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역사신학 논총

역사신학 논총 update

Journal of Historical Theology

  •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9-7593
  • : 2671-5783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4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367
역사신학 논총
40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저자 : 박용규 ( Yong Kyu Park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5 (8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1922년에 설립된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은 물론 1884년 한국선교 시작부터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발전과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교회 설립과 주일학교 착수를 병행하였고, 주일학교를 처음부터 한국선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집중적인 노력과 투자를 기울여 왔다.
지난 한국교회사에서 주일학교운동은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 대별할 수 있다. 첫째, 준비 기간으로 1884년 한국선교 시작부터 1922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창설될 때까지, 둘째, 발전기로 1922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창설되고부터 1938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강제해산되고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셋째, 재건기로 1945년 해방부터 한국교회가 WCC 에큐메니칼운동 문제로 친 WCC와 반 WCC로 나뉘어진 1960년까지, 그리고 변천과 쇠퇴기로 1960년부터 현재까지로 크게 대별할 수 있다.
1884년부터 1922년까지 한국주일학교운동 준비 기간 중에 1905년 한국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주일학교 발전을 위한 귀중한 토대를 구축했다. 1922년부터 1938년까지 발전기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를 중심 축으로 전국의 주일학교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며 만국통일공과, 부별계단공과, 세계주일학교대회 참여, 전국주일학교대회 개최, 하기아동성경학교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주일학교운동은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엡윗청년회, 조선면려청년회,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YMCA)에 이어 1938년 6월 21일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면서 한국주일학교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급격하게 쇠퇴하고 말았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한국주일학교운동의 재건기에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다시 조직되고 명칭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로 개칭되었다. 이 기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KNCC 가입, 세계기독교교육협회와 유대관계 증진, 방송을 통한 기독교교육의 저변확대, 주일학교를 넘어 기독교학교에로 사역확대를 추진했다.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성장과 변천과 쇠퇴기를 동시에 경험한 기간으로 한국주일학교운동이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가장 큰 변화는 대한기독교교육협회가 처음부터 한국교회 전 교단이 참여하는 연합기관이었으나 1960년 이후에는 협회가 친 KNCC와 WCC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면서 복음주의 노선의 교단들이 참여하지 않는 반쪽만의 연합기구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신학노선도 WCC의 흐름을 따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방향으로 흐르면서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급격하게 영향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2015년 재정압박으로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한국주일학교운동은 말 그대로 위기에 직면했다.


This year,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which was founded in 1922, commemorated its 100th birthday. From the beginning of Korean missions in 1884 as well as over the past 100 years, Sunday School has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and growth of the Korean church. The missionaries who were dispatched to Korea simultaneously founded churches and Sunday schools, and from the start they saw Sunday schools as a crucial tool for their work in Korea. In Korean church history, the Sunday School movement can be roughly divided into four periods. First, as a preparation period, from the beginning of Korean missionary work in 1884 to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 on in 1922, second, as a development period, from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in 1922, it was forcibly disbanded in 1938 and liberated in 1945. The third, reconstruction period, from liberation in 1945 to 1960, when the Korean church was divided into the pro- WCC and anti-WCC over the WCC ecumenical movement, and the final period from 1960 to the present, is a period of change and decline for Korean Sunday Schools.
During the preparation period for the Korean Sunday School Movement from 1884 to 1922,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and the Methodist Church laid a valuabl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Sunday school. From 1922 to 1938, Korean Sunday School reached a golden age through active activities such as Summer Vacational School, World Sunday School Lessons, Lessons by Grading, World Sunday School Convention, National Sunday School Conference, and Summer Vocational School, while maintaining close ties with Sunday Schools across the country, centered on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KSSA).
However, once the Japanese forcibly dissolved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on June 21, 1938, the Korean Sunday school movement lost its direction and rapidly declined.
During the reconstruction period of the Korean Sunday School Movement from 1945 to 1960, the Korean Sunday School Association was reorganized and the name was changed to the Korea Council of Christian Education (KCCE). The KCCE joined the KNCC and began to take a deep interest in Christian schools beyond Sunday school, by promotingties with the World Council of Christian Education(WCCE), expanding the base of Christian education through broadcasting.
From the 1960s to the present, it was a period of growth, change, and decline, and the Korean Sunday School movement was a period of too many changes. The biggest change was that the KCCE was an allied organization in which all denominations of the Korean church participated from the beginning, but since 1960, as the KCCE rapidly shifted toward KNCC and WCC ecumenical lines, it became a half-coaled organization in which evangelical denominations did not participate. In addition, as the theological line shifted to the WCC's “Missio Dei,” the KCCE rapidly lost its influence, and finally closed due to financial pressure in 2015. As a result, the Korean Sunday school movement literally faced a crisis.

KCI등재

저자 : 한동수 ( Han Dongsoo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39 (4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예배론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지역교회와 선교지에서 꾸준히 목회 사역을 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더 활발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본 소고는 에드워즈의 공적 예배 신학에 집중하되, 예배의 본질, 예배의 방식과 안식일, 예배와 안식일, 그리고 예배자의 자세 등을 차례로 논의한다. 에드워즈의 원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에드워즈 예배론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에드워즈는 청교도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신학의 중심으로 삼고, 이 사상을 예배론과 연결한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는 창조와 새 창조에 근거를 두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에드워즈의 공적 예배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었으며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격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었으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누린다. 셋째, 에드워즈는 성경과 상식에 근거하여 공적 예배를 순수하게 보전하려 했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예전적 요소들을 거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배의 질서를 위해 일정한 순서와 장소를 인정했다. 넷째, 에드워즈는 예배자의 자세에 관련하여 외적인 예배 행위나 규례보다 내적인 예배의 영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즈의 공적 예배 신학은 거룩한 성도의 삶과의 조화를 강조한다. 공적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가 사적 예배에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Jonathan Edwards' theology of worship has not been much attracted by scholars. Considering his career as a pastor of local churches and a mission field, more vigorous studies on this subject matter are highly required. Starting with the awareness of that problem, this study attempts to discuss Edwards' theology of public worship, focusing on the nature of worship, its form and elements, its relationship with Sabbath, and the attitudes of worshipers.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broad primary sources of Edwards proves that his doctrine of worship is distinguished by five critical marks. First of all, he inherits the Puritan tradition in placing the glory of God on the center of his theology, and connecting it with his doctrine of worship. For him, worship is grounded on the creation and new creation, and the glory of God is the end of worship. Secondly, his worship theology is Christ-centered per se. Since the glory of God, the end of God's creation, is restored in Christ, and saints have been qualified for worship in Him, they have to worship and enjoy God in Christ alone. Thirdly, Edwards seeks for the purity of worship based on the Bible, rejecting ritual elements of the Anglican church on the one hand, and accepting certain vital elements for the sake of the proper execution of worship on the other hand. Fourthly, Edwards put more emphasis on the internal spirit of worship than on external acts. Lastly, Edwards' theology pursues the concistency of public worship with godly life as private worship. Attenders of public worship should be holy in their daily lives.

KCI등재

저자 : 류길선 ( Ryu Gil Su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1-176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2022년 코로나19의 여파가 진정국면에 접어든 요즘, 한국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복음 신앙을 확고히 붙잡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 종교개혁 전통의 교리 교육에 관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한 교리 교육서들은 복음신앙의 통일성을 확립하는데 매우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교육 방법론의 개발로 이어졌다. 특히, 청교도들은 효과적인 교리교수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본고는 17세기 청교도 신학자인 로버트 에벗의 소요리 문답서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가정에서의 효과적인 성경 교육의 모델을 제공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에벗은 성경 교육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을 인격적인 지식으로 승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교리교육 시행자와 참여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풍부한 비유를 사용하고, 성경적 논증과 근거 본문들을 해설하고 다수의 성경적 예시들을 제공함으로써, 교리 교육의 기초가 성경에 대한 믿음에 놓여있음을 강조했다. 그의 소요리 문답은 교리가 메마르거나 죽은 신학의 대변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삶에 구체적인 실천 방향과 적용점들을 반영한다.


In 2022, the negative effect of the COVID-19 pandemic has begun to settle down. In this situation, the church is forced to maintain both the unity of the church and the true nature of the gospel. Thus, it is helpful to examine the pedagogical concerns, methods, and applications of catechism in the Reformed tradition, in terms that Reformed confessional documents and catechism played an pivotal role in establishing an evangelical perspective, and resulted in the rise of educational issues. Particularly, the Puritans attempted to provide various methods of education, with the use of easy analogies, the practice of the biblical reading, and the proper arrangement of theological topic for the purpose of theological education. The article argues that Robert Abbot's catechism offers an effective model for the home education of the Bible. Abbot provided various concrete methods for the educators, emphasizing the true knowledge, by which the participants could experience the presence of God in a personal way. He also promoted the home education by facilitating interactive discussions between the parents and children by the use of various analogy. Furthermore, his biblical exegesis provides an easy explanation of the biblical texts and the varied examples of the Bible, which prove highly significant in his dealing with the biblical doctrines. Quite in contrast to contemporary scholars who argues that catechism or doctrines are dry, this perspective sheds a fresh light on the practical significance of the biblical education at home.

KCI등재

저자 : 주종훈 ( Jong Hun Joo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6-208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발전시킨 성경적 예배의 원리를 오늘날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교회들이 어떻게 수용하고 구체적으로 실천에 반영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예배 원리로 발전한 성경적 규율원리는 예배 구성과 실천을 성경이 명확하게 규율하는 것에 따를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규율원리는 개혁주의 예배의 통일성을 제시한다. 곧 어느 하나의 고정된 예배 방식을 모범으로 제시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주어진 개혁주의 예배는 자율성을 동시에 반영한다. 칼빈은 가톨릭 미사로부터의 자율성을 강조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른 예배는 자유의 방종을 경계하면서 개혁주의 예배 실천의 공통된 일치를 강화시켰다. 이후 개혁주의 전통은 성경의 규율에 따른 양심의 자유를 활용해서 예배 공동체의 상황에 부합한 목회적 분별과 책임 있는 선택과 결정으로 예배를 구성해왔다.
개혁주의 예배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주어진 통일성과 자율성은 예배의 실천의 실천적 과제를 명확히 제시한다. 우선 성경적 규율원리에 따라 말씀을 읽고, 선포하고, 기도하고, 노래하는 구성을 계속해서 강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성경적 예배 구성의 구체적인 순서 배열과 실천 방식은 어느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모델로 제시하지 않고 예배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유기적 발전을 허용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개혁주의 예배는 성경적 예배 구성요소들을 회중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음악과 기도 그리고 고백에서의 지혜로운 수용과 창의적 실천을 요구한다. 개혁주의 역사에서 발전해 온 예배의 구성과 실천은 성경의 가르침을 확신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예배자들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섬김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목회적 지혜를 구현하는 것이다.


This article attempts to explore the lessons and practical implications of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as a foundation and guide of Reformed worship for our contemporary Reformed churches.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has guided rigorous practices of biblical worship by emphasizing the unity of Reformed worship. Yet, this Reformed emphasis on the unity of worship, at the same time, has led Reformed churches to avoid one and only fixed model of worship as a vision of Reformed worship by allowing the freedom in the practice of worship. In the history of Reformed churches, it is clear that Reformed worship has been changed in a mixed and complicate ways. Calvin sought for the freedom from the Medieval Mass while beholding biblical principle of worship. 'Westminster Directory' sought the unity of various Reformed worship while respecting the freedom in worship. By following this dialectic development of worship, Reformed churches have developed and articulated the unity and freedom of public worship appropriate to each different context of worship.
The unity and freedom of worship as a Reformed characteristic of worship has implications for the practice of worship. Most of all, it assigns the Reformed churches to compose and implement the reading, singing, and praying the Bible according to 'the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In addition to that, it allows the Reformed churches to freely enact the order of worship based on the pastoral discernment. In this regard, Reformed churches are required to promote an organic change of worship based on the given situation of the congregation by wisely and creatively leading the public worship both seeking the glory of God and serving the world as the core teaching of the Bible.

KCI등재

저자 : 김성욱 ( Kim Sung Wook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9-240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신학의 주제와 방법론에 관한 논의는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다. 하나님에 관한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신학은 일반 학문의 방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이 요구되는가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언급해 왔다. 조병하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는 명제에 관한 역사신학적 고찰”로 전체적인 논의를 전개하였는데, 본연구는 근대 이후의 중요한 학자들의 입장을 리츨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먼저 칸트는 이성의 한계에 대하여 논하면서 형이상학에 관해서는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음을 밝히고, 대신 실천이성을 통한 논의 곧 윤리로 신학을 논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슐라이어막허는 종교란 전인적인 특성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신학에 있어서 이성의 한계를 넘어 지(知)·정(情)·의(意)를 포함한 전인적 인간성을 학문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칸트와 슐라이어막허 그리고 당시의 학문적 방법론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한 리츨은 특별히 “가치판단”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신학의 학문적 가능성에 대하여 논한다. 그는 『기독교의 칭의와 화해의 교리(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를 세 차례 출판하였다. 리츨은 이 책의 제1판에서 신학의 학문적인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나. 제2판에서는 그 가능성을 넘어 학문성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3판에서는 이전의 주장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신학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때, 신학의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학문적 방법에 관하여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작업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며 논의가능한 방법을 함께 알아보며 토론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Discussions on the subject and methodology of theology have been in progress since the early church and are still continuing. If the content of theology is about God, God, then many scholars have naturally talked about whether the method of study should follow the methods of ordinary science or a new methodology.
Recently, Professor Byung - Ha Cho has been discussing the issue of the church history with the theme of “Theology is not a science.” In this study, the positions of important scholars from the modern era will be summarized.
I. Kant argues against the limits of reason and argues that metaphysics can not be judged by reason. Instead, he opened the way of discussing theology through practical reason, ethics. Schleiermaher reveals that religi on goes beyond the limits of reason and is holistic humanity (Menschheit). Thus, he suggests a method of scholarship of holistic humanity (Menschheit) including knowledge, emotion, and will. Ritschl is concerned with Kant and Schleiermahner's science methodology, and discusses the scholarly possibilities of theology using the concept of 'value judgment(Werturteile)'. He argues that in the first edition of his justification and reconciliation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 Band I-III) the scholarly possibility of theology, goes beyond the possibilities in the second edition, but in the third edition it reserves the argument.

KCI등재

저자 : 전광수 ( Kwang-soo Je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2-276 (3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후크마(Anthony A. Hoekema)가 평가하는 영혼불멸론에 관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칼빈을 비롯한 개혁주의 전통의 신학자들과 바빙크 및 벌카우어와 같은 신학자들 사이에 “명백히 상충되는 견해들”이 있다고 강조하는 점이 그러하다. 후크마에 의하면, 칼빈이나 벌코프와 같은 개혁신학자들이 영혼불멸론을 성경이 말하는 바와 일치한다고 보는 반면, 바빙크는 훨씬 더 신중한 접근을 취하여 둘 사이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다는 것이다. 또한, 후크마는 바빙크가 영혼 불멸 교리를 성경적 근거보다는 철학적 사유에 기초한 혼합조항(articulus mixtus)으로 제시한다고 주장하여 바빙크가 영혼 불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처럼 묘사한다. 본고는 이러한 후크마의 주장에 대해 인용된 바빙크의 글의 문맥들과, 영혼불멸론에 관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증거들, 그리고 혼합조항에 관한 바빙크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후크마의 주장의 타당성을 재고하려는 시도이다. 먼저, 바빙크가 영혼불멸론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것을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그는 여러 곳에서 영혼의 불멸을 인정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밝힌다. 더불어, 자연계시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영혼불멸론 역시 역사적, 이성적, 철학적 증거들이 그 자체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근거(ground)는 아니더라도 증거(witness)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혼합조항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바빙크는 여러 곳에서 이 조항 자체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 혹은 각 계시에 근거한 신학과 철학 모두의 지지를 받는 것이지, 성경적 근거 없이 철학적으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 점은 후크마의 주장과 달리 영혼불멸론에 대한 바빙크의 견해가 칼빈이나 벌코프를 비롯한 여러 개혁신학자들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들 모두 철학과 이성을 이용한 자연계시에서 얻는 지식으로서의 영혼불멸론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상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개혁신학자들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를 언급하는 후크마의 주장은 수정되어야한다.


Anthony A. Hoekema's reading of the Reformed doctrine of the immortality of the soul is problematic. He claims that there are “apparently conflicting reactions from Reformed theologians” on this issue. According to his argument, prominent Reformed thinkers such as John Calvin, A. A. Hodge, Louis Berkhof, and William G. T. Shedd accepted a philosophical approach to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s consistent with the biblical understanding. In Hoekema's summary, however, Herman Bavinck claims that the doctrine of the soul's immortality is not compatible with the biblical view because the scripture barely mentions it and its main interest is not about the immortality of the soul but the resurrection of the human body. Moreover, for Hoekema, Bavinck suggests this doctrine as a mixed article of faith (articulus mixtus), “the truth of which is demonstrated more by reason than by revelation.” Based on these reasons, Hoekema concludes that Bavinck does not take the doctrine as a biblically trustworthy doctrine. However, this argumentation needs reconsideration seriously in some points. First of all, Bavinck never rejects this doctrine in his biblical discussions. Although he admits that the scripture does not say much about this doctrine, he clarifies that we can find biblical sources enough to recognize this doctrine as biblical. Secondly, Bavinck also accepts this doctrine based on the validity of philosophical reasoning derived from natural revelation. For Bavinck, historical, reasonable, and philosophical reasons can be “witnesses or indications” rather than proof to support this doctrine. Finally, this is evident in his usage of the term articulus mixtus. Unlike Hoekema's negative comment on the term and his intention to antithetical aspects between biblical reasoning and philosophical reasoning, Bavinck himself uses the term in his Reformed Dogmatics positively with out disregarding the superiority of the scriptures over philosophical reasons.

KCI등재

저자 : 김병희 ( Kim Byong H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7-315 (3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1919년 3월 13일에 일어난 용정지역 3·1운동에 대한 연구로 만세시위에 국한하지 않고 기독교계의 민족운동 참여 전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용정지역 3·1만세시위는 3월 13일 용정지역을 시작으로 40여 일 동안 연길현·화룡현·왕청현·훈춘현 등에서 총 23회, 총인원 72,000여 명이 참여한 시위로 북간도 전역에 걸쳐 전개되었다. 용정지역 3·1만세시위는 특히 북간도지역의 기독교계 민족지도자들이 민중, 학생, 교인들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기독교 민족운동의 성장배경과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북간도지역 조선인의 정착과정과 북간도지역 선교, 이들의 기독교 입교 동기와 선교정책, 조사, 권서, 전도부인의 활동, 간민교육회의 결성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용정지역 3·1만세시위의 전개과정과 북간도 전역으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해 가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인의 북간도 이주는 국내의 경제적, 정치적 사정으로 급속히 증가되었다. 이에 캐나다장로교 선교부는 만주선교를 시작하였고, 선교부가 시행한 선교정책으로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이 지역에서 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근대적인 교육과 의료사업이 기층민은 물론이고 지배층들에게도 큰 호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경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요구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영수, 조사, 권서, 전도부인을 발굴하였으며 사경회를 통해 발굴된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교회가 성장하였다. 이에 교회마다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민족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교회와 조사들은 사경회를 열어 기도회와 성경공부, 그리고 구국 강연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독립을 위한 역량을 키워 민족독립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를 위해 북간도에서 최초의 조선인 교육기관인간민교육회가 설립되었는데 주요 인물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며 이들은 용정지역 3·1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의지와 거대한 힘을 발견하고 용정지역 3·1만세 시위 이후 북간도의 항일투쟁은 무장투쟁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고 수많은 무장단체들이 조직되는 계기가 되었다.


This dissertation researches 3.1 movement in the region of Longjing in March 13th, 1919. The scope of this dissertation includes the independent protest and national movement involved by Christians as well. 3.1 independent protest in Longjing spreaded through the regions of Yanji, Helong, Wangqing, Hunchun and other Jiandao regions over 40 days with 23 times movements by 72,000 participants. In Lóngjǐng 3·1 movement, Christian ethnic leaders initiated the movement by leading populace, stud ents and Christians. In order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growth and process of Christian national movement as an initiative in Longjing 3·1 protest movement, this essay has researched on the issues such as Chosun people's settlement and mission in Jiandao, their motive of becoming Christian, their mission policy, their helpers, their colporteur, their activities of Bible women, and the formation of Ganmin institute. The progress of Longjing 3·1 protest movement and the progression of protest movement over the whole Jiandao are also examined.
The migration of Chosun people in Jiandao increased rapidly because of national economic and political factors. Thus, Canadian Presbyterian Mission Department started to work in Manchuria and churches grew successfully by them. The church growth in Manchuria was favored by both the high rank and common people because of modern education and medical work. Another factor of the growth was those trained leaders in Bible Conference required by Korean Churches and those equipped elders, helpers, colporteur, and Bible women. Churches established schools and offered Bible study and patriotism class to enlighten ethnic spirit, ignite patriotism, and enlarge capability of independence for the foundation of national independence. Ganmin institute, namely, the first educational organization for Chosun people in Jiandao was established and most of leaders were Christians who led Longjing 3·1 protest movement. After Long jing 3·1 protest movement, the movement against Japan in Jiandao bagun to change into armed struggle and many armed organizations were formed.

KCI등재

저자 : 이영식 ( Young Sik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6-361 (4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오늘날 출산율은 더욱 감소되고 있으며,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는 오늘날의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신앙의 선진들이 황무지와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의 열정과 기도로 주일학교를 세우고, 주일학교 연합운동을 했으며, 한국교회의 성장의 토대를 놓았던 그 역사를 조명하고자 했다. 특별히 올해는 1922년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연합회가 창설된 지 100주년 되는 해라는 점에서 주일학교를 살펴보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연구가 주일학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고, 주일학교의 부흥이 다시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씨가 되는데, 미약하나마 일조했으면 한다.
국내 주일학교가 도입되면서부터 연합활동은 왕성하게 전개 되었고, 그에 따르는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특히 1905년 장감연합공의회가 시작되어 주일학교 공과 및 교재 채택, 세계주일학교연합회와의 연계 및 주일학교 전문사역자들의 국내 활동, '조선주일학교연합회' 결성, 4년 만에 개최되었던 전국주일학교대회의 성공적 개최 등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
주일학교운동의 장로교 사례로서 연동교회 유년주일학교와 광주 선교스테이션에서의 확장주일학교에서 보듯이 선진들의 열정과 헌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동교회 주일학교는 연동 어린이 전도대를 만들어 전도했다. 그리고 광주 주일학교는 교회가 없는 마을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주일학교가 시작되었으며, 이윽고 교회로 발전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통찰과 도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Today, the birth rate is further decreasing, and it is true that Korean church is in trouble as it faces the COVID-19 era. While recognizing today's reality, this study tried to illuminate the history of the forefathers of faith, who established the Sunday School with their passion and prayer, conducted the Sunday School union movement, an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growth of the Korean church even in a wasteland environment.
In particular, this year is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of Korea Church in 1922, so it is considered to be historical significance to look at Sunday school. I hope this study will help to broaden the Korean church's perception of Sunday school, and the revival of Sunday school will become a spark for the revival of Korean church again.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Sunday School in Korea, cooperative activities have been actively conducted, and the results have been achieved accordingly.
In particular, since the Gen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 began in 1905, There have been active cooperation such as adopting Sunday School's lessons and textbooks, linking with the World Sunday School Federation, domestic activities of Sunday school workers, the formation of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and successful hosting of the National Sunday School Competition held in 4 years.
As the exampl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Sunday School Movement, we could find the passion and devotion of advanced people, as seen at the establishment of Jangdaehyeon Church's Sunday School, Yeondong Church's Childhood Sunday School and the Extension Sunday School at Gwangju Mission Station. These historical facts provide enough insight and challenge to today's Korean church.

KCI등재

저자 : 박창훈 ( Park Changho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62-398 (3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미주한인교회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속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한국의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미국의 이민법의 변화에 주목하며 미주한인사회의 형성과정을 살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글은 먼저 미주한인들의 이민역사와 미주한인교회의 역할을 개괄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뉴욕의 한인교회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미국사회 및 타이민공동체를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음을 사례로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뉴욕한빛교회가 뉴욕지역에 세워진 첫 번째 성결교회로서, 뉴욕·뉴저지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최초로 비영리단체인 엘코스(ELCOS: Elmhurst Community Service)를 설립하여, 미국정부로부터 인가를 받고, 지역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였음을 보인다. 이와 함께, 한글학교 설립과 운영, 교회건물 개방, 무료 나눔/바자회 및 문화교류, 선교지원 및 단기선교 등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하였음을 추적한다. 이러한 활동을 소개하며, 본 논문은 여러 이민자들이 다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뉴욕지역에서 미주한인교회가 다민족사회에서 지도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This article reveals that Korean American churches not onl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maintaining the identity of Koreans, but also contributed to the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 through exchanges with various ethnic groups living in the United States. To this end, it suggests that the process of formation of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should be looked at, paying attention to changes in immigration law in the United States.
This article first outlines the immigration history of Korean Americans and the role of the Korean American churches. And in the second half, it presents an example of a Korean church in New York City doing activities for the American society and the immigrant communities through community service activities.
Specifically, pointing out the Elmhurst Community Service(ELCOS), the first non-profit organization among Korean churches in New York/New Jersey area, established by Korea Evangelical Church of New York, the first holiness church in the New York City. the author shows that it has started community service. At the same time, the article tracks the activities for the local community such as Hangeul school, sharing church buildings with community, giving out necessities for free and cultural exchange programs, and missionary support and short-term missionary work. By introducing these activities, it argues that Korean American churches are demonstrating their leadership in a multi-ethnic society in New York City, where many immigrants form a multi-cultural society.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