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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연구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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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64)~11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460
대동문화연구
113권0호(2021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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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을 건너온 당본(唐本) 연구에 대하여

저자 : 芳村弘道 ( Yoshimura Hiromich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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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漢籍연구에서 중국에서 강한 영향을 받고 또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한반도의 한적을 고찰에 넣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중국과 일본, 한반도와 일본과 같이, 양국 간의 사실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져 한중일의 한적교류라고 하는 중요한 시점이 결핍되어 있었다. 메이지 초년 楊守敬의 『日本訪書志』의 선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일 한적 교류의 연구는 당연하지만 큰 성과를 올렸으며 많은 식견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한적은 직접 중국에서 전해진 것뿐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경유하여 전해진 것도 일본에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에 전래된 중국 刊寫 한적인 '조선을 건너온 唐本'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한다. 일본 국내에는 이러한 종류의 당본이 상당량 收藏되어 있지만, 종래의 한적 목록에서는 '조선을 건너온'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명기하지 않았고, 일본 국내 전체에 대체로 어느 정도의 '조선을 건너온 당본'이 소장되어 있는지, 또 과거에 존재했던 것인지 상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일본 국내 현존 '조선을 건너온 당본'이 어느 정도 있고, 또 어떠한 당본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본연구의 제1과제이다. 또한 각각의 '조선을 건너온 당본'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중국의 어디에서, 언제 제작되어, 언제 어떻게 조선으로 건너가 한반도에서 수용되었는지, 제1의 과제에서 이러한 제2의 과제가 파생된다. 다시 이러한 한적의 전래의 양상을 하나하나 상세히 검토함으로써 한적의 유통이 한중일 삼국 각각의 문화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전체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의 큰 과제로 연결되어 간다. 이러한 다기에 걸친 과제를 가능한 한 밝히는 것이 본연구가 의도하는 바이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Chinese books imported from Korea, which means Chinese published books or manuscripts that were brought from China to Japan via the Korean Peninsula. Although there is a large collection of such books in Japan, it is still unclear how many and what kind of such books there are, which is the first issue the article is trying to clarify. And the second issue is to discuss the details of how each book is imported. In this way, we hope to shed light as much as possible on the major issue of how the circulation of Chinese books has influenced the cultures of Japan, China and Korea and the whole Chinese cultural sphere of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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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북송(北宋) 각본(刻本)에 대한 조사와 연구 추이

저자 : 劉薔 ( Liu Qi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51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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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 산발적으로 소장되어 있는 北宋 刻本은 중국 조판 인쇄의 초기 실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이자 문명 전승의 중요한 일환으로 대표적인 진귀한 문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북송 각본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그 학술적 가치를 심도 있게 연구 하는 것은 중국 인쇄사, 나아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인쇄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송은 중국 版刻史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고 있는 북송본은 그 수량이 적고 국내외에 산발적으로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패턴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어렵고 기존의 연구도 결론적인 관점을 거의 도출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북송 초기의 인쇄본, 특히 單刻佛經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북송 판본의 특징을 더 많이 이해하고 참고할 수 있었다. 또한 문헌에 기재된 내용과 결부하여 전면적이고도 적절하게 송나라 판각의 규칙성과 학술적 가치를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써 일정한 타당성은 구비하였다고 할 수 있다.


The Northern Song Dynasty has a particularly importan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Chinese engraving. However, the number of survivors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is extremely limited, and it is scattered all over the world, so it is difficult to focus on its regularity. Previous studies have few conclusive views. However, with the successive publication of early Northern Song Dynasty prints, especially single-cut Buddhist scriptures, we have more reference and understanding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edition, combined with documentary records, fully and appropriately clarified its engraving laws and academic value, and it has a certain degree fea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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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 소장 중국 간본(刊本) 통속소설에 대한 술론(述論)

저자 : 潘建國 ( Pan Jian-gu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8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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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여러 서목을 통계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국 통속소설 간본은 많으나 주로 청나라 중후반의 坊刻本, 청나라 말기 민국시기의 활자본과 石印本이 주를 이루며, 학술적 문헌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명 刻本과 청 초기 간본은 소장 량에 있어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유일본이나 선본이 적지 않다. 『型世言』, 『莽男兒』와 같이 중국에는 없는 소설 작품뿐만 아니라『皇明英烈傳』, 『百家公案』, 『廉明公案』, 『醒世姻緣傳』, 『引鳳簫』 등 명청 소설 초기의 중요한 판본도 소장하고 있어 충분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조선 왕실 및 연행 사절은 중국 통속소설을 한반도에 유입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비록 儒學이 한반도의 사회와 문화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중국 통속소설은 전반적으로 여전히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자 문화라는 특수한 힘에 의해 알게 모르게 대대로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According to the statistical analysis of several existing bibliographies, the amount of Chinese printed popular fictions collected in South Korea is considerable, but the main is bookshop printed editions in mid and late Qing and stereotype or lithographic editions in late Qing and early republic. The amount of Ming and early Qing editions which have higher academic and documentation value is limited, but there are still some rare and the only existing editions, not only some lost fictions in China such as Xingshiyan, Mangnaner, but also some early important editions in Ming and Qing dynasty, such as Huangmingyingliezhuan, Baijiagongan, Lianminggongan, Xingshiyinyuanzhuan, Yinfengxiao, which can help academic work. In the process of the introduction of Chinese popular fictions to the Korean Peninsula, the Korean royal family and Yanxingshi played an important role. Although Chinese fictions didn't get enough attention in the Korean Peninsula, where Confucianism dominated, they still influenced generations of Koreans, directly or indirectly, using the special power of the Chinese character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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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기(史記)』 「화식렬전(貨殖列傳)」 주석서와 그 수사학적(修辭學的) 주석 ― 18세기 조선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저자 : 安大會 ( Ahn Dae-ho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0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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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세기에 조선의 학자가 편찬한 『사기』 「화식열전」 주석서를 분석하여 그 주석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18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사기』에서 「화식열전」이 독립되어 단행본으로 널리 유통되었고, 주석서가 여러 종 저술되었다. 그중 「화식전차기」, 『화식전주해』, 『신교화식전』, 『화식전신주』 등 4종의 주석서를 주목하였다. 이주석서들이 주석학의 관점에서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주석서들은 「화식열전」의 문장을 분석하여 대의와 저자의 저술의도, 각 단락의 주제, 수사법 등의 특징을 밝혔다. 주석의 방법과 내용이 역사적 고증을 지양하고 수사학적 주석을 지향하였다. 「화식열전」을 중국 고대사 및 경제사의 고전으로 읽는 기초 위에 문체가 독특한 문장으로 감상하고 분석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明淸 이래 수사학적 주석서가 널리 편찬되고 수용된 동아시아 학계의 경향을 따르고 있다. 복고주의 문학의 성행과 함께 『사기』가 古文의 전범으로 학습되던 문단의 경향이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이윤의 추구를 긍정하고 상공업을 진흥해야 한다는 사유의 원천으로서 18세기 조선의 학계가 「화식열전」에 주목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의 결과 이 주석서는 동아시아의 『사기』 이해와 문학의 추세, 경제관념 등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문헌임을 확인하였다.


This study analyzed the commentaries on "Huozhiliezhuan" (Biographies of Usurers) of Shiji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notations.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in Joseon, "Huozhiliezhuan" was published separately from Shiji as an individual volume, and many commentaries were published. This study focused on four commentaries, Hwasikjeonchagi, Hwasikjeonjuhae, Shingyohwasikjeon, and Hwasikjeonshinju, to analyze their exegetic characteristics.
These commentaries analyzed the sentences in "Huozhiliezhuan" to identify its implications, the author's intention, the theme of each paragraph, and rhetoric. The methods and content of the annotations were less focused on historical research and were more rhetorical.
The commentaries were clear in their intent to appreciate and analyze "Huozhiliezhuan" as a work with a distinctive style, on the basis of reading it as a classical work on the ancient history and economic history of China. The commentaries followed the academic trends of East Asia, where rhetorical commentaries had been widely distributed and accepted since the Ming and Qing dynasty. They were also influenced by the literary trends, as revivalist literature gained popularity and Shiji was considered the canon of classical texts. Another contributing factor was that the Joseon academia in the eighteenth century took an interest in "Huozhiliezhuan" out of the belief that the pursuit of profit should be considered in a positive light and that commerce and industry should be promoted. The findings of this study confirmed that the commentaries are works that provide a deeper understanding of Shiji, as well as the literary trends and economic knowledge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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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베트남 연행문헌 작품의 현황, 연구 성과 및 새로운 자료

저자 : 丁克順 ( Dinh Khac Thua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3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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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중국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유구한 수교관계를 이어왔다. 베트남은 문화와 문헌에 있어 漢字문화와 한자문헌의 영향을 깊게 받았고 정치와 외교 영역에서도 양국은 오랫동안 奉貢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베트남 왕조는 중국에 사절단을 수시로 보내 求封하고 貢納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기록된 베트남의 연행록은 베트남의 귀중한 유산으로 자리 잡았고, 베트남 국내 전문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연구되고 소개되었다. 특히 『越南漢文燕行文文獻集成』이 출판된 이후, 연행록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에 본문에서는 최근 한문연행록에 대한 베트남의 연구 성과와 새로운 자료에 대한 수집 현황을 소개함으로써 향후 이 주제에 대해 더욱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Vietnam and China have a long and special diplomatic relationship. Vietnam have maintained a long-term tribute relationship with China in politics, and have been deeply influenced by Chinese character culture and Chinese literature. The Vietnamese dynasties frequently sent envoys to China. The envoys wrote many poems in Chinese on the journey to China's capital, and these poems were later assembled into the so-called "燕行 錄 (Yanxinglu)". "燕行錄" has become one of the most valuable documents in Vietnam, which has been attracted much attention by scholars at home and abroad. The publication of the book "越南漢文燕行文文獻集成" has created convenient conditions for the study of 燕行錄and spawned a lot of valuable research. Recently, we have discovered some unlisted poems, which provide new materials for future research. This paper first summarizes the research results of 燕行錄, and then expounds the discovery and collection of new materials and makes a prospect for fu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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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간회 결성에 끼친 『개벽』의 영향 ― 민족협동전선론의 대중적 전파와 확산을 중심으로

저자 : 崔洙逸 ( Choi Su-il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6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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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 대중결사였던 신간회의 결성 과정에 끼친 『개벽』의 영향력을 가시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신간회 결성의 기조가 되었던 민족협동전선론의 대중적 전파와 확산이라는 차원에서 미디어 『개벽』이 기여한 바를 추론하였고, 민족협동전선체(신간회)의 前史라는 차원에서 『개벽』(개벽사)을 그 롤모델로 의미화하려 했으며, 조직 구성의 차원에서 신간회에 새겨진 『개벽』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들을 모색코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민족협동전선론의 대중적 천명(1925.6)과 『개벽』의 폐간(1926.8) 그리고 신간회의 결성(1927.2)을 상호연관성 위에서 살피되, 『개벽』의 '미디어성'에 의거해 그 연속된 과정에 여론-미디어적 의상(옷)을 입혀보려 하였다. 이는 기존의 '신간회 연구'가 보인 조직운동 중심이라는 치우침을 보완하고, '『개벽』 연구' 혹은 '천도교 연구'가 돌보지 못한 『개벽』의 미디어적 자율성을 보살핀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신간회의 결성에 끼친 『개벽』의 영향은 담론의 차원과 조직구성의 차원 모두를 포괄하는 사안이지만, 이 글에서는 민족협동전선론의 대중적 전파와 확산이라는 전자의 차원에 논의의 무게중심을 두었다. 다만, 『개벽』의 유통 관련 인물들의 상당수가 신간회 지방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또 '개벽사 확장기성회' 30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함으로써 앞으로 수행해야 할 연구의 방향적 실마리를 남겨놓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visualize the influence of 『Gaebyeok』 in the process of organizing Singanhoe, Japanese colonial era's largest anti-Japanese public association. Specifically, it deduced the contribution of the media 『Gaebyeok』 in terms of popular spread and propagation of the national cooperation front theory, which was the basis of the formation of Singanhoe. And it tried to make 『Gaebyeok』 meaningful as its role model in terms of the previous history of the national cooperation front(Singanhoe) and also tried to find ways to follow the traces of 『Gaebyeok』 imprinted on the Singanhoe in terms of a way of organizing the association.
For this, the popular declaration of the national cooperation front theory(June 1925), the discontinuance of 『Gaebyeok』(August 1925), and the formation of Singanhoe (February 1927) are examined from the perspective of mutual relevance. At the same time, based on the mediality of 『Gaebyeok』, it tried to put on a public opinion-media costume in the continuous process. This was caused by the purpose of supplementing the bias of the organizational movement centered on the existing 'Shinganhoe research', and examining the media autonomy of 『Gaebyeok』, which was not examined by '『Gaebyeok』 study' or 'Cheondogyo study'. The influence of 『Gaebyeok』 on the formation of Shinganhoe is a matter that encompasses both the dimension of discourse and organizational structure, but in this paper, the emphasis is placed on the former dimension of the popular spread and propagation of the national cooperative front theory.
However, by stating that many of the distribution-related persons in 『Gaebyeok』 were local members of Singanhoe, and by securing a list of about 300 members of 'Gaebyeoksa (publishing company) Expansion Foundation', it left clues as to the direction of fu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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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동인지와 프로 '문학'의 사이, 그리고 『개벽』

저자 : 朴賢洙 ( Park Hyun-s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9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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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문학사들은 1922년, 1923년 즈음을 침체기로 규정하면서도 문학의 발표 공간으로서 『개벽』의 역할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다. 당시는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이 일단의 막을 내린 시기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 미디어에도 문학을 위한 공간은 할애되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재고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관심은 지속되지는 않았다. 『개벽』 문예면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22년 중반인데, 그것은 새로운 필진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문예면에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문예특집'에 가깝게 꾸며진 1923년 신년호였다. 이전까지 문예면의 필진은 '개벽사'의 사원이거나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개벽』 문예면의 변화를 주도했던 인물은 방정환이었는데, 그는 천도교의 간부로 일을 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동경' 유학을 통해 문학이 위상을 새롭게 깨닫게 된 방정환은 『개벽』 문예면의 변화를 견인해 근대문학의 토양을 마련하려 했다. 그런데 1923년 1월 이후 『개벽』 문예면에서 필진의 개방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문예면의 변화가 한계를 보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기진은 『개벽』에 일련의 글을 발표하면서 조선에 '새로운 경향'의 문학을 정초해 나갔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문학을 그 도구로 위치시켰지만 곧 환멸에 빠지고 만다. 당시 취업을 위해 '매일신보사'를 찾아간 행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향'의 문학에 대한 모색이 『개벽』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 『개벽』 문예면의 개방이 몇몇의 문인들에게 한정되었다는 점 등은 양가적인 성격을 지닌다. 『개벽』 문예면의 음영을 되짚어 보는 작업은 문학과 생활의 관계에 대해 거듭 환기하고자 했던 '문인회'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1922 and 1923 are regarded as stagnation periods, bet < Gae-byeok > was admitted as a space for presentation of literature. At that time, the literature of literary coterie magazine in the 1920s almost ended. Also, there was no space for literature in the newspaper media. The media was interested in literature and writers, but it was not persistent. It was in mid-1922 that the literary section of the < Gae-byeok > changed. It was the issue of January 1923 that symbolically showed the change of the literary section. Previously, the writer was an employee or related person of < Gae-byeok >. The person who led the change in the literary section was Bang Jung-Hwan. He took an interest in literature while working as an executive at Cheon-do-gyo. He realized the status of literature anew through studying in 'Tokyo'. Since January 1923, the change of the literary section has not continued. The first reason was that there was no category of 'literary world' at the time. The following reason is that < Gae-byeok > was published as a Chon-Do-Gyo's journal. And the most important reason is that the opening of the literary section was achieved through human interchange. Kim Gi-jin published a series of articles in < Gae-byeok >, which was the process of pioneering 'new trend' literature in Joseon. He emphasized the proletarian revolution, but soon fell into disillusionment. His visit to < Mae-Il Newspaper > for a job is also related to this. It was contradictory that the claim of revolution was made in < Gae-byeok >, which paid expensive manuscript fees. It is also regrettable that the opening of the literary section was limited to a few people. Discussing the limitations of the literary section of < Gae-byeok > brings to mind the arguments of the 'Literary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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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20년대 개벽사의 미디어 전략과 문학시장의 구조적 변동

저자 : 柳石桓 ( Yu Seok-hwa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5-22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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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벽사의 역사적·문학사적 의미를 문학시장이라는 사회적 공간과 연관지어 검토한 결과이다. 개벽사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 전 계층을 포괄하는 데 성공했던 잡지사였다. 개벽사는 연령·성별·학력·직업 등을 기준 삼아 사회 전 계층을 분할한 후 그에 적합한 잡지들을 고안했다. 『개벽』과 『부인』·『신여성』, 『어린이』, 『별건곤』, 『학생』 등은 그 결과물이었다. 개벽사의 그와 같은 미디어 전략에 의해 지식과 문학이 계층별로 구분될 수 있고, 혹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다. 개벽사는 근대문학의 계층별 분할의 첫 모델을 보여준 잡지사였다. 이 글의 학술사적 기여도는 특정한 작가나 작품, 혹은 문학의 유파 등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문학사 이해방식과는 관점과 방법을 달리하는 새로운 이해방식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is based on a review of the historical meanings of the Gaebyeoksa in connection with the social space called the literary marketplace. The Gaebyeoksa was the first magazine company in Korean history that succeeded in covering all social classes. The results were Gaebyeok(開闢), Buin(婦人)·Sinyeoseong(新女性), Eorini(어린이), Byeolgungon(別乾坤), and Haksaeng(學生). The idea that knowledge and literature could or should be classified by class according to the media strategy of the Gaebyeoksa was formed throughout society. The Gaebyeoksa was a magazine company that showed the first model of hierarchical division of modern literature. The academic contribution of this article can also be found in that it has attempted a new understanding that differs from the traditional literary understanding centered on a specific author, work, or school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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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잡지 『개벽』의 표지 이미지 연구 ― 민족주의적 주체와 정치의 기획을 중심으로

저자 : 徐有利 ( Seo Yu-r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5-26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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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표지 이미지의 도상학적 분석을 통해서 『개벽』이 제시했던 계몽적 주체와 민족적 정치의 기획을 밝히고 있다. 표지에 놓인 호랑이, 수리, 닭의 상징적 주체는 개벽하는 힘의 민족적 주체, 초인적 주체, 신문화 건설의 계몽적 주체를 의미했다. 독서하는 청년과 나팔부는 무관은 『개벽』의 인물 이미지로서 각각 근대적 지식을 학습하는 청년 주체와 민족적 혁신의 주체로 제시되었다. 가장 선호된 한반도 지도와 지구 도상은 생존과 직결된 세계와의 관계를 함축하면서, 민족주의적 정치의 기획을 표방하는 것이었다. '조선문화기본조사'에 전시된 사진, 정보, 인적 자본은 『개벽』이 조선의 영토와 대중을 통괄하는 능력을 시각적으로 제시했다. 한글 제명의 표지는 『개벽』의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던 시기의 민중적 지향성을 드러내나, 사회주의 잡지에 비해서 강도는 약했다. 『개벽』의 표지 이미지는 1900년대 후반의 학회지와 1910년대 신문관 잡지가 창안한 민족주의적 도상들을 이어받아 1930년대의 『신동아』, 『삼천리』와 같은 남성시사종합지에 계승시켰다. 『개벽』은 1919년의 독립만세운동 이 후 가능해진 민족정치의 미디어로서, 구세계의 파괴와 신문화 건설을 거쳐 새로운 미래를 창안할 강력한 힘의 주체가 되기를 이미지를 통해서 요청했다. 또한 한반도 지도가 함축하는 바, 민족적 공통성을 제시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독자들에게 불어넣으려 했다. 『개벽』의 표지는 민족주의적 주체화와 정치의 기획이 시각화된 공간이었다.


This paper researched the magazine Gyebyeok's project for the national politics and subjectivity through conducting an iconographic interpretation on its cover images. Animal symbols-a growling tiger, an eagle with its wings wide open, a crying rooster to signal the dawn- signified powerful, superhuman, enlightening subjectivities to destruct the old world and construct new culture of Chosun. The modern youth reading books on a boat signifies a modern intellectual and the military officer blowing a bugle signifies an innovator of the nation. Maps of Korean Peninsula and the earth images were the most preferred images by Gyebyeok Magazine. It implied global relationship that was a survival-critical problem and the politics of Gyebyeok. Featured articles 'Fundamental survey of Chosun culture' showed the political capability of Gyebyeok. Korean letters of title suggested socialist orientation but it was weak compared with other socialists magazines. Many images of Gyebyeok originated from the late 1900s' magazines covers and they were succeeded by comprehensive magazines for men like New East Asia(Sindonga) and Three Thousands Ri(Samchunri) covers in 1930s. Gyebyeok was a media for people's politics that became possible after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It called for becoming a strong subject to construct new culture and national community through images of cover. Images of Korean Peninsula gave the nation commonality and instilled the confidence in national history and culture to their r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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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벽사와 차상찬 ― 기획 특집과 매체 지형의 변화를 중심으로

저자 : 鄭賢淑 ( Jung Hyun-soo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7-29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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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차상찬을 중심으로 개벽사 잡지의 기획물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다양한 특집은 사회문제를 공론화하고 여론을 형성하면서 식민지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차상찬은 개벽사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서 이를 주도하였다. 『개벽』의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는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밝히고, 문화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기반이 되었다. 『별건곤』은 대중잡지의 정체성 안에서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특집을 기획하였고, 특히 르포, 좌담회, 인터뷰 등 다양한 기술방식을 수용함으로써 독자와의 소통을 확장시켰다. 『혜성』은 시사적인 기획물을 통해 정론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제일선』은 문학, 문화와 관련한 주제로 특집을 기획하였다. 『개벽』 속간호는 신문사 특집을 통해 1920년대 개벽사가 지녔던 언론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Gaebyeoksa' magazine planned various specialities, which revealed their identity and responded to colonial reality. This paper discusses the changes in the project of 'Gaebyeoksa' magazine, focusing on Cha Sang-chan. He is the editor, publisher, author, and the leader in the publication of the magazine. The subjects to discuss are 'Gaebyeok', 'Byeolgeongon', 'Hyesung', 'Jeilsun', and 'Gaebyeok' periodicals.
The representative special project of 'Gaebyeok' is 'Basic Survey of Chosun Culture'. The project focused on informing the reality of colonial Chosun and emphasized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the discourse of cultural nationalism. 'Byeolgeongon' planned various projects on the theme of history and culture within the identity of popular magazines, and especially accepted various technological methods such as reportage, chat, interview, and dialogue. 'Hyesung' planned a special feature on social issues and world affairs, while 'Jeilsun' planned it on literature and culture. Lastly, 'Gaebyeok' periodicals sought to restore its status as a media organization held by 'Gaebyeoksa' in the 1920s through a feature on the media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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