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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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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3021
  • : 2671-7921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6)~79권3호(2022) |수록논문 수 : 1,088
인문논총
79권3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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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경숙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6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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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상권 ( Han Sang-kw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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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사소송의 구체적인 운용실태는 결송입안 등의 소송 문기를 활용하여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소송의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결과 심리방식이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재판이 엄격하게 문서와 증거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송관은 나름대로 높은 수준의 법률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인민들 역시 법률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The way in which the civil trial system of the Joseon Dynasty operated can be examined using civil litigation documents and records, such as lawsuit documents (決訟立案, gyulsong-ip-an). Maintaining fairness during civil litigation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matter in the Joseon Dynasty, and it could be observed that hearing methods were not that much different from that of the modern trial system. Trials were strictly based on documents and evidence, and the judge had a high level of legal knowledge. The common people were also allowed access to legal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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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경숙 ( Kim Kyeongsoo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5-7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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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사송(詞訟)에서 송관의 공문서 전송 방식과 송자(訟者)의 역할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고을 간의 공문서 전송은 공적 영역 내에서 운영되었고 민간 영역과는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송 과정에서 다른 고을에 거주하는 소송상대자 및 증인의 소환이나 진술 확보, 또는 타 고을 관청에 소재한 서증(書證)을 검토하기 위한 송관의 공문서[移文]는 송자가 직접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소송상대자를 소환하기 위한 이문은 1634~1635년 경상도 의령현 소송에서 거제도로 이사한 피고 임환을 소환하고, 1685년 경상도 예천군 소송에서 영천에 사는 피고 이만생(李萬生)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1701년(숙종 33)의 전라도 구례현 소송에서는 경기도 용인에 사는 윤성임을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해 구례 현감이 용인 현감에 보내는 이문을 소송당사자인 정수명(鄭水命)이 직접 지니고 가서 전달하였다. 조선시대 소송은 소송상대자를 법정에 소환하는 책임이 소송당사자에게 주어졌으며 송관은 소지에 뎨김을 써 주는 외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송상대자가 타 고을에 있는 경우에는 관할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송관의 뎨김만으로 소환을 실현할 수 없었다. 이때는 고을 대 고을의 차원에서 업무 요청이 필요하였고, 송관이 해당 고을 수령에게 보내는 공문서를 소송당사자가 직접 지니고 가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타 고을 관청에 소재한 서증을 검토하는 이문은 1685년 예천군의 노비 소송에서 안동부의 호적과 영천관의 노비 속안을 상고하고, 1583년 나주목 소송에서는 광주관에 소재한 군안(軍案)을 상고하는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함께 가서 이문을 전달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소송에서 서증을 검토할 때 송관은 원고와 피고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거행하 도록 <청송식>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타 고을 관청의 서증을 검토할 때에도 그 대로 적용되었고, 소송당사자가 송관의 이문을 직접 지니고 가서 전달하는 방식은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송당사자가 송관의 이문을 획득하는 과정은 소송당사자가 소지를 제출하여 성급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는 소송이 진행되는 고을 내에서 소송상대자를 소 환하고 서증을 상고하는 방식과 다름없이 고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소송상대자 나 증인의 소환 및 서증의 검토는 소송당사자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철저히 당사자주의 원칙으로 진행되는 소송 운영 방식하에서 송자들이 타 고을까지 왕 래해야 하는 현실적 장애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법적 행위성을 확인 할 수 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role of the litigator in the lawsui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ith focus on the way that official litigation documents necessary for the progression of the lawsuit were delivered.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delivery of official documents between counties involved the official network, and was not entrusted to civilians. However, in the course of the litigation progression, the litigator personally delivered the official documents concerned with his/her litigation progression in the cases of summoning or securing a statement of the litigation opponent and witnesses living in another county, and reviewing the documentary evidence kept at the office of another county.
These cases were closely related to the principle of Parteienprinzip in the litigation progression in the Joseon dynasty. Firstly, the responsibility for subpoenaing the other party in the lawsuit was on the party to the lawsuit, and the judge provided the rationales for the subpoena by writing on the litigator's petition the measures necessary for the litigation progression. However, if the other party to the litigation had resided in another county, they could not have been summoned by the judge's measures alone because the other party's residence was outside the judge's jurisdiction. The judge sent an official document to the head of the county where the other party to the litigation lived, asking the head's cooperation. At that time, the party to the litigation carried with himself/herself the official document to the head.
In addition, when the litigator examined the documentary evidence, the principle was that the plaintiff and the defendant should do it together. This was applied when examining the documentary evidence kept at the office of another county. To this end, the parties to the litigation carried with themselves the official document of requesting the co-operations by the heads of the other counties which kept the documents necessary for the litigation progression.
The procedure in which the litigation party obtained the official documents necessary for litigation progression began with the request made by the litigation party's filing a petition to the judge. The summons of opponents and witnesses in the litigation, and the review of evidential documents were conducted not only within the county where the litigation is taking place, but also outside the jurisdiction of the county where the litigation was conducted. Also in the latter progression, the litigation procedures were centered on the parties to the lawsuit. This meant that the litigation was progressed on the basis of litigators' active and subjective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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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효정 ( Han Hyoj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9-11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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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개인 일기와 결송입안(決訟立案) 등 실생활 자료에 나타난 조선 전기의 소송청탁 양상과 소송청탁 관련 규정을 통한 처벌방식, 소송청탁 혐의에 임하는 송관(訟官)들의 대처방식에 대해 살펴본 논문이다. 『묵재일기』 속 소송 청탁인의 신분별 분포를 볼 때 양반뿐 아니라 양민, 노비 및 천민도 인맥을 통해 소송에서 편의를 부탁하고 유리한 판결을 얻기 위한 청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청탁 내용은 소송의 세부적 절차뿐 아니라 관의 심리 방향, 판결내용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문건이나 송관들은 소송청탁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쉽게 수락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한편 조선시대 소송청탁 처벌은 단독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소송청탁은 청탁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 즉 고위 관료의 사가(私家) 출입 금지, 고의적 오결(誤決) 및 소송 지연 등을 명분으로 처벌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소송청탁의 처벌은 청탁 입증의 어려움, 송관의 판결권 위축이라는 점에서 제약이 뒤따랐다. 이에 따라 실제 소송에서 소송청탁의 제재는 법률적 처벌보다는 인사행정에 따른 처분이 더 유효한 방식이었다. 소송청탁 혐의는 사실 여부를 떠나 관료에게 약점으로 작용하였고, 관료들은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소송을 회피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전근대사회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부조가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청탁은 생활의 필수요건이었으나, 소송청탁 사례를 분석해 볼 때 부정적 인식 및 제재와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위정자들도 소송청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법률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조선시대의 소송청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atterns of litigation lobbying in the mid-Joseon Dynasty, and how judges of justice dealt with litigation solicitation charges using real-life data, such as personal diaries and written judgments. Analysis of the distribution of litigation lobby clients appearing in Mukjae Diary (默齋日記) according to status revealed that not only the yangban upper class but also commoners, slaves, and people of low status asked for convenience in litigation and asked for favorable judgments using their connections. The contents of the lobbying included not only the detailed procedure of the lawsuit, but also the direction of the judge's trial and the content of the judgment. However, Lee Mun-gun (李文楗) and judges showed a cautious attitude toward lawsuits, and demonstrated a tendency not to easily accept lobbying.
Meanwhile, there were no separate regulations for the punishment of litigation in the Joseon Dynasty. Litigation lobbying was punished in the name of the result of the solicitation, such as intentional miscalculation, and delay in litigation. However, punishment for litigation lobbying continued to be restricted in terms of the difficulty of proving solicitation and the atrophy of judgment rights. As a result, dispositions by personnel administration were more effective than legal penalties. Regardless of whether it was true or not, litigation lobbying acted as a weakness for bureaucrats, and bureaucrats adopted the method of avoiding litigation with moral responsibility to escape the charges.
Since mutual assistance through personal connections was common in pre-modern society, solicitation in the Joseon Dynasty was an essential requirement for life. However, in analyzing cases of litigation lobbying, negative perceptions, sanctions, and avoidance could be observed. In addition, politicians also made efforts to establish a rational legal system to solve the litigation request problem. This illustrates the Joseon Dynasty's awareness of the issue of litigation and its efforts to sol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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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경목 ( Chon Kyoung Mo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1-15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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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설립한 초기의 개국자들은 소송 과정을 간명하게 해서 소송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려 했다. 개국자들의 취지가 이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에는 소송이 크게 증가했다. 현존하는 조선후기나 말기의 소송 문서나 수령의 일기를 살펴보면 소송이 매우 증가해서 수령들이 이를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침 일본의 동양사 연구자가 만청(晩淸)시기의 중국 사회도 백성들이 소송을 꺼리거나 기피하지 않는 호송사회였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최근에 조선후기 사회 역시 백성들이 소송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회였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필자는 조선후기나 말기에 실제로 소송이 크게 증가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며 소송이 많아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유와 권리 및 관습에 대한 의식이 조선후기에 매우 향상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한편 조선후기 이래 소송이 매우 증가하자 소송 절차를 간소하게 하거나 절차의 일부를 구실아치에게 위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유학자 출신 관리들은 소송 과정을 하나의 사법적 절차로 이해하지 않고 교화의 과정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소송 절차를 간편하게 하거나 향리나 향소에게 위임하자는 제안은 거절될 수밖에 없었다.


The early founders who established the Joseon Dynasty tried to aim for a society without lawsuits by simplifying the litigation process. Nevertheless, lawsuits greatly increas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extant local governors' diaries or lawsuit documents dating to the late or end of the Joseon Dynasty, handling such increased lawsuits became a headache for local governors. A Japanese researcher of oriental history has revealed that Chinese society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was a pro-lawsuit society, in which people neither evaded nor avoided lawsuits. Recently, research proposing that people were not reluctant to file lawsui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s also come out.
As an external phenomenon, there was indeed an increase in lawsuits in the late or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such increase in lawsuits, as revealed by the author, was a greater improvement in the consciousness of ownership, rights, and customs in the late Joseon Dynasty. Meanwhile, as a result of the greatly-increased lawsuits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attempts were made to simplify the litigation process or to delegate it to government employees. However, Confucianist government officials regarded the lawsuit as a process of edification instead of understanding it as a judicial procedure, so the suggestion of simplifying the litigation procedure or delegating it to local officials like hyangri or hyangso was rej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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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백채원 ( Baek Chaew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19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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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어사 자료에 나타나는 조사 '이라셔'의 의미를 기술하고 통시적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다음의 3가지에 주목하여 '이라셔'를 살핀다. 첫째, '이라셔'의 분포를 확인하기 위해 '이라셔'의 예를 전수 검토한다. 이를 통해 '이라셔'가 주격조사임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었다. 둘째, '이라셔'의 의미를 정밀히 기술하기 위해 '이라셔'가 사용된 문장을 맥락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이라셔'가 선행 명사구의 자격성, 예외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 사용될 수 있었음을 밝혔다. 셋째, '이라셔'의 통시적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이 시기 차이를 두고 여러 번 간행된 문헌에 나타난 '이라셔'를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이라셔'가 활발히 사용된 시기를 파악하고 소멸 과정의 일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라셔'의 공시적인 특성과 통시적인 변화 양상을 아울러 파악한 본 연구를 통해 한국어사 자료에 나타나는 주격조사 '이라셔'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ntends to describe the meaning of the nominative case marker 'irasyeo' and examine its diachronic aspects by examining all examples of 'irasyeo' in Korean historical literature.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irasyeo' by paying attention to the following three ways. First, the distribution of 'irasyeo' was confirmed by examining all examples of 'irasyeo'. Through this, it could be clearly revealed that 'irasyeo' was a nominative case marker. Second, sentences featuring 'irasyeo' were carefully examined, including the context behind its used, and the text structure was also considered.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at 'irasyeo' had the functions of qualification and exceptionality. Third, examination was carried out on cases of 'irasyeo' that appear in documents that were published several times with the same content at different times. Through this process, it was possible to grasp the period during which 'irasyeo' was actively used, and to observe an aspect of its extinction process. Through this study, characteristics of 'irasyeo' that had not been revealed until now were revealed more clearly through the understanding the synchronic characteristics and diachronic change patterns of 'iras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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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지유리 ( Ji Yuri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5-22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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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개화기 말 조선에 거주하였던 외국인 여성들의 서울 유니온 클럽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이고도 문학적인 성격을 띠는 이 여성 모임이 개화기 조선의 여자 선교사들에게 줄 수 있었던 근대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선행연구기 부족한 상황에서 관련 역사 정리 등 여러모로 기초적인 연구가 될 것이지만, 본 연구를 통해 근대적인 “여성” 개념 형성에 조선이라는 사회가, 선교라는 활동이, 그것에 지원한 여자 선교사들이, 그리고 그들의 문학 읽기 활동이 진보적인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부수적으로는 19세기 말 조선에 셰익스피어 독서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국내에 다양한 모습으로 20세기 이전에 유입되었다는 최근 셰익스피어 유입사 논의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Recent research suggests that the Victorian gender formation did not originate in isolation in the West but rather emerged through the interaction between the West and the others. The concept of the Victorian domesticity is also found to be slippery and ambiguous. This study traces the activities of foreign women―especially of female missionaries―of the Seoul Union in Joseon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y examining the social and literary character of the activities, this paper demonstrates the complex dynamics of gender and culture, which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distinct form of a “new woman.” As a foundation study of the subject, this paper also presents literature information and a chronological overview. In dealing with Shakespeare readings of the Seoul Union, it also confirms that Shakespeare was introduced into Korea before the twentie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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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소연 ( Chung So-ye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7-26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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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대에 출판된 한시선집에 수록된 여성시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근대에 한시선집의 여성시 수록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시 향유층으로서의 여성의 위상이 높아진 근대의 현상을 배경으로 그 일면을 살펴본 것이다.
그 구체적 양상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가) 『대동풍아』(1934)나 『청구시선』(1938)과 같이 여성의 한시를 말미에 두어 근대 이전에 상층 남성 중심의 한시사와 유사한 시각도 보이나, 여성 한시를 긍정적적으로 인식한 전통을 계승한 측면도 평가할 수 있다. (나) 한시선집이면서도 한글로 번역한 『망우초』(1934)와 『역대조선여류시가선』은 여성 한시의 향유가 한글 문해층에게까지 이르게 하고, 정(情)을 담은 근대 문학으로서 여성 한시의 위상을 근대 서정시로서 자리매김하는 시각을 보여 준다. (다) 여성의 한시만 모은 『동국규방옥설』(1936)과 『역대조선여류시가선』(1939)은 한시사에서 축적된 여성의 문학적 역량을 근대에 정리하여 시인으로서의 여성과 여성 한시의 수준을 독자에게 보이려는 출판의 의지를 보여 준다.
본 논의를 통해 근대에 한시 향유는 현대시에 비하면 미미할지라도 오히려 시 향유층으로서 여성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에, 또한 근대 서정시로서 여성 한시를 수용하고 한국시사의 연속성을 발견하는 데에 여성시를 수록한 한시선집이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한시는 근대문학의 장에서 주변부로 밀려났으나 여성 한시는 근대 서정시의 시선으로 재평가되고 현대 여성시의 전사(前史)로서 인식됨을 볼 수 있다


In examining the poetry anthologies of the 1930s, this paper deals with, in particular, aspects of hansi written by women. Prior to modern times, hansi were generally written by upper-class men, and this trend lasted for a long time. However, in modern times, not only men but also women came to consume hansi, as poetry readers.
In Dae-dong-poong-a and Cheong-gu-si-seon, which are both hansi anthologies, women's poetry is placed in the appendix, but nevertheless this shows a willingness to publish women's accumulated literary capabilities to the public. Furthermore, in the case of hansi collections translated into Korean (Modern Joseon Women Literature Anthology and Mang-woo-cho), they provided the public who had difficulty in interpreting sino Korean characters, especially more women readers, with an opportunity to enjoy hansi. In particular, by paying attention to the characteristics of women's hansi as lyric poems, it becomes possible to recognize women's hansi before modern times as modern poetry, thereby giving them improved status. In the case of the only modern women's poetry book, Modern Joseon Women Literature Anthology, it can be seen that the formation and growth of the base of modern women poetry was possible not only through modern poetry, but also through the coexistence of Korean traditional women hansi.
This paper is meaningful in that it identified the role of hansi anthologies' role in the 20th century, especially its position within the context of modern poetry. Although hansi was historically centered around upper-class men, the publication of 20th century hansi anthologies that included women's hansi acted to provide women with a place in modern literature and introduce readers to women's ha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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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진규 ( Kim Jin-gyu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1-29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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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0년대 위생조합의 양상을 통해 그에 담긴 정책적 배경과 경찰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생조합은 환경미화, 예방조치를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1917년 '면제'(面制) 실시를 통해 그 업무를 지방단체에 이관하고 임시기구로 전환하였음에도 1920년 이후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상설기구로서 재설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위생조합은 경찰의 관변기구로 기능하게 된다.
1930년 중반을 거치면서 위생조합의 수는 급증하게 된다. 여기에는 읍제 및 시가지계획령을 통한 도시화, 그리고 조선오물소제령을 위시한 위생업무의 증대 등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경찰당국은 그동안 고수했던 '경찰의 민중화, 민중의 경찰화'란 슬로건에서 더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따라 '민중의 경찰화'가 우선시되었고, 위생조합은 이와 같은 정책적 의도하에서 각 군의 주요 소재지를 중심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위생조합은 대체로 경찰의 주선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주요 역원 또한 경찰 관계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위생조합의 수직적 작동구조는 경찰로 하여금 위생을 매개로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생조합은 이에 따라 기존의 미화, 예방조치를 넘어 축사 관리, 의료 지원, 인력 동원 등의 업무를 새로이 부담하였다. 이것은 도시화에 따라 위생조합의 역량 또한 상승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그러나 위생조합 자체는 법률상 취약한 지점이 많았다. 예컨대 위생조합에는 법인격이 부재해 있었고, 이는 위생조합의 사업 등에 장애가 되었다. 즉 이와 같은 문제는 위생조합으로 하여금 이중과세, 그리고 조직의 유명무실로 이어지게 된다.
전시체제가 심해짐에 따라 위생조합은 '총후보건진'으로써 전쟁에 협력할 여지가 있었으며, 이는 공출, 군대에 대한 보조로 나타난다. 그러나1 941년부터 총동원체제가 시작됨에 따라 위생조합은 체제 개편 및 효율성을 이유로 사라졌다. 결국 해당 조직은 일제식민지 시기에 걸쳐 위생을 매개로 경찰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편성된, 도시위생조직이었다.


This article aims to grasp the policy background and police intentions contained in the aspect of the sanitary union in the 1930s. The Sanitary association was established for environmental hygiene and preventive measures, and was re-established due to the needs of the state even though it was abolished in 1917. In this process, the sanitary association functions as a police official.
Throughout the mid-1930s, the number of sanitary unions increased rapidly. This was attributed to urbanization through town festivals and urban planning ordinances, and the increase in sanitary work, including the 'Joseon Sewage Disposal Ordinance'. Meanwhile, the police authorities felt the need to take more active measures in the slogan “peopleization of the police, policeization of the people,” which they have adhered to. Accordingly, the 'policeization of the people' was prioritized, and the sanitary association was able to expand around the main locations of each county under such policy intentions.
Sanitary associations were generally established by police arrangements, and the main station staff was also composed of police officials. The vertical operating structure of the sanitation association allowed the police to control residents through hygiene.
Accordingly, the sanitary association newly paid tasks such as livestock management, medical support, and manpower mobilization beyond existing beautification and preventive measures. This is an example of an increase in the capacity of sanitary associations with urbanization. However, the sanitary association itself had many legal vulnerabilities. For example, there was no legal personality in the sanitary association, which was an obstacle to the business of the sanitary association. In other words, such problems lead to double taxation and organizational negligence.
As the wartime system intensified, the sanitary association had room for cooperation in the war as a “the health camp back of a gun,” which appeared as an aid to the delivery and military. However, as the total mobili-zation system began in 1941, the sanitary association disappeared due to the reorganization and efficiency of the system. To define, the sanitary association was an urban hygiene organization organized to increase the influence of the police throughou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rough hygi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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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희영 ( Choi Heeyo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9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7-32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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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9년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시(Lisa See)에 의해 집필된 『해녀들의 섬』(The Island of Sea Women: A Novel)을 북미 독자층이 어떤 텍스트로 수용하고 있는지 고찰한다. 『해녀들의 섬』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부터 4·3평화공원을 개관한 2008년까지 제주를 배경으로 주인공 해녀 영숙과 미자의 우정과 상실, 국가폭력과 상흔을 생생하게 그려 낸 역사 소설이다. 이 중 제3장은 1947년부터 1950년까지의 제주4·3사건을 배경으로 국가 통제와 폭력에 의해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굴절될 수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해녀들의 섬』은 최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제주4·3사건 관련 문학 활동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단 작가인 리사 시가 혈통이나 문화적 배경 면에서 한국과 무관한 미국 백인 여성인 점에서 기존의 4·3문학과 다르다. 본 연구는 작가뿐만 아니라 북미 거주 비한국인이 중심 독자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총 12편의 논평회에서 토론된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북미 독자층의 『해녀들의 섬』을 향한 반응을 검토한다. 본 연구를 통해 영어권 문학이 북미 대중들의 한국 지역 문화 및 현대사를 향한 관심과 이해를 촉진하는 데에 효용성이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This study examines the response of North American readers of The Island of Sea Women: A Novel, written by the New York Times best-selling author Lisa See in 2019. The Island of Sea Women is about female friendship and devastating family secrets of two women named Young-sook and Mi-ja on the Jeju Island, located 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The historical novel covers the period from 1938, when Japan occupied Korea, to 2008, when Jeju 4 · 3 Peace Park was established. The third chapter, describing the chronological sequence of events related with the Jeju 4 · 3 Incident, reveals how one's personal life was affected by power and violence of the state. The Island of Sea Women is in line with 4 · 3 literature, which has been in the spotlight recently in the Korean literary world; however, it differs from other examples in that the author is neither Korean nor a person of Korean descent. This study, focusing on the fact that its targeted audiences are also North Americans, investigates 12 book club discussions to identify the effectiveness of English literature in promoting the public interest in Korean local culture and Korean contemporary history such as the Jeju 4·3 In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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