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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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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6)~31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18
사이間SAI
31권0호(2021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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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북으로 간 해녀들-제주 해녀들의 어떤 월경(越境)사-

저자 : 임경화 ( Lim Kyounghwa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4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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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방 이후 제주 해녀들의 월경 공간으로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북한에 주목하여 그들의 월북 경위를 살펴보고 월북 이후 북한에서의 그들의 삶을 추적해 봄으로써 근대 이후 제주 해녀들의 월경사의 공백을 메우고자 의도되었다.
근대 이후 주변적 존재였던 제주 해녀들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가 일본제국의 바다로 전환되면서 제국의 경제권에 편입되어 월경하는 나잠업 이주 노동자가 되었다. 제국의 열린 바다는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상대적으로 상승시켰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저임금 식민지 노동자로 극심한 노동력 착취와 전쟁 동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일 사이의 바다가 급격히 분리되는 과정에서 해녀들의 제국을 가로지르는 이주 노동은 불가능해졌다. 식민지 시대에 제주 해녀들의 최대 월경지였던 쓰시마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겨진 소수의 해녀들이 출가 물질의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민족 차별에 더해 어장 확보에 불안을 느끼며, 점차 쓰시마를 떠나게 되었다. 그중 10여 명 정도는 1959년부터 재일 조선인들의 북한 귀국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월북의 길을 선택하고 귀국선을 탔다. 이들의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 사회에서는 이때부터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식민지 시기에 전개되었던 해녀 항일 운동이 기념되기도 하고, 문학 작품이나 무용극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북한 사회에서 제주 해녀는 생활을 위해 월경하는 노동자로서의 특징을 상실하고 식민지기의 항일운동과 제주 4·3 사건 같은 '침략자'들에 대항한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제주의 역사를 움직였던 저항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묘사되어 있다. 월북한 제주 해녀들은, 이러한 인식 틀 속에서 북한 사회에 수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focuses on North Korea, which so far was not explored as a part of Cheju female divers' transborder migration space. I will investigate the cross-border migrations by the divers, and will attempt to look at these divers' North Korean lives. In this way, I am going to fill the existing lacuna in the studies on Cheju women divers' modern migrations.
In the modern period the sea spaces between Japan and Korea were appropriated by the Japanese Empire. Cheju female divers, the marginalized practitioners of free diving (with only rudimentary equipment), became cross-border migratory workers. The largest migration took place to Tsushima. However, the post-Liberation conflicts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over the maritime territories further exacerbated the anguish which the divers felt over the availability of the marine resources, in addition to the persistent ethnic discrimination issue. As a result, they mostly had to leave Tsushima rather early. Around 10 of them chose to take the repatriation ships to North Korea after the mass repatriation of Zainichi Koreans there started in 1959. While we know next to nothing about what happened to them personally in North Korea thereafter, it is known that the interest in female divers rose in North Korea after that, and their anti-Japanese movement was duly commemorated too. In North Korea, the Cheju female drivers were customarily described as the subjects of “struggle against aggression,” such as April 3, 1948 uprising in Cheju, or anti-colonial movement preceding it, rather than as labour migrants seeking to maintain their livelihood. These Cheju female divers who moved North were accepted by the North Korean society as a part of this cognitive fra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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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북한의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과 역사적 단절-한국전쟁기 원산을 중심으로-

저자 : 현명호 ( HYUN Myungho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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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전쟁기 원산을 대상으로 펼쳐진 공습과 포위공격을 중심으로 북한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의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한국전쟁에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피포위의식이 의미하는 북한지역 근현대사의 단절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연구들은 주로 일제시대나 해방기에 초점을 맞춰 한국전쟁의 발발과정을 추적해왔다. 한국전쟁기의 지역사를 다루는 연구는 전쟁이 가져온 지역 행정 및 정체성의 근본적 변화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북한식 도시 공간이 출현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원산이 가지고 있던 바다와 육지를 잇는 산업·상업 중심지이자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거점이라는 역사성이 한국전쟁 기간 어떻게 변화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북한의 피포위의식이 태평양전쟁기에 구상된 방공호가 일상이 된 생활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역사적 단절과 새로운 일상을 이야기하기에 원산이 적당한 사례로 보이는 이유는 전쟁 기간에 전개된 도시 공간의 철저한 파괴에 있다. 원산은 한반도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부터 미군의 공중폭격을 받아 교통과 산업 시설이 파괴되었다. 미 해군의 상륙 작전이 전개될 것에 대비해서 수많은 기뢰가 원산 앞바다에 뿌려져 바다와 육지와의 연결이 단절되었으며, 태평양전쟁기처럼 장기간 지속된 미 해군의 포위 작전으로 방공호의 삶이 일상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사실로 보아 한국전쟁은 원산 역사에 있어서 역사사회학자 윌리엄스웰이 말하는 것처럼 오래된 변화의 추세를 종료시키고 근본 구조를 탈바꿈시키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그 결과 형성된 새로운 일상은 이전 시대의 유산을 재료로 삼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This paper examines the formation of North Korea's siege mentality, focusing on the air raids and siege attacks on Wonsan during the Korean War. In particular, it addresses how North Korea's siege mentality, which is known to have its origins in the Korean War, represents a discontinuity in the northern Korean region's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Existing historical studies on the Korean War mainly investigat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or the post-liberation period to show its origins, and previous studies on wartime local history focus on the regional administration and identity changes brought about by the war, the post-war recovery process, and the appearance of North Korean-style urban space. Instead, this study interrogates how Wonsan's historical role as a regional industrial and commercial hub and a geopolitical center in Northeast Asia ended during the Korean War. It further reveals how the emergence of daily lives based on air defense shelters in wartime Wonsan stood for an early form of North Korea's siege mentality and the materialization of the defensive mentality conceived during the Pacific War. The reason why Wonsan seems to be a suitable case to discuss the historical discontinuity and the origin of a new defensive daily life lies in the thorough destruction of its urban space during the war. US air raids targeted Wonsan earlier than other regions, comprehensive sea mining closed its longstanding maritime transportation, and the siege of Wonsan, the longest naval blockade in modern history, transformed the defensive strategy into a daily routine. To use historical sociologist William Sewell's terms, the Korean War was an 'event' that ended the old 'trends' of Wonsan's industrialism and commercialism. It also entailed new defensive 'routines' that foreshadow the siege mentality that still affects North Korean lif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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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도호 납치사건과 혁명의 황혼녘-비밀, 음모, 테러와 북한이라는 무대장치-

저자 : 김항 ( Kim Hang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5-10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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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요도호 납치사건을 비밀과 음모와 테러를 통해 혁명을 형해화해온 냉전의 미디어 스펙타클을 통해 분석한다. 이를 위해 통치의 비밀과 대항권력의 비밀 사이의 관계를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전략을 통해 범례화한 뒤, 그 전제 위에서 1950년대 이래의 일본 공산당과 신좌파의 역사를 개괄한다. 그리고 1950년대 이래 전개된 냉전의 문화정치를 공안 통치와 미디어 스펙타클을 분석함으로써 부조한 뒤, 일본 신좌파의 혁명 정치가 어떻게 비밀과 음모 서사 속으로 전유되는지를 소묘했다. 다음으로 요도호 납치사건이 일본인 납치사건으로 인해 테러지원국가로 지목된 북한 표상과 연동되며 음모론으로 서사화되는 가운데, 요도호 그룹의 자기비판과 미래전망이 모두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시민의 의혹을 통과해야만 하는 조건에 처했음을 주장한다. 결론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북한이라는 무대장치를 통해 가능하며, 북한에 대한 부정확하고 불가능한 지식이야말로 동아시아 냉전 체제 이래 부르주아 체제가 혁명 정치에 맞서 스스로를 영속화시키는 근원적 방법임을 시론적으로 제시한다.


This paper analyzes the hijacking of Yodo-go under the context of the media spectacle in the Cold War era, which has shaped the representation of revolution through secrecy, conspiracy, and terrorism. To this e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cret of rule and the secret of counter power is revisited through Freemason and Illuminati's strategy, and on that premise, the history of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and the New Left since the 1950s is outlined. And after examining the cultural politics of the Cold War since the 1950s through considering public security governance and media spectacles in Japan, it is explored how the revolutionary politics of the new left of Japan were transmitted into secret and conspiracy narratives. Then, as the hijacking of Yodo-go is narrated as a conspiracy theory in conjunction with the North Korean representation pointed out as a terrorist state due to the Japanese kidnapping, both the Yodo-go Group's self-criticism and future prospects are under conditions to pass citizens' suspicions not political consciousness. In conclusion, it is discussed that all of these are possible under the condition of representing North Korea as a nation of secret and conspi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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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양 로케이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는 사람들

저자 : 전우형 ( CHON Woohyung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2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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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분단체제와 이념대립 등을 우회하는 북한과의 접촉지대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은 다중적이고 다자적인 접촉지대가 금기와 적대를 내포하는 월북을 대신해 북한으로의 이동과 만남을 교류와 공존으로 재인식할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론이다. 이는 그간 월북이 제한해 왔던 분단체제와 이념대립을 초월한 공동체와 네트워크가 수행해 온 역학에 대한 탐문이며 이를 통해 남북 경계에 관한 규범화된 기억의 다른 순간을 포착하는 여정이다.
“평양 로케이션”은 영화제작을 위한 접촉 자체도 그렇거니와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둘러싼 경계의 다른 기억에 개입한다. 2010년대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등 위로부터의 국외 합작영화로 불렸던 이 영화들은 사실 2000년대 <천리마 축구단> 제작을 계기로 모인 외국 영화인들이 상상하는 아래로부터의 다중적이고 다자적인 북한과의 접촉지대 구축과 연동되어 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니콜라스 보너(Nicholas Bonner)의 활동을 감안할 때, 이 접촉지대는 국가 간 간섭이 비교적 덜 미치는 영화제와 비엔날레 등 초국적 공동체를 통해 북한의 영화언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거점이었다. 이렇게 평양 로케이션은 북한을 둘러싼 경계를 분할과 통제 너머 공존의 접촉지대로 상상하는, 적어도 그것에 관한 새로운 경합장을 여는 재현의 장치였다.


This paper attempted to find a contact zones with North Korea that bypasses division system and ideological confrontation. This approach is a theory to verify the possibility that multiscalar and multilateral contact zones will re-recognize movement and meeting with North Korea as exchange and coexistence on behalf of North Korea, which implies taboos and hostility. This is an inquiry into the dynamics carried out by communities and networks that transcend the division system and ideological confrontation that North Korea has restricted so far, and through this, it is a journey to capture other moments of standardized memory of the inter-Korean border.
“Pyongyang Location” intervenes in different memories of the boundaries surrounding North Korea in the process of reproducing North Korea's past and present, as well as the contact itself for film production. These films, which were called overseas joint films such as Aim High in Creation! and Comrade Kim Goes Flying in the 2010s are in fact linked to the establishment of multiscalar and multilateral contact zones with North Korea imagined by foreign filmmakers in the 2000s.
Considering the activities of Nicholas Bonner,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is, the contact zone was the base for forming North Korea's film language network through transnational communities such as film festivals and biennales, which have relatively less interference between countries. In this way, Pyongyang Location was a device of reproduction that opened at least a new battlefield about it, imagining the boundaries surrounding North Korea as a contact zone for coexistence beyond division and cont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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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국한문체 『라란부인전』, 「자유모(自由母)」에 대하여-대한제국기 량치차오 수용의 한 단면-

저자 : 손성준 ( Son Sungjun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1-16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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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소년한반도』에 연재된 「자유모」는 량치차오의 「羅蘭夫人傳」을 한국 최초로 번역한 시도였다. 이 글은 「자유모」의 역자를 『소년한반도』의 사장이자 주필이던 양재건으로 특정하고, 여성 영웅의 전기가 『대한매일신보』 판본과는 달리 국한문체로 번역된 이유를 탐색하였다. 양재건은 「교자제신학(敎子弟新學)」의 첫 2회 연재분에서 자신만의 자유론을 설파하였는데, 애초에 「자유모」는 그 방향성에 부합하는 보조 재료로서 기획된 것이었다. 양재건의 자유론은'자유'의 운동성을 거세하고 그 가치를 도덕적·정신적 차원으로 한정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 이는 '혁명의 어머니가 혁명에 의해 죽는다'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내재한 「羅蘭夫人傳」의 성격과 잘 호응했다. 이러한 「자유모」의 번역 방식은 오히려 자유의 운동성을 강조한 순국문체 『라란부인전』과 대척점을 형성한다. 이렇듯 대한제국기의 량치차오 수용은 번역 주체의 배치와 변주에 따라 전혀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Jayumo (自由母), published serially in the magazine Sonyeon Hanbando (少年韓半島), was the first attempt in Korea to translate Liang Qichao's Madame Roland's Biography (羅蘭夫人傳). This paper specified the translator of Jayumo as Yang Jae-gun, the president and managing editor of Sonyeon Hanbando and explored the reasons why the biography of a female hero was translated in Korean-Chinese style unlike the Daehan Maeil Shinbo edition. Yang preached his own theory of freedom in the first two series of Gyojajesinhak (敎子弟新學); Jayumo was originally written as a supplementary material that accorded with his idea. Yang's theory of freedom eliminated the movement out of “freedom” and limited its value to moral and spiritual dimensions, which was consistent with Madame Roland's Biography, implying the tragic irony that “the mother of the revolution is killed by the revolution.” Such a translation style as Jayumo is in stark contrast to Madame Roland's Biography in its pure Korean style that emphasized the movement of freedom. Thus, the acceptance of Liang Qichao during the Korean Empire era was used for completely different purposes depending on the translator's arrangement and var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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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감정'과 '노동'이라는 의미소(意味素)-『신생활』에 실린 신일용의 글을 중심으로-

저자 : 전성규 ( Jeon Seongkyu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9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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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용은 『신생활』의 기자가 되기 이전에 의사였다. 의사로서 그는 가난한 환자, 부랑자, 여성, 나환자, 의지할 곳 없는 어린이들을 만났고 이들의 전염병, 영양실조, 성병 등을 치료했다. 그의 글쓰기는 기자로 전향한 뒤에 시작되었지만 글쓰기의 중심에는 자신의 임상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글은 『신생활』에 실린 신일용의 글을 대상으로 그의 글쓰기이자 사유의 키워드인 '감정, 노동'이 낡은 세계를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언어이자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의미소였음을 밝히고자 한다.
여기서 감정은 정확히 말하면 '민중의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며 신일용은 이 감정이 '본능'과 '충동'에 기반한 것임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신일용의 창작시 「밤비」에서 화자는 자신이 '낡은 껍질'에 쌓여 있다는 괴로움을 토로하지만 동시에 '새 옷'을 입는 것도 주저하고 있는데 이는 '새 옷' 역시 언젠가는 '낡은 껍질'이 된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일용은 '새 옷'의 '새것의 성질'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생'의 자질을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 '생'이 보존된 곳이 '본능'과 '충동'이라고 보았다. “최대의 고통”에서 비롯한 “창조적 반역적 의지”의 표현, 신일용에게 작가는 생에 기반한 복잡한 욕망의 관계성을 만들어내 그것을 증폭시키는 자에 다름 아니었다.
신일용이 '낡은 껍질'과 '새 옷'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 꾸준히 사유한 까닭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지금 속한 세계를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관점을 제공한 것이 맑스주의의 언어였다. 특히 '노동'이라는 키워드로 세계를 봄으로써 세계의 비합리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다.
「부인문제의 일고찰-자유주의와 현모양처사상」은 신일용이 『신생활』 제1호에서부터 제5호까지 꾸준히 연재했던 글로 가정부인의 가사활동을 임은계약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글이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노동자의 임은계약이 아닌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노동'으로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임금문제의 개념으로 여성의 가사활동에 접근함으로써 신일용은 세계의 '비합리성'을 강화시킨다. 이 글에서 그는 여성의 가사노동은 “교환계-시장”이 부재하므로 교환가치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 '비문명적'일뿐만 아니라 관계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글은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합리성에 기반한 이상적 인간관계와 생활의 모습을 제안한다. 그가 제시하는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국가가 일임하는 세계는 에드워드 벨라미가 『뒤돌아보며』에서 제시한 미래 세계와 닮아 있다. 이것은 1920년대 초반에 활발히 이루어졌던 과학적 합리성과 실용주의에 기반한 이상주의에 대한 탐색의 시도에 기반해 있다. 이 이상주의는 이전 시기의 사회진화론 등이 근대 정신의 파산으로 비판되고 과학적 진화론과 실용주의에 기반해 정신주의적 철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상된 것이었다. 신일용이 국가사회주의가 실현된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돌아보기』의 세계에 주목한 이유는 여성이나 약자를 포함하여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만드는 작업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벨라미의 소설은 물질과 제도 중심의 유토피아라는 특성을 갖는다. 제도로서 뒷받침된 평등이 있어야 사회는 합리성을 띨 수 있다는 생각, 이 지점이 신일용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Shin Il-yong was a doctor before becoming a reporter for 'New Life'. As a physician, he met poor patients, vagrants, women, lepers, and children without help, and treated them for infectious diseases, malnutrition and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His writing began after he turned to a journalist, but his clinical experience was at the center of his writing.
This article examines Shin Il-yong's writings published in 'New Life' and reveals that 'emotion' and 'labor', the two keywords were a language for closely observing the old world and a meaning that made it possible to imagine a new society.
Here, 'emotion' can be precisely called 'people's emotions', and Shin Il-yong actively expressed that these emotions are based on 'instinct' and 'impulse'. In Shin Il-yong's creative poem 'Bambi(Rain at Night)', the narrator expresses of the agony that he is piled up in an 'old shell', but at the same time he is hesitant to wear 'new clothes'. This is because he knew that 'new clothes' would one day become 'old shells'. Shin Il-yong believed that the only way to preserve the 'new quality' of 'new clothes' was that it should include the qualities of 'life'. The place where that 'life' was preserved was 'instinct' and 'impulse'. “creative rebellious will” from “the greatest suffering”, For Shin Il-yong, the artist was nothing more than a person who created and amplified the relationship of complex desires based on 'life'.
The reason why Shin Il-yong continued to think about the dialectical relationship between 'old shells' and 'new clothes' was because he desired a new understanding of the world. A new perception of the world we belong to starts with looking at the world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It was the language of Marxism that provided such a perspective. In particular, by looking at the world with the keyword 'labor', I was able to think about the irrationality of the world.
A Study on the Problems of Wife - Liberalism and the Thoughts of Wise wife(Hyeonmyeongcheo) is an article that Shin Il-yong continuously serialized from 'New Life'. This is an article that grasps the housekeeping activities of a housekeeper from the point of view of a labor contract. What is particularly noteworthy here is that it seeks to view the role of women as 'labor' in the family. By approaching women's housekeeping activities with the concept of a wage problem, Shin Il-yong reinforces the world's 'irrationality'.
In this article, he argued that it is not only 'uncivilized' but also 'irrational' that exchange value cannot be established because women's housework does not have an “market”. However, this article does not stop at pointing out irrationality, but suggests ideal human relationships and lifestyles based on rationality. The world in which the state completely entrusts childcare and housework that he suggests is similar to the world of the future presented by Edward Bellamy in Looking Backward. This is an attempt to search for idealism based on scientific rationality and pragmatism that was actively conducted in the early 1920s. This idealism was conceived while the social evolution theory of the previous period was criticized as the bankruptcy of the modern spirit, and the spiritualistic philosophy was searched for the direction based on scientific evolution and pragmatism. The reason why he paid attention to the world of Edward Bellamy's 'Looking Backward' in which National Socialism was realized is because of his interest in creating a 'material foundation' that all people in society, including women and the weak, can enjoy equally. Bellamy's novels have the characteristic of a utopia centered on materials and institutions. The idea that society can be rational only if there is equality supported as an institution. This point came to be important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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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김기진의 '클라르테(Clarté)' 번역과 한국문학의 레닌적 계기

저자 : 권보드래 ( Kwon Boduerae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9-24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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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기진이 1923년 말~1924년 초 『개벽』에 연재한 롤랑-바르뷔스 논쟁의 맥락을 재조명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롤랑-바르뷔스 논쟁 및 그 배경으로서의 클라르테 운동을 동아시아적인, 나아가 세계적인 문맥 속에서 탐구했고, 더불어 이 논쟁에서 표현된바 레닌주의적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노선을 둘러싼 이견이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수용됐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했다. 이를 위해 (1)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시작된 지식인 운동이었던 클라르테 운동이 최초의 전 지구적 지식인 네트워크를 지향했음을 고찰하고 (2) 1921년 말~1922년 초 클라르테 운동의 중요 성원이었던 로맹 롤랑과 앙리 바르뷔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내용을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론, 전위정당과 지식인론,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지지 여하를 중심으로 살폈으며 (3) 롤랑-바르뷔스 논쟁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소개되고 활용된 역사를 동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사례를 대비함으로써 일별한 후 (4) 이 논쟁의 번역이 함축한바 '비약'·'추월'이라는 계기는 또한 러시아혁명이 식민지 민족들에게 발휘한 영향력의 핵심이었으며, 그 개념적 응축 중 하나가 '프롤레타리아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고찰했다. 아울러 김기진이 조선의 후진성을 가정하면서도 롤랑-바르뷔스 논쟁 같은 세계 지식의 최전선의 사건을 번역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후진성의 역전'이라는 러시아혁명의 시간성을 번역이라는 영역에서 실천하려 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김기진은 클라르테 논쟁을 통해 아직 3.1운동기 '개조'의 영향 하에 있는 조선에 새로운 분기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조선 청년들이 레닌주의를 매개로 사회주의라는 사상-노선을 받아들이면서 민족주의와 일체화된 식민지 사회주의 노선을 형성해 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Globalization of the Clarté Movement,” “Debate between Henri Barbusse and Romain Rolland,” and “Again about Clarté”- these three articles, published by Kim Kijin during the short span of three months in 1923, mark a transitional moment in the history of modern literary criticism in Korea. They are remembered as a prelude to Socialist literature, and Kim Kijin soon led the first wave of socialist literature, known as “New Tendency Literature,” in Korea.
The Clarté movement and its international translation played a crucial role in appealing to the colonized who had been disappointed with Wilsonism and were trying to find an alternative. Even though Koreans may not have fully grasped the Clarté movement at the time of translation, it still had an impact. The tension between the Wilsonian Moment and the Leninist Turn in Socialism can be viewed as the first “postcolonial” moment in history. Faced with these choices, colonized countries had to decide what path to take in order to overcome the colonial situation. Korea, China and Japan explored their respective paths to encounter and appropriate the Clarté movement, through which we can observe a variety of translational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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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두만강』(이기영)의 정치적 무의식 연구

저자 : 이인표 ( Lee Inpyo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5-2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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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정향된 슈제트에서 이기영의 『두만강』은 명백히 김일성주의로 획일화된 역사적인 전망을 구현한다. 하지만 식민지적 실존을 김일성의 무력으로 일소해야 만 한다는 단순한 슈제트 때문에 『두만강』의 방대한 파불라가 핍진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총체성이 완전하게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슈제트와 파불라 사이의 이러한 '거리'가 실상 선행연구들의 '논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두만강』이 식민지 조선역사의 총체적인 드라마에 가까운지, 단순히 '체제에 복무하는' 드라마의 원형에 가까운지의 쟁점 때문이다. 이 논문은 결국 『두만강』이 총체적으로 내재한 조선인민의 역사적인 염원이 김일성의 무장투쟁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열어가는 역사발전을 향한 것이라는 점을 통찰할 것이다.
이를 위해 Ⅱ장에서는 '리조봉건'과 자본제 식민지의 실존을 대변하는, 『두만강』의 방대하고 핍진한 '협잡'의 세계를 먼저 탐색할 것이다. 그리고 Ⅲ장에서는 이 '왜놈'들의 '협잡'을 일소하는 김일성 무력투쟁의 정당성이 결말에 이르러 성공적으로 구현되는 이 드라마의 '의식'을 고찰할 것이다. 하지만 Ⅳ장에서는 이 '협잡'을 일소할 무력만이 아니라 이러한 '협잡'이 스스로 지양돼 사민주의로 고양되는 역사발전을 염원하는 드라마의 정치적인 '무의식'을 통찰함으로써 『두만강』의 의미를 확장할 것이다. 이로써 김일성의 무장투쟁이 '정통'이 된 북한체제가 사회주의체제로서 가지는 한계와 잠재력을 심층적으로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e sujet oriented towards the end, Lee Ki-young's Tumen River clearly embodies the historical perspective uniformed by Kim Il-sungism. However, the mere sujet that the colonial existence must be wiped out by Kim Il-sung's force does not completely abolish the vivid totality of history that the vast fabula of Tumen River represents. It can be said that this “distance” between the sujet and the fabula actually gave rise to the controversy of previous studies. This is because of the issue of whether Tumen River is close to the overall drama of colonial Joseon history or simply to the prototype of literature for Kim Il-sung regime. In the end, this thesis will give insight into the fact that the historical aspiration of the Korean people, which is inherent in Tumen River as a whole, is not only for Kim Il-sung's armed struggle, but also for the people themselves making new history.
To this end, in chapter II, we will first explore the vivid world of the trickery in Tumen River, which represents the existence of the feudal and the capitalist colonial era. And in chapter III, we will examine the “consciousness” of this drama, in which the legitimacy of Kim Il-sung's armed struggle which wipes out the trickery of the Japs, is successfully embodied at the end However in chapter IV, the meaning of Tumen River will be expanded by insight into the political “unconsciousness” of the drama that desires not only the force to wipe out this trickery, but also the history in which this trickery will be sublated and promoted to social democracy. This will allow an in-depth examination of the limitations and potential of the North Korean political system, which made the armed struggle of Kim Il-sung the sole “orthodox”, as a socialist system.

KCI등재

9여성 경제 주체의 욕망과 여성 가장 되기의 (불)가능성-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을 중심으로-

저자 : 오자은 ( Oh Jaeun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5-30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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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시의 흉년』을 김복실이라는 유례없는 여성 경제 주체가 빈집털이에서 시장의 소자본가로 성장해가는 서사와 그 전이의 임계치로 독해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상당한 재화를 가정에 제공함으로써 '여성 가장'의 욕망을 드러냈음에도 이면적으로는 가정 내에서 매우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동시에 살폈다. 당대 여성의 소자본가로의 성장, 그리고 여성 가장으로의 정체화, 이 두 가지의 존재 전이가 사실상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여성의 상향성의 욕망이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했던 이유와 그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화폐의 지배 속에 모든 것을 재편하면서 전통적인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경계선을 해체하는 경향을 보이는바, 70년대 경제 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경계를 부정하고 부단히 일탈하는 주체의 모습을 보이는 김복실은 바로 그러한 자본주의적 욕망의 현신이다. 이때 그녀의 경계 넘기가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본격적인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에 접어든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성격을 가늠하게 해준다.
김복실은 집에서는 자신이 일군 부를 통해 '여성 가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수록 소외되고 남편에게 철저히 배신당한다. 그리고 사업에 있어서는 노골적인 약탈과 착취가 횡행하는 '음성 경제'의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착취의 흔적에서 가장 거리가 먼 기업형 사업가로서 공식적이며 남성적인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상승하고자 했을 때 파산하고 만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김복실의 몰락의 이야기를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적 지배 체제가 소자본가로서 사업을 하고 집안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여성을 구조적 한계에 가두고 몰락시키는 이야기로 읽었다. 김복실의 욕망과 도전이 사회 속에서 겪는 비참한 좌절의 운명은 사회적 혼란과 격변을 기회로 등장한 예외적 여성 앞에서 위기에 빠진 가부장적 질서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독해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of Park Wan-seo's “The Bad Year of the City” focuses on the narrative of a female protagonist of the novel, Kim Bok-sil, rising from a minor thief to a small capitalist businesswoman in one of Seoul's big marketplaces and shows the limitations in her economic success story. It also tries to explain why her status in her family is so fragile in spite of her aspiration to become the family head with her dominant economic power.
The capitalist development of a society generally tends to destroy traditional cultural and moral values and conventions for the sake of capital accumulation, and Kim Bok-sil who is never afraid of breaking social and moral boundaries to make money personify the capitalist desire of the Korean society in the time of rapid economic development.
But in the end she fails dramatically both in her business and in her family when she challenges the very core of the patriarchal order or male dominance in her insatiable drive to succeed. In other words, the fall of Kim Bok-sil can be read not only as punishment of her materialistic greed but also as a reaction of the dominant patriarchal system against female aspirations to dominance which the new capitalist development has made thinkable.

KCI등재

10독립기념관 화재사건과 '민간주도' 담론-1980년대 '경제안정화' 정책기의 국가권력에 대한 계보학적 고찰-

저자 : 박소현 ( Park Sohyun )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간행물 : 사이間SAI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7-351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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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립기념관건립사'라는 공식역사의 생산과 국가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특히 공식역사에서 배제된 '국부적 앎들'의 관계, 공식역사의 방대한 사료에 등재되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의 그물망을 드러냄으로써 국가권력의 작동방식을 가시화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1980년대 당시 정권의 위기까지 초래한 정치적 사건인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이 방대한 독립기념관건립사 속에서 서술되지 않은 점에 주목하여, 독립기념관 건립과정을 추동한 '민간주도' 담론의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그 역사를 재구성해 보려 했다. '민간주도' 담론은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안정화 정책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으며, 정부와 대기업 간의 역동적인 권력관계를 체현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 건립은 이러한 '민간주도' 담론을 통해서 규정하고 추동되었다. 그런 만큼 '민간주도' 담론은 독립기념관 건립과정에서의 국민, 기업, 정부 간 권력관계의 길항을 보다 첨예하게 드러내주는 계기이며, 그 정점을 이룬 것이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이었다. 특히나 정부와 기업의 유착으로 초래된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의 책임이 건립공사의 말단에 있는 국민들에게 불평등하게 전가되면서, 그에 분노하며 책임을 묻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독립기념관건립사라는 공식역사는 이러한 목소리를 배제함으로써 건립공사를 맡은 대기업은 물론 그와 공모한 국가권력의 책임에 대해 침묵하는 서사이자 기념의례가 되었다. 이에 대해 공식역사에 서술되지 않은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은 역사적 침묵과 망각에 틈새를 내고 권력의 기념의례로 수렴되지 않는 역사의 지평을 개시해 주는 중요한 계기라 할 것이다.


This study started with a question about the production of the official history on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nd the way state power works. In particular, I attempted to scrutinize the way state power works by revealing the relationship of “fragmentary knowledges” excluded from official history and the nets of historical facts that were not written in the vast historical records of official history. Specifically, noting that the fire at the Independence Hall, a political event that caused the regime's crisis in the 1980s, was not described in the vast history of the Independence Hall, I tried to reconstruct its history through a genealogical approach to the “privately-led” discourse. The “privately-led” discourse was born in the flow of economic stabilization policies dating back to the late 1960s, and was embodying a dynamic power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large corporations. The construction of the Independence Hall was defined and promoted through this 'privately-led' discourse. As such, the “privately-led” discourse more sharply reveals the power relations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Independence Hall, and its peak was the fire incident. Therefore, I suggest the fire incident at the Independence Hall open up the horizon of history that does not converge in commemorative rituals of power, by paving gaps in historical silence and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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