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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연구 update

Journal of a study on history of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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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12)~21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52
한국불교사연구
21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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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고영섭 ( Ko Yo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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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선말 한초를 살았던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6~1912)의 실천성과 지성성을 탐구하여 실천적 지성인과 지성적 실천가로서 보여준 그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조명해 본 글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연기-무자성-공성의 철학과 자비의 종교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붓다의 지혜로 표현되는 연기법과 붓다의 자비로 표현되는 중도행은 붓다의 '중도가 곧 가명(假名)이며 공(空/無) 즉 연기'임을 역설해온 용수보살의 『중론』이 잘 논증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중론』의 정신은 신라 통일 전후에 살았던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의 무이 중도(無二中道)로 이어졌고, 선말 한초에 살았던 경허 성우의 미이 무이(未已無二)사상으로 이어졌다.
경허는 '죽음을 발견'한 견자이자 '콧구멍 없는 소'를 깨우친 각자로서 「오도송」 즉 「태평가」로 깨침을 시험하고 「무생가」로 고독을 체험하여 법화 즉 깨침[惺]의 교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겁외가」로 걸림 없는 자유를 보여주었고 '나귀의 해'로 본래 없는 세월을 통해 행리 즉 취함[醉]의 교화를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적인 삶과 철학적인 앎의 병진(竝進)을 통하여 법화와 행리의 길을 나란히 제시하였다. 일찍이 한암이 경허의 행장에 대해 법화와 행리의 기호로 삶과 앎을 구분해 평가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평자의 안목과 깜냥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도는 두 겹 네 쌍의 개념들을 부정하는 '쌍차'(雙遮)와 두 겹 네 쌍의 개념들을 긍정하는 '쌍조'(雙照)의 실천으로 두 극단을 떠나는 '가장 바른 길'이다. 생멸(生滅), 상단(常斷), 일이(一異), 래거(來去) 등 상반된 두 겹 네 쌍의 개념들을 모두 부정한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거(不來不去)와 같은 부정의 '쌍차'와 불생불멸, 불일불이, 불일불이, 불래불거 등 상반된 두 겹 네 쌍의 개념들을 모두 긍정한 생멸, 상단, 일이, 래거와 같은 긍정의 '쌍조'를 넘어 '차조동시'(遮照同時)의 세계를 열어가는 길이다. 연기는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방식이다. 모든 존재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
실천이란 실제로 행함을 가리키고, 지성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을 일컫는다. 실천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모습을 지닌다면, 지성은 속으로 스며드는 내면적 모습을 지닌다. 경허는 '깨침'[惺]과 '취함'[醉], '아는 이 없다'[無人識]와 '나는 알지 못하노라'[吾不識]고 하였다. 또 그는 “차별하는 생각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든[未盡] 차별하는 생각이 이미 다하였든[已盡] 둘이 없는 것이 아니다”[未是無二]며 미이 중도(未已中道)를 역설하였다. 그는 이미 나고 죽는 것이 끊어진 세계인 무생(無生),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겁외(劫外), 그리고 부처와 중생이 끊어져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본래 끊어진 세계를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경허는 범어사의 성월 일전(惺月一全, 1864~1942)과 해인사의 남전광언/한규(南泉光彦/翰圭, 1868~1936)의 초청을 받은 뒤 수선 결사의 종주로 추대 받아 결사의 맹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고종 황제의 칙지가 내려오자 장경 인출 증명 법사를 맡아 국사와 왕사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 경허는 알고 모르는 것이 끊어진 세계를 체감한 뒤 절대 고독 혹은 근본 고독 위에서 실의와 울분으로 보내면서 '탈실천적 실천성'과 '반지성적 지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말 한초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경허가 보여준 '탈실천적 실천가'와 '반지성적 지성인'의 모습은 한민족의 정신적 자긍심을 견지한 매우 드문 사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각자(覺者)의 살림살이와 견자(見者)의 사고방식으로 정신문화와 민족문화를 견인해낼 수 있는 자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ctivism and intelligence of Seongwu Gyeongheo (鏡虛惺牛, 1846-1912), who lived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nd illuminates his lifestyle and way of thinking as an activistic intellectual and intellectual activis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have become widely known as the philosophy of dependent-origination (緣起), asvabhāva (無自性, lacking self-nature), and Śūnyatā (空, emptiness) and as the religion of mercy. The dependent-origination expressed by the Buddha's wisdom and the Middle Way expressed by the mercy of the Buddha are well demonstrated by the Middle Way of Nāgārjuna, who emphasized that the Buddha's Middle Way is only a temporary name which really means emptiness, that is, dependent-origination. The spirit of this Madhyamakakārikā is handed down to the thought of Non-dual Middle Way (無二中道) of Bunhwang Wonhyo (617-686) who lived before and after the unification of Silla. After that it was handed down to the thought of No Dichotomy between Enlightenment and Unenlightenment (未已無二) of Seongwu Gyungheo who lived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beginning of Korean empire.
Gyungheo was a person who 'discovered death' by penetrating through the truth, and observed 'the cow without nostrils' by awakening to the truth. He expressed his enlightenment in a song of enlightenment, that is, Song of Peace, and showed the teaching of enlightenment [惺] with the Song of Realization of Non-Arising. He displayed unhindered freedom with the Song of Transcendental Kalpas, and showed that time really does not exist with the Song of the Year of the Donkey.
Through the parallel of religious life and philosophical knowledge, he presented the path of enlightenment and worldly practice side by side. In the past, Hanam evaluated Gyeongheo's life and knowledge by the parallel of Gyeongheo's enlightenment and worldly practice, but the evaluation of a person always depends on the eye of the critic.
The Middle Way is the best way to avoid the two extremes by practicing both the negative and affirmative position on all Four Pairs of Logical Phrases. The negative position on Four Pairs of Logical Phrases refers to a negative stance in granting any characteristic to any being. It is insisted that beings are 'neither arising nor ceasing (不生不滅), neither permanent nor temporary (不常不斷), neither one nor many (不一不異), and neither coming nor going (不來不去).' Conversely, the affirmative position on Four Pairs of Logical Phrases refers to an affirmative stance in granting characteristics to beings. It is understood that beings are both 'arising and ceasing, permanent and temporary, one and many, and coming and going.' Additionally, there is a position that goes beyond these two sides, which claims that both these negative and affirmative aspects of beings exist at the same time.
Dependent-origination is the principle of existence of all beings. All beings exist due to causes and conditions. Activism refers to the spirit of practical action, and intelligence refers to human intellectual capacity. If activism is an outward appearance, intelligence is an inward appearance.
Gyeongheo said that 'waking' [惺] and 'intoxicating' [醉] are not different. He also said, “No one knows” [無人識] and said, “I do not know” [吾不識]. Furthermore, he also said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unenlightened mind [未盡] and the enlightened mind [已盡]; [未是無二].” In other words, he said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attaining enlightenment and not attaining it. The reason, according to him, was that one was already enlightened to the truth in which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arising and ceasing, where time and space is transcended, and in which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enlightened and unenlightened people.
After receiving invitations from Iljeon Seongwol (惺月一全, 1864-1942) of Beomeosa Temple and Gwangeon Namjeon/Han Gyu (1868-1936), of Haeinsa Temple, Gyungheo was appointed as the leader of the Zen meditation group composed of monks from many temples. He played a leading role as he also led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Koreana by the appointment of Emperor Gojong. He also served as the king's advisor.
After experiencing the world of enlightenment where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Buddha and the unenlightened, Gyungheo spent his days in despair and resentment over absolute solitude or fundamental loneliness, showing post-activistic activism and anti-intellectual intelligence. In the midst of the national crisis of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Gyeongheo was the image of the post-activistic activist and anti-intellectual intellectual. It seems that he was almost the best example who maintained the spiritual pride of the Korean people in his time. As a result, our nation was able to secure the self-confidence to lead the spiritual culture and national culture through the way of life of an enlightened person and his way of thinking.

저자 : 강은애 ( Kang Eun Ae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9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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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인 만해 한용운이 당대 역사 현장 속에서 나라와 사회 제반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의 독특한 불교 실천성과 지성성이 투영되어 있다.
근대불교의 맹아적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불교대전(佛敎大典)』은 일종의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서 만해의 실존적 실천성과 인식적 지성성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 흐름을 맞아 불교를 어떻게 해석하고, 재편하고자 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제 3 불타품(佛佗品)은 부처의 본원(本願), 지혜(智慧), 자비(慈悲)의 장에 보살(菩薩)의 본원, 지혜, 자비를 함께 각각 배치하여 '보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만해 실천성의 근원에 보살 사상이 깊이 배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불교대전』을 계획 구성하고, 편집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고의 종교수행이자, 보살행으로써 만해의 실천적 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해는 어릴 적 가슴 속 깊이 품었던 의인·걸사의 지사(志士)적 정신은 대승 보살의 원력으로 승화하고,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의 불성론(佛性論)은 자유·평등의 근대적 사상 체계 안에 자리를 확보하는 등 만해만의 독특한 실천적 지성 세계를 구축하였다.
『불교대전』의 편찬은 전통과 근대를 아울러 당대 문제를 실제 타개해 나가고자 한 예이다. 만해의 지성성은 온고지신적(溫故知新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옛것인 유교의 장점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인 근대성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불교적인 재해석을 통해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였다. 즉 보살행적 실천성과 온고지신적 지성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불교대전』은 지행합일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해는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격동의 시대이자, 암담한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인 불교의 이상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당면한 문제의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나아가 실천적 행동을 통해 역사의 현장에 몸소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만해의 실천적 지성은 삶과 앎이 분열되고, 파편화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귀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만해가 현재에도 여전히 회자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지성적 앎을 형이상학적, 초월적 세계에 고립시키지 않고, 이 땅에 역사화하고자 했던 용단력 있는 실천력과 일관된 지행합일적 삶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는 종교와 민족의 울을 넘어 보편적 지성에 근거한 무애행으로 평등과 구세주의적 삶을 몸소 실천한 근대 한국 지성계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His unique Buddhist practice and intellect are reflected behind Manhae Han Yong-un's ability to actively participate in national and social issues and to lea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historical field of the time.
The Great Texts of Buddhism, which can be said to be the embryonic product of modern Buddhism, is a text that can simultaneously examine Manhae's existential practicality and epistemic intelligence as a kind of doctrinal classification theory. You can see how they tried to interpret and reorganize Buddhism in the new era of 'modern'.
The third Buddha's work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Bodhisattva by placing the original source, wisdom, and mercy of Bodhisattva in the field of the Buddha's original source, wisdom, and mercy, respectively.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idea of Bodhisattva is deeply embedded in the root of Manhae's practicality, and the process of planning and editing The Great Texts of Buddhism itself is a religious practice of patience and shows the practical intelligence of Manhae by performing Bodhisattva.
Manhae sublimated the spiritual spirit of the righteous and virtuous, which he had deep in his heart as a child, into the power of the Mahayana Bodhisattva, and the Buddha-nature theory of the Buddha-nature of all living beings is freedom and equality. By securing a place in the modern ideological system of Manhae, he built a world of practical intelligence.
Compilation of The Great Texts of Buddhism is an example of trying to overcome the problems of the time in both tradition and modernity. Manhae's intellect can be evaluated as being wen-gu-zhi-xin(溫故知新). By learning the merits of Confucianism, which is the old one, creatively inheriting the new modernity by putting it off, he tried to respond to the demands of the times through Buddhist reinterpretation. In other words, The Great Texts of Buddhism, which reflects the practicality of bodhisattvas and the intellect of wen-gu-zhi-xin(溫故知新), can be said to be a joint product of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
Manhae tried to reinterpret his religious belief, Buddhism's ideal, in a turbulent era where tradition and modernity intersect, to find a concrete solution to the problem at hand and to realize it in the field of history through practical actions. This practical intelligence of Manhae can be said to be a valuable legacy that is more desperately requested in this era when life and knowledge are divided and fragmented.
The biggest reason Manhae is still being talked about today is probably because of his courageous practical ability and consistent attitude to life in harmony with her own intellectual abilities to make history on this earth without isolating her intellectual knowledge in the metaphysical and transcendental world. He can be said to be a representative figure in the modern Korean intellectual world, who personally practiced equality and a savior-like life through an Unconstrained Conduct based on universal intellect, going beyond religion and ethnicity.

저자 : 장성우 ( Jang Sung-wo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3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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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운암은 15세에 『반야심경』을 강의하고 20대에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나 일제에 맞서 수리조합반대투쟁에 앞장설 정도로 민족정신이 투철하였다. 운암은 일제의 폭력적 탄압과 수탈을 체험하면서 강자가 외치는 인도와 정의, 자유와 평등은 허울뿐임을 자각하고, 세계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도덕적이고 행복한 세계를 건립하려면, '도덕의 새 표준 수립'과 '진리의 새 근거 창명'으로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철학 연구에 몰두하던 운암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용성스님의 위패상좌로 출가하였으며, 1973년 5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운암 사상의 성립은 첫째, 모두가 자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계 건설을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동서양의 제반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운암 사상의 개요는, 첫째, 과학지식을 토대로 우주 진화와 우주대생명을 주창하였다. 둘째, 인간의 선천적 본연성을 최고의 목적이자 가치로 보았다. 그의 사상적 지향점은 과학적 진리와 도덕의 표준 확립과 이기적 개인주의가 극복된 참된 민주주의였으며, 불이, 무아, 연기의 불교사상도 그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Woon-arm sunim was born in 1896 in Pyungannamdo and lectured Prajñā-Paramitā from 15 and graduated from Waseda University in his twenties, but his national spirit was strong enough to lead the Korean opposing struggle against Irrigation Association. During the Japanese Empire's violent suppression, Woon-arm realized that the humanism and justice, freedom and equality shouted by strong was unsubstantial. If the real moral and happy world could be founded, the establishment of new moral standard and the discovery and revelation of new truth basis was essential for the ethical and moral transition.
Giving himself over to research of philosophy, Woon-arm came South Korea at the 1.4 Retreat time and joined the sangha as disciple of Yong-Sung, and published five books in 1973. Woon-arm's processes of thought formation are first, his thought was originated from the attempt constructing world that everyone could enjoy freedom and happiness. Second, he studied critically philosophy and thought of all times and places. The points of his thought are first, he presented the evolution of cosmos and the great Cosmos life throught the evolution theory and physics. Second, he claimed that innate human nature is the most valuable. The aims of his thought are first, scientific truth and the establishment of new moral standard. Second, true democracy overcoming egoistic individualism. Furthermore, his ideological foundation was Buddhism of non-duality, non-self, dependent arising.

저자 : 이성운 ( Lee Sung-wo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6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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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청담 순호(1902~1971)의 불명과 법호의 보편적 의미를 도구로 삼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그의 지성성과 실천성을 살펴보았다.
순호의 지성성은 '시대와 상황의 인식'이라는 부제로 해명하였다. 순호의 지성성은 열린 사고로 세계의 주체는 '마음'이라고 인식하는 과정, 개운사강원에서 사교와 대교를 보는 교학의 섭렵으로 인식을 확장하는 과정, 교학 위에 참선 수행으로 불교의 진수를 닦는 과정, 호국불교의 전개와 종단의 탈퇴라는 강수에서 그의 지성성이 확인되는데, 청담 순호의 지성은 본질의 지성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청담의 실천성은 '승가와 신도의 정화'라는 부제로 해명하였다. 어린 나이에 서당에서의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벗을 응징하거나 독립 만세의 선봉에 서거나 좋지 않은 벗들을 바르게 교정하는 데서 주체의 회복을 실천하는 모습, 청담 실천의 핵심인 정화(淨化)는 나와 남, 나와 승가, 교단, 사회 등에 고루 적용하여 실천하는 모습, 또 국가 사회의 정화를 위해 교단 밖의 타종교나 국사 사회의 정화를 위한 그의 실천은 평생을 일관하는 모습과 교단 조직의 시안인 영산도를 창안하는 모습이나 세계불교지도자대회에 참여하는 모습 등에서 그의 지행합일적인 실천성이 확인된다.


This writing considers the intelligence and practicality of Cheongdam Sunho (1902~1971) in his life and thought with the general meaning of his Buddhist name and nick name.
His intelligence is explained in the subtitle 'the recognition of the times and circumstances'. It is found out in his open mind of recognizing that Mind is the subject of the world and in his expansion of Buddhist knowledge with passing Advanced course for four years and Graduate course for three years in the academic course at the Gaeunsa Gangwon (the Sutra School for monks and nuns in Korean temples). Also, it is shown by his cultivating the essence of Buddhism by practicing Seon(Zen) meditation based on the doctrinal teaching, his development for National defence Buddhism and his resolution of the withdrawal from the Buddhist Order. It is clear that his intelligence is the one of essence.
His practicality is discussed in the subtitle of 'the purification of Saṇgha and the believers'. He exerted himself to recover the independece of his country, which is known by punishing his friends for wrongdoing in the Village School when young, being at the forefront of Hurrah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correcting his bad friends. Purification is the core of his practice, which should apply to both me and others, both me and Sangha, the Buddhist Order and society. He made effort to purify the national society and other religions throughout his life, his creation of Yeongsando for the Buddhist order and his participation in the World Buddhist Leaders Conference, etc. show his consistent practicality for uniting knowledge and conduct.

저자 : 서재영 ( Seo Jae-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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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하 광덕(金河光德, 1927~1999)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간 인물로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전법(傳法)의 새로운 모범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난 광덕스님은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자신의 병고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20대 초반 아픈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요양 차 범어사로 입산하여 동산스님을 만나면서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광덕스님의 사상은 개인, 불교, 사회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겪게 되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조형된다. 첫째, 개인적 배경으로 가난, 죽음, 병고에 시달리는 삶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꿈꾸게 된다. 둘째, 불교적 배경으로 불교정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는 정법구주(正法久住)의 종교적 이상을 갖게 된다. 셋째 사회적으로 식민통치와 전쟁, 이념 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이상을 갖게 되었다.
광덕스님은 『육조단경』의 선사상, 『금강경』의 반야사상, 「보현행원품」의 화엄사상을 통해서 자신이 꿈꾸던 인간완성, 불교발전, 사회 완성을 이룰 사상적 내용을 찾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광덕스님은 1974년 불교 잡지 『불광』을 창간하고, 송파구에 불광사를 창건함으로써 도시불교, 대중불교를 표방하는 현대불교의 새로운 서막을 열었다.


Ven. Geumha Gwangdeok(金河光德, 1927~1999) crossed the turbulent times of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pioneering a new model for dharma dissemination(傳法)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Buddhism. Born as a son of a poor small farmer during the Japanese rule, Ven. Gwangdeok suffered difficult childhood due to the death of family members one after another and his own illness. In his early twenties, however, he went into a mountain where the Beomeo Buddhist Temple(梵魚寺) was to take care of his sick body and recuperate and faced a new turning point in his life.
His ideas were shaped by his historical experiences at three layers of individual, Buddhism, and society. First, he experienced a life filled with poverty, death, and suffering from sickness against his personal background and dreamed of restoring human dignity. Secondly, he underwent the process of Buddhist purification against his Buddhist background and dreamed of Jeongbeopguju(正法久住), which is to ensure the long stay of Buddha's Right Teachings(正法). And finally, he endured the colonial rule and the pain of war in society, dreaming of making the world peaceful and saving people in suffering.
Ven. Gwangdeok put together the ideological content to promote human completion, Buddhist development, and social completion from such Buddhist ideas as Zen(禪), Prajñā(般若), and Hwaen(華嚴) ideas, completing his Bulkwang ideas. Based on them, he created the Buddhist magazine Bulkwang in 1974 and built the Bulkwang Buddhist Temple in Songpa-gu based on it, opening the first act of modern Buddhism claiming to support urban Buddhism and popular Buddhism.

저자 : 오지연 ( Oh Ji-y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4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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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고려 백련결사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 보이는 몇 가지 논점에 대하여 재검토해 보았다.
첫째, 백련결사는 앞서 결성된 정혜결사에 상대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관점에 대하여, 천태종의 승려였던 요세가 보현도량을 처음 개설한 것은 고려 천태종의 문제점을 반성하며 참된 종지를 세우고자 한 종단 내부 개혁의 성격도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둘째, 『호산록』에 나타난 천태가의 조통(祖統)은 '천태지의-형계담연-보운의통-사명지례·자운준식'의 계통이다. 그 중 담연과 보운은 천태종의 중흥조이고, 사명과 자운은 보운의 법을 이어 세상에 널리 전한 이들이다. 따라서 백련결사에서는 그들의 가르침과 뜻을 계승하며 고려에 천태종을 부흥시키리라는 사명을 가졌을 것이다.
셋째, '백련결사에서 참회행을 중시한 것은 하근기 범부를 교화하기 위함이었을까'라는 논제를 재고(再考)하고자, 천태수행론에서 '참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요세가 일과로 삼던 여러 수행들을 곧 천태지관인 4종삼매로 볼 수 있고, 또한 4종삼매가 어느 하나 '참회행' 아닌 것이 없음을 보였다. 이처럼 천태에서는 선정과 참회가 둘이 아니며, 참회는 육도(六道) 중생부터 등각(等覺)의 보살까지 모두가 행해야 하는 것이다. 백련결사에서 참회행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다.
넷째, 요세와 천인 그리고 천책의 정토관을 비교 검토하였다. 자성미타(自性彌陀)와 유심정토(唯心淨土)의 정토관은 요세-천인-천책에게서 공통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천책의 『호산록』과 『해동전홍록』의 일화 등에 의하면, 당시에 법화행을 통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하기도 하고 또는 법화행과는 별도로 정토행을 행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In this study, I have reconsidered a few points in prior researches of the White-lotus association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first, it has been dominant that the White-lotus association(WLA) of Tiantai-order occurred against Jeong-Hye association of Son-order. But in one side, WLA was the movement for the Tiantai order reform by Tiantai leader Liao-shi(了世) in the Goryeo period.
The second, through the Hosanlok we can be seen that WLA had succeded to Tiantai masters like Chi-i, Zan-ran, Yi-tong, Zhi-li. Specially, Zan-ran and Yi-tong were restorers in downturn times of Tiantai order in Dang dynasty, so the leaders of WLA also would have the mission of revival of Goryeo's Tiantai by Inheriting them.
The third, I have taken a look the cause of emphasis on repentance practise in WLA. It would be because of the basis of the Tiantai's thinking that all the repentance practises are not different from the samadhi practises rather than because of edifying low-ability people.
Lastly, I have compared the thoughts of Pure Land of three leaders of WLA i.e. Liao-shi, Cheon-in, Cheon-check. Their thoughts coincide in that the self nature of living beings is just Amita Buddha[自性彌陀] and that there is not the Pure Land out of one's mind[唯心淨土].

저자 : 이영임 ( Lee Young-im )

발행기관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간행물 : 한국불교사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8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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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장에서는 경허 성우(鏡虛惺牛)에 대한 연구에 원본 자료가 만해 한 용운의 선학원 활자본 『경허집』과 한암의 필사본 『경허집』이 있음을 언급했고, 이 글이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II장에서는 경허 성우가 살았던 시기의 불교적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즉, 이 시기의 불교는 불교가 조선 왕조건설에 참여한 유교의 신진세력에 의해서 변두리로 물러나서, 수백 년 동안 억불 정책의 대상이 된 결과 제왕과 권력의 주변에서 물러나 자생하는 불교로 사회와 문화 저변에 자리하게 된다.
III장에서는 경허 성우가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격변기를 살았지만, 그 소용돌이에 휘몰리지 않고, 이후 선불교계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일들을 했음을, 즉 그의 불교사적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내용은 선불교의 맥을 잃어가던 불교 전통에 보조 지눌의 정혜결사를 잇는 수선 결사를 행함으로써 지금 현대로 이어지는 선수행의 전통을 부활시켰다는 점, 그리고 「참선곡」 등을 통해서 선종의 선기를 쉽고 명료한 언어로 보여줌으로써 선수행을 일반화시켰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의 법맥이 침운, 혜월, 만공, 한암, 수월 제자들에게 이어져 현대 한국선불교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IV장에서는 경허 성우의 선사상을 경허 삶의 대전환이 발생하는 그 측면인 그의 수행방법인 반조와 화두참구를 중점으로 들여다 본다, 그리고 깨달음 후에 그가 살아진 삶을 무이사상과 이류중행 보살행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The Great Master, Gyeong-heo, has influenced in many ways to Korean Buddhism in the turmoil of the historical era, and his enlightened spirit have left deep traces on Korean Buddhism. As we live in the society of rapidly changing, If we can learn or copy his spirit, we could soar into the core of what life is, not losing our spirit in this hustle and bustle life.
This paper examines Gyeong-heo's Idea and historical position in Korea Buddhism based on Gyeongheo-jib which is the collection of all the papers he wrote. The collection includes his personal Poem and letters, writings related enlightenment & the way of practice as a monk, Buddhist Sermons(法語), the writings of praising the great Buddhist masters in Korea(影讚), and so on. And There are two version of the collection, one is from Han-am Master and the other from Man-hae, Han Yongun.
In Chapter III, I have tried to reveal more about his practical work. Firstly his movement of Seon practice(修禪結社) and its uniqueness, which his work revived the Seon Tradition in Korea its spirit almost stopped, and recognized as succession of BoJo Jinul's Jeong-Hyeo-Gyeol-Sa(淨慧結社). Secondly, 「The song of Seon Practice參禪曲」 from him had a role of generalize Seon in public by being written Buddhism wisdoms in Korean letters(Han-geul法語). The last, His lineage of Seon Buddhism's spirit(法脈) has been succeeded by the many great Seon masters, such as Chim-un枕雲, Hyeo-wol慧月, Man-gong滿空, Han-am漢巖, etc. In Chapter IV, It was examined in the aspect of his way of practice Seon, focusing on reflecting返照 & Hwa-du Cham-gu話頭參究 which gives Gyeong-heo the great change in his life. Then, considered the his life after his enlightenment in the aspect of the idea of Not-two無二思想 & Bodhisattva-caryāvatāra菩薩行 of Yi-Ryu-Jung-Haeng異類中行.
As the well-known Buddhist Philosopher, Robert Thurman, once said Gyeong-heo is a Siddhartha in modern, there are much more things in him we should find, learn and share with others in our effort toward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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