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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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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8)~28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13
국학연구론총
28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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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시에 나타난 자아(自我)와 외물(外物)

저자 : 李九義 ( Lee Gu-eui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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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45~1609)의 시에 나타난 자아와 외물의 만남을 통하여 그의 지향의식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집필 되었다.
그의 삶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학문(學問) 수학기(修學期)이다. 제2기는 32살(1576)에서 48살(1592)까지로 평안도(平安道) 강동현(江東縣) 유배기(流配期)이다. 제3기는 그의 나이 48살 되던 1592년 5월부터 53살 되던 1597년 5월까지. 해배(解配)와 관직(官職) 생활기이다. 제4기 그의 나이 59살(1603) 때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영천(永川) 지산촌(芝山村)으로 이사하여 우거한 시기이다.
외물(外物)을 통한 그의 지향(志向)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연을 통한 고고한 인격체를 지향하였다. 지산(芝山)이 인공(人工)이 아닌 자연(自然)을 지향하였다. 그가 맑고도 깨끗한 몸과 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극기복례(克己復禮)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열린 세계를 향한 자유영혼을 지향하였다. 그의 정신은 옹졸하지 않았고 생각이 밝으면서 긍정적이었다. 그의 지향(志向)은 외물을 부리는 역물적(役物的) 존재에 있었다.
셋째 절망 속에서 희망을 지향(志向)하였다. 그가 32살부터 48살까지 평안도 강동(江東)에 유배 생활을 할 때 상심하고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넷째 외물과의 화합을 통한 상생(相生)을 지향하였다. 그의 정신세계는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있다. 그의 정신의 기반은 인문주의(人文主義)에 있었다.


This paper was written with the aim of examining how his intentional consciousness was expressed through the encounter between the self and external entities in the poems of Jisan(芝山) Jo Ho-Ik(曺好益: 1545-1609). We conclude by summarizing the above argument.
His life can be divided into four major stages. The first period is the academic and learning stage. The second period is the exile period from the age of 32(1576) to the age of 48(1592) in Gangdong-hyeon, Pyeongan-do. The third period was from May 1592, when he was 48, to May, 1597, when he was 53. It is the period of life released from exile and taking government office. The fourth period continues from the age of 59(1603), when he moved to Jisan Village in Yeongcheon and lived there until his death.
His intention through external entities can be summarized in the following four points. First, it aimed for a noble personality through nature. Jisan was oriented toward nature, not man-made reality. He was able to have a pure body and mind because he himself practiced self-denial.
Second, it aimed for a free spirit towards an open world. His spirit was not petty, he was bright-minded and positive. His intention was to have a reciprocal existence that could manipulate external entities.
Third, in the midst of despair, he held onto hope. From the age of 32 to 48, when he was exiled in Gangdong, Pyongan Province, he was heartbroken and depressed, but he did not give up hope.
Finally, it aimed at coexistence through harmony with the outside world. In his mental world, the self and the external are not separated from each other, but are in harmony. Humanism was the basis of his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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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산(芝山) 도학시(道學詩)에 나타난 일리론(一理論)과 공간(空間)의 관계(關係)

저자 : 신태수 ( Shin Tae Soo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5-7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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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山 道學詩에는 一理論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삼라만상의 이치는 하나이다'라는 명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일리론을 유발하는 동인은 관조적 천품과 주리적 학풍과 불가항력적 질곡이다. 불가항력적 질곡은 지산에게 인간의 주체적 위상을 부여하는 관조적 천품과 주리적 학풍의 경우와는 다르다. 지산에게 인간의 주체적 위상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주체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리론을 장착해야 하는 바이니, 불가항력적 질곡의 반작용으로 일리론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일리론에 입각한 공간 대응 방법은 격물과 치지의 구현 방법과 우주 善意志의 체인 방법과 부정적 요소의 극복 방법이고, 그 결과는 '화자 그 자신의 변화를 통한 自家 治癒 行爲'이다. 도학시의 공간이 대부분 유배지이어서 자가 치유 행위가 불가능할 것 같으나, 心與理一이 공간 대응 방법을 지배하면서 자가 치유 행위가 가능해졌다. 요컨대, 공간 대응 방법의 도학적 특징이 만만치 않다. 故鄕을 지순의 공간으로 形象化하게 한다는 점과 分殊의 공간을 거쳐 理一의 공간을 지향하게 한다는 점이 도학적 특징이다.


Jisan Jo Ho-Sik reflected his perception,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you and me and between in and outside,” in his Dohak poems. One can call this perception Il-Ri Ron. Since Il-Ri Ron is reflected in Dohak poems, it is necessary to focus on Il-Ri Ron to deal with Dohak poems. The supporting elements of Il-Ri Ron include contemplative Cheonpum, Ju-Ri academic tradition, and uncontrollable fetters. Any of these elements are expressed through space, and the speaker makes sensitive reactions to such a space. There are three ways to react to a space: embodiment of Indo and Cheondo, profound recognition of cosmic Seon will, and conquest of negative elements. Whatever methods of reacting to a space are employed, a space in Dohak poems becomes a space for self-healing for the speaker. It is surprising since most spaces in Dohak poems are places of exile. As the speaker's independent awareness and Simhak-based premise toward self-complacency or Simyeoriil dominate his methods of reacting to a space, places of exile are converted into spaces of self-healing. These discussions helped to sort out the Dohak characteristics of methods of reacting to a space. Dohak characteristics include the embodiment of a hometown into a space of supreme gentleness and the orientation toward the space of Ri-Il through the space of Bu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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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산 조호익의 시대와 운명(Ⅰ) - 전가사변과 인생 변전(變轉)을 중심으로-

저자 : 박순교 ( Park Soon-kyo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4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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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은 경상 창원에서 출생하여, 조선 6도를 유랑하였고, 경상 영천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유학자였다. 본문은 조호익과 관련하여 그간 논구되지 않은 제반 문제를 추적하여 정리하였고, 궁구되지 않은 의문점들을 과제로 제기하였다. 먼저, 본문은 그의 친족, 조모, 모친의 계통을 추적했다.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문과 급 제자를 배출한 창원 유일의 명문 사족이었다. 그의 조모는 퇴계와 4촌, 그의 어머니는 퇴계와 7촌이었다. 다음, 본문은 조호익의 師承 관계를 추적하였다. 주박과, 전가사변의 핵심 최황은 소과 동방입격자였다. 조호익은 퇴계의 지친이자 애제자였다. 그의 文名과 달리 그의 小科 입격은 文證되지 않았다. 君ㆍ師ㆍ父의 연이은 죽음, 모친의 죽음, 전가사변이 그 원인이라 보인다. 셋째, 조호익의 全家徙邊에 대해, 본문은 전가사변의 성격, 경위, 주체, 관련 인물들의 동태, 선례와 죄목 구성, 최황의 출자와 門地, 행적 등을 면밀히 추적했다. 이는 조선 사족에게는 미증유의 드문 경우였다. 그 이면에는 중앙의 특명, 최황의 독특한 출자, 학맥과 사승에 기인한 기질, 광범위한 역학 관계, 대외 정세 등이 작용했다. 전가사변의 죄안과 행형 역시 1년에 걸쳐 생성된 것이었다. 넷째, 17년의 謫居 기간의 삶과 학문을 다각도로 살폈다. 조호익은 형과, 동생, 부인을 차례로 잃었다. 조호익의 처절한 심경은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었다. 조호익의 억울함이 거론되었지만, 선조는 그를 사면하지 않았다. 선조가 조호익을 끝내 사면하지 않고 '關西의 공자'라는 어필을 내린 그 해에, 전가사변의 주범이라 일컬어진 최황은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최황과 조호익, 대사헌 임명과 관서부자 어필 하사를 놓고 줄기찬 대비와 함의의 모색이 그간 전무했다. 그 해에 기축옥사가 일어난 점에서, 조호익의 사면 불허는 선조의 경상 사족에 대한 심리적 견제와도 연결될 여지를 남긴다. 본문을 통해 조호익의 삶에 대한 통찰은 한결 돋우어졌고, 이해의 폭이 깊어졌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의 운명은 아픔과 고난으로 물들었다. 조호익은 필생의 집념으로 학문과, 저술, 강학에 몰두했다. 불행한 시대 한 지식인의 고단한 운명이 던지는 울림은, 마찬가지로 고난과 시련, 시대와 운명에 직면한 현세에도 뜻 깊다고 할 것이다.


Jo Ho-Ik(曺好益), who was born in Changwon, Gyeongsang, wandered around the 6 provinces of Joseon(朝鮮), and was an unfortunate Confucian scholar, who died in Yeongcheon, Gyeongsang. This article traced various issues that have not been discussed regarding Jo Ho-Ik(曺好益). First, This article traced his family lineage through his grandparents and mother. His family was a noble family, which had produced the state exam(科擧) passers for four generations. Also, his maternal grandmother was a cousin to Yi Hwang(李滉), and his mother was an aunt to Yi Hwang(李滉). Next, the relationship between Jo Ho-Ik and his teachers was traced. As a result, Joo Bak(周博), and Choi Hwang[崔滉, the main culprit of forced relocation of the entire family(全家徙邊)], were classmates passing a preliminary national examination(小科). Contrary to his literary name, his entry into the preliminary national examination(小科) was not written. The successive deaths of king, masters, father(君·師·父), and mother, and the forced migration incident seem to be the cause. Third, regarding Jo Ho-Ik(曺好益)'s entire family's forced relocation, this text closely traced the nature of the case, circumstances, the main culprit, the dynamics of related people, precedents, and the nature of the crimes. This was an unprecedented and rare case involving a scholar family of Joseon(朝鮮). Fourth, the life and study of the 17-year period were examined from various angles. Jo Ho-Ik(曺好益) lost his older brother, his younger brother, and his wife one after another. Jo Ho-Ik(曺好益)'s desperate heart was confirmed in several places. In the same year when King Seonjo did not pardon Jo Ho-ik, he appointed Choi Hwang to Daesaheon(대사헌), who had been said to be the culp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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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상의 시간과 감성의 시간을 통한 관계 맺음의 의미 - 조호익(曺好益)의 서간(書簡)과 제문(祭文)을 중심으로

저자 : 한의숭 ( Han Eui-sung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1-16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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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문인들의 문집 속에는 한 사람의 고유한 정체가 녹아들어 있다. 당대를 살아간 선비의 지향을 문집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주변 문인과의 교유는 관계 맺음의 소통 방식으로 주목을 요하는 부분에 해당된다. 즉, 스승 및 벗들과 일상 속에서 교감하면서 공유했던 의식의 교통을 통해 상호 간의 관계 맺음을 확인한 결과에 해당되는 것이다. 관계 맺음의 대표적 양식으로 서간과 제문을 꼽을 수 있다. 일상에서 이루어진 소통과 공감, 위로와 연대의 증거로 이해되는 해당 글들은 한 사람의 진경을 마주하는 도구이자 통로로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전통시대 서간과 제문은 가족 및 문인들과 교유하는 일상적 도구로 기능했다. 즉, 특별한 대상이 아닌 일상에 필요한 지극히 기능적인 도구로 존재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것 하나가 수십 년의 시간에 걸쳐 쌓이게 되면 특별한 무엇인가로 변화하게 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서간은 주고받음이 쌓여서 관계의 진전을 이뤄나가는 소통의 도구이자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거나 환기시키는 기능으로 관계 맺음에 활용되었다. 반면 제문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 행위의 형식으로 기능 하지만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새로운 연대를 확인하고 제안, 촉발시키는 역동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상의 도구인 서간과 제문은 평범한 일상적 행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단지 의례적 형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일상이 쌓여 만들어 내는 관계의 깊이는 정작 일상이 아닌 위기와 고난의 상황 속에서 증명되며, 서간과 제문이라는 일상의 언어와 행위가 이를 확인해 준다. 혈연을 벗어났을 때, 사람들 간의 관계는 개인들 간의 문제로 위치된다. 그럴 경우 개인의 관계는 무엇으로 연결되고 지속되고 공고해 질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일상의 관계에서 시작될 것이며 언어로 인해 연결과 지속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관계 맺음은 특별하고 운명적인 계기가 아닌 일상의 우연이 축적되면서 만들어 낸 시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e unique identity of a person is incorporated into the writings of writers of the traditional era. You can get a glimpse of the orientation of the scholar who lived in the time through the collection of writings, and in particular, communication with nearby writers corresponds to a part that requires attention as a communication method of establishing relationships. In other words, it corresponds to the result of confirming the establishment of a mutual relationship through the transportation of consciousness shared while interacting with teachers and friends in daily life. Books and writings can be cited as representative forms of relationship establishment. The writings, which are understood as evidence of communication, empathy, comfort, and solidarity in everyday life, reveal their existence as tools and passages facing a person's true scenery.
In the traditional era, letters and rituals functioned as a daily tool for socializing with family and writers. In other words, it existed as an extremely functional tool necessary for everyday life, not a special object. However, when one of those ordinary daily lives accumulates over decades, it turns into something special and has meaning. Letters were used to establish relationships as a tool of communication that builds up exchanges and exchanges to make progress in relationships and as a function to restore or evoke the disconnected relationship. On the other hand, Jemun functions as a form of mourning for the dead, but it was used as a dynamic to identify, propose, and trigger new solidarity among the survivors.
In this respect, epistle and ritual, which are tools of everyday life, are not just ceremonial forms as means of expressing ordinary daily actions. The depth of the relationship created by the accumulation of daily life is proved in situations of crisis and hardship, not in everyday life, and the daily language and actions of writing and offering confirm this. When out of blood ties,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are positioned as problems between individuals. In that case, what can individual relationships lead to, persist, and solidify? It will begin in everyday relationships and connections and continuation can be established through language. In this respect, it is worth noting that the time created by the accumulation of daily coincidences, not special and fateful opportunities, occupies an important 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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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감정 잉여의 시대, 사랑의 숭고미 탐구 - 이승우, 「마음의 부력」(2021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 분석 -

저자 : 안미영 ( Ahn Mi-young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8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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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잉여의 시대,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2021)은 작품의 내적 형상화 뿐 아니라 동시대인의 정서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공감력을 확보하고 있다. 사건 없는 시대, 마음이 사건을 만들어 내는 현대인의 감정잉여의 풍경을 포착한 것이다. 그는 우리시대 사람들의 '마음'의 '부력(浮力)'을 '사랑'이라는 감정의 숭고미 실현을 통해 고양시키고 있다. 사랑은 빈번하게 어긋날 뿐 아니라 잉여를 초래하는 감정이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의 잉여분으로 자기를 응시한다. 그 결과 둘째아들은 질투와 같이 외부에 대한 감정의 투사 아니라 내부의 성찰을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실현했으며, 어머니는 둘째아들과 더불어 큰아들의 부재 속에서도 현존하는 사랑을 고통으로 감내한다. 감정잉여의 시대, 잉여의 감정을 대상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자신에서 투사하여 형제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지닐 수 있는 숭고한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In the era of emotional excess, Lee Seung-Woo's "Boosting of the Heart" (2021)secures the empathy of the times in that it contains not only the inner shape of the work but also the emotional changes of contemporaries. In the era without events, it captures the landscape of modern people's emotional surplus in which the mind creates events. He is raising the "boosting power" of the "heart" of our time through the realization of the sublime of the emotion of "love." Love is an emotion that not only frequently contradicts but also causes surplus. All the characters in the work stare at themselves with the surplus of the emotion of love. As a result, the second son realized the aesthetics of shame through internal reflection, not a projection of feelings toward the outside like jealousy, and the mother, along with the second son, tolerates the existing love in the absence of the eldest son. In the era of emotional surplus, surplus emotions are not obsessed with objects, but projected from oneself to realize the noble value that brotherly love and parental love can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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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남 지역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

저자 : 김재웅 ( Kim Jae-woong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1-21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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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지역에 유통된 필사본 <춘향전> 12종은 한시로 기록된 유진한의 <춘향가>를 제외하면 국문본만 존재한다. 호남지역 <춘향전> 필사자들은 <별춘향전> 계열의 필사본을 대상으로 1754-1932년까지 필사의 전통을 지속하고 있다. 필사자의 성별은 여성(3종)보다 남성(8종)이 풍부하다. <춘향전>은 농한기에 집중적으로 필사되었다. 농한기에는 <춘향전>을 필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춘향전> 필사자는 양반, 선비집안의 여성, 중인, 농민 등과 같이 다양한 신분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은 호남 지역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첫째, 호남 지역 <춘향전> 필사자는 장면 중심의 서사 전개와 공연물적 성격의 판소리 창본을 선호한다. <춘향전> 9종에는 판소리 공연에 적합한 창과 아니리, 장단 표시가 나타난다. 더욱이 판소리 공연 현장의 욕설과 성적 표현이 그대로 첨가된 작품도 있다. 둘째, 작품 서두에 이도령이 먼저 등장하는 작품이 풍부한데 이는 <춘향가> 초기본의 성격을 보여준다. 작품의 결말은 춘향의 정절에 대한 유교적 보상이 첨가된 작품이 풍부하다. 서두와 결말을 통해 본 <춘향전>에는 춘향의 신분 상승과 연결된 필사자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셋째, 호남 지역 <춘향전>은 사랑가와 이별가 대목이 확장된 작품이 풍부하다. 호남 지역 <춘향전>은 공연물에 적합한 판소리 창본의 성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양반이나 선비집안에서는 춘향의 몸을 더듬는 봉사의 음흉을 생략하고 있다. 그럼에도 봉사의 욕망이 첨가된 작품은 필사자의 신분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낮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째, 호남지역 <춘향전>에는 이몽룡의 과거급제 장면은 빈약한 반면에 암행어사로서 올바른 관직 수행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몽룡은 암행어사로 내려와 춘향을 구할 뿐만 아니라 변학도를 처벌하는 민중의식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남 지역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은 작품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파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Except for, < Chunhyangjeon(春香傳) > hand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twelve versions of < Chunhyangjeon > which were distributed in the Honam area were all handwritten in Korean. The < Chunhyangjeon > manuscripts of the Honam area are related to handwritten < Belchunhyangjeon > and they kept the tradition from 1754 till 1932. The scribes were mostly male. The < Chunhyangjeon > manuscripts were handwritten mainly off season from farming. The < Chunhyangjeon > manuscripts were handwritten by scribes from various social status such as Yangban(Korean aristocrat), Seonbee (Korean scholars), middle class, farmers and so on.
Here are some literary responses of the < Chunhyangjeon > scribes in Honam area. First, the < Chunhyangjeon > scribes prefered narrative developments of scenes. They also liked to handwrite Pansori < Chunhyangjeon > which were performed in front of people. So we can see chang, aniri and marks for rhythms in nine versions of < Chunhyangjeon >. In some manuscripts among them, we can even see curses and sexual expressions that could be told in the performance places. Second, Yidoryeong appears at the very beginning in many of the manuscripts, which is the characteristic of the early version of < Chunhyangjeon >. The conclusionx of the books are confucian reward to Chunhyang's chastity. We can know that the scribes reflected their desire for Chunhyang's rise of status through the beginning and ending of the books. Third, the < Chunhyangjeon > manuscripts in the Honam have a lot of scenes about love and farewell. They are also appropriate for Pansori performances. Fourth, scribes from yangban and sunbee omitted the scene that a blindman gropes Chunhyang's body in their books. So the books including the blindman's wickedness would be handwritten by scribes from relatively low social ranks. Fifth, the books in the Honam are poor in the scene for Yimongryong's success of Gwageo(the state examinations during Choseon Dynasty). However, We can find that the scribes had a lot of interest on Yimongryong's successful performance as a government position in the books. Yimongryong is not only a rescuer of Chunghyang but a figure to show the people's awareness that they want to punish Byeonhakdo.
Therefore, the study on tradition of handwriting and literary responses of the < Chunhyangjeon > scribes in Honam area contributes to understand universality and individuality of < Chunhyangj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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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제(百濟)의 정치적 추이와 영산강(榮山江) 유역 정치세력의 동향 -문주왕대(文周王代)-성왕대(聖王代)를 중심으로-

저자 : 申政勳 ( Shin Jung-hoon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5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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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羅는 文周王 2年에 使者를 보내어 百濟에게 공물을 바쳤다. 백제 문주왕은 사자에게 恩率의 관등을 주었다. 이전까지 두 세력의 관계가 사료에 없다. 이로 보아 문주왕 2년 이전까지 두 세력은 독립관계였다. 문주왕 2년에 와서야, 탐라는 공물을 바치며 백제의 영향권이 되었다.
文周王 2年(476) 이후부터 東城王 20年(498) 8월 이전까지 두 세력은 사자와 공물을 주고받지 않는 독립된 관계를 유지했다. 동성왕 20년 8월에 탐라가 동성왕에게 죄를 빈 이후부터, 탐라는 백제의 세력권이 되었다. 동성왕의 뒤를 이어 武寧王이 즉위하였다. 무령왕 대에 실시된 것으로 추정되는 22擔魯制는 榮山江과 蟾津江 일대를 직접 지배함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지방제도였다. 그리고 백제 聖王은 이 일대에 중앙에서 임명된 郡令(郡將)과 城主를 통해 직접지배를 강화했다,


Tamra sent envoys to pay tribute in the second year of King Munju's reign. King Munju gave the envoy the official rank of Eunsol. Previousl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forces was not in the historical records. From this point of view, until the second year of King Munju's reign, the two forces had an independent relationship.
It was only in the second year of King Munju that Tamra offered tribute and came into the sphere of influence of Baekje.
From the second year of King Munju (476) to the 20th year of King Dongseong(498), the two forces maintained an independent relationship without exchanging tributes with envoys.
In August of the 20th year of King Dongseong, Tamra apologized to King Dongseong. Since then, Tamra came under Baekje's sphere of territory.
Local system of 22 Damro is believed to have been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after King Dongseong. This system was a new local system that emerged as it directly dominated the Yeongsan River and Seomjin River.
In addition, King Seong of Baekje strengthened his direct control through the Gungjang(Goonryeng) and Seongju was appointed from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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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퇴계시에 나타난 도학적 서정의 의미

저자 : 李貞和 ( Lee Jeong-hwa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3-27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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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보다는 마음의 수양에 전념한 퇴계는 후학에게도 이러한 삶의 자세가 내면의 성숙에 밑거름이 됨을 일깨웠으니, 퇴계학의 기틀은 학덕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퇴계에게 수양과 성찰은 신독(愼獨)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퇴계는 도는 가까이 있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할 뿐이니, 일상생활 속의 사물을 떠나서 특별한 도리가 있지 않음을 일깨운 바 있다. 일상 속에서도 도학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체화된 퇴계는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며 정진하였다. 이는 삶의 중심에 성현의 학문이 자리해 있으며,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한 그의 마음을 시화하는 것이 도학적 서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퇴계에게 있어 도의 마음은 성현이 추구한 그것과 합치되는 것이다. <도산서당(陶山書堂)>시에는 덕망 높은 성현을 우러르는 퇴계의 마음이 도학적 서정의 주축이 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도를 사람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현실을 인식한 퇴계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염두해야 할 가르침을 표명한 바 있다. 그가 후학들에게 권면한 것은 깨달음이란 항상 일상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퇴계는 후학들이 이치를 터득할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가르침을 시화하였던 것이다.
퇴계는 유자들의 삶에 학문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시를 지었으며, 독서를 통한 면학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시를 지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퇴계시에 내재된 도학적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시교(詩敎)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경직된 생각으로 시상을 전개하지 않았다. 그의 시교는 풍부한 정감 속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강압적 설명이 없이도 감화를 준다. <금황기시안도시(今滉寄示安道詩)>를 비롯한 만년(晩年)의 퇴계시에서는 일반적인 도학자들의 시와 달리 정감이 무르녹아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This thesis aims to investigate Toegye's poems considering scholarly virtue and emotion. His life is related to learning, especially with the effect of education through the proper teaching. However, he did not educate his disciples in a boring or rigid way, but with a true teacher's heart.
He always taught people with a pure scholar's heart and a kind neighbor's heart. These pieces of life remain in his poems. His pure heart was projected into the poem. The poet's pure affection made his poem all the more true.
The true heart embodied in his poetry was expressed in old age works with a warm feeling. This feeling creates a natural impression in the poem described. The impression of his poem reminds me of a true and warm teacher and grandfather feeling.
Also, the reason why his poems create impressions is that they reflect his humble and inclusive life. The teacher he admires is a great saint, who, by and large, serves as a reminder of the truth. Toegye knew that great saints such as Confucius were very soft and pure-hearted, and he also made constant efforts to maintain this spirit. These efforts are well illustrated in his poems. For example, the emotions expressed in Toegye are derived from the warm heart of the teacher and from the heart of the kind grandfather.

KCI등재

9운곡(耘谷) 원천석의 삶과 출처관(出處觀)

저자 : 정순태 ( Jung Soon-tae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5-320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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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은 變化無雙한 세상을 살았다. 일찍이 山野에 살며, 직접적인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응시하고 求官詩를 보내는 등 정계 진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세상의 利害와는 멀어졌지만, 정치, 문화,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사회의 腐敗나 불의에 대해서 분개했다. 군자의 도리를 실천하고, 후배와 동료, 지방관료들과 安民을 논했다. 세상을 떠나 있었지만, 벗어난 적이 없었다. 처사적 삶을 살았지만 출사의 의지나 세상일에 관한 관심을 끊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운곡의 은일은 단순히 隱逸이라 하기도, 더구나 超脫的 隱遁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유배나 일시적 귀향 성격의 隱居와도 결이 다르다.
운곡의 은일은 운명적이며 자연지향적인 귀결이었다. 할 말은 했다는 의미에서 隱居放言이고, 출사의 때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自守'의 출처관이라 볼 수 있다. 운곡이 자수의 출처관을 가진 배경을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避世의 운명이 자수의 삶을 살게 했다. 둘째, 여말선초라는 境界의 시대가 그 배경이다. 셋째, 안민의 책무가 운곡을 현실 세계에 붙잡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건국세력을 규탄하던 그가 새로운 왕조에 기대를 표하는 행위 또한 안민을 실천해 줄 군주가 나타나기 바라는 심정의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배경 때문에 운곡은 출사를 기다리는 은일, 즉 자수의 출처관을 보이게 된다.
운곡의 경우, 인생주기에 따라 자수의 성격도 변했다. 弱冠에서 35세까지는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十年燈下의 '학자형'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관료지향인식과 친자연적 삶 사이에서 갈등했다. 36세~55세까지는 出仕의 꿈을 가졌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은자형' 시기였다. 세상의 富貴功名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명예니 이익보다 도를 깨닫는 데 치중한다. 56세 이후는 '天民'에 가깝다. 비록 세상을 피해 살지만, 출사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벼슬에 오르는 꿈을 꾸기도 하고, 후학이나 동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했다. 운곡은 이 상황을 칼집 속의 칼, 匣裏釰이라 부른다. 다만, 그 칼을 쓰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운곡의 전체적인 출처관은 경계의 세상에서 자연과 함께 공부하며 세상에 나아갈 기회를 기다리던 자수의 출처관이라 할 수 있다.


Woongok(耘谷) lived in an ever-changing world. Deciding to live in mountains and fields at an early age, he did not engage in any direct political activities. On the other hand, he made an attempt at entering the political circles by taking the state exam and submitting Gugwan(求官) poems. He did not lose his interest in political, cultural, and social issues at the same time distancing himself from the interests of the world. He was enraged at the corruption and injustice of the society. He practiced the duties of a wise man and discussed the ways of restoring order and confidence with his junior colleagues, peers, and local government officials. He was distant from the world, but he never left it altogether. He lived a life of holding no government office and residing in seclusion, but he never lost will for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and interest in mundane matters. It is thus difficult to see his seclusion as simple seclusion or transcendent seclusion. It should be also pointed out that his seclusion was different from exile or retirement of temporary return to home.
For Woongok, seclusion was a destined and nature-oriented conclusion. His seclusion was Eungeobangeon(隱居放言) in that he said what he was supposed to say. It was the Chulcheo(出處) viewpoint of "Jasu(自守)" in that he waited for his time to go into government service. There were three elements behind his Chulcheo viewpoint of Jasu: first, his fate of avoiding and hiding from the world led him to a life of Jasu; second, he lived in a time of boundary between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and third, his duties of restoring order and confidence prevented him from leaving the real world. He, who once denounced those who worked on the founding of Joseon, expressed his expectation for the new dynasty because he wanted a monarch that would restore order and confidence for people. Driven by these three elements in the background, he exhibited a style of seclusion waiting for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or the Chulcheo viewpoint of Jasu.
The nature of his Jasu changed according to his life cycle. He lived as a "scholar" from 20 to 35, studying under the lamp and waiting for an opportunity. During this period, he had conflicts between his orientation toward bureaucracy and nature-friendly life. He lived as a "hermit" from 36 to 55, being ashamed of his old dream of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Realizing how vain the wealth, rank and fame of the world were, he focused on truth rather than honor and profit. Starting at 56, he became close to "Cheonmin(天民)." Even though he avoided the world, he did not give up his dream of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He would dream of holding a government post and realized his dream indirectly through his students and peers. He called this situation a sword in the sheath or Gap-ri-il(匣裏釰). He was sorry that he was not able to use his sword. Woongok's overall Chulcheo viewpoint was one of Jasu to study with nature at the boundary of the world and wait for a chance to go out into the world.

KCI등재

10「사씨남정기」에서 대립적 인물의 소설적 의의

저자 : 최천집 ( Cheon-jip Choi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21-36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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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사씨남정기」의 조동일 소장본을 분석하여, 이 소설이 가진 작품 구조의 핵심이 인정 투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것이 여성의 대립적 인물로 굳어지고 이는 현실에서 활동하던 인물을 소설로 표현하며 전형성을 확보한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작품에서의 여성은 인정 투쟁이라는 행동의 기준을 철저하게 수행하면서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두 방향의 타자에 대한 태도를 보인다. 사씨는 타자 긍정의 인정 투쟁을 벌이는 반면에 교씨는 타자 부정의 인정 투쟁을 벌인다. 이처럼 작품은 인정 투쟁의 두 가지 방향을 따르는 여성 인물로 등장한다. 여성 인물은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형상을 띠면서 대립적인 갈등을 벌이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여성 인물의 극한적인 대립은 사회의 변화와 그것에 대해 소설에서 현실의 실상을 그것 대로 수용하여 온전하게 사회문제로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도 상호적인 측면을 갖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소설은 여성 인물의 형상화 방식의 전형성을 확보해 놓은 의의도 가진다. 여성이 가정에서 인정 투쟁을 벌이면 어떤 보상을 행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책임을 묻는가를 문제 삼고 있다. 이는 사회라는 장으로 확대되면서 여성이 살아가는 중요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제시해 놓았다. 곧 작품에서는 여성에게 가정에서의 인정과 사회에서의 인정이 삶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관심거리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순응적인 인물이 겪는 고난도 실상대로 드러내고 일탈적인 인물이 겪는 경험도 실상대로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성이 사회 표면에서 누리는 현상의 이면에서 고난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그것이 극복되었을 때는 어떤 보상이나 벌이 내려지는지 등을 잘 드러낸다. 이는 소설로써 여성의 전형성 확보를 꾀하고 있는 문제다.


This paper analyzes the collection of Cho Dong-Il's 「Sassinamjeong-gi」. The core of the work structure of this novel is based on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and it solidifies as the antagonistic character of women, which expresses the typical character who was active in reality as a novel. It is meant to reveal that the woman in the work thoroughly fulfills the standard of action of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and in the process of realizing it, she shows an attitude toward the other in two directions. Mrs. Sa fights for the recognition of the affirmation of the other, while Mrs. Kyo fights for the recognition of the negation of the other. As such, the work appears as a female figure who thoroughly follows the two directions of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The female figure appears as a figure divided into dichotomy, and is embodied as a dichotomous being who engages in confrontational conflict. The extreme confrontation between the female characters is a social problem, fully acknowledging changes in society and the reality of reality in the novel as it is. This is because women are perceived not as isolated beings at the individual level, but as beings with mutual aspects as social beings. In addition, this novel has the significance of securing the typicality of the way women are portrayed. The question is, what kind of reward does a woman give if she fights for recognition at home and how she holds her accountable if she doesn't. As it expands to the field of society, it presents important issues that occur in important places where women live. In other words, in the work, recognition at home and in society can appear as an important concern for women, taking up all of their lives. has a It reveals well how women are experiencing hardships and what rewards or punishments are given when they are overcome. This is contributing to securing the typicality of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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