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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Mun Hak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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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46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644
한문학보
46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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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전선영 ( Jeon Sun-young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4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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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法華靈驗傳』의 편찬자 了圓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하였다. 『법화영험전』은 다양한 연구의 지점들을 안고 있는 문제적 작품으로, 역사학, 불교학, 국문학 등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여러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인 만큼 『법화영험전』에 대한 연구의 편수는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이에 반해 찬자 요원에 대한 연구는 몇 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러 왔다. 필자는 『법화영험전』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서는 찬자인 요원에 대한 정리가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으며, 흩어진 정보들을 취합하여 수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요원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는 두 가지로, 목은 이색의 『목은시집』에 등장하는 '懶殘子'와 '熙菴'이 각각 요원과 동일인이라는 설이다. 이들은 역사학과 국문학 분야의 주장이며, 본고에서는 이 논의의 구체적인 증거를 살피는데 주력했다. 먼저, 초창기 연구의 흐름을 되짚어 보고, 요원이 어떤 과정을 통해 천태의 원공으로 인정받았는지를 살폈다. 다음으로 목은 이색과의 교류시에서 원공과 나잔자가 동일임을 나타내는 지점들을 찾았다. 이를 통해 요원이 나잔자임을 확인하고, 이후 나잔자와 희암의 공통점을 살펴 요원이 곧 나잔자이자 희암인 것을 밝혀냈다. 요원을 가리키는 다양한 호칭에 대해서, '나잔자'는 목은과 요원의 소년시절의 일화에서 비롯한 別號임을 밝히고, '熙菴'은 法號로, '福利君'은 君號로 사용하였음을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요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수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요원에 대한 더욱 다양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다.


This article started as an attempt to bring together various existing research achievements on the editor of 『Beophwa Yeongheomjeon(法華靈驗傳)』. 'The Story of Beophwa Spirituality' is a work that has several problematic points, and research has been conducted in history, Buddhism, and Korean literature. As it is a work that attracts the attention of various academic circles, research on The Legend of Beophwa Spiritual Healing is on the rise, but rather, research on Yowon(了圓), the Editor, has remained stagnant for several years. For a more in-depth study of 『Beophwa Yeongheomjeon』, the author judged that the arrangement of Yowon, the progenitor, was the priority, and thought that scattered information should be collected and converged into one. There are two recent research results on Yowon, and the theory is that “Nazanja(懶殘子)” and “Heeam(熙菴)” appearing in “The Book of Mokeun Poems(牧隱詩藁),” which have a Mokeun(牧隱), are the same person as the agent. They each claim in the fields of history and Korean literature, and this paper has focused on examining concrete evidence for this discussion. First, we looked back at the flow of early research and looked into how Yowon was recognized as the Wongong of Cheontae(天台圓公). Next, we found points indicating that Wongong(圓公) and Nazanja(懶殘子) are the same person in the interaction with Mokeun(牧隱).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Yowon" and "Nazanja" were the same person, and afterwards, "Najanja" and "Heeam(熙菴)" were examined in common. Regarding the various titles of Yowon, it is revealed that 'Nazanja' is a special name that originated from the anecdotes of the boyhood of Mokeun and Yowon, and Heeam(熙菴) is Beopho(法號). It was revealed that the word'Bokrigun(福利君)was used as Gunho(君號). Various information about the agent was collected through this process, and it is expected that more diverse discussions about the agent will be developed based on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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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대중 ( Kim Dae-joong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3-93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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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후기 지성사의 대표적인 담론인 북학론이 과연 얼마나 조선 후기 이전과의 변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검증하고자 하는 문제의식 하에 조선 중기 담론에 주목한다. 일단 본고는 북학론의 주요 각론 중 하나인 벽돌 사용론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우선 본 논문은 조선 중기의 벽돌 사용 담론을 살펴보기에 앞서 조선 전기의 벽돌 사용 담론을 살펴본다. 이런 토대 위에 본 논문은 조선 중기 柳成龍(1542~1607), 李恒福(1556~1618), 朴乃成(?~?), 李廷龜(1564~1635) 등의 벽돌 사용 담론을 분석한다. 조선 중기의 벽돌 사용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첫째, 단지 중국의 선진 문물을 도입하자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둘째, 실제 조선 사회의 현실적 맥락에서 벽돌 생산 및 사용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했다. 셋째, 국가의 존망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수반했다. 넷째, 중국의 문헌과 사례를 참조하면서도 조선 내 실제 벽돌 생산 및 사용 경험을 토대로 했다. 다섯째, 벽돌 생산에 동원된 인민의 목소리를 일부 반영했다. 이렇게 조선 중기의 벽돌 사용 담론을 살펴본 뒤에 본고는 조선 전기·중기의 벽돌 사용 담론을 '시좌'로 삼아 조선후기 북학론의 벽돌 사용론을 비평적으로 조망하여 그 장단점을 냉정하게 따진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discourse on the use of bricks in the middle period Joseon under the question of how different the theory of Bukhak, a representative discourse of intellectual history of late Joseon, can be from discourse of the early and middle period Joseon. Since various topics are covered in Bukhak theory, this paper first focuses on the discourse on the use of bricks, which is one of its main theories.
Before examining the discourse on the use of bricks in the middle period Joseon, I examine the discourse on the use of brick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On this basis, this paper analyzes the discourse on the use of bricks by Ryu Seong-ryong(柳成龍, 1542-1607), Lee Hang-bok(李恒福, 1556-1618), Park Nae-seong(朴乃成, ?~?), and Lee Jeong-gui(李廷龜, 1564-1635). These discourses in the mid-Joseon Period were not limited to the introduction of advanced Chinese culture. They contemplated the production and use of bricks in the realistic context of actual Joseon society. And their discussion of brick use was based on a sense of urgency about the nation's survival. Their discussion was based on the actual experience of brick production and use in Joseon while referring to Chinese documents and examples, and partially reflected the voices of the people mobilized for brick production.
It embodied the concern of brick production and use in the real context of Joseon society. It was based on Chinese literature and examples. After examining the discourse on brick use in the mid-Joseon Dynasty, the pros and cons of Bukhak the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re coldly examined by comparing the discourse on brick use in the early and mid-Joseon Period with the theory of Bu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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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출헌 ( Chung Chul-heo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3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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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대상으로 삼은 諸沫(1552~1593)은 경상도 固城 출신의 평민 의병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적을 세워 파격적으로 정3품의 星州牧使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불과 넉 달 만에 파직되고 만다. 전공이 부풀려졌다는 경상감사 金誠一의 장계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어, 그의 존재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영조 13년 귀신의 형상으로 성주에 사는 유생 鄭錫儒(1689~1756) 앞에 나타남으로써 화려하게 부활한다. 임진왜란 당시의 공적이 郭再祐와 견줄 정도로 대단했고, 명성은 그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잊혀져버리고 만 것에 대한 원통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정석유는 자신의 그 놀라운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 <記異>라는 제목을 달았다. 평민의병 제말의 일화는 그러한 정석유의 구연과 기록을 계기로 하여 『학산한언』『청구야담』과 같은 야담집은 물론 詩話·雜錄·傳記 등 다양한 갈래로 확산·전재되어 갔다.
본고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구전되던 제말의 일화가 賑恤御史 南九萬에 의해 현종대에 雜錄으로 처음 정착하게 된 계기, 그러다가 星州士族 鄭錫儒에 의해 영조대에 幽明의 敍事로 완전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 계기를 정치-사회학적 맥락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자 했다. 이런 작업은 평민의병 제말의 서사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 관심의 차원을 넘어서서 야담집에 실려 전하는 각각의 작품들은 그것이 구연-기록될 때마다 저마다의 특별한 계기-목적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보기 위한 하나의 試論이기도 하다. 실제로 야담 작품 하나하나에는 '시간의 積層'과 '시대의 共感'이 함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야담의 口演과 記錄은 그 둘이 共鳴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문학적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Jemal(1552-1593) was a commoner's righteous army from Gyeongsang Provinc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he made a great achievement and rose to the rank of a monk. However, he was dismissed in just four months. And soon afterwards he died, and his existence vanished from everyone's memory. However, in the 13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he became a ghost and appeared in front of Jeong Seok-yu(1689-1756), a Confucian scholar of Seongju. Although his achievements during the Imjin War were greater than that of Kwak Jae-woo, it was to appeal to him for being forgotten. Jeong made a record of his amazing experiences. In this paper, we examined in the political-social context the story of the end of the ritual, which had been handed down since the Imjin War, was first recorded by Nam Gu-man during King Hyeonjong, and then reborn as a ghost story during King Yeongjo. This work goes beyond showing how the story of Jemal changes with the times. When it is talked about and recorded, it shows that it contains each special trigger and purpose. This is because each work implies the accumulation of time and the empathy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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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장연수 ( Jang Yeon-soo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1-16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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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松亭 河受一(1553~1612)의 저작 『松亭歲課』를 통해 사유의 정립 과정 및 문학 창작 양상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송정은 남명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아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초기부터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다. 근래에는 문집의 原稿本인 『송정세과』를 통해 윤문과 산삭을 거치기 이전의 초고와 원작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작품보 및 행력과 교유관계가 입체적으로 정리되었다. 다만 試探에 머물렀던 선행연구를 보충하고 심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사유와 문학 방면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지점을 선별하였다.
고찰 결과 먼저 불교에 대해 유연한 사상성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佛經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거나 불교적 성취를 은근히 드러내는 등 불교를 인정·이해하며 유·불을 대등하게 바라보았다. 곧 근저의 사유를 유가에 두면서도 철저한 排佛의식을 드러내지 않음이 밝혀졌다. 다음으로 상주 병거기에 문학 창작의 양상이 미묘하게 변화함을 확인하였다. 보편적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인간적이면서 솔직한 심상을 담아내었는데, 특히 이 시기의 작품은 정치적 행력과 긴밀하게 조응하여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이 문학으로 표출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paper focuses on Songjeong Ha Soo-il(1553~1612) and analyzes how he developed his thoughts and created his literary works through his writing, Songjeongsegwa. As he was spotted as the most orthodox follower of Nammyong, researches on Songjeong did not seized since the beginning of studies on Nammyong School(南冥學派). Recent researches are conducted on Songjeongsegwa which is the draft of his literary collection, therefore containing original version or draft version before correction and revision. His biography, boundary of friendship, and list of literary works were organized through precedent researches. However the depth and clearness mostly remain in early stage, so this paper will enhance and intensify those areas and point out which is critical for understanding his thoughts and literature.
Through analyzation, it was first found that the philosophy of Ha Soo-il was quite flexible toward Buddhism. He sometimes addressed Buddhist Bible straight, sometimes expressed his Buddhist achievement quietly, thus approving Buddhism and treating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same level. Songjeong put Confucianism in the place of his fundamental philosophy, but did not have strict Anti-Buddhism. Next, it was found that in the days of Sangju convalescence Ha Soo-il's literary writing style have changed. He delivered frank and personal feelings out of popular or standard structure. Especially literary works of this period correspond with his political courses, thus expressing his conflict and agony on irrational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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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길환 ( Lee Gil-hwan ) , 김영건 ( Kim Young-geo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5-225 (6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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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雲英傳」 한문필사본 이본의 존재 양상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조선후기 문인지식층의 傳奇小說 수용 및 재확산 양상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운영전」의 한문필사본은 36종으로 알려져 왔던 사실과 달리 약 80여 종의 이본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약 60여 년이 넘도록 「운영전」은 다양한 해석과 논의들이 도출되었으나 이러한 작품이 당대의 문인지식층에게 어떻게 향유되었는지에 대한 실제적 면모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①合寫·選集을 통한 유행 양상, ②비점의 경향성, ③감상과 이해를 남긴 단문, ④낙서 및 결말 변이 등의 흔적들을 토대로 확산과 수용이 어떤 층위에서 이루어졌는지 검토하고자 했다. 이는 주목받지 못한 異本들의 개성적인 면모를 확인함과 동시에 '하나의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영속성을 증명해 나가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있다.


This paper explores numerous editions of Story of Unyŏng (雲英傳, Unyŏngchŏn) in Literary Sinitic, and sheds light on how this novel of the extraordinary (傳奇小說, Chuanqi Xiaoshuo) was accepted and re-disseminated in the late Chosŏn Korea within the context of Literal Intellectual Class. Unlike existing finding that there are 36 types of Story of Unyŏng, it is thought that roughly 80 manuscripts exist. Although this literary work has been examined from diverse perspectives in the past 60 years, the way it was enjoyed among Chosŏn literati, or more specifically, how this novel was introduced and distributed, has not been fully elucidated. Therefore, this paper tries to address these issues, paying particular attention to commentary points 批點, short memos related to appreciation, and scribbles by unknown readers, which would help identify both how a certain body of text comes to have perpetuality and what characteristics multiple different versions not having been noticed so far 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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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영미 ( Shin Young-mi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7-278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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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17세기 관료 문인인 南龍翼(1628~1692)의 挽詩 159題 236首를 개괄하고, 귀납적 방식을 통해 그 특징을 기술하는 데 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사용된 분석 방법은 만시 뿐만 아니라 다른 애도문을 살피는 틀로도 일정 부분 활용할 수 있음을 제기한다. 남용익 만시의 형상화 방식은 자신과 亡者의 親疏에 따라 悲歎과 稱揚으로 大別되었다.
그간 만시 연구의 주류는 應副文字의 성격을 경계하여 서정성이 짙은 작품을 다루는 데 있었다. 때문에, 상대의 가문을 언급하고 상대의 생전 모습을 칭찬한 시들은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상투성과 관습성을 구분하지 않았기에 생긴 결과로 보인다. 관습성이 짙으면서도 뛰어난 작품을 살피는 일은 문학 작품의 특수성을 논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남용익은 17세기 문형으로서의 상징성과 뛰어난 시인이라는 명성까지 소유한 인물이다. 더욱이 같은 시기 동료 사대부들보다 상당히 많은 분량의 만시를 남겼기에, 이번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시를 통해 17세기 詩史의 국면을 매우 약소하게나마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paper is to research the Man-Si(挽詩) written by Nam Yong-Ik(南龍翼, 1628~1692), an official literary and poet representing the 17th century. The research method is inductive, and through this, the characteristics of his Man-Si were described. The analysis method used in this process can be used not only in Man-Si but also in a framework for examining other mourning texts. The formulation method of the Man-Si was divided into a method of expressing sadness and a method of enumerating praise according to the intimacy between the writer and the dead.
Until now, the mainstream of Mansi research has been to deal with works with strong lyricism, neglecting Mansi, which was written by demand. Therefore, poems that mentioned the other person's family and praised the other person's appearance during his or her life were not treated with weight, even if they were excellent in literature. This seems to be the result of not distinguishing between cliché and conventionality. It is as important as discussing the specificity of literary works to examine works that are both highly customary and outstanding. Nam Yong-Ik is a person who possesses symbolism as a Daejehak(大提學) in the 17th century and a reputation as an outstanding poet. Moreover, he left a considerable amount of Mansi compared to his colleagues. This is why he is the subject of this debate. Through his poems, I expect to be able to read the phase of 17th century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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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은영 ( Lee Eun-young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9-31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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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21년 2월 28일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16,410명 가운데 한문으로 문집을 남긴 현황의 실태를 고찰한 것이다. 그들의 문집을 고찰한 결과 총 233종의 문집이 확인되었다. 이는 전체 독립유공자의 1.41%에 불과한 것으로, 독립유공자들이 남긴 문집이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보다 완벽한 자료 검증이 어려웠던 이유는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하고 있는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공적 조서의 자료에 오류가 많이 발견되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되는 저자 등에 대한 정보 또한 오류가 제법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에서 제공되는 자료를 전체적으로 재정리를 하고, 문중에 필사본으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까지 모두 발굴한다면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문집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확보될 것임에 틀림없다.
독립운동가들의 남겨진 문집의 수는 권역별로 차이가 있다. 경상북도가 86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경상남도 31종, 전라남도 25종, 충청북도 21종, 전라북도 20종, 충청남도 19종, 경기도 11종, 강원도 9종, 평안북도와 황해도가 각각 3종, 서울이 2종, 함경남도와 함경북도가 각각 1종, 그리고 미상이 1종 순이다. 이는 본적을 기준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분류했을 때 경상북도 2,279명, 충청남도 1,455, 경기도 1,422, 경상남도 1,333, 전라남도 1,266, 평안북도 1,257, 전라북도 1,073, 평안남도 912명, 함경남도 773명, 황해도 699명, 강원도 656명, 충청북도 531명, 함경북도 437명, 서울 435명, 제주도 188명, 그밖에 세부적인 본적지는 확인되지 않고 출신지 道만 확인되는 황해도 32명, 평안도 13명, 경상도 5명, 충청도 4명, 함경도 2명을 다 합친다고 해도 본적지 인원수와 문집의 수가 비례하는 것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본 논문을 바탕으로 그동안 독립유공자들의 활약상에만 집중되던 연구가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문집을 통해 그들의 정신의 근간 및 문학적 역량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문집 현황의 실태를 고찰한 결과를 표로 제시해 연구자들에게 소개한 본 논문은 의미가 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current state of anthologies in Chinese characters among 16,410 persons of merit for independence as of February 28, 2021. As a result of examining their collections, a total of 233 types of collections were identified. This is only 1.41% of the total independence fighters, which means that the collections of writings left by the independence fighters are of that much scarce value. However, the reason that a more complete data verification was difficult is because there are a lot of errors in the data of the public records of people of independence merit provided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and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Therefore, if the materials provided by the national institutions are rearranged as a whole and all the materials kept as manuscripts in the family are excavated, there is no doubt that the collections of literature left by the independence activists will be much more secured than now.
The number of literature collections left by independence activists varies from region to region. Gyeongsangbuk-do has the most with 86 species, followed by Gyeongsangnam-do with 31 species, Jeollanam-do with 25 species, Chungcheongbuk-do with 21 species, Jeollabuk-do with 20 species, Chungcheongnam-do with 19 species, Gyeonggi-do with 11 species, Gangwon-do with 9 species, North Pyongan Province and Hwanghae-do with 3 species each, Seoul with 2 species and South and North Hamgyong Province each have one collection, and unknown is 1 collection. According to the classification of independence activists based on their birth records, Gyeongsangbuk -do 2,279, Chungcheongnam-do 1,455, Gyeonggi-do 1,422, Gyeongsangnam-do 1,333, Jeollanam-do 1,266, North Pyongan Province 1,257, Jeollabuk-do 1,073, South Pyongan Province 912, Hamgyeongnam-do 773, Hwanghae-do 699, Gangwon-do 656, North Chungcheong Province 531 people, North Hamgyeong Province 437 people, Seoul 435 people and Jeju Island 188 persons were.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at the number of persons and the number of collections were not proportional even if the unconfirmed but considered domicile 32 people from Hwanghae-do, 13 people from Pyeongan-do, 5 people from Gyeongsang-do, 4 people from Chungcheong-do, and 2 people from Hamgyeong-do are added.
Based on this thesis, it is expected that the research, which has been focused only on the activities of independence fighters, will be able to expand to the basis of their spirit and literary competence through the collections of articles left by independence activists. In this regard, this paper, which is presented to researchers by presenting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current state of the literature of independence activists as a table, is meaning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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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朴露子 ( Vladimir Tikhonov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3-34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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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초기 한국에서 서양적 근대성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다고 인정받는 비평가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던 변영만(1889~1954)을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그는 전통적인 한문과 서양 학문에 모두 능숙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남한 학계에서 거의 외면받았는데, 이는 변영만이 스스로 당대 정치 문화 중심부의 바깥에 위치하였고 결과적으로 중심부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었다. 변영만은 우파 “문화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괴짜 취급을 받으며 “장난으로 글쓰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그는 부를 재분배하자는 평등주의적 방식에 대해 명백한 지지를 보냈음에도, 좌파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로부터도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렇지만, 그는 니체의 사상과 고대 유학 전통의 “도덕적 개인주의”와 연결된 태도, 그리고 일종의 “정신적 개인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입장에서 근대적 삶을 비판하는 일관된 논리를 발전시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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