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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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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714-0938
  • : 2714-0946
  • : 불교와 문화 → 동아시아불교문화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7)~46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660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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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엄일승교의분제장』에 나타난 포월적 종성론

저자 : 조배균 ( Cho Bae-gy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2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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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敎義分齊章)』 「종성차별(種性差別)」논의를 진여성(眞如性)과의 관련성 아래서 탐색하며, 법장(法藏, 643-712)의 화엄학이 제시하고자 하는 일승원교(一乘圓敎) 종성론의 특색을 포월(包越)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것이다.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에서 종성(種性)과 불성(佛性)의 의미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화엄일승교의분제장』의 종성론을 전개하는 전통은 법장의 화엄오교판(華嚴五敎判)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방해할 우려가 있다. 『화엄일승교의분제장』 본론은 종교(終敎)의 종성론과 관련하여 '佛性'을 명시하지만, 여러 주석론에서는 '佛種性'과 '佛種', '佛性' 등을 혼재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서『화엄일승교의분제장』의 종성론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이 글에서는 5교 각각의 종성 논의를 모두 살펴서 불성과 종성은 엄격한 의미에서 구분되는 사실을 제시하며, 일승원교(一乘圓敎)의 종성론의 포월적 특색을 제시하고자 했다.
본고에서 포월은 '감싸 안으며 넘어선다.'는 의미를 지니며, 5교의 종성 논의를 단계적으로 포괄하여 일승원교로 수렴하는 구도를 포착하는 개념으로 제안했다. 5교 종성론의 공통 준거로서 진여(眞如)를 도출하고, 5교 각각의 종성론과 관련한 진여 이해의 층차를 제시하며, 화엄종(華嚴宗)의 교의에 기초한 일승원교의 종성론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법장의 의도를 드러내 보고자 했다. 진여를 논하지 않는 소승(小乘)의 대보리성(大菩提性)에서 삼승(三乘) 시교(始敎)의 진여응연설(眞如凝然說), 종교(終敎)의 진여수연설(眞如隨緣說), 돈교(頓敎)의 이언진여(離言眞如) 등을 일승(一乘)의 인과동체유일성(因果同體唯一性)으로 포괄하며, 사사무애적(事事無礙的) 종성론을 전개하는 일승원교의 종성 이해가 가장 완전한 가르침임을 논증하고 자 하는 법장의 관점과 논리의 포월적 특색을 탐색했다. 화엄종의 관점과 논리로 전개된『화엄일승교의분제장』 종성차별과 관련한 논의는 성불 가능성과 관련한 다양한 불설(佛說)의 깊이와 각도를 보여주며, 인도불교와는 다른 동아시아불교 맥락에서 전개된 종성론 전개의 양상을 확인해 주고 있다.


This study explores Fazang(法藏, 643-712)'s discussion of Gotra(種性論) in the Huayanyijiaoyifenqizhang(華嚴一乘敎義分齊章). Considering Fazang's Classifications of Buddhist Teachings(華嚴五敎判), this paper shows each of the five teachings' meaning of gotra related to Suchness(眞如).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degree of understanding of suchness in five teachings' gotra. It leads to Fazang's discrimination of the various theories of gotra as Five levels', as follows, the mahā-bodhi(大菩提性) of the Hīnayāna(小乘), the nature(本性住)/ the acquired(習所性) of the beginningteaching(始敎), the suchness(眞如性) of the final-teaching(終敎), the Only-suchness(唯一眞如) of the Immediate-teaching(頓敎), the Only-cause-including-effect(因果同體) of the one-vehicle-teaching(一乘).' This study present the identity and difference in relation to five teachings' meaning, from the Hīnayāna which can't reveal the meaning of Suchness to the one-vehicle-teaching which reveals non-obstructional meaning of Suchness, And this paper tries to show the subsumption relation established in Fazang's interpretation on Gotra. It gives both gradual difference and inclusive pespective on Fazang's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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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의 성취와 수행론적 가치

저자 : 임형준 ( Lim Hyung-j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6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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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초기경전에 나타난 무상심삼매의 의미와 성취에 관하여 분석하고 대승과 선 수행으로의 전개를 살펴본 후 이 수행의 수행론적 가치를 고찰하였다.
무상심삼매는 붓다가 무위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것 중에 하나이지만 그 간에 실천과 학문적 영역에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수행이다. 무상심삼매는 '인상을 여읜 마음의 삼매'로써 색·성·향·미·촉에 의한 형상적 인상과 사무색계와 같은 일부 심상적 인상을 여의어서 성취되는 삼매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불교명상은 인상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거나 관찰하는 수행인데 무상심삼매는 명상의 대상이 인상이 없는 열반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승기신론』의 사마타 수행은 진여에 의거하여 어떠한 대상이나 상념을 따라가지 않아 성취되기에 열반을 대상으로 삼고 어떠한 인상도 여의어가는 무상심삼매와 거의 일치한다. 선 수행에서는 도신이『기신론』의 일행삼매를 이어받았고 이후 선종의 주요 좌선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무상심삼매의 수행론적 가치는 법념처로써의 가치와 선 수행으로써의 가치로 나누었다. 무상심삼매의 법념처 수행은 열반을 대상으로 하기에 현상의 생멸을 관하는 일반적인 법념처 수행과는 차이가 있다. 불교에 대한 충분한 교리적 교육과 현대적인 해석이 뒷받침된다면 열반을 대상으로 한 법념처 수행을 명상프로그램이나 심리치유프로 그램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선 수행으로써 무상심삼매 계통의 좌선은 간화선 이전까지 조사선 수행법의 주류였음을 상기해 보았다. 무상심삼매가 비록 초기불교의 선정에 해당할 지라도 조사선의 좌선법과 일치되는 점들을 논증하였다. 불성, 자성청정심을 바탕으로 하는 조사선은 열반을 대상으로 한 법념처 수행과 맥을 같이 한다. 무상심삼매의 수행론적 가치를 가장 극대화 시킨 것은 중국의 조사들이며 오늘날 다시 실천될 필요성이 있다.


This work analyzes the meaning and achievement of 'animitta cetosamādhi' shown in early scriptures and examines the meditative value of this meditation after examining the development into Mahayana and Seon(禪) meditation.
Animitta cetosamādhi is one of the things that has been suggested as a path to asaṅkhata, but it has not paid special attention to practice and academic areas. Animitta cetosamādhi is a “samādhi in the mind that has lost its nimitta,” which is achieved by losing some mental impressions such as object, sound, scent, savour, beauty, tangibles and non material world. Ordinary Buddhist meditation focuses on or observes one object, which is an nimitta, but there is a difference in that the object of animitta cetosamādhi is nibbāna without nimitta.
The meditation of samatha in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大乘起信論) is almost consistent with the animitta cetosamādhi, which is targeted at nibbāna and loses any nimitta because it is achieved by not following any object or concept according to the contribution. In Seon meditation, the Dosin(道信) took over ilhaeng samādhi(一行三昧) of the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 and later became the main method of the Seonjong(禪宗) line.
The meditative value of the animitta cetosamādhi was divided into the value of the mindfulness of dhamma and the value of Seon meditation. If sufficient doctrinal education and modern interpretation of Buddhism are supported, animitta cetosamādhi can be used in meditation or psychological healing programs. It was recalled that the sedentary meditation of animitta cetosamādhi system was the mainstream of the Josaseon(祖師禪) meditation method until before the Ganhwaseon(看話禪). It is China's masters that have most maximized the meditative value of animitta cetosamādhi that need to be practiced agai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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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법화경』에서 '불(火)'의 의미와 번뇌 설에 대한 연구

저자 : 한양순 ( Han Yang-soo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10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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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제3비유품에서는 양거, 녹거, 우거의 삼거(三車)로 방편을 열어 대백우거(大白牛車)의 진실을 나타낸다고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곧 '모든 부처는 일대사인연으로 오탁악세에 출현하여,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장교·통교·별교의 방편으로 원교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의 화택삼거 비유에서 불(火)의 의미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본질적 의미이고, 둘은 비유적 의미이다. 먼저 불의 본질적 의미는 '탄다'는 것이다. '타는 불'의 의미는 다시 '태우는 불(能燒)'과 '태워지는 불(所燒)'로 나누어진다. '태우는 불'은 오욕(五慾)과 탐, 진, 치 삼독(三毒)을 태워 '뜨거운 번뇌'를 만든다. '태워지는 불'은 태우는 불에 의해 생·노·병·사 등의 고(苦)를 받는다. 이렇듯 불의 본질적 의미는 타는 불로 뜨거운 번뇌와 고(苦)를 만든다.
다음으로 '불'이 비유하는 의미는 2가지이다. 하나는 소소(所燒)로서 육도윤회 하는 과보에 비유한 것이고, 둘은 능소(能燒)로서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오경(色聲香味觸)에 의해 일어나는 탐, 진, 치 삼독은 온갖 번뇌를 다 일으키는 능소이고, 이로 인해 받는 고(苦)는 생, 노, 병, 사로 소소이다. 말하자면 생·노·병·사의 4고(四苦)와 우비고뇌(憂悲苦惱), 그리고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등의 온갖 고통은 육도의 과보인 소소이고, 5진(五塵)에 의해 오욕과 탐애 등으로 혼탁해져 버린 오탁의 번뇌는 능소이다. 이렇듯 화택삼거유에서 '불'이 비유하는 깊은 의미는 오탁8고(五濁八苦)이다. 고(苦)의 원인에는 번뇌와 업이 있다. 먼저 번뇌에는 탐, 진, 치 삼독의 근본번뇌와 천태학에서 분별하는 견사혹(見思惑), 진사혹(塵沙惑), 무명혹(無明惑)의 3혹이 있다. 이러한 번뇌는 공관, 가관, 중관의 삼관으로 파(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업(業)은 신, 구, 의 삼업 중 의업(意業)이 가장 무거우며, 번뇌와 인연되어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고장(苦障)의 3장을 이루어 12연기를 이룬다. 12연기로 인해 번뇌, 업, 고(苦)를 받지만 수행하여 삼관(三觀)으로 혹(惑)을 파하면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대소승경전에서는 번뇌를 견사혹과 무명혹으로 설하고 있다. 특히『승만경』에서는 번뇌를 5주지 혹으로 나누어 상응무명(相應無明)과 불상응무명(不相應無明)으로 설하고 있는데 천태 지의는 이를 수용하여 『법화문구』에서 4주자과(四住子果)로 논하고 있다. 그는 또『법화현의』에서 대소승 경전에서 설하는 번뇌 설을 4종4제에 모두 수용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즉 견사혹, 진사혹, 무명혹을 생멸4제, 무생4제, 무량4제, 무작4제에 배대하여 모든 번뇌를 공관, 가관, 중관의 3관으로 파하고 있다. 이에 따른『법화경』의 수행은 원교의 수행으로 일심3관이다.
『법화경』 제3비유품의 번뇌 설은 대소승경전의 견사혹과 무명혹을 수용하였다. 특히 초기불교의 번뇌설인 견사혹으로 삼계의 오둔사(탐, 진, 치, 만, 의)와 오리사(신견, 변견, 사견, 견취견, 계금취견)의 10사를 집중 배대하였다. 『법화경』 번뇌설의 특징은 모든 경전의 번뇌 설을 포용하고 4종4제에 배대하여 수행방법을 통섭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화경』 제3비유품에서 화택삼거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생으로 하여금 오탁악세의 뜨거운 번뇌에 의한 고(苦)를 여의게 하는데 있다. 그 해탈의 방법은 3승을 타고 일불승으로 나아가 실상의 진리를 궁구하여 구경에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데 있다.


The Chapter on Simile and Parable in the Lotus Sutra is revealing the truth, which is the vehicle drawn by a great white ox[大白牛車], by using the expedient means that are the three vehicles[三車] pulled by a goat, a deer, and an ox. It is a metaphor that explains all Buddhas emergence on the world[一大事因緣] stained with five defilements[五濁惡世] to edify sentient beings of different learning abilities. Within the process, the truth[圓敎] is revealed through expedient means[藏敎, 通敎, 別敎].
There are two meanings in 'Fire' in the parable of the Burning House and the Three Vehicles, one is fundamental, and another is the metaphoric meaning. The fundamental meaning of the 'Fire[火]' is that it is burning. In detail, the 'Burning Fire' is separated into 'a Fire that Burns[能燒]' and 'a fire that is burned by the fire [所燒]'. 'The Fire that Burns' makes the 'hot agony' by burning the Five desires[五慾] and the Three poisons[三毒] of greediness, anger, and foolishness. 'The fire that is burned by the fire' is the suffering of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occurred by 'the fire that burns'. The fire makes the hot agony and the suffering.
The metaphoric meaning of the fire is described in two ways. 'The fire that is burned by the fire[所燒]' is used as a metaphor for the retribution of rebirth in the six realms of existence. 'The fire that Burns[能燒]' is used as a metaphor for the agony. The three poisons[三毒] occurred by the five precepts[色聲香味觸] are 'the fire that Burns[能燒]' that triggers all of the agony. The suffering from this agony, the suffering of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are described as 'the fire that is burned by the fire[所燒].' In other words, eight sufferings[生苦ㆍ老苦ㆍ病苦ㆍ死苦ㆍ 愛別離苦ㆍ怨憎會苦ㆍ求不得苦ㆍ五陰盛苦]. are the 'the fire that is burned by the fire[所燒].' The five defilements[命濁ㆍ衆生濁ㆍ煩惱濁ㆍ見濁ㆍ劫濁] are 'the fire that Burns[能燒].' Likewise, in the parable of the Burning House and the Three Vehicles, the deep meaning of 'fire' is 'the Five Defilements and the Eight Sufferings [五濁八苦].'
Agony[煩惱] and Karma[業] are the cause of Suffering[苦]. Agony is the Three poisons[三毒] and the Three kinds of Delusions[三惑]. The remedy of overcoming the causes of Suffering that is suggested by the Tiantai sect, is the practice of Three Ways of Contemplation[三觀]. Three Ways of Contemplation are insight of emptiness [空觀], insight of pro-visionality[假觀], and insight of the middle[中道觀]. These three ways of contemplation defeat three kinds of delusions which are the illusion of thinking and desire[見思惑], the illusion arising from attachment[塵沙惑], and the illusion arising from ignorance[無明惑]. Karma, the karmic actions of body, speech, and mind[三業], causes three obstacles[三障] of afflictions, karma, and suffering that leads to the formation of twelve Nidanas. Sufferings caused by twelve Nidanas are also could be defeated through the practice of Three Ways of Contemplation.
Meanwhile, suffering is described as the illusion of thinking and desire[見思惑] and the illusion arising from ignorance[無明惑] in the sutras of Mahayana and Hinayana. Especially, in Srimaladvi-simhanada-Sutra(『勝鬘經』), the suffering is described as five entrenchments of affliction[五住地惑] which is further classified as associative ignorance[相應無明] and non-associative ignorance[不相應無明]. Tiantai Zhiyi(天台 智顗) reflects this understanding in his writing Fahwa Wenju(『法華文句』). Also, in his another writing, Fahwa Xuanyi(『法華玄義』), the agony is coordinated with the Four kinds of the Four Truths[四種四諦]. Three kinds of delusions[見思惑·塵沙惑·無明惑] are related to the Four Truths as arising and perishing[生滅四諦], the Four Truths as non-arising[無生四諦], the Four Truths as immeasurable[無量四諦], and the Four Truths as spontaneous[無作四諦]. By doing so, all suffering is extinguished by the Three Ways of Contemplation[三觀]. The practice of Perfect Doctrine[圓敎] is the Threefold Contemplations in a Single Mind[一心三觀].
The Agony in the Chapter on Simile and Parable of the Lotus Sutra is showing its acceptance of the illusion of thinking and desire[見思惑] and the illusion arising from ignorance[無明惑] from the sutras of Mahayana and Hinayana. Specifically, the illusion of thinking and desire is explained in detail as the ten fundamental earthly desires[十使] that are five delusive inclinations[五鈍使] and five false views[五利使]. The distinct feature of agony explained in the Lotus Sutra is that it has contained all different types of agony that appear from the whole Buddhist Sutras by using the Four kinds of the Four Truths[四種四諦]. The Four kinds of the Four Truths are also suggesting the practice method.
The purpose of the parable of the Burning House and the Three Vehicles is at liberating sentient beings, living in the world stained with five defilements, from the suffering caused by the hot agony. The method of liberating sentient beings is suggested in series of stages according to the learning ability of each sentient being. Start by three vehicles of expedient means and then sentient beings use the single Buddha-vehicle to pursue the All-knowing knowledge of Buddha[一切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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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붓다 재세 시 율(律)에 관한 이견(異見) - 데바닷다의 오법(五法) 중심 -

저자 : 양숙현 ( Yang Sook-hy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9-13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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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이란 출가자가 반드시 수지(受持)해야 하는 것으로 일상생활 전반에 필요하다. 율장을 제정한 목적은 십구의(十句義)로서 승가를 거두어 정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려는데(令法久住)에 있다. 붓다 재세 시 불교도들에 의한 계율수지가 정법(淨法 kappa)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용되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혹 선학들의 연구에서 '정법(淨法)'을 '편법'이라 하여 폄하되어지고 있지만, 이는 율에 대한 인식에 있어 오해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 당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법(淨法)은 출가자가 각 지역 환경에 적합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수용된 율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붓다 재세 시 데바닷다 오법에 대한 붓다의 대답을 정법적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데바닷다 오법은 붓다 만년에 데바닷다가 제안한 것으로 당시 승원화의 안락한 생활을 하는 비구들에 대하여 비판한 엄격한 규정이다. 이 오법은 평생 삼림주자(森林住者), 걸식자(乞食者), 분소의(糞掃衣)자, 수하주좌(樹下住座), 어육금지(魚肉禁止)로 생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에 대한 붓다의 대답은 수행자가 원할 경우 삼림주자가 되거나, 촌락에 거주해도 되며, 걸식자가 되거나, 초대를 받아도 되며, 분소의를 사용하거나, 거사의를 착용해도 되며, 8개월 동안 나무 밑에서 좌와(坐臥)할 것을 허락하며, 의심이 가지 않는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한 생선과 고기를 허락한다는 내용으로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데바닷다의 견해는 자이나교 등의 엄격주의 내지는 고행주의에 부합한 엄격한 수행을 표방하였고 붓다의 중도주의적 입장과는 대립임을 확인 할 수 있다.
현대 동북아 대승(大乘)지역 불교도들의 지향하는 계율은 초기의 엄격한 규율인 분소의, 걸식, 수하좌, 진기약의 사의법과 흡사한 데바닷다 오법의 내용과 상통하고 있는데 율장에 전하는 붓다의 대답이 예외규정도 인정하여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도라는 불교 탄생지에는 현재 불교 유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며, 대승불교계로 넘어오면서 승가원칙인 사의법(四依法)과 비슷한 데바닷다 오법이 정법이 되어 전해서 이어져오고 있다. 불제불개변(佛制不改變)의 원칙인 율에 의한 것이 아닌 실질적 승가생활은 지역과 환경에 맞게 변형유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대승불교권에 맞게 지역적, 환경적으로 변하여진 청규(제2율장)에 의한 화합승의 공동체 생활도 또한 적합하게 수용된 불법(佛法) 또는 정법(淨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현재의 불교 출가자의 의식주와 관련된 규정을 편법으로 간주하여 부정해 버린다면 각 지역의 다양한 불교의 수행자들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각 지역 환경에 맞게 이어지고 있는 불교 수행은 이렇게 정법(淨法)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uddhist Precepts are rules that Buddhist monks and nuns must observe in their everyday lives and the establishment of precepts proved to be worthwhile as defiled Dharmas appear.
In this paper, I examine the observance of precepts by as 'Kappa(pure dharma, 淨法)' at the time of the Buddha and how it has been changed.
Therefore, it is especially important to figure out the original meaning of it in the Buddha's life. Kappa(淨法) has been changed and accepted so that the Buddhist monks and nuns can live appropriately in their local environment.
Also, I would like to interpret the Buddha's answers to Devadatta's five rule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ure dharma.
The Devadatta's five rules was proposed by Devadatta in Buddha's later years and criticized the bhikkhus who lived a comfortable life in monasteries at that time.
The five rules stipulate that bhikkhus should dwell all their lives in the forest, rely entirely on begging for arms, wear only robes made of discarded rags, dwell only under a tree, and not eat fish and meat.
The Buddha's answer is : Whoever wishes, let him dwell in the forest; let him dwell in the neighbourhood of a village; let him rely on begging for alms; whoever wishes, let him wear robes made of discarded rags; whoever wishes, let him wear householder's robes; sitting or lying under a tree is permitted for eight months ; I allow bhikkhus to eat fish and flesh that are pure in respect of three unsuspecting condieions.
Here we can see that the Devadatta's five rules accord closely with draconianism or asceticism such as Jainism and come into conflict with the position of the Buddha's middle way.
The precepts of Buddhists in modern in Mahayana Buddhism are in line with the five rules of the Devadatta, which are similar to those of the strict 'the four reliances (四依止)' of early Buddhist Sangha, such as wearing robes made of discarded rags, eating by begging for arms, dwelling under trees, and using medicine made from the putrid urine of cattle. But since the Buddha's position on the precepts shown in 'Vinaya-Pitaka(律藏)' is flexible as well as admitting exceptions, we need to think again about this issue.
At present, only Buddhist ruins remain at the site of Buddhism in India which is known as the birthplace of Buddhism. As original Buddhism has moved on to Mahayana Buddhism, especially in Northeast Asia, it had no other recourse but to be transformed and maintained in accordance with the region and the environment. This can also be called legalized 'Buddha Dharma(佛法)' or 'Pure Dharma(淨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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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삼론학의 삼종중도(三種中道)와 원효의 무이중도(無二中道) 비교연구

저자 : 김영미 ( Kim Young-mi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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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인 진제와 세속인 속제의 이제(二諦)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의해 붓다의 깨달음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세 가지의 이제설이 보인다. 첫째, 승의제와 세속제를 교설의 형식으로 하는 이제설은 승랑에게 전수되어서 이제시교론(二諦是教論) ㆍ삼종중도론(三種中道論)으로 발전하여 사중이제설(四重二諦說)로 귀결된다. 둘째, 승의제(勝義諦)를 불가언공성(不可言空性)으로 하고, 붓다의 교설을 이 '불가언공성(不可言空性)'의 방편인 세속제(世俗諦)로 하는 이제설은 원효에게 무이중도(無二中道)로 발전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세속제와 승의제와의 상즉(相卽)을 설하는 이제설은 원효에게 생멸상즉(生滅相卽)으로, 승랑에게 유무상즉(有無相卽)으로 계승되고 있다.
중국의 삼론학에서는 이제의 체가 중도임을 밝혀 중도위체론(中道為體論)을 성립하고, 승조의 유무상즉 사상에서 유래한 가명공(假名空) 이론이 삼론학의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 사상으로 계승되어, 이제각론중도(二諦各論中道)[세제중도ㆍ진제중도]와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의 삼종중도(三種中道)로써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원효는『금강삼매경론』에서 속제중도(俗諦中道) ㆍ진제중도(眞諦中道) ㆍ무이중도(無二中道)라는 용어로써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다. 무이중도는 중관학의 이제(二諦)[속제, 진제]와 유식학의 삼성(三性)[변계소집성, 원성실성(시각), 의타기성, 원성실성(본각)]을 서로 융합하고 있다.


Buddha's enlightenment can be interpreted in various ways by how to perceive the twofold truth, which are the absolute truth of enlightenment and the conventional truth of the mundane world. Mahāprajñāpāramitā-sūtra manifests three different types of the twofold truth. First, the twofold truth, which is the form of the ultimate truth and conventional truth as a doctrinal teaching, was passed down to Senglang, and now is developed into 'the logic that the twofold truth is the teaching(二諦是教論)ㆍ'the logic for three kinds of middle way(三種中道論), resulting in 'the sermon of four levels of the twofold truths(四重二諦說)'. Second, the twofold truth, which made the ultimate truth as 'the nature of emptiness cannot be called(不可言空性)' and conventional truth as Buddha's preaching is a temporary expedient of 'the nature of emptiness cannot be called', was inherited by Wonhyo and expanded into the middle way free from dualistic extremes(無二中道). Third, the twofold truth, which preaches integration of all phenomena with one another of the ultimate truth and conventional truth, was inherited by Wonhyo as production and extinction are mutual identification, and by Senglang as existence and non-existence are mutual identification.
The Sanlun school in China established 'the middle way as their essence(中道為體論)' by revealing that the essence of the twofold truth is the middle way and 'the theory of conventionally designated emptiness(假名空 理論)' derived from existence and nonexistence are mutual identification(有無相卽) of Sengzhao is inherited as 'the middle way clarificating the twofold truths synthetically(二諦合明中道)' of the Sanlun school, denoting enlightenment as 'the three kinds of middle way(三種中道)' including 'the middle way discussing the twofold truth separately(二諦各論中道)'[the middle way from the standpoint of the conventional truthㆍthe middle way from the standpoint of the absolute truth] and 'the middle way clarificating the twofold truths synthetically(二諦合明中道)'. In response, Wonhyo of Korea employed the terms, the middle way from the standpoint of the conventional truthㆍthe middle way from the standpoint of the absolute truthㆍthe middle way free from dualistic extremes to represent the stage of enlightenment in Wonhyo's Exposition of the Vajrasamādhi Sūtra. The middle way free from dualistic extremes is converged into the twofold truth[the conventional truth and absolute truth] in Madhyamaka and the three natures of cognition in Yogâcāra[parikalpita-svabhāva, pariniṣpanna-svabhāva(initial enlightenment), paratantra-svabhāva, pariniṣpanna-svabhāva(original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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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정과 비판과 배격의 논리, 『선문정로』 수증론의 한 특징

저자 : 강경구 ( Kang Kyong-koo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5-20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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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는 참선 수행의 지침서이다. 직접 선수행을 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대한다면 어떤 방식의 이해와 적용이 가능할 것인가? 이것이 본고의 기본적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선문정로』는 다양한 인용문을 통해 그 주장의 논거로 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성철스님은 생략, 추가, 변환 등의 방식으로 인용문에 개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용문에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원래적 맥락과의 어긋남을 수반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맥락적 어긋남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새로운 초점 맞추기의 시도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선문정로』에서 몇 개의 장은 부정과 비판과 배격의 주제 의식을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장의 제목이 설정되어 있다. 제13장 해오점수, 제14장 분파분증, 제15장 다문지해, 제19장 소멸불종이 그것이다. 이것은 해오를 중시하는 견해, 지위 점차를 통해 한 단계씩 올라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기획, 불교적 지식의 축적과 지해의 증장을 숭상하는 풍조, 스스로 깨달음을 선언하는 대망어가 횡행하던 선문의 병통에 대한 비판과 치유방안을 제시하고 자 했던 집필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장의 설법에는 이러한 단절과 극복의 실천이라는 주제의식이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에 해당 장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어떠한 주제의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The best way to Sŏn(『선문정로』) is a guidebook of Sŏn Meditation. How can you understand and apply this book from the standpoint of Meditation practice? This is the problem consciousness of this paper. It is based on the argument through various quotations. Here, the monk Songchol intervenes in the quotation by omitting, adding, or converting. Intervention in these quotations inevitably entails a deviation from the original context. Interestingly, at the point where the contextual misalignment occurs, an attempt to focus on meditation and enlightenment is found. Some of the chapters in this book are titled in a way that directly reveals the subject consciousness of negation, criticism, and rejection. The line of Realization of the understanding level & Gradual improvement(Chapter13), The line of Partial breakdown & Partial enlightenment(Chapter14), The line of Hear a lot & Knowing well(Chapter15), Extinction of Buddha seed(Chapter19).
In Chapter13 monk Songchol Criticize such thoughts to value Realization of the understanding level & Gradual improvement. In Chapter14 monk Songchol Criticize such Planning to gradually go up one step and reach enlightenment. In Chapter15 monk Songchol Criticize a trend to venerate the accumulation of Buddhist knowledge and the increase of intelligence. These are intended to present criticism and cure measures for the disease of the Korean Sŏn s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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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송산 무근의 사사무애(事事無礙)적 삶 연구

저자 : 한성열 ( Han Sung-yul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9-23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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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화엄경의 사사무애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와 불교사회복지학의 초석이 되었던 송산 무근의 삶을 조명하기 위하여 시도되었다. 송산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사회경제적으로, 종단 내외적으로도 안정과 쇄신을 위한 노력이 필사적이던 80년에서 2000년대 이다. 송산은 전국이 禪 수행 열풍으로 승속 모두 선원에 관심과 시선을 집중하던 때, 세상의 한복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타행을 하며 불교의 대승사상을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승 불교에서는 세상에 섞여 자신의 수행을 완성해가는 존재를 보살이라 칭하며, 화엄 4조 징관은 『수소연의초』에서 화엄의 세계를 사종 법계(四法界)로 구분하였다. 당시의 한국불교계는 참선 중심이던 분위기에 맞물려 세상 속에서 실천수행을 하는 스님들을 '사판'이라 폄하하고 그들의 사상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였으니 송산 역시 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 수행적 연구는 전개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송산의 활동을 취합하고 사상을 분류하여 화엄경의 실천적 보살 사상인 사사무애법계에 비추어 조명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현대사회의 변질되어가는 맹목적 신앙과 원론적 이론 앞에 종교인의 참다운 수행실천과 불교교리의 진의를 시사하고자 한다.


This study was aimed to illuminate the thoughts of Songsan Mugeun who opened the door to Buddhist social welfare studies in Korea. Songsan's main activities were around 1980 to 2000 when efforts for the stability and renewal of religious order were desperate socioeconomically and longitudinally. He is also a person who realized Buddha's ideas by performing altruism in various ways in the middle of the world when almost every monk focused their attention on the temples due to the sensation of zen training nationwide. In Mahayana Buddhism, these beings are called Bodhisattvas, and Chengguan's footnote on Avatamsaka Article 4 in the commentary classified their world as the “realm of unimpeded interpretation of particulars”. However, despite his so many activities, let alone research on him, even my life has not been properly studied. Therefore, in this study, the traces of Songsan scattered in various places are collected, the thoughts are classified, and the ideology is assigned to the realm of unimpeded interpretation of particulars, and compared with the ideas of Bodhisattva in Avatamsaka Sutra. Thus, it is intended to suggest a return to the original stream and the essence before the blind faith that is altering in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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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엄경』 「여래현상품」의 문학적 표현

저자 : 강기선 ( Kang Ki-s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9-26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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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문학적 표현'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이 글은 크게 2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우선 제Ⅱ장에서는 「여래현상품」의 구성과 중심내용에 대하여 첫째, 회처(會處)와 품명(品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고 둘째, 「여래현상품」의 구성을 셋째, 「여래현상품」의 중심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제Ⅲ장은 「여래현상품」에 담긴 문학적 표현을 첫째, 광명에 담긴 문학적 표현을 살펴보고 둘째, 등장인물의 게송에 담긴 비유를 경문을 토대로 분석해보고 셋째, 「여래현상품」의 문학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첫째는 「여래현상품」의 모임장소(會處)는 제1법회인 정각을 이룬 붓다가야의 보리도량[적멸도량]이며, 「여래현상품」은 60권본 『화엄경』에서는 없는 품이고, 80권본『화엄경』에만 있다는 것이다. 둘째, 회(會)란 경을 설한 모임이고, 처(處)란 이 경을 설한 장소를 말한다는 것이다. 셋째, 불교의 모든 경전은 통상 서론, 본론, 결론에 해당하는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 구성상 화엄대경의 제2 「여래현상품」은 오늘날 본론인정종분에 해당된다. 넷째, 「여래현상품」은 크게 6가지 내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①은 대중이 함께 청하는 것이고, ②는 치아 사이의 광명으로 인연중생을 불러 모음이고, ③은 시방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여 듦이고, ④는 상서를 나타내고 설법을 표현함이며, ⑤는 불덕(佛德)을 드날리고 공덕을 찬탄함이고, ⑥은 결론적으로 무궁에 통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품에는 국토의 세계 바다 미진수 모든 보살들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유려한 문학적 비유와 장치들로써 여래의 모습과 공덕을 찬탄하며 불 세계를 장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이품에 나타나는 문학적 특징은 주로 비유적 표현들, 열거법과 점층법, 은유와 직유 그리고 의인법 등의 종류로써 다양한 세계의 보살들이 등장해 여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s aimed to examine 'literary expressions from 「Yeoraehyeonsangpum」 in 『Avatasakasūtra』'. It consists of two aspects largely, and first of all, in Chapter Ⅱ, the organization and key points of 「Yeoraehyeonsangpum」 are investigated. First, hoecheo (會處; the gathering place) and the meaning of pummyeong (品名), second, the organization of 「Yeoraehyeonsangpum」, and third, the key points of 「Yeoraehyeonsangpum」 are examined. Next, in Chapter Ⅲ, literary expressions contained in 「Yeoraehyeonsangpum」 are studied. First, literary expressions contained in Gwangmyeong are discussed, second, metaphors included in Gesong of the characters are analyzed through the Buddhist scriptures, and third,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Yeoraehyeonsangpum」 are examined.
According to the findings, first, the hoecheo of 「Yeoraehyeonsangpum」 is Boridoryang [Jeokmyeoldoryang] where Jeonggak, the first Buddhist ceremony, was realized, and 「Yeoraehyeonsangpum」 is the pum not found in 「Yeoraehyeonsangpum」, the 60-volume edition, but included only in 『Avatasakasūtra』 of the 80-volume edition. Second, hoe (會) means a gathering in which Gyeong is preached, and cheo (處) refers to the place where it is done. Third, all the Buddhist scriptures generally consist of Seobun, Jeongjongbun, and Yutongbun corresponding to the introduction, body, and conclusion, and in consideration of the organization, Hwaeomdaegyeong's 2nd 「Yeoraehyeonsangpum」 conforms to Jeongjongbun, the body in this age. Fourth, 「Yeoraehyeonsangpum」 consists of largely six parts; ① is where Daejung ask for it together, ② is about collecting Inyeonjungsaeng into the light between the teeth, ③ is about Sibang Daejung gathering like a cloud, ④ is about the representation of auspiciousness and expression of sermons, ⑤ is about spreading Buddhist virtues (佛德) and praising pious acts, and ⑥ is consequently about going through the eternity. Fifth, in this pum, all the characters including countlessly many Bodhisattvas from the world ocean of the land appear to praise the aspects of Yeorae and his pious acts and create the magnificent world of Buddhism with splendid literary analogies and devices. Sixth,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this pum are mainly found from such items as analogic expressions, listing and gradation, metaphors and similes, and personification, and they are added up to revealing the aspects of Yeorae with Bodhisattvas from different worlds and complimenting his pious d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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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십이연기 존재 설명 - 하이데거의 존재 비평과 함께 -

저자 : 우동필 ( Woo Dong-pil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7-30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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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표는 전기 하이데거(M. Heidegger)의 존재 비평과 함께 십이연기(十二緣起, paṭiccasamuppāda)에 나타난 존재(有, bhava) 설명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학과 실재성(realität)에 기반을 둔 관점을 문제로 삼고 현존재(Dasein)의 실존론적(existenzial) 존재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전통 형이상학은 '눈앞에 존재' (Vorhandenheit)를 통해 존재의 특성을 영속적 현전성(ständige Anwesen-heit)으로 파악하고, 그 실재론적 관점을 통해 존재 일반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하이데거에 있어 존재물음(Seinsfrage)의 대상은 '눈앞에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아 그 의미를 발견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의 현존재이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더 나아가 어떤 구조에서 실재론적 관점이 나타나는지를 해명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에 의하면 '세계-내-존재'인 현존재는 '도구성'(Zuhandenheit)의 관계로부터 '눈앞에 존재'인 존재자들에 몰입하고 그 몰입된 관점으로부터 다시 자신과 세계를 파악하기 때문에 실재론적 관점에 예속된다. 실재성의 유래에 대한 하이데거의 설명은 십이연기의 존재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십이연기에서 존재는 '취(取, upādāna)를 연하여 존재가 있다'는 방식에서 설명된다. 취는 경험으로서의 오온(五蘊, pañcakkhanda)과 그것을 욕탐을 통해 실재화한 오취온(五取蘊)을 매개하는 법칙이다. 본 연구에 의하면 십이 연기는 '오온-취-오취온'의 구조를 가지며 이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왜냐하면 오온·오취온의 전개에 기반이 되는 식(識, viññāṇa)은 지향성의 계기들[十二入處]로부터 나타나 느낌(受), 인식(想, 혹은 생각)의 내용을 알며 언어적으로 활동하는 데, 이 개념이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의 기반으로서 개시성(開示性, Erschlossenheit)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세계-내-존재'에서 '도구성'으로부터 실재론적 관점이 형성되는 것과 같이 '오온-취-오취온'의 십이연기에서 '취착된 유'는 행(行, saṅkhāra)의 조작과 함께 식(食, āhāra), 갈애(渴愛, taṇhā)의 조건이 있을 때 다시 유(再有, puna bbhava)로 이어져 실재론적 관점을 지속한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존재 비평의 유사성으로부터 십이연기의 존재 설명은 실재론적 관점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재론적 관점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관한 해명이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shed light on the meaning of the ontological descriptions shown in the conditioned co-arising(paticicasamuppāda) along with the critique of the existence of the early Heidegger. Heidegger takes the perspective based on the traditional metaphysics and reality as a problem and presents the existential existentialism of Dasein as an alternative. According to Heidegger, traditional metaphysics is limited because it identifies the characteristics of existence through 'presence-at-hand'(Vorhandenheit) as 'perpetual presence'(ständige Anwesenheit) and does not explain the general existence through its practical perspective. For Heidegger, the object of 'the question of being' is not 'presence-at-hand', but 'Being-in-the-world' (in-der-Welt-sin), in which one discovers its meaning by taking issue with one's being. Heidegger goes further to revealing the limitations of metaphysics and chooses a strategy to explain in which structure its perspective based on reality emerges. According to Heidegger, its perspective based on reality arises because existing beings, 'Being-in-the-world,' immerse themselves in the presence of 'in front of them' from the relationship of 'ready-to-hand'(Zuhandenheit) and grasp themselves and the world again from that immersed perspective. Heidegger's explanation of the origin of realism provides clues to understand the explanation of the being in Twelve Links. In Twelve Links, an explanation of being is described in the way that 'being(bhava) is depended on the cling'(upādāna). the cling is a law that mediates between 'the five aggregate' as an experience and 'the five clings to aggregate' that take its perspective based on reality through greed. In this study, a consciousness appear from the elements of intentionality and know the content of feeling, perception, or thought, and are linguistically active. This Because there is a similarity between consciousness which underlay 'the five aggregate' and 'World disclosure'(German: Erschlossenheit) which underlay 'Being-in-the-world', 'the five aggregate'-'the clings'-'the five clings to aggregate' has a similar structure to Heidegger's 'Being-in-the-world'. In Twelve Links emboded by 'the five aggregate'-'the clings'-'the five clings to aggregate', the clinged being is connected by its being as an acting of formations while there are feedings or longings, and then take the structure and the perspective which sustains a being. The explanation of the being in Twelve Links through the similarity of 'instrumentality' (Zuhandenheit) of Heidegger's can be interpreted not by a realistic description, but rather as an explanation for how its perspective deriving from realism arises from depending on the cli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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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다르마키르티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비교연구 - 아포하(apoha) 이론과 언어게임(game) 이론을 중심으로 -

저자 : 권서용 ( Kwon Seo-yong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5-3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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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철학이나 인도의 정통육파철학은 이성(붓디)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려는 이성중심주의가 주류를 이룬다. 이성(붓디)은 개별 사물의 차이성을 인식하는 기제가 아니라 개별 사물들의 동일성을 파악하는 수단이다. 동일성에 대한 인식은 개별자들 속에는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본질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다르마키르티와 비트겐슈타인은 궁극적 실재는 이성(붓디)에 의해 파악되는, 동일성을 본질로 하는 보편이 아니라 자기차이성을 본질로 하는 개체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다르마키르티는 언어의 본질 혹은 기능을 디그나가와 마찬가지로 타자부정으로 파악하는 아포하론을 계승한다. 하지만 그는 부정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를 존재로서의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적 효과성을 결여한 것, 동일한 결과를 낳지 않는 것, 바라는 목적을 성취시키지 못하는 것, 착오로 인해 증익(가탁)된 것 등 활동하는 작용으로 간주하여 부정(apoha)을 어떤 문맥에서 사용하는가, 무엇을 대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표현된다는 언어사용의미론에 입각하여 언어지시의미론을 포섭하는 아포하론을 완성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는 단지 대상을 지시하는 협애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언어공동체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언어게임에 참여하여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가 생성된다고 하는 언어게임이론을 제시한다. 의미론으로 말하면 언어게임이론은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에 있다고 하는 언어사용의미론으로 귀결된다. 결국 의미론의 관점에 입각해 본다면, 디그나가의 아포하론과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그림이론은 언어지시의미론을 공유하고 있고, 다르마키르티의 아포하론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론은 언어사용 의미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존재한다. 다르마키르티와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의미대상 사이의 관계는 전자가 인위적 관계를, 후자는 본질적 관계를 주장함에 따라 서로 견해를 달리하지만,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에 이르게 되면 다르마키르티와 비트겐슈타인 두 사상가 공히 언어와 의미대상과의 관계를 인위적 자의적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In Western philosophy and Indian orthodox philosophy of six, rationalism, which tries to grasp the world centering on reason (buddhi), is the mainstream. Reason (buddhi) is not a mechanism for recognizing the difference between individual objects, but a means to grasp the identity of individual objects. Recognition of identity presupposes that within individuals there is an essence that can be united. However, Dharmakīrti and Wittgenstein share the position that the ultimate reality is not the universal, which is understood by reason (buddhi), but only individuals with self-difference as the essence. Dharmakīrti inherits Apohavāda, which understands the essence or function of language as negative negativity, just like Dignāga. However, he does not regard the other as an object of denial as a universal being, but lacks causal effectiveness, does not produce the same results, fails to achieve the desired purpose, and has gained profits due to error. Based on the semantics of language use, which means that various meanings are expressed according to the context in which apoha is used and what the object is used as an active action, the apoha theory is completed. According to Wittgenstein, language is not just a cooperative tool to designate objects, but suggests a language game theory that meaning is created by using language by participating in a myriad of language games that make up our everyday language community. In terms of semantics, language game theory results in language use semantics that the meaning of language lies in its use. In the end, based on the point of view of semantics, Dignāga's Apohavāda and Wittgenstein's theory of language painting share the meaning of language instruction, and Dharmakīrti's Apohavāda and later Wittgenstein's language game theory share the meaning of language use There is a similarity in that there is. As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Dharmakīrti and the previous Wittgenstein's language and semantic objects, the former argued for an artificial relationship, and the latter insisted on an essential relationship. Both are grasping the relationship between language and meaning object as an artificial and arbitrary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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