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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현실 update

Journal of Society for Music and Reality

  • : 민족음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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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765-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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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음악과 민족(~2020)->음악과 현실(202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4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051
음악과 현실
64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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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수정 ( Lee Su-J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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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왕실은 이왕가라는 이름으로 일본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따라서 순종의 장례는 일본 황족에 준하는 장의(葬儀)로 거행됐어야 했는데, 일본에 큰 공을 세웠을 때 부여되는 '국장(國葬)'이 부여되었다. 실권이 없는 식민지의 왕인 순종에게 부여된 국장은 일본의 국가 장례를 뜻하는 것으로, 1919년 고종과 1926년 순종의 장례에서 실행되었다. 다만 식민지 조선의 관습을 거스를 수 없어, 국장은 조선식 전통장례도 활용하였다.
고종의 국장은 일본식 국장을 기본으로 하고, 조선의 구식장례를 혼용하는 방식으로 거행되었는데, 순종 국장은 조선식 장례를 기본으로 하고 일본식 국장을 혼용하는 방침으로 바뀌었다. 순종 국장은 고종을 기준으로 삼았고, 조선 관례에 따른다는 방침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고종 때와 다른 양상을 보여준 것이다. 일본식 국장 절차를 축소했을 뿐 가장 중요한 절차와 내용은 일본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거행된 두 번의 국장은 일본 황가와 내각에서 주도했기 때문에 이왕가는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지 못했다.
본 연구에서는 순종의 장례에서 볼 수 있는 두 개의 의식인 조선과 일본식 장례 절차와 음악을 살펴보았다. 조선식 국장은 승하에서 발인, 부묘의까지 약 3년간 각종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왕직에 빈전과 혼전, 산릉, 부묘주감을 설치하여 의례를 진행했으며, 빈전, 인산, 산릉, 혼전, 부묘는 전통방식에 따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장의 가장 마지막 의식인 부묘의에 연주된 종묘제례악의 곡명이 <보태화지곡>·<향만년지곡>으로 바뀐 점을 알 수 있었다. 부묘 행차시에 고취악으로 <태평춘지곡>이 연주되었는데 이왕직아악부에서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와 다른 점은 종묘에서 환궁할 때가 아닌 종묘로 행차할 때 고취했다는 점이다.
일본식 국장은 절차가 간소화되어 사뢰의(천황이 보내온 조문를 낭독하는), 발인, 영결식이 있었다. 발인과 영결식에서는 일본식 장의물품이 사용되었다. 국장에서는 해군군악대와 육군의장병이 <슬픔의 극>·<울려퍼지는 나팔소리>·<목숨을 버리고>같은 장송곡을 연주하였다. 또 일본군과 의장병 수천명과 조포와 조총발사, 대규모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일본의 위력이 전면에 드러나도록 배치하였다. 고종 때와 달라진 점은 조선과 일본의 장례 제도를 분리하여 거행한 반면, 순종 국장은 '성빈전의-성복의-사뢰의-견전의-발인의-봉결식의-침전성빈전의-하현궁의-반우의'라는 새절차를 만들었는데, 양국의 국장 절차를 혼용한 것이었다.
또 엄순헌귀비, 이희공, 이준공 같은 왕족과 일제에 의해 작위를 받은 신흥 귀족의 장례는 어떻게 거행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왕족과 귀족의 장례는 절차와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국장과 같은 양상이었다. 이런 '조선 상류'의 장례는 일본의 영향하에 거행되면서 한일양측의 장례를 혼용하였다. 조선식 장례와 발인을 하되, 일본식 의물도 사용하고 일본군 의장병의 장송곡 연주하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마쳤다. 이러한 방식으로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거행된 일제강점기 장례 풍속에 본보기가 되어 대중의 장례 풍습에 영향을 주었었다.


The funeral of King Sunjong who died in 1926 was held in a state funeral. The state funeral offered to Sunjong, the king of the colonial state, was, in fact, the state funeral of Japan. Focusing on the state funeral of Sunjong, this study examines the aspects of state funerals and funeral music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lso, this researcher investigates how Joseonstyle funerals and Japanese-style modern funerals proceeded. At Sunjong's state funeral, Japan's modern funeral system and Joseon's traditional funeral system were used in combination. They complied with the policy of following Joseon customs with the state funeral for King Gojong as a reference. However, Gojong's state funeral was based on the state funeral of Prince Arisgawanomiya Takehito of Japan who died in 1913. It means that state funeral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basically the application of Japanese-style state funerals to Joseon's.
In Sunjong's Joseon-style state funeral, Binjeon(a funeral hall), Insan(cortège), Sanneung(royal tom), Honjeon(a funeral hall), and Bumyo followed traditional ways. Japanese-style state funerals involved 'Saroeui (reading the Emperor's condolences), leaving ceremony, and sending off ceremony. In the leaving and sending off ceremony, Japanese-style funeral items were used, and the music tabooed at royal funerals in Joseon were used. Concerning music used in state funerals, the naval band and army guards of honor played such dead marches as < The Play of Sadness >, < The Sound of the Trumpet >, and < Laying Down Your Life >. Moreover, thousands of Japanese soldiers and honor guards' artillery salutes and firing and the large-scale funeral held then were all the things to show Japan's power.
Also, this study looked into how the funerals of royal family like queen Eom Soon-heon, Lee Hee or Lee Jun or rising aristocrats who were crowned by the Japanese Empire were held. The funerals for royal family and aristocrats were almost the same as state funerals with few differences in the procedure or size. Those funerals of the upper class in Joseon were held under the control of Japan, and the funerals used both Joseon and Japan's styles in combination. A Joseon-style funeral and leaving ceremony were held while Japanese-style items were also used and the sending off ceremony was completed at the funeral hall with dead marches played by Japanese guards of honor. In this way, it formed an example of funeral custom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practiced by royal family or nobles and influenced the people's funeral customs after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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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서은 ( Jung Sue-eu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1-8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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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의 문헌 자료 및 유성기음반, 경성방송국 방송 목록 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밀양아리랑>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밀양아리랑>의 유행 요인 및 양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더불어 이러한 연구 과정을 통해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밀양아리랑>의 정체성도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시기별 <밀양아리랑>의 등장 순서는 유성기음반, 문헌 자료, 경성방송국 국악방송목록 순이며, 유성기음반 및 경성방송국 국악방송 등의 소리미디어에서 다른 지역아리랑에 비해 월등히 잦은 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한 결과 <밀양아리랑>은 유성기음반의 발매와는 별개로 1929년 이전부터 밀양지역이나 이외의 지역에서 불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밀양아리랑>이 소리미디어를 통해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일반에 유행한 이유는 음악적인 특징에서 찾을 수 있는 데, 도약해서 질러내는 특징적인 선율, 따라부르기 쉬운 선율 구성, 선율 및 리듬의 조화, 흥겨운 리듬감 등이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바탕으로 <밀양아리랑>은 일반에 유행되고 있었고, 소리미디어를 통해서도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30년대 이후 <밀양아리랑>은 소리미디어를 통해 대중화되는데, 다른 종류의 아리랑소리와 비교하여 가창자의 출신 배경이 다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밀양아리랑>이 가진 대중적인 음악 요소로 인해 당대 유명예술인 출신의 가창자들에 의해 불릴 수 있게 되고, 이들의 섭외는 다시 <밀양아리랑>이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소리미디어에 나타나는 <밀양아리랑>의 악기 편성을 살펴 본 결과, 1930년대 중반을 전후로 기존 국악기 편성에서 벗어나 서양식 관현악단이나 선양악단의 반주가 등장한다. 1930년대 이후 기존 민요들이 쇠퇴하고 유행에서 밀리게 되는 상황 속에서 <밀양아리랑>은 새로운 악기 편성과 조화를 이루어 대중음악 영역에서도 도태되지 않고 유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In this paper, the current status of Milyang Arirang appearing in the media, such as Japanese colonial era's literature, a gramophone Record, and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broadcasting list, was identified, and based on this, the factors and patterns of the popularity of Japanese colonial era Milyang Arirang were revealed. In addition, through this research process, the identity of Miryang Arirang, which has not yet been clearly revealed, was also attempted to be assessed.
The order of appearance of Miryang Arirang by period is in the order of a gramophone Record, literature data, and the lis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broadcasts of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and it was found that the appearance of a gramophone Record and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was much more frequent than other local Arirang. And as a result of checking through the literature records, Milyang Arirang seems to have been called in Milyang or other areas since before 1929, apart from the release of the a gramophone Record. The reason why Milyang Arirang has been popular in general since before it was popularized through sound media can be found in its musical characteristics, such as the characteristic melody that leaps out, the melody composition that is easy to sing along, the harmony of melody and rhythm, and the exciting rhythm. Based on these musical characteristics, Milyang Arirang was popular in the general public, and it became popular through sound media.
Since the 1930s, Milyang Arirang has become popular through sound media, and it can be seen that the background of the singer's origin is diverse compared to other types of Arirang sounds. Due to the popular musical elements of Milyang Arirang, it was able to be sung by singers from famous artists of the time, and their casting became an important factor in attracting attention to the public. Finally,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musical composition of Milyang Arirang, which appears in Sound Media, around the mid-1930s, the accompaniment of Western-style orchestras or Shenyang orchestras appears away from the existing Korean musical instruments. In the situation where existing folk songs declined and were pushed back from the trend since the 1930s, Milyang Arirang was able to maintain its trend in the field of popular music in harmony with the formation of new instr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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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지연 ( Huh Jeeyeo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36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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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이하 총독부)가 발행한 음악 교과서, 즉 '창가집'을 일본 문부성이 발행한 창가집과 비교함으로써 제국의 재료가 식민지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논한다. 총독부 창가집의 편찬자들은 일본의 창가집, 특히 문부성 창가집의 수록곡 중 상당수를 식민지의 젊은 세대를 위한 교재에 인용하였는데, 인용한 창가의 비중과 그것의 내용은 식민 통치 전략의 추이에 따라 달라졌다. 이 글에서는 창가집 수록곡의 출전을 정리하여 식민지 창가집의 본국 창가집 의존도의 추이를 파악하고, 수록곡의 주제를 범주화하여 문부성 창가집이 다룬 주제 중에서 어떤 것이 선택되고 어떤 것이 배제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새로 추가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총독부 창가집이라는 매체가 식민 통치 이념을 전파하는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재현의 체계였음을 확인하고, 본 국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피식민자를 위한 교재를 새로 만들어야 했던 식민자의 의도를 정치사회적 배경과 연결지어 추론하고자 한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way how the imperial materials were used in the colony by comparing the governmental classroom songbooks (changgajip, hereafter songbooks) published in Mainland Japan and colonial Korea. The editors of the songbooks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ereafter GGK) extracted many songs from Japanese songbooks, especially ones published by the Japanese Ministry of Education. In this paper, I first examine the sources of songs included in the Korean songbooks to find out the dependence of the colonial Korean songbooks on the mainland ones, and then categorize the themes of the songs to find out which topics were selected, excluded, and added in each series of GGK songbooks. Finally I attempt to infer the intention of the colonizer to create new textbooks for the colonized, instead of directly using the materials of the mainland, in connection with the socio-political background. Through this, I intend to confirm that the Governmental songbooks in colonial Korea convey very elaborately crafted system of representation which reflects the ideology of colon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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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혜 ( Kim Seonghye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7-16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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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방송의 한국음악사 연구 중에서 고대음악사의 자료 분야를 중심으로 그의 연구 업적을 고찰한 것이다. 먼저 그가 발표한 자료 분야의 연구 성과를 검토한 결과 고대음악 관련 사료를 번역하거나 원문을 주해하고 색인하여 발표한 것 등 그 분량은 모두 10건으로 파악되었다. 이상 10건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그의 연구 업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음악 관련 자료 10건을 발표한 점이다. 이것은 1세대 음악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많은 분량이다.
둘째, 『' 삼국사기』 잡지 악조'의 원문을 교열하고 역주 및 색인한 점이다. 이러한 작업은 고대음악사 분야의 학문적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셋째, 고대음악 사료 4종을 대상으로 음악기사를 색인한 점이다. 자신이 탐독한 고대음악 사료 4종을 대상으로 음악기사 색인을 작성하여 발표한 것은 후학이나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사료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업적이다. 이것은 고대음악사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고대음악사의 골격을 이루는 동아시아 음악 사료를 주해한 점이다. 국내 사료 5종과 중국 사료 5종 그리고 일본 사료 5종에서 한국 고대음악 관련 내용을 주해하여 학문의 기반을 다진 업적이다.
다섯째, 한국 고대음악과 관련된 외국의 연구서를 번역한 점이다. 기시베 시게오(岸邊成雄)의 『고대실크로드의 음악』과 하야시 겐죠(林謙三)의 『수당대 연악조의 연구』를 중국학자 곽말약이 번역한 책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였다. 이처럼 외국학자들의 연구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고대 한반도 주변국의 음악 양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 업적이다.


This paper examines Song Bangsong's achievements on Korean music history study centering around the records on Korean ancient music history. It is identified that he published 10 papers in which he either translated or annotated and indexed ancient music records. His accomplishments in the 10 papers are as follows.
First, compared to those of the first generation music scholars, the 10 papers could be viewed as prolific.
Secondly, he revised, annotated and indexed the original of “Samguksagi Jabji Akjo”. It is a significant accomplishment in that it laid the academic foundation for Korean ancient music history.
Thirdly, he indexed the 4 kinds of ancient music records. His index enabled other researchers in the field to make use of the historical materials more conveniently. This contributes a lot to the study of ancient music history.
Fourthly, he annotated the historical records of East Asian music that forms the framework of ancient music history. He studied and annotated the contents on Korean ancient music from the five kinds of domestic, Chinese, and Japanese historical materials.
Finally, he translated the foreign studies on Korean ancient music. Music of the Ancient Silk Road by Kishibe Shigeo(岸邊成雄) and Study on Yeonakjo of Sui(隋) and Tang(唐) Dynasties by Hayashi Kenzo(林謙三) were translated by Guo Moruo(郭沫若), a Chinese scholar, in Chinese. Song Bangsong translated them again in Korean. Through these translations, he contributed to improving the understanding of the musical trend in the surrounding countrie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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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순자 ( Jo Sunja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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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충청도 지역에서 전승된 '아이 어르는 소리'의 사설구조와 말붙임새를 고찰하였다. 본고의 분석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핵심서사는 '달강달강'은 모든 개체곡이 동일하게 짜여졌으나, '불아 불아'와 '덩기덩기'는 기본서사와 더불어 여타의 육아요에 있는 사설을 차용하여 확장시킨 사례가 확인되었다. 말붙임새는 3소박 2박자, 3소박 4박자과 1장단 8음절, 1장단 7음절 형이 주를 이루었다. '덩기덩기'의 사설에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사설을 차용하였으며, 단일한 사설을 공유하고 있는 '달강달강'에 비해 '덩기덩기'와 '불아불아'는 사설 혼재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추가로 발굴한 충청남도 '불아불아' 자료를 통하여 가창자의 즉흥과 민요의 유동성을 확인하였다.


This study examines the Structure of Texts and Mal-Butchimsae(말붙임새) of 'Soothing Sounds for Baby' transmitted in the Chungcheong Province region. The analysis contents of this paper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s for the core narrative, 'Dalgang-Ga(달강달강)' was written in the same way for all individual songs, but 'Bulah-Ga(불아불아)' and 'Donggi-Ga(덩기덩기)' were confirmed to be expanded by borrowing editorials from other parenting songs as well as the basic narrative. The 'Mal-Butchimsae' were 3 sobak-2 beats, 3 sobak-4 beats, 1 Changdan-8 syllables, and Changdan - 7 syllables. The editorial of 'Donggi-Ga' borrowed an editorial from 'Sarangga' from the pansori < Chunhyangga >, and compared to 'Dalgang-Ga', which shares a single editorial, 'Donggi-Ga' and 'Bulah-Ga' have a strikingly mixed editorial aspect. appear. In addition, the improvisation of the singer and the fluidity of folk songs were confirmed through the additionally excavated materials of 'Bulah-Ga(불아불아)' in Chungcheongna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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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희선 ( Hee-sun Kim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5-266 (6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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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예술단은 1962년 창단되어 현재까지 국내외를 무대로 활동하는 어린이예술단으로 2022년 창단 60년을 맞았다. 앞서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주요 레퍼토리인 민속무용과 음악을 연구하였기에 본 논문에서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합창활동과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5년 첫 해외공연인 미국순회공연에서 < 미국은 아름다워(America the Beautiful) >를 부르기 시작하다 지휘자 유병무를 영입한 1971년 이후 본격적으로 합창은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1972년부터는 해외와 국내에서 음반을 출시하였으며 방송과 중요 국가적 이벤트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리틀엔젤스 합창은 어린이합창단 가운데 가장 먼저 요들송을 레퍼토리화하여 널리 알려졌고 크리스마스 캐롤과 전 세계 민요와 동요, 팝송을 레퍼토리화 함으로서 어린이 합창 레퍼토리 확장에 공헌했다. 또한 이 연구는 리틀엔젤스 합창 레퍼토리 분석을 통해 이들 작품이 교회음악, 영화음악, 한국가곡, 한국동요, 한국민요, 세계민요, 팝송 등 다양한 경로로 어린이합창곡이 되었음을 파악하였다. 또한 리틀엔젤스 합창곡 중 대표 작품의 레퍼토리화 경로를 살펴봄으로서 한국 어린이합창단의 작품의 궤적을 고찰해보았다.
리틀엔젤스의 합창활동은 국제적으로는 민속무용 못지않은 공공외교 자원으로, 국내에서는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해외공연에서 리틀엔젤스는 한국의 동요와 민요, 해당방문국의 동요와 민요를 불렀으며 국가적으로 합창운동이 장려되던 1970년대에 국내 어린이합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연구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합창 활동과 레퍼토리을 중심으로 살펴 그간 한국음악현대사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어린이 합창활동과 합창곡의 궤적을 고찰하였다는데 연구의 의의를 둔다.


The Little Angels Children's Folk Ballet of Korea, founded in 1962, is a children's art troupe that has been active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to the present, and recently celebrated its 60th anniversary. Since folk dance and music―the main repertoires of the Little Angels Art Troupe, have been studied previously, this thesis focuses on the troupe's choral activities and repertoires.
In 1965, the group sang “America the Beautiful” during its first overseas concert in the United States, and after 1971, when conductor Byung-Moo Yoo was hired, choral singing became an important repertoire. Since 1972, the group has released albums both domestically and abroad, and has become widely known through broadcasts and important national events. The Little Angels Choir was the first among children's choirs to include yodel songs, which became widely known. In addition, through analysis of the Little Angels choral repertoire, this study found that these works became children's choral songs through various channels, including church music, film music, Korean songs, Korean nursery rhymes, Korean and world folk songs, and pop songs. In addition, the trajectory of the Korean children's choir is explored by examining the path of the 'repertoire-ization' of representative works from the Little Angels choral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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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희경 ( Heekyung Lee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7-30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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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독일의 영향은 막강하다. 그런데 반세기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거쳐 냉전체제의 한 축에 편입된 한국 사회는 미국 문화에 강하게 경도되었고, 1950-60년대 한국 클래식 음악계 역시 미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한국음악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논문은 그 변화의 과정을 독일문화원을 통한 문화외교의 관점에서 추적해보려는 시도다.
전후 서독의 문화외교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독립적인 중개단체들을 통해 이뤄졌다. 1970년 대외문화정책을 독일 외교정책의 제3의 기둥으로 강조하고, '확대된 문화 개념'을 토대로 일방적인 문화전파보다 상호이해와 문화교류에 초점을 둔 문화외교를 전개했다. 1968년 설립된 주한독일문화원의 문화교류 기조도 당시 독일 대외문화정책의 변화에 따라 '콘서트에서 교육 및 양국 음악가들의 협력으로', '고전 레퍼토리에서 현대음악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 독일 음악가들의 내한 때 한국 파트너들과 협업하도록 주선하고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한국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것, 내한공연이나 강연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을 강조하고 '범음악제'의 공동 주최자로 나선 것 등이 이런 정책변화에 따른 결과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근현대예술사를 문화외교나 문화냉전의 시각에서 해석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50-60년대 미국중앙정보부(CIA)의 지원을 받은 수많은 민간 재단들을 통한 활동들이 주요 연구대상이다. 전후 미국의 냉전 문화정책의 최전선이기도 했던 서독은 같은 분단국가였던 한국과 어떤 관계 맺기를 시도했을까? 1970-80년대 독일문화원이 한국에서 수행한 역할은 이전 시기 미국의 문화외교와는 어떻게 달랐을까? 오늘날 한국음악계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위상은 이 시기독일문화원의 적극적인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논문은 1970-80년대 한국음악계에 미친 독일문화원의 역할에 집중하여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실증적 근거들을 마련해보려 했다. 이에 적극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은 좀 더 많은 연구가 축적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Today's classical music scene in Korea shows a strong German influence. It is undeniable that this close musical connection between Korea and Germany is due in large part to the mediator role played by the Goethe- Institut Korea. This paper examines how the Goethe-Institut created a forceful network in Korean music society by analyzing the programs and projects fostered through the institution and its endeavors. It will reveal what activities in the 1970s and 1980s led to Germany's increasing importance on the Korean music scene amid the dominant cultural influence of America in Korea.
After WWII, cultural diplomacy in West Germany was conducted through independent intermediaries that guaranteed independence and autonomy rather than the government itself. In 1970, foreign cultural policy (Auswärtige Kulturpolitik) was emphasized as the third pillar of German foreign policy, and cultural diplomacy focused on mutual understanding and cultural exchange rather than unilateral cultural propagation. The cultural exchange of the Goethe-Institut Korea, established in 1968, also shifted the emphasis “from concerts to education and cooperation between musicians from both countries” and “from classical repertoire to modern music”. These policy changes can be seen in the following activities: arranging German musicians to collaborate with Korean partners when visiting Korea, sponsoring Korean musicians who have studied in Germany, emphasizing contemporary music in concerts and lecture programs in Korea, and being a co-host of the Pan Music Festival, Korea's first contemporary music festival. As a new music ambassador, the Goethe-Institut has left its mark on the Korean contemporary music scene.
Can Germany's position in today's Korean music scene be seen as a result of the ambitious activities of the Goethe-Institut in the 1970s and 1980s? How was the cultural project of the Goethe-Institut different from the cultural diplomacy of the United States in the previous period? This paper attempted to provide factual data to answer these questions. Further research is needed to evaluate and interpret this extens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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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우혜언 ( Uh Hye Eun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5-34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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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상근의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1985/1992)의 음악 특징과 극적 구성을 살펴보고 한국오페라사에서 ≪부산성 사람들≫이 지니는 의미를 고찰해보았다. 이상근은 ≪부산성 사람들≫ 단 한 편의 오페라를 썼지만, 오페라 장르가 지닌 특징, 즉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이중창과 합창, 춤, 그리고 무대 연출을 위한 극적 요소까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극의 전개와 언어, 한국의 음악적 정서에 맞는 다양하고 유연한 음악을 선보였다. ≪부산성 사람들≫은 작품 착안부터 무대에 서기까지 부산의 문화적 자력으로 탄생한 부산의 첫 창작 오페라로 부산음악사뿐 아니라 한국오페라사에도 한 획을 긋는 오페라였다.


This study researched the genre components and musical characteristics of Lee Sang Geun's opera People of Busanjinseong and examined the musical meaning of his work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Korean opera. Lee Sang Geun composed only one opera, People of Busanjinseong. However, he certainly showed the fundamental and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the opera genre in this work, such as arias, recitatives, duets, choruses, dances, and theatrical factors for the performance on the stage. In particular, Lee wrote this opera with a sense of flexibility considering the dramatic development, language, and Korean musical sensibility. People of Busanjinseong was the first opera created from the cultural resources of Busan from planning to performance and was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musical history of Busan as well as in the history of Korean opera.

KCI등재

저자 : 이예지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현실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43-348 (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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