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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Cino-Korea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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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598-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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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2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21
한국한시연구
29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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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시대 여성 한시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저자 : 이종묵 ( Lee¸ Jong-mook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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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한시를 지은 여성 작가가 왜 적은가?' '조선시대 여성은 어떻게 시를 배웠는가?', '조선 여성이 지은 시는 어떻게 전해지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여성은『시경』과 『주역』 등에서 글을 짓는 것이 여성의 직분이 아니라는 편견에다 한문을 알아도 한글로 문필활동을 해야 한다는 문자생활사의 제약으로 작가 배출 자체가 적었다. 여성의 작품을 외부에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 풍조도 작품의 전승을 막았을 것이다.
둘째,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시집가기 전 부친이나 오빠에게 시를 배웠고 결혼 후 남편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기녀의 경우 남성 사족과의 시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기녀 수업에서 한시가 당연히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조선 말기에는 한시가 상당 정도 대중화됨에 따라 한시를 배울 수 있는 교재가 등장하였고 한글로 번역된 시집이 나옴으로써 독학이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셋째, 조선시대 여성의 한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집안의 문집을 정리한 世藁나 남편의 문집에 부록으로 얹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독립된 시집의 간행이 이루어진 것은 여성의 문학을 인정하게 된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로 인하여 문집을 남기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 한시는 남성들의 사랑방 '이야깃거리'로 전승되다가 시화나 야담, 잡록 등에 기록될 수 있었다.


This thesis is a simple and rough answer to three questions: “Why are there few female writers who wrote Chinese poems during the Joseon Dynasty?” “How did women learn poetry?” and “How are poems written by Joseon women delivered?”
During the Joseon Dynasty, women had a prejudice that writing in The Book of Odes and The Book of Changes was not a woman's job, and the writer's output itself was small due to the restrictions on writing in Korean even if they knew Chinese characters. In addition, there were more works that could not be conveyed even if there were works written due to the strong tendency of women's reluctance to expose their works to the outside world.
Despite the poor environment, women learned Chinese poetry over their shoulders based on their natural qualities. Most of them learned poetry from their father or brother before getting married, and some were taught by their husbands after marriage. In the case of female Gisaengs, it was common to talk with a male clan through poetry, so of course, one hour would not have been missed from the female Gisaeng class. In addition, as Chinese poetry became popular to a considerable exten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extbooks for learning Chinese poetry appeared, and poetry translated into Korean was released, making it possible to self-study.
Women's Chinese poems were difficult to publish except in special cases. It was common to organize a family collection of writings or to be added as an appendix to a husband's collection. It was after the 19th century that women's literature became recognized that rare but independent poetry books were published. Some female Gisaengs were published as literary books because of their outstanding talent, but this was also after the 19th century when male readers responded. Due to these conditions, most of the women's Chinese poems, which failed to leave a collection of writings, were handed down as men's 'Sarangbang Story' and miscellaneous records. It was natural that such poetry had a lot of confusion in the author or text of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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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안동지역 효 관련 누정과 시판에 담긴 의미

저자 : 황만기 ( Hwang¸ Man-ki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6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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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안동의 누정(樓亭) 가운데 효(孝)와 관련한 것과 시를 그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다. 안동은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널리 알려진 유학의 본산이자 퇴계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다. 유학자를 많이 배출한 안동에는 산과 강, 골짝과 냇가 등에 수많은 누정들이 즐비하게 산재해 있다. 이들 정자는 유상이나 학문을 목적으로 건립되기도 하였으나, 삼구정(三龜亭), 애일당(愛日堂), 백운정(白雲亭)은 효를 중심이 두고 건립된 누정이라는 점에서 일반 정자와 차별성을 지닌다. 안동의 서쪽인 풍산(豐山)에 위치한 삼구정은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어머니 예천권씨의 축수를 기원하는 효심으로 건립된 정자이다. 말하자면 효행이 서려 있는 정자인 셈이다. 삼구정에 서려 있는 효사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정신의 귀감이 되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다시금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안동의 북동쪽인 예안 가송리에 위치한 애일당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효를 실천한 무대이다. 평생 '효'라는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여긴 그의 효심은 농암 후손가의 삶의 철학이자 에너지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노래자가 70세의 나이에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고사를 직접 자신의 부모를 위해 실천한 예는 지행일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천의지이자 행동철학이다. 안동의 동쪽에 위치한 백운정은 당나라 적인걸과 송나라 나종언의 고사가 서려 있는 정자로, 청계(靑溪) 김진(金璡)이 부친 김예범(金禮範)의 묘소가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그의 차자(次子)가 김진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건립하였다. 이를테면 백운정에는 효사(孝思) 정신이 깃든 셈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f filial piety and poetry among the pavilions in Andong. Andong is the origin of Confucianism widely known as Churojihyang (鄒魯之鄕, the hometown of Confucius and Mencius), and the region of competent men producing many outstanding individuals including Toegye. In Andong from which lots of Confucian scholars have come, numerous pavilions lie scattered around in its mountains, rivers, valleys and streams. Some of them were built for the purpose of compensation or academic studies, but Samgujeong (三龜亭), Aeildang(愛日堂), and Baekwunjeong(白雲亭) are different from other pavilions in that they were built for filial duty. Samgujeong located in Pungsan (豐山) in the western area of Andong was built with the filial love of wishing for longevity of one's mother, Ye Cheon-kwon, rather than for a beautiful scenery. So to speak, it's a pavilion with filial piety. The ideology of filial piety in Samgujeong has been the example of the spirit of the times until now even after 500 years, which helps its visitors to meditate over the meanings of filial piety once again. Aeildang situated in Gasong-li, Yean, in the northeastern part of Andong is the place where Nongam Lee Hyeon-bo(聾巖 李賢輔) fulfilled filial duty. The filial love of Nongam, who made the value of 'filial piety' his priority all his life, is the life philosophy and energy of Nongam's descendants. Above all, the example of putting the ancient story that Lao Laizi of China danced in a rainbow-striped garment to make his parents happy at the age of 70 into practice for his own parents shows the will of practice and philosophy of action dis playing what the agreement of one's knowledge and actions is. Baekwunjeong located in the eastern area of Andong is the pavilion with the old story of Di Renjie of Tang Dynasty and Luo Congyan of Song Dynasty. Cheonggye Kim Jin (靑溪 金璡) picked out the site where he could see the tomb of his father, Kim Ye-beom(金禮範), and his second son had the pavilion built following Kim Jin's will. So to speak, Baekwunjeong has the spirit of filial p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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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질병 소재 한시에 나타난 달관의 양상

저자 : 김형술 ( Kim Hyoung Sool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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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질병 소재 한시에 나타나는 달관의 양상을 살피고 그러한 시적 달관이 가능하게 한 인식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질병을 소재로 한 한시에서 우선 발견되는 것은 질병을 기존의 일상을 멈추거나 이탈하여 새로운 일상으로의 전환하게 되는 계기로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질병을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질병으로 야기된 부정적 상황에 비관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질병에 걸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질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질병에서 고통 대신 장점을 찾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못 듣고 못 보는 고통을 나쁜 소리, 안 좋은 모습과 연결시키면서 불편함을 못 들어서 더 좋고 못 보아서 더 좋은 것으로 반전시켜내었다. 한편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삶의 본질을 직시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형상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 달관은 어떤 존재도 질병을 피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오히려 마음을 편히 가지고 수용하는 것이 낫다는 질병에 대한 인식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aspect of philosophical enlightenment, which appears in Chinese poetry about a disease, and examines the perceptions that enabled such poetic enlightenment. As a result, what was first discovered in Chinese poetry about disease was the appearance of thinking of disease as an opportunity to stop or break away from the existing daily life and switch to a new daily life. They were able to think of disease as an opportunity for new change because they did not become pessimistically immersed in the negative situation caused by the disease, but accepted the disease themselves as they were. The attitude of accepting the disease as it is has also developed into a form of finding merit instead of pain in disease. On the other hand, it was also seen that he faced the essence of life in the pain of disease and embodied the enlightenment he gained there. And this poetic enlightenment could be possible based on the recognition of disease that no one can avoid disease, so it is better to accept it with 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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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진암(晉菴) 이천보(李天輔)의 한시의 특징적 경향과 그 시문학적 위상

저자 : 김동준 ( Kim Dongj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12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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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진암집(晉菴集)』완역을 앞둔 상황을 맞아 이천보(李天輔) 한시의 분포와 작중 동선, 주요 경향과 특징적 양상, 그리고 그 시문학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이다. 한평생 국왕 영조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는 연안이씨 노론 가문의 자양분과 영조대의 관료 경험이라는 양대 조건에 기초하여 활동한 시인이다. 영조대 사가(四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당대의 시단에서 주의 깊게 조명받아 마땅한 작가이기도 하다.
연구의 결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현전하는 504수의 한시는 풍부한 수량은 아니지만 이천보의 삶과 직결되는 이천보만의 특수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504수의 시 형식을 점검해본 결과 그는 압도적으로 근체 율시, 그중에서도 칠언율시를 선호하였다. 이는 이천보 시문학의 중핵이 칠언율시였음을 의미하는바, 그의 시는 율시 장르의 안정감에 걸맞도록 감정과 시상을 조절하는 양상을 보였다. 가행(歌行)과 고시(古詩), 희작(戲作)과 속작(速作)이 이례적일 만큼 드문 그의 한시 문학은 그런 점에서 율시를 토대로 수립된 정서 절제의 시세계였다고 요약될 만하다.
율시 중심의 절제된 서정 내부에서, 그의 시문학은 노론 문인으로의 입지와 시대 인식을 담은 시편들이 한 갈래를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광준일(淸曠雋逸)하고 사려심원(思慮深遠)한 계통의 작품들이 주목할 만한 경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노년기 시편의 특징을 이루는 '思慮深遠'의 시편들이든, 시도(詩道)를 자문하며 나아간 '淸曠雋逸'의 작품이든, 18세기의 다채로운 시단에서 이천보가 구현한 시문학은 작가 고유의 위상과 문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This thesis is the result which examined major tendencies, characteristic aspects, and poetic and literary value of Sino-Korean Poetry by Lee Cheonbo by celebrating a complete translation of 『the Collection of Jinam's Works (晉菴集)』, the collection of his works. Lee Cheonbo, the contemporary of Yeongjo of Joseon (英祖) who was the king, is the writer who was active based on the conditions of both nutritious elements of the Noron political family (老論系) of the Lees of Yeonan (延安李氏) and the government official's experience in the reign of Yeongjo of Joseon. He is also one of Four Great Masters [四家] during the period of Yeongjo of Joseon.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summarized as follows: The result which examined the present 504 poems has found that he overwhelmingly preferred to regulated eight-line verse (律詩) style poetry (近體), especially Chireonnyulshi [seven- syllable Chinese verse:七言律詩]. This means that the key of Lee Cheonbo's poetic literature was Chireonnyulshi. His poems keep properties of regulated eight-line verses which lend stability to themselves and create his restrained emotions and ideas of poems. From this angle, his Sino-Korean poetry can be summarized as 'the poem world of restrained emotions established based on regulated eight-line verses'.
For his poetic literature in the regulated eight-line verse-centered restrained poem world, poems including his identity and recognition of the times as a literary man of the the Noron political family(老論系) formed a branch and on the other hand, a genre of feelings of of a clear and liberal turn of mind [淸曠] and a genre of thoughtful feelings [思慮深遠] created a remarkable scope. In the literary circle of the 18th century which sought diversity and individuality, these poems by Lee Cheonbo had the conservative characteristics which try to adhere to authenticity (正統) and the center, but can be evaluated as his own literary area established as the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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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행시(燕行詩)에 대한 반성적 검토

저자 : 안순태 ( An¸ Soon-tae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2-136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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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연행시(燕行詩)의 개념과 명칭, 범주 등에 대해 재검토하고 연행시 연구의 경향성을 살핀 후 연행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 그리고 인구에 회자된 연행시들이 그 요건을 어떻게 충족하고 있는가를 살핀 것이다.
연행록의 일종인 연행시는 '우리나라 사행원이 북경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은 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에 명조(明朝)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은 '조천록', 조선 후기에 청조(淸朝)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은 '연행록'이라 한다. 조천록과 연행록을 포괄하여 '사행록'이라 칭할 수도 있으나 현전하는 문헌들 대부분은 청조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인 점, 1421년 명의 연경 천도 이전부터 조선 사행단이 연경으로 향했던 점, 애초에 조천록이라 했던 것을 조선 후기 이래 연행록으로 통칭했다는 점, 사행록은 일본 사신단의 기록을 칭하기도 한다는 점 등으로 조선조 중국 사행기록을 '연행록'이라 통칭하여도 좋지 않을까 한다. 또 한시만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시를 포함하고 있는 일록 등에도 '연행록'이라 칭하였으므로 연행시도 연행가사, 연행일기 등과 함께 연행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목만중은 연행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자료적 가치와 시적 성취를 든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행시 연구는 주로 연행시의 자료적 가치에만 주안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행록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시인의 시적 개성 내지 성취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향후 연행시 연구에서는 연행시의 '자료적 가치'와 함께 '시적 성취'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is a reflective review of the concept and category of Yeonhaengshi, and the name of 'Yeonhaengshi', referring to previous studies. In addition, it was attempted to examine the tendencies of research on Yeonhaengshi, the nature of various characteristics, and requirements for exemplary Yeonhaengshi. Yeonhaengshi is a type of Yeonhaengnok.
Yeonhaengshi can be said to be 'a poem written by Korean envoys while they were visiting Beijing'. Poems written by Korean envoys during their visit to Beijing are also called 'Sahaengshi'(使行詩). However, the meandering poem emphasizes the 'mission' of the envoys, so it is not appropriate as a name for a poem written by people who went to China without an official miss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Sahaengshi also refers to the poems of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envoys for Japan. Therefore, as a term to refer to a poem written during a trip to Beijing, China as a member of an envoy, 'Yeonhaengshi' is more appropriate than 'Sahaengshi'.
The research on Yeonhaengshi so far has been focused on 'the joy of leaving far away', 'reminiscence of history', 'exchanging poetry with Chinese writers', 'awareness of China', and 'difficulties on the road,' regardless of who the author of Yeonhaengshi is, and 'longing for hometown'. However, Yeonhaengshi, which was highly regarded in China, was thanks to the poet's poetic talent. So far, Yeonhaengshi's research has mainly focused on the 'data value' of the content of poetry, and lacks consideration for the poet's poetic personality or achievement. In future research on Yeonhaengshi, it is necessary to consider 'poetic achievement' as well as 'data value' of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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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희룡(趙熙龍)의 임자도 유배기 한시 연구

저자 : 강혜선 ( Kang¸ Hyes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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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회화의 예술적 성취와 예술론(시서화론)이 일찍부터 조명받은 것에 비해, 그의 한시는 해설 차원에 머문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본고는 한시 작품론의 측면에서 그의 유배기 한시를 재조명하였다. 조희룡은 만년에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어 3년 동안 살았는데, 유배기의 한시를 수록한 『우해악암고』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양상을 분석하였다. 조희룡은 조선 후기 성행한 절구 연작시를 선호하였다. 유배 도중과 유배지에서 직접 바라본 풍경을 그린 사경시(寫景詩)에서 소폭의 산수화 같은 정경을 만들어 보였으며, 회인시(懷人詩)의 전통을 계승한 <회인절구>에서는 특히 화가의 안목으로 대상 화가의 본령을 서정적으로 품평하였다. 한편, 조희룡은 유배 생활의 일상 정감을 유쾌한 어조로 토로하였는바, 스스로 희작(戲作)이라 칭한 작품들을 주목해 보았다. 희작 성향의 한시에서는 불교의 언어가 농담과 해학의 언어로 바뀌는 등 시어의 활용이 돋보였는데, 이는 암울한 유배지에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살려고 한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배지에서 조희룡이 몰두한 세계는 바로 시화(詩畫)였다. 그가 주장한 시화일체론(詩畫一體論)의 핵심은 화의(畫意)로 시정(詩情)이나 시경(詩境)을 만드는 창작 방법이라 할 수 있고, 그는 그러한 실례를 자신의 한시 창작에서 구현해 보였다. 조희룡이 문인의 시와 차별되는 화가의 시를 추구하였던 것이라 보인다. 유배지에서 시화에 몰두하여 자유자재로 창작하는 희열을 조희룡은 유희삼매(遊戲三昧)라는 말로 지칭하였으며, 그러한 경지에 이른 자신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Cho Hee-ryong's artistic achievements and art theory have been under the spotlight from an early age. On the other hand, I think that his Chinese poems stayed at the level of commentary. Therefore, this paper tried to re-examine his exile poetr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analysis of works. Cho Hee-ryong was exiled to Imja-do, Jeolla-do in his later years and lived there for three years. I analyzed the personality and characteristics of his exile poetry using 『Uhaeakamgo』, which contains the works of poetry from this period. He preferred to write a series of short poems pop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his poems depicting the scenery he saw during his exile and directly from the place of exile, he made a small landscape like a landscape painting. In addition, in < Hoein Jeolgu (懷人絶句) >, which inherits the tradition of his Hoein poetry(懷人詩), he especially lyrically evaluates the essence of a specific painter based on his own perspective as a painter. His poems narrated in a pleasant tone the daily feelings of exile, and he called himself a playful poem. Even in his poems, Buddhist language was used for jokes and humor. This seems to reflect the attitude of his life that he tried to live happily in exile. The world that Cho Hee-ryong was immersed in in exile was poetry and painting. He insisted on the traditional theory that poetry and painting are one, and further suggested a creative method of writing poetry through painting. This is a method of borrowing the meaning of a painting(畫意) and creating a poetry scene(詩境). He embodied such a creative method in his own poetry. Cho Hee-ryong pursued the poetry of a painter that was different from that of a writer. He referred to the joy of creating freely by immersing himself in poetry and painting with the word 'Playing Sammae(遊戲三昧)', and he also embodied himself in such a state of joy in h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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