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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베리아연구 update

Korean journal of Siberian studies

  •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 : 사회과학분야  >  기타(사회과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5-0145
  • : 2713-6426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26권3호(2022) |수록논문 수 : 339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3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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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정세진 ( Jung Se Jin )

발행기관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간행물 :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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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 현재까지 유라시아 지역에서 펼쳐진 사회 변동과 혼돈, 그리고 그 담론에 관한 내용을 소련과 포스트소비에트 시기를 중심으로 규명하는 시도로 연구되었다. 소련 해체의 역사적 사건은 30년 이상 경과되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국가 건설의 혼돈이 지속되고 있다. 국가 간의 분쟁뿐만 아니라 지역 분쟁, 그리고 국가 내 주류 민족과 소수 민족 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런 분쟁은 미래에도 쉽사리 잘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18세기 이후부터 러시아는 유라시아 지역을 꾸준히 경략해왔다. 이는 하나의 권역권 사회에서 강대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배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증적 범례가 되었다. 러시아는 강력했으며, 1922년부터 시작된 소연방 내의 대부분의 구성공화국은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유라시아 민족들이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의 강자였으며, 어떤 점에서는 유라시아의 패권을 좌지우지했던 민족이었다. 소련 당국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통치적 구상에 부합되게 유라시아를 다스렸는데, 이것이 종국적으로 소련 해체 이후 여전히 유라시아의 혼란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제정러시아와 소련 시기부터 줄기차게 이끌어왔던 지배와 통치 이념에 따른 역사적, 정치적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분쟁이 유라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소련 해체의 역사적 사건이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적, 정치적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유라시아 혼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유라시아 지역의 광범위한 사회 문화 정체성에 대한 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는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사회 문화 정체성,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소련의 역사적 행위, 그리고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의 정치적 행동을 통해 유라시아 사회 변동과 혼란을 일별하는 시도라고 하겠다.


This thesis has been studied as an attempt to clarify the process of social and cultural identity formation and confusion in Eurasia from the Soviet times to the present. Although the historical event of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has passed more than 30 years, the chaos of state-building still persists in this region. Conflicts between countries as well as regional conflicts, and conflicts between the mainstream and minority ethnic groups within the country still exist. However, there is a possibility that such disputes will not be easily resolved in the future. Since the 18th century, Russia has steadily invaded Eurasia. This has become an empirical legend that shows how dominant the influence of great powers is in a single regional society. Russia was powerful, and most of the constituent republics of the Soviet Union, which began in 1922, were Eurasian peoples under Soviet control. Russia was a powerful force in Eurasia, and in some respects it was the nation that controlled the hegemony of Eurasia.
The Soviet authorities governed Eurasia in accordance with the governmental plan centered on Central Asia, which has created a chaotic situation in Eurasia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It can be said that it was a historical and political result according to the ideology of domination and governance that has been steadily leading since the imperialist Russia and the Soviet Union.
Then why are these conflicts taking place in Eurasia? The historical event of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seems to be entering a new historical and political stage. In order to understand the Eurasian chaos situation, it is judged that it is necessary to study the extensive historical and cultural identity of the Eurasian region. In this respect, this study is an attempt to discern one part of the historical and cultural identity of Eurasia through the historical and cultural identity of the Central Asian region and Russia's historical actions in Central Asia that have been unfolding since the 19th century, when Russia invaded Central Asia in earnest. w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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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주연 ( Lee Ju Yeon )

발행기관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간행물 :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7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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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손실의 영역에서 위험감수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는 전망 이론의 관점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러시아 정책결정자들의 선택의 준거점은 지정학적 이익 공간 창출과 러시아 정권의 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젤렌스키의 강력한 나토 가입 의지, 돈바스 지역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폭격 그리고 푸틴의 국내 지지율 하락과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등은 선택의 손실 영역에 준거점을 형성시켰다. 따라서 러시아 외교정책결정자들은 러시아의 영향력 하락과 국내정권 불안정이라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위험감수 전략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으로 보인다.


This study analyzes the causes of the 2022 Russian invasion of Ukrain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rospect theory that a risk-taking strategy would be established in the area of loss.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e analysis, it was found that the reference points of Russian policy makers choice were the creation of a geopolitical profit space and the stability of the Russian regime. Zelenskyy's strong will to join NATO, the regular Ukrain army's bombardment of the Donbas region, the decrease of Putin's approval rating within the country, and the anti-government protests in Kazakhstan and Belarus made the reference point of choice as the area of loss. Therefore,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Russian legislators invaded Ukraine with the risk-seeking strategy to comprise Russia's decreased influence and the instability of the domestic regime within 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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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내관 ( Lee Nae Kwan )

발행기관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간행물 :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0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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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 굿바이 마이러브NK: 붉은 청춘 >을 중심으로 모스크바 8진으로 불리는 망명 유학생의 삶과 예술 세계를 고찰한 것이다. 모스크바 8진은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소련으로 망명한다.
종파사건은 북한 역사상 일대 전환기적 사건으로 연안파와 소련파가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8진은 소련에서 망명자 신세가 되어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도네츠크, 스탈린그라드, 카자흐스탄 등지로 흩어져 살면서 디아스포라 기제의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제작, 나아가 고려인 2세대 문학을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국적자라는 처지는 이들의 예술 활동 전반에 그대로 반영된다.
최국인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가맹공화국들이 소련민족과 친선을 도모하는 영화나 신장 위구르인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였다. 양원식은 다큐멘터리 영화 <알마티>를 제작하여 알마티의 자연 경관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최국인은 고려인 공화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소련에서 민족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비참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어느 특정 민족의 구성원에 속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인 디아스포라 기제는 다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제작된다.
한진은 「비상사고」, 「그 고장 이름은?」 등의 소설을 비롯하여 삼팔선을 배경으로 한 희곡 「나무를 흔들지 마라」를 발표하면서 분단의 현실과 한민족의 공동체 운명을 부각시킨다. 「그 고장 이름은?」은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자신과 고려인들의 처지를 잘 드러낸다. 특히, 「나무를 흔들지마라」에서는 적대적 관계인 남ㆍ북 군인이 서로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 그루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출을 통하여 남북은 적대적 관계가 아닌 공생의 관계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무엇보다 한진이 남긴 문학 작품은 고려인 문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리진, 양원식, 맹동욱 등의 문학 작품 등에서는 전쟁의 거부감과 김일성 1인 독재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life and art world of exiled international students called Moscow 8-JIN, centering on the documentary film < Goodbye My Love NK: Red Youth >, directed by Kim So-young. After the Sectarian Incident in August 1956, the Moscow 8-JIN defected to the Soviet Union. The Sectarian Incident was a turning point in North Korean history, in which the Coastal Faction and the Soviet Faction planned to eliminate Kim Il-sung at the plenary session in August but failed. The Moscow 8-Jin became refugees in the Soviet Union and lived in Moscow, Irkutsk, Donetsk, Stalingrad, and Kazakhstan. Films and documentaries with the Diaspora mechanisms are made by them. They also play a pivotal role in leading the second generation of Koreano-Russian. Their status of being stateless is reflected in their overall artistic activities.
Choi Kook-in produces films about Kazakhstan and other member republics seeking friendship with the Soviet people, or films that feature Xinjiang Uygurs. Yang Won-sik make a documentary film < Almaty > to express his own unique world that realistically captures the natural scenery of Almaty. However, Choi Kook-in has the misery of not making a film for his people in the Soviet Union, where the Korea Republic did not exist. As such, the Diaspora mechanism, which is their situation that does not belong to any specific ethnic group is presented through various films and documentaries.
Han jin publishes novels such as 「Emergency Accident」 and 「What's the Name of the Town?」 as well as the play 「Don't Shake the Tree」 with the Line 3ㆍ8 as the background. In his literature, the reality of division and the fate of the Korean Community are magnified. 「What is the name of that town?」 reveals the situation of himself and the Koreano-Russian who cannot visit their home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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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엄순천 ( Eom Soon Cheon )

발행기관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간행물 :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7-1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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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상례를 통해 네기달족의 문화적 특성, 세계관 및 문화혼종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상례는 사망, 장례식, 우제(虞祭), 송혼식(送魂式)까지의 전 과정을 아우르며 장례식과 우제에 샤먼은 참여하지 않지만 송혼식에 샤먼의 참여는 필수적이므로 네기달족 상례는 시대가 다른 여러 층위의 관념이 혼종된 복잡한 의식이다. 장례식의 규모와 절차는 망자의 성(姓), 나이, 사회적 지위, 죽음의 원인 등에 따라 달라지며 남성은 숫자 3, 여성은 숫자 4를 의미한다는 관념에 근거하여 남성은 3일장, 여성은 4일장으로 치른다. 장례식은 망자의 영혼을 위한 의식, 망자의 영혼과 조상령의 중간 영역에 대한 의식, 조상령에 대한 의식으로 단계적으로 전환된다.
우제는 장례식 이후 7일째 치르는데 그 대상이 남편이면 아내 씨족의 여성들이, 아내면 남편 씨족의 남성들이 주도하고 송혼식은 장례식 1-3년 후 거행되며 송혼식으로 망자의 영혼은 하계에 완전히 통합되어 중계의 환생을 기다린다. 아이, 쌍둥이, 익사자의 장례식은 평범하게 사망한 사람들의 장례식과는 차이가 나는데 이는 1세 이전에 사망한 아이들을 바로 상계로 가서 환생하고, 쌍둥이는 자연신에게, 익사자는 물신의 세계에 통합된다는 관념에 근거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worldview, and cultural hybridity of the negidal through funeral protocols. The funeral protocols encompasses the entire process from death, funeral, yu(虞) funeral, and the soul transfer rites(送魂式). Although shamans do not participate in funeral and yu funeral, do participate in the soul transfer rites. Therefore, the funeral rites of negidal is a complex ceremony in which the ideas of different layers from different times are mixed. The size and procedure of funerals vary depending on the deceased's surname, age, social status, and cause of death. Based on the notion that men stand for the number 3 and women for the number 4, men play the 3-day rites and women the 4-day rites. The funeral is gradually converted into a rites for the soul of the deceased, a rites for the middle realm between the soul of the deceased and an ancestor spirit, and a rites for an ancestor spirit. The yu funeral funeral is held on the 7th day after the funeral, and the soul transfer rites is held 1-3 years after the funeral. Funerals for children, twins, and drowning people are different from ordinary funerals for those who have died. This is due to the notion that children who died before the age of one go directly to the underworld. and are reincarnated, twins are integrated into the natural gods, and drownings are integrated into the world of fetis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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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방민규 ( Pang Min Kyu )

발행기관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간행물 : 한국 시베리아연구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7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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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사할린섬의 전기신석기시대 고고학 유적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과거 사할린 원주민의 삶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할린섬의 고고학 연구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러시아제국(1867∼1905년), 일본(1905∼1945년), 소련(1945∼1980년대), 그리고 러시아연방(1989∼현재)의 시대적 흐름속에서 진행되었다. 1990∼2000년대에는 30 여개의 전기신석기시대 유적, 전기구석기시대 그리고 후기구석기시대 유적들이 발굴되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의 연속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지난 20년간 사할린에서 진행된 사할린-2 프로젝트(1994-2009)는 장기간의 공사와 파이프라인 공사를 동반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개발 지역 내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며 공사를 진행했다. 구제발굴을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중세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할린섬의 전기신석기시대 유적들은 40여 곳에 이른다. 유적은 섬 전체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분포양상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계양식을 반영하여 크게 세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 유형은 해안가 만연안 지역 마을(슬라브나야-5, 아도푸투-2, 슬라브나야-4), 두 번째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푸가체보-1), 세번째는 산악지대에 분포(지그자그 동굴)한다. 사할린섬의 전기신석기시대의 편년은 보통 9,000∼7,2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전기신석기시대 유적인 슬라브나야-5(Славная-5), 아도푸투-2(Одопту-2), 슬라브나야-4(Славная-4), 푸가체보-1(Пугачево-1), 지그지그 동굴(Пещера Зигзаг) 유적의 특징을 통해 사할린섬의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전기신석기시대 유적 중 1단계에 해당되는 슬라브나야-5(Славная-5), 아도푸투-2(Одопту-2) 유적의 특징은 흑요석제 뗀돌살촉 문화로 특징지어지며, 2단계인 푸가체보-1(Пугачево-1), 슬라브나야-4(Славная-4) 유적은 양면가공 흑요석제 석기와 슴베가 있는 석기와의 조합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각 지역 신석기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ultural aspects of the Neolithic period in the region by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chaeological remains of the Early Neolithic period of Sakhalin Island and to provide information on the life of the indigenous people of Sakhalin in the past.
Archaeological research on Sakhalin Island is divided into four major stages according to the historical background. It was conducted in the flow of the times of the Russian Empire (1867-1905), Japan (1905-1945), the Soviet Union (1945-1980s), and the Russian Federation (1989-present). In the 1990s and 2000s, about 30 relics of the Early Neolithic, Early Paleolithic and Post Paleolithic were excavated, providing sufficient information on the continuity from the Paleolithic to the Neolithic. Since the Sakhalin-2 project (1994-2009) carried out in Sakhalin over the past 20 years involves long-term construction and pipeline construction, the Russian government has put special efforts into excavating and preserving cultural assets in the developed area. Remains from various periods from the Paleolithic to the Middle Ages have been discovered through excavations.
There are about 40 relics from the Early Neolithic period on Sakhalin Island that have been discovered so far. The ruins are evenly distributed over the entire island, and the distribution patterns are divided into three main types, reflecting the livelihoods used to adapt to the surrounding environment. The first type is distributed in coastal villages, the second is distributed along rivers far from the coast, and the third is distributed in mountainous areas. The pre-neolithic age of Sakhalin Island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9,000 to 7,200 years ago.
Through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presentative Neolithic ruins of Slavnaya-5 (Славная-5), Adofutu-2 (Одопту-2), Pugachevo-1 (Пугачево -1), Slavnaya-4 (Славная-4) and Cape Zigzag (Пещера Зигзаг). We were able to obtain a lot of information about the transition process from the Paleolithic to the Neolithic on Sakhalin Isl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Slavnaya-5 (Славная-5) and Adofutu-2 (Одопту-2) sites, which are the first stage of the Early Neolithic period, are characterized by the obsidian stone-cutting culture, and the second stage, Pugachevo-1. The remains of (Пу гачево-1) and Slavnaya-4 (Славная-4) show the characteristics of a combination of double-sided obsidian stoneware and stone tiles with tang.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helpful in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olithic Age in each region by comparing it with the Neolithic culture in Northeast Asia as well as the Neolithic Age on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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