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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Seo-ae Ryu Seong-ryong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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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20)~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21
서애연구
3권0호(2021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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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류성룡 주도의 임진왜란 대응전략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저자 : 백권호 ( Paik Gwonho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82 (7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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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임진왜란 발발에서 정유재란까지 전쟁 전 기간을 통해서 왜군과 조선군(의병 포함) 및 명 지원군 등 전쟁 주체들 간의 승전을 둘러싼 상호작용을 시스템 다이내믹스로 풀어낸 연구이다. 이와 함께 환경 및 여건 등 상황 요인들이 시스템 다이나믹스(System Dynamics, 이하 SD) 속에 어떻게 맞물려 들어갔는지를 음과 양의 균형적 관점에서 추가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선에 유리하게 SD가 돌아갈 수 있도록 서애 류성룡이 어떤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전쟁 전 기간에 걸쳐서 SD를 지배한 변수들을 중심으로 전세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분석하였고, 이 과정에서 서애 류성룡의 메커니즘적 개입이 전세 전환 및 반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하였다.
분석 결과 왜군의 절대적 우세는 전쟁 발발 초반 2개월에 국한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의병과 승병의 활발한 유격전과 그리고 이순신 수군의 연전연승으로 조선군의 대응이 강화되면서 전력이 대등해지기 시작했고, 전세가 반전될 기회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다만, 실질적인 전세의 반전으로까지 전환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명 지원군의 참전을 계기로 확실한 반전의 기회를 맞게 되었고, 그 결과 약 1년 만에 한양성 수복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명ㆍ왜 강화협상이 진행되면서 왜군은 경상도 남부 해안지역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서애 류성룡 주도하에 전시 국가체제 개혁 및 군사력의 체계적 조직화와 자원 동원체제의 구축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명ㆍ왜 강화협상이 결렬되자 정유재란이 발발하였으며, 초기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전으로 전라도가 왜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직산 전투에서 명 지원군 기마병이 왜군의 북진을 막아냈고,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서남해 해안의 제해권을 되찾아 왔고, 왜군은 다시 경상도 연해 지대로 퇴각하였다. 이후 명 지원군과 연합한 조선군 주도하에 사로 병진이라는 공세적 전략으로 울산, 사천, 순천에 있던 왜성을 공격하였다. 승패를 보지는 못했으나, 제대로 된 공세적 전투를 전개하였고,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이 도요토미의 사망을 기화로 완전히 퇴각함으로써 전략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애 류성룡은 군량 조달, 병력모집 및 전술 배치 등 전투 현장에서의 지휘를 비롯하여 의병ㆍ승병의 궐기 독려, 전시 국방 체제개혁 및 조직화와 자원동원 체제 구축 관련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SD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조선에 유리하도록 전세를 반전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This article studies the interactions between the Japanese troops and the Joseon troops during the Imjin War and the Jeong-yoo War with the conceptual framework of system dynamics (SD). Noting the balance of yin and yang, this article further shows how situational factors such as environment and conditions were closely inter-locked in SD.
We have analyzed how the war situation changed, focusing on the variables that governed SD over the entire war period. Our analysis shows that the absolute superiority of the Japanese army was limited to the first two months since the outbreak of the war; as the response of the Joseon army strengthened with the active guerrilla battles of militiaman, the uprising of monk soldiers, and the successive victories of Yi Sun-sin, the Korean forces began to match the Japanese forces.
As a result, the opportunities began to present themselves to reverse the war situation although it was not enough to reverse the situation of war. However, the arrival of the Ming troops in Joseon made it possible to reserve the war situation. As a result, the Hanyang Castle was restored in about a year. As the Ming and the Wae began to negotiate the terms for peace treaty, the Japanese retreated to the southern coastal areas of Gyeongsang Province.
Taking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Ryu Seong-ryong took initiatives to reform the wartime state system, to systematize the military organization, and to establish a resource mobilization system. When the Myeong-Wae negotiations were aborted, the Jeong-yoo War broke out, and Jeolla Province fell into the hands of Japanese army due to Won Gyun's defeat in the Chilcheon-ryang battle. Japanese army retreated to the coastal area of Gyeongsang Province again as the Japanese army lost in the Battles of Jiksan and Myongryang. After that, the Ming troops and the Joseon army led a coalition and attacked the Japanese fortresses in Ulsan, Sacheon, and Suncheon with a four-way joint attack strategy. Neither side won as the Japanese troops left Korea after Toyotomi's death, ending the seven-year war.
In this process, Ryu Seong-ryong influenced SD by operating mechanisms related to military procurement, troop recruitment, and tactical deployment, as well as encouraging the uprising of guerrillas, reforming and organizing the wartime defense system, and establishing a resource mobilization system.

2류성룡의 공익지향의 실용적 리더십 -CIP-sp 모델에 의한 분석

저자 : 백기복 ( Baik Kibok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35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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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1592년∼1598년) 동안 병조판서, 영의정, 도체찰사 등의 직책을 가지고 국난을 극복했던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선생의 리더십을 CIP-sp(Charismatic, Ideological, Pragmatic; socialized, personalized) 모델의 관점에서 평가할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징비록과 선조실록 및 선조수정실록에 기초하여, 류성룡을 (1)인물평가, (2)민심관리, (3)명군 대응, (4)군사전략, (5)분석기록 등 다섯 가지 차원에서 계량역사학적(historiomatric) 방법을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류성룡은 “공익적(사회적) 권력지향의 실용적 리더(socialized pragmatic leader)”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개인적 이득보다는 사회적, 공익적 이익을 위해서 헌신했으며, 카리스마 리더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먼 미래 희망보다는 구체적, 실용적 문제에 천착했고, 이념적 리더가 추구하는 신념의 동질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용적 리더로서 장기적 관점의 근본적 문제해결에 집중했다.
본 연구를 통해서, 위기 상황에서 실용적 리더가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위기 속에서는 '공익적(사회적) 권력 지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울러, 계량 역사학적 방법론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나아가 류성룡의 역사적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었다.
류성룡은 단순히 징비록의 저자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공익적 실용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향후의 연구 방향은, S-N-D-F 모델에 입각한 종합적 조망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한국형 리더십 8요인을 통한 한국형 리더십의 뿌리 찾기 연구와 '두름성'(versatility) 연구, 오늘날의 관료 리더십의 표준 설정 연구, 그리고 류성룡 리더십의 독자영역구축의 필요성 등을 제시하였다.


The current study evaluates Ryu Seong-Ryong's leadership with the CIP-sp(C=Charismatic, I=Ideological, P=Pragmatic; s=socialized, p=personalized) Model as deveoped by Michael Mumford in 2006. As a prime minster, defence minister, and the Commander-in-Chief, Ryu Seong-Ryong made great contributions in defending the country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during the period from 1592 to 1598.
With the 'historiometric method,' this study analyzes Ryu Seong-ryong's roles and abilities in five distinct perspectives: (1) the standards of evaluating military generals; (2) the management of wartime human resources; (3) the methods of responding to the Ming troops; (4) military strategies; and (5) the historical records.
This article argues that Ryu was “the socialized pragmatic leader.” He made contributions to the country, sacrificing his personal interests, for the sake of public interests. He addressed specific and pragmatic problems rather than pursuing visions for a remote future like a charismatic leader does; he sought to find fundamental solutions as a practical leader with a far-reaching vision rather than try to forge the homogeneity of faith as an ideological leader often does.
This article shows that a pragmatic leader could be effective at times of military crisis, and that pragmatic leadership entails the 'socialized power orientation.' The article confirms the value of historiometric method. Moreover, it illuminates Ryu Seong-ryong's place in history. Ryu should be recognized not simply as the author of the Jingbirok, but as a heroic leader who pursued 'socialized pragmatism' in Korean history. By analyzing Ryu Seong-ryong's leadership in S-N-D-F model and conceptualizing eight factors of Korean-style leadership, this study suggests new directions in future researches,

3류성룡의 유연 리더십의 학문적 토대

저자 : 서재진 ( Suh Jae Jean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98 (6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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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애연구』 창간호에 실린 필자의 이전 논문 「유연의 리더 류성룡」에 대한 후속 연구이다. 그 논문은 류성룡의 리더십의 패턴을 유연 리더십이라고 특징짓고, 유연 리더십의 패턴을 사료에 나타난 그의 언어, 행동, 정책지향에서 그 증거를 찾았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류성룡의 유연 리더십의 패턴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학문적 토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류성룡의 이러한 유연 리더십이 형성된 학문적 연원과 토대를 탐색함으로써 그의 유연 리더십의 실체를 더 구체화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학문 분류기준인 인문학과 사회과학으로 분류하여 류성룡의 학문적 세계를 조사하였다.
이 연구에서 발견된 류성룡의 학문적 경향과 내용은 유연 리더십의 패턴을 형성하는데 토대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전 연구에서 발견한 MBTI 성격유형 조사에서 류성룡이 유연한 성격의 유형인 ISTP로 추정된 사실은 그의 생득적 기질을 밝혀주는 것이라면, 그의 학문적 토대는 유연 리더십의 후천적 노력의 결과를 밝혀주는 증거가 된다고 본다.
인문학 영역에서 류성룡은 성리학에서 공감사상을 학습하고, 양명학에서 거인욕존천리의 자기초월과 공공성 지향의 사상을 섭렵하였으며, 사민평등의 인식론을 가지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발견되는 그의 학문으로는 병법, 사서, 주역, 법가 관련 학문 활동을 들 수 있다. 특히 류성룡의 사회과학적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으로는 병법에 대한 전문성이다. 『노자』, 『손자병법』, 『기효신서』 등의 병법을 통달하였고, 『사기』, 『송사』 등의 사서에 대한 섭렵으로 많은 정무적 이슈와 전쟁에 대한 역사적 교훈과 사례들을 숙지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특히 법가 사상을 섭렵하여 개인의 이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법치를 중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학문적 학습 과정이 류성룡의 유연 리더십의 후천적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This study is a sequel to my former study, which defines Ryu Seong-ryong's leadership as the leadership of flexibility. The findings were derived from historical sources showing his linguistic, behavioral, and policy orientation.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academic base of Ryu Seong-ryong's leadership of flexibility. In so doing we could understand in more detail about Ryu's leadership pattern. We employ the categories of the humanities studies field and social science field in order to classify the Ryu Seong-ryong's academic orientation.
This study found that Ryu Seong-ryong's academic orientation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his leadership of flexibility in the sense that his study orientation is similar to his belief system and behavioral habits. This findings support the fact that his personality type was presumed as ISTP type in the MBTI test in the former study of mine.
In the humanities studies field, this study assumes that Ryu learned the sense of empathy from the neo-Confucianism, and studied the self-transcendence spirit and the sense of equalitarianism of four classes of people from the Wang Yangming school.
In the social science field, this study shows that Ryu studied extensively including the art of war, historical studies, legalism, and the Book of Change(주역). In this regard, this studies shows that the programs and contents of Ryu's learning and self-cultivation contributed to his leadership of flexibility.

4서애 류성룡의 경력역량에 대한 탐구 -경력자본가 모델을 중심으로

저자 : 권대봉 ( Kwon Dae-bong ) , 박용호 ( Park Yong-ho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9-23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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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의 삶에서 그가 발휘한 경력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본 연구는 경력자본가 모델을 기초로 류성룡이 어떠한 역량을 발휘하였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활용하고 있는 경력자본가 모델은 의문지 역량(knowing-why competency), 관계지 역량(knowing-whom cometency), 방법지 역량(knowing-how competency) 등으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역량은 각각 경력과 관련된 방향설정, 전문성추구, 관계지향 등과 관련된 행동을 기반으로 한다. 류성룡의 삶을 다룬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분석하여 각 세 역량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역량을 도출하였다.
그 결과 의문지 역량에는 성찰을 통한 학습, 미래 비전제시 등의 역량이, 관계지 역량에는 상황에 맞는 설득, 타인 존중과 인정, 관계에서의 진실성 추구 역량이, 끝으로 방법지 역량에는 위기관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 등의 세부 역량이 포함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류성룡이 한 시대의 사상가이자 학자 및 관리로서 나타낸 역량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탐색하고 이를 제시하였다.


This study inquires into Ryu Seong-ryong's competency as shown in the long tenure of his political career. By using the "career capitalist model", this study observes Ryu's competency. The model used in this study is composed of "knowing-why competency," "knowing-whom competency," and "knowing-how competency." These three types of competency are based on setting the direction of career path, the pursuit of excellence, and the orientation of relations.
Through a close observation of Ryu's career, we have found specific competencies in Ryu's case. As to "knowing-why competency," we focus on Ryu's abilities to learn through reflections and to propose future visions; as to "know-whom competency," we show Ryu's abilities to persuade others, to recognize and respect others, and to pursue truthfulness in relations; as to "know-how competency," we include his abilities to manage crises and solve problems. Based on such results, this study illuminate Ryu Seong-ryong's competencies as thinker, scholar and statesman.

5류성룡의 전략적 인재관리 -인재 등용을 중심으로

저자 : 김동삼 ( Kim Dong Sam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9-307 (6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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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하고 도덕적인 인재의 등용은 국가의 운명과 백성들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조직이든 중요한 관심사항 중의 하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류성룡의 인재관리를 현대 조직경영에 있어 경쟁력과 비교우위 원천으로서 중요한 수단이 되어있는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의 관점에서 평가해봄으로써 그것이 국가 위기 극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 보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류성룡의 인재 등용 기준, 원칙, 방법, 적용 등이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의 거시적, 시스템적, 장기적 특성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를 주요 사례를 통해 분석해 보았다.
류성룡은 인재 등용의 기준을 덕망, 재능, 공로로 삼고, 신분ㆍ문벌ㆍ지역을 가리지 않고 작은 재주라도 있거나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장점이 더 많으면 반드시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순신, 권율 등과 같이 오로지 능력에 기초하여 재간이 있는 사람들을 파격적으로 천거하였으며, 철저한 적재적소 배치와 공정한 신상필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류성룡의 인재 등용에는 실용 중심의성과 개혁주의와 능력 본위의 신분 평등주의 사상이 내재 되어있음을 엿볼 수 있다.
사례를 통해 본 류성룡의 인재관리는 단순히 미시적, 개별적, 단기적인 것에서 벗어나 거시적, 시스템적, 장기적인 특성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인재 등용 기준과 원칙에 부합되었던 인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중용되도록 힘썼다. 결국, 류성룡의 인재관리 철학과 실천은 현대경영에서 말하는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와 핵심인재 관리를 구현하였던 것이며, 이것은 조선을 위기로부터 구한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끝으로 본 연구가 현대의 조직경영에 주는 시사점과 일부 제한된 문헌의 사례분석에서 오는 연구의 한계점 및 향후 연구과제에 대해 제시하였다.


The appointment of competent and moral talent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ncerns for any country or organization, as it determines the fate of the nation and the lives of its peopl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ve that Ryu Sung-ryong's talent management was played a key role in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by evaluating it from the perspective of 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 which is an important source of competitiveness and comparative advantage in modern organizational management. For this purpose, we analyzed through primary cases how much criteria, principles, methods, and application of Ryu Sung-ryong's human resources appointment contain macroscopic, systematic, and long-term characteristics of strategic human resources management. Ryu Seong-ryong argued that the criteria for appointing talented people should be based on virtue, talent, and meritorious, and that people who have small talents or more advantages than disadvantages must be appointed regardless of the status, lineage and region.
Ryu Seong-ryong recommended talented people unconventionally, such as Yi Sun-sin and Kwon Yul, based solely on their abilities, and emphasized that place a person with the right talent in the right position and never fail to reward a meritorious service nor to let a fault go unpunished. It can be seen that Ryu Seong-ryong's appointment of talent is inherent in the thought of pragmatic-oriented performance reformism and ability-based status egalitarianism.
Through the analysis of primary cases, Ryu's talent management has shown macroscopic, systematic, and long-term characteristics break away from the micro, individual, and short-term ones. In addition, those who were corresponded with the criteria and principles for the appointment of human resources were positively evaluated and selected. In the end, Ryu Seong-ryong's thought and practice of human resources management were implemented as the strategic human resources management and core human resources management in modern management, which became the driving force that saved Chosun Dynasty from the crisis. Finally, the implications of this study for the modern organizational management, and the limitations of the study and future research challenges that come from the case analysis of some limited literature was presented.

6류성룡의 일본 인식

저자 : 이종각 ( Lee Jong Gak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9-372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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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592-98) 중 전시 재상으로 정무와 군무를 총괄했던 류성룡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가? 류성룡은 일본인을 교활, 신뢰할 수 없다고 인식하면서도, 일본과는 사대교린이란 조선의 외교방침에 따라 임진왜란 이전에는 일본과의 화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진왜란 직전 일본 정세 파악을 겸한 조선통신사 파견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를 성사시킨다. 전쟁 발발 후 류성룡은 일본군의 진법, 용병, 축성 등의 장단점을 파악해 진관제 부활, 부교 개설, 훈련도감 설치 등을 건의, 실시하는 한편 명나라 측에는 강화가 아닌, 일본과의 결전을 촉구한다.
명과 일본은 전쟁 중 조선을 철저히 배제시킨 채 강화교섭을 진행했으나 결렬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재침을 명령해 정유재란(1597)이 발발했다. 히데요시가 병사함에 따라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598년 후반 류성룡은 정적들이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쳤다는, 이른바 '주화오국(主和誤國)'의 죄명으로 탄핵 당함으로써 영의정에서 파직되어 낙향한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조선 측에서 보자면, 성종-선조대 조선 위정자들의 일본에의 통신사 파견 무시 등 일본과의 화친의 중요성 간과, 조총으로 무장한 당시 세계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일본의 내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선 정부의 대외 정세 무지, 건국 후 2백 년간 계속된 태평무드 속의 국방태세 소홀 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류성룡은 전쟁 전 일본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한편, 조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전쟁 중에는 일본군의 진법, 수성, 무기 체계 등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음은 특기할 만하다고 하겠다. 이 같은 류성룡의 일본 인식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에도시대 조ㆍ일 양국은 조선통신사 왕래(1607-1811, 총 12차례)가 상징하듯이 평화ㆍ우호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일본에 정한론이 일어나는 가운데 자율적인 근대화에 실패한 조선은 아시아 국가 중 서구식 근대화(메이지유신)를 가장 먼저 추진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죽창”, “의병” 운운이 아니라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일본과의 친선ㆍ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긴요하다.


How did Ryu Seong-ryong, the wartime prime minister who was in charge of administrative and military management, think of Japan and the Japanese people? Ryu thought of the Japanese as being sly, untrustworthy; however, before the Imjin War (1592-1598) he was in favor of conciliatory policy toward the Japanese, following the long-standing policy of the Joseon diplomacy, encapsulated in the phrase, "to respect the great and to keep peace with neighboring states."
Right before the Imjin War, he played a major role in terms of sending Joseon envoys to Japan because he thought it was necessary to know its political conditions. After the outbreak of the war, Ryu established the military training directorate, restored the garrison-command structure, and constructed floating bridges based on his knowledge of Japan's military organization, military strategies, and its fortress construction methods. At the same time, he request that the Ming troops fight the Japanese troops rather than make peace with them.
Ming China and Wae negotiated the peace terms with the complete exclusion of Joseon; however, when their peace treaty fell out, Toyotomi Hideyoshi decided to invade Joseon once again. When Hideyoshi died, Ryu was dismissed from prime ministership and banished to his hometown on a false accusation that he misled the country with his conciliatory policy.
There were many reasons why the Imjin War had to occur. In Joseon's perspective, we can enumerate such reasons as: the Joseon statesmen's neglect of Ryu's proposal to send envoys to Japan; Ryu's pre-war emphasis on the importance of making peace with Japan, the Joseon court's ignorance of Japan's military power, and the unpreparedness of the Joseon military following the preceding two hundred years of peace. It is noteworthy that Ryu was aware of the importance of muskets before the war, and tried to negotiate peace terms with Japan.
After the Imjin War, Joseon and Japan maintained peace as demonstrated by the continuous exchange of envoys, twelve times during the period from 1607 and 1811. Toward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when the Japanese discussed the invasion of Korea, the Joseon court failed to modernize by itself, and became the first colony of Japan. We should learn the lessons of history: instead of using anti-Japanese rhetoric for political purposes, Korea should maintain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Japan based on solid national power.

7자유와 귀의(歸意) -류성룡 시심(詩心)에서 읽다 (1)

저자 : 송복 ( Song Bok )

발행기관 : 서애학회 간행물 : 서애연구 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3-39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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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애(西厓)의 시(詩)를 통해 西厓의 7개 리더십을 구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西厓 연구는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한 西厓 리더십 연구였다. 西厓의 언사, 西厓의 행태와 정책 그리고 전쟁에 대한 그의 수많은 기록들과 실록을 위시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 西厓 연구의 기본 자료들이었다. 연려실기술 등 후대에 쓰여진 자료들도 물론 기본 자료로써 연구에 크게 이바지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자료들의 기본 특징은 모두 밖으로 드러난 사건 사실 등 현실세계의 자료들이고 그리고 그 현실세계를 가능한 한 왜곡됨이 없이 있었던 그대로 관찰해서 기록한 자료들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과학적 연구에 동원된 자료는 이같이 모두 '밖으로 드러난' 사실 사건들에 근거한 자료들이라는 점, 거기에 이 글은 주목한다. 그런데 그 자료들이 보여주는 현실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그 세계는 눈으로 그리고 피부로 감지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바로 '표층의 세계'이다. 지금까지 西厓 연구는 이 '표층의 세계'를 연구한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西厓의 '심층의 세계'를 보려는 데 있다. 사건 사실들을 서술한 '의식의 세계'가 아닌 '의식의 저류'를 찾는 것이다. 그 '심층의 세계', '의식의 저류'는 지금까지 눈으로 피부로 확인되고 감지된 서사적 기록이 아니라, 마음 한가운데서 솟아 나온 영혼의 소리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시(詩)라 명명하고, 이 시를 통해서 西厓 '본연의 세계'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이 글은 그 '본연의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로 西厓의 7개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그 리더십이 다른 리더들의 리더십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의 시심(詩心)에서 찾아 설명한다.


This article seeks to illuminate seven aspects of leadership through a close reading of Seo-ae's poems. Scholarship to date on Seo-ae's leadership has been predominantly social scientific. Seo-ae's sayings, his actions and policies, his extensive writings on war, historical records in the Veritable Records have served as primary sources on Seo-ae studies. Historical records constructed in the later periods such as the Narratives of Yeollyeosil (燃藜室記述) have also been used extensively by researchers as the basic historical sources. Such sources are basically the sources of the external world, historical records describing the real world.
This article begins with an observation that the sources used by social scientists describe the events that had been externally revealed. What kind of world is the real world that those sources present? It is the world seen by the eye and felt by the skin; it is the world on the surface. Studies on Seo-ae have focused on the world on the surface.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into the deeper world of Seo-ae, not to observe the world of consciousness that is shown in the descriptions of events and facts, but to explore the undercurrent of consciousness. "The deeper world" and "the undercurrent of consciousness" is not historical narratives, but the sounds of a soul welling from the center of his heart. I call it poetry, and try to seek Seo-ae's real world through h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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