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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철학 update

Journal for the Study Buddhist Philosophy

  • :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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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17)~1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8
불교철학
10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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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s the thought of the three bodies of Buddha in Wonhyo's commentaries on the Sutra of Golden Light (Suvarṇaprabhsttama- sūtra: hereafter, SGL). In his Commentaries on Awakening of Faith, Wonhyo evaluated this as a sutra that has the ultimate result of three bodies of the Buddha.
In his Commentaries on SGL, Wonhyo defined the type of the thought of three bodies of Buddha in SGL as that categorized according to the difference of the distinctive features of the three bodies. The three bodies are composed of the dharma body (法身, dharmakāya), response body (應身, Nirmāṇakāya), and transformation body (化身). Each has different distinctive features; the dharma body has the feature of “neither one nor many”, the response body has the feature of “one”, and the transformation body has the feature of “many.”
However, because the Sutra of Golden Light is focused heavily on the dharma body, the feature must be considered most important. Furthermore, the message that the feature of the dharma body in this sutra has is how can the it, the Buddha body of the inactive realm, participate in the phenomenal realm when the inactive body cannot raise any intention.
The SGL answers this question by suggesting a metaphor that is composed of four elements: sun, light of the sun, water, and reflection of the sun. The metaphor suggests that the light of the sun is completely inactive but is reflected on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the reflection of the sun is created on the water. This is how the response and transformation bodies are created by the dharma body. Here, the light of the sun is also inactive. However, that light works as a medium that intermediates between the inactive dharma body and active transformation body. This light represents the vow of Tathāgata.
In his Commentaries on the Sutra of Golden Light, Wonhyo developed this concept of the vow of Tathāgata into the Vow of the Source (本願, Skt. pūrva-praṇidhāna). The concept of this Vow of the Source further strengthened the connection between the inactive and phenomenal realms, that is, the dharma body and the transformation body, respectively.

KCI후보

저자 : 고영섭 ( Ko¸ Young-seop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간행물 : 불교철학 1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112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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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186)의 『승만경소』 집일본의 중심내용과 주요 특징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원효의 『승만경소』는 동아시아 주석가들에게 여러 차례 인용되었다. 하지만 그의 주석서는 현존하지 않아 그의 『승만경』 인식을 온전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의 응연이 성덕태자의 『승만경의소』(勝鬘經義疏)에 대해 주석한 그의 『승만경소상현기』(勝鬘經疏詳玄記)에 104(80)여회 7,000자를 인용하였다.
일찍이 이러한 인용문에 주목한 김상현의 집일본(1993)과 후쿠시 지닌의 편집본(2003)은 원효의 『승만경』 인식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들 두 본은 20년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출입이 있어 연구자들은 이들 두 본의 비교를 통해서 원효의 『승만경』 이해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원효의 『승만경소』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연구를 위해 이들 집일본과 편집본의 상호 교감 작업이 요청된다.
원효는 『승만경소』에서 경문의 섭수정법의 대전제 위에서 섭수와 정법의 동일시 내지 일체시 속에서 자신의 일승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육처의 대승 정법 섭수와 이승 선법 섭수에 대해 역설하면서 아라한이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붓다의 방편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원효는 아라한의 4가지 지혜에 대해 『대비바사론』을 원용하여 사성제에 대한 지혜와 견주고, 『유가사지론』을 원용하여 성자와 성자가 된 근거에 배대하여 2가지 죽음인 변역생사와 분단생사 중 분단생사로 보아 이승의 지혜라고 파악하였다. 그 결과 그는 아라한은 처음 귀의할 때나 구경에 가서나 열반사덕을 지닌 붓다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
원효는 아라한은 두려움이 있으며 이 육신을 가진 채 유여열반에 머물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일어나 대승에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육신조차 남기지 않은 무여열반에 머물 때가 아니라 육신을 남긴채 유여열반에 머무를 때가 대승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이것도 결국 붓다의 방편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원효는 주석서에서 『승만경』의 취지에 충실하면서도 이 경전의 본래 의미를 확장시켜 자신의 여래장 인식과 일승 이해에 기초한 불교관을 보여주고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main idea and features of Wonhyo's Commentaries on Śrīmālādevī Siṃhanāda Sūtra(hereafter CSSS). Wonhyo's CSSS has been widely quoted by east Asian commentators. However, because CSSS no longer exists, it is difficult to completely understand its philosophy. Nonetheless, CSSS was quoted 104 (80) times within 7,000 words in Ung-yun's Commentaries on Prince Sungduk's Annotation in Śrīmālādevī Siṃhanāda Sūtra in Japan.
Thanks to the scholars who worked on the quotations from CSSS, such as Sanghyun Kim (1993), and Fukushi Jinin (2003), these quotations were successfully collected, allowing people to study the philosophy of CSSS. The two versions of collected quotations from CSSS have a ten-year gap between them, and they are not entirely similar. However, these two versions are the only options for studying CSSS. Therefore, it is imperative to compare these two versions and revise them as necessary, to obtain better results in further studies.
In CSSS, Wonhyo states that the acceptance of sutras and correct dharma are identical and the same thing, and that one vehicle means the same. He understood that Theravada practitioners can also practice the dharma of Mahayana in their six methods of practice; practitioners of two vehicles can also practice the good dharma of Mahayana to attain Nirvāṇa. However, he added that their concept of Nirvāṇa is not as complete as that of the Mahayana, and is only a method of Buddhism for guiding people in the intermediate level.
When it comes to the four wisdoms of arhat, Wonhyo compared these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Mahāvibhāṣa Śāstra, that is, the wisdoms that can be attained as a result of understanding the Four Noble Truths. In terms of analyzing the status of arhat and the basis for their status, Wonhyo compared these with transformed Saṃsāra and fragmentary Saṃsāra, respectively; according to Yogācārabhūmi-Śāstra, their basis of being arhat is fragmentary Saṃsāra, which corresponds only to the wisdom of Theravada. As a result, arhats who attained Nirvāṇa are practitioners who still need to take refuge in Buddha, who attained all four Pāramitās of Nirvāṇa.
Wonhyo understood that arhats still have fear, and that they can enter the realm of Mahayana only when they are in the state of Nirvāṇa, while still having a body. In other words, in the state of Nirvāṇa, when they no longer have a body, they cannot enter Mahayana. He understood that this also is a method of Buddhism to guide people to complete enlightenment.
Wonhyo was true to the teachings of SSS in his CSSS; but, at the same time, he extended the teaching of SSS to the realm of Tathāgatagarbha and one vehicle under the guidance of his thorough understanding of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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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서연 ( Park¸ Seo-yeo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간행물 : 불교철학 1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14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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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전해지는 『화엄경문답』은 법장(法藏, 643~712)의 저술로 알려져 왔으나 헤이안 시대부터 위작설이 있었고 신라 찬술설이 제기되어 왔다. 최근에 『화엄경문답』이 신라 의상(義湘 혹은 義相, 625~702)이 소백산 추동에서 행한 『화엄경』 강의를 그의 제자인 지통(智通)이 집록한 문헌으로 결정되었다.
『화엄경문답』에는 일승연기, 십불十佛, 교화 등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있으며, 지엄(智儼, 602~668)의 『수현기』나 『공목장』 등의 내용도 인용되어 있으나 이들 지엄의 저술에 전적으로 의거하지 않고 『화엄경문답』만의 독자적인 해석을 보인다.
『화엄경문답』의 내용은 『총수록』과 균여 저술에 전하는 의상의 설과 맥락이 닿아 있다. 특히 『화엄경문답』의 제79문답은 의상의 『화엄경』 강의를 집록한 문헌인 『추혈문답』과 『도신장』에 공통적으로 있으며, 이는 의상계 문헌과 『화엄경문답』의 밀접한 관련성을 의미한다.
『일승법계도』와 『화엄경문답』에는 '수거일법진섭일체(隨擧一法盡攝一切)'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은 일승연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하나의 법을 듦에 따라 일체를 다 거두어들인다'라는 의미이다. 무측은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에 인용된 의상의 설에 보이는데, 『일승법계도』와 『화엄경문답』의 '수거일법진섭일체'가 이후 '무측(無側)'이라는 용어로 발전되었다고 생각된다.
의상의 『화엄경』에 대한 견해와 사상을 알 수 있게 하는 『화엄경문답』에 무주(無住)나 무이(無二) 등의 용어는 보이지만 의상 화엄사상의 주요 용어인 '무측'이란 말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화엄경문답』은 의상이 당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한 뒤의 화엄경관(華嚴經觀)을 보여주는 초기 문헌으로 추정된다.
현재 『화엄경문답』은 의상의 설로 인정되고 있지만, 법장의 영향뿐만 아니라 십불(十佛)에 대한 해석 등 한국의 문헌에 인용된 의상의 설과차이가 나는 부분은 『화엄경문답』의 신라 찬술과 관련하여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ntent and characteristics of the Huayanjing Catechism (華嚴經問答). This book has long been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Fajang (法藏), but recently, questions have arisen about its origin. Recently, the Huayanjing Catechism was believed as coming from Uisang's lecture notes on the Āvataṃsakasūtra which were compiled by his disciple Jitong (智通).
The Huayanjing Catechism includes content on various topics, including: the concept of Arising from causation of the “One Vehicle” (一乘緣起), “Ten Buddhas” (十佛), the subject of edification, and the object of edification. Ven. Jieom's writings are also cited in this book, but instead of relying entirely on Jieom's writings, Uisang had his own interpretation of the Huayanjing Catechism. The content of the Huayanjing Catechism is about the early Hwaeom thought of Uisang after he returned to Silla, and it is in line with the his ideas often cited in Korean literature.
Uisang's early writings use the phrase, “By mentioning one, all are included” (隨擧一法盡攝一切). The term “No-side” (無側) also appears in Uisang's theory cited in the Beopgyedigi-chongsulok. It is thought that the concept of “By mentioning one, all are included” that appeared in Uisang's earlier writings later developed into the term “No-side”.
In the Huayanjing Catechism, which presents the views and thoughts of Uisang, the terms “No-abiding (or Non-attachment)” (無住) and “Non-duality” (無二) also appear, but not the term ”No-side.“ Judging from this, it is presumed that the Huayanjing Catechism is an earlier document expressing Uisang's opinion of the Āvataṃsakasūtra after he finished his studies in Tang China and returned to Silla. I think that further research is needed on the content of the Huayanjing Catechism.

KCI후보

저자 : 최동순 ( Choi¸ Dong-soo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간행물 : 불교철학 1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7-18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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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승 의적은 의상(625-702)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7세기 말과 8세기 초에 활동한 그는 당에 유학한 학승이며 『법화경』, 『반야경』, 『열반경』 및 정토계 경전과 유식계의 논서에 해박하여 20여 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무량수경술의기』는 일본의 에타니 류카이가 복원하였고 비로소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책에 대한 서지적 혹은 역사적 측면에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본 논문 역시 의적의 정토사상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 논문에서 의적의 정토교 사상에 대하여 세 가지의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첫째, 원에 대한 의적의 설명은 구생과 회향이다. 발원을 대승보살 수행의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그 원은 아미타불의 본원이다. 이 본원은 법장비구 즉 보살의 단계에서 세웠다. 또 그 원을 세우는 작원의 삼심이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회향발원심 그리고 위로 깨달음을 구하는 지성심과 심심이다.
둘째, 신심에 대하여 의적은 대승보살의 활동 기반이라고 하였다. 신성취발심을 비롯하여 해행발심과 증발심의 삼심을 강조하였다. 특히 신성취를 위한 또 다른 세 가지의 마음을 닦는 동시에 네 가지 방편을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신심이란 상중하의 근기인 십신의 단계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계위에서도 반드시 갖춰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셋째, 念에 대한 의적의 설명은 수행이다. 십념에 대한 의적의 특징은 '나무아미타불' 육자일념이며 그것이 이어지는 연성염불을 가리킨다. 그 염불이 비록 하하품을 위한 이행도라 할지라도 보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입장이다. 전념에 의해 사마타와 비파사나로 이어지는 수증론은 세친과 담란 등으로부터 이어졌다. 의적은 그 영향을 받았다.
연종(정토종)은 극락왕생과 행도와 방편에 국한한다는 점에서 종파의 성격이 약하지만 훗날 천태종과 융합한 사례가 나타났다. 고려 초기에서 중국에 유학했던 의통은 천태정토교를 창시하여 융합을 논리적으로 완성하였다. 이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Uijuk(義寂), a Korean Silla monk, was active in the late 7th and early 8th centuries. He is one of the ten disciples of Buddhist monk Uisang (義湘, 625-702) and is a scholar who studied abroad in Tang Dynasty, China. He left many writings because he spent a lot of time in Saddharmapuṇḍarīka sūtra, Parinirvāna-sūtra, prajñāpāramitā, and Panmanggyeong. He also left several writings related to The Pureland doctrine.
Among them, Muryangsugyung-suluigi(無量壽經述義記, Account for Sukhāvatī-vyūha) was restored by Etani Ryukai of Japan, and research on this began. In Korea, research on this book has also begun bibliographically and historically. I also tried to study the Pureland doctrine of Uijuk in earnest.
In this paper, I identified three characteristics of Uijuk's Pureland idea. First, Uijuk's description of Praṇidhāna is Reborn in the PureLand and Ggive back. He analyzed Praṇidhāna from the standpoint of practicing the Mahayana Bodhisattva. That Praṇidhāna is the thing of Amitabha Buddha. The Praṇidhāna was established at the stage of the Fazang Bodhisattva. Three things are needed to implement this. They are Give back-mind, Sincere-mind, and Deep-mind.
Second, for śraddhā(信), Uijuk was said to be the basis of the activities of the Mahayana Bodhisattva. He emphasized three things, Jiexingfa-mind (至誠心) and Zengfa-mind(增發心), including Xinchengjiufa-mind(信成就發 心). In particular, he said that three other Minds must be practiced to achieve śraddhā. At the same time, he said he had to practice four other Upāya's. He pointed out that śraddhā must be equipped not only at the stage of Ten-śraddhā training but also at the stage above.
Third, Uijuk's explanation of Smṛti is practice. Uijuk referred to One-smṛti as Six-letters. In other words, when the six letters “nan·wu·a·mi·tuo·fo” are thinks once, it is One-smṛti. If the One-smṛti persists, it becomes continuous-smṛti(連聲念佛).
Pureland secter has a weak sectarian character in that it is mainly limited to faith, 'Reborn into the Pureland(往生)' and 'Worship(禮拜)' and 'Upāya(方便)'. However, later, there was a case in which Tientai Order and Pureland secter were harmonized. In the early Goryeo Dynasty, Uitong(義通, 927-988), who studied in China, founded TientaiPureland Order, and that is the harmony of the two sects. He logically completed the harmony of practice and faith. This had a great influence on East Asian Buddhism such as Korea, China, and Japan.

KCI후보

저자 : 강대현 ( Kang¸ Dae-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간행물 : 불교철학 1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3-21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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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태자별단공양의궤』는 북방 비사문천의 삼남 최승태자와 관련된 공양법을 적은 의궤이다. 2010년 일본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된 이 의궤는 1133년 필사된 것으로, 신라 현초의 저작으로 여겨지는 기록이 의궤의 오서에 기록되고 있다. 총 1,570여 자로 이루어진 이 의궤는 만다라 중앙의 10천왕, 제2원의 22왕, 최외원의 5장군 등을 배치한 후 화신의 모습을 나타낸 최승태자의 인상착의 및 소지하고 있는 법구 등을 통해 그의 위신력을 보여준다. 이어서 만다라 작단이 거행되는데, 높이 1척 너비 4주의 만다라를 건립하고 갖가지 장엄단을 갖춘 후 삼밀수행을 행한다. 의궤 부분의 마지막에는 중생의 현실적인 식재 및 증익을 도모한 최승태자 공양의 공덕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른바 오서에서 '보수사 현초가 이 의궤를 지었다.'라고 혹자가 전하는 내용과 함께 알 수 없는 저자에 의해 1133년에 이 의궤가 필사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본고에서는 『최승태자별단공양의궤』의 내용 분석보다는 원전의 판독에 중점을 두었으며, 형식적인 구성을 살펴보기 위해 不空譯, 『北方毘沙門多聞寶藏天王神妙陀羅尼別行儀軌』(T1250)를 비교하였다. 비록 이 의궤의 중요성이 가볍지는 않지만, 우선적으로 이 의궤의 찬술자 및 필사자에 대한 객관성 확보와 더불어 원문의 온전한 판독을 통한 완벽한 해석 등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This book[Choiseungtaejagongyanguigwe ] is a commentary that describes how to perform making offerings for crown prince Choiseung, the third son of Vaiśravaṇa. First introduced by a Japanese scholar in 2010, this book was transcribed in 1133, and considered to be the work of Hyeoncho, a Buddhist monk of Silla, recorded in the Oseo[This is an entry of the author's name, date of transcription, history, etc. at the end of the book.] of commentary. The book, consisting of a total of 1,570 characters, shows his prestige through the description and possessed dharma implements of crown prince Choiseung, who transformation body into an incarnation after deploying 10 deva-rāja in the center of maṇḍala, 22 kings in the second circle, and 5 generals in the outermost circle. Next, a maṇḍala with a height of 1 foot[roughly 23~30cm] and a width of 4 elbow[roughly 92~120cm] is built, various ornamentations are established, and then he carried out or perform in three mysteries. At the end of the book, the merit of crown prince Choiseung's contribution to the realistic prevention of disasters and calamities and increasing profits of the common people appears, and the so-called Oseo reveals that 'Someone said, this commentary was written by Hyeoncho' and transcribed by an unknown author in 1133. In this paper, the focus was on reading the scriptures rather than analyzing the contents of the book, and other book [不空譯, 『北方毘沙門多聞寶藏天王神妙陀羅尼別行儀軌』(T1250)] was compared to examine the formal composition. Although this commentary is very important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first of all, it is necessary to secure objectivity for the author and transcriber of this commentary, as well as a complete interpretation of the original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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