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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update

The Oriental Studies , Dong Yang Hak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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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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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1)~85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179
동양학
85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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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자존대 선어말어미 '올'의 이두 표기 '백(白)'과 '호을(乎乙)' - 조선 후기 이두 자료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용 ( Lee Yo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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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이두의 '白'과 '乎乙'이 모두 '올'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는 것을 보이고 이를 통하여 이두의 독법이 가진 동적인 모습과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먼저 이두학습서에 나타난 '白'과 '乎'의 독음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白'과 '乎乙' 표기의 의미·형태적 상관성을 고찰한 뒤에 이들이 보이는 분포 양상을 정리하였다. 그 결과 '올'을 표기하는 '白'과 '乎乙'이 모두 '올1'과 '올2'의 두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올1'은 청자존대 선어말어미의 표기이고, '올2'는 '청자존대 선어말어미 + 어미의 일부 'ㄹ'의 표기이다. '올1'과 '올2'의 표기에 '白'이 쓰인 데 대하여 객체존대 선어말어미로부터 내려온 관습과 한자의 표의성을 이용해 존대를 드러내고자 한 의도가 반영된 표기임을 주장하였다. '올'의 표기로는 '白乙'과 '乎'도 있었다. 이러한 독법 추정과 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논의는 기존에 한두 차례 언급된 바가 있으나 본격적으로 고찰되지는 못했다. 본고의 결과는 기존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향후 이두의 이해와 관련하여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In this paper, it was shown that both 白 and 乎乙 in Idu are used to write ol. And through this observation, I tried to examine the dynamic appearance of Idu readings and what that fact means. To achieve this end, we firstly arranged the readings of 白 and 乎 in the Idu learning book, and then examined the semantic and morphological correlations of the notations 白 and 乎乙. Finally, we summarized the distribution patterns of them.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both 白 and 乎乙, which denote ol, are used in two methods of ol1 and ol2. Firstly, ol1 was used to write hearer honorific prefinal ending. Secondly, ol2 was used to write hearer honorific prefinal ending + ㄹ as a part of ending. There are two reasons why 白 is used in ol1 and ol2. Firstly, it is a custom that has been handed down from object-honorification. Secondly, it is a writing that reflects the intention to show respect by using the ideographic feature of Chinese characters. There were also 白乙 and 乎 as the writing for ol. This assumption in this paper was mentioned once or twice in the past, but they have not been thoroughly considered. The discussion in this paper is very different from the existing arguments, and it is expected that it will provide a new understanding of Idu in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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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搜神記』와 『幽明錄』은 魏晉南北朝 시기를 대표하는 志怪小說의 秀作이다. 그러므로 두 작품의 '人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이 시기의 사회풍조와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살펴보았다. 위진남북조 시기의 종교 미신과 鬼文化의 유행은 鬼 고사가 대량으로 출현하게 된 원인으로,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은 人鬼의 사랑 이야기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 지괴소설의 저자들은 동란으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정치와 참담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鬼 고사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였다. 출세와 애정 문제는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 시기 지괴소설을 통해 다양하게 서술되었다. 또 사랑과 혼인은 사람들의 이상과 소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이므로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했던 자유연애와 혼인에 대한 갈망은 人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표출되었다. 人鬼의 사랑 이야기는 鬼를 인간과 밀접한 존재로 부각시켜 당시의 사회현실과 생활을 재조명하였기 때문에 현실성과 시대적 특징이 人神 사이의 사랑 이야기보다 훨씬 풍부하다. 그러므로 위진남북조 시기의 人鬼의 사랑 이야기는 현실성과 시대적 특징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우연한 만남 - 異域에서의 혼인 - 현실로 복귀한 남성의 출세'로 전개되는 人鬼의 사랑 이야기에는 문벌귀족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이 반영되었다. '생전의 연인 - 죽음과 還魂-현실에서 이루어진 사랑'으로 전개되는 人鬼의 사랑 이야기에는 자유연애와 혼인에 대한 갈망이 반영되었다.


“Sou Shen Ji(搜神記)” and “Yu Ming Lu(幽明錄)” are representative novels of the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Therefore, through the love story of the ghost of human in the two works, we can understand the society's tendency of the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and the people's psychology at that time. The popularity of religious Superstition and ghost culture during the Wei Jin and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was the reason for the large number of ghost stories, and this social situation also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ghost love stories. The author of the novel tried to dispel complaints and social and political unrestand bleak reality through ghost stories. The stories are told in various novels about the period, as the issues of social success and love are also their main concerns. Since love and marriage are subjects that express people's ideals and desires in detail, free love and desire for marriage, which are impossible in the real world, are revealed through love stories of ghosts.
The love story of the ghost, which unfolds as “a man who meets by chance - an exotic marriage - a man who returns to reality,” reflects the desire to rise in status that is impossible in the aristocratic society of the family. The love story of the ghost of a human being, which unfolds as “lover-death and soul-realistic love,” reflects the desire for free love and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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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청 황실 사조(祀竈) 의례의 특징과 의미 - 월령승응희(月令承應戱) 『절절호음(節節好音)』을 중심으로

저자 : 임미주 ( Im Miju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9-7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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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 정권이 수립한 청 황실은 역대 왕조와 구별되는 독특한 사조(祀竈) 문화를 구축하였다. 사조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창작된 연극인 월령승응희를 공연하여 고유의 사조의례를 형성하였다. 월령승응희 공연이 궁정 의례로 정식 제정되고 규범화되어 가장 활발히 공연된 건륭 연간의 월령승응희 작품집인 『절절호음(節節好音)』에 수록된 여덟 작품의 '사조절희(祀竈節戱)'는 모두 사조 관련 고사가 전하는 음자방(陰子方), 여몽정(呂蒙正), 범석호(范石湖) 세 역사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조신 제사 및 다양한 사조절 풍속을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청 황실의 사조의례와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이 내포되어 있다.
청 황실은 초기에는 명나라 제도를 계승하여 매년 연말에 태묘의 서쪽 아래채에서 오사(五祀)를 합제하다가, 순치 8년에 맹하에 조신제사를 단독으로 하는 것이 제도화 되었다. 강희제 이후 국가 사전으로서의 사조제사는 폐해지고, 옹정 13년부터 황실의 사적제사로서 매년 음력 12월 23일에 제사를 올렸다. 월령승응희에는 청 궁정 사조일의 이러한 변화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청 궁정이 민간의 사조 풍습을 수용한 결과로서, 민간과 관방의 사조 풍습의 융합을 보여주고 있다.
청 궁정의 사적의례로서 조신제사는 황제가 직접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정 제사이자 황후도 함께 참여하는 부부합제 형식으로, 여성의 참여가 배제되었던 민간의 사조 풍습과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황제와 황후가 함께 참여하는 청 궁정 부부합제의 사조의례의 특징은 월령승응희 속에 부부가 함께 조신 제사를 지내거나 조군과 조군부인을 함께 모시는 모습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청 궁정 사조일에 공연된 월령승응희 작품을 통해 민간과 관방의 사조 문화의 융합, 한족과 만주족 문화의 융합, 유불도 등 다양한 신앙 종교의 수용, 연극을 궁정 예악으로 수용 확대한 청 궁정의 사적의례의 포용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청 통치자가 하나의 가정으로서의 궁정, 대규모로 확대된 제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민족 및 문화에 대한 융합과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 이상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The Qing Dynasty established by the Manchurian regime, established a unique culture of Kitchen god worshipping(祀竈) which is distinguished from previous dynasties. The Qing Dynasty palace performed Festival Court Plays, a professionally created play to commemorate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forming a ritual for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of the Qing Dynasty.
Jie Jie Hao Yin(『節節好音』) is a script collection produced by Qing Dynasty's imperial storehouse that includes 8 different types of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s Festival Court Plays.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祀竈節戱) reflects the various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customs naturally associated with the rituals of the Kitchen God(Zaojun竈君).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 mainly covers centering on the three historical figures including Yin Zifang(陰子方), Lü Mengzheng(呂蒙正), Fan Shihu(范石湖) who performed the rituals related to Kitchen god worshipping. In addition,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 contains useful information that reflects Kitchen god worshipping rituals and characteristics.
In the early period of the Qing Dynasty which succeeded the Ming Dynasty system, the Five sacrifices(五祀) incorporated the Kitchen god worshipping. In the eighth year of Sunzhi(順治), it was institutionalized to pay tribute to the Kitchen god worshipping in the early summer. After Emperor Kangxi(康熙), the Kitchen god worshipping as the sacrificial rites for the nation were abolished and the court officially held a memorial service on December 23rd in the lunar calendar.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 reflects this aspect of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of the Qing court. This is the result of the Qing court's acceptance of the private custom which shows the convergence of private and official customs.
As a domestic ritual of the Qing court, the Kitchen god worshipping was held in the form of a couple together performing a ceremony in which the emperor and the empress also participated. The characteristic of the ritual of a couple together performing a ceremony of the Qing court, in which the emperor and empress participate, is reflected in the presence of the couple holding sacrificial rites together or serving the Kitchen God(Zaojun竈君) and his wife(Zaojunfuren 竈君夫人) together in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
The works of the dramas of Kitchen god worshipping performed on the of the Kunning Palace show the inclusive characteristics of Kunning Palace's historical rites by including the fusion of private and official Kitchen god worshipping cultures, Han and Manchuria cultures,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cultures, court Rites-music including plays. It can be seen the acceptance of various faith religions and the inclusive characteristics of the historical rites of the Qing court. This clearly reflects the Qing ruler's ideals of convergence and harmony with the court as a family and the various nationalities and cultures that make up a large-scale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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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明臣朱之蕃的朝鮮留墨考-以丙午使行為中心

저자 : 王亞楠 ( Wang Yana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9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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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年2月明神宗命翰林修撰朱之蕃, 禮科左給事梁有年為正·副使出使朝鮮. 此次使行中, 朱之蕃與李好閔·柳根·許筠等眾多朝鮮文人以文結緣, 賦詩贈答. 作為朝鮮留墨最多的使臣, 朱之蕃與朝鮮文人的書藝交流在兩國的文化交流史上有著舉足輕重的地位. 朱之蕃與館伴李好閔交遊過程中, 為「彰賜亭」題額, 並將自己攜帶入朝鮮的親書小楷刻帖當作慰問禮物相贈. 在現存的文獻記錄中, 朱之蕃是朝鮮留墨最為豐富的明清使臣. 這主要體現在文獻記錄龐大, 留墨形式多樣, 書藝詩文共傳三個方面. 即朱之蕃的題額·刻石往往與詩文唱酬相結合, 或是通過後人的題詩而流傳, 書藝·詩文相得益彰, 可謂'書因詩傳, 詩以書顯'. 這種書·文相結合的多元文化交流方式作為'書藝外交'的典範具有十分重要的文化史意義.
最後, 朱之蕃的朝鮮留墨充分反映中國文人於名山勝地命名題額的文化傳統, 其題額·題石賦予建築(石壁)文化屬性和人文信息, 構築成為朝·中文人詩文唱酬的文化交流空間. 此外, 朱之蕃的朝鮮留墨在政治外交層面也有其不可取代的重要作用, 書者將題額·題石化作外交手段, 通過題額的摸刻·刊行表明使行中自身的政治立場, 傳遞所代表國家的政治主張, 即所謂的'書藝外交'.


In February 1606, Emperor Ming ordered the scholar Zhu Zhifan and Liang Younian, who was the deputy chief of etiquette department, has been served as the deputy envoy to Korea. During the mission, Zhu Zhifan, Li Haomin, Liu Gen, Xu Feng and many other Korean literati have formed nice relations through poems. As the envoys who left the most literature in Korea, the exchanges between Zhu Zhifan and Korean literati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cultural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course of his friendship with Li Haomin, Zhu Zhifan wrote an inscription for the Zhangci pavilion and gave a copy of the book he brought to Korea as a friendship gift. In the existing literature records, Zhu Zhifan is the most abundant Korean envoys of Ming and Qing dynasties. This is mainly reflected in the following three aspects: diverse document records, various forms of retention, calligraphy, poetry and prose transmission. In other words, Zhu Zhifan's inscription and stone carving are often combined with poems and songs, or broadcast through rhythms of later generations. The calligraphy and poems complement each other, and it can be said that “books are transmitted by poems, and poems are revealed by books”. As a model of “foreign exchange of book art”, this kind of multi-cultural communication mode combining book and text is of great significance in cultural history. Finally, Zhu Zhifan's literatures in Korea have fully reflected the cultural tradition of Chinese literati in famous mountains and resorts. The inks enshrine buildings (stone walls) with cultural attributes and humanistic information, thus creating a cultural exchange space for Korean and Chinese people to express their poetry and prose. In addition, Zhu Zhfan's Korean literature also plays an irreplaceable role in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level. The author uses the title as diplomatic means to express his political stance and convey the political views of the country he represents through the inscription and publication, which is called “calligraphic diplom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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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모용선비(慕容鮮卑) 언어 연구

저자 : 강준영 ( Kang Junyo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9-12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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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의 일파인 모용선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 무대에서 활약하며 5호 16국(五胡十六國) 시기에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을 비롯해 토욕혼(吐谷渾) 등의 정권을 세웠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학자의 주목을 받았고, 모용선비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본 글에서는 모용선비가 역사 무대에서 활약했던 2~5세기까지의 언어에 대해 문헌 사료에 남아있는 관련 기록을 통해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우선 당시의 한자음을 재구해보고, 선행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한편 이전에 분석되지 않았던 어휘 일부에 대해 분석을 시도하였다.
분석의 결과로 기존 연구에서 일부 잘못 해석된 것들이 있음이 확인되었고, 庫勾(kök, kökö), 阿六敦(=altan), 若洛/弈[奕]洛(nurən) 등과 같이 이들 어휘가 어떤 단어의 음역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qai/-gei', '-tu/-tü~-tan/-ten/-tun'와 같이 초기 선비부터 훗날의 유연(柔然), 중세 몽골어에서도 보이는 접사가 있었을 가능성도 확인하였다. 이들 접사는 모용선비의 언어가 몽골어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방증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된다.


Murong Xianbei, a clan of the Xianbei tribe, has been active on the historical stage for a long time. During the Sixteen kingdoms, they established dynasties such as Former Yan, Later Yan, Western Yan, Southern Yan, and Tuyuhun. For this reason, Murong Xianbei received the attention of many scholars early on, and research was conducted in many-sided. However, only a few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 their language.
In this article, I tried to analyze Murong Xianbei's language through related records that remained in the historical documents until the 2nd and 5th centuries when it was very active in the historical stage. First of all, let's reconstruct the Chinese characters of that time, and previous studies were critically reviewed. Then, I tried to analyze some of the vocabulary of Murong Xianbei that had not been analyzed before.
As a result of the analysis, I confirmed that there were some misinterpretations in previous studies. and I was able to confirm what kind of transliteration of these words, such as 庫勾(kök, kökö), 阿六敦(=altan) and 若洛/弈[奕]洛(nurən). In addition, i also confirmed the possibility of affixes seen in early Xianbei, Rouran, and medieval Mongolian languages, such as '-qai/-gei' and '-tu/-tü~-tan/-ten/-tun'. These affixes are thought to be one of the important factors that can prove that the language of Murong Xianbei is related to the Mongolian languag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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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몽골 영웅신화 전승의 세 가지 축과 북방 노마드의 신화 정체성 -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의 '영웅'과 '이상국' 인식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선아 ( Lee Suna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3-14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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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은 북방 초원과 알타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광활한 유라시아 지역을 무대로 민족적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왔다. 이러한 이합집산의 역사적 과정에서 '신화'와 '역사'라는 반어적인 개념을 하나의 기억 속에서 공유하면서 장대한 규모의 영웅서사시 장르를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전승하고 있다. 신화와 역사가 비교적 미분화된 몽골의 영웅 서사에는 북방 유목민의 역사적 이산과 연대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신화적 원형을 토대로 장편의 장르로 유연하게 종합되고 정형화되어온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특히 수시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받아온 북방 유목민들이 영웅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강력한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격변하는 환경에서의 생존전략으로써 다채롭게 발전시켜온 전승의 양상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지역을 중심으로 북방 지역에서 격동의 이주사를 끊임없이 경험하였던 <장가르> 서사시를 사례로 하여, 오이라트 몽골의 영웅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이 특징적으로 주목되는 신장 알타이, 칼미크, 몽골 본토 등 지역을 세 가지의 축으로 나누어 비교적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장가르>에서 형상화된 '영웅 장가르'와 '이상국 봄바국'의 신화적 의미와 관련지어 북방 유목민의 노마디즘의 원형과 신화정체성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노마드 정체성의 특징적 면모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지역문화 담론의 틀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 글로컬리즘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한다. 즉 팬더믹 이후, 격변의 국제 사회에서 지역 간 교류와 협력의 원리로서 세계성과 생명성을 지향하는 '뉴노마디즘'이라는 새로운 문명 담론의 모델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다.


Mongolian nomads have been based in the northern steppe and Altai region, and have repeatedly migrated and gathered ethnic groups in the vast Eurasia region. In this historical process of gathering and gathering, the ironic concepts of 'myth' and 'history' are shared in one memory, while the epic genre of heroic epics on a grand scale has been developed and passed down actively to this day. Mongolia's heroic narratives, in which mythology and history are relatively undifferentiated, have been flexibly synthesized and stereotyped into a long-form genre based on the mythical prototype in the process of historical separation and solidarity of the northern nomads. In particular, it can be said that it is characteristic that the northern nomads, who have been frequently challenged with their national identity, have developed variously as a survival strategy in a turbulent environment while forming a global and powerful identity in the process of transmitting the heroic myth.
In this research, Xinjiang Altai and Kalmyk, which are characteristically noted in the process of transmission of the heroic myth of Oirat Mongolia, using the < Jangar > epic, which constantly experienced turbulent migration in the northern regions centering on the Altai region, as an example. Regions such as, Mongolia and mainland were divided into three axes and comparatively studied. In particular, in relation to the mythological meaning of the 'hero Jangar' and 'Utopia, the ideal country of Bomba' as embodied in < Jangar >, the prototype of the nomadic nomads in the north and the problem of mythic identity were examined.
By exploring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is traditional nomad identity, this study attempts to understand the essence of glocalism in Northeast Asia, which is newly illuminated in the framework of contemporary regional cultural discourse. In other words, it was intended to propose a model of a new civilize-discourse called 'New Nomadism', which aims for globality and vitality as a principle of exchange and cooperation between regions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upheaval after the pan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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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정인보의 한국불교에 관한 인식과 탐구

저자 : 여희정 ( Yeo Heejeo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6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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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는 국학자로서 자국의 역사와 학문에 대한 관심이라는 차원에서 한국불교를 주목하고 탐구하였다. 정인보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고문화에 남긴 불교의 공헌이 크고 불교의 유산을 잘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依自와 利他'의 기개와 정신이야말로 한국불교의 진수라고 역설하고, 승려들이 국난에 뛰어들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쳤던 일들을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의 호국적 전통이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리의 고유 사상인 '弘益人間'의 맥이 불교에 이어져 불교의 근본 정신과 어울린 데 있다고 보았다. '正音學', 즉 훈민정음에 관한 학문 방면에서도 신미 대사와 학조 대사의 업적을 부각함으로써 훈민정음에 관한 학문에 불교계의 공헌도 컸음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도 정인보가 한국불교가 이룬 큰 업적으로 꼽은 것은 불교 경전의 해석 방면에서 큰 지혜를 갖춘 인물의 배출이다. 그중에서 정인보가 주목했던 인물은 고구려 출신의 승려로서 중국에 건너가 삼론학을 확립한 '道朗(=僧朗)'이다. 승랑에 대한 연구는 근대 시기에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촉발되어 중국인, 한국인 연구자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인, 중국인 연구자에 의해서 승랑은 중국불교사에서 다뤄질 뿐이고, 그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과소 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이와 달리 정인보는 승랑의 업적과 영향을 높이 평가하고, 승랑을 통해 동아시아 불교에서 차지하는 한국불교학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민족의 주체성을 획득하고 弘益의 정신이 기반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었던 정인보에게 한국불교는 오늘날 계승하고 싶은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풍부히 담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As a Korean scholar, Jeong In-bo paid attention to and explored Korean Buddhism in terms of interest in Korean history and scholarship. He basically recognized the contribution of Buddhism in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held the position that the legacy of Korean Buddhism should be inherited well.
He stressed that 'improving oneself and bringing benefit to others' are the essence of Korean Buddhism, and he explained that it was a great feature of Korean Buddhism that monks willingly jumped into the country's turmoil and sacrificed their lives. And he thought that the driving force behind this tradition of state-protecting Buddhism was that the spirit of Korea's unique idea of 'humanitarianism' was connected to Buddhism and harmonized with the fundamental spirit of Buddhism. He also revealed that the Buddhist community contributed greatly to the study of 'Hunminjeongeum' by emphasizing that the achievements of Monk Shinmi(信眉) and Monk Hakjo (學祖) were great in the field of research on Hunminjeongeum, which is called 'Jeonggeumhak(正音學)'.
Above all, Jeong In-bo's claim to be the greatest achievement of Korean Buddhism was that monks with great wisdom were cultivated in the interpretation of Buddhist scriptures. Among them, the person Jeong In-bo paid attention to was Do-rang(道朗), a monk from Goguryeo, who moved to China to establish Three-Treatise School(三論學). His research on Do-rang was sparked by Japanese scholars during the modern era, and Chinese and Korean scholars began to show interest. However, the study of Do-rang by Japanese and Chinese scholars was only dealt with in the history of Chinese Buddhism, and there was also an underrated view of the effect of Do-rang. On the other hand, Jeong In-bo praised Do-rang's achievements and influences, and claimed that the status of Korean Buddhism in East Asia was great through Do-rang's existence.
To Jeong In-bo, who wanted to acquire the ethnic identity and create a culture based on the spirit of the humanitarianism, Korean Buddhism was rich in the spirit and cultural heritage that we have to inheri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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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성호학파와 북학파의 예설 비교연구 - 성호 이익과 담헌 홍대용을 중심으로

저자 : 朴智顯 ( Park Jihy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1-18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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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호 이익과 담헌 홍대용을 중심으로 성호학파와 북학파의 예에 대한 인식을 비교한 것이다. 이익은 퇴계의 의리중심의 예학을 계승하여 예치의 경세론으로 나아가는 성호학파 예학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이익은 『주자가례』의 사례를 기본 강령으로 삼으면서도 신분에 맞는 예제의 준행과 불필요한 비용의 절약에 초점을 맞추어 보완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제도화하면서, 일반백성들이 수행할 수 있는 서인가례를 만들어냈다. 서인가례는 지배와 교화의 대상에 불과했던 일반백성들도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익의 예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인륜을 수행하는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개편된 것이다. 홍대용은 이러한 예학에 반대하지만, 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언어를 활용하여 예개념을 인간사회와 자연세계를 관통하는 질서라는 것을 재성찰한다. 물리적 자연세계가 생의 원리에 따라 질서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수학적 방법을 통해 증명하고, 인간사회의 제도나 규범도 확장된 물리적 자연세계의 인식수준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주해수용』에서 인간사회와 자연세계를 관통하는 질서로서의 예 개념을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하고, 『의산문답』은 증명된 질서로서의 예 개념이 어떻게 확장성을 가지는지를 보여주며, 이러한 확장된 예 개념에 따라 국가사회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한 실질적 경세의 구상을 『임하경륜』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이익과 다른 방향에서 예치의 경세론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고, 이후 북학파가 다양하게 북학사상을 전개할 수 있는 확장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This article compares the discourses on the Rituals of Songho School and Bukhak School, focused on Yi Ik and Hong Dae-yong. Yi Ik succeeded Toegye's etiquette and laid the theoretical foundation for the Ritual Theory developed as the Governing Theory of the Law of Propriety. He took Zhu Xi's Family Rituals as the basic code, but institutionalized it in a way that complemented it with a focus on following the Family Rituals appropriate to their status and saving unnecessary costs. The Family Rituals for Common People that he pursued, although it came from the realistic necessity of living as a commoner, set the ordinary people, who were merely objects of domination and edification, as subjects capable of ethical behavior. Therefore, the awareness and practice of Yi Ik's Rituals has been reorganized with a focus on the subject who implements the Code of Ethics.
Hong Dae-yong opposed the complex Studies of Rite at the time, but did not deny the concept of Rituals itself. He used mathematical language to reexamine the concept of Rituals as an order penetrating human society and the natural world. He proved this through a mathematical method, and argued that the institutions and norms of human society should also be reconstructed according to the level of awareness of the expanded physical and natural world. He envisioned that this could be proved and applied through the three writings of Chuhaesuyong (籌解需用), Uisanmundab (醫山問答), and Imhagyeongryun (林下經綸). In this way, it can be seen that he pursued the Governing Theory of the Law of Propriety in a different direction from Yi Ik. In addition, it seems that he was able to provide an expanded perspective from which the Bukhak School could be developed in various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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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손승용 수진본 창가집』의 특징과 가치

저자 : 반혜성 ( Ban Hyes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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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손승용(孫承鏞, 1855~1928)의 유품에서 나온 『손승용 수진본 창가집』을 분석한 글이다. 창가집을 분석하기에 앞서 손승용의 생애와 활동을 살펴본 결과, 손승용이 독립신문사의 기자를 지낸 후 감리교의 목사로 활동하면서 근대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에도 이바지하였던 인물임을 밝힐 수 있었다. 손승용은 언론인이면서 교육자, 그리고 종교인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음으로 수록곡을 통해 필사 시기를 추정하였는데, 필사가 시작된 시기는 손승용이 강화의 잠두합일학교에 있었던 1909년경이고, 완성된 시기는 공주제일교회에 있었던 1911년경으로 보았다. 수록곡에는 문명개화를 통해 국권을 지키고자 한 시대 정서가 노랫말에 투사되어 『손승용 수진본 창가집』은 애국창가집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손승용 수진본 창가집』은 일제의 강제병합 직전부터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불렸던 창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외에 악보가 있는 애국창가집으로 전하고 있는 북간도 광성중학교의 『최신창가집(부악전)』(1914)과 하와이 호놀룰루의 『애국창가』(1916)의 저본으로 『손승용 수진본 창가집』가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비록 개인이 필사한 것이지만 국권 피탈의 과정을 바라보며 우러나는 애국심과 독립의 염원을 기록한 시대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손승용 수진본 창가집』이라고 평가하겠다.


This article looks into 『Son Seung-yong Sujinbon Changgajip』, which has been found from the estates of Son Seung-yong (孫承鏞, 1855~1928). Prior to the in-depth analysis on the songbook, activities throughout Son Seung-yong's life had been addressed. From such, this paper could reveal that Son Seung-yong served as a Methodist minister, after being a journalist for the Independence Newspaper, contributing to the establishment schools for modern education. Son Seung-yong can be assessed to be a journalist, an educator and at the same time a religious person.
The timing of transcription had been estimated through analysis on the songs listed in the songbook. Son Seung-yong started the transcription around 1909 when he was at the Jamduhap'il school in Ganghwa, which was completed around 1911 when Son Seung-yong was at Gongjujeil church. The lyrics of the songs listed in 『Son Seung-yong Sujinbon Changgajip』, indicated clear characteristics of a patriotic songbook, as it reflected the sentiments of the time which was to protect national sovereignty through enlightenment and civilization of the people. 『Son Seung-yong Sujinbon Changga』 objectively demonstrates the Changgas that were sung around schools or churches before the forced annexation.
This paper also addressed the possibilities of 『Son Seung-yong Sujinbon Changgajip』 being referenced as drafts for two patriotic songbooks with musical notes, which are, 『Choisinchanggajip』 (1914) of Gwangsung middle school at Bukgan-do and 『Aegukchangga』(1916) of Honolulu Hawaii. Despite being transcribed by an individual, 『Son Seung-yong Sujinbon Changgajip』 can be assessed to be the record of an aspiration of the time toward patriotism and independence, which arose from watching the progress of national sovereignty being forcefully taken away.

KCI등재

10남송대(南宋代) 화원화가(畵院畵家) 마원(馬遠)의 화경(畵境) 연구(硏究)

저자 : 김연주 ( Kim Yeo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3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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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의 다양한 정취 가운데 특별한 전형성을 갖춘 것 중의 하나는 단연코 南宋代 畵院畵家였던 馬遠(약 1160~1225)의 산수화이다. 마원은 독특한 여백의 구성과 능숙하고도 강하게 꺾인 筆을 사용한 독특한 경물묘사로써 抒情性 강하면서도 생동감 가득한 '一角'의 화면을 성립시켰다. 본 논문은 비록 단편적으로 회화사에서 언급되지만 하나의 典型을 확립한 馬遠의 회화세계에 대해서 화원화가로서의 그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가 처했던 예술적 상황에서 전형화를 이룬 그의 畵境의 특징들-詩가 담긴 畵境, 一角에 담은 逍遙遊, 畵目이 결합된 多義的 境界-을 살펴보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였다.
마원의 畵境에는 자연환경과 시대적 감수성의 승화가 드러난다. 南宋代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환경, 다양한 경물의 상징성에 의해 마원 특유의 구도가 형성되며 복합적인 연상을 유도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소품으로 제작되었지만 그의 畵境은 결코 작지 않다. 정교하고 아름다워 실용성 및 장식성이 극대화된 화면이지만, 그는 文人的 情趣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원은 화원화가로서 회화의 기능과 의미부여에 있어서 제한적 신분이었지만 여운을 남기는 심미적 공간의 창출로 그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Among the various moods of landscape painting, one of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s is the landscape painting of Ma Yuan(approximately 1160~1225), who was definitely a court painter of the Southern Song Dynasty. Ma Yuan established the screen of 'one-corner' composition, in which the full of lyricism and vitality with a unique composition of blanks and a unique description of the scene using the skillfully and strongly bent strokes. This paper deals with his social status as a court painter and his paintings typical of the artistic situation, and presents various interpretable views on the his painting world that is mentioned in the history of painting in fragments.
Ma Yuan's landscape reveals the sublimation of the natural environment and the sensitivity of the times. The unique composition is combined by the natural environment of the Southern Song dynasty, the humanistic environment for and by people, and the symbolism of various things, leading to complex associations. Most of his works were small, but the boundary of his painting was not small. Although his paintings are sophisticated and beautiful, maximizing practicality and decorativeness, he did not give up his literary taste. Ma Yuan, as a court painter, had a limited position in terms of the function and meaning of painting, but he was transcending the limits of time and space by creating an aesthetic space that leaves feelings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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