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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Honam Archaeological Society Honam KoKo - Hakbo

  • : 호남고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인류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19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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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6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61
호남고고학보
69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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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의 분포양상

저자 : 이재언 ( Lee Jae Ear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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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동기시대 연구는 사회변동에 초점을 맞추며 논의되는 것에 비해 영산강유역은 자료의 편중, 지표유물의 부재 등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영산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본고에서는 영산강유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의 분포현황과 양상을 검토하여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의 구성은 주거지 단독, 주거지+저장시설(수혈, 주공군), 주거지+매장유구, 주거지+기타(구) 4가지로 구분된다. 주거유적의 분포는 독립(점촌)·열상·군집(환촌)·부정형의 형태가 확인되며, 저장·매장시설과의 배치는 주거지와 혼재하거나 분리된 형태로 확인된다.
영산강유역에서는 거점취락의 특징적인 요소를 가진 주거유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등 아직까지 시기별 문화양상의 해상도는 낮다. 다만 전기는 기원전 13세기 전후까지 청동기시대 흐름과 동일한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장시설로 판단하는 수혈과 주공군(고상건물)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호남지역 내 다른 지역과의 차이로 이해된다.
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주거군의 입지, 배치, 구조로 보아 자원을 이용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추정하고, 기존 주거지로 보고된 방형 및 노가 확인되는 유구들은 주거의 기능보다는 저장시설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영산강유역의 주거의 변천상은 문화의 유입부터 지속적으로 접촉·발전하는 양상을 면밀히 검토한 후 다른 지역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The recent researches on the Bronze Age have been actively discussed focusing on social change while the Yeongsan River basin has not grabbed attention due to reasons like unequally-distributed data. As the dwelling data of Bronze Age in the Yeongsan River basin has been accumulated, this thesis aimed to macroscopically examine the distributional aspect of dwelling remains.
The dwelling composition of Bronze Age in the Yeongsan River basin could be divided into four kinds such as dwelling+storage facilities, dwelling+burial remains, dwelling+others, and independent composition, and the independent composition is general.
The distribution of dwelling includes various types like independent type(dotted village), linear type, colony(circle village) type, and irregular type. And its arrangement with storage/burial facilities could be mixed with dwelling cluster or separated from it.
Even though the Bronze Age in the Yeongsan River basin has the low resolution of cultural aspect in each period, the former period could be viewed till around the 13th century, which shows the same aspect with the flow of Bronze Age. The latter period falls under does not clearly show the settlement with the characteristic elements of base settlement.
Also, the pit and elevated-floor building site judged as storage facilities were relatively insufficient compared to dwelling. In such results, the dwelling structure & arrangement in the Yeongsan River basin showed the different method of using the location environment or resources, and the remains with the squared pit & furnace reported as the existing dwelling site showed the possibility as storage facilities rather than the function of dwelling.
Lastly, the transition of dwelling in the Yeongsan River basin should be understood through comparative researches with other regions after closely reviewing the aspect from the former period to the latter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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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동기시대 후기 입대목(立大木) 제의(祭儀) 존재와 의의에 대한 시론(試論) -전주 대정Ⅳ 유적을 중심으로-

저자 : 이종철 ( Lee Jongcheol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6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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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송국리형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가 복합되는 청동기시대 후기 취락에서 입대목 제의가 존재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두 문화의 복합화 속에서 입대목 제의의 흔적이 있는 취락 유적을 소개하고, 취락의 구성과 입대목 제의가 긴밀한 상호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송국리형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의 복합 양상으로 소개할 유적은 전주 대정Ⅳ 유적이다. 먼저 입대목 제의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입목수혈의 성격을 검토하였고, 유적의 입지와 환경 및 물질문화 등 취락경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대정Ⅳ 유적의 취락구성과 분포 양상이 취락설계의 관점에서 조성되었고, 그 중심에 입대목 제의가 존재하였음을 상정하였다. 특히 물질문화의 속성이 송국리형문화나 점토대토기문화 어느 한 쪽에 편중된 양상이라기보다 두 문화요소가 융합적으로 잘 섞여 있는 양상을 통해 두 문화의 융복합 단계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복합 양상은 교성리식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점토대토기문화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유입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 적응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는 잠정적으로 기원전 5세기 후반~기원전 4세기대 어느 시점으로 비정하였다.
대정Ⅳ 취락 입대목 제의의 고고학적 의의는, 첫째로 송국리형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의 복합화가 이루어진 취락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입대목 제의 유적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송국리형문화 전통의 제의가 점토대토기문화 단계까지 계승 또는 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셋째로 이러한 입대목 제의가 거점취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넷째로 집들로 둘러싸인 중앙 광장에서 편향집중형의 제의 환경이 구축된 점이다. 마지막으로 입대목 제의의 폐기와 관련된 모종의 의례가 존재했고, 입대목 제의의 소멸은 취락의 폐기나 취락민들의 이주와 관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This paper aims to substantiate an existence of the Big Tree Rituals (立大木 祭儀) in a late Bronze Age village where the Songguk-ri Type Culture and Rolled-Rim Pottery Culture were integrated. To this end, I intend to introduce a late Bronze Age village site with trace of Big Tree Ritual, and to exhibit that the village composition and the Big Tree Rituals are closely related.
The studied site is the 'Daejeong IV' in Jeonju, South Korea. The site illustrates an integration of the Songguk-ri Type Culture and Rolled-Rim Pottery Culture. First, I examined the nature of a pit feature which is presumed to be a trace of the Big Tree Ritual. Then I have looked into the village landscape, including the site location, site environment, and material culture. Based on these investigations, I propose a possibility that the settlement composition and distribution patterns of the Daejeong IV site were formed according to a schematic zoning plan of the village. In particular, the characteristics of the village's material culture were shown to have been fused well together. Such type of cultural integration corresponds well with the Gyoseong-ri Type phase. This study proposes a tentative period of this cultural complex as from the late 5th century BC to the 4th century BC.
The archaeological significances of the Big Tree Ritual evidenced from the Daejeong IV site are as follows. First, it is the first known documentation of a Big Tree Ritual evidence from a village where the Songguk-ri Type Culture and Rolled-Rim Pottery Culture were integrated. Second, it is an example showing that a ritual of the Songguk-ri Type Culture tradition has been passed down to the Rolled-Rim Pottery Culture phase. Third, the findings remind us that a Big Tree Ritual evidence can be found not only from a pivotal village but also from a smaller village site. Fourth, it exhibits that the ritual niche was established in a one-direction-facing design at the central plaza surrounded by houses. Finally, an evidence of some sort of ritual activity related with the termination of the Big Tree Rituals could be found. The fade-out of the Big Tree Rituals might have been related with the termination of a village or the migration of the village 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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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비파형동검문화와 기북지역의 교류사 검토 및 의의

저자 : 김동일 ( Kim Dongil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9-10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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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 동북지역(비파형동검문화)과 기북지역의 교류를 검토하고, 그 의의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교류사 검토를 통해 양 지역 교류 연구의 인식 전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1990년대의 교류사 연구는 유사성의 언급에 불과하였고,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두 번째, 2000년대까지는 고고자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국내학계와 중국학계의 차별성이 뚜렷하다. 2009년까지의 연구에서 국내학계는 비파형동검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고, 중국학계는 옥황묘문화 및 산융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이는 교류사 연구의 관점 차이로 이어진다.
세 번째, 2010년부터 국내학계에서는 중국 자료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심화된 연구도 등장한다. 2000년 대 옥황묘·호로구·서량광·소흑석구·원대자유적 등의 보고서가 발간되고, 국내학계에서도 이 보고서들을 인식하면서 양 지역 교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게 된다. 동시에 특정 유적의 반복적 논의를 통해 유적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교류사 검토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기존 연구의 정확한 인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중국학계에서 발표된 왕계홍의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중요하지만 국내학계에서 인용된 사례를 찾기 어렵고, 중국학계의 관련 연구에서도 인용된 사례가 극히 적다. 결국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구사적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고고자료의 인식과 활용 문제가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중국 자료에 대한 이해 없이 일부 자료만으로 전체 성격을 규명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있다.
세 번째로 교류사 인식의 전환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에는 다양한 관점의 연구나 관련 보고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여러 문제점이 존재한다. 2010년이 되어서야 새로운 보고 자료를 바탕으로 진전된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하고,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교류 방식이 논의된다.
네 번째로 국내학계의 외연 확장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기북지역에서는 요령지역 비파형동검문화의 흔적이 계속해서 발견된다. 하가점상층문화의 교류 대상 중 비파형동검문화 이외의 비교 대상으로도 기북지역의 옥황묘문화 등에 대해 주목할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내학계에서 연구 영역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This paper reviews the research on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and its exchanges in Northern Hebei and determines its significance. A review of its history of exchange yields a summary of the perception conversion process in the two regions. First, exchange history studies in the 1990s were nothing more than mentions of similarity, and full-fledged discussions only began in the 2000s.
Second,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countries in terms of data. In studies until 2009, Korean academia actively researched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while Chinese academia actively researched the Yuhuangmiao and Shanrong cultures. This led to differences in the criteria for exchange history studies.
Third, since 2010, Korean academia began to understand the Chinese data more in-depth and further research was conducted. Reports on Yuhuangmiao, Hulugou, Xiliangguang, Xiaoheishigou, and Yuantaizi were published in the 2000s, and as Korean academia recognized these reports, the understanding of ex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improved.
The significance of the exchange history review may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 would like to stress the need to properly understand the existing research. For example, Wang Ji-hong's study, published in China in 1999, is rarely cited in Korean studies and is hardly ever cited in related Chinese studies. In sum, there has been no proper compilation of the research history.
Second, I would like to point out the issue of reviewing the exchange history. In previous studies, there are a number of problems, such as determining the overall characteristic based on partial data without understanding the Chinese data.
Third, it is necessary to note the transition process in the perception of the exchange history. In the 2000s, there were differences due to a lack of studie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and related reports. It was not until 2010 that papers based on new reports began to be published and the method of exchange was established only in the late 2010s.
Fourth, I would like to highlight the stretching of Korean academia's extension. Traces of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and its exchange are constantly discovered in Northern Hebei, and research is needed not only on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but also on exchanges of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By doing so, it will be possible to expand Korean academia's ex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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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편년과 지역성'에 대한 반론

저자 : 최성락 ( Choi Sung-rak ) , 이동희 ( Lee Dong-hee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3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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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하여 방사성탄소연대에 의해 타날문토기의 연대를 기원전 1세기로 올려보자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에 필자들은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반론하고자 한다.
먼저, 송국리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호남지역에서 송국리문화는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대치된 것이 아니라 얼마간 공존하다가 결합된 것이다. 토착적인 송국리문화에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된 이후 서로 결합되는 양상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른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북 서부지역에서도 삼각형점토대토기와 경질무문토기가 확인되고 있어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경의 공백이 점차 메워지고 있다.
다음은 타날문토기의 상한연대 문제이다. 필자들은 전남지역에서 기원후 2세기 이전에 나타나는 타날문토기의 사례가 거의 없기에 해남 군곡리 패총의 양상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고, 전북지역에서도 타날문토기의 등장이 대체로 기원후 2세기 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타날문토기의 등장을 기원전 1세기까지 올려보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고고학 편년과 방사성탄소연대의 문제이다. 방사성탄소연대는 고고학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절대연대로 고고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연대이다. 선사시대의 연대는 대안이 없으므로 방사성탄소연대를 따를 수밖에 없으나 기년명 자료가 나타나는 원삼국시대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에만 의존할 수가 없다. 고고학에서 편년은 상대연대와 절대연대를 상호보완적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In Honam province, the view of raising the date of paddled pottery to the first century BC was presented by the Radiocarbon dates to solve the void of the second century AD from the first century BC. In this regard, we argue against this view.
First, it is a difference in the view of Songgukri culture and pottery with ringrim culture. The Songgukri culture was not replaced by the influx of pottery with ringrim culture in Honam province, but was combined after some coexistence. Since the pottery with ringrim culture was introduced into the indigenous Songgukri culture, the aspects of being combined with each other show different spatial variability according to each region. In the western part of Jeonbuk province, triangular pottery with ringrim and hard plain pottery are confirmed, and the void between the first century BC and the second century AD is gradually filling up.
Next, it is a problem of the upper limit of the paddled pottery. We have rarely seen paddled pottery before the second century AD in Jeonnam province, so the aspect of the Haenam Gungokri shellmound can be applied as it is, and the appearance of paddled pottery in Jeonbuk province can be seen as the second century AD. Therefore, it is not agreed that the appearance of paddled pottery should be dated at the first century BC.
Finally, it is a problem of archaeological chronology and radiocarbon dates which are the most trusted absolute ages in archaeology and are widely used in archaeology. Prehistoric Ages are naturally bound to follow the radiocarbon dates, but the date of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when the age-known data appear, can not depend on radiocarbon dates. In archaeology, we should find ways to make complementary and appropriate use of relative and absolute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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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토기로 본 제주지역 탐라후기의 대외관계

저자 : 박재현 ( Jaehyeon Park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6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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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동안 연구성과로 소개되지 않았던 제주지역 탐라후기 토기의 전개양상을 정리하여 동시기 탐라의 대외관계를 살펴보고자 함에 있다. 탐라후기 토기의 전개는 제주지역 재지계 토기의 변천과 동반 출토된 외래계 토기의 유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데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재지계의 종달리식토기와 백제계의 단경호와 조족문토기가 확인된다. 유입된 외래계 토기의 기종과 타 지역과의 교차편년을 통해 1단계는 6세기 전반∼7세기 중·후반으로 상정되며 508년 통교 이후 탐라와 백제와의 관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2단계는 재래계 토기로 완성형의 고내리식토기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외래계 토기는 동시기 백제 고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단일인화문과 그 이후 복합인화문 등이 시문된 통일신라계 토기이다. 유물로 볼 때 시기는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후반으로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관계한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1단계와 2단계에 제주도에서 출토된 외래계 토기의 기종은 하나같이 교역에 사용되는 운반 및 저장기에 국한되며 삼족기나 개배, 고배 그리고 골호 등의 백제 및 신라의 상위계층의 위세품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즉, 문헌에 나타난 것처럼 백제와 신라의 탐라에 대한 직접지배를 증명할 수 있는 고고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이전부터 이어져 온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지속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3단계는 9세기 전반에서 후반으로 재래계 토기는 2단계에 제작되기 시작한 고내리식토기가 여전하며 외래계 토기의 기종은 주로 나말여초기의 토기와 철제 솥, 중국제 청자가 동반된다. 이러한 유물 조합으로 볼 때, 3단계는 탐라와 장보고 해상세력과의 관계한 기간에 해당한다. 청해진 유적과 동일한 유물의 출토는 당시 탐라가 장보고 해상세력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국제무역활동에 상당 부분 일조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external relations of Tamna at the same time by arranging the development of pottery in the late Tamna regioof Jeju, which has not been introduced as a research result. Tamna's External Relations in the Development of Pottery can be understood through the process of change of pottery from the Jeju region and the inflow of foreign pottery excavated along with it. This development process is largely divided into three phase.
In the first phase, the Jongdali pottery(종달리식토기) from the region area and the short-neck jars, and bird feet-shaped pottery from the Baekje area are confirmed.
Through the type of imported foreign pottery and cross-chronologically with other regions, the first phase is assumed to be from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to the middle and the latter half of the 7th century, and correspond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amna and Baekje after the communion in 508 AD.
In the second phase, the finished type of Gonaeri pottery(고내리식토기) begins to be produced with conventional pottery. Foreign pottery is a Stamped pattern(印花文) that appears the same in the Baekje Oldlands at the same time and, After that, it is an pottery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on which the Composite Stamped pattern, etc. Judging from the relic, the period is from the late 7th century to the late 8th century, It corresponds to the period related to Silla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owever, the types of foreign pottery excavated from Jeju Island in the first and second phaes were Each is limited to transport and storage used for trade and The noble items of the upper classes of Baekje and Silla, such as the tripod-pottery, flat cup with cover, a bitter cup, and Burial Urn, have not been confirmed. In other words, as shown in the literature, there are no archaeological data that can prove the direct control of Baekje and Silla over Tamna. Instead, it is judged that the economic interests that have been passed down from the past have continued.
The third phaes is from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to the middle and the second half of the 9th century, and the earlier time's pottry that started to be produced in the 2 phaes is still there, Types of foreign pottery are mainly accompanied by so-called 'Namalyeopottery(羅末麗初土器)', an iron pot, and a Chinese celadon. In view of this combination of artifacts, phase 3 corresponds to the period related to the Tamna and marine force of Jang bogo(張保皐海上勢力). The excavation of relics identical to those of Cheonghaejin(淸海鎭), It is evidence that Tamna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eir international trade activities as a member of the marine force of Jang Bogo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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