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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연구 update

  •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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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 : 1229-5035
  • : 2713-87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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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56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75
유학연구
56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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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 시대 동유(東儒) 전통의 형성과 그 함의

저자 : 오세진 ( Oh Se-ji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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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에서 '동유'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그 말의 용례가 어떻게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조사하고, 조선의 유학자들이 '동유'라는 말로 자신의 자의식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밝히고자 한다.
조선의 유학 전통에는 학설의 차이, 지역의 차이, 사승관계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유학의 분파들이 있었다. 그중 서로 배타적인 관계로 설명되는 두 학파는 성리학과 실학이고, 이 두 학파의 대립 구도는 조선의 유학사를 설명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을 '주자학자', '성리학자', '실학자'라고 지칭하지 않았고, 대개 자신들을 '유학자'라고 불렀다. 더 구체적으로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에서 유학에 헌신한다는 의미로 '동유'라는 말을 사용했다. '동유'는 '동방의 유학', '동방의 유학자(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본 연구는 근대 이후의 한국철학계와 사상사학계 학문에서 정리된 조선유학사의 설명 틀이 아닌, 조선의 유학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거나 자신들의 유학 전통의 계보를 지칭하면서 사용한 말인 '동유'라는 개념의 용례와 그 변천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성리학자나 실학자처럼 이질적 학풍으로 보이는 유학자들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중국의 유학 전통과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독자적인 동방의 유학 전통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려낼 수 있었다.


There was a Confucian sectarianism in the Joseon Confucian intellectual tradition, which results from differences in doctrines, regions, and master-disciple relationships. Among Joseon Confucian sects, Seonglihak(Neo-Confucianism 性理學) and Silhak(Practical Learning 實學) are mainly used to explain Confucian traditions during the Joseon Dynasty. However, most of the Confucians at that time in Joseon did not refer to themselves as 'Zhu-Xi-ist'(朱子學者), 'Seonglihak scholar'(性理學者), 'Silhak scholar'(實學者). Rather, most of them often did refer to themselves as 'Confucians in the Eastern region'(東儒). This study traces when the concept of Confucian in the Eastern region'(東儒) is used among Joseon confucian scholars, explores how the usages of this concept were deployed, and reveals how confucians in Joseon build the their identity by using this concept, 'Confucian in the Eastern region'(東儒).
Instead of using the previous frame of explanation in the research field of Korean Philosophy and Korean history of thought, this research focuses on their internal self-referring term, Dongyu(東儒) and changes of its implication in history. Taken in its entirety, the argument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Joseon's Confucians, including 'Seonglihak scholar'(性理學者), 'Silhak scholar'(實學者) struggled both to maintain the link with Chinese orthodox confuciansim and to build a differentiated Confucianism in Easter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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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노래로서 도산십이곡의 구현: 악보 및 가사에 담긴 교육적 함의

저자 : 이사미 ( Sami Lee ) , 김병일 ( Byoung Il Kim ) , 김종성 ( Jong Sung Kim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81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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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理發)의 세상을 소망한 퇴계 이황은 일련의 구체적인 작업을 말년에 전개했다. 후학 양성을 위한 도산서당 완공(61세), 학문 체계를 요약한 성학십도 제작(68세)과 함께, 마음공부를 위한 도산십이곡을 작사(65세)하여 노래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도산십이곡은 노래로 완성되지 않은 채, 한 편의 국문 고전 시가로 전달되어왔다. 본고는 도산십이곡의 악보를 만들고, 현대적 일반화 관점에서 가사에 담긴 교육적 함의를 고찰함으로써, 도산십이곡을 '온전한 노래'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가사의 수정된 부분과 발문 내용을 검토하여 도산십이곡 멜로디에 요구되는 여섯가지 사항을 도출하였다. 이에 맞추어 작곡한 멜로디를 지난 3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특성의 집단에 시험 적용한 후, 한글 및 영문 악보를 완성하여 제시하였다. 또한, 퇴계의 사상이 '이발'을 중요시하며 경(敬)을 강조했다는 큰 맥락에서 발문과 가사의 내용을 살폈다. 발문에서는, 도산십이곡이 추구하는 온유돈후ㆍ탕척비린ㆍ감발융통의 마음공부 목적을 퇴계 철학이 강조하는 경(敬)에 연결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전6곡의 '언지(言志)'를 '진리를 향한 뜻'으로, 후6곡의 '언학(言學)'을 '진리를 탐구하는 공부'로 해석하고, 전6곡과 후6곡을 진리를 향한 '마음'과 '행'의 관계로 파악하였다. 그 결과, 열두 곡 각각의 가사에 담긴 교육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도산십이곡 노래를 통해 퇴계의 학문과 삶에 간직했던 온유돈후한 개인적 자아가 초시공간적으로 복제 및 전파되는 '문화 유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Toegye Yi Hwang, who longed for a world of the Truth Manifestation (Li-bal, 理發), developed a series of concrete works in his later years. Along with the completion of Dosan Seodang for nurturing juniors at the age of 61 and the production of Seonghaksipdo, the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 at the age of 68, he wrote the lyrics of the Dosan 12 Poems at 65 while asking for a melody to be added. However, the Dosan 12 Poems has not been completed as a song, and has been delivered as a classic Korean poem. This study tried to implement the Dosan 12 Poems as a 'complete song' by making the score and examining the educational implications contained in the lyrics from a general modern point of view.
First, by examining the revised part of the lyrics and the contents of the epilogue, six requirements were derived for the melody of the Dosan 12 Poems. The melody composed in accordance with this was tested and applied to groups of various characteristics in the educational field for the past three years, and then Korean and English scores were completed and presented. Also, in the broad context that Toegye emphasized 'the Manifestation of the Truth (Li-bal, 理發)' and 'Reverent Mindfulness (Gyeong, 敬)', the contents of the epilogue and lyrics were examined. In the epilogue, it was found that Toegye wrote the poems for the public to sing to bring out one's soft, gentle, sincere and steadfast mind (On-yu-don-hu, 溫柔敦厚), to blow one's narrow-mindedness away (Tang-cheok-bi-rin, 蕩滌鄙吝), and to unite with nature (Gam-bal-yung-tong, 感發融通), which are all connected with Reverent Mindfulness (Gyeong, 敬) emphasized by Toegye. In the same context, 'the words about will (Eonji, 言志)' of the first six poems is interpreted as one's mind and will towards the Truth, and 'the words about study (Eonhak, 言學)' of the following six poems is interpreted as study to explore the Truth. In other words, the first six songs and the last six songs were understood a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ind' and 'action' towards the Truth. As a result, the educational implications contained in the lyrics of each of the 12 poems could be derived from a general perspective.
Through the song of the Dosan 12 Poems, it is hoped that the gentle and generous personal self that was kept in Toegye's study and life will become a 'cultural gene' to replicate and spread beyond space an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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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남 유계의 도학적 경세사상

저자 : 김문준 ( Kim Moon Joo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0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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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俞棨, 1607∼1664)는 17세기 조선의 개혁 경세가였다. 그의 학문 저술과 경세 활동은 조선의 도학정신과 율곡의 개혁정신에 입각하여 안민(安民) 정치를 행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국강병이 아니라 백성들이 인간의 도덕심성에 기반하여 선한 삶이 가능한 대동사회를 이루고자 했다. 유계의 정치 목표는 애민ㆍ양민에 집중되었고, 그는 당시 폐법 개혁을 통해 제도적인 경장을 단행하는 일에 앞장섰다. 유계는 <강거문답>을 지어, 정치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그는 정치 방도를 수기(修己)ㆍ임관(任官)ㆍ구민(救民) 세 가지 일로 요약하고, 무실(務實)을 강조했다. 그는 상소를 올려 공안 개정, 대동법 시행, 군정 개혁, 백성 구휼을 건의하고, 안민을 위해 국정 전분야에 걸쳐 강력한 혁폐를 주장했다. 이를 위한 경세 원칙은 '선안민후부국강병'의 정책 기조와 '양입위출'(量入爲出)의 재정 정책과 '손상익하(損上益下)'의 조세 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계의 경세 활동은 위와 같은 경세 원칙을 바탕으로, 첫째, 부국강병에 우선하여 양민을 우선하는 왕도정치, 둘째, 가난한 농민의 조세 부담을 줄이고 양반 부유층에게 조세를 부과하는 '손상익하'(損上益下)의 개혁 정치, 셋째, 국가 재용 절약, 넷째, 군왕을 비롯한 위정자의 수신과 청렴을 바탕으로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일관된 정책적 지향성을 가지고 추진했다.


Yu Gye (1607-1664) was a reformist politician of the 17th-century Joseon. His academic writings and politics activities were based on the reform spirit of Joseon Neo-Confucianism and the spirit of Yulgok. He wanted to achieve the Daedong Society, where people's good life is possible based on the human moral mind, not 'a rich country and strong country'(富國强兵). His political goals were focused on saving the people and making the people live well. At that time, he took the lead in implementing institutional reform through the reform of bad laws. Yu Gye wrote Questions and Answers by the River(江 居問答) and presented specific measures of politics. He summarized the political method as three things: 'self-discipline'(修己), 'administrative application'(任官), and 'saving the people'(救民), and emphasized 'work in a practical way'(務實). He proposed a revision of 'the Gift List book to the king'(貢案), an enhancement of the Daedong-Law, a military policy reform, the salvation of the people, and insisted on a strong reform of the entry field of state affairs for the promotion of people's lives. The principle of economy can be summed up by the fiscal policy of 'Expenditure on Income'(量入爲出) and the tax reform of 'Profit-down and Loss-up'(損上益下). The politics principle of Yu Gye, first of all, politics by virtue takes precedence over rich and strong solders and helps the people live well. Second, reforms that reduce taxes on poor farmers and impose taxes on the wealthy. Third, saving national finance. Fourth, it eliminates corruption based on the mental disciplinement and integrity of the king and other offic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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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다산 정약용의 『상서고훈』 저술과 개정 과정 연구 - 필사본의 검토를 중심으로

저자 : 김보름 ( Kim Borum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3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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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표는 『상서고훈(尙書古訓)』의 성립과 개정 과정을 규명하고 그 의의를 살피는 데 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상서』의 원본 복원을 위해 역대의 경전과 주석에서 『상서』의 잔편(殘片)과 학설을 모으고 판별하였다. 이 책은 1810년 유배지 강진에서 편찬되었는데, 해배 뒤인 1834년에 대폭 개정되었기 때문에 그 변화의 양상이 주목된다.
『상서고훈』의 성립과 개정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사본에 대한 문헌학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기존 자료들은 물론, 원본적 가치가 높은 2종의 새로운 『상서고훈』 필사본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필사본 상호간의 선후 관계와 전승의 계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전 필사본 중 3종은 개정 이전의 내용을 담고 있고, 1종은 개정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현전 필사본 중에는 1810년 본의 원형을 가진 것은 없으며, 1834년 이전에도 정약용은 몇 차례 『상서고훈』을 수정하였고, 개정본 서례(序例)에서 보이는 체재는 개정본 단계에서 정교화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서고훈』에 대한 이와 같은 문헌 검토는 향후 내용의 탐색과 심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identify the process of writing and revising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and to examine its significance. Dasan Jeong Yak-yong (1762-1836) collected and determined the remnants and theories of the Book of Documents from the confucian classics and annotations of the past to restore the original version of it.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was first written in 1810 in Gangjin, his exile site, and revised in 1834, after being released from the exile site. In the preface to the revised version, he said that he compiled the original 6-volume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and 7-volum Discerning the Phrases of the Book of Documents, but the revised version has a total of 21 volumes. Even with simple calculation, the volume increased significantly, but the specific process and content of the revision remained in question.
In order to clarify the establishment and revision process of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above all,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philological examination of its manuscripts. Therefore, in this study, not only existing materials, but also two new manuscripts of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with high original value were reviewed. Through a comprehensive review of the current manuscripts and records, the original form of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which was first made during the exile, was traced, and the process of revision was elucidated. This is an independent literature review on the final scholarly achievement of Jeong Yak-yong, Old Exegeses of the Book of Documents, and will serve as basic data for future content exploration and in-depth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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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자의 『춘추』대의에 입각한 관중(管仲)의 집권 평가

저자 : 안춘분 ( Ahn Choon-boo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6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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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는 유가의 경전으로서 철학과 문학과 천문학과 예학 등 막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공자가 이 『춘추』를 직필한 것은 후세에 많은 논쟁거리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공자의 보세장민(保世長民)하고자 하는 의도를 생각한다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공자의 『춘추』는 인문학의 완결판으로서 조화로운 삶의 구현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주장하는 『춘추』대의의 핵심인 주관과 객관의 조화를 이룬 중도적 입장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류의 삶은 훨씬 가치 있는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춘추시대의 인물 중에서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의 처세를 연구하였다. 관중은 제나라 출신으로서 제환공을 도와서 패자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재화를 유통시키고 자원을 증산시켜서 백성의 의식주를 풍족하게 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법도를 세우고 교화를 베푸는 부국강병책도 시행하였다. 논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혼란하며 가치관을 재정립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인물을 연구하는 것은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공자의 평가에 중심을 두었으며, 본 논문은 그 평가의 소이연(所以然)을 찾는 작업이다.
춘추시기에 가장 먼저 패자가 된 것은 제환공이었고, 이렇게 된 것은 대부분 관중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어』 「헌문」에서 공자는 관중이 백씨의 변읍 삼백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평생을 마치면서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인 능력이 민심을 얻었다는 증거이다. 「헌문」에서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는데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중의 힘이었다고 한 것도 관중의 정치적인 능력과 재능이 매우 특별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 「팔일」에서 그를 혹평하였다. 관중은 적장을 모셨으며, 환공이 패자가 되게 하였다. 그 후 자신도 패자인 양 사치를 하였으며, 끝내 신하로서의 정명(正名)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를 모른다는 혹평을 받았다고 보인다. 다시 공자는 관중의 그릇은 작다고도 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관중이 막강한 재능과 힘이 있었으면서도 중화(中華) 세계를 실현하지 못하였으며, 그 품은 뜻이 현실적인 입장에 그쳐서 더 크게 보고 행동하기에 미흡했기 때문이었다고 보인다. 이상과 같은 공자의 상반된 인물 평가의 소이연을 상고해 보는 작업은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엄정한 채찍을 내리는 기준을 제시하고, 중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기대효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Spring and Autumn Annals as a Confucian scripture includeds massive contents: philosophy, literature, astronomy, courtesy(禮)-thought etc. It caused a lot of controversy later for Confucius to write Spring and Autumn Annals. Yet, this controversy is not problematic when Confucius' intention for 'protecting the world and making people grow' (保世長民) is taken into consideration. Confucius' Spring and Autumn Annals as the final edition of humanities aspires to the realization of harmonious life. Therefore, when we recognize the moderate stance with the harmony of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as the key of Justice of Spring and Autumn Annals, the life of our humanity will proceed to the place with even more value.
From this viewpoint, Guan Zhong's conduct of life, a prestigious prime minister of Qi (齊), among the figures of Spring and Autumn period was examined in this thesis. Guan Zhong was from Qi, helped Duke Huan of Qi to let Duke Huan of Qi become a leading lord. He also became a prime minister of Qi, and made people's necessities of life abundant by putting goods into circulation and increasing the production of resources. In addition, he enforced measures to enrich and strengthen the country by establishing the law and civilizing the people. The study on this figure is very suggestive at this time when it is politically and socially chaotic and necessary to re-establish the sense of value. In this thesis, the assessment of this person is naturally focused on the evaluation by Confucius and this thesis is work to find the reason for the assessment.
Duke Huan of Qi became the first leading lord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which was possible mostly because of Guan Zhong's ability. In th section of Xian Wen(憲問篇) of Analects(論語), Confucius said that Guan Zhong had taken away Mr. Baek's 300 houses at a border village, but Mr. Baek didn't say words of resentment while eating coarse meals all his life. It's the evidence that his political competence had won popularity. In the section Xian Wen(憲問篇), he mentioned it was Guan Zhong's power that Duke Huan didn't use military force to rally feudal lords and it is also the evidence that Guan Zhong's political ability and talent were very special.
In the section Ba Yi(八佾篇) of Analects(論語), however, Confucius severely criticized him. Guan Zhong served the enemy general, and made Duke Huan become a leading lord. After that, he lived in luxury as if he were a leading lord himself and failed to perceive 'well-mated name or position'(正名) as a vassal. Accordingly, he seemed to have been blamed in that he didn't know courtesy(禮). Confucius also said that Guan Zhong was a man of small caliber. It might result from the fact that Guan Zhong failed to realize the world of Sinocentrism(中華) in spite of his excellent abilities and mighty power and couldn't see and act more broadly because his vision was limited to a realistic position. The works examining carefully the reasons for the conflicting evaluation on the figure by Confucius as above is expected to bring the effect on presenting the standard by which modern people wield a strict whip onto their lives and encouraging them to act fai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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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왕궈웨이가 본 중국 고대 철학의 주요 개념인 '성(性)'에 대하여 -공자·맹자·순자의 성(性)을 중심으로-

저자 : 정균선 ( Jung Kyun-su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3-180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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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국 지식인들에게 서양 사상의 수용은 중국 문명에 대한 절대적 신념을 뒤흔드는 존재였다. 서양 사상을 수용하면서 중국 학술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전통적인 중국 철학 사상에 대한 회의가 일어난다. 왕궈웨이는 서양 사상 중, 독일의 철학자 칸트를 공부하면서 유가 사상을 비판한다. 왕궈웨이는 칸트 철학을 번역·연구하면서, 칸트와 유사한 인식 비판적 사유 방식을 사용하여 중국 철학의 주요 명제를 부정하였다.
1904년 왕궈웨이는 「성을 논함(論性)」에서, 인식 비판적 사유 방식으로 '성(性)'개념을 분석하여 고찰한다. 왕궈웨이에게 '성(性)'이란 선험적인 지(知)에 속하지 않고, 경험적인 지(知)에도 속하지도 않는다. 왕궈웨이에게 '성(性)'이란 앎의 본질 그 자체이며,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다. 이에 경험에 의해 발현한 '성(性)'의 선악(善惡)에 대하여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철학 주요 개념인 '성(性)'의 문제는 형이상학적 명제라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명제인 '성(性)'은 경험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며, 만일 '성(性)'을 분석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모순이 일어난다. 즉, 인간은 '성(性)'이라는 명제를 경험적으로 분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다. 왕궈웨이는 '성(性)'을 재해석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고대 학술에 존재하던 불명확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정리한다. 다만 칸트의 인식론을 중국 전통 철학에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어긋난 부분이 존재하지만, 중국 고대 철학의 명제인 '성(性)'을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 '성(性)'을 재해석 함에 의의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sider the significance of 'xing(性)' that Wang Guowei--(1877-1927) noted, based on his critical analysis of 'xing(性)', a major concept of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y.
The acceptance of Western ideas by Chinese scholars in the 19th century raised doubts about Chinese philosophy. Wang Guowei studied the German philosopher Immanuel Kant (1724∼1804). Wang Guowei used Kant's theory of perception. Wang Guowei denied the main concept of Chinese philosophy. In 1904, Wang Guowei analyzed the concept of 'xing (性)' in Kant's theory of perception. For Wang Guowei, 'xing(性)' does not belong to a priori Knowledge. Also, it does not belong to a posteriori knowledge. 'Xing(性)' is unrecognizable to humans. And the claimed that they could not talk about the theory of good and evil. The main concept of Chinese philosophy 'xing(性)' is metaphysical.
Wang Guowei reinterpreted 'xing(性)'. Furthermore, he reorganized the main concept of Chinese philosophy. His argument is significant in that Chinese and Western philosophy com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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