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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3820
  • : 2714-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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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4)~114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476
대동문화연구
114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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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리건판 사진으로 보는 고미술 ― 세키노 타다시(関野貞)의 고적조사사업을 중심으로

저자 : 金桂園 ( Kim Gye-w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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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에서 유리건판 사진이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 생산에 개입했던 방식을 탐색한다. 제국 일본 학자들의 식민지 고적조사에서 사진은 유물을 기록, 조사하는 방편이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새로운 기록과 조사의 방식을 체계화, 제도화하는 방법론이었다. 이러한 사진의 수행적 역할은 사진 매체의 내적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사업이라는 담론 복합체를 구성하는 외재적 요소들과의 접촉과 연동을 통해 발현되어지는 것에 가깝다. 논문은 세키노 타다시의 고적조사에 초점을 맞추어 사진의 의미가 촉탁 연구자, 모사도, 촬영자라는 세 요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을 짚어본다. 이를 통해 사진이 어떻게 양식주의와 선형적 역사관을 뒷받침하는 표상을 제공하는지 고찰한다.


This paper explores how photography could perform and mediate in the colonial surveyance of ancient Korean art during the early twentieth century. It especially focuses on the performative role of photography in Sekino Tadashi's survey of ancient Korean art and architecture, conducted in 1902 and 1909. The agency of photography emerged neither by itself nor within the innate nature of the medium. It was made possible by the encounters and associations with other agents that constituted the discoursive complex of surveyance. In addressing photography as a performative agent in the formation of knowledge about ancient Korean art, this paper highlights photography's interactions and interrelations with imperial scholar, sketch, and 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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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축(詩軸)을 위(爲)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저자 : 高蓮姬 ( Kho Youen-he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6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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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軸이란, 여러 문사들의 시가 적혀진 두루마리[詩卷]에 軸이 장식되어 있는 卷軸이다. 알프레드 겔(Alfred Gell)의 인류학적 예술론으로서의 '에이전시(Agency)'론에 입각하여 '시축'이라는 물건의 에이전시를 상정하고 세종조 시축의 제작과정을 조명한 결과, 시축은 제작을 의도한 사람의 신분, 의도 등에 의하여 그 주제와 규모 등이 설정되면서 등장하여, 시축의 제작자(artist)인 문사 혹은 화가로 하여금 시축의 요구사항을 숙지하고 따르도록 조율한다. 시축은 그 자신의 주제와 규모와 품격이라는 지배력으로 화가와 문사의 제작활동에 강력하게 간섭한다. 세종대 제작된 '夢遊桃源圖詩軸'도 그러하다. 〈夢遊桃源圖〉는 시축의 에이전시 아래서 제작된 피동적 소산이며 시축의 부가물이었다. 그 당시 시축의 성장에서 시축의 완성을 기대하는 문사들에게 이 그림이 시축의 핵심요소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이다. 시축이 기념하는 대상은 安平大君의 '夢遊桃源'이었고 주제는 '몽유도원'을 통한 안평대군에 대한 칭송이었다. 〈몽유도원도〉는 이 주제를 부각시켜주는 기능으로 요구되었고 그림의 주제, 규모, 수준 등이 시축의 주제와 형태에 맞추어 결정되었으며, 시축의 격조있는 모양새를 도와주는 장치였다.


Sich'uk 詩軸 (Shizhou in Chinese) is a term designating a scroll of poems mounted using a ch'uk 軸, a cylindrical bar which attached to the last part of the scroll and was used to roll up the scroll for storage. Taking Alfred Gell's "Agency" theory of anthropological art theor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agency of many sich'uks in the period of King Sejong. Sich'uk with its authority and dignity as its subject, scale, participants, etc. controls the poets' composition of poetry, the painter's painting and the recipient's appreciation. The same applies to A Dream Journey to Peach Blossom Spring 夢遊桃源圖, a masterpiece painting by the most recognized artist An Kyŏn 安堅 of the early Chosŏn. The painting was ordered by Prince Anp'yŏng 安平大君 who had a scheme to make a wonderful sich'uk. This is why the poets for Anp'yŏng's sich'uk didn't mention this painting A Dream Journey to Peach Blossom Spring and the artist much in their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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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예술과 행위자성(Agency) ― 이성계(李成桂)(1335~1408) 관련 회화, 유물과 사적을 중심으로

저자 : 徐胤晶 ( Seo Yoon-j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9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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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예술을 둘러 싼 다양한 존재의 활동을 주체와 '행위자성(agency)'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그 유효성과 유용성을 물질문화까지 확장시켜, 예술의 주체가 물질적 매개체(material agency)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며, 그 결과물이 관람자에게 어떠한 시각적 경험과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지, 특정한 예술품과 대상이 예술적 행위자를 어떠한 방식으로 상기시키는지를 李成桂(1335~1408)라고 하는 조선의 창업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성계와 관련된 회화, 유물과 사적 등을 이성계의 '행위자성(agency)'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즉, 이러한 수많은 예술품과 유적에서 이성계의 행위자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관람자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대면할 때 얼마나 이성계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지, 이성계의 명성과 역사적 평가가 이러한 작품에 대한 가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성계 사후 이성계와 관련된 유품들과 사적지들은 어떤 주체에 의해 이용되며 변화되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This study explores how various agents including a person, creature, or object play complex roles in a given work of art by adopting the notion of "agency" suggested by Alfred Gell, a British social anthropologist. Encompassing the king's portrait, commemorative stele and landscape, and royal relics of the dynastic founder King Taejo, this paper suggests material agency, through which the artifacts function as "agents" and thus produce effects in the causal milieu. The procedures of production, copying, and enshrinement of King Taejo's portraiture involve performative and ritual aspects, in which the object (work of art) was treated as a human being and acts as an agent mediating social relations. Historic sites and relics of Hamheung related to Yi Seonggye's life and accomplishments were restored and commemorated by 18th-century monarchs such as Kings Sukjong, Yeongjo, and Joengjo to enhance royal authority. Visual representations of the specific sites, memorials, ritual protocols, anthologies of local history were produced under the royal auspice. In addition, pine trees, a hat, arrows, cases, a leather belt, articles left by Yi Seonggye, served as material agents that gave rise to the sacred symbols and local legend about King Tae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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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움직이는 어진 ― 양란(兩亂) 전후(前後) 태조(太祖) 어진(御眞)의 이동과 그 효과

저자 : 劉宰賓 ( Yoo Jae-b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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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兩亂 前後 太祖(재위: 1392~1398) 어진의 이동을 통해 어진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살펴보았다. 태조 어진은 조선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방에 있는 어진이 이동하여 한양에서 국왕과 조우하는 영접 의례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가진 왕실 행사였다. 그러나 태조 어진이 단지 의도대로 움직여 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국내외 이변이 잦았던 양란 전후의 시기에 태조 어진의 이동은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전란의 극복이나 폐해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고, 현왕의 권위를 강화하거나 도리어 실추시키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宣祖 ~ 仁祖연간 태조 어진의 이동을 복원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어진의 이동이 가진 의미와 영향력을 분석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social agency of King T'aejo's portraits through its traveling during the Japanese and Qing invasions of Korea in 16th to 17th century.
The portraits of King T'aejo continued to be used as a means of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from the early Chosŏn Period. The reception ceremony in which T'aejo's portraits in local area transferred and encountered the king in the caplital, Hanyang was the most spectacle event among the court rituals. However, portraits did not always have the intended effect. In particular, the movement of the king's portrait was not necessarily successful during the wars, when the political circumstance was unstable. The escape of the royal portraits became a symbol of the overcoming or the abolition of the war depending on its success. The portrait reception ceremony, which was intended to confer the royal authority, undermined it when the portrait's procession was delayed and the king's plan was failed because of the rebellion of the officials in the era of Gwanghae-gun (r. 1608~1623). It proves that the king T'aejo' portrait itself was a 'social agent' capable of exercising 'agency' through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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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위·서열·책무의 표상 ― 조선 왕실 연향에서의 병풍의 기능과 의의

저자 : 金秀珍 ( Kim Soo-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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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실의 연향에 배설됨으로써 왕실 구성원 자체를 표상하는 한편 그 사람의 지위, 서열, 책무를 시각화 했던 병풍의 기능과 의미를 논의했다. 왕실의 연향에는 연향을 받는 이〔왕, 왕비, 왕대비, 대왕대비〕와 연향을 바치는 이〔왕, 왕세자〕가 참석했고, 그것은 의궤를 통해 행사의 전반이 기록되는 한편 稧屛을 통해 기록화로 그려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15건의 연향 관련 의궤와 10건의 연향 기념 계병을 분석함으로써 각기 어떤 왕실 구성원을 위해 일월오봉병, 십장생병, 문방도병, 백동자병, 서병 등의 병풍이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본 연구를 통해 왕실 행사를 기록하고 재현한 일종의 三部作으로서 裝屛·의궤·계병의 역할을 구명하고,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이 구축했던 禮治의 시각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Chosŏn dynasty, painted folding screens became a pivotal apparatus to decorate the backside of royal family members' seats at royal banquets. The information on these decorative folding screens (changbyŏng) such as types, sizes and themes was recorded in Uigwe as textual evidence and reproduced in documentary screens (kyebyŏng) as visual evidence.
This paper argues that these decorative folding screens varied in their themes to represent the royal family member's diverse status, ranks and responsibilities. To this end, first of all, this paper analyzes the themes of painted folding screens such as the Ten Symbols of Longevity ("Shipchangsaeng"), the Sun, Moon and the Five Peaks ("Irwŏrobong"), Books and Things ("Munbang"), One Hundred Boys ("Paektongja"), and Calligraphy (Sŏ). Then it shows how each piece of screens was selected for the specific royal family members by investigating fifteen articles of Uigwe and ten extant documentary folding screens. The final aim of this paper is to shed light on the roles of agency of the royal family members both as consumers and appreciators of two kinds of folding screens (changbyŏng and kyebyŏ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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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에도(江戶) 초기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이미지의 형성과 위력

저자 : 李姃恩 ( Lee Junge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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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에도시대 초기 조선통신사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통신사를 둘러싼 관계 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후기 일본에 파견된 공식 외교사절인 통신사의 이미지는 에도시대 다양한 매체로 제작되었는데, 본고에서는 17세기, 통신사 이미지의 형성기에 초점을 맞추어, 都市圖 병풍, 緣起 두루마리, 通信使歡待圖라는 세 종류의 그림을 중심으로 통신사 이미지의 제작 및 수용을 둘러싼 제 양상을 고찰한다. 통신사 행렬은 에도 초기에는 주로 도쿠가와 막부의 권력과 그들의 위상을 과시하는 맥락에서 여러 이미지로 시각화되었다. 막부의 의도대로 보고 인지한 공가와 무가 상류층들과 달리, 다수의 일반인에게 조선통신사는 이국인 행렬이자 하나의 축제로 수용되는데, 특히, 가이초(開帳)와 마쓰리(祭)를 통해 어떻게 통신사 이미지가 변용되어 확산되는지 살펴봄으로써, 통신사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맥락을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에이전시 이론이 지니는 가장 큰 효용성은, 후원자 혹은 예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예술품, 그 안에 담긴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단선적인 시도를 넘어서, 예술품의 제작과 수용, 감상을 둘러싸고 서로가 발하는 힘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에도시대 통신사 이미지 형성과정에서 1차 주체인 제작자 혹은 후원자의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반영된 행위력(agency)은 감상자 혹은 수용자들의 계층, 배경, 시대, 관심사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2, 제3의 변용이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방법론은 향후 각종 민간 문화를 포함한 통신사 이미지 연구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process of forming Chosŏn envoy images in Edo Japan, considering the larger sociopolitical network for dispatching Chosŏn Tongsinsa to Edo. Tongsinsa, a Chosŏn official diplomatic delegation sent to Japan, was visualized in various media, including handscrolls, folding screens, prints, etc., during the Edo Period. This paper considers the various elements regarding the production and acceptance of these images, particularly focusing on related artworks produced in the seventeenth century Japan. A Tongsingsa precession images, for example, began to be produced demonstrating Tokugawa shogunates' great power and authoriy, which inspired foreign envoys foreign envoys to visit Japan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Contrary to elite members, who perceived and appreciated the Tongsinsa images as the shogunate's political intentions, most ordinary people viewed these works as exotic parades or festivals, which resulted in the images having numerous variations and transformations. By examining how Chosŏn Tongsinsa images were transformed and spread to common people through kaicho and matsuri, this paper considers the complicated contexts of visualizing Tongsinsa images in Edo Japan.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fficacies of Alfred Gell's agency theory presented here is that we can examine the performative aspects among artists, patrons, indexes, and recipients generated in the production, consumption, and appreciation of the artworks. This methodology, which goes beyond linear perspectives to understand artist or patron intentions, could deepen our understanding of Chosŏn envoy imagery embracing the Edo popular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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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근대 광고를 통해 본 신사의 시대

저자 : 金芝慧 ( Kim Ji-hy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1-22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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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한국의 광고를 통해 신사에 대한 근대의 인식과 이미지를 재구하고 있다. 새로운 시각매체이자 대중미술로 기능한 근대기 광고에서 신사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광고되고 소비되며 다양하게 시현되어왔다. 근대의 신사는 근대의 이념과 이상을 표상한 인물상이었다. 광고는 신사 이미지에 개화와 유행, 미의식, 문화생활, 시대상 등의 근대적 가치를 개입시켰으며, 이를 통해 근대의 신사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양방향의 행위력을 읽을 수 있다. 신사는 문명과 개화의 상징으로 시대적 이념과 이상이 요청된 인물이었으나, 시대적 정황 속에서 매국의 표상으로 혹은 사치와 허영의 대상으로 비난받았으며, 관리와 계몽가 소비자, 황국신민 등으로 호명되었다. 이처럼 근대화의 이상과 식민지 현실, 계몽과 소비의 가치 가운데에서 부유했던 신사와 이를 둘러싼 기표를 통해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을 읽을 수 있다.


This thesis studies modern awareness and the imagery of 'gentlemen' as depicted by advertisements. The advertisement was a new form of culture that both constructed and reflected the modern landscape, and eventually became the modern landscape itself. Advertisements of various products encouraged gentlemen to confirm their position in society and modern times as they embodied the ideals required by those times. The embodiment of civilization required in modern times was realized through westernized looks, and thereby gentlemen became a main subject as well as an object of consumption in consumer society. This image got circulated, spread, and routinized by advertisements as the modern human image. The ideology and ideals of the times were required for gentlemen, who were a symbol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the gentlemen were also read as a symbol of quislingism due to the situation of the times, and criticized for being an object of extravagance and vanity, while also being appointed as government officials, enlighteners, consumers, and Japanese imperial subjects, etc. Therefore, Korean modern times and modernity can be understood by reviewing the historical images of gentlemen that are rich in the values of modernized ideas, colonial situations, and the enlightenment and consumerism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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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정책의 시행과 그 배경

저자 : 金康勳 ( Kim Kang-h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5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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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된 정책을 검토하고, 그것의 시행 배경을 신라인의 발해 인식과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신라 지배층은 발해에 대해 말갈이 주도하여 건국한 국가로 인식하였는데, 752년 김태렴이 이끈 대일 사절단이 귀국하면서 발해를 고구려계승국으로 파악하는 인식이 왕경에 확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발해에서 시작하여 일본을 거쳐 신라로 유입된 것이다. 신라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백제 고지 지역민이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받아 백제부흥의식을 표출하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웅천주정에 장군 3인을 두어 반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체계를 갖추는 동시에 반란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렸으며, 효행을 실천한 향덕을 포상하여 국왕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였다. 경덕왕은 통제책과 회유책을 병행하여 백제 고지 지역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This article analyzes politics implemented toward old territory of Baekje in King Gyeongdeok era and examines its background through cognition on Balhae in Silla.
Silla's ruling class recognized Balhae as a country founded by Malgal. However, it changed in 752 when Kim Tae-ryeom Mission returned from Japan. Cognition that Balhae is successor of Goguryeo had rapidly spread in capital. This cognition began with Balhae and had flowed Silla via Japan.
The people of the old territory of Baekje were in poor socioeconomic conditions. Silla tried to suppress they have consciousness of succeeding Baekje by the information of 'Balhae is successor of Goguryeo'.
King Gyeongdeok had implemented control and conciliation policies. He announced the establishment of Janggun to counter a revolt in Woongcheonju-Jeong. In order to induce loyalty to the king, he rewarded Hyangdeuk handsomely for filial p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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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금대 발해인 장호 가계 인물의 행적과 통혼 사례 분석

저자 : 朴淳佑 ( Park Soon-w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28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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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요~금대 張氏 가계 인물의 사회적 행적과 수대에 걸친 통혼의 사회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관찬 자료, 묘지, 금석문 기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장호 가계의 先代는 늦어도 요대 전·중기 이후 사로에 나아가 대를 이어 봉직하면서 점차 가계를 키워냈음을 확인하였다. 그간 연구가 미진했던 (장호의 아들) 張汝爲와 張汝猷의 관력과 행적도 검토하였는데, 일전에 알려진 것보다 다양한 관력과 행적을 확인하였다. 장씨 가계 성원들의 불교 신행에 대해서도 검토를 진행하였는데, 장행원-장호 부자 모두 死後 불교 도량에 모셔진 점, 장호의 형과 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승려가 된 사실, 장호가 승려를 극진히 禮遇한 사실, 아들 장여위가 남긴 기록들을 통해 장씨 가계가 요~금대의 독실한 불교 신자였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씨 가계 구성원들의 통혼 상대를 전수 검토하여 그들의 통혼 상대가 (일방향의) 한 부류(族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당시 장씨 가계가 족속을 가리지 않고 사회 상층부 인사들과 교류 및 통혼한 것은 가세와 명망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이러한 결과물은 장씨 가계의 구성원들이 수대에 걸쳐 왕조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mined in this article are several important sources of information, such as official records, grave epitaphs(墓誌), and other inscriptions(金石文) from the Chinese Khitan Liao(遼) and Jurchen Chin(金) periods, during which a household of a Balhae descent with the last name Jang(張氏) produced several individuals for generations with a legacy worth examining in terms of social activities and marriages. Results of such examination show that the early figures of the Jang Ho household served the Khitan Liao government in the dynasty's middle and later period, and successfully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Jang house.
Meanwhile, Jang Ho's two sons named Jang Yeo-wi(張汝爲) and Jang Yeo-yu(張汝猷), whose lives' detailed aspects were yet to be fully examined, turned out to be figures who had rather diverse and illustrious careers. Also revealed is the Jang house members' devotion to Buddhism, including the fact that Jang Ho and his father Jang Haeng-weon were all enshrined at Buddhist facilities after their death, as well as the fact that Jang Ho's older brother and sister became Buddhist priests and nuns, along with Jang Ho's general reverence toward Buddhist masters.
Analysis of households which had marital relationships with the Jang house members also display a diverse group of houses. This means that the Jang house, in an attempt to maintain and also reinforce its own status and image, endeavored to arrange marriages with other houses with high social profile regardless of their races. And the fact that they were successful surely reveals that the Jang house's prominent social status was acknowledged and recognized by the rest of the society for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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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김부식(金富軾)의 북송사행(北宋使行)과 『봉사어록(奉使語錄)』

저자 : 鄭墡謨 ( Jung Sun-m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1-31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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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隨行員, 書狀官, 正使의 직함으로 3차에 걸쳐 북송에 사행했다. 그중 예종 11년(1116)에 李資諒·李永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참여한 제2차 사행에서 지은 表·狀 30여 편이 『東人之文四六』에 수록되어 현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절단의 사행 노정 및 북송 汴京에서의 활동 등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나고 있다. 한편 『宋史·藝文志』에는 '金富軾『奉使語錄』一卷'이 저록되어 있으나 일찍이 실전되었다. 본고에서는 김부식의 『봉사어록』을 그가 서장관으로 참여한 제2차 북송사행 때 작성한 사행보고 서임을 논증했다. 그리고 崔瀣가 『동인지문사륙』을 편찬하면서 『봉사어록』에 수록된 表·狀을 그대로 전재하면서 김부식의 북송사행 관련 자료가 현존하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부식의 『奉使語錄』은 문헌상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행록이며, 『동인지문사륙』에 재수록되어 전하는 이들 表·狀은 고려사절단의 노정과 북송에서의 제반 활동, 그리고 당시 여·송관계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As an entourage, recorder and ambassador, Kim Bu~sik once visited the Northern Song Dynasty for three times. In 1116, the second time that he visited the Song Dynasty together with Lee Ja~ryang and Lee Yung, he wrote more than 30 memorials and accounts, which were incorporated in Donginjimun sayuk and had handed down. Through these records, we can know the route of the diplomatic corps and their activities in Byunkyung(Kaifeng City) in detail. In the meanwhile, there is a volume of Kim Bu~sik's Bongsaorok recorded in yemunji of history of the Song dynasty. But it had been lost for a long time. Based on this, this paper demonstrates the fact that Bongsaorok is Kim Bu~sik's dispatch report when he visited the Song Dynasty as a recorder during the second time. Moreover, this paperalso emphasizes the meaning of literature and history that Choi Hae collected allof the memorials and accounts in Bongsaorok intact in Donginjimun sayuk.
Kim Bu~sik's Bongsaorok is the earliest state visit notes between Koryo and the Northern Song Dynasty in Korean literature. These memorials and accounts included in Donginjimun sayuk has become important documents for understandingthe path and activities of the Korean diplomatic corps in the Song Dynasty,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yo and the Northern Song Dynasty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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