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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ental Studies , Dong Yang Hak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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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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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1)~89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213
동양학
89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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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재철 ( Jung Jaechul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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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단국대 연민문고에서 『연행음청기』(3)과 『연행음청록』(4)가 박지원의 산문 작품과 함께 1책으로 묶여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연행음청기』(3)은 표지를 포함해 총 32장으로 되어 있고, 『연행음청록』(4)는 표지나 목록 없이 본문만 총 30장으로 되어 있다. 이 두 책은 『열하일기』 이본 중에서 '초고본 계열'에 속하는 이본으로 『열하일기』 제3편 「성경잡지」와 제4편 「일신수필」의 최초의 원고이거나 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는 이를 확인할 목적으로 국내외에 소장된 『열하일기』 이본 중에서 표제가 “연행음청”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 이본들과 『연행음청기』(3)·『연행음청록』(4)의 선후 관계와 교정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단국대 연민문고에는 『연행음청(건)(곤)』 2책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연행음청(곤)』은 표지를 포함해 총 22장으로 되어 있다. 이 책에는 5월 10일 연암에서 개성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해 7월 30일에 호타하에서 조림까지 40리를 이동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 씌어 있는 연행 일정은 『열하일기』 「도강록」에 기록된 6월 24일보다 44일이 많고, 「관내정사」에 기록된 8월 5일보다 닷새가 적은 것이다. 박지원은 『연행음청기』 (3)과 『연행음청록』(4)를 저술하면서 위와 같이 80일간의 연행 여정이 기록되어 있는 『연행음청(곤)』의 내용을 활용하여 자신이 본 풍물과 체험을 상세하게 추가하였다.
일본 동양문고에는 표제를 '연휘'라고 적어놓은 필사본 중 『연행음청(1)(2)』 2책과 『열하일기(1)(2)(3)(4)(5)(6)』 6책을 합쳐놓은 『연암설총』 8책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연행음청(1)』은 「도강록」과 「성경잡지」를 필사한 것이고, 『연행음청(2)』는 「일신수필」과 「관내정사」를 필사한 것이다. 또한 단국대 연민문고에는 『행계잡록(1)(2)(3)(5)(6)』 5책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 『행계잡록(1)』은 「도강록」과 「성경잡지」를 필사한 것이고, 『행계잡록(2)』는 「일신수필」과 「관내정사」를 필사한 것이다. 『연행음청(1)(2)』는 박지원이 『연행음청기』(3)과 『연행음청록』(4)의 원문을 개작에 가까울 정도로 대폭 교정한 것을 후에 누군가가 다시 필사한 것이고, 『행계잡록(1)(2)』는 박지원이 앞서 대폭 교정한 내용을 다시 교정해 직접 필사한 것이다. 본 연구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 이본의 계통을 규명하거나 『열하일기』의 성립과정과 원문의 교정 양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Recently, I confirmed the 『Yeonghaengumcheonggi燕行陰晴記』(3) and 『Yeonghaengumcheongrok 燕行陰晴錄』(4) at Dankook University's Yeonmin Bookstore. It was with a prose work by Park Ji-won. 『Yeonghaengumcheonggi』(3) has a total of 32 pages including the cover and 『Yeong haengumcheongrok』(4) has a total of 30 pages without a cover or list. These two books belong to the “first draft series” among the 『Yeolhailgi熱河日記』, identified by the author presumed to be the first manuscript or close to that of the 『Yeolhailgi』 part 3 「Sunggeonggabgi盛京雜誌」 and part 4 「Ilsinsoopil馹汛隨筆」.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I looked at these texts, which have the title “Yeonghaengumcheong燕行陰晴” among the different version of 『Yeolhailgi』 collected at home and abroad. And I looked at the relationship between different version of 『Yeolhailgi』 and the precedence and correction patterns of the 『Yeonghaengumcheonggi』(3) and 『Yeonghaengum cheongrok』(4).
Dankook University's Yeonmin Bookstore contains two books: The 『Yeonghaengumcheong (Gun)(Gon)燕行陰晴(乾)(坤)』 at Yeonmin Bookstore. 『Yeonghaengumcheong(Gon)』 among them has a total of 22 pages. This book starts with entering Gaeseong開城 on May 10th from Yeonam燕巖 to afforestation on July 30th from Hotaha호타하滹沱河 to Jolim棗林. The schedule of the performance written here is 44 days more than June 24 recorded in the 「Dokangllok渡江錄」 of the 『Yeolhailgi』 and Five days are less than August 5th, which is recorded in the 「Gannaejungsa關內程史」. At the time of writing the 『Yeonghaengumcheonggi』(3) and 『Yeonghaengumcheongrok』 (4), Park Ji-won used the contents of the 『Yeonghaengumcheong(Gon)』, which records the 80-day journey, as the main data. And he added the customs and experiences he saw in detail. In Dongyang Bookstore in Japan, there are eight books of 『Yeonamseolchong燕巖說叢』 among the manuscripts with the title “Yeonhui燕彙”. This book is a combination of two books, 『Yeong haengumcheong燕行陰晴(1)(2)』, and six books, 『Yeolhailgi(1)(2)(3)(4)(5)(6)』. Among them, 『Yeong haengumcheong(1)』 is a transcription of 「Dokangllok」 and 「Sunggeonggabgi」 and 『Yeongha engumcheong(2)』 is a transcription of 「Ilsinsoopil」 and 「Gannaejungsa」. In addition, Dankook University's Yeonmin Bookstore contains five books on 『Haenggyejabnok(1)(2)(3)(5)(6)』. Among them, 『Haenggyejabnok(1)』 is a transcription of 「Dokangllok」” and 「Sunggeonggabgi」 and 『Haen ggyejabnok(2)』 is a transcription of 「Ilsinsoopil」 and 「Gannaejungsa」. 『Yeonghaengumcheong (1)(2)』 is a transcription of a book in which Park Ji-won corrected the original texts of 『Yeonghaen gumcheonggi』(3) and 『Yeonghaengumcheongrok』(4) to the extent that they were close to the adaptation. And 『Haenggyejabnok(1)(2)』 is a transcription of Park Ji-won's previous correction by re-correcting it. This study is thought to be helpful in clarifying the lineage of the different version of the 『Yeolhailgi』, which is intertwined like a riot. And this study is expected to help investigate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of 『Yeolhailgi』 and the correction pattern of early co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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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완형 ( Lee Wanhy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4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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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진성여대왕 거타지'조가 대당적 우위전략 차원에서 찬술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신성적 수호로서 나타나는데 호국호법용사상이 주는 언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용의 거처인 바다를 기제로 활용한 데서 보여진다. 이는 바다에 함의된 의미에서 확인된다. 첫째는 신라에는 호국호법용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 중국과의 신위적 우위성을 드러낸다. 둘째는 다라니의 효험성 및 남용과 악용의 사례를 예시하고 그에 대응하지 않을 때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강한 경계를 내포하는 공간으로서 작용한다. 셋째는 당나라 황제까지도 칭송하는 거타지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신라에 많다는 사실을 피력함으로써 군사적 우월성을 나타낸다. 넷째는 용이 신위하는 바다를 통한 대당전략의 우수성을 확보함으로써 몽고에 대한 경계까지도 암시한다. 이를 통해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초유의 위기의식과 절비의 잔혹성에서 벗어나려는 절대의 경각심과 절치의 방어의식을 드러나고자 하였다.


This thesis originated from revealing the fact that the 'Jinseongyeodaewang Geotaji' was described in terms of strategy toward the Tang Dynasty's superior strategy. It appears as a sacred guardian, which is shown in the use of the sea as a mechanism, highlighting the importance of the meaning given by a dragon ideal of defense the fatherland and Buddhism(護國護法龍思想). It is identified in the sense of implication to the sea. First, the fact that there is a dragon of defense the fatherland and Buddhism(護國護法龍) in Silla reveals the superiority of shows the superiority that god protects compared to China. Second, it exemplifies the cases of the efficacy, abuse and abuse of darani and acts as a space that implies a strong boundary that the country is at stake when it does not respond to it. Third, it shows military superiority by expressing the fact that there are many outstanding figures such as Geotaji who praise even the Tang Dynasty emperor. Fourth, it implies the boundary of Mongolia by securing the excellence of Strategy toward the Tang Dynasty(對唐戰略) through the sea protected by dragons. Through this, it was intended to reveal absolute alertness and absolute defense consciousness to escape from the crisis of colostrum and incomparable cruelty caused by the Mongol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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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모정열 ( Mo Jeongyeol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6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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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母와 疑母는 中古音을 대표하는 『切韻』의 음운체계 내에서 완전히 다른 성모이다. 하지만 현대 漢語方言에서 影母字와 疑母字의 성모는 운모 조건에 따라 합류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본고에서는 湖南省 남부 지역의 오랜 토속어인 湘南土話의 影疑母字 성모 유형을 분석해 보았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湘南土話 중의 影疑母字 성모는 일반적인 한어 남방방언의 유형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유는 지역에 따라 影疑母字 성모 유형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예외적 현상들이 다량 나타나기 때문이다. 湘南土話는 지역 약세방언인데, 湘南土話가 모어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중방언 생활을 한다. 모어인 土話는 집 안 혹은 마을 단위에서만 사용하고, 공적인 자리(직장이나 시장 혹은 공적인 사교의 자리)에서는 대부분 지역 통용어인 官話(西南官話 湘南片)를 사용한다. 또한 주변에는 湘방언이나 贛방언 혹은 客家방언을 사용하는 주민들이 같은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湘南土話는 주변 방언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湘南土話 影疑母字 성모의 독특한 특성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주변 방언과의 비교를 통해 湘南土話 影疑母字 성모 특성의 본질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비교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湘南土話 影疑母字 성모는 開口呼 운모 앞에서는 客家방언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合口呼, 齊齒呼, 撮口呼 운모 앞에서는 湘, 贛방언과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開口呼 운모 앞에서 일부 影疑母字가 합류되는 경향은 湘, 贛방언과 유사하고, 合口呼 운모 앞에서 일부(혹은 다수의) 影疑母字의 구분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은 客家방언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湘南土話 影疑母字의 성모 특성이 주변 방언과 다른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湘南土話가 지역 약세 방언으로서 오랜 기간 주변 강세방언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Ying(影) initial and Yi(疑) initial are completely different initials within the phonological system of 『切韻』, which represents the Mid-ancient Chinese. However, in modern Chinese dialects, the characters of Ying(影) initials and Yi(疑) initials appear in a very complex and diverse form, either merging or separating depending on the conditions of rhyme.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characters and types of Ying(影) initial and Yi(疑) initial in 湘南土話, a long-standing local dialect in the southern region of Hunan Province. According to my observation, the characters of Ying (影) and Yi(疑) initials in 湘南土話 have certain differences from the general southern dialects. The reason is that, there are a number of exceptional phenomena that cannot be grouped together. 湘南土話 is a regionally weak dialect, most people whose mother tongue is 湘南土話 live a bilingual life. 湘南土話 is used only within the house or village level, and in public places (workplace, market, or public social setting), the local dialect Guanhua(官話) is mostly used. Also, there are many cases where residents who speak the 湘 dialect, the 贛 dialect, or the 客家 dialect live together in the same area.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湘南土話 is in an environment where it can be easily influenced by the surrounding dialects. I judged that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湘南土話 Ying(影) and Yi(疑) initials would be relevant to this situation, and I tried to clarify the nature of the characteristics of 湘南土話 Ying(影) and Yi(疑) initials by comparing it with the surrounding dialects.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the following conclusions could be drawn. 湘南土話 Ying(影) and Yi(疑) initials show characteristics similar to the 客家 dialect in front of 開口呼, and similar to the 湘 and 贛 dialects in front of 合口呼, 齊齒呼 and 撮口呼. However, the tendency for some Ying(影) and Yi(疑) initial to be merged in front of the 開口呼 is similar to the 湘 and 贛 dialects, and the situation in which some (or many) Ying(影) and Yi(疑) initials are still separated in front of the 合口呼 is similar to the 客家 dialect. The reason why 湘南土話 Ying(影) and Yi(疑) initials have a complex pattern different from that of the surrounding dialects can be explained as a result of the long period of influence of the neighboring strong dialects as a weak regional dial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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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찬규 ( Park Chankyu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8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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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휴모탁국은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 보이는 마한소국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소국의 규모나 사회성격, 경제구조 등 모든 면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일차 방도는 위치 문제에서 부터라 하겠는데 이것도 모호한 상태이다.
이러한 형편이기 때문에 우휴모탁국에 대한 연구는 매우 어렵다. 다만 우휴모탁국 위치에 대해 부천지역도 거론되고 있어 기왕에 거론된 우휴모탁국 위치에 대한 여러 설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서 부천과의 관련 여부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여러 설 중에서 이병도의 부천(부평)설은 여전히 유효한 견해임을 알 수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 부천지역 군 이름인 주부토군과 장제군을 통해서는 부천(부평·계양 포함)지역에 마한 소국이 실재하였을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우휴모탁국이 부천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국어학적으로 부천의 조선시대 면 이름 중 하나인 주화곶면이 주부토군과 연결되고 나아가 우휴모탁국과의 연결도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한편 고고학적으로는 부천의 고강동유적이 주목되었다.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철기시대의 것으로 부천지역 마한소국의 존재를 입증해 줄 자료로 생각되었다. 특히 이 유적의 환구유구는 그 구조나 입지조건에서 종교의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마한 소도의 원형으로까지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주부토'명 기와가 발견된 계양산성도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할 유적임은 물론이다.
이상의 결과로써 본다면 현재의 부평·계양을 포괄하는 부천지역은 마한시대 정치체로서 소국이 있었을 가
능성이 짙다. 그 소국은 우휴모탁국을 지목해 볼 수 있겠다.


Uhyumotakguk(優休牟涿國) is one of the Mahan(馬韓) countries seen in the Section for East Barbarians(東夷傳) of the 『Samgukji(三國志)』. However, little is known about the size, social characteristics, and economic structure of this small country. The first way to approach this is a matter of location, but this is also ambiguous.
Because of these circumstances, it is very difficult to study the Uhyumotakguk. However, since the Bucheon(富川) region is also mentioned about the location of the Uhyumotakguk, various theories about the location of the Uhyumotakguk mentioned earlier were reviewed. Through this, this study investigated whether it was related to Bucheon.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among many theories, Lee Byung-do(李丙燾)'s Bucheon(Bupyeong:富平) theory was still valid. We investigated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Mahan in the Bucheon region through Jubuto-gun(主夫吐郡) and Jangje-gun(長堤郡), which are the names of the Bucheon region(including Bupyeong and Gyeyang(桂陽)) in the 『Samguksagi(三國史記)』 jiriji(地理志).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Uhyumotakguk would establish a relationship with the Bucheon region. In addition, it was found that Juhwagot-myeon(注火串面), one of the names of myeons in Bucheon during the Joseon (朝鮮) Dynasty, was connected to Jubuto-gun, and furthermore, it was possible to connect with Uhyumotakguk.
On the other hand, archaeologically, the Gogang-dong(古康洞) ruins in Bucheon drew attention. These ruins are dated from the late Bronze Age to the early Iron Age, and were thought to prove the existence of Mahan in Bucheon. In particular, the Hwankuyugu(環溝遺構) of this site is related to religious ceremonies in terms of their structure and spatial conditions, and can be estimated as the original form of Mahan Sodo(蘇塗). In addition, Gyeyang-mountain Fortress, where a tile with the name 'Jubuto' was discovered, is of course also a site to keep an eye on.
Judging from the above results,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present Bucheon area, which includes Bupyeong and Gyeyang, had a small country as a political body during the Mahan period. That small country can be pointed out as the Uhyumotak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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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유표 ( Lee Youpy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5-10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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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최광국 교수가 집필한 『아시아고대사』의 저술 목적과 구성, 그리고 그 특징과 한계에 대해 토론한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고대사'의 범위를 '노예소유주'와 인민대중(노예를 포함한)의 투쟁이 전개된 시기로 규정하면서, '탈서구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아시아 나름대로의 역사 발전 단계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노예소유자사회'의 흥망성쇠에 따라 장절을 구성하면서, 마지막 장에서 서구 역사 발전에 대한 아시아의 영향을 제시하였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본서의 특징과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문헌의 부족으로 인한 내용 서술의 부침, 자료의 과도한 해석(예컨대 서주 시기의 '정전제'),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사료를 직접적으로 인용한 한계가 엿보이는 것이 아쉽다.


This article discusses the purpose and composition of the writings of Asian Ancient History written by Choi Kwang-guk, a professor of history at Kim Il-sung University in North Korea, and its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The author set the scope of 'Asian Ancient History' as the time when the struggle between the 'slavery owner' and the masses (including slaves) unfolded. The author suggested the purpose of this book to explore the development of Asia's own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de-westernism'. In this context, the author constructed a chapters according to the rise and fall of the 'slavery owner society'. And the last chapter presents the influence of Asia on the development of Western history. In this respect, this book has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However, due to the lack of references, there are limitations such as the ups and downs of content description, excessive interpretation (e.g., interpretation of the “nine squares” system), and the use of unverified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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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성준 ( Bae Sungjoo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7-13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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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가 간도 문제와 간도파출소의 관련성이나 간도파출소의 활동에 중점을 둔 반면 본 연구에서는 간도파출소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간도 문제의 역사가 '간광지대'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히고, 간광지대 개념이 대한제국의 간도 담론과는 상이한 식민주의 담론에서 기원하며, 간도의 영역도 '한인잡거구역'으로 전환되었음을 규명하였다.
간도파출소는 간도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간도 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 및 문헌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간도파출소 설립 이후 간도 문제에 대한 현지 조사는 물론이고 간도의 현황, 관습, 호구, 산업 등에 대한 각종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였다. 간도 문제 보고서를 통해서 살펴본 간도파출소의 간도 문제의 역사는 '간광지대'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간도 문제의 기원이 되는 것은 17세기 초 정묘화약으로 출현하여 2백여 년 동안 유지된 '간광지대'이고, 19세기 후반 청국이 간광지대를 개방하면서 한·청 간에 경계문제가 대두되었다. 1880년대에 열린 국경회담은 미결로 끝났고, 러일전쟁으로 중단된 경계 교섭은 간도파출소 설치를 계기로 재개되었다고 보았다. 나이토에서 시노다로 이어지는 이러한 인식은 대한제국의 토문강 경계론과는 상이한 것으로, 간광지대를 청국의 지배도 조선의 지배도 미치지 않는 '중립지대'로 간주하였다. 간도를 중립지대, 나아가 무주지로 바라보는 간도파출소의 인식은 유럽과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던 식민주의 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간도파출소 설치를 통하여 간도를 확보하려던 일본 정부의 방침이 1908년 하반기 들어 바뀌면서 간도의 범위도 축소되었다. 간도 한인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타결하는 과정에서 간도파출소에서 상정한 간도의 범위는 간도파출소가 관할하는 범위로 축소되고 길회철도 조문과 석을수 경계가 교환되면서 청국측의 석을수 경계가 관철되었다. 일본 정부가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간도파출소의 존재는 유명무실하게 되었으며, 간도파출소가 관할하던 간도의 범위는 간도협약에서 두만강 이북의 '한인잡거구역'으로 남게 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discourse of Gando produced in the Korean Empire is appropriated by colonial discourse through the survey report produced by Gando police station.
Gando police station conducted the field work and the documentary survey on Gando region before and after setting up the police station and submitted the survey report to Japanese Resident-General in Korea and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in Japan. Seen from the survey report on Gando issues, the history of Gando issues was composed with as the central figure of the concept, 'in-between empty zone'('間曠地帶'). The origin of Gando issues was the zone which was appeared by a treaty between Qing and Joseon in the early 17th century and was maintained for two hundred years. When Qing opened the zone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demarcation issue between Qing and Joseon was emerged. Those who worked for Gando police station thought that the border meeting held in 1885 and 1887 was closed undecided and Japan reopened the border meeting after the Russo-Japanese war. The perception on the zone which was connected from Naito Konan to Jisaku Sinoda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perception on 'Tumen boundary' in the Korean Empire. They thought the zone was a neutral zone which was not ruled by Qing nor Joseon. As well as the concept that Gando was a neutral zone, go even further, 'terra nullius' was originated from the colonial discourse which jusified the imparial expantion by Europe and Japan.
As Japanese Gando policy was changed in the late 1908, the range of Gando decreased. In the course of the negotiation of trial jurisdiction between Qing and Japan, the range of Gando was reduced to the jurisdiction by Gando police station and 'Seokulsu(石乙水) boundary' by Qing was fixed. When Japanese government gave up the Gando ownership, Gando police station remained nominal and the range of Gando was changed into 'Korean mixed residence area'('韓人雜居區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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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현준 ( Bae Hyunjoo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1-15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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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90년대 대동강문화론을 주장하면서 이루어지는 고조선에 대한 일련의 주장들은 현재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 이전의 연구 성과는 당시로서 나름의 고고학적 근거를 가지고 개진된 연구들이었다. 특히 북한학계는 1970년대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역사상을 보다 구체화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곧 고조선 요동중심설을 고고학적으로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해방 후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석병용기의 극복과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설정이라는 고고학적 연구성과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50~60년대는 북한 역사학·고고학 분야 연구의 황금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시 북한고고학계에서 고조선 요동중심설을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글에서는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청동기시대부터 고조선사 인식까지 50~70년대의 북한 고고학계의 논리적 근거를 정리 및 검토하였다.


A series of arguments made while advocating the theory of 'Daedonggang Culture' in the 1990s on North Korea's Gojoseon research are currently difficult to accept, but previous research on Gojoseon conducted before then had its own archaeological basis at the time. In particular, in the 1970s, the North Korean academia tried to further refine the historical image of Gojoseon based on the achievements of archaeological research. The purpose was to archaeologically establish the theory of 'Gojoseon i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In the background, it was possible because archaeological research results such as overcoming 'the Chalcolithic Period' presented by Japanese scholars and establishing the Bronze Age and Iron Age were supported during the 50s~60s. Therefore, it is evaluated that the 50s and 60s were the golden age of research in the field of North Korean history and archaeology. So, it is important to review the archaeological research results of that time in order to understand the logical basis for claiming the theory of 'Gojoseon i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in the North Korean at that time.
From an archaeological point of view, this article aims to summarize and review the logical basis of the North Korean archaeological community in the 50s and 70s from the Bronze Age to the perception of Go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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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석미현 ( Seok Mihy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간행물 : 동양학 8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7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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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연구목적은 『논형』의 천인분리론적 특징을 살펴보고 순자의 천인분리론과 구분하여 '천인불감응론'으로 규정할 수 있음을 논하고자 한다. 그 특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논형』에서는 '천'이 인격신적 의미나 의지적 주재성이 전혀 없는 기로 형성된 자연물이며, 감각기관이 없기 때문에 인간과 달리 욕망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천인이류'임을 논증하였다. 둘째, 『순자』의 천인분리론을 계승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논형』에서는 천으로부터 인격신적 의미를 배제하고자 노력하였다면, 『순자』의 천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순자』는 사람의 노력을 중시한 반면, 『논형』은 사람의 주관적 노력으로는 목적달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셋째, 『논형』의 상서재이설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자연현상으로서의 무위적 상서재이설이고, 나머지 하나는 천인감응론에서의 상서재이설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한왕조를 칭송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왕충의 의도가 엿보이며,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논형』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천인감응론에 대한 비판적 이론체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세 가지 특징을 통해 『논형』은 순자의 천인분리론을 계승하면서도 당시에 만연하였던 천인감응론의 허황함을 비판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으며, 이러한 비판적 사유를 잘 드러내주는 '천인불감응론'으로 『논형』의 천인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features of 'the Theory of a Distinction between Tian(天) and Ren(人)' in Lunheng and to discuss that it can be defined as 'the Theory of a Non-Mutual Resonance between Tian and Ren' by distinguishing it from 'the Theory of a Distinction between Tian and Ren' in Xunzi. It has three features. First, in Lunheng, it was argued that 'Tian' is a natural object formed by Qi without any personal God meaning or a volitional control, and it is 'the Theory of a Heterogeneity between Tian and Ren' in that there is no desire unlike human beings because there is no sense organ.
Second, it inherits 'the Theory of a Distinction between Tian and Ren' from Xunzi, but there is a difference. If in the Lunheng tried to exclude the personal God meaning from the Tian, the Tian of Xunzi is not like that. There is also a difference in that Xunzi emphasized human effort, while Wangchong(王充) thought that subjective effort of people could not guarantee the achievement of the goal.
Third, 'the Theory of Xiangrui(祥瑞) and Zaiyi(災異)' of Lunheng is classified into two. One is 'the Theory of Xiangrui and Zaiyi' that it occurs as a result of a change of Qi and appears to the rulers through chance, and the other is 'the Theory of Xiangrui and Zaiyi' in 'the Theory of a Mutual Resonance between Tian and Ren'. However, in the latter case, the intention to elevate his status by praising the Han dynasty is evident. If so, it is necessary to distinguish it from the critical theoretical system of 'the Theory of a Distinction between Tian and Ren', which is consistently shown in the Lunheng. Through the above three features, in Lunheng, it tried to criticize the unreliableness of 'the theory of a Mutual Resonance between Tian and Ren', which was prevalent at the time, while inheriting 'the theory of a Distinction between Tian and Ren' from Xunzi. In this respect, it was defined as 'the Theory of a Non-Mutual Resonance between Tian and 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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