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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科學硏究 update

  •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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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005-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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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1)~45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376
人文科學硏究
45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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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중등 가사·가정 교과서 주생활 영역에 나타난 주거 근대화 과정에 관한 연구 - 시각 이미지의 활용과 의미를 중심으로 -

저자 : 강혜승 ( Kang Hyesung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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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제2, 3차 조선교육령기(1922-1942)와 해방 이후 제1차 교육과정기 (1945-1963)까지 중등 교육과정 가사·가정 교과서 주생활 영역의 변화 과정에 나타난 주거 근대화 과정을 고찰하여 주거 근대화 논의 속 근대적 주거상이 가진 특성을 추론하였다. 이를 위해 주생활 영역에 포함된 시각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석하여 주생활 개선 논의의 전개 양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교과서 시각 이미지가 주거 근대화 과정에 서 활용되는 방식과 그 의미를 해석하였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가사 교과서의 주생활 개선 논의가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해방 이후 주생활 개선의 실현 여부가 개인의 역량 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당시의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추론하였다. 그리고 주생활 개선은 기존의 생활을 교정하는 통제적 성격이 강하기에, 강압적 지시의 언어보다 효과적인 이상적인 주거 이미지의 사용을 확대해 나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의 주거 근대화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근대적 주거상의 특성은 가정 생활의 과학화, 이상화, 민주화라는 근대적 가치를 위시하여 서구주의적 근대를 추종하는 가치체계였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 시각이미지 속 사물-디자인은 근대적 주거상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지향점으로서의 미래이자 상품 경제를 지탱하는 보상체계를 작동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교육 현장에서 나타난 주거 근대화 과정은 여학생들에게 '이상적 주부상'을 주입하고, 이를 통해 기존 사회의 관습과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또한 다양한 수용주체와 수용양상을 간과하고 현실과 이상의 인식 체계를 단순하게 도식화하고자 했다는 한계를 가진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housing, from 1922 to 1942(the Second and the Third Chosen Educational Ordinance) and from 1945 to 1963 (Korea's liberation to the first national curriculum) in the textbook Home Economics in the Secondary Education, and confirming the characteristics of images of modern housing and exploring its meaning. The main content of this study is to analyze how the book illustrates the process in modernization, in particular the modern residential image and values instilled in students and the appearance of the modern 'home' and 'housewife' were analyzed.
As a result, the following conclusions can be inferred in this study:
First, the discourse on the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 in the educational field was unfolded on the basis of these modern values: idealization, democratization, and scientificization of family life in order to obtain the consent of the majority. The nature of the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 which had a strong controlling character, was developed toward establishing an internalized discipline by demanding the individual's economic capacity to purchase goods and services in modern Korean society based on a capitalist economy.
Second, education for modernization of housing, represented by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 was meaningful in that it could closely exert influence on daily lives. However, by dividing the ideal world into Western and Korean styles, and oversimplifying the eclectic aspects of the real world based, various forms of life for individuals were alienated from the visual images of home economics textbooks.
Lastly, the design that exists in the visual image of the Home Economics in the Secondary Education textbook reinforced capitalism and used as a means of supporting micro-power in that it establishes a more powerful and elaborate ideal home image and functions as a reward system representing a designed product in the re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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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지금까지 공업전습소에 대한 선행연구에서 한일합방 이전 1909년에 발행된 농상공부소관의 『관립공업전습소일람』이라는 문헌에 대한 검토가 부재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1915년에 발행된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일람』을 주요 문헌으로 삼아 한일합방 이전의 농상공부소관의 관립공업전습소의 운영체계까지 아울러 연구, 검토되게 되었고 고종 시대의 상공학교 관제를 토대로 주체적으로 실시하고자 했던 실업교육과 용기화교육의 차원에서 관립공업전습소가 고찰되지 못하였다. '관립공업전습소'와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의 명칭에 대한 구별도 모호한 채로 관립공업전습소 설립에 관한 기록 또한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일람』에 게재된 시설도면과 사진으로 불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것은 농상공부소관의 관립공업전습소의 활동사항과 일람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갑오개혁과 1899년의 상공학교의 관제의 개편으로 설립된 대한제국기의 관립공업전습소에 대해 1910년 한일합방이후에 발간된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의 정보를 중심으로 식민지수탈론적 입장에서 식민지경영을 위한 부속기관과 같이 해석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1909년에 발행된 농상공부소관의 『관립공업전습소일람』과 조선총독부소속에서 1915년에 발행된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일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의 자료를 중심으로 모호하게 대체된 관립공업전습소의 교육내용과 시설배치에 대한 역사기록에 대해서 재고했다. 또한 광무개혁의 연장에서 기계생산에 의한 근대적이 산업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고종의 용기화교육의 비중이 한일합방이전 관립공업전습소의 교육과정에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었음을 논증했다. 이와 같은 관립공업전습소의 설립과 교육과정에 대한 본연구를 통해 개항기 조선의 갑오개혁,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등 근대화를 위한 주체적 노력을 기울인 시기에 대해 주목하고 일제강점기와 구별하여 비교, 검토해야 함을 시사하고자 한다.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re has been no review of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mmerce in 1909 befor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refore, until now, the previous researches have used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ublished in 1915 under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s a major material, while also studying about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under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mmerce in 1907-1910 before being colonized by Japan during Joseon Dynasty and Korean empire period. Thus, the previous research for this modern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could not be considered in terms of modern vocational education and mechanical drawing education, which were intended to be conducted independently before being colonized by Japan. On top of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names of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and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s ambiguous, because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has not been found and not used as a historical records. Not only that, but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as been only used as a historical record even for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during Korean empire period together. There were several mis-records about years and photos for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in 1909, because that data came from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1915), not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1909). This study reconsidered the arrangement of facilities and historical records of buildings related to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mmerce in 1909. In addition, it seems to have been interpreted as an affiliated institution for colonial management from the standpoint of colonial exploitation, even though focusing on the information of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l'(1907-1909).
In this study,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mmerce in 1909 and The Catalog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ublished in 1915 under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ere mainly compared and reviewed. As a result, this study considered that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which was established on the basis of the Gabo Reform in 1894 and the reorganization of the commerce and industry school management system in 1899, while having the vision for the modern industrial and vocational education. The 'mechanical drawing education' which was for the mechanical and industrial production was the big part of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curriculum. It showed that Kojong empire in Korean empire period had the big interested in modern industiral production, but that the part of 'mechanical drawing education' was dramatically decreasing in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fter being colonized and organizing under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t means that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ad another goals for the colonial management by Japan.
This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curriculum of the 'National Industrial Training Center' is intended to suggest that the period of independent efforts for modernization such as the Gabo Reform of Joseon during the opening of ports and the Gwangmu Reform of the Korean Empire. It should be compared and reviewed with Japanese colonial period as a part of Korean modern history to think of independent efforts for moder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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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 근대기 그래픽 디자인의 특성 - 개항부터 해방기까지의 엽서와 책 표지 디자인을 중심으로 -

저자 : 조현신 ( Jo Hyunshin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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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 디자인은 서구의 디자인 양식과 기술이 일본을 통해서 유입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혼융과 탐색으로 시작되었다. 압박의 주체들이 제시한 새로운 감각적 형상들은 식민국에게 양가적이며 모순적인 욕망을 부추겼고, 이에 근거한 모방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만의 고유한 근대 디자인의 미끄러짐, 차이의 미학이 정체성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개항기부터 해방기까지의 엽서와 신문관 잡지 8종과 그 외 북디자인, 싸인에 이르기까지 근대기 그래픽 디자인물의 특성을 범주화하여 제시하였다.
한국의 근대 그래픽 디자인이 드러내는 특성은 다음과 같이 범주화할 수 있다. 1.제국의 미감과 식민지 국토의 혼융. 이는 특히 개항기 제국에서 인쇄되어 조선에 유입된 엽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2. 조선적 아르누보의 탄생. 이는 대중적 통속 소설이자 합방, 전통의 몰락기에 생산된 딱지본 신소설의 시각적 양식화에서 드러난다. 3. 지식인들의 모던 미학 실험은 본격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문단, 화단의 공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4. 전통적 미감의 해석과 변용. 이는 전통을 변용하여 현대의 일상성 안으로 함입하려는 작가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외에 이념과 통속의 표상들이 특히 잡지 표지를 통해 두드러지게 전개되었으며, 로고의 변천을 통해 해방공간의 발랄함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근대 그래픽 디자인의 특성은 해방 후 197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지나, 그 후 일본과 서구 유학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서구 모던 디자인의 감각의 한 지류적 양식으로 변환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This article researched the visual design in Korea from late 19th century to 1950's focused on graphic design, The modernization of Korea, the colony of Japan, inevitably was forced by Japan.. The output of Korean graphic design was regarded as the imitation of Japan style in this period. However the colonial mimicry can not be the same with the original imperial products or behavior in Homi Bhabha's post colonial discours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early modern visual design was based on this perspective. They can be categorised by six groups. The first is the aethetics of Japan imperial influence which was revealed in postcards. The postcard which were printed by colonial government must have spread the ambivalancial attitude among colonial people. The second is the Korean Art Nouve style which were revealed in New Noebel Ddakjibon. This style was influenced by the postcard, but it was transformed into different level of Art Nouve style, The third category is modern experimeatal style. The intelligents tried to design using modern elements and taste, however they could not suggest meaningful theory about modern design, The forth category is using Korean traditonal elements. There were some painters and publishers who advocated the Korean traditional aethetics. The fifh group is the images of ideologies and popularity. The sixth is the possibility of Korean design that was traced in logos in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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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20∼30년대 한국부엌과 여성담론의 상관관계연구 -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한국전통부엌과 근대성 -

저자 : 조혜영 ( Cho Haeyoung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9-13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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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부엌디자인의 역사를 문화적 의미로 서술하기 위해서 근대기 한국부엌 문화와 사용자들의 변화를 여성주의 입장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한국의 전통부엌이 변화의 요구와 만나게 된 배경에는 제국의 식민통치와 근대성의 이념, 그리고 여성이 있었다. 1920년대부터 30년대는 한국의 부엌 담론이 활발히 생산되었던 시기로 국가와 근대 지식인들은 부엌 개선을 “위생”와 “능률성”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실제 한국부엌의 형태는 전통의 형태를 유지하는 괴리감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부엌 담론이 있었지만 실제 부엌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부엌 사용자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의 부엌 사용자들은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문자로 기록되지도 않았고, 일상생활을 객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 부엌의 실질적인 사용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선별하여 그들의 기록과 이야기들 속에서 실질적인 한국 부엌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나혜석의 소설 『경희』를 통해서 조선의 부엌과 여성의 일상생활을, 『여성지우』에 실린 이학득의 「조선부엌과 일본부엌」, 그리고 농촌여성 박현자와 도시 '가사사용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 정칠성의 글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부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시기 부엌 사용자 여성들은 근대 지식인들과 다른 의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대기 전통 부엌의 미덕과 문화가 '비근대'적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가 산업시대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엌 사용자들이 근대성과 상관없이 자연과 생명의 순환고리를 연결하며 여성주의적 가치인 '돌봄'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In order to describe the history of Korean kitchen design in a cultural context, this study attempts to reconstruct modern Korean kitchen culture from a feminist point of view. The Korean kitchen had changed according to the living environment and religious background, but its constructive characteristics were determined in Joseon Dynas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Korean kitchen became 'the other' under the logic of the value system of modernity. The imperial ideology, and modern intellectuals including new women lead the dominant discourses on kitchen improvement as “sanitation” and “efficiency”, but the actual design maintained the traditional way. The reason why colonial kitchen had not changed shows the lack of research on the actual kitchen users, an anonymous 'housekeeper.' Therefore, I tried to find the records and stories of kitchen users of the times from women's magazines and daily newspapers.
Despite Korean traditional kitchens became 'non-modern' constantly criticized alienating from capitalism, the kitchen users tried to keep 'caring labor.' It could be seen that this was because they were carrying out the feminist value of 'caring' by linking the cycle of nature and life during the colonial period of Korea. Korean kitchen of the 1920s and 1930s was the meaning of invisible hearth and living place for the colonial Korea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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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전소설에서 바라본 이해조의 「화(花)의혈(血)」에 반영된 자매의 사생(死生)

저자 : 심치열 ( Shim Chiyeol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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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李海朝)의 「화(花)의혈(血)」은 매일신보에 1911년 4월 6일부터 같은 해 6월 21일 동안 총 66회에 걸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후에 단행본으로 총 7회의 장회소설로 발행되었다. 이해조는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소설을 다작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판소리 창본(唱本)을 산정(刪正)하여 판소리 작품을 매일신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전에 대한 깊은 관심이 또 다른 작품을 탄생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본 논문은 이 점에서 출발한다. 이해조의 작품 중 「화의혈」은 여주인공인 선초의 불운한 처지를 잘 표현한 제목이다. 이 작품의 서사 전개를 고전소설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할 때 상당한 부분이 고전 서사의 전통성과 연관이 깊다.
우선 「춘향전」에서 볼 수 있는 인물구도가 유사하다. 하지만 「춘향전」의 탁월한 작품성에는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이유는 선초가 지향하고자 했던 절개는 남주인공 이시찰이라는 인물 설정이 그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전소설 중 「장화홍련전」에서 볼 수 있는 원귀가 등장하는 것도 유사성을 갖는다. 이러한 원귀의 등장 역시 고전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간에 익숙한 소재라고 볼 수 있다. 장화와 홍련이 자매이듯이, 「화의혈」에서는 선초와 모란이 자매로 등장한다. 선초는 죽은 뒤 원혼이 되어 나타나고, 이때 모란이 언니의 원한을 갚게 된다. 그런데 이시찰에게 원수를 갚는 방식이 바로 선초 원귀가 모란에게 빙의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이러한 빙의가 소재인 작품으로 「설공찬전」이 있다. 빙의는 말 그대로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붙는 것이다. 모란은 찾고 있던 이시찰을 만났을때, 선초의 입장이 되어 낱낱이 그 죄상을 만천하에 공포한다.
그런데 이때의 모습은 모란이 아닌 선초의 원혼이 동생 몸에 들어가 빙의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초가 되살아 온 것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정도이다. 이렇게 이시찰이 자행한 지난날 쌓인 부정한 행적이 드러나면서 그의 최후는 불행하게 살게 된다. 즉 복선화음의 결말 처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묘사된 원혼 및 빙의 과정을 서술자가 개입하여 이시찰이 정신이 미약하여 원혼이 보인다거나, 모란이 일부러 언니인 선초의 모습인양 꾸며서 행동한 것으로 무마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입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일관된 서사의 흐름에 대한 모순과 함께 괴리감을 갖게 한다. 그러함에도 자매의 행위는 이시찰에게 공포(恐怖)와 공포(公布)라는 사적, 공적 기능에 충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From April 6th to June 21st 1911, Lee Hae-jo's novel HawuiHyeol was published as a 66-part series in the Maeil Shinbo. This work was later published as a book of seven full length chapters. Lee Hae-jo was well versed in Chinese literature and was famous for his prolific novel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period. He also studied Pansori Changbon and serialized Pansori works in the Maeil Shinbo. Such a deep interest in classics would have served as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creation of his other works.
This was the inspiration for this paper. Among Lee Hae-jo's works, HawuiHyeol is a title that expresses the unfortunate situation of Seoncho, the heroine. When analyzing the narrative development of this work as an extension of classical novels, significant parts are deeply related to the tradition of classical narratives.
First of all, the characters seen in Chunhyangjeon(춘향전) are similar to the ones found in this work. However, it still falls short of the outstanding work of Chunhyangjeon. The reason is that Seoncho's fidelity is diluted by the presence of the male protagonist Lee Shi-chal.
In addition, the appearance of the spirit is similar to that found in classical novels such as Janghwahongryeonjeo(장화홍련전). This appearance of the spirit can also be seen as a subject familiar to the public that frequently appears in classical narratives. Just as Janghwa and Hongryeon are sisters, Seoncho and Moran appear as sisters in HawuiHyeol. After Seoncho dies, she returns as a spirit, and Moran helps her sister to take revenge. However, this revenge against Lee Shi-chal takes the form of Seoncho possessing Moran. This has similarities to the possession within Seolgongchanjeon(설공찬천).
The act of possession is the transfer of the soul to another person. When Moran meets Lee Shi-chal, who she was seeking, she puts herself in Seoncho's shoes and declares his crime to the whole world. However, her spirit at this time is not of herself, but the spirit of Seoncho who enters Moran's body. Then People question whether or not Seoncho has been revived. As Lee Shi-chal's unjust deeds are revealed by this inspection, his life becomes unhappy.
What is regrettable in this work, however, is that the narrator intervenes in the specific and described process of possession of the spirit by hinting at Lee Shi-chal's witlessness, or that Moran deliberately portrayed herself as her older sister. This intervention hinders immersion in the work and creates a sense of disparity along with contradictions in the consistent flow of the narrative. Nevertheless, it can be seen that the sister's actions caused Lee Si-chal's fear and public hum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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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의 내용과 성격

저자 : 신희경 ( Shin Heekyung ) , 김영 ( Kim Young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21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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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순조19년에 조만영의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궐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국문필사본 자료로 현재 선문대학교 박재연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자료의 내용과 특성을 고찰하여 그 자료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원전의 판독문 전체를 수록함으로써 향후 관련 연구자들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조대비의 친정어머니 은진 송씨는 정보 제공자로서 가례의 정황에 대한 일련의 정보를 구술하였고 이는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의 1차 자료가 되었으며 현전하는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일기라는 표제를 달고 있으나 날짜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기술된 일반적인 일기와는 다르다. 더욱이 초간택부터 친영과 조현례까지 공식 기록 날짜와 함께 여러 객관적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대비의 입궐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날짜를 기반으로 하여 순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특정한 사건 중심으로 하는 글쓰기 방식이 일기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왕실 혼례 과정의 특정 용어를 일반 사가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왕실 혼례에 대한 사대부가의 인식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왕실 혼례의 이면 뿐 아니라 본궁과 궁궐 내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어 궁중 생활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긔묘년됴대비입궐일긔>는 왕세자빈의 혼례와 관련하여 사대부가에서 생성된 유일한 한글 자료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is a record of the process of entering the palace after the daughter of Jo Man-yeong was chosen as the Crown Princess in the 19th year of King Sunjo. This material is a Korean manuscript and is in the possession of Professor Jae-yeon Park of Sunmoon University. In this paper, the content and characteristics of the data are reviewed and the value of the data is re-examined and the entire readings of the nuclear power plant, which have not been made public, are included. Because of this, it is intended to be used as basic data for related researchers in the future. As an informant, Jo's mother dictated a series of information about the circumstances of the family, this became the primary source of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and it is presumed that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was written based on this.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has the title of a diary but it is different from the usual diary format. Moreover, there is a discrepancy between the official date of record and several objective facts. But it is recorded based on the date with the purpose of recording the process of entering the palace in the form of a diary. In this respect,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shows that a writing style centered on a specific event can be included in the category of diary.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replaces specific terms in the royal wedding process with terms used by ordinary families, this shows the perception of the noble families of the royal wedding.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is valuable as a historical document of royal life as it provides detailed information about the main palace and life in the palace as well as the other side of the royal wedding. More than anything < Guimyonyeon-Dyodaebi-ibgwol-Ilgui > has literary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it is the only Korean material produced by the royal family in relation to the wedding of Crown Prin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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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무속 고혼의례의 물질문화 중 고혼대상과 상징물을 논의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무속의 고혼의례는 조선시대 여제(厲祭)와 수륙재(水陸齋)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가정하여 전존(傳存)하는 조선시대부터 1930년대까지 문헌의 전거(典據)를 연구대상으로 살펴보았다.
고혼(孤魂)이란 불가항력적으로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자(死者)를 말한다. 조선시대 고혼은 재해와 역병(疫病)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여겨져 국가에서는 여제와 수륙재를 거행해 고혼을 위로하였다. 여제는 전국에 조성된 여단(厲壇)의 신좌(神坐)에 신주목(神主木)으로 표상된 성황패(城隍牌)와 무사귀신패(無祀鬼神牌)를 세워 지냈는데, 여제 전 성황에게 발고제(發告祭)를 먼저 지냈다. 조선중기 무사귀의 위수(位數)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이는 조선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전기 수륙재는 여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국행수륙재로 거행되어 성황단이 배치되었으나, 조선후기 성황단은 생략되었다. 이는 수륙재에서 성황의 비중이 낮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륙재의 고혼대상은 여제의 무사귀에 근심걱정이 죽음의 원인이거나 사회적 불평등에 희생된 고혼 등을 추가하여 감로탱에 도상으로 표상하였다.
조선시대 일부 지역에서는 여단과 성황사를 합쳐 여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빈번한 역병 창궐로 인한 별여제 거행으로 조선 후기 들어 여제와 여단이 마을제의와 성소(聖所)로 수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속의 고혼대상은 의례의 종반부에 잡귀잡신의 범주 안에서 걸립·성황·영산·상문·수비 등이 초대된다. 이 중 여제의 무사귀는 영산으로 초대되며, 여제의 용례(用例)처럼 영산을 청하기 직전에 성황을 놀린다. 이 때 성황의 비중은 높지 않으며 이는 수륙재의 영향으로 이해된다. 무속의 고혼은 무사귀의 틀 안에서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여 인격화·전물·헌물·신위 등으로 다양하게 표상된다.
여제와 수륙재 그리고 무속의 고혼의례는 모두 해원의례로서의 성격을 띤다. 여제가 고혼을 위로하여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수륙재와 무속은 고혼의 타계 천도까지도 염원한다. 그런데 무속의 고혼의례에서는 천도의례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고혼의 한을 풀어줌으로써 고혼이 현세에서의 미련을 더 이상 갖지 않고 영원회귀의 순환체계 속으로 재 편입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함의되어 있다.


The purpose of the study was to reveal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material culture of Gohon ritual discussing subjects and symbols of Gohon. I examined literatures from the Joseon Dynasty to the 1930s assuming the Gohon ritual of shamanism was influenced by Yeoje and Suryukjae in Joseon Dynasty.
Gohon means a dead person who has died abnormally.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Gohon was regarded as the cause of disasters and plague, and the state consoled the Gohon with Yeoje and Suryukjae. The number of Musagwui tablets was changed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which is understood to reflect Joseon's valu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eonghwangdan was placed in Suryukjae sponsored by the state like Yeoje but it was waived after the mid-Joseon Period. This means that the importance of Seonghwang in Suryukjae had been decreased. The subjects of Gohon including ghosts were sacrificed in social inequality and fear in Suryukjae were expressed in icons of Gamrotaeng.
In some areas of the Joseon Dynasty, Yeoje used to be held with Yeodan and Seonghwangsa together. It is presumed that Yeoje and Yeodan were accepted as village rituals and sanctua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due to the Byeolyeoje of the plague spread. Geolip, Seonghwang, Yeongsan, Sangmun, and Subi as subjects of Gohon are invited at the end of the ritual. Among them, the Musagwui of Yeoje is invited to Yeongsan. Seonghwang is consoled in the ritual before inviting Yeongsan like Yeoje, At this time, the importance of Seonghwang is not so high.
It is understood as the influence of the Suryukjae. Subjects of Gohon in shamnism have been represented in various ways by personalization, offering, and ancestral tablet reflecting periodic and social situation within the framework of Musagwui.
Yeoje, Suryukjae, and Gohon ritual of Shamanism have same characteristic as a ritual of fulfilling wish. If the purpose of Yeoje to comfort the Gohon is something unauspicious not to happen, Suryukjae and shamanism wish the Gohon to go to heaven. But shamanistic ritual never perform guide ritual to heaven. It only wishes the Gohon to return to the eternal recurrence loop by releasing the resentment of the Go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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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전력체계의 재구성 과정을 추적하는 이 논문은 특히 가용 자원과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재건을 이뤄야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한 한국의 전기기술자들과 그들이 고수한 수력발전 중심의 전력체계 구상에 주목한다. 이시기 전원개발을 둘러싼 기술정치는 무엇을 한국 전력체계의 기본 발전원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기술 선택의 문제로 집약됐다. 미국 원조기구의 담당자들은 한국의 심각한 인플레를 억제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빠르게 건설할 있는 화력발전소를 도입해 최소한의 전력공급을 확보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전력체계 구축이야말로 향후 국가 건설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의 지형과 자원 배분을 고려한 중대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해야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한국 전기기술자들의 주장은 합리적 기술 선택의 외향을 띠었지만, 기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전력체계가 소규모 화력에서 대규모 수력 발전으로 중심으로 전환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식민지의 유산이었다. 결국 당시 한국의 전원개발이 원조자금에 의존했던 만큼 수력중심의 전원개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거듭된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 선택지로서 화력발전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의 원조기구가 제공한 대규모 화력발전소 기술은 더 이상 낡은 기술이 아닌 자본과 자원을 한층 유연하게 하는 기술 요소였으며, 곧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화력발전을 포함하는 새로운 전력체계 재구성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In the 1950's, planning the electric power system for South Korea involved many powerful actors such as the United States aid agencies, American technology advisory groups, Koreans electrical technical expert groups and relevant Korean-government agencies, and of course Korean geographical and material settings. While all the involved parties agreed on the need to secure electricity urgent, they needed a long process for negotiating their different ideas about what was economically, politically, and technologically rational for South Korea. This paper examines techno-politics that produced an agreement about the new power development plan in South Korea, by focusing on various conflicts between different parties. Above all, the U.S. aid agencies, which wanted to curb Korea's severe inflation and stabilize society, said it would be enough to quickly introduce several thermal power plants to secure a minimum power supply. However, the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thought hydropower plants more appropriate for Korea and more economic in the long run given its geographical condition and its reliance on imported oils. These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argued that hydro-electricity was a reasonable choice of technology, but in fact, it was a colonial heritage created based on the experience of Korea's power system growing rapidly from small-scale thermal power to large-scale hydroelectric power plants. Eventually, Korean electrical engineers failed to persuade the American aid organization, but they were able to discover thermal power generation as a new technology option. Large-scale thermal power plant facilities and retraining programs provided by the U.S. aid organization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Korean electric engineers to recognize thermal power generation as a technology factor that further flexibility capital and resources, and soon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were able to establish a new strategies for construction of power plants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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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중국과 대만의 인호 비교 연구

저자 : 김미경 ( Kim Mikyung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9-31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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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부호는 글에서 문장의 구조를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부호로서 의미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면 올바른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 중 인호는 말이나 글을 직접 인용하거나 어떤 성분을 두드러지게 할 때 쓰는 문장 부호이다. 중국의 현행 문장 부호 규정은 「표점부호용법」(2011)이고, 대만의 규정은 「중정표점부호수책」(2008)인데, 이 둘 모두 1920년의 「신식표점부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중화민국의 대만 천도 이후 각자 규정이 개정되면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호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중국과 대만이 규정의 차이로 인하여 양쪽의 문장 부호 사용에서 오류가 종종 발생하는데, 그 가운데 인호의 사용 오류가 적지 않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중국과 대만의 문장 부호 중 인호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다. 가로쓰기용 인호의 경우 명칭은 양쪽이 동일한데 그 형식이 서로 다르다(중국 “ ”, ' ' -타이완 『』, 「」). 그리고 중국은 쌍인호가 기본형이고, 대만은 단인호가 기본형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인용이나 강조를 나타낼 때 주로 쌍인호를 사용하고, 대만은 주로 단인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인호가 동시에 사용 될 경우 중국에서는 바깥쪽은 쌍인호, 안쪽은 단인호를 쓰는 반면에 대만에서는 반대다. 또한 중국에만 있고 대만에는 없는 규정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특히 한국인 중국어 학습자와 사용자들이 문장 부호를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더 좋은 중국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This study aimed to compare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of Chinese and Taiwanese quotation marks in use. As a result, several significant facts were found as follows. First, they are employed to directly cite or intendedly emphasize words, phrases, or passage. Second, they are classified into two, single and double quotation marks. Third, in horizontal writing style, the forms of quotation marks on both sides are different. “ ” and ' ' are used in Chinese, 『』and 「」are used in Taiwanese. Fourth, it was obvious that the main functions of quotation marks are similar on both sides, but double quotation marks are mainly used in China and single marks in Taiwan. Fifth, as they are used at the same time, double quotation marks are adopted outside and single quotation marks are used inside, but reverse in Taiwan. Sixth, there remain specific different uses on the citation marks. With references to the findings from the comparison, high awareness and perception in use of the quotation marks will enable Korean Chinese learners to employ more accurate ones in Chinese writing style, and further research is needed.

KCI등재

10'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활용한 학술적 글쓰기 수업 사례

저자 : 김예니 ( Kim Yae Ni ) , 장영미 ( Jang Young Mi )

발행기관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人文科學硏究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9-34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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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디지털 환경에 친숙한 MZ세대에게 적합한 학술적 글쓰기 수업모델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는 MZ세대에게 '보는' 활자의 익숙함에 반해 '읽는' 문자의 독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른 학교와 다름없이 S여대의 <창조적 사고와 글쓰기>는 전 학과가 같은 커리큘럼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MZ세대를 위한 차별화된 수업 전략, 교수법이 필요하다. 독서와 글쓰기의 경험과 필요성이 적은 실기 전공 학과를 중심으로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서 지도법을 적용함으로 MZ세대에 적합한 수업 전략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와 읽기 경험이 적고 낯선 학생들의 방어기제를 해체하고 자발성과 적극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서 지도법으로 수업한 후, 이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와 성취도를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9주차부터 14주차까지 수업에서 교수자는 대학에서 읽기 교육과 쓰기 교육의 연계성과 필요성 등을 설명하면서 책 읽기를 독려하였고 5주에 걸쳐 온라인 소회의실에서 조별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한 권의 도서에 대한 충분한 이해, 폭넓은 사고는 깊은 통찰과 작품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 이어져 학생들의 '학술적 글쓰기' 과제를 수행하는데 눈에 띄는 성취와 만족감을 보여줬다. 사후 설문조사에서 독서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토론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학술적 글쓰기 전반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양한 의견과 관점, 정보를 공유한 것과 토론으로 독후활동을 연계한 것이라는 응답을 확인하였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기반으로 한 수업의 효과는 긴 글, 학술적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던 학생들의 두려움 해소와 제대로 된 독서 경험을 가졌다는 데 있다. 특히, 독서를 통해 비판적 사고와 통찰력이 향상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는 것은 이후, 꾸준한 독서의 동인이 되고 독서 하는 방법에 대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한 권의 책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독해력이 향상되었다. 향후, 대학 글쓰기 교육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동인이 적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디지털 시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강화한다면 실제 글쓰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This study aims to suggest an academic writing class model suitable for the MZ generation familiar with digital environments. The MZ generation has confidence in short writing that shares their thoughts and experiences in the digital environment, but they are onerous to write academic writing required by universities. However, practical-oriented major students complain of more difficulties because Sung-Shin Women's University's < Creative thinking and writing > has the same curriculum as most universities. For differentiated class strategies for students, this study conducted classes by applying the reading guidance method 'Reading One Book for a Semester' and prepared practical and effective teaching methods by analyzing the contents of students' surveys in depth.
This class is not for writing from Week 9 to 14, the professor encourages reading books by explaining the link between reading and writing education at the university and holds discussions in groups over Week 5 online. A sufficient understanding and broad thinking of a book that links to deep insight and overall perception help students perform their “academic writing” tasks. Post-surveys show that students changed their perception of reading positively, and they agreed with the need for discussion classes. Through this process, students say it helps the academic writing generally and confirms that various opinions, views, and information were shared and discussed to link reading activities.
Based on “Reading One Book for a Semester,” the effect of this class is to relieve the fear of students who had difficulty in long writing, academic writing, and having a reading experience. In addition, students' reading comprehension and literacy were improved by listening to various classmates' opinions and analyzing a book from different viewpoints. In particular, this experience, having a positive experience of reading while feeling the improvement of critical thinking and insight through reading, will guide students to become constant readers. If debate classes based on “Reading One Book for a Semester” will be strengthened, it will help students who have little motivation or difficulties reading and writing at the university level to improve their practical writing s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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