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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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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회과학분야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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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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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2권0호(1978)~43권1호(2021) |수록논문 수 : 683
한국교육사학
43권1호(2021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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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조선인 유학생 연구

저자 : 김광규 ( Kim Kwangkyu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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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관립 여성고등교육기관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도쿄여고사)의 조선인 유학생에 대한 것이다. 본 논문은 도쿄여고사 조선인 유학생 48명을 확인하였고, 각 유학생의 출신, 입학과 졸업, 전공, 졸업 후의 경력, 직업생활과 가정생활 등을 규명하였다. 도쿄여고사 유학생은 딸을 아들과 같은 정도로 교육시킬 수 있는 경제력과 의지를 가진, 부유하고 개명한 가부장의 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여학생들이 다니는 여학교에 취직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직을 가진 배우자와 결혼하여 근대적인 가정을 꾸렸다. 물론 이들의 가정생활, 직업생활이 성별 분업적 젠더규범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바로 결혼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결혼 후에도 직업생활을 이어간 경우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가정생활에서도 직업생활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식민지배의 폭력·억압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도쿄여고사 유학생 중에는 일제 말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4명 있다. 이들의 삶은 동시대 대다수의 조선인 여성과 괴리된 삶을 살아온, 자기 내부로부터도 외부로부터도 스스로를 탈바꿈할 수 있는 각성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탈민족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고학력 여성 교육자의 민낯을 대표하는 것이다.


This paper is about Korean Female students studying abroad at Tokyo Women's Higher Normal School in Japan(1910~1945). This paper identified 48 students and each student's origin, admission and graduation, major, professional and family life. The female students have wealthy and enlightened fathers with the economic power and will to educate their daughters to the same degree as their sons. After graduation, most of them became secondary school teachers of considerable socio-economic status, and married the highly-educated men with professional jobs. Of course, their family and professional life were not completely free from male-centered gender division norms. Many married immediately after graduation, and very few continued their careers after marriage. But most of them lived separate lives from most Korean women, far from economic difficulties and colonial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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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말선초 경연 기구 운영에 관한 고찰 - 세종 이전, 경연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중심으로 -

저자 : 박상진 ( Park Sang Ji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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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여말부터 태종까지 경연에 관한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그 제도적 발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일찍이 경연 제도가 시작된 고려는 서연관 위주로 운영하였으나, 여말부터 국왕의 수신을 중시한 신진 사대부에 의해 조선은 경연에 비중을 두었다. 다만 국초부터 경연은 국왕의 소극적 참여와 경연관의 낮은 업무 집중도로 인해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였는데, 사대부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찍부터 경연관의 종일 교육에 주목하며 정종 때부터 고려 문한 기구 중 하나인 집현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특히 이 관심은 초기 기존 문한 기구의 통합으로 출발해서 문한 기구에 대한 권학 정책과 맞물려 문풍 진작과 인재 양성이라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로 볼 때 세종 때 집현전이 복설되고 경연 기구로 발전하게 된 것은 태종까지 지속된 경연 운영에 대한 선행적 노력의 산물로 보인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ebate on the administration of Royal academic institutes in the period of Yeomal-Seoncho(麗末鮮初) for understanding the tendency to their development and meaning. Goryeo dynasty had ever administered Royal education system as a successor(crown prince)-oriented, however, Choseon dynasty shifted its importance to King-oriented. Nevertheless there is a debate on the adminstration of Royal education system because of King's passive participation and retainer(士大夫)'s low centralization of business as a Royal instructor(經筵官). Therefore they proposed all day-preparatory way(종일교육) of Royal education and stand out the reconstruction of Royal literary arts institution so-called 'Jip-hyeon-jeon(集賢殿)'. In the beginning, this debate focused the consolidation of Royal literary arts institutions(文翰機構). However it transfer the importance on the policy for the encouragement of learning for an intention of boosting of academic spirit(文風振作) and cultivating men of talent(人材養成). The prior effort on the reconstruction of Jip-hyeon-jeon and the development as Royal academic institution during the period of Yeomal-seoncho help them come true in this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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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20-30년대 일본의 조선인 '유학생'에 관한 일 고찰 -중등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저자 : 사토유미 ( Sato Yumi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8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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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부터 30년대 '내지'의 중등교육기관에서는 조선에서 건너 온 많은 수의 '유학생'이 재적했던 학교가 있었다. 도쿄의 다이세이중학교(大成中学校), 쥰텐중학교(順天中学校), 메이쿄중학교(名教中学校), 긴죠중학교(錦城中学校), 교토에서는 세이호중학교(聖峰中学校), 료요중학교(両洋中学校), 히로시마의 고분중학교(興文中学校) 등이다. 이들 학교는 모두 사학으로 학생의 전입과 전출이 잦은 학교였다. 진학처를 갈망하던 조선유학생과 학교 경영상 입학자 확보가 필요했던 사립학교 간에는 수급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유학생들은 차별적 대응에 대한 불만도 있었고 동맹휴교나 운동권 참여로 퇴학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경기 동향에 따라 실업학교에 진학하는 조선유학생도 증가했다. 아이치의 도카이상업학교(東海商業学校)의 사례에서는 조선유학생의 증감이 학교의 존폐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중등교육기관의 대만·조선학생수에 대해 당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없었다. 특히 중등수준 실업학교의 사회적인 역할과 조선유학생과의 관계 등 연구과제가 산적 해있다.


The secondary education institutions in 「Japan Inland」 in 1920s-30s had schools with many overseas students from Korea. Namely, Taisei, Junten, Meikyo and Kinjo middle schools in Tokyo, Seiho and Ryoyo middle schools in Kyoto, Kobun middle school in Hiroshima, etc. All of these middle schools were Private schools, with many students moving in and out. It can be said that a supply-demand relationship was established between overseas students from Korea who were seeking school of higher grade and private schools that needed to secure new students due to school management. However, Korean students were also dissatisfied with the discriminatory treatment, therefore there were a number of cases where they dropped out due to the school strike or participation in social movements. On the other hand, Korean students who were going to technical school have increased due to economic trends. In case of Tokai commercial school in Aichi, it was speculated that the increase or decrease in number of Korean students would affect the abolition of school. At that time, no comprehensive study was conducted on the number of Taiwanese and Korean students in secondary education institutions, it has not got the whole picture yet. In particular, there are many research topics such as the social role of technical school and the relationship with Korean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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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라시대 과학 기술교육의 세 가지 통로

저자 : 안경식 ( An Gyeong-sik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0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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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신라시대의 과학 기술교육의 통로로서 교육 시스템에 대한 글이다. 신라시대의 과학 기술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으며, 관련 교육 시스템 역시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현재 학계에 알려져 있고,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교육 시스템은 국학이라는 학교와 조정의 해당 관서 등 두 가지다. 이 논문의 본론에서는 불교 사원의 불사 관련 부서를 또 하나의 통로로 보고 모두 세 가지 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제Ⅱ장의 1절과 2절에서는 기존 두 통로에 대해 재검토하였다. 특히 신라의 과학 기술교육을 중국과 일본의 사례와 함께 검토하여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제Ⅱ장의 3절에서 또 하나의 통로로 사원에 주목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사원 불사에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큰 사원의 불사에는 성전, 도감전, 속감전 등의 관련 부서를 설치하였으며 주종(鑄鐘)이나 조탑(造塔) 등에서 기술직 박사의 호칭이 사용되었음을 주목하였다. 이는 여기서 관련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검토한 신라의 과학 기술교육의 세 가지 시스템은 모두 국가가 간여하는 인재 양성제도다. 이들은 모두 통일기인 7세기 이후에 성립한 제도이며, 특히 통일 후인 성덕왕, 경덕왕대에는 당(唐)과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과학 기술교육의 전성기를 맞았다. 의학, 산학, 천문학 등 각 방면에서 중국의 교육체제와 텍스트를 도입하여 동아시아 보편적 과학 기술교육체제에 동참하게 되었다. 신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과학 기술교육에는 유학교육에 비해 차별적 시선이 있었다. 이는 유학이 통치의 술(術)로 인정받은 데 비해 과학 기술은 말예(末藝)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his paper is an article on the educational system as a pathway for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in the Silla era. It is estimated that science and technology in the Silla era was very diverse, and related educational systems were also diverse. Currently, there are two educational systems that scholars are debating: the school called Gukhak(國學) and the related government offices.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add the architectural department of a Buddhist temple as another educational system. The reason why I paid attention to the temple as another educational system is that the high-tech science and technology of that time were concentrated in the temple's architecture. At that time, when a large temple was built, a supervisory office such as Seongjeon(成典), Dogamjeon(都監典), and Sokgamjeon(續監典) was established, and there were several professional doctors in this office. This suggests that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took place around this government office.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system in Silla era was established after the 7th century. In particular, the times of King Seongdeok and King Gyeongdeok were the heyday of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in the Silla era. During this period, Chinese education systems and texts were introduced in various fields such as medicine, mathematics, and astronomy, and based on this, they joined the universal trend of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in East Asia. However, generally speaking,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was treated differently than Confucian education. This is because while Confucian education was recognized as a discipline of king,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was treated as insignificant.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system in the Silla era, established after the 7th century, lasted for more than 10 centuries until the late Joseon era, when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education was introdu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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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려중기 법상종(法相宗)의 교육적 의미: 혜덕왕사(慧德王師) 소현(韶顯)의 행적을 중심으로

저자 : 이미종 ( Lee Mi-jo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9-1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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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혜덕왕사 소현의 행적을 중심으로 고려중기 법상종의 종파로서의 정체성 정립 과정을 고찰한 후 그것이 가지는 교육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에 있다. 소현은 법상종 승려로서의 삶을 살기 위하여 사상적으로는 유식사상을 배웠으며, 신앙적으로는 미륵신앙을 몸에 익혔다. 유식사상은 '식'의 분석을 통하여 인간이 어째서 고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 인간이 고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비록 유식사상이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고로서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도움이 필요하다. 법상종에서는 미륵 부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이 문제를 하결하고자 한다. 그리고 소현은 법상종의 종파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크게 법상종 사찰을 정비하고, 유식 관련 해설서(장소)를 간행함으로써 교단의 체계를 확립하는 두 가지 일을 하였다. 소현은 당시의 지방 소재 법상종 사찰인 금산사에 주석하면서 진표에 의하여 미륵하생신앙의 전당으로 만들어진 금산사를 보다 온전한 미륵신앙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하여 미륵상생신앙의 장소로 봉천원 영역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유식 관련 해설서를 간행하기 위하여 금산사에 광교원 영역도 새로 만들었다.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전자는 '상징'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불법의 세계로 안내함으로써 심성의 변화를 꾀하며, 후자는 '개념'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종교적 지도자나 정치적 지도자들을 불법의 세계로 안내함으로써 심성의 변화를 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religious sect of Beopsang-jong in the middle Goryeo-Dynasty,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Hyedeok-wangsa Sohyeon, and to consider its educational meaning. Sohyeon learned Yogācāra Buddhism ideologically in order to live his life as a Buddhist monk, and learned Mireuk's faith in his body. Through the analysis of "consciousness," Yogācāra Buddhism explains why humans have no choice but to live their lives as pain, and how they should be able to get out of their lives as pain and reach nirvana. However, even if Yogācāra Buddhism explains that human efforts can lead to escape from life as pain, it requires the help of faith to achieve it. Beopsang-jong tries to solve this problem with his faith in Maitreya Buddha. In order to establish his identity as a sect of Beopsang-jong, he did two things to establish the system of teaching by reconstructing the temple of Beopsang-jong and to publish a description of Yogācāra Buddhism. Among these two tasks, the former seeks to change the mind by guiding the illiterate people to the Buddhist world through the media called 'symbol', and the latter by guiding religious and political leaders to the Buddhist world through the media called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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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산 피난학교 시절 어느 고등학생의 일상과 독서모임

저자 : 이옥부 ( Lee Ok Boo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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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부산 피난학교 고등학생의 일상과 지적 여정에 주목하여 그동안 간과한 한국전쟁기의 다양하면서도 역동적인 서사를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다. 부산으로 피난 와 피난학교를 다니던 K군은 1953년에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는 같은 학교의 학생 외에도 인근 여러 피난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놀랍게도 모임에서 논의된 것은 전쟁과 관련된 것보다는 미래와 이상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것들로 가득했다. 나아가 자신들의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하여 회지도 인쇄하여 이를 주위에 배포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과외 활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토의를 통하여 미래에 관한 생각들을 가감 없이 나누었다. 피난학교와 피난수도에서 이러한 개개인들이 일상을 영위한 경험과 선택은 현재의 공식적인 서사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사실들이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긴장과 사회 문화적 통제를 넘어서려 한 학생들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역동성을 주목하는 한편 이것이 후일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만든 자산이라고 평가하고자 한다. K군이 평생에 걸쳐 생산하고 전승해온 방대한 기록물 중 한국전쟁기의 것만 적출하지만, 이것은 그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이용한 첫 연구가 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represent the various and dynamic narratives of the Korean War period that have been overlooked by paying attention to the daily lives and intellectual journeys of high school students at Busan Refuge School. K, who had attended an refuge school, established a book club in 1953. In addition to students from the same school, students from several nearby evacuation schools participated in the meeting, surprisingly, what was discussed was more about the future, ideals, and to put them into practice than about war. Furthermore, in order to share their thoughts, they printed a paper and distributed it around them. In addition, one met many people through various extracurricular activities and shared one's thoughts on the future through discussions. The experience and choice of these individuals in refuge schools and the Busan Wartime Capital are facts that are difficult to capture by the current official narrative alone. Pointing to these limitations, the study notes students' choice, determination, and dynamics to overcome the tension and socio-cultural control caused by the war, while evaluating them as assets that created a new future for Korean society in the future. Of the vast archives produced and handed down by the K throughout his life, only the Korean War period is extracted, but this will be the first study using his vast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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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05~1910년 전후 강원 영동지역 사립학교 설립 현황과 졸업생들의 행보

저자 : 장경호 ( Chang Kyoung Ho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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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905년에서 1910년을 전후하여 주로 설립된 강원 영동지역(통천, 간성(고성), 양양, 강릉, 삼척, 울진(평해))의 사립학교 설립과 관련자들의 이후 행보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江原道狀況梗槪』에 보이는 15개의 사립학교 및 구한말 각종 신문에 보이는 강원 영동지역 내 사립학교들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총 36개의 학교가 존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동지역에는 강릉 영주학교가 생긴 이후(1905) 양양 현산학교와 통천 양원학교가 설립되고(1906) 설립된 이래 여성학교, 종교학교 측량학교, 노동학교 등 다양한 학교들이 생겨났고, 야학도 진행되었다. 영동지역 사립학교를 졸업한 인물들을 추적해 보면 대부분 지역의 의원 혹은 강원도 지역 면장을 맡았다. 이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로 전환되거나 폐교되는 과정에서 일제의 교육에 순응한 이들이 졸업 후 관리 임용시험을 보거나 지역에 남아 의원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몇몇 이들은 지역 공립보통학교에 훈도로 남았고, 혹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농민조합을 결성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건축, 상업에 종사하는 이도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status of the establishment of a private school established in Yeongdong, Gangwon-do, around 1905-1910 and the future actions of graduates. In Yeongdong, Gangwon Province, teachers were provided with the support of the Kwandong Society and Gangneung Confucian Academy and the support of local leaders, and teachers and local leaders who were dispatched from Seoul served free of charge. A total of 36 schools in Yeongdong, Gangwon-do, are found to have existed in 15 private schools of Kangwondosanghwnaggyenggae(江原道狀況梗槪) in the province and in various newspapers at the end of the year. Many schools have been established in this area since the establishment of Hyeonsan School in Yangyang and Yangwon School in Tongcheon in 1906. In addition, many women's schools, Buddhist schools, surveying schools, and labor schools were established, and night school was conducted. Looking at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schools were concentrated in Gangneung, Tongcheon, and Gansung, and there were various kinds of schools (female, survey) in Yangyang. Samcheok School was a small number, but all of them were converted to public schools, and half of Uljin (Pyeonghae) schools were converted to public schools. Those who graduated from a private school in Yeongdong, Gangwon-do, were either local councilors or heads of local schools in Gangwon-do. This shows that those who conformed to Japanese education in the process of declining private schools and converting to public schools or closing their schools will take a management appointment test after graduation or remain in the region and be elected as lawmakers. Some remained teachers at local public schools, continuing their education, and participating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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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11~1913년 경성지역 천주교 사범교육 성격 연구 -숭신학교의 교과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저자 : 최우철 ( Choi Woochul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7-21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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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천주교인 교사 양성을 계획한 뮈텔의 요청에 따라 1909년 내한하여 1911년 경성 관내에 '사범교육기관'인 숭신학교를 개교하였다. 숭신학교는 천주교계 학교이면서도 경성 관내에서 '사립'사범교육을 수행했던 기관이었으므로, 식민지기 초기 천주교 선교사들에 의해 실행된 사립사범교육의 일면을 보여주는 학교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글은 당대 교육사의 맥락 안에서 베네딕토회 선교사들의 교육의 성격에 집중해 보고자 시도하였다. 우선, 천주교의 사범교육 운영의 계기는 통감부의 교육제도 개편과 개신교 교세성장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이었다. 따라서 숭신학교의 구상 및 준비 등은 관제과정의 합법성을 득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교과과정은 관제 교과과정에 밀착한 측면이 있었다. 교과내용에 있어서는 『물리학』과 『화학』 등이 독일어 서적을 저본으로 하여 작성되는 등 독일식 요소도 발견되지만, 기타 교과과정, 연한 등 상당 부분은 기존의 관립사범학교과정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관제 사범교육 운영을 염두에 둔 숭신학교는 언어 문제, 인력 부족, 양성의 실효성 문제 그리고 제도적 모호함으로 인하여 끝내 관립 사범과정으로 전환되지 못하였다.


This thesis concerns teacher education by the Korean Catholic Church in the early period of the occupation by the Japanese Imperialistic Government. The Catholic Missionary initiated the Sung-Shin school in 1911 and terminated it in 1913. The school was the first attempt of teacher education of the Catholic Church in the period of occupation. Previous studies explained the process of the school and teacher training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Several kinds of research tried to defin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chool in the context of modernity. This thesis tried to define the character of the teacher training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education. The characteristic of the teacher training by Catholic Missionary is about to obtain legality of the teacher training by the Japanese imperialistic government. The missionary imitated the course of the normal education of Japanese Imperialists in the period of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 Korea. It shows that the missionary had attempted to obtain the legality of teacher education. However, the missionary could not fulfill the condition for obtaining the lawfulness of the teacher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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