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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논총 update

THE TOEGYE HAK NONCHONG

  •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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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738-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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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39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459
퇴계학논총
39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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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류화정 ( Ryu Hwa-jeong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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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邵雍의 한시가 처음 유입된 시기와 경로를 추적해보고, 초기에 소옹의 한시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소옹은 북송 도학자로서는 드물게 시집(『伊川擊壤集』)을 남겼다. 소옹과 『격양집』은 조선 후기에 首尾吟體가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지는데, 『격양집』은 고려 말부터 이미 들어와 있었다. 여말선초에 『격양집』을 비롯하여 소옹의 한시가 수록된 서적들을 조사해보니, 『격양집』은 극소수만이 공유했던 것으로 보이고, 소옹의 한시는 『性理群書句解』와 『性理大全』에 있는 것들이 주로 인용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두드러지게 활용되는 작품은 「淸夜吟」이었다. 범상한 자연 현상으로 우주 만물의 진리를 형상화한 「청야음」은 여말선초 문인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인용되었다. 단순하게 詩句를 직접 인용하는 것부터 유사한 詩想을 가진 다른 작품과 결부시켜서 발전적인 변용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는 黃庭堅이 周敦頤의 인품을 묘사한 '光風霽月'이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청야음」도 이와 결합되어서 새로운 수사적 표현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우주 만물의 진리[道]나 깨달음의 경지 혹은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에 대한 묘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여말선초에 「청야음」을 포함한 이런 수사적 표현이 활용된 것은 性理學의 수용과 관련이 있다. 성리학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사상 체계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몇 권으로 책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성리학적 문학관의 경우, 이것을 전문적으로 다룬 서적이 없기에, 성리학 서적에 산재한 문학 담론들을 모아서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제한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를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여말선초 문인들이 소옹의 한시를 비롯해 특정한 수사적 표현을 자주 활용한 것은 성리학이나 성리학적 문학관을 이해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야음」의 詩想과 '光風霽月'과 같은 수사적 표현을 통해 '道'에 대한 개념이나 깨달음의 경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자신의 창작에 이런 표현들을 적절하게 구사해 보면서 성리학적 문학관을 구현해 보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기존에 여말선초 문학사 혹은 성리학 수용 초기 모습을 성급하게 '완성'하려고 했던 시각을 재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In this paper, we tracked the time and path of Shao Yong's poem first introduced, and looked at how Shao Yong's poetry was used in the early days. Shao Yong left a rare collection of poems for moralist in the Northern Song Period. Shao Yong and 『Icheongyeokyangjip』 are widely know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SuMiEumChe. However, 『yeokyangjip』 already existed from the end of Goryeo.
Investigating, 『yeokyangjip』 was shared by very few, and Shao Yong's poems at the time were mainly cited in 『Seongrigunseoguhae』 and 『Seongridaejeon』. Among them, the most prominent work used was 「Cheongyaeum」. This poem embodies the truth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with ordinary natural phenomena. Writer in the Period of Yeomal-Suncho quoted this work in various ways. It showed a variety of appearances from direct citation to developmental changes. In addition, a new expression was created in combination with 'It's like a clear wind and a bright moon after the rain(光風霽月)' described by Huang Tingjian.
The use of this rhetorical expression is related to Neo-Confucianism's acceptance. The existing theory said that Neo-Confucianism came in with Neo-Confucian Literary Ideas and was understood, and was naturally used for creation. But both are difficult to understand in a short time. Rather, it is natural to say that the two were efficiently understood by appropriately utilizing the rhetorical creation method that was mainstream at the time. I think this interpretation can help us reflect on the view that we tried to hastily “complete” the early stages of acceptance of literary history or Neo-Confucianism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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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길연 ( Jeong Gil-yeo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6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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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시대 文章四大家의 한 사람인 澤堂 李植(1584-1647)의 喪ㆍ祭禮 의절을 고찰했다. 이로 인해 택당이 속례를 비판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그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를 탐구했고, 또한 택당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예학자들의 견해와 비교하여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택당은 장례 절차의 몇 가지 의절에 대해서는 經驗을 토대로 당시의 俗禮를 비판하였다. 예컨대, 漆布와 油紙 등의 사용 문제, 시신을 얼지 않도록 담요나 볏짚 등으로 관을 덮는 관습, 석회를 다질 때 끓인 물을 사용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또 당시에 성행하던 풍수지리설에 대해서는 대체로 장례 예법이나 이치에도 전혀 맞지 않는 황당한 설이라고 논척했지만, 地勢의 형세 등은 약간 참고할 것을 권장하였다. 그렇지만 묘터의 좋고 나쁨으로 인해 사람의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설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또 택당은 자신의 집안 제례 의절을 일정한 규범의 형태로 정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제례 의절은 주자의 『가례』를 기본으로 하되, 선조의 예와 속례를 적절하게 참작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가례』의 宗法 정신에 입각하여 宗子가 아니면 제사를 지낼 수 없도록 하였고, 당시의 속례인 輪祭 폐지를 주장했다. 다만 묘제의 경우는 부득이 속례를 따라 輪行의 형태를 허용하기도 했다. 時祭를 지내는 날짜는 『가례』의 점치는 방식이 아닌 달력을 검토하여 편의대로 정하되, 봄과 여름의 시제는 택일할 필요 없이 先妣와 先考의 생일날로 규정하였다. 기제는 考妣合設 형태로 한 번만 지내고 별도로 배위의 기제는 지내지 말게 했고, 묘제는 시속례를 따라 축문은 사용하지 말도록 하였다.
이처럼 택당은 장례 의절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시속례를 비판했지만, 제례 의절은 반드시 주자의 『가례』만을 고집하지 않고 당시의 속례를 대폭 수용하려는 다소 열린 예학자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 정밀한 가례 주석서가 활발하게 편찬되면서 『가례』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서 일부이기는 하지만, 우리 고유의 의절을 폐하지 않고 수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This study aimed to deeply look into funeral and ancestral rite procedures by Taekdang Yi Sik(1584-1647) who was one of the four greatest writers in the Joseon period. Based on his experience, Taekdang criticized some popular practices of his times that were usually made during funeral or ancestral rite performance. Such practices that he negated included the use of chilpo or yuji, coffin cover-up with blankets or rice straw to keep the body from getting frozen, use of boiled water to strengthen lime, and configuration of outer coffin with pieces of stone. When it comes to the feng-shi theory that was widely accepted in his times, Taekdang found some parts of that theory deserved to be positively considered, especially in relation to geologic and geographic conditions. But he strongly refuted the theory-based point that fortunes of people are up to whether the site of grave formation is good or bad. Taekdang standardized ancestral rite procedures for his own family. He built the procedures on the basis of Zhu-zi's 『Garye』 while referring to his ancestors' or popular practices in an adequate proportion. Meantime, he braced for popular practices of myoje or an ancestral rite held before the grave. In other words, he allowed individual offsprings to host and perform myoje in a yunje manner, that is, by rotation. For kije or an anniversary rite in memory of the dead, Yi Sik made a principle that the event should be held only once in the form of gobihapseol, which is a one-time memorial service for both of the deceased parents, banning a separate rite serving the late mother.
As for ancestral rite procedures, thus, Taekdang was considerably open to popular practices of his times without just sticking to Zhu-zi's 『Garye』. Such openness was so significant that it contributed to preserving unique rite procedures of our nation's own, especially because Taekdang lived in the era when precisely annotated versions of 『Garye』 were being actively compiled and 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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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명재 ( Kim Myeong-jae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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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영조38년) 윤5월 13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비극의 현장에는 세 명의 史官이 있었다. 춘추관의 전임사관 尹塾, 겸임사관 權正忱, 승정원 가주서 李光鉉이 바로 그들이다. 훗날 세 사관은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바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전했다. 이들의 기록은 「윤숙일기」, 「권정침일기」, 「이광현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는 「이광현일기」만을 주목했으나, 윤숙과 권정침의 기록도 임오화변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참조해야 할 자료다.
「윤숙일기」는 기존의 연구에서 소개되거나 활용된 바 없는 사료이다. 기록의 양은 「이광현일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을 시간 순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화변 당일 入侍한 전임사관이 남긴 기록이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권정침일기」는 내용이 가장 많고 현장의 상황에 대한 서술도 풍부하나, 타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내용의 진실성 여부가 검증되지 못했다. 「이광현일기」는 앞서 두 기록과 달리 일찍부터 학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으나, 僞作 여부와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본 논문은 임오화변 당시 史筆을 잡았던 세 사람의 기록, 즉 「윤숙일기」, 「권정침일기」, 「이광현일기」의 특징과 성격,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인 「윤숙일기」의 서지적 사항과 내용, 특징을 소개하고, 「권정침일기」의 신뢰성을 타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평가하며, 「이광현일기」의 위작 여부를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re were three officers who witnessed Im-Oh-Hwa-Byun. They were Yoon Sook, Kwon Jeong-chim and Lee Gwang-hyeon. These three officers recorded what they saw and heard at the field in details to hand down the fact to the next generations. Their records could be ascertained in 「Diary of Yoon Sook」, 「Diary of Kwon Jeong-chim」 and 「Diary of Lee Gwang-hyeon」. In particular, the record of Yoon Sook has never been introduced or facilitated in existing studies. 「Diary of Yoon Sook」 is the record that the on-duty officer on the day of Hwa-Byun to present a highly historic value. 「Diary of Kwon Jeong-chim」 contains the most volume of contents and has rich description on the situation then, but it has not been verified for its genuineness of its contents through comparison with other data. Unlike the two earlier-mentioned records, 「Diary of Lee Gwang-hyeon」 was given the spotlight of the academic circle and general public from the early days, but there has been certain disputes on whether it was a fabricated work and its contents. In addition, for the previous description of Im-Oh-Hwa-Byun, only 「Diary of Lee Gwang-hyeon」 was mainly utilized that the criticism and verification on the historic data under the relative point of view were not properly made. This thesis is intended to display the characteristics, nature, limitations and issues of the records of three persons who held the historic writing at the time of Im-Oh-Hwa-Byun, namely, 「Diary of Yoon Sook」, 「Diary of Kwon Jeong-chim」 and 「Diary of Lee Gwang-hyeon」m and takes a look at the genuineness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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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종석 ( Kim Jong-seok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2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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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후기 安東 河回에 살았던 柳懿睦(1785-1833)이 10대 때 작성한 일기 『河窩日錄』을 중심으로 영남지방에 거주하는 사족의 후예들이 어떠한 학습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지방 유림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고찰한 성과이다. 류의목은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족의 일생을 살았지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과거급제의 중요성, 남인의 몰락과 서얼층의 부상, 西學의 확산 등 지방의 사족들을 둘러싸고 있던 현실적 삶의 환경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가문의 유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30대 이후에는 과거급제를 포기하고 은거의 삶을 택했지만 끊임없는 독서와 학문적 교유, 성리서 연구, 지역사회 참여를 통해 실의를 극복하고 사족으로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다져나갔다. 본 연구를 통해 평범한 사족의 후예가 지역 유림의 일원으로 사회화하는 과정에는 소년시기의 경험이 인격과 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바탕으로 성리학이라는 학문의 독특성과 조선사회에서 학문함이 갖는 독특한 기능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기는 18세로 끝나기 때문에 이후의 부분은 류의목의 문집인 『守軒集』을 통해 보완했다.


This thesis is an achievement of examining the learning process of descendants of local gentries living in Yeongnam, centering on the diary Hawailok(河窩日錄) written by Ryu Eui-mok(1785-1833), who lived in Ando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Although he lived a normal life without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experiencing the sudden social changes such as the fall of southern gentry(南人) and the rise of concubines descendants, and the spread of western studies(西學) from the late 18th to the early 19th century, he did his best to maintain the family. After his 30s, he gave up the state examination and chose to live a secluded life, but through constant reading, academic friendship and research, participations in community affairs, he overcame disappointment and strengthened his own mental world as a descendent of noble family. Through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the experience of adolescence greatly influenced the formation of personality and world view in the process of socializing ordinary descendants as members of the local Confucian circle, and that the uniqueness of Neo-Confucianism and the unique function of studying in Joseon society also played a important role. Since the diary ends at the age of 18, the later part was supplemented through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Suheonjip(守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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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실 ( Kim Sung-sil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5-15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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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宗敎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문화에 있어 종교의 기능은 분명 있지만 과거에 비해 종교의 역할과 비중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그 중 韓國文化 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는 儒敎와 佛敎이다. 하지만 유교는 과연 종교인가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유교의 宗敎性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월자, 교리, 신앙 등의 정통적인 종교적 조직체계와 달리 학문적인 면이 강한 유교가 과연 종교라 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과거에 비해 그리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응답자가 상당하지만, 그 못지않게 무신론자의 비율도 상당하며, 실제에 있어 종교가 없거나 무늬만 종교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실태 속 현대인들의 무관심한 종교현상과 맞물려 기존 종단과는 달리 冠婚喪祭로 상징되는 생활 속 문화를 통해 이어져 온 유교의 종교성은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고찰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라면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부모님께 孝道하고 형제간에 友愛있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체득적으로 아는 한국인에게 유교적 종교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한국유교를 대표하고 있는 성균관에서 매월 초하루, 보름에 거행되는 焚香儀式은 대표적인 유교 의례이다. 제사와 같이 일상적 의례이지만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것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유림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유교적 종교성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恭敬, 配慮, 尊重, 共感, 連帶 등 사람다움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유교적 종교성은 오늘날 物質萬能主義와 無限競爭社會 속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찾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What does religion mean to modern people?
Although the function of religion in social and culture is clear, it is true that the role and importance of religion are disappearing a lot compared to the past. There are various definitions of religion, and among them, Confucianism and Buddhism are the most influential religions in Korean culture. However, there is a lot of debate about whether Confucianism is really a religion. In order to understand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it is necessary to first examine whether Confucianism, which has strong academic aspects, can be called a religion, unlike orthodox religious organizational systems such as the transcendent, doctrine, and faith.
However, to modern people, religion does not have as much meaning as in the past. According to one statistic, there are quite a few respondents who say they have a religion, but the proportion of atheists is equally high. In line with the indifferent religious phenomenon of modern people in such a situation,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which has been passed down through the culture of daily life, symbolized by ceremonial occasions, unlike the existing religions, can be considered meaningfully in terms of modern succession. This is because a correct understanding of Confucian religiosity has a great meaning for Koreans who have a strong sense of filial piety to their parents and to be kind to their brothers and sisters while being repulsive to religion. In particular, the incense ceremony held on the first day of every month and the full moon at Sungkyunkwan, which represents modern Korean Confucianism, is a representative Confucian ritual. Although it is a daily ritual like ancestral rites, we can see the reality of Confucian religiosity through the appearance of the Yurims who keep and carry on it whether it rains or snows.
Above all, Confucian religiosity, which seeks to pursue and practice the values of humanity such as respect, consideration, respect, empathy, and solidarity, will greatly help us to find the right direction for us in today's materialistic and infinitely competitiv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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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용성 ( Choi Yong-seong ) , 성지은 ( Seong Ji-eu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9-18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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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긍정심리학과의 유교적 행복·덕윤리와의 대화를 추구한다. 유교의 행복 · 덕윤리를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되, 동양 · 한국적 맥락에서 긍정심리학과의 대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긍정심리학과 동양 · 한국의 행복·덕윤리를 소통시키고, 통섭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유교적 행복 · 덕윤리가 다른 동양윤리적 전통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 · 덕윤리와 통섭될 수 있음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동양 · 한국의 행복 · 덕윤리의 패러다임 내에서도 불가공약성의 차원이 있음을 밝히면서 유교적 행복 · 덕윤리학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이런 논의 끝에 긍정심리학의 성격 강점 · 페르마의 행복과 유교의 덕·행복 윤리학이 어떻게 소통되고 통섭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였다. 긍정심리학이 말하는 성격 강점과 긍정 정서, 몰입, 삶의 의미, 관계, 성취의 행복에 유가적 덕과 행복은 통섭적으로 소통될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유교는 기존 긍정심리학적 연구의 성과를 활용해서 유가적 행복 · 덕교육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료의 영역에서도 더욱 긍정심리학과의 통섭을 지속해야 함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pursues a dialogue with the Confucian happiness and virtue ethics of the Department of Positive Psychology. Focusing on Confucianism's happiness and virtue ethics, I would like to examine how dialogue with the Department of Positive Psychology is possible in Eastern and Korean contexts. In this study, we try to communicate and consilience positive psychology and happiness and virtue ethics in the East and Korea. Through this, I would like to suggest that Confucian happiness and virtue ethics have a deeper possibility of consilience with Aristotle's happiness and virtue ethics than other oriental ethical traditions. In addition, I intend to focus on Confucian happiness and virtue ethics by revealing that there is a dimension of incommensurability within the paradigm of happiness and virtue ethics in the East and Korea. After these discussions, I would like to suggest how positive psychology's personality strengths and Fermat's happiness and Confucian virtues and happiness ethics can be communicated and consensual. Confucianism is Confucianism, using the results of existing positive psychology research, is Confucianism, and virtue and happiness can be communicated conscientiously, according to positive psychology. It was suggested that consilience with the Department of Positive Psychology should be continued in depth not only in happiness and virtue education but also in the field of psychological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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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성혜 ( Lee Seong-hea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7-21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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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담운이 노래한 7언 절구 34수의 연작시 「금릉잡시」에는 1875년 전후 김해 민중들의 생활 모습이 많이 담겨있으므로 김해의 문화와 생활상을 전해주는 역사 기록적 성격이 다분하다. 특히 사대부가 읊은 죽지사체 시에는 사람들을 풍간하여 깨우치려는 諷人之志가 담겨있는 반면 「금릉잡시」에는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 이는 官妓라는 강담운의 처지와 환경이 형성한 민중에 대한 인식과 시각이 작용한 것이라 보인다.
강담운은 가장 낮은 처지에 있는 김해 민중의 일원으로 그가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해인의 삶은 형태만 다를 뿐 바로 자신의 삶인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김해 민중들의 삶을 비판적으로 객관화하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생동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역사 유적지가 된 장소에 대한 당시 모습과 상황, 김해 여러 마을의 모습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칠 수 있었다.
즉, 「금릉잡시」는 역사 자료가 포착하지 못한 19세기 김해를 담고 있다. 이는 「금릉잡시」가 이룩한 문학적 역사적 성취이다. 이런 점에서 「금릉잡시」는 지역학, 곧 김해학을 위한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이들 시를 중심으로 김해의 변화상을 논할 수 있고, 앞으로의 변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해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게 될 것이다.


「Geumreung Japsi(金陵雜詩)」 is a collection of 34 verses each of which is comprised of 7 Chinese characters per line. Written by Jijaedang(只在堂) Kang Dam-un(姜澹雲), those verses depict in lots of aspects how people of Gimhae (金海) were living around the time of 1875, so that the collection is much rather a historical record about the culture of Gimhae and lives of its locals. More notably, 「Geumreung Japsi」 completely keeps itself away from a proposition of so-called Pungin Jiji(諷人之志) that scholars of the noble class often imbued in their verses of Jukjisa(竹枝詞) style for the purposes of advising and enlightening the public. Distancing from that proposition may be attributed to the way Jijaedang perceived or viewed grassroots people under a considerable influence of her own social status or condition as courtesan or Gwangi(官妓).
In her verses, Jijaedang focused her lenses on Gimhae locals who were lowest in social status. She thought of herself as one of the locals, and found their lives superficially different, but fundamentally same as hers. Thus, her depictions about what the local people's lives were like are not critical or objective, but positive or vigorous. This quality is also the very basis of how picturesquely and admirably she represented the looks and environments of some spots of Gimhae, which are now reputed as historical relics, and some villages in the region. In conclusion, 「Geumreung Japsi」 is in itself a literary, historical achievement because it shows Gimhae of the 19th century which other materials of the past failed to catch up. This suggests that 「Geumreung Japsi」 is a significant text for area studies, particularly Gimhae studies. Works listed in the verse collection could help discuss how Gimhae was, has been and will be changed, and stimulate current or future offsprings to take a higher pride in that region where they live or will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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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선진 ( Yang Sun-ji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4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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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 직관 그리고 이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의 인식에 가장 중요한 기능에 속하는 직관, 이성 또는 지성 그리고 지혜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논자는 이러한 다소 애매하면서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 중에서 특히 지성과 직관에 대해서 가장 명확한 철학적 작업을 수행했던 철학자인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1941)의 철학을 고찰함을 통해서 동양 철학자인 王陽明(1472-1528)의 철학 속에서 등장하는 개념들(知, 智 등)을 이해하고자 한다.
베르그손의 지성(intelligence)이란 공간과 언어를 매개로 파악하는 사유이다. 지성이 간접적 의식이라면 직관은 직접적 의식이며 지성이 매개적 의식이라면, 직관은 무매개적 의식이다. 지성이 인식 주체의 안과 인식 대상의 밖이 구별된다면, 직관은 인식 주체의 안과 인식 대상의 밖의 매개물이 없는 상태이다. 왕양명의 지성(慮, 思 또는 思慮, 省察)이 인간적 노력의 차원이라면 직관적 의미를 의미하는 知, 즉 良知는 반대되는 의미이다. 두 철학자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베르그손의 직관이란 단순히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 앎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왕양명의 良知는 직관적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지성이 도달한 진리란 인간적인 능동적 노력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 진리(人道)라면, 인간이 깨달음의 차원인 양지의 진리란 인간의 지성적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하늘(天)이 부여하고 계시한 진리(天道)이다.
베르그손의 직관은 철학의 영역에서 종교의 영역까지 확장된 개념이다. 베르그손의 직관적 인식이란 단번에 완성된다거나 生得的이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부단한 인간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왕양명의 직관 개념과는 다르다.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왕양명의 도덕적 직관, 즉 도덕감(moral sense)은 베르그손의 직관 개념처럼 後驗的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능력을 수양을 통해서 재발견될 수 있는 先驗的인 것이다.


Humans recognize things and gain enlightenment in a variety of ways, including instinct, intuition and reason. What is intuition, reason or intelligence, and wisdom in the most important function of human perception and how can we understand it? The Eastern philosopher is the first to understand through these philosophical ideas, the philosophy of Henri Bergson(1859-1941), the philosopher who performed the clearest philosophical work on intelligence and intuition among these rather ambiguous concepts. I would like to understand the concepts(知, 智, etc.) that emerge in the philosophy of Wang Yang Ming(1472-1528).
Bergson's intelligence is the reason for grasping space and language. If intellect is an indirect consciousness, intuition is a direct consciousness; If the intellect distinguishes the inside of the cognitive subject from the outside of the cognitive subject, intuition is in the state without the inside of the cognitive subject. If the Wang Yang-Ming's mind is the dimension of human effort, the knowledge meaning intuitive meaning, or yangji(良知), is the opposite. Sunny does not simply mean metaphysical and ontological knowledge as in the case of Bergson, but also has an intuitive and moral meaning. If human mind is a human truth that can be reached through human effort, heavenly truth is a world that cannot be reached by human intellectual effort.
Bergson's intuition is an extension of intuition that extends from the realm of philosophy to the realm of religion. Bergson's intuitive perception is different from Wang's intuition in that it does not mean that it is complete or intrusive, and that it is the product of hard work. Wang's intuition concept is that Wang's moral intuition or moral sense, which inherits the idea of Mencius, is not the result of a priori epigenetic effort, but rediscovers the ability of all human beings through fostering.

KCI등재

저자 : 성해준 ( Sung Hae-ju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1-30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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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대 홍무제에 의해 반포된 '육유' 6조목의 가르침은 명대 초기의 전란 등으로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향약의 鄕治思想과 함께 유교의 실천 도덕 사상이 되었다. 그 후 청대에 '육유'에 해설을 붙인 서적인 『六諭衍義』가 정치사회에 수용된 후 琉球와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전역에 널리 수용되었다. 즉 중국에서 유구, 유구에서 사츠마, 그리고 사츠마에서 일본 본토에 정착된 『육유연의』는 도쿠가와 막부의 臣民 교화 수단으로 변용되었다.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민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和解本 『六諭衍義大意』를 발간하게 하고, 이를 민중들에게 교육시켜 도리를 깨닫게 하였다. 그래서 서민 내부에서는 상호부조의 풍습을 양성시키는 한편, 외부의 힘으로 정부 정책에 순종시킬 목적이 있었다. 요시무네의 이러한 교육 장려에는 사회 질서유지와 교화의 도덕 교육서로 일본화시킨 『육유연의대의』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한 '강제교육론'이라는 과정이 있다. 그러한 결과의 단서로 『육유연의』에는 양심과 도리를 중심으로 한 상호부조나 공정성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육유연의대의』에서는 상하 주종 관계의 신분에 따라 각자의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 도덕교육이 보다 강조되었다.
『육유연의』가 중국 이외의 유구 왕국과 에도막부의 무가 정권에 주목된 것은 중국어 학습과 서민의 도덕교육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구의 정순칙은 초기 중국어 학습에 목적을 두었지만, 이후 서민 도덕서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에도시대의 오규 소라이는 주로 어학 서적으로서의 의미만 인정하려고 하였다. 거기에 반해 도쿠가와 요시무네와 무로 큐소는 『육유연의』와 『육유연의대의』에 막부 통치에 순응하는 백성을 양성하는 효과를 기대하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권선 사상 이해에 중요한 요소가 있는 『육유연의』의 일본 전파와 수용을 중심으로 한 도덕교육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The teachings of Article 6 of 'Rikiyu' promulgated by Hongmuje of the Ming Dynasty of China became Confucian practice moral ideas along with the local government idea of Hyangyak to stabilize a society confused by the wars of the early Ming Dynasty. After that, during the Qing Dynasty, Rikiyuengi, who attached a commentary to Yukyu, was accepted into the political society and spread to Yukyu and Japan, and was widely accepted. In other words, Rikiyuengi, who settled in Yugu in China, Satsuma in Yukyu, and Satsuma in Japan, was transformed into a means of civilization for the Tokugawa shogunate.
Yoshimune Tokugawa tried to publish the Japanese version of Rikiyuengi, which was easy for the people to understand, and to educate the people to realize the reason. Therefore, the purpose of the common people was to cultivate the customs of mutual assistance while obeying government policies by external forces. Yoshimune's encouragement of education was made through a process called compulsory education theory that further accelerated the spread of Rikiyuengi University, which was made into a moral education book for maintaining social order and edification. As a clue to such results, mutual assistance and fairness centered on conscience and reason were emphasized in Rikiyuengi. However, in Rikiyuengi's intention, moral education, which must be faithful to each position according to the status of the subordinate relationship, was more emphasized.
The reason why Rikiyuengi paid attention to the powerlessness of the ancient kingdom and the Edo shogunate other than China was because it was aimed at learning Chinese and educating the common people. The rules of Tei junSoku in the Old Kingdom aimed at learning Chinese in the early days, but later used them as moral books for the common people. However, Ogyu Sorai in the Edo period of Japan mainly tried to recognize the meaning of language books. On the other hand, Yoshimune Tokugawa and Muro kyuso expected the effect of nurturing people who conformed to the rule of the shogunate in the cause of Rikiyuengi and Rikiyuengidaigi.
Therefore, this paper focused on the influence of Rikiyuengi on moral education centered on the spread and acceptance of Japan, which is an important factor in understanding the ideology of winding in East Asia centered on China.

KCI등재

저자 : 이현숙 ( Lee Hyun-sook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9-33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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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오키나와 북부 시오야만에서 행하고 있는 운가미(海神祭)의 의례구조와 그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다. 시오야만의 운가미는 마을 공동체 종교의례 행사로 매년 오봉(盆) 후, 첫 亥日에 행하며 祈願 의례에 중점을 둔 우간마루(御願年)와 기원 의례를 간소화한 우도이마루(踊り年)를 격년으로 행하는 이원적 구조이다. 의례 기간은 3일간이며, 의례 구조는 迎神ㆍ饗應ㆍ送神의 3단계로 일반적인 일본 마쓰리(祭)의 의례 구조와 유사하지만 영신과 기원 의례가 중심이며 송신 의례가 미약하다는 상이점이 있다.
마쓰리의 주체는 서민ㆍ농어민층이며, 의미적 구분에서는 祭와 축제의 의미가 혼재하는 이중적 구조다. 의례의 구조적 측면에서는 시오야만의 운가미 마쓰리라는 큰 단위의 의례 구조 속에 마을의 작은 단위의 의례가 포함된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타미나토(田港) 의례는 조상신을 모시는 祠堂인 우훼야의 기원 의례, 미지나리(齋戒) 의례, 제사 장소인 아사기의 기원 의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을 맞이하는 迎神 의례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야코(屋古) 의례는 욘코이와 카미우스이가 願歌儀禮, 模倣儀禮 형태로 구성되어 神人들의 활약이 현저하다. 시오야만을 가로지르는 하리 경주는 겉으로 보기에는 축제적 의미의 조정 경기로 보이지만, 해신을 태운 기원 의례라는 점에서 제사와 축제의 의미가 혼재하는 형태이다. 시오야(塩屋) 나가리(兼久浜)의 의례는 풍작 풍어 기원 의례와 풍어 모방의례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시나바(靑年浜)의 파시우무이 의례는 각 마을에서 행한 모든 기원이 이루어지도록 비는 기도로 願歌唱和 형식이다.
이상 오키나와 북부 시오야만의 운가미 의례는 해신 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마을 공동체 단위의 원시적 마쓰리 형태를 전승한 다양성과 복합성을 가진 의례 구조와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ritual structure and characteristics of Ungami in Shio Bay, Okinawa. The ungami of Shioya Bay is a religious ritual of the village community and is held on the first pig day after Obong. Rituals are a binary structure in which Uganmaru, which focuses on origin, and Udoimaru, which simplifies prayer rituals, are held every other year. The ritual period is two days, and the ritual procedure consists of a three-stage structure of welcoming the gods, offering, and sending the gods. The subject of the ritual is farmers and fishermen, and the meaning of the ritual and festival are mixed. The ritual structure is connected in a variety of small rituals at the village level.
Taminato is composed of Uheya's rituals, Mijinari rituals, and Asagi rituals, and there are many rituals for welcoming gods. Yako has rituals of Yonkoi and Camius, and consists of prayer songs and imitations. The Hari rowing game is a mixture of rituals and festivals in that it is a game with a sea god. The ritual of Shioya Nagari consists of a prayer for catching fish and a ritual for imitating a good catch. Pasiumui in Sinaba is a form of prayer song to pray that all the prayers performed in each village are fulfilled. From the above, it became clear that Shioya Bay's Ungami ritual was a primitive ritual of the village community based on the belief in the sea god and was a ritual with diversity and com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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