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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ASAN Studies

  • : 다산학술문화재단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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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598-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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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3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14
다산학
39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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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신발굴 자료 『고금비언古今鄙諺』의 분석(2) ─ 「백언시百諺詩」와 「아언지하雅言指瑕」를 중심으로

저자 : 윤석호 ( Yoon Suk-ho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64 (5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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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신발굴 자료인 『고금비언』에 대한 후속 분석으로, 전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백언시」와 「아언지하」를 그 이본들과 비교했다. 먼저 「백언시」의 경우, 다산은 장기 유배시절 이익의 『백언해』를 대상으로 4언 2구〔8언〕와 협운에 유의하여 수정했는데, 장서각본 「백언시」(이하 백언시A)는 이 단계의 결과물로 추정된다. 강진으로 이배된 이후로도 다산은 조선속담을 증보 및 수정했고, 손암이 흑산도에서 채록한 수십 수의 속담〔巽庵所輯〕을 받았다. 『운곡잡저』 「백언시」(이하 백언시B), 『고금비언』 「백언시」(이하 백언시C), 『청관총서』 「백언시」(이하 백언시C)에는 모두 '손암소집'이 빠져 있으므로, 필사 혹은 저본의 생산된 시점은 늦어도 손암이 서세한 1816년 6월 6일 이전이다. 그중에서 백언시C는 ⒜다산 수고본의 형태가 나타난다는 점, ⒝저자가 '籜翁'으로 되어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초당 이거 전에 생산된 판본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아언지하」이다. 장서각본 「아언지하」(이하 아언지하B)를 등사한 것이 규장각본 「아언지하」(이하 아언지하C)이며, 아언지하C의 영인본이 보유본 「아언지하」(이하 아언지하D)임은 분명하다. 한편 『고금비언』 「아언지하」(이하 아언지하A)와 아언지하B의 저자는 모두 '籜翁'로 표기되었으므로, 양자는 초당으로 이거하기〔1808년 봄〕 이전에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언지하A는 아언지하B보다 완성도가 낮으며, 본문의 내용과 맥락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필사된 정황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아언지하A가 아언지하B보다 먼저 생성된 판본임을 추정케 하는 근거들이다. 다산은 「아언지하」를 저술한 뒤로도 일상의 언어 오용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여기에는 기서술된 항목에 대한 조사도 포함되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언지하」의 47개 조목 중에서 『아언각비』로 전승된 39개이다.
유배기에서부터 다산은 '중국속담', '조선속담', '우리말의 오류'를 각각 수집하고, 이들을 「고금비언」, 「백언시」, 「아언지하」라는 독립된 저술로 정리하고 있었다. 한동안 이와 같은 구도를 유지한 채 각각을 보완해오던 다산은, 해배 이후 이들을 속담집과 어휘집으로 재편할 기획을 하게 되었다. 이에 「고금비언」와 「백언시」를 통합하고 수정 및 증보하여 『이담속찬』을, 「아언지하」를 대거 증보 및 재편하고 『혼돈록』과 합하여 『아언각비』를 저술했다. 이로써 볼 때 『고금비언』은 언어생활에 대한 다산의 학적 관심이 유배기 동안 축적되어왔음을, 그리고 그것이 「고금비언」, 「백언시」, 「아언지하」이라는 3개의 단편으로 보완되다가 해배 이후 『이담속찬』과 『아언각비』이라는 두 저서로 재편 및 확대되었음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저작이다.


This paper is a follow-up analysis of Gogeum bieon (『古今鄙諺』), comparing “Baekeonsi”(「百諺詩」) and “Aheon jiha”(「雅言指瑕」), which were not previously covered, with other versions.
In the case of “Baekeonsi”(「百諺詩」), Tasan Jeong Yak-yong in Jangki revised “Baekeonsi”(「百諺詩」) written by Seongho Lee Ik. “Baekeonsi”(「百諺詩」)(the collection of Jangseogak) is presumed to be the result of this process. Tasan added and revised Joseon proverbs even after being moved to Gangjin, and received dozens of proverbs recorded by Sonam Jeong Yak-jeon from Heuksando Island. The rest of the versions of “Baekeonsi”(「百諺詩」) did not contain the proverb that Sonam gave to Tasan, so the year of production was before 1816. In particular, “Baekeonsi”(「百諺詩」)(contained in Gogeum bieon(『古今鄙諺』)) appears to be a version produced before Tasan moved to Chodang.
Next is “Aheon jiha”(「雅言指瑕」). It is clear that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Kyujanggak) is a manuscript of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Jangseogak), and “Aheon jiha”(「雅言指瑕」)(contained in Addendum to the Complete Writings of Yeoyudang) is a photoprint of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Kyujanggak). Meanwhile, “Aheon jiha”(「雅言指瑕」)(contained in Gogeum bieon (『古今鄙諺』)) and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Jangseogak) appear to have been created before Tasan moved to Chodang(spring of 1808). In particular, “Aheon jiha”(「雅言指瑕」)(contained in Gogeum bieon(『古今鄙諺』)) is less complete than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Jangseogak), and the transcribed situation is confirmed without sufficiently digesting the content and context of the text, which is the basis for estimating that “Aheon jiha”(「雅言指瑕」)(contained in Gogeum bieon(『古今鄙諺』)) was created before “Aheon jiha”(「雅言指瑕」)(the collection of Jangseogak).
To sum up, Gogeum bieon(『古今鄙諺』) is a transitional work that shows that Tasan's academic interest in language has accumulated during exile, and that it has been supplemented with three short stories, “Gogeum bieon”(「古今鄙諺」), “Baekeonsi”(「百諺詩」) and “Aheon Jiha”(「雅言指瑕」), and has been reorganized and expanded into two books, Idam sokchan(『耳談續纂』) and Aheon kakbi (『雅言覺非』) even after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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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매씨서평』의 문헌적 검토 ─ 『채화정집』과 『정본 여유당전서』의 비교

저자 : 노지현 ( Noe Jee Hyu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111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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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채화정집』의 『매씨상서평』에서 최종본 『정본 여유당전서』 『매씨서평』으로의 형식과 내용 변화를 “「사」 50”에서 “「원사」 40”으로의 변화에 촛점을 맞추어 분석한 것이다. 이 분석을 위해 첫째로 다산이 해배 후 1819년에서 1827년 사이에 경기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글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매씨상서평』의 “「사」 50”과 관련된 내용에 집중했다. 경기학자들이 다산의 글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그의 거친 어조와 허구적인 글쓰기 방식이었다. 둘째로 “「사」 50”에서 “「원사」 40”로의 형식적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두 개의 도표를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도표에 바탕해 글쓰기와 내용의 변화를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분석했다. 경기학자들의 지적에 따른 다산의 글쓰기의 변화를 통해서, 다산의 작가와 학자로서의 성격과 문체와 더불어 그의 생각의 깊이를 헤아려 볼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se the change in form and content of the Critique of Mr. Mei's Book of Documents from that of the Chaehwajeong Collection to that of the Official Edition of Yeoyudang Jeonseo. The focus of the change is from “「Sa」 50” to “「Wonsa」 40”. For this analysis, first, letters exchanged with Gyeonggi scholars between 1819 and 1827 after Tasan was released from his bannishment were examined. Among them, our focus was especially put on the content related to “「Sa」 50” of the Critique of Mr. Mei's Book of Documents. What the Gyeonggi scholars shared in reading Tasan's book was his harsh tone and fictional writing style. These data serve as the basis for the analysis in the third chapter. Second, the formal change from “「Sa」 50” to “「Wonsa」 40” was analysed with the help of two charts. Finally, based on the second chart of the two, the changes in literary style and content were analyzed in detail by examples. Through the changes in Tasan's writing according to the remarks of Gyeonggi scholars, it is possible to estimate Tasan's character and style as a writer and scholar, as well as the depth of his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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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장본家藏本 『춘추고징春秋考徵』과 『민보의民堡議』의 문헌적 검토

저자 : 박종천 ( Park Jong-chu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65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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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문헌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춘추고징』 필사본들을 비교검토하여, '사암경집' 계열 필사본들인 버클리본과 규장각본이 각각 1830년 이전의 3차 수정고본과 그 전사본인 반면, 최근 그 실체가 확인된 김영호 소장 가장본 『춘추고징』이 '여유당집' 계열 필사본이자 1833년 이후에 수정하고 추가보완한 4차 수정고본으로서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의 저본이 되는 정고본 단계의 필사본임을 밝혔다. 아울러 김영호 소장 가장본 『민보의』가 2권 체계의 목차를 지닌 여유당전서보유본과 사암별집A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3권 체계의 완전한 목차를 지닌 '여유당집' 계열의 정고본임을 규명했다.
요컨대, 여유당집 계열 필사본인 김영호본 『춘추고징』과 김영호본 『민보의』는 모두 가장본인 동시에 최종 수정을 거쳐 『열수전서』로 간행할 예정이었던 정고본이다. 따라서 문헌적 검토와 전승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대 적용하면, 사암경집 혹은 사암별집 계통의 필사본들은 초고본에서 수정고본 단계에 해당하는 초기 필사본들이고, 여유당집 계통의 필사본들은 대체로 수정고본에서 정고본을 거쳐 전사본에 이르는 후기 필사본인 경우가 많으며, 여유당집 계열의 필사본 중 최종 수정고본이 정고본으로서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의 저본이 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In this article, I have made an philological analysis o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of Chunchu gojing (『春秋考徵』) and Minboui (『民堡議』). Since these manuscripts were originally kept in Tasan Family House, but they are in Young-Ho Kim's collection. These two manuscripts are the final stage drafts edited and corrected by Tasan Jeong Yak-yong(丁若鏞, 1762~1836). They are the revised versions of the Saam Gyeongjip(『俟菴經集』, SG) series or the Saam Byuljip (『俟菴別集』, SB) series, and all copies of the SG or SB series i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are the previous copies of manuscripts in the Yeoyudangjip (『與猶堂集』, YJ). Escpecially, the books of Chunchu gojing (『春秋考徵』) in the Tasan's works in the Complete Writings of Yeoyudang(『與猶堂全書』, CWY) are derived from the final manuscript of Chunchu gojing(『春秋考徵』) in Young- Ho Kim'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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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장본家藏本 『상서고훈』과 『상서지원록』의 서지적 고찰

저자 : 김성재 ( Kim Seong-ja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21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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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가장본家藏本 『상서고훈』과 『상서지원록』의 특징을 서지적으로 검토하고, 그동안 보고된 활자본과 이본들을 비교하여 각 이본들의 필사 시기와 필사의 선후를 살펴본 것이다.
가장본에는 정약용이 1810년 가을에 완성한 구본舊本 『상서고훈』과 1811년에 완성한 『상서지원록』, 『상서지원록』과 구본을 합치고 송대宋代 이후 학자들의 주석을 추가하고 자신의 설을 덧붙여 1834년에 저술한 합편 『상서고훈』이 포함되어 있다. 구본과 『상서지원록』은 합편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에 해당하는 연구로, 합편이 나온 이상 역할을 다하여 “다산에게 버림받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구본과 『상서지원록』은 정약용의 상서학尙書學이 변화 발전해 간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일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가장본 『상서고훈』 2종과 『상서지원록』은 모두 일부만 남아 있는 결질缺帙이지만 정약용이 마지막으로 수정, 정리한 정고본定稿本으로서, 그동안 발견된 이본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본 『상서고훈』과 『상서지원록』은 처음 저술한 이후 계속해서 검토 수정되었는데, 그것은 1834년 합편을 저술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전하는 이 책들의 필사본은 최후의 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필사된 것이다. 가장본에 지시된 수정 내용 중 일부가 현전하는 필사본에는 반영되지 않은 점이 그 사실을 말해 준다. 이에 비해 합편 『상서고훈』에는 가장본의 수정 지시가 충실하게 반영된 점으로 보아 가장본은 정약용이 합편을 저술할 때 직접 사용한 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정은 내용뿐만 아니라 장정에서도 이루어졌다. 구본 『상서고훈』의 표지에 있는 '舊本'이라는 글자는 새로운 본, 즉 합편 작성 이후에 장정을 새롭게 했거나 글자를 추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舊本'이라는 글자는 정약용의 친필일 수도 있으나 후손이 써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상서지원록』 표지에는 정약용이 1821년 5월에 완성한 정자 이름을 붙인 '채화정집菜花亭集'이라는 제목이 씌어 있다. 이는 이 책의 장정이 그 이후에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
구본 『상서고훈』의 필사 이본異本은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일본 쓰쿠바대학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두 이본은 가장본과 내용은 동일하나 각 권의 구성이 다르게 되어 있고, 『상서』 경문經文의 서술 방식도 다르게 된 부분이 있다. 이는 이 책의 최종본인 가장본이 완성되기 전에 필사가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며, 동시에 이 이본들이 1810년에 저술한 책의 원형에 더 가까운 구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가장본 『상서지원록』은 1969년 영인 출간된 『여유당전서보유』에 수록된 본의 저본임이 확실하다.
합편 『상서고훈』은 다른 필사본이 전하지 않고 1936년 신조선사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에 실린 활자본이 유일한 본이고, 그것이 정본 『상서고훈』의 저본이 되었다. 신조선사본은 출간 초기부터 오탈자 등의 오류가 제기되었다. 신조선사본의 오류는 『정본』에서 일부 교감하였으나 대부분 그대로 계승되었는데, 가장본을 통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This paper bibliographically reviews the characteristics of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of Sangseo gohun and Sangseo jiwonrok and examines the transcription period of each variant copy together with the periods before and after the transcriptio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consist of the old edition of Sangseo gohun, completed by Jeong “Tasan” Yakyong in the fall of 1810, and Sangseo jiwonrok completed in 1811. It also contains the combined 1834 version of Sangseo gohun, which combines Sangseo jiwonrok with the old edition and has Song scholars' annotations and his own comments. Therefore, the old edition and Sangseo jiwonrok were the groundwork to produce the combined version. Given the appearance of the combined version, one might say that it was “books abandoned by Tasan.” Still, the old edition and Sangseo jiwonrok have value as materials for examining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Jeong's studies of Sangseo(尙書).
The two family-owned editions of Sangseo gohun and Sangseo jiwonrok are odd volumes of which only parts remain, however, they are the final versions that Jeong revised and arranged and are different from the variant editions found afterward. The old editions of Sangseo gohun and Sangseo jiwonrok have been reviewed and revised since they were first written, and this is likely to have continued until the combined version was written in 1834. The manuscripts of these extant books were handwritten before the final revision was made. This is clear from the fact that some of the revisions identified i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are not found in the existing manuscripts. On the other hand, given that the revision instructions of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are faithfully ref lected in the combined edition of Sangseo gohun, it may be inferred that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are the ones Jeong Yakyong used when he wrote the combined edition.
Revisions were made not only in the content of the book but also in the book cover. The word “Gubon”(舊本) on the cover of the old edition of Sangseo gohun should be regarded as a new edition, since it may have been that a new rendering of the book cover was made or letters were added after the combined edition was published. The letters gubon may be Jeong's handwriting, but it is also possible that one of his descendants wrote it. Additionally, on the cover of Sangseo jiwonrok, there is a title “Chaehwajeong-jip ” written on it, named after a pavilion he completed in the fifth month of 1821. This suggests that the book cover was made after the pavilion's completion.
The variant manuscripts of the old edition of Sangseo gohun are housed in the Kyujanggak Pavilio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sukuba University in Japan. The two variants have the same content as the family-owned edition but each volume is arranged differently, and the Sangseo text is described differently. This indicates that the transcription was made before the family-owned edition(the final edition) was completed. Moreover, the variants are arranged in a manner that is closer to the original form of the book written in 1810. The family-owned edition of Sangseo jiwonrok is certainly the basis of the copy in the addendum of Yeoyudangjeonseo, published photo-typographically in 1969.
The combined edition Sangseo gohun has no manuscript edition and its only edition is the one published in Yeoyudangjeonseo by Shinjoseonsa in 1936. It became the basis for the original edition of Sangseo gohun. Errors such as typos were discovered in the Shinjoseonsa edition ever since its publication. Some errors in the Shinjoseonsa edition were partially revised in the original edition but most are present to this day. However, the family-owned edition gives us a chance to correct these er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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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장본 『맹자요의』 검토의 몇 가지 측면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1-24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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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본 여유당전서』 소재 『맹자요의』의 내용을 정본 작업시 반영하지 못한 가장본 『맹자요의』와 비교하여 연구한 필사본 연구의 하나이다. 기출간된 정본에 추가적인 교정사항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학적 작업이자 완성된 정본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맹자요의』 집필 당시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접근이다.
정본은 해제에서 『맹자요의』의 판본은 『여유당전서』 경집 5~6권에 2책으로 편집되어 수록된 신조선사본과 9권 3책으로 편집된 규장각 소장 필사본 『여유당집』 외에는 따로 없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신조선사본은 규장각 소장본을 대본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된 필사본을 대본으로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짐작은 얼마간의 진실을 담고 있다. 다만 가장본의 교정사항이 『여유당집』에 반영된 것으로 보아 『여유당집』은 가장본의 후대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설 4」의 '보유'에 대한 삽입 형태에서 신조선사본은 후대본인 『여유당집』이 아니라 이 가장본을 간행 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제에서 '이 『맹자요의』는 해배 이후에 수정했다는 기록이 없어 필사본은 강진 유배시의 저술 내용 그대로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별도로 필사된 난외의 보론과 자신의 유배생활의 경험이 본문에 반영된 것에 비추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본 필사본에는 권차에 대한 정보가 온전하게 기록되어 있어 9권 3책의 최초 편차의 확인할 수 있다. 그 분량을 고려한 편차의 타당함이 인정되므로 이는 향후 진행될 다산의 최초 의도가 반영된 『여유당전서』의 편차에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인증과 고증이 추가 반영되는 것이나 논리부분이 집중적으로 후작업을 통해 보완되는 과정 또는 논리 부분이 보충되고, 모기령 등의 의견이 추가적으로 반영되는 정황을 가장본 필사본은 여실하게 보여준다. 또한 문장 자체를 보완하거나 고염무의 의견을 추가 반영하는 부분은 다산의 하나의 경학 저작을 완성하는 데 들인 공력이나 학문적 축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아울러 이 저작이 해배 후에도 꾸준히 교정되고 있는 정황을 보여주는 부분은 이 책의 저술과정과 관련하여 주의하여 볼 대목이다.
이러한 학술저작의 다기한 정황에 대해서 필사본 가정본 『맹자요의』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정본의 성격을 이해하고 또 얼마간의 내용을 교정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his thesis is one of the collection of manuscripts studies with the comparison of the contents of Maengja youi (『孟子要義』), a theme for Official edition of Yeoyudang Jeonseo (『定本與猶堂全書』) with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of Maengja youi that was not reflected when working on the genuine copy. This would be a meaningful approach to confirm the situation of the time to write Maengja youi that is difficult to discover in the completed genuine copy as well as an scholastic endeavor to confirm if there is any additional calibration to the previously published genuine copy.
In the description, the genuine copy is presumed as not having any other copy but the collection of manuscripts, kept in Gyujang-gak, Yeoyudangjip (『與猶堂集』) edited in Sin-Joseon edition of Yeoyudang Jeonseo and 9 volume 3 books from the Yeoyudangjeonseo (『與猶堂全書』) Script Collection for 5-6 volumes 2 books for the edition of Maengja youi. As a result, this Sin-Joseon edition of Yeoyudang Jeonseo is assumed to have the collection of manuscripts with the same contents as the script had the collection in Gyujanggak(奎章閣) is not set for the script. This assumption contains certain truth within. However, the calibrated matters of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are deemed to be reflected on Yeoyudangjip that Yeoyudang-jip is shown to be the post-script of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In addition, Sin-Joseon edition of Yeoyudang Jeonseo in the insertion type on the 'Addenda' of “Introduction Four” is known to be facilitated at the time of publishing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not the postscript of Yeoyudangjip.
In the description, it is pointed out that, 'this Maengja youi shows that the collection of manuscripts would be the genuine contents of writings at the time of exile in Gangjin since there is no record showing any correction after the description', but it has to be amended in light to the reflection of experience in the time of exile and supplementary discussion separately transcribed in the aspect of the main context.
I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the information on author is completely recorded that the initial deviation of the 9 volumes and 3 books. The reasonableness of deviation considering the volume is recognized that the initial intent of Tasan is contains the possibility to reflect in the deviation of Yeoyudang Jeonseo that is to be processed in the future.
In addition, the Tasan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s is duly displayed for the situations of having additional ref lection of certification and historical research, process of supplementing the logics part intensely through the pose works, or the logics part is supplemented with additional reflection of opinion by Mao Qi Ling and others. In addition, the part where the sentence itself is supplemented or the opinion of Gu Yan-wu additionally reflected has significant implication to display the academic accumulative process or meritorious effort to complete the publication of Confucian Classics of Tasan. In addition, the part that displays the situation for steady calibration with the publication after the release from exile is the aspect of looking in relation to the publication process for the book.
With respect to the diverse situations of such academic publications, the collection of manuscripts of the genuine copy Maengja youi contains important information that it is expecte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genuine copy and facilitate the same in calibrating the contents to a certain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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