의 방향을 전망해보았다.
최근, 냉전시기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냉전연구는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방법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특히 문화냉전 연구는 전통적인 냉전사 연구 시각을 넘어서, 냉전질서가 문화·예술·학술적 영역에 미친 영향력을 포착하기 위한 연구로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민간 문화냉전기구의 사업과 관련한 연구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음악학계의 연구는 여전히 특정 장르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머물고 있으며 동시대 예술사적 흐름과 공통의 담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시기 음악연구에 있어 고려해야 할 연구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보았다.
첫째, 한국의 악단형성에 미친 미국의 영향에 대한 검토, 둘째, 단정과 전쟁을 겪으며 음악가 사이에 벌어지는 내부냉전에 대한 검토, 마지막으로 문화냉전과 국제교류의 상관성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다. 앞으로 음악학계에서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움직임과 세계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변동 사이를 긴밀히 연관하여 검토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본격적인 학술연구가 활성화되길 희망한다.


This paper explores recent tendency of the social and human sciences' study of the Cold War, and forecasts the directions of future music studies in the needs of invigorating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music.
Recently, with the disclosure of classified documents during the Cold War period, Cold War research in various academic fields has begun to reexamine Korean modern history. Furthermore, the research of the cultural Cold War has been expanded its range beyond the historical perspectives of the Cold War to detecting influence of the order of Cold War on the areas of culture, art, and academics.
On the other hand, musical academics' research persists its focus on certain genre, restricting contemporary flow of the art history and the inducement of common discourses. Therefore, here we present directions of research to be considered for the future studies of modern times music.
Considerations are as followed : First, the review on American impacts during the Cold War. Second, the review of the ideological conflicts between musicians, and Lastly, the necessity of reviewing the correlations between Cultural Cold War and international exchanges.
It is hoped in the future that academics of music could attach close relations between multilayered movements of Korean society and the historical fluctuation of the world and East Asia, for the activation of fullfledged academic studies that explores the signification for the at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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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문화냉전 시기 남북한 민족예술의 경합: 1950-70년대 해외공연을 중심으로

저자 : 김희선 ( Kim Hee-su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39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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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화냉전의 차원에서 전개된 남북한 국제적 경합의 전개를, 냉전이 가장 극심하게 대립되던 1950년-1970년대 진행된 남북 민족예술 해외공연의 양상을, 남한에서는 정권과 민족예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북한은 사회주의 민족예술의 전개 단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면서, 민족예술이 냉전 정치학에 호명되어 냉전 민족주의(허은 2011)와 냉전 세계주의(클라인 2017)를 수행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았던 북한은 민족예술의 국제경쟁에서 남한보다 앞서 있었다.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는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주도 체제는 문화냉전의 국제경합에서 유리했다. 반면 초기 남한의 문화예술보다 아시아의 반공의 보루로서만 관심을 두었던 미군정과 민족적인 것의 발굴하고자 했지만 경제·정치적 입지가 약했던 초기 정권에서 민족예술을 통한 국제경합은 열세에 놓인 상황이었다.
남북 민족예술의 해외공연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시기는 1960년대이다. 세계적 냉전의 심화, 아시아 역내 정치학의 변화, 남북관계 등이 역동적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북한은 인민을 위한 균질화된 민족예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구체화된 공연양식으로 해외공연을 확대하였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이 시기 남한의 해외공연은, 정권의 조국 근대화와 반공 민족주의의 역군으로 호명되며 미국 문화냉전 전략과 틀 안에서 전개되었다.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해 호명된 민족예술과 반공과 근대화의 역군으로 호명된 남한의 민족예술은 각각 체제유지와 국제경합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주체사상에 기반한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양식을 확립하여 1970년대부터는 해외공연의 주요 종목으로 채택하게 된다. 유신헌법과 함께 더욱 강력한 조국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부흥을 내세우고 강력한 통제체제를 작동시켰던 박정희 정권의 1970년대는 국립단체를 중심으로, 남북 민족예술 국제경합에 적극적 대응에 나서며 대규모 공연단을 해외에 파견하면서 민족예술의 국가봉사를 더욱 강조하였다.
당대 글로벌 문화냉전은 한반도의 민족예술의 수립에 근간으로 역할 했고 특히 해외공연의 레퍼토리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국가적 유용성과 민족주의적 경합은 국내적으로도 민족예술의 위상에 영향을 주었다. 미-소 군정기에 보여주었던 서구식 문명화를 향한 동경, 타자를 통해 민족예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자 한 점, 민족예술에 대한 근원적 고민보다 국민통합과 국제경합의 도구로 민족예술을 위치시킨 점은, 그 과정에서 구축된 민족예술 결과물의 벌어진 간극을 초월하여, 남북이 거울처럼 서로 비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문화냉전의 차원에서 전개된 해외공연을 통한 남북 민족예술의 경합은 '이념성', '민족성', '문명화'의 과시이자 경쟁이었고 이후 한반도 민족예술의 향방을 결정짓고 있음도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between two Koreas under the context of Cultural Cold War, through overseas performance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of both Korea from the 1950 to 70s. The occup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by the U.S. and the U.S.S.R after World War II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wo Koreas in 1948 and the peninsula's positioning as the battlefield in a Cold War. “National” discourses as well as ideology have been emphasized to demonstrate ideological superiority. In this situation, the two Koreas have competed in terms of their respective Koreanness, by preserving and reinventing “traditions.” Domestic and international propaganda on systemic, ideological, state, national authenticity has fed on “Cold War Nationalism” (Heo, 2011) and “Cold War Cosmopolitanism” (Klein 2017), and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ecame very effective means of propaganda for international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In the post-war period, South Korea was not able to organize its cultural infrastructure at a state level. The first international performance tour was organized by the nation, but funded by the USIS. Other performing troupes were also sent to Free Asia Alliance nations. In the 1960s, several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roupes made performance tours of the US, supported and invited by Cold War-related institutions including the Asia Foundation. During the 1970s, more strong nationalistic yusin rhetoric forced national performing arts troupes to serve the nation through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performed frequently throughout the world than before and it was based on cold war competition.
North Korea led the way in systemizing national art troupes for international tours. It re-organized the cultural infrastructure and artist groups beginning in the 1950s to prove the superiority of its system and competing “Korean-ness”. The North frequently dispatched folk performing arts troupes, including Choe Seung-hui, to socialist alliance states on tour. North Korea expanded its diplomatic relations beyond USSR, China and Socialist alliance nations during the 1960s. Along with its establishment of socialist revolutionary opera during the 1970s, North Korea expanded its overseas performances to other part of the world.
This paper examines the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national discourses in the Cold War period, focusing on international performance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etween 1950s and 1970s. At the same time, it reveals that the internal politics of the peninsula intertwined with the global Cold War have defined the direction of moderniza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both Koreas, in completely opposite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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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악보 명칭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1)

저자 : 김성혜 ( Kim Seonghye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1-28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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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립국악원에서 간행한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된 고악보 중에서 악보의 명칭에 관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문제점의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시도한 글이다. 본고에서 검토한 고악보 명칭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된 고악보 서명이 악보 표지명에 의거한 경우를 검토한 결과 서명이 중복되는 사례가 6건 발견되었는데, 다른 악보의 명칭과 변별력이 없는 것이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금보』라는 서명으로 중복되는 것이 4건, 『양금보』라는 서명으로 중복되는 것이 2건이다. 이처럼 고악보 명칭이 중복되는 것은 특이사항을 고려하여 별칭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고악보 서명이 중복되어 별칭을 지을 때 편자 혹은 편찬 기관 및 내용에 의거하여 지어진 경우를 검토한 결과, 악보를 해제한 연구자마다 주안점으로 삼은 요인이 편자의 호, 편자의 거주지와 성씨, 낙관, 이름, 편찬기관명, 내용 등 매우 다양하여 일관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별칭을 지을 때 주안점을 두는 기준을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은 주요 요인에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일정한 규칙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고악보 표지명이 중복되어 별칭을 지을 때 악보 소장자의 이름이나 호(號)에 의거하여 작명한 사례를 검토한 결과 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부여하였고, 또 어떤 경우에는 호를 부여하여 이 역시 일관성이 없는 점이 문제였다. 이에 대한 개선책은 현대 사회는 주로 실명을 거명하므로 별칭에 소장자의 호를 사용하기 보다는 이름을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이런 경우 편자 이름과 혼동되지 않도록 소장자 이름 다음에 '소장(所藏)'이란 용어를 병기(倂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넷째, 고악보 표지명이 중복되어 별칭에 악보 소장처를 부여한 경우를 검토한 결과, 고악보를 소장한 기관이 대부분 대학교 도서관이었는데 어떤 경우는 학교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대학교 도서관 내 특별 문고 이름을 부여한 사례가 있어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 문제였다.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소장처가 대학 도서관일 경우 그 학교 이름을 우선으로 부여한다는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존에는 주로 대학명의 첫 글자만 부여했는데, 이것보다는 분명한 명칭을 부여하여 변별력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으로 국립국악원에서 정기간행물로 출판하고 있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된 고악보의 명칭을 검토하여 문제점을 드러내고, 명칭을 지을 때 필요한 몇 가지 규칙을 제안하였다. 여기에 필자의 식견이 부족하여 잘못 판단한 부분도 있을 것이나, 이런 부분은 향후 식견이 넓은 자의 질정을 바란다.


This research is to address a few problems of the titles of the ancient musical scores found in the Collection of Korean Musicology Materials published by the National Gugak Center.
First, among the cases where the titles of the ancient musical scores follow the book titles, there were found six cases of the same titles. The problem is that they can't be distinguished from each other by their titles. There are 4 cases entitled Geumbo, and 2 cases Yanggeumbo. The problem can be corrected if alternative titles based up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musical scores are provided.
Second, the alternative titles, which were given based upon the compilers, the compilation institutes and the contents, have no consistency. The researchers used different standards for entitling them ranging from the compiler's name to the name of the compilation institute. The problem comes from the lack of common standard. Therefore, it's important to sort out priorities in naming them and to establish a standard.
Third, as for the cases where the name or the pen name of the owner of the musical score is used for the alternative title, some were named after the owners' names, while others after their pen names. Since in the modern world, we tend to prefer our own name in most transactions, it will be better to follow the name of its owner than their pen name. In addition, it would be wise to place the word 'owner' next to the name of the owner to prevent the confusion with that of the compiler.
Lastly, in case where the alternative titles were given following the name of the institution where the musical scores are kept, the institutions were mostly college libraries. In those cases, naming wasn't consistent, either. Then, it will be necessary to establish such a standard as that the college name should be used as the title. In addition, only the first letter of the college name used to be offered in the title, but it will be better to use two letters out of the college name to make it more discernable.
So far, the titles of the ancient musical scores in the Collection of Korean Musicology Materials have been examined and a few suggestions made to make some improvements. When the titles of the ancient music scores are repeated, it is inevitable to make an alternative title. However, as it turned out through this research, there has been no specific standard to name them. Just like the names of ancient artifacts, the titles of ancient music scores are historical materials that are studied and examined by many different people. Therefore, it is imperative to have a standard in naming them.

KCI등재

8재일디아스포라의 노래 <임진강>

저자 : 유영민 ( Yu Youngmi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1-30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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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특징은 떠남과 이동, 정착과 재이동,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절합과 재절합을 통한 끊임없는 변모의 여정이다. 디아스포라 음악 문화에도 같은 특징이 새겨지게 마련이나, 새로운 음악 장르나 작품에만 천착할 경우, 디아스포라 역사와 함께 걸어온 '새롭지 않은 옛 노래'의 의미와 역할을 간과하기 쉽다. <임진강>은 탄생 시기부터 지금까지 선율 자체의 변화가 거의 없는, 선율도 지극히 단순한, '새롭지 않은 옛노래'라 할 수 있다. 수차례 편곡이 탄생하고, 여러 음악가의 목소리와 연주로 리메이크되었어도, 새로운 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작품/작곡 중심의 관점으로 음악을 바라본다면 <임진강>의 혼종성이나 역동성은 논하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임진강>이야말로 재일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상징 같은 음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임진강>이 횡단해온 시공간을 추적하며 그 안에 담긴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재일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곡이 어떤 상황에서 탄생하고 이동했는지, 일본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일본과 한반도 사이에서 어떤 매개 역할을 하며 재일디아스포라의 문화 지형을 변모시켰는지 살펴봄으로써, 디아스포라 음악의 혼종성을 사운드나 작품이나 장르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상징과 역할을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Diasporas are characterized by changing through departure and mobility, settlement and re-location, deterritorialization and reterritorialization, and articulation and rearticulation, which are also embodied in musics of various diasporas. However, if only new musical genres or works are investigated, “longstanding old-fashioned songs” could easily be disregarded in spite of their significant meanings and roles. The song Imjin River is the very “longstanding old-fashioned song,” which has rarely been transformed keeping a very simple melody. Although many arrangements of the song have been produced, it has never led to a creation of a new genre. From the perspective focusing on musical works/compositions, we would not be able to discuss hybridity or dynamics of music. However, the song Imjin River is the musical symbol that has always existed in the whole history of Korean diaspora in Japan. Therefore, this paper explores multilayered and multifaceted diasporic identities of Zainichi Koreans by tracing the routes of the song, while illuminating its meanings, symbols, and roles, rather than analyzing its sound.

KCI등재

9한국 대중음악 수용자의 양상 및 수용인식 연구: 199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 조장원 ( Jang Won Jo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1-3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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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에서 1990년대는 폭발적인 대중음악의 성장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국내의 경제성장,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자유민주주의의 물결,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90년 대에는 댄스음악을 선두로 하여 힙합, R&B, 레게,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국내로 들어왔으며, 대형 기획사들이 설립되며 체계화된 시스템을 통해 아이돌 가수를 키워내기 시작했다. 90년대 대중음악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에 대중음악이 중심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K-pop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본 논문은 90년대 대중음악의 수용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작용하였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단순히 당시의 유행가나 소비 성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욕구가 그러한 결과를 낳았는지, 그렇다면 대중들이 그러한 욕구를 갖게 된 공통의 역사적 경험 등에 대해 이해를 높일 것이다.
본문에서는 신세대의 부상, 팬덤문화와 인디문화의 등장, 그리고 기성세대의 수용방식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90년대의 수용자를 분석하였다. 이 네 부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 산업은 음원시장의 디지털화와 함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90년대 이후의 대중 음악 수용자에 대한 연구는 시기를 더욱 세분화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e 1990s are recorded as the era of explosive popular music growth in the history of Korean pop music. This is the result of domestic economic growth, the worldwide wave of liberal democracy, and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the 90's, starting with dance genre, other various genres, such as Hip-Hop, R&B, Reggae, and Techno were introduced. In addition, large entertainment management companies were established and began to train idol through systematic system. Popular music has become the heart of the entertainment industry. It was possible because 90's korean pop music never stopped trying new things and challenges.
This thesis attempted to examine in the process of researching the audience of 90's pop music, how the situation of the time was accepted and applied to the public. Through this study, not simply listing the trends of music and consumption from the time, but what needs actually caused the result. It will also enhance understanding of the common historical experience that led to this desire.
The text analyzed the 90's Korean pop music consumer by dividing them into four parts: the rise of the new generation, the emergence of fandom and indie culture, and the acceptance of older generation. These four parts played an independent and organic role, interacting with each other. Since the 1990's, the Korean pop music industry has changed rapidly because of the digitalization of the music market. Therefore, the study of Korean pop music consumer after 90's will require a more specific and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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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언택트 시대에서의 초등학교 온라인 국악교육 운영실태 및 과제

저자 : 박주만 ( Park Joo Ma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41-36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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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서의 초등학교 온라인 국악교육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국악교육을 위한 향후 과제를 탐색하는데 있다. 이에 위해 온라인 국악 수업을 경험한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른 결론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교사들이 주로 사용한 온라인 국악 교육의 운영유형으로는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이 가장 많았고, 그 외로 실시간 쌍방향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 학습 꾸러미 활용 수업이 있었다. 둘째, 초등교사들이 주로 사용한 온라인 국악교육 운영 플랫폼으로는 e학습터, 카카오톡, 줌(Zoom), 네이버 밴드 순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초등교사들이 실행한 초등학교 온라인 국악교육의 지도 영역은 감상과 이론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이론과 창작, 감상과 가창, 이론과 가창, 감상과 창작 등으로 나타났다. 넷째, 초등교사들이 실행한 초등학교 온라인 국악교육의 교수 방법 및 전략으로는 온라인과 등교수업의 연계, 온라인 수업방식 고려, 학생들의 흥미 반영, 학습결과 및 피드백 제공, 학생과의 상호작용, 개별화 학습 순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초등교사들이 실행한 온라인 국악교육 평가 방법은 온라인과 등교수업 연계 평가, 댓글 및 피드백, 활동지 수행평가 등을 활용하고 있었다. 한편, 향후 온라인 국악교육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온라인 국악교육을 위한 정보화 환경 구축, 온라인 국악수업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 온라인 국악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변화와 노력, 전문성 향상 등이 요구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look into the operating conditions of elementary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n an untact age brought on by COVID-19 and based on this, to explore future tasks for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n a post COVID-19 age. For this, it conducted surveys on elementary teachers who experienced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Conclusions can be presented as follows.
First, the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operation type used most by elementary teachers were classes focused on content utilization followed by real-time interactive classes, classes focused on task performance, and classes utilizing learning packages. Second, the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operation platforms used most by elementary teachers were e-learning grounds, Kakao Talk, Zoom, and Naver Band, in that order. Third, the teaching domains of elementary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mplemented by elementary teachers mainly leaned towards appreciation and theory, along with theory and creation, appreciation and singing, theory and singing, and appreciation and creation. Fourth, teaching methods and strategies of elementary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mplemented by elementary teachers appeared in the order of online and offline class connections, online class method considerations, student interest applications, learning result and feedback provision, teacherstudent interactions, and individualized learning. Fifth, assessment methods of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mplemented by elementary teachers were online and offline class connection assessments, comments and feedback, and activity log performance assessments.
Meanwhile, tasks for the development of future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include the establishment of a computerization environment, the development of diverse contents, changes and efforts of teachers, and the enhancement of professionalism for online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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