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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43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474
한국실학연구
43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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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병직 ( Ahn Byong-jic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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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실학적 학풍은 栗谷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軍役, 進上 및 貢物 등 부세수취과정에서 발생하는 隣徵族徵 및 胥吏의 苛斂誅求 등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개혁 즉 務實을 강조함으로써 經學중심의 유학적 학풍을 經世學으로 크게 회전시켰다. 임진왜란이후 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이제 더 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芝峯, 久菴및 浦渚 등도 務實力行을 강조하고,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1608년에 경기도에서 대동법이 실시되었으며, 於于堂은 화폐의 유통과 상업·광업·어염·축산·수렵·채집 등 산업의 장려를 주장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磻溪는, 집안의 世業이던 관계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조상의 賜牌地가 있던 부안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도탄에 빠진 인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저술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 결과가 31세에 起草하여 별세하기 3년전인 49세에 탈고한 『반계수록』이다. 『반계수록』의 저술에 있어서는, 小康社會가 실현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중국三代의 경전에서 개혁의 이론적 모형을 찾고 조선의 역대개혁방안에서 시대적 개혁과제를 모색했다. 이러한 점에서 『반계수록』은 조선후기의 최대의 개혁서의 하나일 뿐만이 아니라 조선후기의 실상 을 잘 알려주는 저서이기도 하다.
반계의 인식론은, 이기론으로 출발했으나, '實理論'으로 귀결했다. 그 배후에는 사물를 움직이는 기본요인이 이기론의 太極·陰陽이 아니라 유학의 전통적 관점인 '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즉 '성은 하늘의 道이요, 성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계는, '성이 곧 진실이다'는 선행의 실학적 학풍을 이어받아, 성실하면 만물과 만사가 진실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결과 '천지의 理는 만물에서 드러나니 物이 아니면 이치가 드러날 데가 없고, 성인의 道는 만사에서 행해지니 일이 아니면 도가 행하여질 데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반계는, 삼대의 古經은 '천지의 理'와 '성인의 道'를 기초로 저술된 것이므로, 지금은 비록 삼대의 典章이 각 고경에 흩어져서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古人이 진실로 그 일을 일로 삼는' 자세로 고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면 그 全體像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古人이 진실로 그 일을 일로 삼는' 탐구의 방법은 『漢書』河閒獻王德傳의 '학문을 닦는데 있어서 옛 것을 좋아하되 사실을 核實해서 옳은 것을 밝힌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고경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訓故·義理·條理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반계수록』의 서술방법은 節目과 攷說로 구성되어있다. 절목이 『반계수록』의 주된 서술방법인데, 반계는 절목에서 경세학의 조리를 절목별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획득된 삼대의 경세학체계가 井田制 및 賦貢制와 관제이다. 정전제는 公田·經田·田稅·軍役의 문제를 일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이며, 부공제는 화폐의 유통과 각종산업의 진흥방안이며, 관제는 이러한 국정과제를 수행할 과료기구의 정비이다. 이렇게 보면, 『반계수록』에서 비로소 조선후기실학의 기본특징인 실사구시라는 방법과 경세학의 체계가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계는 조선후기실학의 鼻祖라 일컬어질만하다.


The Sirhak trend of late Joseon seems originated from Yulgok(栗谷) Yi-yi(李珥). Yulgok turned philosophy-centered Joseon Confucianism into a governance-centered one by focusing on systemic reform [務實] to remedy the abuse of taxation including military taxation and local tribute to the king. After the Japanese Invasion, with the emergent need for reform to sustain the state, Jibong(芝峯) Lee Su-kwang(李睟光), Gu-am(久菴) Han Baek-kyum(韓百謙) and Po-Jeo(浦渚) Jo-ik(趙翼) also advocated “practical action for systemic reform[務實力行].” In this atmosphere, Taedong tribute tax was forced in Kyong-gi Province in 1608, and Eoudang(於于堂) Yu Mongin(柳夢寅) insisted to promote monetary economy as well as commerce and industries of mining, fishery, livestock, hunting, and gathering.
It was the time of Bangye(磻溪) Yu Hyeoung-won(柳馨遠). He abandoned the road to be a governmental official like his predecessors and decided to write to save the miserable. Bangye Surok, which he started at age 31 and finished at age 49 just 3 years before his death, was the result of his efforts. Bangye found his theoretical ideal of reform in the Classics of Ancient Three Kingdoms in China which was so-called a small but solid state [小康社會] and found the social agenda of his time reviewing reform politics in Joseon history. With this regard, Bangye Surok is not only one of the best books on reform plans in late Joseon, but also the book that shows the reality of the time.
Bangye's epistemic premise started from the li/ki dualism but concluded with “the practical li (實理論)”. He thought the first causes and principles were not the Supreme Pole (太極) or yin-yang (陰陽) of li/ki dualism, but “Sung(誠)” in traditional Confucianism, expressed as “Sung is the way of heaven, and to be Sung is the way of man.” Here, Bangye successes the Sirhak thinking of “Sung is the practical” and thought that everything becomes practical when you realize “Sung.” “Because li of the universe is expressed in everything, without material, Li can't be disclosed ; Because the way of Sage is performed in everywhere, without administration, the right way can't be demonstrated.” he concluded.
In this regard, Bangye thought that he can restore the whole image of Ancient Classics by comprehensive studying modeling “the way the sages do the work” because the Classics were based on the 'li of the universe' and 'the way of sage', even though the book was scattered in all directions. “The way the sages do the work” is the same method as “Studying classics but searching for the truth from real facts” in『漢書』河閒獻王德傳, which aims to study Classics with the approach of philology, philosophy, and logic.
Bangye Surok's description method is using Julmok(節目) and Goseol(攷說). The most part of Bangye Surok is written in Julmok style, to explain the governing principles categorically. Bangye suggested the well-field system (井田制), royal contribute taxation (賦貢制), and bureau system (官制) as the governing system in the Ancient Kingdoms. The well-field system can total solution to the problem of land and military taxation in 公田·經田·田稅·軍役. The royal contribute taxation (賦貢制) is the way to promote the monetary economy and various industries, while the bureau system (官制) is needed to optimize the governmental offices to perform the projects. As a result, we can say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the late Joseon Sirhak, “Searching for truth from real facts (實事求是)” and the governance principle was finally established in Bangye Surok, and that Bangye was the progenitor of Joseon Sir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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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양섭 ( Song Yang-seop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87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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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진행된 내재적 발전론의 흐름에서 실학의 발견과 함께 본격화한 유형원에 대한 연구는 최근 조선후기사 분야별 성과의 축적으로 여타 부문사와 심각한 부정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실학 일변도로 진행되어 온 유형원 연구에 새로운 고민과 발상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거니와 실학의 담론이 보편의 외피로 서구의 근대를 모델로 삼아 이와 유사한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추출하여 斷章取義의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근대'를 기준으로 조선후기 사상계를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방식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반계수록』의 내용은 특정 학파의 전유물로 단정하기 힘든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유형원의 경세론이 지역과 당색을 불문하고 많은 지식인들에게 공감을 얻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형원의 개혁론은 철학적 심성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래 송대 성리학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집중했던 것도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개혁을 통한 도덕사회의 건설이었다. 유형원이 퇴계학파의 세례를 받은 이기심성론적 철학적 토대 위에 국가·사회에 대한 방대한 개혁론을 펼쳐내고 있는 것은 『반계수록』의 경세론이 修己治人·內聖外王의 성리학적 사상체계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유형원은 보편문명으로서 삼대의 이상을 꿈꾸면서 송대 성리학자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조선의 현실을 분석·비판하고 새롭게 국가체제를 쇄신하고자 했다. 바로 조선의 성리학이 특유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풍부하게 담아낸 독자적인 사상으로 추상적·사변적 철학을 논구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국가체제를 모색하는 단계로 새롭게 진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좌였다. 『반계수록』의 개혁안은 국초의 제도를 모델로 철저하게 당대의 제도를 수정·보완하는 차원에서 구상되었으며 이념형의 형태를 강하게 띤 공전제 외에 왕조체제를 부정한 '근본적 개혁'을 지향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찾기 힘들다. 따라서 『반계수록』에 대한 독해에서 일차적으로 밝혀져야 할 지점은 유형원이 딛고 선 현실에 대한 엄밀한 이해와 여기에 규정된 사상의 당대성이다. 유형원의 학문적 현실개입은 무엇보다도 17세기 시공간의 고유한 맥락에서 의미와 역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반계수록『이라는 텍스트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훼손없이 스스로의 문법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안으로부터의 관점'은 선입견이나 현대적 해석을 배제한 채 유형원의 관점에서 『반계수록』의 내적 논리구성을 온전히 인정하고 복원해주는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반계수록』 내부의 구조와 문법이 밖으로부터 보기와 만날 때 비로소 역사성을 가진 실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유형원의 눈을 통해 시대를 보고 시대의 규정 속에서 유형원을 읽는 작업이다. 유형원의 구상이 고제의 이상에 비추어 중국과 조선의 역대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와 평가를 수행하였던 만큼 중층적 내용성과 복합적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유형원 개혁론에 대한 이해도 그것이 가진 층위별 차별성과 그것이 하나의 개혁론으로 구축되었을 때 나타나는 경세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바로 조선후기 경세론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한 '방법으로서 유형원'에 대한 인식론적 모색이다.


Studies on Yu Hyeongwon, started with the discovery of Silhak, the Practical Learning amid the discourse of the Internal Development Theory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are showing unconformity with other fields of history, where many products of historical research are accumulated. This tells us that we need new inspirations and concerns for the study on Yu Hyeongwon, which was exclusive to Practical Learning. Moreover, the discourse of Practical Learning is hard to avoid the criticism that it was modeled after the 'Western Modern' as the skin of universality and similar elements were extracted selectively to support this, not to mention that the historiography has had the same problem of dividing 'conservatives' and 'progressives' based on 'Modern'. The contents of Bangye Surok have a complex characteristic that cannot be judged as a property of a certain school of thoughts, and this was the factor why the statecraft of Yu Hyeongwon earned support regardless of region and political party.
The reformations suggested by Yu Hyeongwon are inseparable from philosophical theory on the nature of humanity. Originally, the reason for Neo-Confucianism in the Song dynasty to concentrate on metaphysical matters was to prepare for establishing a new social order, and the ultimate goal of the Song Neo-Confucianism was to build a moral society based on social reform. The fact that Yu Hyeongwon articulated his idea on vast reformation on the state and society based on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Principle-Material-Mind-Nature (理氣心性) influenced by Toegye school shows that the statecraft of Bangye Surok needs to be understood on the basis of Neo-Confucian ideal structure centered on the ideas of Cultivating one's Self and Governing the Others (修己治人) and Internally being the Saint and Externally being the Sovereign (內聖外王). Yu dreamt the ideal of Three Dynasties of Ancient China and explored the theories of Song dynasty Neo-Confucian scholars. By doing so, he analyzed and criticized the reality of Joseon, and attempted to renew the system of the state. This was the evidence that Neo-Confucianism in Joseon, as an independent idea abundant with its unique placeness and historicity, was entering a new phase, where they criticized the social realities and sought a new state system, beyond arguing abstract and speculative philosophy.
The reformations in Bangye Surok were modeled after the initial system of Joseon and were designed to amend and supplement the system of the time. Other than the Public Land System, which strongly showed the ideal form, there is no reason to judge that Bangye oriented for the 'foundational reformation' denying the dynastic system. Therefore, when reading Bangye Surok, the foremost point of clarification is the strict understanding on the reality which Yu Hyeongwon lived in, and the contemporaneity of the idea regulated in his writings. Most of all, Yu's academic involvement in his reality has nothing to do but have its significance and historicity in the unique context of time and space in the 17th century. What is most important is to reconstruct its own grammar without harming the general context, by accepting the texts of Bangye Surok without any bias. The 'perspective from the inside' starts from admitting and restoring the inner logics of Bangye Surok from the perspective of Yu Hyeongwon, excluding any prejudice and modern contemporary view. When the inner structure and grammar of Bangye Surok meet the eyes from the outside, the substance with the historicity reveals itself. That is, it is the work to read Yu Hyeongwon in his time through his eyes. Since Yu Hyeongwon reviewed and evaluated vast systems of all times in China and Joseon Korea reflecting the ideal of the 'Ancien Regime', his design has multi-layered substances and a possibility of multiple interpretations. Thus, I think that when we understand his reformation, we ought to consider the significance of statecraft revealed when distinct layers of his idea are converged into one reformation. This is the epistemological quest for 'Yu Hyeongwon as a method' to understand statecraft in late Joseon period d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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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동희 ( Lee Dong-he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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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반계 유형원이 부안 우반동에 왜 내려오게 되었고, 우반동은 어떤 곳이었으며, 그의 우반동 생활은 어떠했는지 『반계수록』의 편찬과 관련해 고찰해 본 것이다. 우반동은 서해안 변산 자락으로, 산자락 안쪽에 너른 들녘이 자리하고, 그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포구이다.
우반동에는 반계의 선조 유관의 사패지가 있었다.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이 우반동 땅을 반계의 조부 유성민이 내려와 논밭을 만들고 경작하기 시작하였다. 조부 유성민이 죽자 반계는 삼년상을 치르고 조부에 이어 우반동 농장을 경작하기 위해 내려왔다. 반계의 우반동 이거는 은둔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였다.
반계는 우반동에 거주하면서 1.7년에 한 번꼴로 서울 일원을 자주 왕래하였다. 서울에 머문 기간도 짧지 않았다. 반계는 농촌현실을 목도하고 중앙과 소통하면서 개혁론을 완성하였다. 반계는 낙향하였지만, 현실정치 참여 의지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반계는 현실정치 참여에 깊은 관심을 두고 개혁론을 구상하였다.
반계는 농장경영을 위해 우반동으로 내려왔고, 중앙과 소통하며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반계의 개혁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반계 개혁론의 토대가 부안 우반동이었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Uban-dong is a port town between a field and Yellow sea in Byeonsan, one of the ten safety places(Utopia) in Korea. There was a land bestowed by the king on his ancestor, Yu Gwan. His grandfather, Yu Seong-min went down to cultivate this land after a long time. After his grandfather was dead, he went there as well and succeeded grandfather. His migration is not escapism, but the problem in hand.
He visited Seoul once 18 months while residing Uban-dong. He did not give up to take part in politics even though he went back to his hometown. He was more interested in a participation in politics and planed reformism by experiencing the reality of farming villages and communicating with politicians in Seoul. So It is need to approach from this standpoint for understanding his reformism wholly, and keep in mind that Uban-dong is the foundation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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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Donald Baker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14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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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팔레(James Palais, 1934∼2006)는 영어권 학계에 유형원(1622∼ 1673)의 정치철학과 개혁 제안을 널리 알리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팔레(Palais)의 방대한 연구인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 유형원 과 조선 후기』는 영어로 저술된 조선 시대 연구의 가장 영향력 있는 단행본중 하나이다. 이 저서는 유형원이 조선 후기 실학파 학자라는 통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팔레는 17세기 조선이 직면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자가 바로 유형원임을 인정했지만, 유형원의 개혁 제안이 이른바 근대 적 요소를 보여준다는 점은 부정하였다. 예컨대 팔레는 보다 공정한 토지의 재분 배에 대한 유형원의 제안이 근대성의 맹아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전통적인 유교 적 假定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유형원의 개혁제안에 대한 팔레의 논의 에서 팔레가 유형원이 문제를 진단하고 있음에는 동의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원 인에 대해 적절하게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만한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는 유형원이 실패했다고 구분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James Palais (1934-2006) did more than anyone else has done in English-language academia to publicize the political philosophy and reform proposals of Yu Hyeongwon (1622-1673). Palais' massive study, Confucian Statecraft and Korean Institutions : Yu Hyŏngwŏn and the Late Chosŏn Dynasty, remain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orks on Korea's Joseon era written in English. This work is particularly important for its challenge to the widely-accepted view that Yu was part of a silhak (“practical learning”) school which arose in the second half of the Joseŏn period. Even though he recognized that Yu was the first scholar in Joseon to produce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problems Joseon faced in the 17th century, Palais denied that Yu's reform proposals display the modernizing elements he is often credited with. Instead, Palais argued that, for example, Yu's proposal for more equitable land redistribution was more a reflection of traditional Confucian assumptions than it was a manifestation of a budding modernity. We see in Palais's discussion of Yu Hyeongwon's reform proposals a distinction between identifying problems, which Palais agrees Yu did, and correctly identifying the causes of those problems and well as coming up with effective ways to solve them, none of which Palais believed Yu 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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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도널드베이커 , 심규식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7-16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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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식 ( Choi Si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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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잡동산이』 초고본 42권과 정서본 53권을 바탕으로 『잡동산이』의 이본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잡동산이』의 저자와 관련하여 『안정복일기』52에는 '『잡동산이·소설고』를 汝精이 빌려 갔다.[雜同散異小說考汝精借去.]'는 구절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또한 『안정복일기』51에는 안정복의 초서와 저서가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 유통·향유되었음을 시사하는 자료가 전하는데, 14종의 서명과 일시 및 빌려 간 사람까지 매우 상세하다.
「순암장서목록」에 따르면, 『잡동산이』는 33권과 42권 등 2종이 등장하는데, 42권의 초고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전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정서본 53권에는 총 13권을 누락하고, 초고본에 없는 科文 12편·『浙江鄕試硃卷』(陸飛/嚴誠/潘庭筠)·『黃江問答』(韓弘祚)·「黑衣人傳(孟學士傳)」 등을 수록하고 있다. 더욱이 정서본은 초고본을 차례대로 정서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정서하여 권차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
『잡동산이』 초고본은 몇 가지 특징이 포착된다. 먼저 '잡동산이'의 표제 하단에 副題를 기록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또한 표지에 해당 권의 수록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여 목차를 대신하거나, 내지에 목차를 상세하게 기록하기도 한다. 더욱이 해당 권의 이면에도 내용을 수록한 경우, 표지에는 간략한 목차를 기록하고 내지에는 이면의 목차를 부기한다. 이는 『잡동산이』가 일정한 분류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를 의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한편 정서본의 『절강향시주권』은 안정복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입수하여 수록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잡동산이』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순암장서목록」에 등장하는 『잡동산이』의 일부로 추정할 수도 있고, '조선총독부취조국'에서 『잡동산이』의 일부를 입수하여 수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황강문답』은 노론과 송시열을 옹호하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전체가 아닌 그 일부를 수록하고 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견해로 논란을 초래한 사안으로, 안정복은 근기 남인으로 『황강문답』을 입수하여 초서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정서본은 『절강향시주권』과 『황강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고본에 누락된 『잡동산이』의 일부로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This article has taken a look at the different version and characteristics of 『Japdongsani (written record of miscellaneous matters written by An Jeong-bok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of Joseon Dynasty)』 on the basis of 『Japdongsani』 with 42 volumes of initially-drafted version and 63 volumes of fair copy version that are known to this time.
With respect to the author of 『Japdongsani』, 『Diary of An Jeong-bok』 52 still clearly retains the phrase of 'Yeojeong borrowed 『Japdongsani·Soseolgo』 [Japdongsani Soseolgoye9jeongjajeo.]'. In addition, 『Diary of An Jeong-bok』 51 displays the data that implicates that the initial draft and published book of An Jeong-bok have been broadly distributed and shares with the surrounding acquittances and it provides extremely detailed data with the signature of 14 kinds, date and time and persons who borrowed such information.
According to 「Sunam Jangseo Mokrok」, 『Japdongsani』 is emerged with two types in Vol. 33 and Vol. 42, and only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of Vol. 42 is presented in Gyujang-gak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the meantime, Vol. 53 of the fair copy version deletes a total of 13 volumes and it recorded 12 pieces of Gwamun (contents of discourse, 『Jeolganghyangsijugwon』 (Ryukbi/Eomseong/Ban Jeong-gyun), 『Hwanggang Mundap』 (Han Hong-jo)·「Heukuiinjeon (Maenghaksajeon)」 and others that do not have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Furthermore, the fair copy version has a number of persons published without the sequential referenced to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to have the sequence of publishing all mixed up.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of 『Japdongsani』 contains a few characteristics. First of all, there is a significant number of cases where the lower part of the title for 'Japdongsani' has recorded the sub-title. Also, the cover has brief record of contents recorded in the applicable volume to replace the index or detailed record of index on the inner page. Henceforth, for any case of recording the contents on the rear part of the applicable volume, the cover records the brief index and the inner marks the index of the rear side. This would be the case of verifying that 『Japdongsani』 is aware of readers as well as having certain classification system.
In the meantime, there is no indication of how An Jeong-bok acquired and record the same from the fair copy version of 『Jeolganghyangsijugwon』 for any confirmation, and it is also difficult to determine if it is not related to 『Japdongsani』 at all. It may be assumed as part of Japdongsani』 that is emerged in 「Sunamjangseo Mokrok」 and there is a possibility for 'Bureau of Inquiry, Joseon Government General' to acquire and record part of 『Japdongsani』. In addition, 『Hwanggang Mundap』 depicts its opinion to defend Noron Faction and Song Si-yeol that it covers not its entirety but only a fraction of it. At the time, as an agenda that caused the conflict from political preference by Noron Faction and Soron Faction, An Jeong-bok was a member of Namin Faction to acquire 『Hwanggang Mundap』 for Therefore, the fair copy version, as shown in 『Jeolganghyangsijugwon』 and the initial draft. 『Hwanggang Mundap』, is part of 『Japdongsani』 that is deleted from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that contains significant data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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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대중 ( Kim Dae-joo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3-24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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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安鼎福(1712∼1791)의 『잡동산이』 제10책에 수록된 '세 편의 眉叟遺文'을 발굴하여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 세 편의 글은 「『성학집요』 뒤에 쓰다」(書聖學輯要後), 「학술을 논함」(論學術), 「출처를 논함」(論出處)이다. 모두 刊本 『記言』에는 빠진 글들이다. 일단 본 논문은 『잡동산이』 내 '미수유문'의 수습 양상 및 관련 문헌을 검토한다. 그런 다음 '세 편의 미수유문' 각각의 전문을 소개한다.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제시하는 것은 물론, 본문 원문에 대해서는 이본 대조 및 표점 정리 작업을 하고 출전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붙이며, 글의 내용적 특징, 허목의 다른 글들과의 연관성, 남인 당론서와의 관련성 등을 두루 짚어본다. '세 편의 미수유문'은 眉叟 古學의 당파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학집요』 뒤에 쓰다」와 「학술을 논함」은 李珥에 대한 이단 공격을 한 글이다. 이이의 실체가 유학자의 탈을 쓴 불교도라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출처를 논함」은 임진왜란 초에 成渾이 국왕을 호종하지 않아 출처의 의리를 어긴 것을 비판한 글이다.


This paper discovers and introduces in detail the 'three pieces of Misu(眉叟)' collected in the 10th book of Japdongsani(雜同散異). The 'three pieces of Misu' are “An article on the back of Seonghakjipyo(聖學輯要)”(書聖學輯要後), “An article on scholarship”(論學術) and “An article on conduct”(論出處), which are all missing in the printed edition of Gieon(記言).
This paper introduces the full text of each of the 'three pieces of Misu', presents the original text and the translation together, gives detailed commentaries to the original, and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ticles, the relevance of Heo Mok(許穆)'s other writings and the relationship with Namin(南人) Party's documents.
The 'three pieces of Misu' clearly show the partisanship of Heo Mok. “An article on the back of Seonghakjipyo” and “An article on scholarship” attack Lee-I(李珥)'s ideas as heresy. “An article on conduct” criticizes Seong Hon(成渾) for not following the king at the beginning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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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3-26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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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잡동산이』에 대해서는 진작에 안정복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총독부 정리본과 순암 안정복의 친필본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곧 총독부 정리본은 행초본의 원본을 精寫하여 정리한 공로가 없지 않으나 '조선의 식민화 작업에 소용되는 자료의 정리'라는 총독부의 입장에서 요긴한 것을 발췌하여 편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원자료는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순암 안정복의 친필본 『잡동산이』에 대한 대강의 검토와 그 성격에 대한 이해는 매우 요청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순암의 『잡동산이』라는 저술이 지닌 성격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되 구체적인 사례연구로 제16책 『국조전고잡록』에 수습된 국조전고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보았다. 순암이 수습하고자 한 자료의 성격과 그 편집 방향의 일단을 짐작해 보려는 것이다.
검토 결과 순암 안정복의 『잡동산이』는 순암의 관심사가 집약된 필사노트로서 순암의 표현을 빌자면 '초서롱'계열에 해당하는 저작임을 확인했다. 『잡동산이』는 체계적인 분류에 의해 계획적으로 필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사한 내용들이 해당 단위별로 적지 않은 분량들을 차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類編의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잡동산이'가 된 것이다.
국고전장에 대한 기록을 모은 「국조전고잡록」의 경우, 그것이 사전에 기획된 주제에 의해 선별적으로 모은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집중된 주제, 이를테면 관방이나 국조전례에 대한 일관성있는 주제의 배열은 이 기록들 자체로 편집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관련 자료 자체가 상당히 해당 주제에 있어 긴요한 것을 선별하여 수록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顧問의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잡동산이』는 순암의 저서가 이룩되는 충실한 중간단계로서의 초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분류의 방법과 서술된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자료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당대 지식의 지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With respect to 『Japdongsani (record of miscellaneous matters written by An Jeong-bok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of Joseon Dynasty)』 that is kept in Gujanggak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studies have been acknowledged the work as the work of An Jeong-bok already, but it has been affirmed that there are significant discrepancies in the summarized version from the Government General and personally written copy of Sunan An Jeong-bok. The summarized version from the Government General has certain merit to fine copy the original copy of the first draft to summarize as its merit, but it is clear that the critical part was excerpted and compiled in the position of the Government General in 'summary of data that required in the colonization scheme of Joseon' and the original data was consequently damaged. Therefore, there is an extremely appealing on review of 대강 and understanding on its characteristics for the personally-written copy of 『Japdongsani』 by Sunam An Jeong-bok that could be considered as the original copy.
In this article, on the basis of such an awareness of issues, the characteristics contained in the publication of Sunam, 『Japdongsani』, is to be reviewed, but the data on Gukjojeongo that is specified on 16 books of 『Gukjojeongo-japrok』 is to be structured for the feature of the data for Sunam to collect along with its direction.
As result of such review, 『Japdongsani』 of Sunam An Jeong-bok is a copied note with the intensified interests of Sunam that, in the expression of Sunam, it is confirmed to be the publication applicable for the 'initial draft' line of work. It is not the copy with a plan under the systematic classification, but the unit of the copy takes significant volume that part of it could have certain effect naturally and this is an incidental effect not specifically intended.
For the case of 「Gukgojeongo-japrok」 that gathered the record on Gukgo-jeonjang, even if it is not the collection by sorting out under a theme that is planned in advance, it may be considered that the arrangement of consistent theme on Gwanbang or Gukgojeonrye with the theme intensified to a degree to have the independent compilation function from its records. In addition, since the ones required for the applicable theme with the pertinent data sorted out and recorded, it may be assessed to be meaningful as the advisory data in and itself.
In such implication, 『Japdongsani』 may be assessed as an extremely diverse and interesting data that displays the initial draft as a substantive intermediary phase that could be accomplished by the Sunam's published book. This fact alone carries out the function to assume the graphical drawing of knowledge on certain discourse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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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혜리 ( Son Hye-ri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1-30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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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安鼎福(1712~1791)의 『雜同散異』 제17책에 수록된 「明季遺聞抄」와 「啓禎野乗抄」를 중심으로 명나라 유민에 대한 기록과 인식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안정복은 명과 청의 교체기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 南明의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를 기록하였다. 그 방법으로 '抄書'를 활용하였으니, 명말 청초의 학자인 鄒漪가 편찬한 『明季遺聞』과 『啓禎野乘』에서 「명계유문초」와 「계정야승초」를 초록해 둔 것이다. 특히 「명계유문초」의 경우 『명계유문』에서 일부 내용을 선별하여 초록하고 따로 제목을 붙인 만큼 안정복의 작가의식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어 있다. 『명계유문』에 대한 지식 정보를 수집하고 인용하면서 자기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결과 『잡동산이』의 자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성격 및 특징의 한 양상을 규명할 수 있었다. 이는 『잡동산이』가 잡박하기만 한 초서 집적물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잡동산이』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안정복의 명과 청에 대한 대외인식을 고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cords and perceptions of the people of the Ming Dynasty, focusing on the 『Myeonggyeyumun(明季遺聞)』 and 『Kyechongyasŭng(啓禎野乘)』, which are included in the 17th book of 『Jabdongsani(雜同散異)』 written by An Chongpok(安鼎福, 1712~1791)
An Chongpok recorded with interest in the characters and historical sites of Nammyeong, who kept their loyalty to the order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n that way, Chaucer was used, and 『Myeonggyeyumuncho(明季遺聞抄)』 and 『Kyechongyasŭngcho(啓禎野乘抄)』 were written in 『Myeonggyeyumun』 and 『Kyechongyasŭng』 compiled by Chu Yi(鄒漪), a scholar from the late Ming to the early Qing Dynasty. In particular, as some of the contents of 『Myeonggyeyumuncho』 were selected and recorded, and the title was given separately, An Chongpok's sense of writing was actively expressed.
As a result of tracking the process of collecting, quoting, and further magnetizing knowledge information on 『Myeonggyeyumun』, it was possible to identify not only the material value of 『Japdongsani』 but also one aspect of its character and characteristics. It has implications for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Japdongsani』, showing that 『Japdongsani』 is not just a small Chaucer aggregation. Through this, it is expected that it will help to enhance the external perception of Ahn Chongpok's name and 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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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정연 ( Choi Jeong-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5-34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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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河濱)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은 투철한 懷疑와 自得의 자세로 유교 경전을 기존과 다르게 해석했다. 특히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理氣四七설을 수용하여 자신의 논리 하에 정교하게 다듬어갔는데, 그 성과가 『사칠동이변』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빈은 이 책을 저술한 그해 여름에 당시의 正說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여 구설에 올랐고, 사후에도 정론에서 벗어나 리기설과 경전을 자의로 해석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하빈의 해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그가 기존과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글에서는 하빈이 피력한 이질적인 리기사칠설이 성호설을 세밀하게 보완하여 산출된 이론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문 2장에서는 하빈이 『사칠신편』을 입수한 경위를 간략히 제시하고, 그가 『사칠동이변』에서 성호에게 제기한 세 가지 이견을 소개했다. 그리고 3장에서 5장까지는 그가 성호설과 해석을 달리한 쟁점 셋을 차례로 점검했다. 3장에서는 사단과 칠정의 성을 별개로 구분한 하빈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 이론적 토대를 밝혔다. 4장에서는 앞 장에서 밝힌 이론적 토대를 근거로, 그가 인간성과 동물성을 구분한 논리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사단과 칠정이 서로 다른 성의 발현이라는 하빈의 주장을 기초로 그의 공칠정설을 검토했다.
성호가 자득과 회의의 정신을 중시하면서도 주자설과 퇴계설의 보전이라는 학파적 과제에 주안점을 두어 해석에 신중히 한계선을 그었다면, 하빈은 자득과 회의를 동력으로 삼아 자유로운 경전 해석과 학술 발전에 중점을 두고 그 선을 넘어서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학문 태도는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 1710∼1776)의 지지를 받았고 정산을 추종하던 문인들에게도 이어졌다. 이들 사이에 서학의 적극적 수용과 과감한 경전 해석이 나타나며 성리학의 지식체계를 뒤흔들게 된 것도, 성호조차 우려할만한 학술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Shin Hudam(愼後聃, 1702-1761) interpreted Confucian canons differently from the past with a thorough the attitude of suspicions and self-acquirement. In particular, he accepted Li Ik(李瀷, 1681-1763)'s theory of li and qi and theory of four-seven and elaborated them under his own logic, the results are clearly revealed in his Sachildongibyeon(四七同異辯).
In the summer of the year when Habin wrote this, he put forward different opinions from the established theories, so even after he died, he was evaluated as “a person who voluntarily interpreted the theories and the canons.” However, negative looks at Habin's interpretation disproves that he offered different interpretations.
When Seongho emphasizes the spirit of suspicion and self-acquirement, but focuses on the school of thought of the conservation of Toegye Theory and Zhuxi Theory, and draws a limit to the interpretation, Habin seems to have tried to cross the line by focusing on free interpretation of canons and academic development, using suspicion and self-acquirement as the driving force. His scholarly attitude was supported by Lee Byeong-hue and followed by the literaries who followed him. It is speculated that it was possible that the unprecedented interpretation of the canons emerged among them and shook arguments of Seongnihak(性理學) because a free academic atmosphere was created within the school, which even Seongho was concern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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