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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cultural relics

  • : 동아문화재단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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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975-6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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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42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206
문물연구
42권0호(2022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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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남재우 ( Nam Jae-woo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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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야사 연구는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역사발전 단계론에 입각한 가야의 시대 규정이었다. 둘째는 삼한·삼국 일본열도 내 분국설을 토대로 임나일본부설을 해체하고, 조·일관계사를 명확히 해명함으로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조선(한반도)-왜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셋째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역학관계에서 고구려 중심사관으로 가야의 형성과 존재를 해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분국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세기 초까지도 일본은 수십 개 소국이 분립되어 있었으며, 이들 소국 중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과 백제·신라·가락 계통의 소국들이 본국에 대한 분국(分國)의 형태로 존재하였다는 학설이다.
북한의 가야사 연구성과는 가야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원전 1세기경에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하여 진국에 속한 변한지역에 구야 봉건소국을 세웠다. 1세기 초엽에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김수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세력이 구야 땅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이주해왔으며, 이미 있던 지배세력과 결탁하여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기원 1세기 중엽경에 금관국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 봉건국가들이 연맹체를 형성하였다.
가야 멸망 원인은 가야가 중앙집권을 지향하면서도 분권적 소국연합체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중앙집권적 권력구조형식을 취한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한 것으로 이해했다.


The study of Gaya history in North Korea was conducted in three directions. The first is the regulation of the Gaya period based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stage theory. The second was to clarify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apan from ancient times to the Middle Ages. In other words, the Imnailbonbu(任那日本府) was dismantled based on the theory of a divided states(分國論) in the Japanese archipelago of the Samhan(三韓) and the Samkuk(三國).
Gaya was defined as a medieval feudal state. the theory of divided states is as follows. Even in the early 5th century, the Japanese archipelago was divided into dozens of small countries. Some of these small countries were founded by the people of Samhan, Baekje, Silla, and Gaya. Small countries existed as a form of a divided states over their home countries.
The research results on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process of Gaya are as follows. The people of Gojoseon(古朝鮮) moved south and established Guya(狗耶) feudal small country on the border of Jinguk(辰國) around the 1st century BC. In the early 1st century, political forces centered on Kim Su-ro, which moved south from the north, moved to Guya (Gaya) land and other countries to establish control in collusion with existing forces. In the middle of the 1st century AD, the Gaya feudal state union, which was dominated by the Geumgwan(金官國), was formed. In the late Gaya period, Daegaya led the federation.
The reason for the collapse of Gaya was that it did not escape the stage of the decentralized small-state alliance. Therefore, it was understood that the invasion of Silla, which was a centralized state, could not be prev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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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수현 ( Jo Su-hyun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5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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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양산지역은 신라문화인가, 가야문화인가에 대한 논쟁이 줄곧 이어져 왔다. 연구자들 중 다수는 양산의 중심고분군과 토기문화를 통해 주로 신라문화권으로 인식하여왔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근래 들어 새로운 발굴 자료가 계속 증가하면서 고대 양산지역의 문화 실체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글은 신라와 가야토기가 분화하는 시점인 4세기 후반~5세기 전반의 토기문화를 통해 고대 양산지역의 문화변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고대 양산지역의 토기문화는 신라·가야토기가 분화되기 전부터 김해지역에 존재한 금관가야의 묘제와 토기문화를 수용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문화양상은 적어도 신라묘제와 토기가 출현하는 5세기 전반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양산 산막동 토기가마는 가야문화에서 신라문화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고고자료이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적어도 고대 양산지역은 5세기 전반까지는 금관가야권역 또는 독자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으며, 5세기 후반부터는 신라문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The ancient Yangsan area has been debated whether it is Silla culture or Gaya culture. Many researchers have recognized it as a Silla culture through the central tomb group and pottery culture in Yangsan. However, the recent increase in new excavation data has raised questions about where the culture of the ancient Yangsan area originated. Through the pottery culture of the late 4th century and the early 5th century, when Silla and Gaya pottery were differentiated, we looked at how cultural changes in the ancient Yangsan area developed.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e pottery culture of the ancient Yangsan area was accommodating the tombs and pottery culture of Geumgwan Gaya, which existed in Gimhae before the eruption of Silla and Gaya pottery, at least until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In particular, the pottery kiln in Sanmak-dong, Yangsan, is a decisive data suggesting that it has changed from Gaya culture to Silla culture. Through this aspect, at least the ancient Yangsan area existed as a Geumgwan Gaya area or an independent political entity until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and it is believed that Silla culture was fully accepted from the late 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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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경규 ( Choi Gyong-gyu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9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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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정치체의 수장층(왕)의 무덤인 고총고분의 건축에는 당시 사회정치적 발전과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내포되어 있으며 당대의 최첨단 선진적 토목건축 기술이 구사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야 고총고분은 당대 최첨단 토목건축 기술이 구현된 구조물이며, 그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본고는 영남지역 고고학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야 고총고분 축조에 관계된 여러 논의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으로 학사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2000년대 이후로 가야 고총고분 조사가 이전보다 현저히 증가하였고 2010년을 기점으로 조사와 연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총고분의 경우 조사 자체가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개선하여 더욱 진전된 연구로 진행하기 위한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고총고분의 조사와 연구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야 고총고분 조사의 신동향으로는 발굴조사에 있어서 트렌치 조사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여 수평+계단식 조사, 횡토층 조사 등 다양한 조사방법이 계발되고 적용되면서 가야 고총고분에 구사된 토목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봉토부를 하나의 단위 유구로 인식하고 연역적으로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축조공정을 복원하고, 공정마다 포함된 다양한 고고학적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울러 물리탐사와 같은 인접분야 기술의 융합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조사계획을 수립하고 예측 가능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GPS측량이 발굴조사 현장에 도입되게 되면서 세밀한 등고지형도를 작성하고, 정밀사진실측을 통해 세밀한 단면토층도를 작성하고, 파노라마식의 컬러사진 등을 보고서에 적극 게재하면서 입체적인 해석과 비교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사 및 자료화의 발전을 바탕으로 가야 고총고분의 외형부인 봉토부를 고대 토목기술의 총체로 인식하여 축조기술 해명에 집중하는 연구경향으로 이어졌다. 즉, 가야 고총고분에 대한 토목고고학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신동향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미시적 관점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가야 고총고분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과 경관에도 주목하여 GIS 분석기법을 활용한 가야 고분군간의 공간구조와 경관 분석에 관한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가야 고총고분을 당대 도성 건설이라는 대규모 토목사업의 일환으로 보고, 다른 공적 토목구조물과 유기적 경관을 구축한 것으로 인식한 신연구 경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The construction of the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the tomb of the head of the ancient political community, contains socio-political development at the time and centralization of power, and uses the state-of-the-art advanced civil construction technology of the time. In that sense, the Gaya Ancient Tomb with a gigantic mound are the most sophisticated civil construction technology-implemented structures, and behind them, there must have been a socially organized group. In order to examine the recent trends in archaeology in the Yeongnam region, it is also meaningful academically to organize various discussions on the construction of the Gaya Ancient Tomb and review its meaning.
Since the 2000s, the survey of the Gaya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has increased significantly than before, and many changes have occurred in the survey and research since 2010. In the case of ancient tombs, the investigation and research of ancient tombs can be seen as organically linked to each other because the investigation itself is an essential element for further research by reviewing and improving previous studies. A new trend of the Gaya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Survey recognized the limitations of trench surveys in excavation surveys, and developed and applied various survey methods such as horizontal + step surveys and cross-soil surveys, allowing Access to civil engineering technology applied to the Gaya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In addition, the construction process was restored by recognizing the burial mound as a unit relic and conducting excavation surveys deductively, and various archaeological information for each process was obtained. In addition, through the convergence of technologies in adjacent fields such as physical exploration, it was possible to establish a more three-dimensional survey plan and conduct predictable surveys. With the introduction of GPS surveys to the excavation site, detailed contour topography was created, precise cross-sectional soil maps were created through precision photography, and panoramic color photographs were actively published in the report, enabling three-dimensional interpretation and comparative research. Based on the development of such research and dataization, the close a grave, the outer part of the ancient tomb, was recognized as a relic and led to a research trend to focus on explaining the construction technology. In other words, a new trend, who approached the Gaya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from a civil archaeological perspective, was brought.
Recently, based on the detailed perspective of civil engineering archaeology, the process and landscape of the Gaya Ancient Tombs are also focused on the formation of the Gaya Ancient Tombs, leading to research on the spatial structure and landscape analysis of the Gaya Ancient Tombs using GIS analysis techniques.This can be seen as a new research trend that saw the Gaya Ancient Tombs with a gigantic mound as part of a large-scale civil engineering project called the construction of the city wall of the time and recognized that other public civil structures and organic landscapes were 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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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영호 ( Choy Young-ho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1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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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의 복장유물 가운데 발견된 『묘법연화경현의』 권3∼4 및 『법화문구기』 권5∼8의 개별 판본에 새겨진 기본정보를 교차적으로 비교·정리한 다음, 해당 판본의 판각성격을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원판의 조성시기도 새롭게 진단하였다.
해당 『묘법연화경현의』 권3∼4 및 『법화문구기』 권5∼8은 원판과 함께 후대 보각·보완된 중수경판의 2종류를 찍은 인출본이다. 원판과 중수경판는 서체와 본문 글자·변란의 마모도 및 변란의 굵기, 6행 절첩 형태의 적용 여부, 함차·각수의 유무 등과 같은 기준·비교지표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므로, 이들 지표로 원판과 중수경판을 구분할 수 있다.
『묘법연화경현의』·『법화문구기』의 원판은 6행 절첩의 형태, 판제의 판수제 위치, 전곽의 행수 30행이 서로 일치하며, 『묘법연화경현의』 권3∼4의 원판을 새긴 18명의 각수 가운데 崔奕·正然 등 10명이 『법화문구기』 권5∼8에 포함된 개별 경판을 판각한 각수와 서로 중복·일치하므로, 두 판본의 원판은 동일 또는 근접 시기에 함께 기획·조성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해당 『묘법연화경현의』 및 『법화문구기』의 원판은 11세기 말기부터 12세기 초기까지 운영된 교장도감, 13세기 후기 강진지역의 만덕사, 15세기 중엽 간경도감에서 각각 조성되었다는 기존의 연구 내용과 달리, 14세기 초기 충숙왕 때 조성되었다. 이들 원판을 직접 새긴 각수 行元·真悟·法琪가 충숙왕 때 활동하며 다른 종류의 경판도 판각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4세기 초기 충숙왕 당시는 고려 불교계에서 천태종의 영향력과 위상이 확산되고 있었으며, 무외국통 목암 정오와 그의 문인들은 천태사상의 근본경전도 주도적으로 인출·간행하는 등 『법화문구기』·『묘법연화경현의』가 조성될 수 있는 시대적인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목암 정오의 주도로 간행된 『과주묘법연화경』의 판수제 형태, 판수제 표기형태, 장차 가운데 卄자의 표기, 사주단변·무계 형태 등이 『법화문구기』 권5∼8의 해당 사례와도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조성공간도 목암 정오나 그의 문인들이 주석한 사원일 개연성이 있다.
『묘법연화경현의』·『법화문구기』의 조성조직체계 가운데 각수 조직은 승려·세속인으로 구성된 교·속 이원적인 협조체계로 구성·운영되었다. 더구나 定心·真悟은 법명과 함께 자신이 승려출신이라는 내용도 새겨두기도 하였다.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into the engraving characte of the Myobeopyeonhwagyeonghyeonui & the Beophwamungugi that have been preserved in the Songgwang―Temple. the corresponding edition is the Volume 3·4 of the Myobeopyeonhwagyeonghyeonui & the Volume 5∼8 of the Beophwamungugi. in this process, the bibliographic form & the compositional form & the engraver & the publication information were used as a key analysis indicator. the data of the engraver is the Jeano(真悟) & the Hangwon(行元) & the Beopgi(法琪), etc.
First, the corresponding edition is the woodblock―printed book that have printed out the original woodblocks & the complemented woodblocks of a later period. the original woodblocks & the complemented woodblocks can be identified as the presence or absence of the engraver & the differences of the letter form, etc.
Second, the original woodblocks of the Myobeopyeonhwagyeonghyeonui & the Beophwamungugi have been together engraved at the same or near time. this fact can be confirmed in the case that the engraver & the bibliographic form of the two editions have been overlapped.
Thirdly, the engraving period of the original woodblocks was in the early 14th century of the Goryeo(高麗)―Dynasty's King―Chungsuk(忠肅王). this fact can be confirmed in the activity of the engraver. the engraver is the Jeano & the Hangwon & the Beopgi. and the engraving place of the original woodblocks was at the Temple of the Cheon―Taejong(天台宗).
Lastly, of the original woodblocks can be confirmed in the fact that the organization system of the engraver have been operated the cooperation of a Buddhist―monk and a officialdom(敎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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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병호 ( Ku Byung-ho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15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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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의 양난(兩亂)을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였고 기와가마에 대해 이러한 시간성에 따른 기와가 마 변화에 대한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은 영남지역에 보고된 100기의 기와가마를 삼았으며 기와가마 소성부의 평면형태, 규모를 중점으로 화력을 담당하는 연소부의 공간형태, 소성부의 단 유무, 불턱 높이 및 각도 등에 대한 변화 과정을 수치적으로 계측, 분석하여 그 변화 양상에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소성부의 평면형태와 규모에 따라 가마 세부 구조가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시기적인 변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량화와 함께 신속한 기와 생산의 체제를 갖추어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가마의 구조가 기술력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며 가마 전체 규모의 대형화와 더불어 가마 소성부ㆍ연소부 내의 열효율 제고를 위한 기능성의 향상을 목적으로 내부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This study set out to analyze the overall archeological attributes of roof tile kilns from Joseon excavated and investigated in the Yeongnam region and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changing patterns over time.
The investigator selected 100 roof tile kilns from Joseon in the Yeongnam region fit for an attribute analysis in the study, classified them by the form and periodic pattern, and sorted them out clearly with standard examples for each period.
Based on an estimation that there must have been a surge in roof tile demand at the phase of economic recovery following Imjinwaeran(1592) and Byeongjahoran(1636) and in the process of social development during the latter part of Joseon, the study examined the changing process of roof tile kilns in their partial forms according to each function of their structure to ensure the smooth supply of roof tiles, classified the roof tile kilns in structure by the form and period, and looked into their characteristics.
The study first focused its review on the planar forms and sizes of firing parts, which displayed the changing process of kilns in the form most clearly according to their development during certain periods in connection to the detailed structure of the entire kiln, as the most important attribute criterion.
The reason derives from the purpose of roof tile kilns, which is to produce roof tiles. That is, they must have explored the changes of a kiln structure in the developmental patterns of roof tile kilns to ensure the stable production of quality roof tiles and promote an increase to their production. The main objective of the study is to shed light on them. This means that the most important attribute would lie in changes to the planar forms and sizes of firing parts where tiles were piled up and fired.
In addition, the production of roof tiles in large amounts would require an increase to thermal power accordingly. Predicting that there must have been changes to the cross-sectional form of the burning chamber in the fuel intake, the presence or absence of a step in the firing part, the height and tilt angle of Bulteok, and the planar form of the burning part among the detailed changing patterns of the burning and firing parts, the study measured these attributes numerically and classified and analyzed the changes. The study also traced the process of detecting differences in the planar sizes of roof tile kilns according to their enlargement over time. The analysis of these overall attributes showed a changing process from the production system of single or small kilns to the industrialization stage of roof tile production complexes with large kilns in large numbers to increase roof tile productivity.
The findings demonstrate that the changing patterns of roof tile kilns from Joseon in the Yeongnam region in the internal structure over different periods could be divided into three stages according to the criteria of forms, providing the analysis results of their characteristics.
In the study, the archeological investigation results of the 100 roof tile kilns at 25 locations were put together with the measurements of their form classification according to the changes to their overall structure based on the main attribute criteria including 1) the planar forms and sizes of the firing part, 2) the cross-sectional form of the burning chamber in the fuel intake, 3) the presence or absence of a step in the firing part, 4) changes to the height and tilt angle of Bulteok, and 5) the plane of the burning part to figure them out at a glance on graphs and statistics. This attempt is original as it tried to show the detailed changing patterns of the major functions in overall roof tile kilns at a glance beyond the viewpoint of research to target some parts simply based on the old form classification of roof tile kilns in the academic circles.
As mentioned above, this study was limited to the Yeongnam region and attempted to examine the social and economic aspects of the Joseon Dynasty through changes in the structure of roof tile kilns during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se studies, I would like to expand the scope of research to all parts of Korea during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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