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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Japanese Military and Culture

  • : 한일군사문화학회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598-8732
  • : 2734-0155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3)~34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421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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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종근 ( Park Jongkeun ) , 방준영 ( Bang Joonyo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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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가 가지는 가치를 알아보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 그리고 일본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분석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주일미군 및 유엔사 후방기지는 어떠한 능력과 위상을 가지고 있고, 일본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큰 틀에서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6·25전쟁을 통해 미국은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유엔안보리를 통해 신속하게 개입하면서 유엔사를 탄생시켰고, 일본에 있던 극동미군을 개전 1주일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한반도로 투입시켰다. 그리고 전쟁 기간 내내 일본은 전쟁물자 생산과 각종 기지 제공, 기뢰제거작전을 통해 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6·25전쟁 발발을 배경으로 창설된 유엔사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일 정부간에 협약을 통해 탄생하였다. 1951년 9월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을 통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엔군에 대해 시설 및 역무를 제공하게 되고, 1954년 2월 유엔참전국과 일본 정부 간에 '유엔군 지위협정'을 체결하여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은 평상시에도 일본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엔사 후방기지는 주일미군 기지중에서 지정된 것으로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90일 이내에 철수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유엔사를 볼 때 정전협정 등 한정된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엔사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해 주일미군과 일본 정부, 자위대, 유엔사 참전국 등 다양한 전쟁요소와 연계되어 있다. 전쟁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로서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국가안보전략 속으로 포함시킬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This study seeks to explore the value of the U.S. forces in Japan and UNC rear bases in Japan, which are important, but not well known to the public. For this, it was necessary to understand USFJ and UNC rear bases in a macroscopic perspective by analyzing their role, and the role of Japan in the case of the Korean War, what capabilities and status the current USFJ and UNC rear bases in Japan have, and how they are related to Japan.
Through the Korean War, the United States became aware of the importance of Korea; hence it intervened quickly through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nd created the UNC, and in a short period of time of less than a week, the US Army of the Far East appeared on the Korean Peninsula. On the other hand, Japan made a major contribution to the victory of the war by producing war supplies, providing bases, and clearing sea mines throughout the war.
In this context of the Korean war, the UNC rear bases were created by a treaty between the US and Japanese government in order for the UNC to carry out the war. In September 1951, through the 'Yoshida-Acheson Exchange Memorandum', the Japanese government provided facilities and services to the UN forces operating in Korea. In February 1954, by “UN Forces Status Agreement” between UNC member state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11 countries including the USA gained free access to the 7 UNC rear bases without prior approval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However, as these UNC rear bases were selected among the USFJ bases in Japan, it was accorded the UNC rear bases would withdraw within 90 days if UNC was disbanded.
When we look at the UNC, we tend to have a limited view considering it simply as an armistice agreement. The UNC is linked to various elements of war, such as the USFJ, the Japanese government, the Japan Self-Defense Forces, and the UNC member states through the UNC rear base. War is an essential matter that determines the fate of the country, and it is desirable as it will serve as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how to incorporate these important elements into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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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문은석 ( Moon¸ Eunse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5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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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호기, 즉 기회의 창은 과연올 것인가?
이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 연구는 향후 한일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먼저 한일관계 악화의 양상과 원인을 밝힌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 위한 조건을 국제정치의 구조적인 측면과 한일 양자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양국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한일관계 개선 가능성은 한일관계의 양자적 측면보다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더 민감하게 나타남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한일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변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상황의 구조적인 변화에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의 양국관계 흐름에서 양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양국 국민의 상대국을 향한 악화된 인식에 기인하며, 이는 결국 양국의 정권 운영에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양자 간의 정치적 결단이 한일관계 개선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2022년은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해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 결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이며, 일본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 변화가 국제정치의 구조적 요인과 연계되어 양국 관계 개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아울러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새롭게 출범할 대한민국 정부의 대일 외교안보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Will the window of opportunity, come to improv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here the crisis continues?
Based on this problem,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possibility of improving Korea-Japan relations in the future. To clarify this, we first clarify the patterns and causes of the deterioration of Korea-Japan relations. Based on this, the conditions for the improvement of Korea-Japan relations are divided into the structural aspect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the bilateral aspect of Korea-Japan, and the possibility of improvement in bilateral relations is viewed.
It is argued that the possibility of improving the Korea-Japan relationship is more sensitive than the bilateral aspect of the Korea-Japan relationship depending on how the structural factors of international politics change. There are two reasons for this. First, the variables that historically brought about changes in Korea-Japan relations were linked to structural changes in the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East Asia. Second, it is very unlikely that the political leadership of the two countries will make a political decision to improve relations.
However, the direct impact of the bilateral political decision to improv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cannot be overlooked. 2022 is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the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Therefore, we will also analyze how these changes in the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will affect the improvement of bilateral relations in connection with structural factors of international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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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경호 ( Son¸ Kyengho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7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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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경쟁국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다영역작전을 발전시켜왔다. 미군은 교차영역 시너지(cross-domain synergy)를 유용한 원리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한 전쟁 수행방식을 개발하였다. 공해전투는 상대방 영토에 진입하기 위하여 완전히 통합되고 서로 영역을 넘나드는 전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규정하였다. 공해전투는 지상 작전을 반영하고 상대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기 위하여 JAM-GC로 변화하였다. 이어서 출현한 MDO는 교차영역 시너지 생성과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적절한 전력 태세와 구조를 유지하고 융합을 달성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전장을 다영역작전구조를 통해 구분하였다. 한편 MDO는 미군이 경쟁국과 경쟁, 충돌 다시 경쟁으로의 복귀를 반복함을 주장하였다. 모자이크전은 인공지능과 자율무기체계를 활용하여 전력의 분산과 재조합을 시행하여 상대의 결심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JADO는 MDO가 달성하지 못했던 통합을 JADC2에 의해 달성하고 컴퓨터의 도움으로 결심을 상대보다 신속히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공해전투와 MDO는 영역을 중심으로 한 교리이며 교차영역 시너지 활용을 승리를 위한 핵심적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단순한 비대칭적 이익을 얻는 것에서 출발하여 시너지를 얻어 다른 영역으로 효과를 확대하거나 취약한 영역을 보완하고 기회의 창을 생성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JADO는 MDO와 달리 영역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며 모자이크전과 유사하게 결심을 중심으로 한 교리이며 방식은 모자이크전의 그것과 달리 기계의 도움으로 속도를 높이는 데 있다. 한편 미군은 MDO 보다는 훨씬 큰 차원에서 전 영역의 전력을 복합체계 개념을 통해 통합하여 경쟁 상대를 압도하기 위하여 JADO를 발전시키고 있다.


The U.S. military has developed multi-domain operations to deal with competitors represented by China and Russia. The U.S. forces employed cross-domain synergy as an effective principle to develop multi-domain operations. Air Sea Battle was the first case enabled integration of cross domain forces to enter into enemy territory. Later the concept was changed to JAM-GC to gain flexibility in competition. MDO, later version, stipulated force posture and structure, and convergence to maximize the cross-domain synergy. At the same time, the MDO suggested multi-domain operation frame to conduct operations. The MDO describes that the U.S. will compete, conflict, and return to competition with peers. Mosaic Warfare focuses on degrading enemy decision making process by dispersing and recombining its forces with the support of AI and automated weapons systems. JADO intends to enhance integration failed with MDO using JADC2 and attempts to raise the pace of decision with machine support.
Air Sea Battle and MDO attache great importance to cross-domain synergy for the way of winning wars. The U.S. armed forces have developed methods to use synergy from simply using asymmetric advantages to expand synergy to other domains, to cover vulnerabilities, and to create windows of opportunity. JADO does not rely on domains, unlike MDO but like Mosaic Warfare centers on decision making to increase the speed with the help of machine. In addition, JADO pursues further development in a large scale compared to the MDO to maintain significant upper hand over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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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주경 ( Lee¸ Jukyung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11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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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레벨에서 당세의 부침이 심한 일본유신회는 어떻게 오사카에서는 높은 지지가 계속되는가? 또한 선거에서 오사카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오사카유신회는 간판 정책추진에 실패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본 연구는 국정-지방선거에서 유신회의 선거 전략과 오사카도구상 부결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첫째, 지방레벨에서는 정당 본위와 정책 퍼포먼스에 기초한 내연 공고화 전략으로 지지의 오사카 편중이 강해졌다. 둘째,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국레벨에서는 후보자 본위와 이념적 보수 전략을 병행한 외연 포섭 전략으로 지지구조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셋째, 오사카도구상이 부결된 이유는 유권자가 유신회 정치에 대한 선호나 평가와는 별개로 해당 정책의 장단점을 우선하는 비판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즉 유신회가 선거 전략적 정책 퍼포먼스를 강조한 결과, 선거-정책 공간에서 유권자 선택에 혼선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선거 승리와 정책 실패라는 지지의 불균형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Why does the Japan Restoration Party(JRP) continue to be highly supported in Osaka, despite its ups and downs nationwide? And why did the the Osaka Restoration Association(ORA) fail in their policies despite the election victory in Osaka?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study analyzes how the JRP/ORA's national-local election strategies are related to the implementation failure in Osaka Metropolitan Plan. Findings are as follow. First, the intensive consolidation strategy aimed at Osaka focused on party based policy performance led to a bias in support for Osaka. Second, in contrast to the local level, candidate-based with ideological conservative strategies were combined to incorporate the extension at the national level. As a result, the support for the JRP/ORA became more unstable. Third, the reason for failure of Osaka Metropolitan Plan lies in the rational choice of voters, who prioritized the pros and cons of the policy rather than evaluating the ORA politics in Osaka. There was a mismatch of support in the election-policy process, as the JRP/ORA strengthened its policy performance by linking with electoral strate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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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장근 ( Choi¸ Jangkeun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13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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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한일협정 이후 일본이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한 사례를 분석하였다. 첫째,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일협정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독도는 분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동일하게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함으로써 분쟁지역이 된다는 것이다. 독도가 분쟁지역이 되면 독도와 그 주변 수역에 대한 일본의 권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이 독도 주변해역에서 먼저 대륙붕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1974년 일본은 해양 권익 확보하기 위해 공동개발 형태로 대륙붕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때에 일본은 한국이 주장하는 독도기점 12해리 영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한국에 대해 독도 기점의 12해리 전관수역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1982년 유엔해양법 협약이 채택되어 한국은 독도 주변에서 12해리의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도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한국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이 12해리 영해를 확보하였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둘러싸고 양국이 협상하여 양국사이의 수역에 대해서는 공동관리를 약속하였다. 넷째, 1998년 한일 양국은 새로운 어업협정을 체결하였다. 일본은 일방적으로 1965년의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해 공동관리를 강요하였다. 최종적으로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과 독도기점의 12해리 영해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독도의 영유권과 12해리 영해권 주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한국과 동등하게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단지 형식적으로 독도와 그 주변 영역에 대한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This study analyzed the case in which Japan claimed that Dokdo was Japan's own territory after the Korea-Japan agreement. First, Dokdo is Korea's indigenous territory. Dokdo is not Japanese territory. Nevertheless, Japan insisted that Dokdo is Japan's own territory in earnest after the Korea-Japan agreement. The reason is to turn Dokdo into a disputed territory. Because Korea insists that Dokdo is clearly Korea's indigenous territory without room for dispute, Japan also becomes a disputed territory by claiming that it is Japan's indigenous territory. This is because if Dokdo becomes a disputed area, Japan's rights and interests in Dokdo and its surrounding waters can be secured. Second, Korea first began developing the continental shelf in the waters around Dokdo. In response, in 1974, Japan signed a continental shelf agreement in the form of joint development to secure maritime rights and interests. At this time, Japan did not deny the territorial waters of 12 nautical miles from the origin of Dokdo, which Korea claimed. The reason for this is that the 1965 Korea-Japan Agreement recognized Korea as a 12-mile area from Dokdo. Third,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was adopted in 1982, allowing Korea to claim 12 nautical miles of territorial waters and 200 nautical miles of exclusive economic zones around Dokdo. However, Japan also claimed sovereignty over Dokdo, so it formally demanded equal status with Korea. In fact, however, Korea secured 12 nautical miles of territorial waters, and the two countries negotiated over the 200-nautical mile exclusive economic zone, promising joint management of the waters between the two countries. Fourth, in 1998, Korea and Japan signed a new fisheries agreement. Japan unilaterally destroyed the 1965 fisheries agreement, claimed sovereignty over Dokdo, and forced joint management of the waters around Dokdo. Eventually, Japan failed to secure sovereignty over Dokdo and 12-mile territorial waters of Dokdo's origin, but it did not give up its claim to Dokdo and 12-mile territorial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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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성숙 ( Oh¸ Sungso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5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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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점령기의 검열과 그 이후 원폭문학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전후 원폭문학이 검열에 의한 위축과 더불어 문학의 보편성을 전유한 문단의 문화권력 아래, 하위문학으로 배척되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첫째, 원폭문학은 검열과 감사한 폭탄이라는 원폭신화에 의해 위축되며 출판의 기회를 잃거나 자비 출판되고 있었다.
둘째, 당시 유럽의 앙가주망 문학이 시대의 위기에 저항하는 문학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일본의 전후문학은 보편적 문학을 옹호하는 문단을 등에 업고 화조풍월의 유희적, 사소설적 신변잡기에 머무는 전통적 문학의 진부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후문학이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원폭문학은 비참함이 전부인 문학으로 폄하되고 히로시마 문단에서 고립된 서벌턴 피폭자 문학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셋째, 1차에서 3차에 걸친 원폭문학 논쟁을 통해, 원폭문학은 체험의 공유가 개인에서 집단의 체험으로 계승되며 미래 문학으로서의 길을 열고자 하였다. 하지만 문학의 보편성에 기댄 히로시마 문단과 중앙문단은 원폭문학을 체험으로 간주할 뿐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원폭문학은 문단이라는 제도권 안에 진입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서벌턴 피폭자 문학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폭문학은 일본문학의 보편성에 도전하고 있으며, 20세기 핵시대를 맞아 저항문학, 참여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This paper could examine the process in which the postwar A-bomb literature was dampened by censorship and degraded as sub-literature under the cultural power of literary circles monopolizing the universality of literature, based on debates around the censorship during the period of U.S. military administration and the subsequent the A-bomb literature.
In summary, first, the A-bomb literature lost its opportunity to be published or was published as authors' editions, as was dampened by censorship and the myth of A-bomb called a grateful bomb.
Second, the Japanese postwar literature supported by literary circles advocating for the universal literature exposed its traditionally literary staleness, in that it only focused on Hwajopungwol's amusement and one's memoirs specific to I-novel, while the contemporary European engagement literature emerged as the literature resistant to the crisis of the times. As the postwar literature secure the universality, the A-bomb literature was disparaged as the literature only with wretchedness and degenerated as the subaltern A-bomb victim literature isolated by the Hiroshima literary circles.
Third, the A-bomb literature attempted to open a path to the future literature, by succeeding individual experiences as those of groups, via the 1st to the 3rd debates on A-bomb literature. Both Hiroshima and central literary circles, which depended on the universality of literature, did not recognized it as the formal literature, but only regarded it as a set of experiences. It, therefore, could not but become the subaltern A-bomb victim literature which failed to enter the literary world, an institutional area. Nevertheless, this study can indicate that it has challenged the universality of the Japanese literature and has potential to be resistance and engagement literature in the face of the atomic age in the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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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태환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9-17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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