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용봉인문논총 update

Yongbong Journal of Humanities

  •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2713-8267
  • : 2713-8275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2)~6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72
용봉인문논총
60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산업 시설을 활용한 문화 공간의 성공 사례 연구 - 마르세유의 프리슈 라 벨드메 friche la Belle de Mai의 경우

저자 : 김태훈 ( Kim Tae-hoo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8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프리슈 라 벨드메는 1992년에 마르세유의 3구에 위치한 담배 공장이 문을 닫은 후 이 공간을 활용하여 생겨난 문화 공간으로 프랑스와 유럽의 많은 프리슈들 중에서도 매우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논문의 목적은 라 벨드메의 성공 요인들을 밝히는 것에 있다. 라 벨드메가 모범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첫째, 그 발생 과정이 매우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그 시작은 마르세유 시의 행정 당국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예술가 그리고 프리슈 연구가와 협업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다음으로 라 벨드메의 예술가들이 창조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술과 문화를 통한 도시 발전을 그들의 임무로 삼게 된다. 이를 통해 라 벨드메는 마르세유 문화 정책의 중심에 놓이게 되며 마르세유시가 도시 재생(외로메디테라네 사업, 유럽문화수도 등)을 수행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마지막으로 라 벨드메는 주변 지역과의 소통과 발전을 꾀하고 있다. 구역의 어린이,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한 어린이집이나 식당 운영 등의 사회 활동을 통해 구역 속의 닫힌 공간이 아니라 구역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처럼 라 벨드메는 마르세유의 대표적인 문화 창조 공간이자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대표적 문화 공간이다. 따라서 라 벨드메는 버려진 산업 시설을 활용하여 도시 재생을 위한 문화 공간을 창조하는데 있어 참조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La Friche la Belle de mai, created after the closure of the tobacco factory in Marseille's 3rd district in 1992, is one of the most exemplary cultural wastelands in France and in Europe. The reason why la Belle de mai has achieved exemplary success is, first of all, that its development process was done in a very democratic way. The beginning was led by the city of Marseille, but completed in collaboration with artists and researcher of wasteland. Second, The artists of la Belle de mai didn't just insist on freedom of creation. They wanted to participate in urban development through art and culture. That's why they created a Cultural Project for an Urban Project(PCPU). As a result, la Belle de mai will be at the center of Marseille's cultural policy and will mak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success of the Euromediterranee project and the European Capital of Culture 2013. Finally, la Belle de mai strives to communicate and develop with the surrounding dsitrict that has deteriorated since the factory closed. It opens a variety of spaces for children and young people in the district. In addition, it leads social action such as the opening of the creche and the restaurant, Grandes Tables. In this way, la Belle de mai is Marseille's representative cultural space that breathes with the city and the inhabitants of la Belle de Mai district. Therefore, la Belle de mai is a very important example that needs to be referred to in creating a cultural space for urban regeneration by utilizing industrial wastelands.

KCI등재

2환태평양 도시국가의 역사적 진화(1819년~2020년) - 싱가포르 항만을 중심으로

저자 : 백두주 ( Baek Doo-jo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79 (4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의 목적은 환태평양 '도시국가'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싱가포르 항만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국의 식민도시의 특성을 식민지 항만형성, 무역 발전과정과 특성을 통해 살펴보고, 이어 탈식민지화 이후 세계적 항만도시로의 성장에서 계획합리적 국가권력의 역할과 능력, 그리고 전략적 이익의 결합방식과 그 결과에 대해 분석했다.
연구결과, 제국의 싱가포르 '발견'에 따른 중계무역의 발전과정에서 항만은 제국의 이익을 위한 무역성장의 전제이자 결과였다. 또한 항만을 중심으로 한 무역성장의 기술적 요인은 증기선 출현과 수에즈 운하의 개통이었으며 세계적 산업수요 변동은 태평양 중심의 무역방향 전환에도 기여하면서 싱가포르를 대륙간 세계경제에 통합시켜갔다. 식민지 무역의 성장은 국가주도의 항만확장과 도시 팽창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탈식민지화 이후 싱가포르는 '축출국가'의 생존위기에 직면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전략적 프로젝트로서 '세계도시' 비전을 채택하여 추진했다. 컨테이너 항만에 대한 선도적인 투자는 계획합리적 국가의 전략적 실행능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그 결과 현재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연결성을 갖는 항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항만은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었으며 향후 국가의 미래 역시 항만의 기능과 역할이 어떤 방식으로 변형·진화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historical evolution process of the Trans-Pacific 'city-state' focusing on Singapore Port. To this e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lonial city of the empire are examined through colonial port formation,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 process of colonial trade for empire interests, and then the role and capability of plan-rational state power in the growth of a global port city after decolonization, and the method of combining strategic interests and the results were analyzed.
As a result of the study, in the course of the development of entreport trade following the 'discovery' of Singapore of the empire, the port was the premise and result of trade growth for the benefit of the empire. In addition, the technical factors of trade growth centering on ports were the advent of steamships and the opening of the Suez Canal. The growth of colonial trade acted as a factor in port enlargement led by the state and urban expansion. After decolonization, Singapore faced the crisis of survival of the 'expulsion nation', and in order to overcome this, the 'world city' vision was adopted and promoted as a national strategic project. Leading investment in container ports is evaluated as an example that shows the strategic execution capability of a plan-rational state. As a result, Singapore now has a port with the world's best global connectivity.
In the course of Singapore's historical evolution, ports have been an important strategic asset, and the future of Singapore will also be closely related to how the functions and roles of ports are transformed and evolved.

KCI등재

3'뿐이'의 형태-통사론 - 문법화 현상을 중심으로

저자 : 성미향 ( Sung Mi-hya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116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에서는 현대 국어에서 언중들 사이에 많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그 문법적 지위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뿐이'의 형태·통사론적 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역사 자료 말뭉치와 현대 국어 말뭉치를 두루 살펴봄으로써 '뿐이'에 나타나는 '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이것이 '뿐이'의 문법화 과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짚어보았다. 그 결과 '뿐'이 문법격 조사와 결합하여 일반 서술어와 함께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본고에서는 '뿐이'가 보조사 '뿐'과 문법격 조사 '이'의 통사적 구성에서 출발하여 문법화를 거쳐 형태적 구성으로 그 기능이 변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으로 주어 또는 보어 자리에만 놓일 수 있는 통사적 구성인 '뿐+이'와 달리, 형태적 구성으로 굳어져 부정의 표현과 함께 쓰이는 '뿐이'는 거의 모든 성분에 결합하여 '밖에'처럼 보조사로 기능하며, 문장에 실현된 서술어의 논항이 문장 내에 존재하지 않는, 선택된 초점에서 배제된 나머지 대안 집합(그 외의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와 더불어 같은 절 안에 부정의 표현과 함께 위치하는 '뿐이'는 통사적 구성의 '뿐이'와 별개로 통사적으로 부정 표현을 허가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부정극어로 볼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This study identifies the postposition i in ppuni and analyzes how i is related to the grammaticalization of ppuni by attempting to solve problems raised by the composition of ppuni from a new perspective. To this end, Korean language data for the period between the 15th and 20th centuries and the modern Korean corpus were examined.
Therefore, since the auxiliary particle ppun, which was once known to take only ida or anida as its predicate, can be combined with a grammatical case postposition, this study infers that the function of ppuni has changed. Initially, ppuni was the syntactic composition between the auxiliary postposition ppun and grammatical case postposition i. Subsequently, it underwent grammaticalization and finally became a morphologic composition. Due to such etymological characteristics, ppuni is different from ppun+i, which is a simple syntactic composition that can be placed only in the position of a subject or complement.
This study indicates that ppuni functions as an auxiliary postposition similar to bakke that can be combined with almost all other elements. The auxiliary postposition neun and man can serve the subjective or objective case on being placed in the relevant position. However, the subject or object supported by ppuni is not found in the relevant sentence. It is part of an alternative set (i.e., other things) that is excluded from the selected focus. In addition, this study highlights that ppuni can be considered a negative polarity item because it is used with a negative expression in the same clause, permitting such a negative expression syntactically.

KCI등재

4조선후기 무예별감의 활동과 인식

저자 : 송정란 ( Song Jeong-ra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144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무예별감은 훈련도감 소속의 군사로 조선후기 왕의 宿衛를 담당했다. 임진왜란 시기에 선조가 환도한 직후 만들어졌으나, 정식관청이 설치가 된 것은 1630년이다. 이후 17∼19세기 조선의 정치 변동에 따라 점차 규모를 확대해 왔다. 무예별감은 훈련도감 소속 군사 중에 무술에 재능이 있는 자들을 선발했다. 왕은 무예별감의 실력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상을 내렸다. 이와 더불어 試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자에게는 殿試에 응시할 자격까지 주었다. 왕은 무예별감의 실력을 평가하고, 실력이 뛰어난 자들에게는 여러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여러 고충으로 인해 무예별감 중에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을 막기 위해서 도망자를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기도 했다.
영조에게 무예별감은 王人이자 親兵이었다. 특히 영조는 이들을 궁궐의 친군으로 간주하면서 불미스러운 일로 무예별감의 파면을 청한 훈련대장을 파직하기도 했다. 정조 또한 공공연하게 무예별감을 왕인 혹은 친병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의 위상이 손상되는 것은 왕 혹은 나라의 체모가 손상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무예별감은 금전적인 여유를 통해 당시 서울의 유흥문화를 즐겼다. 이들은 음주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妓房에 출입하고 妓夫가 되었고, 놀음판을 열기도 했다. 정조는 이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했지만, 무예별감의 기방출입을 막지는 못했다. 왕인이면서 동시에 왈짜로 회자되는 무예별감은 조선후기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Muyebyeolgam(武藝別監) which was the military in Hunryondogam(訓鍊都監) was in charge of keeping the pala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had been established right after King Seonjo returned to the capital in the Imjin War, however, its official government office was established in 1630. Since then, its size was expanded according to the political changes in the Joseon dynasty from 17th to 19th century. Muyebyeolgam(武藝別監) selected talents good at martial arts among the soldiers in Hunryondogam(訓鍊都監). Kings evaluated the performances of Muyebyeolgam(武藝別監) regularly and rewarded them. In addition, those who performed well in the shooting got the qualification to apply the state exam. Kings evaluated the performances of Muyebyeolgam(武藝別監) and rewarded many benefits to those with higher performances. However, some ran away from Muyebyeolgam(武藝別監) due to multiple difficulties. To prevent this, the law was enacted to punish the fugitives.
For King Youngjo and King Jeongjo, Muyebyeolgam(武藝別監) was the royal military. In particular, King Youngjo considered Muyebyeolgam(武藝別監) as the royal military and dismissed the general of the training who had requested expelling Muyebyeolgam(武藝別監) with shameful matters. Also, King Jeongjo mentioned Muyebyeolgam(武藝別監) in public as the royal military considering the damage of their position as the damage of the prestige of King or the country.
Muyebyeolgam(武藝別監) enjoyed the entertainment culture in Seoul at that times. Hence, they sometimes showed the violence after drinking alcohol or became sweetback entering Gisaeng's houses, and held Norum. King Jeongjo punished these strictlym but could not block their entering Gisaeng's houses. Muyebyeolgam(武藝別監) called as the royal guard and Wal-jja(曰者) showed the characteristics of Seoul in the late Joseon.

KCI등재

5임진왜란 속에서 작동한 전통적 공동체의 특징 - <선양정 진사일기>를 대상으로

저자 : 신해진 ( Shin Hae-ji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5-171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현시대에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해 전통사회에서 작동한 공동체의 실상을 파악하고자 실기문학에 주목하였다. 이에, 정희맹의 <선양정 진사일기>를 대상으로 문집이 간행된 전후 상황과 일기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속에서 전통적 공동체가 작동되는 양상과 그 특징을 고찰하였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선양정 진사일기>가 수록된 ≪선양정문집≫은 1875년 초간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그 이전에 <선양정 진사일기>의 일부분이 ≪수성록(守城錄)≫에 포함되어 1753년에 개간된 바 있다. ≪수성록≫ 개간에 참여한 이들은 임진왜란 때 창의한 의병 55인의 후손이었다. 그 후기(後記)에 따라 선양정이 손수 쓴 일기를 근간으로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로써 선양정의 일기는 개인적 체험의 기록뿐만 아니라 동맹체가 작동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선양정 진사일기>는 영광에 있던 향교의 유림을 중심으로 한 의병의 모병 및 군량미의 조달 과정 등이 날짜별로 기술되어 있고, 이때 정희맹이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선양정 진사일기>에 기록된 동맹체는 당시 영광군수가 공석인 상황에서 결속된 것으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들을 결속하게 한 심층적 동인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압해정씨와 혼인 관계로 맺어진 이가 55명 중 42명이나 되는 것을 통하여 그 요인이 바로 혼반 관계에 기반한 연결망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동맹체는 고을 수령의 부재로 인한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작동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사례를 비추어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기문학 속에 담긴 전통적 공동체의 자화상을 통해 우리가 속한 사회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되짚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factual records literature(實記文學) to grasp the reality of communities worked in traditional society in order to understand communities that reveal various aspects in the present era. Accordingly, the situation before and after the collection of writings and the contents of the diary were analyzed for Jeong Hee-maeng(丁希孟)'s < Seonyangjeong Jinsa Diary(善養亭辰巳日記) >. In addition, during the Imjin War(壬辰倭亂), the traditional community was worked and its characteristics were reviewed, and discussions were developed by presenting future tasks.
The ≪Seonyangjeongmunjip≫, which contains the < Seonyangjeong Jinsa Diary >, was published in 1875 as a first edition, and before that, a part of the < Seonyangjeong Jinsa Diary > was included in the ≪Suseongrok(守城錄)≫ and was published in 1753.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publication of ≪Suseongrok≫ were descendants of 55 righteous army soldiers who were creative during the Imjin War. According to the postscript, it can be seen that Seonyangjeong's diary was based on a handwritten diary, and this shows that the alliance as well as personal experience records. < Seonyangjeong Jinsa Diary > describes the recruitment of righteous army soldiers and the procurement process of military rice centered on the Confucian scholars in Yeonggwang(靈光), and at this time, Jeong Hee-maeng was in a key position.
The alliance recorded in the < Seonyangjeong Jinsa Diary > was united when the governor of Yeonggwang-gun(靈光郡) was vacant at the time, and it was identified where the in-depth driving force that united them in the special situation of war was.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42 out of 55 people had a marriage relationship(婚班) with Abhae Jeongssi(押海丁氏), indicating that the factor lies in the network based on the marriage relationship. This alliance is characterized by a temporary working to protect its own hometown from the danger of war due to the absence of the head of the town. In light of these cases, the task given to us is to broaden our understanding of the social situation we belong to through self-portrait of the traditional community contained in factual records literature and to look back in various perspectives and ways to solve the problems we face.

KCI등재

6스티글레르의 기술 비판

저자 : 유재홍 ( Yoo Jai-h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209 (3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스티글레르에게 기술은 인간동물을 구성하는 특성의 전부가 된다. 인간은 곧 기술적 존재이다. 기술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을 변경시킬 정도로 절대적인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물론 기술 환경의 가속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이 체계가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이윤의 극대화는 기술혁신을 의미하고, 그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늘날의 데이터 경제이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시대는 인류세라는 암울한 상황과 맞물려 전 세계에 재앙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류세는 종말을 향한 엔트로피 양의 보편적인 증가를 의미한다. 스티글레르에 따르면 인류세는 세 가지의 층위 ―생물권(biosphere), 생물다양성(biodiversite)과 디지털 기술 속의 인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사유(지식)에 의한 새로운 사회 모형의 제시가 이처럼 요청된 적이 없었다. 스티글레르는 지식의 외재화를 보편화하는 디지털 기술에 전례 없는 파르마콘적 특징 -치료성과 해악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 에너지의 조작을 통해 소비자본주의가 생산해왔던 충동적이고 규격화된 인간은 디지털 기술 시대에 이르러서 자신의 의식의 흐름 ―파지(retention), 주의력, 예지(protention) ―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유의 존재에서 '바보짓'(betise)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스티글레르가 '디스럽션'(disruption)과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tion)라고 명명하는 기술의 해악성은 개인과 집단이 고유한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알고리즘 거버넌스는 경제성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어렵지 않게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기술의 파르마콘적 특성에 대항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명해야 한다. 이는 오직 되찾은 지성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힘은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산업적 모형의 구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유의 힘은 '방향을 전환하는 힘'(bifurcation)이다. 사유는 예상 밖의 갈래 길을 만드는 능력이다. 부엔트로피를 생산하는 이러한 능력들의 총체만이 새로운 기술 환경과 생태적 재앙에 맞설 수 있는 길이다.


Stiegler places technics at the heart of his thinking. He underlines that technics is a pharmakon, that is, it contains both toxic and curative potential. The era of digital technologies coincides with that of the Anthropocene. The biosphere and biodiversity and human thought are threatened by entropic effects. In disruption caused by the digital technology, the social organizations are dismantled, and the individuals are out of the processes of collective individuation that form the social systems. With the reign of the automated algorithm, man is in danger of being deprived of his knowledge (know-how, savoir-vivre, savoir-concevoir).
The capitalist model of consumption in the digital milieu regulates the individual and collective modes of existence at every level on life's way. To be more precise, this regulation destroys the volition of individuals and groups. It is almost certain that the reconstitution of a long-term horizon is compromised in such a world in advance.
How to escape from the disorders generated by the effects of digital technology? Stiegler tells us that we must reclaim the power of intellectual and spiritual thought. He also tells us that the life of the mind must be resurrected in the era of the Antropocene. Intellectual deproletarianization of the human mind. will make it possible to fight against the entropic effects of massive standardization. and also to recover his creativity, to restore meaning and hope in his existence. Intelligence is therefore what elevates us above our own stupidity.
It will be necessary to put the algorithm at the service of disautomation, that is, at the service of intelligence, With it, man will be able to acquire the ability to defer the law of entropy. To produce negentropy is to produce diversification and novelty. The negentropic way will make it possible to eliminate the disorders caused by the disruption and to overcome the ecological catastrophe announced by the Anthropocene.

KCI등재

7이노우에 엔료는 왜 불교개량과 철학대중화의 기치를 동시에 내걸었는가?

저자 : 이혜경 ( Yi Hye-gyu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45 (3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호국애리'(護國愛理)로 표현되는 애국과 진리존중의 동시 추구 구호로 유명한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를 다뤘다. 그는 불교의 근대화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철학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논문은 그를 설명하는 호국애리, 철학의 대중화, 불교개량 등이 어떤 논리로 공존하는 지를 탐구했다. 그리하여 차례로, 그가 의미하는 철학이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순정철학'이라는 것, 독일의 관념론에서 발견한 순정철학의 모델을 불교 안에서 적극적으로 찾았다는 것, 근대 이전 서양에서 기독교가 윤리와 정치를 지도했던 그 역할을 불교가 하기를 바랐다는 것, 그리고 그가 개진하는 순정철학의 구체적 내용인 '현상즉실재론'(現象卽實在論)에 의해 보편적 진리의 추구와 특수한 애국을 공존시켰다는 점을 논했다. 결론적으로 종교로서 불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며, 철학은 불교의 근대성과 일본의 문명성, 그리고 애국의 진리성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장치였음을 논했다.


This paper deals with Enryo Inoue, famous for his simultaneous pursuit of patriotism and respect for truth expressed under the slogan of “Protection of Country and Love of Truth.” While engaged in modernization of Buddhism, he advocated the popularization of philosophy as a banner. This paper explored the logic that makes his various arguments coexit, such as “Protection of Country and Love of Truth,” popularization of philosophy, and improvement of Buddhism. This paper discussed followings in turn; that the philosophy he called genuine philosophy means metaphysics, that he actively tried to find genuine philosophy he found in German idealism in Buddhism, that he tried to make Buddhism play the same role in Japan as Christianity did in leading ethics and politics in pre-modern West, and that the pursuit of universal truth and special patriotism coexist by the “phenomenon-as-being theory” that is the concrete content of the genuine philosophy. In conclusion, it was discussed that Buddhism as a religion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him, and philosophy was an important device to explain the modernity of Buddhism and Japanese civilization.

KCI등재

8김수영 시에 표상한 생활세계와 시적 주체의 객체성 - 「공자의 생활난」을 중심으로

저자 : 전동진 ( Jeon Dong-ji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73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생활세계의 의미를 위상적인 측면에서 살폈다. 이를 토대로 김수영의 시가 구현하고 있는 '생활세계'를 시적 주체와 의미의 지향성 측면에서 탐색했다. 생활세계와 일상성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본격화했던 사람은 후설과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들이 상상했던 생활세계는 우주시대, 사이버 시대로 접어들면서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현실의 단순한 확장을 넘어선다. 다채로운 연결을 통해, 다양한 위상에서 새롭게 열리고 있는 생활세계에 대한 언어적 대응이 절실하다.
보이는 생활세계는 생활세계의 극히 일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생활세계에서도 능동적으로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주체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향성이 요구된다. 김수영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는 태도의 변모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시적 주체를 만날 수 있다. 김수영 시의 주체는 주체의 객관성과 객체의 주관성이라는 역설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역동성 발산한다.
후설이나 비트겐슈타인이 탐색했던 생활세계나 일상성의 세계는 기존의 철학이 추구했던 관념적 완전성에 반하는 반철학적인 것이었다. 김수영 시인이 견지했던 '반시'는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반철학을 지향하는 철학의 언어와 반시를 지향하는 문학의 언어가 능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세계적인 팬데믹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은 새로운 기존과는 다른 생활세계를 예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언어적 바탕을 마련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meaning of the life world from a topological point of view. Based on this, the 'living world' embodied in Kim Soo-young's poetry was explored in terms of poetic subject and directionality of meaning. It was Husserl and Wittgenstein who started philosophical thinking about the world of life and everyday life in earnest. The world they imagined is becoming a reality as they enter the space age and cyber age. This goes beyond a simple extension of reality. Through various connections, a linguistic response to the newly opened life world in various phases is urgently needed.
The visible life-world is a very small part of the life-world. In order to actively create meaning in the invisible world of life, a different orientation is required for the subject. In Kim Soo-young's poem “The Difficulties of Confucius' Life,” we can meet the poetic subject who is reborn through a change of attitude. The subject of Kim's poetry radiates new dynamism through the paradoxical interaction of the subject's objectivity and the object's subjectivity.
The world of life or everyday life that Husserl and Wittgenstein explored was anti-philosophical, contrary to the idealistic perfection pursued by existing philosophy. Poet Kim Soo-young's 'ban poetry' is in the same vein. It is necessary to provide a venue where the language of philosophy, which is oriented towards anti-philosophy, and the language of literature, which is oriented to anti-poetry, can actively meet. In a society led by science and technology, modern people who are experiencing a global pandemic must prepare for a new and different world of life. It is necessary to prepare a linguistic foundation to meet these demands in earnest.

KCI등재

9장석영의 러시아 체험을 통해 본 근대기 중화 사상의 일면

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5-302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회당 장석영의 『요좌기행』은 한문으로 작성된 20세기 북만주 및 러시아 기행문으로, 당대 유림의 대외인식과 현지의 실정을 매우 잘 담고 있는 유의미한 기록이자 한국 한문학의 영토를 넓힌 문학 작품이다. 당시 62세의 노유였던 그는 1912년 음력 1월, 맹동의 추위를 뚫고 만주와 러시아로 향하여 약 100여 일 동안 15,000리를 돌아본다. 이민족의 지배를 피하고 유도의 회복을 위해 새로운 이거지를 모색하려던 그는 북만주를 넘어 지금의 극동 러시아까지 당도했다. 그곳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러시아의 문화와 재러 한인들의 삶은 그에게 대단히 큰 인상을 남겼다. 기차에서 만난 러시아 순검을 통해 '인(仁)'의 보편성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문화는 그에게 상당한 당혹감을 주며,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이질감을 갖게 했다. 또한 '한인 독립운동 단체의 분열과 갈등·러시아 정교회를 긍정하고 이를 받아들인 한인 사회, 또한 정처 없이 각지를 떠도는 한인 청년들의 모습과 유교 전통이 붕괴'되는 한인 사회의 실황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결국 정통 성리학자였던 그에게, 러시아에 산다는 것은 곧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은 채 “아호(俄胡)”가 되는 것으로 각인된다. 즉 직접 해외로 떠날 수 있었던 근대 유림 장석영에게 과거의 구제(舊制)와 중화의 전통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자기 정체성'이 되면서 반드시 보수해야 할 스스로의 유산이자 전통이라는 것이 한층 확고해진 국면을 보였다.


Hoedang Jang Seok-young's 『Yojoagihaeng』, is the travel record of the 20th century to North Manchuria and Russia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This is a significant record of the external perception and local situation of Confucian intellectuals, and a literary work that expanded the territory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As a 62-year-old man at the time, he traveled 5,890km in a period of about 100 days to Manchuria and Russia in January 1912. The purpose of the trip was to leave Korea and move to a new place, but Russian culture and the lives of Korean residents in the Far East shocked him greatly. This is because there were many differences between Russian culture and Confucian traditions, and the lives of Koreans were also assimilated into Russia. He was also very disappointed by the division and conflict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groups. Eventually, he judged that Russia was not a new place of life, and that their culture was collided with Korean traditions. In other words, the Sinocentrism inside him was being further strengthened. Sinocentrism was recognized as an internal tradition, not an external one, and his perception later led to the Confucius religious movement.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