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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search of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 : 한국공연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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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전희곡연구(~2003) → 공연문화연구(2003~)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4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597
공연문화연구
43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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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 <모란봉>(1958)과 음반 < Corée Moranbong >(1960) 수록 <춘향전>을 통해 본 1950년대 북한 창극의 실제적 양상

저자 : 송미경 ( Song Mi-kyou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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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란봉>은 1958년, 아르망 가티, 크리스 마커, 클로드 란츠만, 프랑시스 르마르크, 장 클로드 보나르도가 조선필름의 초청으로 떠났던 북한 여행의 산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는 바로 개봉되지 못했고, 2010년에야 다시 발굴되어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란과 동일의 서사가 저 멀리 조선의 고전 춘향전 속 춘향과 몽룡의 서사와 포개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때 조선의 고전은 두 주인공의 서사와 시간대를 공유하는 극중극 <춘향전>의 형태로 재현되며, 두 서사는 총 6개 장면에서 포개어진다. 영화에는 두 겹의 중층적인 액자가 존재하는데, 1950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란과 동일의 서사가 가장 바깥에 있다면, 그 안에 창극 <춘향전>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만들어 가는 서사가 있고, 가장 안쪽에 온전한 작품으로서의 창극 <춘향전>이 배치된다. 영화 가장 바깥의 액자에서는 동일이 주인공이지만, 안쪽 두 겹의 액자에서는 창극 <춘향전>과 함께 성장하는 배우이자 창극 <춘향전>의 등장인물인 영란이 중심이다.
다음 이 영화의 OST 음반으로는 프랑스에서 1960년 발매된 < Corée Moranbong >, 1970년 발매된 < Musique De Corée >, 그리고 일본에서 1968년 발매된 <朝鮮の伝統音楽-唱劇 「春香伝」と伝統楽器-> 3종이 있다. < Corée Moranbong >은 영화 <모란봉>의 음악으로만 구성된 반면, 이후 나온 두 음반은 평양국립방송을 통해 수집 및 녹음한 곡을 추가로 포함하였다. 다만 일본에서 발매된 음반에는 영화 <모란봉>에 관한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정황상 음반사나 음반 해설지의 필자도 영화 <모란봉>의 존재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영화의 개봉 자체가 금지되었던 배경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련 내용을 배제한 것일 수도 있다.
본고에서 영화 <모란봉> 또는 OST 음반에 수록된 창극 <춘향전>의 세부 장면 <이별가>, <십장가>, <춘당시과>, <박석티>, <옥중가>를 분석한 결과를 1950년대 북한 창극계의 변화와 관련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50년대 북한 창극 <춘향전>의 정립 과정을 확인하였다. 1955년에 『조선창극집』을 통해 정리된 희곡이 1956년∼1958년 사이『조선민족음악전집(창극 및 민족가극편)1: 창극 <춘향전>(초고)』에 이르러 실연 가능한 창극 형태로 정착하였고, 영화와 음반에 수록된 부분은 1950년대 말 그 완성판의 한 예시에 해당한다. 1960년대 이후 <춘향전>은 더 이상 기존의 판소리식 창극으로 공연되지 않았기에, 영화 <모란봉>과 음반 < Corée Moranbong >은 창극 <춘향전>과 그 음악을 오롯이 담아낸 거의 마지막 기록물이 된다.
둘째, 1950년대 북한 창극계의 탁성 논쟁과 관련한 창극 배우들의 대응 양상을 확인하였다. 1959년까지도 북한에서는 탁성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와 이것도 민족적 특징이라는 옹호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공존했다. 맑고 높은 성음의 구사로 탁성 제거에 일정한 성과를 보인 신우선, 분명한 변화를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발성을 달리한 공기남, 탁성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배역을 선택한 조상선, 당이 요구하는 발성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자기 원 음색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임소향, 이들의 판단과 대처는 영화 <모란봉>과 음반 < Corée Moranbong > 속 소리에도 오롯이 반영되어 있었다. 한편 조상선과 임소향은 그들의 소리를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배역을 보장받았지만, 영화 <모란봉>에 나타난 선택/배제의 양상은 이와 별개로 1950년대 월북국악인들에게 요구되었던 탁성 제거 지침과 그대로 연결된다.


The film Moranbong is the product of a trip to North Korea in 1958, when Armangati, Chris Marker, Claude Lantzmann, Francis Lemarck and Jean-Claude Bonardo left at the invitation of Joseon Film. However, for political reasons, the film was not immediately released, and it was not until 2010 that it was rediscovered and received attention. The movie consists of the narratives of Young-ran and Dong-il, set in the Korean War, that are folded into the narratives of Chunhyang and Mongryong in the classic Chunhyangjeon of Joseon. At this time, Joseon's classics are reproduced in the form of the drama Chunhyangjeon, which shares the time zone with the two main characters, and the two narratives are covered in a total of six scenes. There are two layers of middle-story frames in the movie, and if the same narrative is set in North Korea in the 1950s, there is an epic produced by the producers and actors of the Changgeuk Chunhyangjeon and the Changgeuk Chunhyangjeon as a complete work. In the outermost frame of the movie, Dong-il is the main character, but in the inner double frame, Young-ran, who is an actor growing up with the Changgeuk Chunhyangjeon and a character in the Changgeuk Chunhyangjeon, is the center.
The following three OST albums are Corée Moranbong released in France in 1960, Musique de corée released in 1970, and 朝鮮の伝統音楽-唱劇 「春香伝」と伝統楽器- released in 1968 in Japan. While Corée Moranbong consists only of the music from the film Moranbong, the two subsequent albums included additional songs collected and recorded by Pyongyang National Broadcasting System. However, there is no information about the movie Moranbong on the album released in Japan. Under the circumstances,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author of the record label or music commentary has not confirmed the existence of the movie Moranbong, and may have intentionally excluded related contents due to the background of the film's ban on its release.
The results of analyzing the detailed scenes of the Changgeuk Chunhyangjeon, Farewell Song, Sipjang-ga, Chundangsigwa, Bakseokti and Prison Song in the movie Moranbong or OST album in the 1950s are as follows.
First,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North Korean Changgeuk Chunhyangjeon in the 1950s was confirmed. The play, compiled in 1955 through the Joseon Changgeuk Collection, was settled in the form of a Changgeuk that can be performed in the late 1950s by the Changgeuk Chunhyangjeon between 1956 and 1958. Since the 1960s, Chunhyangjeon has no longer been performed as a traditional pansori-style Changgeuk, so the film Moranbong and the album Corée moranbong are almost the last records to capture the Changgeuk Chunhyangjeon and its music.
Second, we confirmed the responses of the actors to the controversy over Takseong in the North Korean creative world in the 1950s. Until 1959, there was a voice of criticism surrounding Takseong and a voice of advocacy that it was also a national characteristic. Shin Woo-sun, who almost eliminated Takseong with clear and high-pitched phrases, air man who changed according to the situation, who chose Takseong but did not actively remove Takseong, Lim So-hyang, who tried to maintain his own tone while accepting some of modern vocalization. Although Cho Sang-sun and Lim So-hyang were also guaranteed roles to continue their voices, the selection/exclusion patterns in the movie Moranbong were linked to the Takseong removal guidelines required by North Korean musicians in the name of Dang and People in the 1950s.
Second, Changgeuk actors' response to the controversy over the turbidity of the North Korean Changgeuk community in the 1950s was confirmed. Until 1959, there were voices of criticism and support surrounding Taksung in North Korea. Shin Woo-sun, who showed consistent performance in removing turbidity with clear, high-pitched vocal sounds, Gong Gi-nam, who did not actively remove turbidity depending on the situation, Cho Sang-sun, who accepted some of the vocalization required by the party, while maintaining his original tone. On the other hand, Cho Sang-seon and Lim So-hyang were guaranteed roles to continue their sounds, but the selection/exclusion patterns of Moranbong was independently linked to the guidelines for removing turbidity that the Gugak musicians who crossed to North Korea had been asked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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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판소리의 영화적 해석과 변모의 과정

저자 : 송소라 ( Song So-ra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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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속에서 판소리가 수용된 양상을 살핌으로써, 판소리에 대한 현대사회의 인식과 기대의 변화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후기 상하층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판소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 위상이 꺾이게 된다. 일본에서 유입된 신문물의 영향과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대중적 관심을 잃게 되며, 고루하고 낡은 전통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점차 사라지는 판소리를 보호 및 계승하기 위해 1964년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만 1980년대까지도 판소리의 자생적 대중성 확보는 어려웠다. 그러나 판소리는 국가의 꾸준한 지원과 명창들의 판소리 전승 노력,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우리의 것을 세계화하자는 사회문화적 담론 속에서 점차 동시대의 대중과 호흡하는 노력을 해왔고,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재로도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팝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선보인 뮤직비디오 형식의 'Feel the Rhythm of KOREA'가 보여주듯 현재의 주목받은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대사회 속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판소리의 위상은 영화라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 연구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비롯하여 최근의 <소리꾼>까지 판소리를 소재로 한 6편의 영화를 선별하여 이와 같은 변화의 추이를 탐색하였다.
먼저 1990년대에 제작된 영화 <서편제>와 <휘모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당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판소리, 즉 20세기 초중반 전승의 위기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진 판소리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도 판소리 자체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소리꾼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었다. 판소리가 가진 정서로써 '한'과 북과 소리의 조화를 통한 판소리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소리의 숭고함과 특수함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판소리에 관해 관심이 적었고, 따라서 이의 가치를 잘 모르던 대중은 즉각 이에 화답하며 우리 음악과 우리의 정서에 대한 폭발적 지지를 보여 이른바 '<서편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서편제>와 <휘모리>는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한 시기, 그러나 그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청되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영화의 내용과 구성에 반영되며 당대 판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대를 드러내었다.
다음으로 2008년에 제작된 영화 <소리, 아이>와 2012년의 <두레소리>이다. 두 영화는 판소리와 국악을 하는 동시대의 어린이,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을 하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그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 영화에서 판소리는 '요즘 세상에 누가 그것을 하냐'의 소리를 듣는 옛 음악도 아니고, 혹독한 수련과 고통 속에서 완성이 되는 숭고한 음악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권유, 집안의 사정 속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소리를 익히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통해 판소리는 동시대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예술로 그려질 뿐이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정통성을 신념화하여 강조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의 예술로 판소리를 바라보는 2000년대의 달라진 대중적 인식을 반영하는 속에서 판소리가 해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5년의 <도리화가>와 최근 상영된 2020년의 <소리꾼>이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판소리가 민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조선후기를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판소리의 역사를 토대로 구성하였는데, <도리화가>의 경우는 실존 인물인 신재효와 진채선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서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소리꾼>의 경우는 광대의 소리가 판소리 사설의 원류가 되었다는 판소리 이론과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 존재했을 법한 소리꾼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두 영화는 판소리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이를 영화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을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결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의 문화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때에, 콘텐츠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역사를 활용한 이야기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고, 판소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역사 또한 활용 가능한 콘텐츠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판소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것도, 낡은 전통도 아닌 동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이자,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 가능한 자리에 온 것이다. 상기 영화들은 현대 판소리가 걸어온 길과 변모하는 위상, 그리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This study was written to examine the acceptance of pansori in movies based on pansori, and to explore changes in modern society's perception and expectations of pansori.
A pansori is getting the love of the upper and lower castes in the late Joseon period, but loses the status at the time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Korean War. In response, the country designated pansori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in 1964 to protect the disappearance of pansori. Until the 1980s, however, pansori did not gain popularity by itself. After the 2000s, Pansori tried to breathe in with the contemporary public due to the socio-cultural demand to globalize our culture. And now Pansori is one of the most popular cultures in the world today, as the pop band Feel the Rhythm of KOREA shows.
The changing public perception of pansori and its status in modern society can also be seen in the mass media called movies. This study explored the process of this change with six films based on pansori, from "Seopyeonje" directed by Lim Kwon-taek in 1993 to the film "The Singer" in 2020.
First, the films "Seopyeonje" and "Hwimori" were produced in the 1990s. Both of these films show the reality of pansori, which has fallen out of public interest due to the crisis of transmission in the early and mid-20th century. And in the midst of that, he captured the scene of a singer struggling fiercely for the artistic completion of Pansori itself.
Next, look at the film "Lineage of the Voice" in 2008 and "DURESORI: The Voice of East" in 2012. These two films depict the growth of children who perform art, featuring contemporary children who play pansori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Pansori in these films is no longer an old piece of music, nor is it a sublime art that is completed in harsh training. It is only naturally treated as one of the contemporary arts.
Finally, "The Sound of a Flower" in 2015 and "The Singer" in 2020. The two films constructed a story from Pansori's history based on the time background of the film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Pansori was loved the most by the people. This reflects the atmosphere of the times when traditions are used as the subject of cultural content, and shows the changed public perception of pansori and the status of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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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현행 낙양춘의 형성과정 재고

저자 : 임현택 ( Yim Hyun-taek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2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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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춘은 고려시대에 유입된 송나라의 사악으로, 보허자와 더불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당악곡이다. 『고려사』 「악지」의 당악조와 『증보문헌비고』에 낙양춘의 제목과 가사가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낙양춘 수록 악보로는 조선시대의 『악장요람』, 『속악원보』 권4 및 권6, 일제강점기의 『아악부악보』, 『제6회 아악생교과철』,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가 있다. 이외에도 현행되고 있는 낙양춘의 선율은 국립국악원 발행의 『한국음악』과 『국악전집』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본고는 이 악보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행하고 있는 낙양춘이 어떤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구조와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그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래 사악이었으나 가사 없이 기악곡으로 전해지던 낙양춘의 노래는 1978년과 1979년 국립국악원 발행의 『한국음악』 제16집 및 『국악전집』 제7집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김기수에 의해 추가된 장구점이 현재 자취를 감추고, 좌고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둘째, 『악장요람』 이후 현재까지 黃, 太, 仲, 林, 南 5음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고 있으나, 각 1회씩 출현하는 無/應과 夾/姑의 음고는 점차 상승되어 『아악생교과철』 혹은 늦어도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에 이르러 應과 姑로 통일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셋째, 현행 낙양춘의 선율은 미전사(a·b·c·d) 및 미후사(e·b′·c′·d′)의 형식 안에서 악구별 출현음 및 음역이 상승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미전사와 미후사의 도입구 격인 a형과 e형 선율을 제외한 나머지 선율형이 해당 악구 내에서 점차 하행하는 구조를 나타냄으로써 전반적으로 상승과 하강의 구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넷째, 『아악부악보』에서부터 등장한 간음은 현재 일곱 가지 유형으로 대별되는데, 2도, 3도, 4도, 5도의 상행 음고로 출현하여 선율진행을 부드럽게 또는 유창하게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다섯째, 『악장요람』 이후 가사 없이 기악곡으로 전해 오던 낙양춘은 1960년 이혜구의 의해 복원된 후 기악반주에 남녀창이 추가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이상 『악장요람』 이후 변화과정을 거쳐 형성된 현행 낙양춘을 검토한 결과, 장구의 편성, 조(調)의 규명, 가사 검토 등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고 있는 낙양춘에 대하여 재고를 요하는 과제들이 발견되었다. 추후 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간다면 낙양춘의 문화적 전승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Nagyangchun is a Dangak that has been handed down to the present time with Boheoja as a Saak of the Song Dynasty which was introduced in the Goryeo Dynasty. The title and lyrics of Nagyangchun are conveyed in the Dangakjo of Goryeosa-akji and the Jeungbomunheonbigo. The remaining scores containing Nagyangchun include Akjangyoram, Sogagwonbo Vol.4 and Vol.6 of the Joseon Dynasty and Aakbu-akbo, the 6th Aaksaeng- gyogwacheol, Leewangjikaakbu-oseonakbo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esides, the current melody of Nagyangchun is based on Hangugeumak and Gugakjeonjib published by the National Gugak Center.
This paper aims to examine how Nagyangchun, which is currently being performed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went through the process of change to have the same structure and form as it is now using these scores as a research subject. The study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song of Nagyangchun, which was originally Saak but transmitted as an instrumental piece without lyrics, first appeared in the Hangugeumak Vol.16 and Gugakjeonjib Vol.7 published by the National Gugak Center in 1978 and 1979. In this process, the Janggu added by Kim Ki-soo is now disappearing and is replaced by Jwago.
Second, though the five notes of 黃, 太, 仲, 林, and 南 have been maintained unchanged since the Akjangyoram, the pitch of 無/應 and 夾/姑, which appear once each, gradually rises and is unified into 應 and 姑 during the period of Aaksaeng-gyogwacheol or at the latest Leewangjikaakbu-oseonakbo, and reached the present.
Third, the current melody of Nagyangchun consists of a structure in which the tones and range of each phrase rises within the form of Mijeonsa (a·b·c·d) and Mihusa (e·b′·c′·d′). Particularly, except for the a-type and e-type melodies, which are the introduction for the Mijeonsa and Mihusa, the remaining melodic types show a gradually descending structure within the corresponding phrase, so the structure of ascending and descending is generally in harmony.
Forth, the Ganeum that appeared from Aakbu-akbo are currently classified into seven types, and they appear in ascending pitches of 2nd, 3rd, 4th, and 5th and play a role in smoothly or fluently connecting melodic progression.
Fifth, after Akjangyoram, Nagyangchun, which had been handed down as an instrumental piece without lyrics, was restored in 1960 by Lee Hye-gu, and is being passed down as the form of male and female vocals added to the instrumental accompaniment.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current Nagyangchun, which was formed through the process of change after Akjangyoram, it was found that there were tasks that required reconsideration of the current Nagyangchun, which is being played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such as the arrangement of Janggu, the identification of the key, and the investigation of the lyrics. When follow-up studies are continued in the future, it will be able to contribute to the cultural transmission of Nagyang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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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마산 내서전통민속문화예술보존회의 전승 활동과 특징

저자 : 최자운 ( Choi Ja-u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1-14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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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 내서전통민속문화예술보존회의 흐름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인 토대 구축기의 핵심은 본 보존회의 전신인 경남 창원군 내서면 호계리 농악대 활동이다. 호계리 농악대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자체 단위 농악대회에 출전하여 수차례 수상한 바 있다. 1990년대에 들어 마을 사람 수가 줄어들면서 농악대 존립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되자, 이곳 농악대원들은 1994년 내서면민으로 회원들을 확대하여 민속문화를 전승하는 보존회를 조직하였다. 두 번째 단계인 내적 성숙기에는 초대 보존회장을 맡은 백종기(1935)를 중심으로 회원들이 <광려산 숯일소리>와 <내서 정자소리>를 복원, 공연하였고, 20여년 간의 활동 끝에, <광려산 숯일소리>가 경남무형문화재 43호로 지정되었다. 세 번째인 외연 확장기의 키워드는 신입회원 확보이다. 농업노동요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보존회에서는 농악, 통속민요, 건강 무용 등의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향토민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관내 초·중학생 대상 전수교육을 담당할 강사를 늘리고, 학생 수준에 맞는 교육 내용을 마련할 계획이다.
내서전통민속문화예술보존회가 수십 년간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회원들의 책임감과 전승 종목에 대한 보완 노력이다. 먼저, 보존회 회원들은 소리를 익힌 경로에 따라 현장에서 소리를 익힌 1세대, 공연을 통해 소리를 배운 2세대로 나눌 수 있는데, 1세대 회원들은 호계리에서 나고 자랐거나, 이 마을로 시집온 사람들이다. 2021년 현재 공연 전면에 나서는 이들은 1세대 회원들이지만, 보존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2세대 회원들이다. 이들은 상황에 따른 선소리 구연, 전수학교 강사 활동, 공연 및 연습 일정 조율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6년과 1997년에 각각 첫선을 보인 <내서 정자소리>와 <광려산 숯일소리>는 지금까지 수차례 명칭과 내용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광려산 숯일소리>의 이전 명칭은 <내서 숯꾼놀이>, <내서 숯꾼 일소리>이다. 전체 내용도 처음에는 산신제 거행, 숯굴 만들기, 나무 해오기, 숯굴에 불 붙이기, 숯을 장에 내다 팔기, 뒷풀이 하기로 구성되었으나, 2001년과 2017년에 명칭 및 순서가 바뀌고 새로운 소리도 삽입되었다. <내서 정자소리>의 경우 <광려산 숯일소리>에 비해 변화의 폭이 크다. 처음에는 거름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내서 초군(草軍)놀이>로 시작했으나, 논농사 전 과정이 중심인 <내서 들일소리>를 거쳐, 2017년 여러 가지 향토민요로 이루어진 <내서 정자소리>가 만들어졌다. 보존회원들은 이미 틀이 갖추어진 프로그램에 안주하지 않고 내부 및 외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이 전승하고 있는 공연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다. 각 종목에 대한 수정과 보완 노력은 보존회가 지속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The Aim of the this paper is to figure out impetus of the Naeseo Traditional Folk art Conservation Association. This Preservation Society derived from Hogaeri farmers' band. Through aging and hollowing out Hogaeri farmers' band got into a period of stagnation. In order to overcome slump villager and people of a township organized a conservation society in 1994. Members restored and directed folk song which from age to age for performance
. < Gwangryu Mountain Sutilsori > are designated as cultural asset in 2017. Sutguldeong song is only song in inland area. This song are worthy of notice in < Gwangryu Mountain Sutilsori >. < Naeseo Jungjasori > which is consist of various agricultural work songs experienced two changes. Rice-planting songs are characteristic.
Especially, Executive playing a central role harden foundation of the Preservation Society. The mainspring of activity is the sense of responsibility. Preservation Society laying emphasis on recruiting new members. Preservation Society is planning to develop curriculum for Jurisdiction elementary and middle school students.
This Preservation Society is made up of First generation members and Second generation members. First generation members who are born and bred in Hogaeri have been good friends both in joy and in sorrow Early days of Preservation Society. So, They has a strong family bond. In order to induce membership Members are practicing Nongak, popular folk songs, dancing program. Second generation members are not conversant with a folk song. Nonetheless They have a strong mind on a member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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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 전쟁에 대한 기억과 연극의 재현 양상 -신명순의 <증인>을 중심으로

저자 : 김태희 ( Kim Tae-hee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7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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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금기시되었던 소재로부터 출발한다. 1950년에 있었던 한강교 폭파 사건과 최창식 대령 총살의 실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당시 집권층은 개전 초의 불리한 전황과 대통령의 거짓 방송이라는 뼈아픈 실책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에게마저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던 사건의 진실은 정권이 바뀌고 난 뒤에야 폭로될 수 있었다. 이후 최창식 대령의 유가족이 재심청구를 통해 망자의 무죄를 확정짓고 난 뒤 <증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증인>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당시의 관계자들은 해당 텍스트로 인해 겪었던 곤란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본 사전 검열을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직전에 취소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국립극장, 문교부의 관계자도 모자라 군 장성들까지 연습실을 찾아와 공연을 중단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반대로 <증인>이 담고 있는 위험성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공식적 역사의 균열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증인>은 이후 1981년 텔레비전 특집극 <불타는 다리>로 각색되어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공개될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일보였으나 애초에 <증인>이 가지고 있었던 불온성은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후 1988년, 민주주의가 보다 유화국면에 접어들고 나서야 <증인>은 온전한 형태로 공연될 수 있었다. 요컨대 <증인>은 기성질서의 입장에서 기록된 한국전쟁의 역사와 이에 균열을 내는 대항 기억이, 시대와 매체의 변화에 따라 변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Shin Myung-soon's < Witness > is based on the taboo 'bombing of the Han River Bridge'. The reality of the bombing of the Han River Bridge in 1950 and the shooting of Colonel Choi Chang-sik was known only as a word of mouth. At that time, the ruling class did not want to reveal the painful mistakes of the unfavorable war situation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and the false broadcasting of the president. The truth of the case, which was kept completely secret even to the bereaved family, could only be revealed after the regime change. After that, the bereaved family of Colonel Choi Chang-sik confirmed the innocence of the deceased through a request for retrial, and then the < Witness > was born.
However, the fate of < Witness > was not so smooth. At the time, the performance officials vividly remember the difficulties they had with the text. Despite passing the pre-screening of the script, the performance was canceled just before the performance. The fact that the National Theater, officials from the Ministry of Culture and Education, and even military generals visited the practice room to stop the performance, on the contrary, was a testimony to the dangers of < Witness >. It can be summarized as a crack in official history and a move to stop it.
< Witness > was later adapted into a special TV drama < Burning Bridge > in 1981 and was first released to the public. This was a very meaningful step in terms of dealing with politically sensitive subjects on television, but the inconsistency of < Witness > in the first place has largely disappeared. After that, in 1988, only after democracy entered the phase of appeasement, < Witness > could be performed in its full form. In short, < Witness > can be said to be an example of a process in which the history of the Korean War recorded from the standpoint of an established order and the counter-memory that crack it up are transformed according to the changes of the times an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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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항미원조'(抗美援朝) 위문단의 실체와 활동 양상 -한국전쟁을 통한 신중국의 문화정치

저자 : 이복실 ( Li Fu-shi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0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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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시기에 중국은 총 세 차례 '항미원조' 위문단을 북한으로 파견했다. 그 목적은 하나는 미제국주의와 싸우고 있는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을 위로함과 동시에 국내의 사정을 전달하여 지원군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신중국의 사회주의건설사업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즉 위문 활동을 통해 직접 보고 들은 다양한 영웅사적과 미제국주의 만행을 중국인민들에게 선전하여 국제주의와 신중국에 대한 애국주의사상을 고취함으로써 전쟁동원과 신중국건설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는 것이었다.
위문단 단원은 정치, 군사, 민족, 사회, 문화, 교육 등 국가 제반 구성 분야의 다양한 계층(노동자, 농민, 지식인, 여성, 학생, 군인 등)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위문과 취재, 각종 좌담회와 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과정은 그야말로 분노와 동정, 희생과 감동, 전투와 낭만, 감격과 위안의 감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한 감정은 귀국한 위문단의 국내 선전 활동을 통해 중국인민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항미원조' 위문단은 조직구성과 구체적인 공연 활동에 이르기까지 신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민주와 평등, 세계평화와 무산계급 연대를 강조한 국제주의 추구, 공산당정권 옹호를 기반으로 한 애국주의 지향 등이 바로 그 정체성이었다. 위문단은 국경을 넘나들며 신중국의 이러한 정체성 인식을 쌍방향으로 효율적 확산을 이루는 데 한몫했다. 이는 일종의 정치·문화적 퍼포먼스로서 '항미원조' 위문단이 갖는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During the Korean War, China dispatched 'the Anti-US and Pro-Joseon Comfort' group to North Korea 3 times. The purpose of the comfort group was to comfort the Chinese People's Supporting Soldiers and Joseon People's Army fighting the US imperial forces and at the same time, inform them of China's situation to booster their morale. Another purpose was to promote the socialism construction projects in the new China. Namely, China wanted to propagate various heroic achievements of the Chinese soldiers and accuse the US imperialist soldiers and thereby, inspire Chinese people's international sense and patriotism for the new China to mobilize the people for the war and promote the construction of the new China effectively.
The comfort group consisted of diverse classes (laborers, farmers, intellectuals, women, students, soldiers, etc.) in various areas such as politics, military, ethnic, society, culture, education, etc. Their activities were conducted in various forms such as consolation, legwork, meeting and performances. Their activities were full of anger and compassion, sacrifice and emotion, battle and romance, impression and comfort. Such emotion was delivered intact to the Chinese people through the comfort group's propaganda activities back home in China.
The Anti-US and Pro-Joseon Comfort' group revealed their identity of socialists New China in terms of their organization and their specific performances. Their identity claimed for democracy and equality, internationalism empathizing world peace and solidarity of the proletariats, and patriotism supporting the communists regime. The comfort group played a role in propagating such identity of new China effectively by crossing the border. It was a political and cultural performance that stipulate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Anti-US and Pro-Joseon Chosun Comfor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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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등 고학년 교과서에 나타난 희곡교육 방법 연구

저자 : 이철우 ( Lee Cheol-woo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3-22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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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초등 고학년 교과서 '연극을 즐겨요'에 나타난 희곡교육 방법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희곡을 제외한 다른 교과과정의 교육방법은 '장르이해 - 작품감상 - 작품창작'의 순서로 제시되었다면, 희곡교육의 방법은 '장르이해 - 작품창작 - 작품감상'의 순서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교육과정은 '연극'이 갖는 교과목과의 연계학습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자칫 '창작'이 주는 '부담감'을 학생들이 안을 수 있고, '구어'에 대한 이해과정을 간략화함으로써 오히려 '우리말'의 특성이나 매력을 학생들이 체감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체계화는 초등 고학년 교과서의 과정을 통해 '연극'을 표현하는 문제에는 부합할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연극'을 통해 구체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이끄는 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 본 연구결과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표현방법을 깨닫게 하는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의 공감을 먼저 공유하고 이 같은 감정에 대해 이해하며, 이를 근거로 감정의 표현방법을 통해 개성적인 표현법을 익히게 함으로써 표현과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훈련과 공유되는 감정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연극'을 통해 정서적인 감정의 공유와 표현, 공연하는 과정을 통한 협동과 분업을 통한 참여 등등 학생들이 학습해야 하는 학습뿐만 아니라 이 교육과정을 통해 '희곡'에 대한 이해와 '우리말'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수업과정으로 발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This thesis examines the play education method shown in the elementary school textbook 'Enjoy Play'. If the educational methods of the curriculum other than plays were presented in the order of 'Understanding play - Appreciation of Works - Creation of Works', the method of drama education is presented sequentially in the order of 'Understanding play - Creation of Works - Appreciation of Works' in the order of 'Understanding play - Artwork - Appreciation' have. Even if such a curriculum considers the study linked to the subject of 'Plays', students may not feel the 'burden' of 'creation', and by simplifying the understanding of 'spoken language', it is rather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language'. It may also make it difficult for students to feel the attraction. In addition, empathy through the conflict situation of the play or comparison with the actual conflict is mainly presented through the translation of foreign works or the expression of a fairy tale and fantastic world that is far from reality, so the burden of inferring the right life problems can be confirmed. Theatrical expressions and plays and plays learned through textbooks are partially different depending on the educational goals to be achieved.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at the course of textbooks for elementary and upper grades may correspond to the problem of expressing 'Plays', but it is regrettable in leading students to think about ways to solve life problems in detail through 'Plays'.
It is also necessary to emphasize the importance of expression that makes students realize how to express themselves autonomously in the way of expressing their feelings, but on the other hand, on the other hand, it is necessary to share empathy with feelings first, understand these feelings, Therefore, it was suggested that training to infer expressions and emotions by learning individual expressions through methods of expressing emotions and a process of educating students to voluntarily accept shared emotions are also necessary. Sharing and expressing emotional emotions through 'play', and participation through cooperation and division of labor through the process of perfor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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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념 뮤지컬과 독립운동의 기억 -<신흥무관학교>, <구>, <워치>를 중심으로

저자 : 정명문 ( Chung Myung-mu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9-26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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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는 기억 주체와 당대의 권력 관계 즉 기억의 정치학이 반영된다. 본고는 2019년에 공연된 기념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구: 도깨비들의 노래>, <워치>를 통해 변화된 지점들을 분석하였다. 위 작품들은 만주 독립운동, 홍코우 공원의거를 배경으로 하되 기록되지 않은 것을 채우면서 독립 운동에서 기념해야 할 것들을 조정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경우, 공식 기록 속 인물을 배경으로 하되 이름 없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기념 대상을 확대하였다. <구 : 도깨비들의 노래>는 타임 슬립을 통해 망각된 대상을 재현하고 사죄하면서 기억을 수정한다. <워치>는 사진, 뉴스 릴, 신문기사 등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팩션의 스펙터클을 강화하였지만, 기록에 한정되는 한계도 드러난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뮤지컬에서는 '민중의 움직임'이 현재와 연결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들이 발견된다. 이를 위해 공식적 기록에 새로 생산된 가치와 기억을 반영하였고, 군중의 일상과 감정에 공을 쏟았다. 또한 실증적 고찰과 호명하기를 동시에 활용하여 신뢰성을 높였다. “100주년 기념”으로 호출된 뮤지컬에서는 독립운동가와 함께 움직인 군중의 일상과 감정 즉 미시문화사적 접근이 담겨 있다. 기념해야 할 목표와 목적의 이동이 나타난 것이다. 이 시도들은 동시대적 공감대 형성이란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On the musical stage in 2019, there were many works depict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is is due to 2019 the timeliness of the March 1st Movement and the centennial of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way of remembering and commemorating historical facts reflects the power relationship between memory subjects and the time, namely the politics of memory. Until now, stage dramas dealing with the era of Japanese rule have focused on the commemoration of modern national and national defense, including feelings of misfortune and respect for patriots. This study analyzed the metaphor of the memorials emphasized to the audience in the commemorative musicals Shingheung Military School, Ku: Songs of the Goblin, and Watch which were performed in 2019, and looked at how to adjust memories and memorials. The above works highlight the narratives of ordinary people as well as those recorded against the backdrop of the Manchurian Independence Movement and Hongkou Park, expanding the object of the commemoration. Through this, active armed resistance efforts, self-reflection and reflection were highlighted. The case of Shingheung Military School revealed the earnestness of ordinary people who led the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the movement of central figures. Ku: Songs of the Goblin revises memories by reproducing forgotten objects and apologizing through time slip. Watch has strengthened the spectacles of facilities through documentary techniques such as photography, news reels, and newspaper articles, but it also reveals limitations limited to records. In the 3.1 Movement an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devices that actively reveal that the "people's movement" is connected to the present. To this end, the official records reflected the newly produced values and memories and devoted themselves to the daily lives and emotions of the crowd. In addition, both empirical consideration and calligraphy were utilized to increase reliability. These attempts are meaningful in that they have achieved the achievement of forming contemporary empa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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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반영된 음식의 기능과 식사(먹는 행위)의 의미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남석 ( Kim Nam-seok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3-29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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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은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 宮崎駿)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인 수작이지만, 작품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미지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기존의 연구는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음식과 식사의 의미를 간과했고 이로 인해 작품의 중요한 특질을 간과하고 있다. 이에 음식의 기능을 중심으로 해당 텍스트를 분석하고, 식사의 의미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연구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에서 음식은 욕망의 직접적인 표현물이다. 과대하게 섭취하려는 식욕은 욕망의 과다한 팽창을 의미하며, 이러한 팽창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까지 보여 주는 징후가 된다. 따라서 음식에 대한 절도를 지켜, 내면의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 일은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 is Hayao Miyazaki's masterpiece and world-class masterpiece, but it is also an unknown text whose essential aspects have not been sufficiently studied. Existing studies overlooked the meaning of food and meal in <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 and thus overlooked an important characteristic of <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 Therefore, research that analyzes the text focusing on the function of food and discusses the meaning of the meal in depth is required. In <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 food is a direct expression of desire. Excessive appetite means excessive expansion of desire, and this expansion becomes a symptom of not only individual problems but also social problems. Therefore, the realization of how to control one's inner desires by protecting the moderation of food suggests the value that this work ultimately aims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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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한국 특촬물 시리즈에 나타난 과학적 인식 - <지구용사 벡터맨>을 중심으로

저자 : 박소영 ( Bak So-you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3-3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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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용사 벡터맨>은 한국 특촬물 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특촬물 시리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계속된 일본 특촬물의 인기와 로봇 애니메이션의 유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입프로그램의 범람과 거듭된 재방송으로 인해 국산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한국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줄어들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부담감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지구용사 벡터맨>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특촬물로 제작되었는데, 이때 특수효과기술을 방송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던 시기적 특성과 맞물려 컴퓨터 시각효과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지구용사 벡터맨>이라는 새로운 국산 특촬물 시리즈의 등장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벡터맨 시리즈는 이제 우주의 과학기술이라는 모호한 단어 대신 DNA 합성, 뇌세포 변이, 특수심리조종장치 등 구체적인 과학적 용어들을 활용해 우주적 존재들의 능력을 설명한다. 비록 그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공상과학이 아닌 구체적 용어들로 정의되는 모습은, 이제 한국사회에 과학적 상상력이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벡터맨과 우주인들의 동등한 관계는 지구의 과학 용어로 설명되는 우주의 과학은 지구로 대변되는 한국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캐릭터들은 과학의 영역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여전히 비과학적 존재로 묘사되며 과학적 인식에 대한 한계를 드러낸다.


The present study examined the scientific awareness appearing in Korean tokusatsu series by focusing on Vectorman: Warriors of the Earth. As a work representing Korean tokusatsu series, Vectorman: Warriors of the Earth achieved the greatest success among tokusatsu series. This work was released thanks to the continued popularity of Japanese tokusatsu since the mid-1980s and the trend of robot animations. Due to the chronic problems regarding Korean children's programs―the oversupply of imported programs and repeated reruns―the need for domestically produced children's programs has continued to come to the fore. However, as the popularity of Korean animation waned beginning in the mid-1990s, inevitably the burden fr producing animation increased. As a result, Vectorman: Warriors of the Earth was produced as a tokusatsu rather than an animation, and because this was a time when an environment for using special effects technology was being fostered in broadcasting stations, computer visual effects were actively used for the series. The response to the new domestically produced tokusatsu series Vectorman: Warriors of the Earth was explosive. The Vectorman series explained the abilities of cosmic beings by using specific scientific terms such as DNA synthesis, brain cell transformation, and special psychological control device instead of ambiguous words like the scientific technology of space. Although the series is unable to describe in detail about the process and cause, the way it defines technology using concrete terms rather than science fiction shows how scientific imagination is manifesting in specific forms in Korean society. Furthermore, the equal relationship between Vectorman and the aliens shows how the science of space, explained with the scientific terms of earth, is an expression of confidence regarding the advancement of Korean scientific technology which represents earth. However, the female characters fail to gain entry into the domain of science and are portrayed as unscientific beings, revealing limitations in terms of scientific awar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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