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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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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7)~5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718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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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선(禪)과 중관(中觀)의 언어관 - 언어 기능과 깨달음을 중심으로 -

저자 : 윤종갑 ( Yun Jong-gab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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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 가운데, 언어를 가장 비판하면서도 언어를 잘 활용해 깨달음에 이르게 한 학파(종파)가 중국의 선[선종]과 인도의 중관사상[불교]이다. 선과 중관에서 언어의 기능은 이중적이다. 선과 중관에 의하면 언어를 통해 깨달음[열반]을 획득할 수도 있고, 고통[윤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개념을 형성하며 모든 판단을 한다. 한 마디로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일체를 분별하는 것이다. 인간은 분별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좋고 나쁨을 구별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는 등 일체의 사유 판단을 한다.
선과 중관에서는 이러한 일체의 사유 판단, 즉 분별을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별하는 마음[분별심]을 여윌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분별심의 주체가 언어라면, 고통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제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킨 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분별심을 조장하는 언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언어의 이중성을 철저하게 파악하였던 선과 중관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언어를 어떻게 방편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선과 중관은 언어를 깨달음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편으로 활용하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다르다. 선과 중관 모두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언어(개념, 분별심)의 해체를 목표로 하지만, 중관은 사구부정(四句否定)과 희론적멸(戱論寂滅), 그리고 선은 선문답(禪問答)과 언어도단(言語道斷)을 통해 언어를 해체함으로써 분별심을 타파한다.
중관의 사구부정은 인간이 논할 수 있는 사유의 모든 형식체계를 네 가지 범주(catuṣkoṭi)로 나누어, 이 모두가 성립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무분별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체계이다. 그 결과 대립과 분별을 초월함으로써 공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른바 희론적멸로써 열반적정을 성취하는 것이다. 선불교는 언어를 사용하여 언어의 길을 끊어버림으로써 분별의식을 끊고, 분별의식이 끊어짐으로써 본래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도단은 언어로부터의 해탈이며, 언어로부터의 해탈은 분별의식 혹은 관념[개념]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선과 중관에서 언어의 기능은 고통(윤회)과 깨달음(열반)의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언어의 최고 기능과 한계를 끝까지 몰아 부친 그 결과 선과 중관은 인간의 모든 고통과 평안의 근거가 언어에 있음을 간파하여 언어의 역기능을 제거하고 순기능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따라서 선과 중관의 수행은 신체적인 측면보다는 인식론적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선과 중관에서의 깨달음이란 언어를 통해 인식론적인 비약 또는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禪)이고 공(空)이다.


Among Buddhist ideologies, the schools that criticize language the most and use language to lead to enlightenment are the Chinese Zen and the Indian Mādhyamika. Language has dual functions Zen and Mādhyamika. You either attain enlightenment through language or fall into the abyss of pain[samsara]. Humans form concepts and make all judgments through language. In a word, humans identify everything through language. Men make all kinds of judgments, such as right and wrong, by distinguishing between good and bad, and by discussing beauty and ugly things. Humans form concepts and make all judgments through language.
The Zen and Mādhyamika use language as an indispensable means of enlightenment, but the methods are different. Both Zen and Mādhyamika aim to dismantle the language(concept, discernment) that is the cause of all suffering. By Mādhyamika breaks through discrimination by deconstructing language through catuṣkoṭi and extinction of prapañca, and Zen through Zen's question and answer and unspeakable.
The catuṣkoṭi negation of Mādhyamika divides all the formal systems of human arguable into four categories, and attempts to attain enlightenment by denying them all. As a result, Śūnyatā is obtained by transcending opposition and discrimination. To achieve so-called Nirvana by the extinction of prapañca. Zen Buddhism uses language to cut off the path of language, thereby breaking the consciousness of discernment, and seeing the original mind by breaking the consciousness of discernment. Therefore, unspeakable is liberation from language, and liberation from language is liberation from discernment or idea [concept].
In Zen and Mādhyamika, the function of language has both aspects: suffering (reincarnation) and enlightenment (nirvana). As a result of pushing the highest function and limit of language to the end, Zen and Mādhyamika understood that the basis of all human suffering and peace lies in language, so they tried to eliminate the dysfunction of language and maximize its good function. Therefore, in the practice of Zen and Mādhyamika, the epistemological transformation is more important than the physical aspect. In that sense, enlightenment in Zen and Mādhyamika means an epistemological leap or experience through language. That is Zen and Śū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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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승불교 초기경전에 나타난 경전 숭배 - 『법화경』을 중심으로 -

저자 : 신명희(정운) ( Sin Myung-hee(jung-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6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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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승불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法華經)』이 주요 텍스트이다. 『법화경』에 나타난 경전 숭배가 어떻게 형성ㆍ발전되었고, 법화행자로서 어떤 행을 실천하며, 그 실천한 행법에 어떤 공덕이 있는가를 규명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B.C. 50년 무렵, 대승불교 교단이 발전하는 종교적 장소가 불탑이었다. 대승불교 교단은 불탑을 중심으로 경전을 결집하고, 성립하였다. 그런데 점차 불탑(佛塔) 신앙보다는 경전 숭배로 발전되었다. 탑은 두 가지 양태이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스투파(stūpa)와 대승불교가 일어난 직후 성행하게 된 경탑(經塔)을 가리키는 차이트야(caitya)이다. 대승불교 경전은 불탑 신앙과 경전 숭배가 혼재되어 있으면서 경전 숭배를 강조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전반부 제 10 「법사품」 이전까지는 불탑 신앙이 중심이고, 중반부[11품~20품]에는 불탑과 경전 숭배가 혼재되어 있으며, 후반부[21품~ ]에는 경전 숭배가 강조되어 있다. 경전을 불탑 안에 모시고 공양하기 때문에 경전 숭배 또한 불탑 신앙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법화경』에서는 경전 숭배를 나타내면서 경전이 있는 어떤 곳이든 여래가 모셔진 곳이므로 사리를 봉안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경전을 숭배하는 『법화경』 법사들은 박해와 질타를 받는데, 법화행자는 어떤 박해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인욕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경전을 숭배하면서 경전 숭배 실천법으로 오종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오종 수행은 수지(受持)ㆍ독경(讀經)ㆍ송경(誦經)ㆍ해설(解說)ㆍ서사(書寫)이다. 한편 『법화경』에서는 5종 수행의 공덕이 나타나 있다. 경전 숭배한 공덕으로 수기를 받아 성불할 수 있다는 점, 보살로서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다는 점, 부처를 친견한다는 점, 보살로서 수행하는데 걸림이 없다고 하였다.


In this thesis, 'The Sutra of the Lotus', which is one of the scriptures of the Mahayana Buddhism, is the main text. It had been written with the purpose of investigating how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that appear in The Sutra of the Lotus had been formed and developed, what practice is put into practice as a Buddhist, and what element there is in the good deed of having practiced.
Around 50 years B.C., the religious place where the Mahayana Buddhism order had developed was a pagoda. The Mahayana Buddhism order had concentrated and established a scripture by being centered on a pagoda. But, gradually, rather than the pagoda faith,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had appeared. The tower had two kinds of aspects. They are the stupa, where the Buddha's sarira had been enshrined, and the caitya which points at the Buddhist scripture tower, which got around to being prevailing right after the Mahayana Buddhism had taken place. Regarding the scriptures of the Mahayana Buddhism, while the Buddhist tower faith and the scriptures worship had been mixed,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has been emphasized. In 'The Sutra of the Lotus', until before the No.10 legal item of the first half, the Buddhist tower worship is the center. And, in the middle part, the Buddhist tower and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have been mixed. And, in the latter part,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has been emphasized. Because the scriptures are enshrined inside the Buddhist tower and are offered to the Buddha, it can be considered that the worship of the scriptures, also, is an extension of the Buddhist faith.
In 'The Sutra of the Lotus', while representing the scripture worship, wherever the place there is the scripture, because it is a place where the Buddha is enshrined, there is no need to enshrine the relics of the Buddha. But, the 'The Sutra of the Lotus' Buddhist priests who worship the scripture receive the persecution and the rebukes. While saying that they must not succumb to any persecution, a person who does the Buddhist paintings had emphasized the bearing of the insults.
While worshiping the scripture in this way, as the methods of putting into practice the worship of the scripture, 5 kinds of the practice have been presented. The 5 kinds of the practices are the suji, the poison song, the sutra recital, the commentary, and the narrative books. Meanwhile, in 'The Sutra of the Lotus', the good deeds of the 5 kinds of the practices appear. The point that, with the good deed that had been carried out, the Buddhahood can be attained by receiving the handwriting. The point that the guarantee of the comfortable life can be received as the Bodhisattva. The point that the Buddha is seen personally. And it was said that there is no obstacle in practising as the Bodhi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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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야경』 실천원리의 의궤화 고찰 - 『현관장엄론』과 『이취경』의 비교를 중심으로 -

저자 : 안인자 ( Ahn In-ja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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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반야경』에서 제시한 보살수행은 계정혜 삼학에 입각한 육바라밀 수행이 주도하였으나 중관사상과 유가유식의 등장으로 인해 대승불교수행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미륵 5부서 가운데 하나인 『현관장엄론『은 『반야경』의 주석으로 유식의 실천원리를 반영하고, 공성을 강조 하지만 중생구제를 위해 불신의 성취를 이상으로 삼는다. 『반야경』 578권의 「반야이취품」은반야교학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살은 중생의 마음과 감각, 육체의 경계를 반야지에 의해 청정한 법신의 경계로 수용하여 법신불조차도 중생계를 열반계로 수용할 수 있다는 교리적 변화를 보인다. 불공삼장에 의해 역출된 『이취경』의 비로자나불은 금강살타를 비롯한 불신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불신론의 변화를 극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경전에는 반야지의 세계를 17단계의 수행차제로 구현하고, 최종적으로 욕계의 변현에 자재한 수행의궤로 정비하였다. 3종지와 일체종지를 반영한 『현관장엄론』의 실천도는 밀교성립에 적극적 영향을 끼쳐 7세기에는 『대일경』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경전의 「주심품」에는 비로자나불이 중생계를 수용하여 중생구제를 위해 삼계를 전전하는 새로운 불신관이 제시되었고, 대승보살의 육바라밀 중심의 수행은 『이취경』에서 단계적 성취에 의한 만다라의 관상수법으로 변화되어 밀교시대의 새로운 실천원리를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In the history of Mahayāna Budhdism in India the early advent of Prajñāpāramitānaya- sūtra suggested new ideas of Emptiness and paramīta providing foundations of Bodhisattva's practices by developing theories of Dependent Rising(緣起說) and Non-egoism(無我) which is succeeding traditions of Sakyamuni Buddha's teaching. The practices of Bdhisattva's was leaded by Six or Ten paramītas but in 4th century the Bodhisattva's practice began to reflected the Yogacarya system of Mind Only shcool and in 8th century was strongly influenced by Esoteric Buddhism. Hereby the Abhisamaya-alaṅkāra (現觀莊嚴論) whose actual author was known by Asanga was a systemization of the practices of Prajñāpāramitā-sūtra which which the Abhisamaya concludes three part of Abhisamaya(現觀), that is summarized by (1) intellectual studies(1-3), (2) Yogacarya to elliminate two passions disturbing mind and wisdoms(2-7), (3) to accomplishing Dharma-kāya(8). The intellectual studies is composed of studying Three types of Wisdom, the doctrines of Śrāvaka, Bodhisattva and Buddha which has been an important subjects of Prajñāpāramitā-sūtra and and the ultimate widosm of Buddha includes accomplishement of Dharmakāya, Saṃbhoga-kāya, and Nirmana-kāya. In the history of Mahayāna Buddhism the traditional Bodhisattva was devoid of accomplishing Buddha-kāya but the existence of Mahābodhisattvas and the change of Nirvana idea inevitably resulted in the come forth of new idea of Buddha-kāya. So the Yogacarya school systemized the stages of Boddhisattvas and Buddhas that the Buddha can manifeste the SamIbhogakaya in the Three Realms to save sentient beings and in Mahāyāna Parinirvāṇa Sutra Buddhas could be born by body of human beings to show stages of enlightenmenT In the midth of 7th century by the advent of Esoteric Buddhism the practice system of accomplishing three kayas of Buddha was advent in the Tantras which these system is accompained by ideas of Mahā-sukha that the wisdom of Bodhisattva contemplates the nature of desire and passion of mind and senses of body and realized it puritness and thusness of intrinsic nature, so that in the Prajñāpāramitā-naya-sūtra (理趣經) those 17 steps of visullization was accomplished by Seed of Letters(種子, bijjas) and Maṇḍalas as a development of Abhisamaya which the principles of practices was suggest by early school of Min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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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당집(祖堂集)』 '시십마(是什摩)' 용처(用處)와 '이뭣고' 화두의 관계

저자 : 엄미경(명준) ( Um Mi-kyoung(myeong-j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7-12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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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선에서는 '是甚麼'와 '이뭣고'를 대역어로 인식하여, '是甚麼'를 '이뭣고' 혹은 '이것이 무엇인가'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是甚麼'의 '是'는 '이(이것)'가 아니라 영어의 'be동사'에 해당되는 서술형 동사의 역할을 한다. '이뭣고' 화두는 '이'가 가리키는 전제 화두가 있어야만 화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전제된 화두나 앞뒤 문구가 없는 단순한 의문사일 뿐인 '是甚麼'를 '이뭣고'라고 해석하고, '이뭣고' 화두를 '是甚麼'라고 옮겨 표기한다. '一物'이나 '本來面目'을 참구하는 화두인 '이뭣고'를 단순한 의문문에 불과한 '是甚麼'를 번역한 문구로 인식함으로 인해서 '이뭣고'는 화두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그에 대해 반박하는 주장들로 인한 '이뭣고' 화두 논란이 일게 되기도 한다. 선어록의 '是甚麽' 해석에서는 '是甚麽' 자체로는 화두로서의 역할을 한 적이 없으며, 단순한 의문문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발단으로 선어록에서의 '是甚麽'에 대한 용처를 면밀히 살펴보았더니, 의문문으로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다그쳐 묻거나 질책하는 어투로 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표적인 선종공안집인 『碧巖錄』이나 온전한 형태로서 더 오래된 전등사서인 『祖堂集』에 등장하는 108회의 '是什摩' 문구의 번역을 통해 '이것이 무엇인가'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뭣고' 화두의 연원과 '이뭣고' 화두 드는 법을 살펴보면, '이뭣고' 화두는 바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로 귀결된다. '一物'을 궁구하는 화두로서 긴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뭣고'라고 간단히 줄여진 것이라는 데서 '是甚麽'와 '이뭣고'는 대역어가 아님이 확연해진다.
그래서, 현재 선종언어 '是甚麼'와 '이뭣고' 화두가 대역어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관계를 다시금 정립하여야 한다. '이뭣고' 화두에 대해서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혹은 '一物'을 참구하는 종류의 화두를 간단히 줄여서 사용하는 화두이다'라고 명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선종언어 '是甚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선가에서 주로 '이뭣고'라는 화두의 한문 표기로서 이와 같이 쓰는데, 본래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의문문에 지나지 않지만, '이뭣고'의 의미인 '此是甚麽', '這是甚麽' 또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의 의미인 '這箇是甚麽物'과 같은 문장의 앞뒤에 붙은 문구를 생략하거나 '이뭣고' 화두의 '이'에 해당하는 전제 화두의 내용이 생략된 형태의 한자어로서 화두의 제목으로 삼아 '是甚麽'라고 표기한다'라고 명시할 것을 제언하는 것으로 선종언어 '是甚麼'와 '이뭣고' 화두의 관계를 정립하였다.


Today's Korean Seon community recognizes “What is?(sisimma 是甚麼)” and “Imwotgo” as corresponding source- and target-language words, and thus “是甚麼” is being translated as “Imwotgo” or “What is this?” In fact the “是” of “是甚麼” is not “this” but functions as a descriptive verb which corresponds to the verb “to be” in English. In the translation of “是甚麼” into Korean, “是” is also used to mean “this (this thing)”, resulting in “Imwotgo”. The hwadu “Imwotgo (What is this?)” requires a preceding hwadu that “this” refers to. However, without any preceding hwadu or any words before or after the term, “是甚麼”, which is only a simple interrogative, the phrase “是甚麼” is being interpreted as “Imwotgo” and the hwadu “Imwotgo” is rendered as “是甚麼” in the Korean Seon community. Originally, the hwadu “Imwotgo” is meant to investigate “one thing (一物)” or “original face (本來面目)”, but as “Imwotgo” is recognized as the translation of “是甚麼”, which is a mere interrogative, arguments about “Imwotgo” not being a hwadu appeared, and counter-arguments were raised, creating a controversy regarding the hwadu “Imwotgo”. If we look into past recorded Chan sayings, “是甚麽” never functioned as a hwadu by itself, but was only used as a simple interrogative. Taking a closer look at the use of “是甚麼” into past recorded Chan sayings, starting with this problem, it was found that it was mainly used as an interrogative sentence by the Seon Master in a tone of urging or rebuking the disciples. I examined the Bian lu (碧巖錄; The Blue Cliff Record), one of the major gongan collections, and Zutang ji (祖堂集; Collections from the Chan Masters Hall), the oldest history of Dharma transmissions that exists in its complete form, and counted 108 occurrences of “是什摩”, and confirmed that it was never interpreted as “What is this?” Investigating the origin of the hwadu “Imwotgo” and how to practice it as a hwadu, “Imwotgo” would then translate as “What thing is this?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These can be abridged to a shorter form “Imwotgo” as a hwadu to investigate the “one thing (一物)”. Therefore, it is clear that “是甚麽” and “Imwotgo” are not exact translations for each other.
That is why we need to correct the current practice which recognizes “是甚麽” and “Imwotgo” as corresponding translations, and reestablish their relationship. In terms of the hwadu “Imwotgo”, it should be clarified that it is a shortened form of the hwadu “What thing is this?” or an abridgment of various hwadu that investigate “one thing (一物)”. And regarding the Seon term “是甚麼”, the following must be clarified. Although the Korean Seon community uses “是甚麼” as the original Chinese phrase for the hwadu “Imwotgo”, “是甚麼” only has the interrogative meaning of “what is”. It is advisable to elaborate on “是甚麼” and explain that it is an abridged form or abbreviation which omitted the preceding and possibly following Chinese characters from such phrases as “此是甚麽” or “這是甚麽”, both of which mean “Imwotgo”, or as “這箇是甚麽物” which means “What is this thing?”, or which omitted the preceding hwadu that is referred to by “i”; In this way I have reestablish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on term “是甚麼” and the hwadu Imwotgo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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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수당시대 주력행법 변천에 관한 고찰

저자 : 김지은 ( Kim Ji-e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7-15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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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부터 전해진 『법화경』은 중국의 토양에서 크게 유행하여 많은 행법이 출현하였다. 천태지의(天台智顗)는 중관 및 유식을 비롯한 당시의 사상계를 연구하여 천태지관의 수행법으로 대성하였다. 천태지의는 사종삼매(四種三昧) 가운데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에서 주력(呪力)의 요소를 도입하였고, 업장소멸과 불보살의 위신력을 얻는 방편을 수용하였다. 중국은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과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의 활약에 의해 순밀(純密)이 수용되었고, 불공삼장(不空三藏)은 중국의 불교문화에 주력의 소재를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법화경』의 전통수행에 대해 주력의 수법(修法)을 차용하였고, 경전의 제존(諸尊)을 만다라(曼茶羅)로 구현한 법화만다라에 대해 금강계 수법의 소재를 반영하였다. 불공은 법화만다라의 도상(圖像)을 밝힌 『법화만다라위의형색법경(法華曼茶羅l威儀形色法經)』과 법화만다라에 입각한 유가행법을 『성취묘법연화경왕유가관지의궤(成就妙法蓮華經王瑜伽觀智儀軌)』로 역출하였다. 의궤에는 관정의식과 의궤별 진언(眞言)·수인(手印)·관상법(觀相法)을 설하고 있으며, 법신 비로자나여래와 『법화경』의 다보여래가 지닌 영원한 진리의 상징성을 적극적인 주력신앙으로 해석하고, 보현보살과 반야지의 문수보살, 부동명왕을 법화만다라 관행(觀行) 수행의 중심으로 완성하였다. 천태지의의 방등삼매행법(方等三昧行法)은 지관수행에 있어서 수행자를 수호하는 보조적 역할이 컸지만, 불공삼장이 법화만다라를 통해 본 주력행법은 내심만다라(內心曼茶羅)를 자각하는 출세간적 수행으로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연구들은 천태지의 이후 제자인 관정(灌頂)과 담연(湛然), 자운준식(慈雲遵式)에 의해 주력적 요소가 활발히 보이는 것에 대해 4종삼매의 영향으로만 파악하고 있지만, 당시대 불공이 소개한 법화만다라의 주력수행도 그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The Lotus Sutra was very popular in Chinese Buddhism since it was imported from India which the sutra supported the foundation of major practices named Five Kind of Dharma Master(五種法師)n namely to Accompanning, Reading, Memorizing, Rewriting, and Preaching the sutra to other people. Tientai Zhiyi(天台智顗, 538-597), the actual founder of the Tientai Sect of Chinese Buddhism wrote many works among which the Great Samatha-vipashyana(摩訶止觀) gave foundation of doctrine and practice system of Tientai SecT Tientai Zhiyi asserted Four Kind of Samadhi(四種三昧) and in Fourth Samadhi he adopted the elements of Esoteric Buddhism by quoting the Dharanis and rites of Extensive Mahayana Dharani Sutra(大方等陀羅尼經) which the expedient means of Esoteric Buddhism for eliminating hindrances and helping practices by making use of dharanis and dreams for symptoms. Meanwhile in Chinese a new trend of Esoteric Buddhism of organized doctrines and practice system was imported from India by Acaryas like Subhakarasimha(善無畏: 637~735) and Vajrabodhi (金剛智, 671~741). The descendents of these two masters organized unique world of Esoteric Buddhism made of Grabha dhatu(胎藏界) and Vajra dhatu(金剛界) which were pervaded to East Asia. Especially the Amoghavajra(不空: 705~774) who was a student of Vajrabodhi had interest in translating and building rite of Esoteric Buddhism to support new practice system of Esoteric Budhdism, which the master translated two works of Lotus Mandala Sutra(『法華曼茶羅威儀形色法經』), Rite of Lotus Mandala Yoga(『成就妙法蓮華經王瑜伽觀智儀軌』) supporitng Esoteric Rite of building Lotus Mandala(法華曼茶羅). Amoghavajra in his two works provided the processes and foundation of Lotus Mandala rite by delicate expedient of Dharanis, Mudras and Mandalas so as to invoke the intrinsic nature of Buddhahood or Tathagatagarbha latent in sentient beings mind. Amoghavajra integrated Buddhas and Bodhisattvas of Lotus Sutra in unified Mandala but the master advocated a developed vision of realization made of accomplishing Five Wisdom of Boddhas as universal realization of Esoteric Buddhism which the main practice was coverged to the vow of practice of Samantabhadra(普賢行願), widdom of Manjusri and protection of Aryacalanatha(不動明王) which was a popular practice structure of Mahayana Buddhim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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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려시대 여성의 출가 양상 분석

저자 : 구자상 ( Ku Ja-sang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9-18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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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시대 여성의 출가 양상을 분석하고 고려 여성의 출가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데 있다. 본 논의는, 기존의 연구들이 고려 여성의 출가 동기를 불교 본래의 구도적 차원이 아닌 정절이나 현실도피 등으로 파악하고, 또한 그것을 전시대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본 논의의 기본전제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은 단절된 것이 아니며, 특히 종교적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고려시대 역시 이전 시대의 전통과 관념을 적지 않게 전승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은 불교수용 초기부터 그 출가가 이루어지고 불교의 정착이나 포교에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에 대해 필자는 불교수용 당시 여성의 위상이 낮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즉 삼국이 여성 차별적인 사회였다면 성평등을 지향하는 불교의 수용은 물론 출가를 비롯한 여성의 불교 참여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을 통합하면서 성립한 고려는 이러한 기존의 전통과 관념을 전승한 사회라는 점에서 당연히 여성의 위상도 낮지 않았고, 개국 이래 불교를 국가적 지배이념이자 신앙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구도를 위한 여성의 출가는 물론 그 수행이나 능력도 인정하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다음으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자료의 한계성이다. 현재 고려시대의 여성 및 출가 여성과 관련된 자료는 상당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유교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던 고려 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들도 대체로 이에 근거하여 고려 여성의 출가를 정절이나 현실도피 등과 같은 비불교적인 현상으로서 해석한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려가 여성의 정절을 강요하고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 사회라는 전제가 필요한데, 고려 여성의 상속권이나 재산권, 성적 자유 등을 감안하면 그렇게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필자는 『고려사』 등과 같이 남성적 시각이 반영된 후대의 자료만으로 고려시대 여성의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고 본다. 특히 고려사회는 기존 사회와의 단절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국시대의 여성 및 출가 여성의 위상, 여성의 출가에 대한 인식을 고려한 전방위적인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This discussion is to analyze the aspect of women's renunciation in the Goryeo period and to study the perception of women in the Goryeo period on renunciation. This discussion began with the recognition of the problem that existing studies interpreted the motive of women's renunciation in the Goryeo period as not the realization of Buddhism but the fidelity or escape from reality.
This discussion is based on the fact that the historical proces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Goryeo period was not cut off, especially in the view that religious traditions do not change easily, and that the Goryeo period also inherited the ideas and traditions of the previous era. In Korea, women's renunciation has been perform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acceptance of Buddhism, and it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settlement and mission of Buddhism. I think this is because the status of women at the time of Buddhism acceptance was not low. In other words, if the Three Kingdoms were a women-discriminatory society, it was impossible to accept Buddhism aimed at sexual equality as well as to participate in Buddhism including renunciation. In addition, the Goryeo that integrated the Three Kingdoms did not have a low status of women in that it was a society that inherited these existing ideas and traditions, and also recognized the women's ability to perform as well as the women's renunciation for the realization of Buddhism in that Buddhism was the dominant ideology and faith of the state since the opening of the country.
Next, I noted that the data on women and bhiksuni in the Goryeo period was very limited and the Confucian ideology of women was strengthened in the late Goryeo period. Also, the existing studies tend to approach and interpret the renunciation of women in the Goryeo period as a non-Buddhist phenomenon such as chastity or escapism. However, in order to see it like that, it is necessary to assume that the Goryeo society was a women-discriminatory society that forced women's chastity and restricted women's freedom. Considering the inheritance rights, property rights, and sexual freedom of women in the Goryeo period,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ir status was low.
Therefore, I think that there is a limit to analyzing the aspect of women's renunciation in the Goryeo period based only on data reflecting the later male perspective. In particular, the Goryeo society was not a disconnection with the Three Kingdoms but an integration, so it is necessary to take a full-scale approach and interpretation considering the status of women and bhiksuni in the previou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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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전요가의 삼매 분류에 대한 재검토

저자 : 박효엽 ( Park Hyo-yeop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1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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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요가의 체계에서 유상/무상 삼매와 유종/무종 삼매의 분류 방식과 관련하여 대부분 학자들은 유상과 유종을 동일한 것으로 또 무상과 무종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의외로 그 복잡한 관계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정승석은 일본학자들의 삼매 분류를 검토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유종(유상+무상)→무종'의 단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삼매 분류를 제시했다. 유종과 무종을 중심으로 하는 이 분류에 따르면, 유상보다 유종의 대상적 범위가 더 넓고 무종이 무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최종적 삼매로 간주된다.
정승석의 삼매 분류와는 달리 최종적 삼매인 무종을 무상에 포함함으로써 '무상 삼매 ≧ 무종 삼매'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안적 분류가 가능하다. 이 분류는, 고전요가의 이원론에서 핵심적인 삼매가 유상/무상이고 두 쌍의 구분이 우월관계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견지에서, 유종/무종 중심이 아니라 유상/무상 중심으로 삼매에 접근한다. YS와 YSBh에 등장하는 삼매에 관한 불명료한 진술은 '유종으로서의 무상'과 '무종으로서의 무상'을 구분하는 대안적 분류를 통해 삼매를 이해할 때 상대적으로 더 명료하게 읽힐 수 있다.
대안적 분류는 기존의 분류에 비해 두 가지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먼저 이 분류는 9번째 지분과 같은 초삼매를 상정하지 않은 채 8번째 지분의 범위 내에서 유상/무상의 삼매와 유종/무종의 삼매를 모두 설명함으로써 8지분을 표방하는 고전요가의 체계 전체와 더 정합적이다. 그다음으로 이 분류는 삼매의 두 쌍이 한편으로 분리되고 한편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상보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고전요가의 의도를 상대적으로 더 잘 반영한다. 쁘라끄리띠와 뿌루샤의 이원론적 형이상학과 실천론에서 유상/무상은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삼매 분류이고 유종/무종은 구원론적인(해탈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삼매 분류일 가능성이 크다.


Regarding the classification method of samprajñāta/asamprajñāta samādhi and sabīja/ nirbīja samādhi in the Classical Yoga system, most scholars consider samprajñāta and sabīja to be the same and asamprajñāta and nirbīja to be the same, and surprisingly pay little attention to the complex relationship. Jung Seong Suk examined Japanese scholars' samādhi classifications pointing out their limitations, and suggested a new classification that shows the stage of 'sabīja(samprajñāta + asamprajñāta) → nirbīja.' According to this classification, centered on sabīja and nirbīja, the target range of sabīja is wider than samprajñāta and nirbīja is considered the final samādhi, one step further from asamprajñāta.
Unlike Jung Seong Suk's samādhi classification, by including nirbīja, the final samādhi in asamprajñāta, alternative classification is possible to show the relationship of 'asamprajñāta samādhi ≧ nirbīja samādhi.' This classification approaches samādhi centered on not sabīja/nirbīja but samprajñāta/asamprajñāta from the perspective that the core samādhi is samprajñāta/asamprajñāta in the dualism of Classical Yoga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pairs does not imply a superior relationship. The unclear statements about samādhi in YS and YSBh can be read relatively more clearly when understanding samādhi through alternative classification that distinguishes 'asamprajñāta as sabīja' and 'asamprajñāta as nirbīja'.
Alternative classification has advantages in two aspects compared to existing classification. First, by explaining both samprajñāta/asamprajñāta and sabīja/nirbīja samādhi within the scope of the 8th limb without assuming 'trans-samādhi' such as the 9th limb, this classification is more consistent with the entire Classical Yoga system that advocates eight limbs. Second, by showing that two pairs of samādhi are separated on the one side and combined on the other side, this classification relatively better reflects the intention of Classical Yoga that implies the complementary relationship. In the dualistic metaphysics and practice theory of Prakṛti and Puruṣa, samprajñāta/asamprajñāta is likely to be a samādhi classification that emphasizes the psychological aspect, and sabīja/nirbīja is likely to be a samādhi classification that emphasizes the soteriological a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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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암(漢巖)의 통도사 인연과 석담유성(石潭有性)

저자 : 염중섭(자현) ( Youm Jung-seop(ja-hy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4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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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에게는 1898년 출가할 때 恩師로 모신 錦月幸凜과 1904년 통도사에서 法師로 모시는 석담유성이라는 공식적인 두 스승이 있다. 이외에 1899년부터 1903년까지 가르침을 받은 鏡虛惺牛가 존재한다.
이 중 한암이 가장 존경한 스승은 경허이다. 이는 한암이 경허와의 관계를 드러내고 깨달음의 계통을 분명하게 정립하기 위해서, 1912년에 「一生敗闕」을 찬술하는 것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암의 공식적인 스승은 幸凜과 石潭이며, 이 중 보다 중요한 것은 석담이다. 한암은 석담과 만 6년이나 통도사 內院庵에서 생활한다. 이런 점에서 한암과 석담의 관계 및 이의 변화를 정리하는 것은 한암의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된다.
본고는 기존의 한암과 석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들의 관계 및 변화에 대해서 검토해 본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암과 석담의 관계가, 경허와 헤어진 뒤에 맺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석담을 경시하고 경허에 경도되는 이유를 추론했다.
또 한암과 석담의 관계는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완화되어 갔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내원암 기간의 긍정성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한암과 경봉의 관계는 맏상좌인 吳海蓮보다도 더 중요했음 역시 분명히 하였다.


Hanam(漢巖) has two official teachers: Geumwolhaengneum(錦月幸凜), who taught him when he left home in 1898, and Seokdamyuseong(石潭有性), who taught him in Tongdosa Temple in 1904. In addition, he was taught by Gyeongheoseongwu(鏡虛惺牛) from 1899 to 1903.
Among them, the teacher whom Hanam admired the most was Gyeongheo. This can be clearly seen in 「Ilsaengpaegual(一生敗闕)」 written by Hanam in 1912 in order to clearly reveal the relationship with Gyeongheo and the line of his enlightenment.
However, Hanam's official teachers were Haengneum(幸凜) and Seokdam(石潭), and the latter was more important. Hanam lived in the Tongdosa Temple with Seokdam for six years. In this regard, it is very important in the study of Hanam to arrange the relationship between Hanam and Seokdam as well as its changes.
Based on the existing studies on Hanam and Seokdam, this paper examines their relationship and its changes. Through this, it is inferred why Hanam respected Gyeongheo more than Seokdam even though he came to know Seokdam after breaking up with Gyungheo.
In addition, it has made clear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Hanam and Seokdam was not steadfast but gradually relaxed. It also summarizes the positivity of the Naewonam period, and makes it clear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Hanam and Gyeongbong was more important than that with eldest monk Ohaeryeon(吳海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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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본의 불교의례 연구 동향

저자 : 김성순 ( Kim Sung-soo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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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근에까지 일본 학계에서 진행된 불교의례 관련 연구동향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진 배경과 축적된 연구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문에서는 일본의 불교의례 관련 연구동향을 크게 죽음의례와 사원의 법회의례, 그리고 의례이론 연구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첫 번째 죽음의례 관련 연구에서는 상장례를 포괄하는 임종행의(臨終行儀), 망혼들에 대한 천도의식인 시아귀(施餓鬼), 생전의 왕생의식인 역수(逆修)의 세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첫 번째 죽음과 천도 관련 의례에서는 기존의 장례불교가 사회의 변화로 인해 서서히 도전에 부딪치게 되면서 관련 의례연구 역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사원의 법회의례에서는 불교의례가 세속화되면서 민간사회에까지 확장되는 현상인 불교민속, 법회에서 행해지는 불교음악의 연주와 성명(聲明; 범패), 각 종단별 사원제도와 법회 등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특히 불교민속 연구는 사원에서 특정 기일에 행해지는 법회나, 수행의례 등이 민간사회로까지 확장·수용되면서 점차 세속화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의례이론 연구에서는 불교의례에 관한 역사학적/사회학적/문화인류학적 연구들을 비롯하여, 의례연구의 방법론을 구축하기 위해 시도하는 연구들을 찾아보았다.
이러한 일본불교 의례연구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자료들은 한국의 불교의례 연구자들에게도 참고할만한 연구 대조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This essay examines research trends within Japanese academia regarding studies on Buddhist ritual. This essay seeks to explain the background and contributions of these studies.
In this essay, I categorize research trends on Japanese Buddhist ritual into the three following categories: research on death rituals, research on Buddhist temple rituals, and research on ritual theory. Within research on death rituals, I further categorize research into studies on death and dying rituals (imjong haengŭi), which includes funeral rights; rituals for offering food to ghosts (siagwi), which are meant to help deceased sprits ascend to a higher realm; and Buddhist rituals to ensure one's happiness in the afterworld (yŏksu), which are performed before one dies. First, in rituals related to death and helping deceased spirits, it can be observed that as Buddhist funeral rites gradually faced challenges due to societal change, and research on rituals also came to reflect these changes.
Second, in research on Buddhist temple rituals, I examine the spread of Buddhist folklore into civil society alongside the secularization of Buddhist ritual and the performance and chanting style of Buddhist music performed at Buddhist services. I also survey each temple system and Buddhist service according to monastic order. In particular, research on Buddhist folklore demonstrates that as Buddhist services and rituals that are held on certain days have become more commonplace in civil society, they have become more secularized.
Third, regarding research on the theory of ritual, I examine research―including historical, sociological, and cultural anthropological research―that attempts to establish a methodology for studying the theory of ritual.
I believe that this this study, which collects and analyses various studies on ritual in Japanese Buddhism, will prove to be a valuable resource for researchers of Korean Buddhist 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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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도네시아에서의 『화엄경』 유통에 관한 고찰

저자 : 구광국 ( Koo Kwang-kuk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7-30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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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승불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이 인도네시아에 유통된 과정과 가능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유통된 『화엄경』의 시기를 살펴보기 위해 400년 초반부터 900년대까지의 불교 왕국의 환경과 구법승과 역경승 그리고 전법승 들의 『화엄경』 관련 활동 사료들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화엄경』 유통 단서가 되는 보로부두르대탑의 구조와 인도네시아에 유통된 비로자나불상의 유형을 분석하였다.
화엄경은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에 편찬된 후 구법승과 역경승 그리고 전법승들에 의해 불교왕국간 활발하게 교류되었음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산스크리트 『화엄경』이 5세기 계빈국 구나발마(求那跋摩 : Gunavarman, 367~431)부터 불교가 유입된 후 끊임없이 유통되었음을 전법승들의 여러 역사적 자료들이 보이고 있다.
대탑의 탑신은 『화엄경』을 소의 경전으로 한 부조상이 장치되어 있음이 주장되고 있다. 대탑의 주요 부분인 탑신이 『화엄경』을 소의 경전으로 조성되었다는 뜻은 대탑의 구조 또한 『화엄경』의 구조적 특징을 형상화한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밀교 만다라에 의해 설명되어 왔던 대탑의 구조는 금강계만다라와 대탑의 불상들의 수인이 불일치를 보이고 있어 화엄의 탑신과 함께 화엄경을 표현한 구조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세 가지 유형의 비로자나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여래두형 비로자나불은 밀교 비로자나불 유형이 형성되기 전에 화엄경을 바탕으로 조성된 비로자나 유형임을 알 수 있다. 그 불상의 형식 중 지권인 것으로 조성된 것은 신라와 같이 밀교 비로자나불과 차이를 보이기 위해 수인만 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래두형 지권인 불상형식이 10세기 이후에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밀교와 힌두교의 교세 확장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인도네시아에서의 『화엄경』의 유통은 구나발마가 인도네시아에 불교를 전파한 400년 초반부터 보로부두르대탑의 건립시기(780~830)의 대 유행을 걸쳐 여래형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유통되었던 10세기까지 지속하다가 그 이후 밀교와 힌두교의 확장으로 유통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된다.


This study aims to clarify the process and possibility of the distribution of Avatamsaka sutra, the highlight of Mahayana Buddhism, in Indonesia. In order to examine the period of Avatamsaka sutra distributed in Indonesia, we analyzed the structure of the Borobudur stupa and the type of Vairocana Buddha distributed in Indonesia, along with a review of language environment of the Buddhist kingdom from the early 400s to 900 in Indonesia.
After being compiled in the late 3rd and 4th centuries, Avatamsaka sutra shows that it was actively exchanged between Buddhist kingdoms by the Buddhist monks, the In Indonesia, various historical data of Buddhist monks show that Sanskrit Hwaeomgyeong has been continuously circulated since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since Gunavarman (367-431), a 5th century Gyebin country.
It began to emerge that the stupa structure of the Borobudur, which had been explained by the mandara of Vajradhātu, is a relief statue that expressed the “Avatamsaka sutra.”
It is argued that the stupa'structure is equipped with a relief statue with the “Avatamsaka sutra” as a main sutra. The fact that the body of stupa, the main part of the stupa, was created with Avatamsaka sutra means that the structure of the stupa also embodies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Avatamsaka sutra.
The structure of the Borobudur, which has been explained by the the mandara of Vajradhātu is are inconsistent showing Vairocana Buddha on the Mandara and stupa have defferent mudra. so, it is clear to say that stupa has the structure of Avatamsaka sutra with the boby of stupa carved with contents of Avatamsaka sutra.
Three types of Vairocana have been excavated in Indonesia, and it can be seen that the non Uncrown Vairocana Buddha was a Vairocana type created based on the Avatamsaka sutra before the type of Esoteric crown Vairocana Buddha was formed with Bodhtagri-Mudra. Among the forms of the Buddha statue, it is believed that it was borrowed to show the difference from the Vajradhātu Vairocana Buddha like Silla.
The Buddha statue form with Bodhtagri-Mudra has not been discovered since the 10th century, which seems to be due to the expansion of the cults of Buddhism and Hinduism. Summarizing the above, it is believed that the distribution of Avatamsaka sutra in Indonesia lasted from the early 400s when Gunavarman (367~431) spread Buddhism to Indonesia to the 10th century when the Vairocana Buddha, through golden age of the Borobudur stupa (7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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