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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도민속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민속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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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975-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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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44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63
남도민속연구
44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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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숙희 ( Kim Suk-hee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5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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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발 금성당에서 모셔지는 금성당제는 유교식과 무속식의 의례가 결합된 모습으로 제관이 중심이 되는 유교식 제례와 무당이 주관하는 무속의례가 차례대로 진행된다. 본고는 2019년 추계 금성당제 충의제에서 올려진 제물을 대한 현황을 중심으로 제당맞이상, 조상말 명상, 대상, 천궁맞이상, 뒷전상 등 각 상차림에 따른 목록과 제물의 구성요소를 분석한 글로 금성당제 제물의 특징을 통하여 제물 목록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금성당제에서의 상차림은 크게 3개의 굿상이 고정되어 차려진다. 중심에는 대상이 있고, 대상의 왼쪽에 차려진 천궁맞이상, 대상의 오른쪽에 차려진 조상말명상이 그것이다. 가변적인 상차림으로는 제당맞이상과 대안주상이 있다. 여러 당의 신을 맞이하는 제당맞이 제차에서는 제당맞이상이 차려져 있으며 제당맞이 제차가 끝난 후에 제당맞이상에 있던 희생은 대상의 앞쪽으로 옮겨진다. 대상 아랫단에 놓였던 육물의 제물과 함께 대안주상으로 가변적인상이 되어 차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제당맞이상의 제물이 대상으로 옮겨져 대안주상의 상차림이 되는 무속의례의 상차림은 진설되는 다양한 제물도 기본적인 형식은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변하며 굿도 시대적인 변화와 현장적인 상황에 맞게 재창조되면서 전승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제물은 어느 시대나 상존하지만 시대적 흐름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또한, 금성당제 굿상차림은 궁중의례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금성당 가까이에 있는 이말산은 궁중에서 일을 했던 궁인들과 내시들의 묘지로 그들의 생활상이 반영된 궁중의례적인 요소가 혼재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금성당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사굿이나 천신굿을 많이 했으며 인근 이말산에 묻힌 궁인들의 천도굿을 주로 하였다. 해당 일에 차려진 제물은 굿을 주재한 이영희 만신이 직접 준비하고 주문한 것들로 무속인으로서 오랫동안 경험과 연륜이 내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This study summarizes the detailed list focusing on the current status of the offerings raised in the 2019 Autumn Cathedral System.,In addition, the list and the components of the sacrifices were analyzed according to each phase, such as the ideal of the temple, the ancestor meditation, the object, the heavenly palace, and the rea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stablish the basis of the list of offerings through the characteristics of offerings of the Venus Cathedral.
The Geumseongdangje is a combination of Confucianism and shamanism, and Confucian rituals centered on the rituals and shamanism rituals organized by shamans were held in turn.,The statues in the Geumseongdang Festival were set up with three statues fixed with the statue of the statue of the statue of the statue, the statue of the statue of the temple on the left side of the object, and the ancestor meditation on the right side of the object. After the end of the Jedang-gut, the sacrifice in the Jedang-gut was moved to the front of the object and became an alternative subject with the sacrifice of the meat placed at the bottom of the object.
Just as the gut is re-created and handed down according to the field situation, various sacrifices that are put into the ceremony of shamanism are changing according to the times while maintaining the basic form.,The sacrifice is present in any age, but it changes with a deep connection with the flow of the times. In Geumseongdang, there were many sloping guts and cheonsinguts, and the cheondogut of the courts buried in nearby Imalsan.,The sacrifices made in this work are prepared and ordered by Lee Young-hee, who presided over the gut, and it can be understood that experience and age have long been inherent as sha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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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준 ( Kim Joon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73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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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어업유산은 2002년 FAO가 2002년 글로벌 환경자금(Global Environment Fund) 지원을 받아 진행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e Heritage System) 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국가 또는 지역사회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토지이용, 전통 농업기술, 농업과 함께 형성된 문화, 경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후세대에게 계승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에 도입하여 '국가중요어업유산'과 '국가중요농업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어촌과 어업은 '식량공급, 고유한 경관, 어업생태계 기능 보전, 전통어업과 문화'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이를 계승하고 보전하여 어촌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전통적 어업활동 시스템과 그 결과로 나타난 해양경관, 어업문화 등 모든 산물'이라 정의한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2015년 제1호 제주해녀어업을 시작으로 2021년 흑산홍어잡이어업까지 모두 11개가 지정되었다. 그 유산지역을 보면, 전라남도가 5개 유산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경상남도 3개, 경북·전북·제주가 각각 1개가 지정되었다. 이들 유산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마을어업이나 조간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어업이며,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어업활동이다. 또 규모로는 소규모 어업이며, 어구도 오랜 경험 속에 전승되어온 것들로 주민들이 직접 제작하는 것이다. 이들 유산지역은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많다. 최근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수온상승, 서식지 훼손, 수산자원 감소, 해양오염, 어업전승자 부재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수심이 낮은 조간대는 수온변화가 심하고 연안오염의 피해가 큰 바다다. 또 국가어업유산을 식량생산과 주민생계수단, 생태계보전, 전통지식체계 보전, 공동체 문화 형성, 현저한 경관 등 본래의 가치보다 관광활성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해 보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중요어업유산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제주해녀어업, 보성뻘배어업, 남해죽방렴어업, 신안갯벌천일염업 등 일부 유산에서 진행될 뿐이다. 그 내용도 단순한 체험에 그쳐 해당 어업활동 시스템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의 활용은 유산의 가치에 기반해서 진행되어야 하며, 행정중심이 아니라 어촌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귀어귀촌정책, 어촌뉴딜정책 등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연계한 후속정책이 필요하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전통적인 어업 활동 시스템이 지속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해양경관이나 어촌문화가 관광자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수산물직불금도 우선 적용해야 하며, 유통방식도 일반 수산물과 달라야 한다. 이를 위해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해주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즉 소비자가 공동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또 국가중요어업유산을 선정하고 지원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중요어업유산의 어업자원 범위도 음식, 노동요, 도구제작, 어촌공동체, 어촌문화 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was introduced as part of the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e Heritage System (GIAHS) project, which was launched by FAO with support from the Global Environment Fund in 2002. This project aims “to pass on to future generations a globally important region rich in culture, landscape, and biodiversity formed along with land use, traditional agricultural technology, and agriculture that has been formed for a long time while adapting to the environment in a certain country or community.”
It was introduced in Korea in 2012 and promoted under the banners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and “National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Fishing villages and fisheries are valued for “supply of food, unique landscapes, preservation of fishery ecosystem functions, and traditional fishery and culture.”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was established with the purpose of contributing to the revitalization of fishing villages by inheriting and preserving them.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can be defined as “all products, such as the traditional fishery system and the resulting marine landscape and fishery culture.” Overall, 11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s have been designated, starting with the Jejuhaenyeo fishery in 2015 and the Heuksan skate fishery as recent as 2021. If you look at the heritage areas, Jeollanam-do has the most with five heritage sites, followed by Gyeongsangnam-do (three sites), Gyeongbuk, Jeonbuk, and Jeju with one each. A characteristic of these heritage sites is that most of them are village or traditional fisheries in the intertidal zones, and all residents of the fishing village are active participants. In addition, in terms of scale, it is a small-scale rather than a large-scale fishery, and fishery gear include simple tools that have been handed down through generations and developed by the residents themselves. Many heritage sites have been designated as wetlands protection areas, Ramsar wetlands, and World Natural Heritage sites. Recently,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was under threat due to rising water temperature, habitat loss, reduction of marine resources, marine pollution, and the absence of fishermen. In particular, the intertidal zone with low water depth is an ocean with severe temperature change and damage from coastal pollution. Furthermore, there is a strong intention to utilize the national fishery heritage as a means of revitalizing tourism rather than its intrinsic values such as food production, means of livelihood for residents, ecosystem conservation,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preservation, community culture formation, and exceptional scenery, which threatens conservation. However, programs utilizing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have only been partially conducted in Jeju Haenyeo Fishery, Boseong Tidal Flats Fishery, Namhae Juk-bang-ryeom Fishery, and Sinan Tidal Flat Sea Salt Industry. The content is only a simple experience and does not help support the fishery system. Utilization of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should be based on the value of the heritage, and the fishing village community should not remain just an administrative center. In addition, follow-up policies are needed in connection with the guidelines promoted by the government, such as the Urban-Rural Migration/Return to Fishing and the fishing village new deal policies.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is a living heritage. The traditional fishery activity system should be sustained, and the marine landscape and fishing village culture derived from this process should be converted into tourism resources. The policies implemented for areas with unfavorable conditions for fishery products or the distribution method of fishery products produced in heritage areas must be different from those of general marine products. We need consumers who recognize its value. Specifically, consumers must be co-producers. A legal and institutional basis for selecting and supporting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should be prepared. The scope of fishery resources of the National Important Fishery Heritage should be expanded to areas such as food, work, songs, tool making, fishing village communities, and fishing villag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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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혜정 ( Kim Hey-jung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5-10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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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초등학교 음악교육에서 농악교육 현황을 정리하고 농악의 갈래적 정체성을 따져 농악 교육의 개선 방향을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현재 초등 음악교과의 3-6학년 과정에서는 삼채와 별달거리 등 풍물놀이와 사물놀이 등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용어에 있어서는 신조어인 풍물놀이보다는 공식용어인 '농악'을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기능의 다양성을 토대로 소통과 인성교육을, 지역별 다양성을 토대로 존중의 가치와 시민성 교육을, 그리고 농악의 종합예술성을 활용한 영역 및 교과 융합 교육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국에 전승되는 다양한 농악의 3소박 4박형 가락(삼채형)의 변주 유형을 기반으로 음악적 다양성을 활용한 창의성 신장 교육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구체적 안을 제안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organize the current status of Nongak education in elementary school music education and to organize the direction of improvement in Nongak education by considering the identity of Nongak. Currently, in the 3rd to 6th grade courses of elementary music subjects, Pungmulnori and Samulnori such as Samchae and Byeoldalgeori are taught. Although there are various teaching and learning activities, there are still things to be improved. The following is a summary of what needs to be improved.
In terms of terminology, 'nongak' should be used. It is necessary to attempt communication and character education based on the diversity of functions, and education on the value of respect and citizenship based on regional diversity. In addition, a specific proposal was proposed, considering that education on convergence of areas and subjects using the comprehensive artistry of Nongak and education on enhancing creativity using the musical diversity of Non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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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변화영 ( Byun Hwa-yeong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1-1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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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벌교 장암리 하장마을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갯벌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주도의 널배 어업과 꼬막을 통한 일상과 비일상의 활동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았다. 이로써 꼬막 어로 현장에서 이용되는 널배는 갯벌을 이동하는 어로 도구이자 주검을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임이 밝혀졌다. 또한 밥상에 자주 오르는 꼬막은 일상음식이지만 명절이나 상례에서는 제사음식으로 전환되어, 오랫동안 벌교 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작동되어 왔음이 장동범의 조모 제사상을 통해 확인되었다. 즉, 널배와 꼬막은 삶과 죽음의 매개체이자 벌교 갯벌의 상례 문화를 알 수 있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었다.
장암리 하장마을 여성들의 일상과 비일상에 주목한 결과, 이들의 활동을 담은 구술생애사는 하장마을 여성들이야말로 갯벌 문화의 성격을 형성한 주체임을 살펴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집과 갯벌, 시장을 오가며 일상을 성실하게 살았던 여성들의 활동에 관한 구술은 벌교의 지역적 정체성은 물론 여성 경제를 미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개인 기억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적 담론에서 누락되고 집단 기억에서 삭제된 하장마을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는 텅 빈 역사를 메울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analyses the daily and non-daily activities of women through their Neolbae(board-boat) and cockle fisheries at Hajang village, Jangam-ri. It focuses upon oral life history of women, who had been worked in the tideland of Hajang village. By this work, it is find out that Neolbae used not only as a means of transporting for cockle fishing but only for taking the dead body who died at the tideland. That is, Neolbae is a tool for cockle fishing as well as an equipment for carring corpse. And it also finds out that cockles are cooked not only as a normal daily food but also as a ritual food of ancestral rites for holiday and funeral rites. For example, on ancestral rite for Mr. Jang Dong-Beom's deceased grandmother in Hajang village, cockles were treated as a very important special food, which were located on the center of ritual table. Therefore, Neolbae and cockle are intermediary things connecting the life and death, and a medium material for understanding the funeral rites or culture, in Beolgyo area.
The results of this study disclosed that the oral life history of those women form the basis of tideland fishing culture, and they are 'actual' land lady of tideland of Hajang village. Their oral life history contains their daily life and exhausting works at boundaries of the life and death, between home and tideland, village and marketplace. Those oral life history takes a storage of the locality of Beolgyo area as well as a micro history of female economy on this region. In this sense, the oral life history of those women which neglected in the formal discourse and public memories, is very important material for filling history of the excluded local women or minorities within the public and male dominated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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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주영 ( An Ju-young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78 (5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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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서울 어린이들의 연중놀이와 계절놀이의 장소성에 대해 고찰하는 것으로, 근대 도시에 거주한 어린이공동체의 놀이문화를 놀이를 행하는 장소성의 맥락에서 분석한 도시민속지적 연구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해방 후 서울의 도심 및 한강변 지역에서 거주했던 남자 어린이들이 초등학생 시기까지 다양한 놀이 장소에서 했던 놀이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현지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해방 후 서울의 각 지역에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어린이놀이의 경험이 축적된 놀이 장소들이 산재해 있었다. 서울의 어린이들은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골목길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들, 한강 등지로 나가며 놀이 장소를 확대시켜 나갔다. 서울 골목길에서 어린이들은 장소성을 활용하여 기존의 놀이를 그대로 전승하거나 일부 변용시켜서 골목놀이를 하였고, 골목길에서 확장된 주변지역에서는 기존의 놀이를 변용시키거나 새롭게 창조된 놀이를 하였다. 또한 '한강'은 어린이들이 계절놀이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넓은 장소였으며, 한강 주변에서 거주한 어린이들은 주로 여름과 겨울에 계절놀이를 하며 놀았다. 동네의 골목길, 공터, 한강 등 다양한 '열린 공간'에서 어린이들은 놀이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다양한 놀이 장소들을 스스로 만들어갔으며, 이로써 도시의 다양한 '열린 공간'은 '어린이공동체의 놀이 장소'로 전환될 수 있었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lace of year-round play and seasonal play of children in Seoul from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in 1945 to the 1960s. It is an urban folklore study analyzing the play culture of the children's community in modern cities in the context of the placeness of playing. For this purpose, it conducted fieldwork surveys and research focusing on the play experiences of male children who lived in Seoul city center and Han River area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in 1945 when they were elementary school students.
After the liberation, each area of Seoul was littered with play places where active and voluntary experience of children's play was accumulated. Children in Seoul started from the alleyway closest to their residence and gradually expanded the play place to areas far from their residence and to the area of Han River. Children played at alleys by transferring or partially transforming existing games using the placeness of Seoul alleyways, and in the surrounding area that was expanded from alleyways, they transformed existing games or played newly created games. In addition, the Han River was the most suitable and wide place for children to play seasonal games. Children who lived around the Han River played seasonal games mainly in summer and winter. In various 'open spaces' such as alleys, vacant lots, and the Han River, children became active subjects of play and made various play places themselves. Various 'open spaces' of the city were converted into 'play places of children's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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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염승연 ( Yum Seung-yun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0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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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오래 전부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호랑이에 관한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호랑이의 공격에 대한 다양한 대응책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경험은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적 경과에 따른 경로도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적 이동에 따라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특정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며, 죽음 이후의 장례와 제례와 같은 제의적 절차를 통해 또 다른 종교적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그러나 호환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일생의례에 따른 사회적 의미를 단절시키면서 영혼이 저승으로 이동하는 기존의 일생과 달리, 영혼이 온전히 인도되지 않음으로 인해 이승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변형된다.
이러한 호환의 상상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실체가 바로 '창귀(倀鬼)'다. 조선시대 문헌 속의 창귀는 기존의 호환으로 인해 발생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창귀라는 기표로 등장했고, 지인이나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호랑이에게 인도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설화 <호식당할 팔자>의 경우, 속신을 통해서 호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받아들이면서, 호환으로 인한 피해는 피할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이는 호환으로 인해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일종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호랑이의 개체 수가 거의 멸종된 상태에 이르자, 호환에 의한 신체적인 경험은 더 이상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호랑이에 대한 목격담이 이어졌던 것을 보면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2009년에 전파되었던 <장산범 괴담>에서 사람들이 진술한 장산범에 대한 공통적인 특성은 이전 문헌에서 언급된 창귀의 특성, 그리고 <호식 당할 팔자>의 속신과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20년의 COVID-19 팬데믹 이후 엄습한 예측 불가능한 죽음과 공포가 음악 콘텐츠인 <장산범>과 <창귀>로 다시 재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Because the tiger was a fearful creature that harmed people for a long time, people began to seek various ways to defend themselves from tiger attacks as their experience with the tiger accumulated. From birth to death, human experience consists of a path schema that follows the passage of time. Humans acquire social significance within a certain community as they go through rites of passage and are reborn as another religious entity after death through rituals, such as funerals and ancestral rites. However, unexpected deaths caused by tigers break off the social significance brought by lifetime rituals, and unlike the typical cases when the soul gravitates to the underworld, the soul was not wholly delivered and instead became entities that harm the living people.
The entity that appeared as a part of this imagination of disasters caused by tigers was 'changgwi' (ghosts). Changgwi, which can be found in references from the Joseon dynasty, appeared as a signifier that gave substance to a supernatural phenomenon caused by tigers and was acknowledged as an entity that guides their acquaintances or relatives to tigers. The folktale < Destined to be Eaten by a Tiger > takes a fatalistic view toward disasters caused by tigers by describing that while people may attempt to prevent damage by tigers through superstition, such damages are unavoidable. This may be understood as a response to prevent the community from breaking down due to disasters caused by tigers.
However, although the tiger population reached a state of near extinction, thus rendering such physical experience with tigers impossible, the public interest in tigers continued as there were repeated eyewitness accounts of tigers in Korea. Such perceptions toward tigers can be found in the < Jangsanbeom Ghost Story > which was spread in 2009. Consider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Jangsanbeom and the common themes found in the contributors' stories, it is likely that this story is related to the characteristics of changgwi and the superstitions found in the folktale “Destined to be Eaten by a Tiger.” Such perceptions toward unpredictable deaths and fear due to diseases have been reproduced as music content after 2020, including the songs < Jangsanbeom > and < Changgw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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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염은영 ( Yeom Eun-young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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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점복행위는 인간의 유한성과 예견욕구가 결합되면서 편재(遍在)한다. 한국사회 역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복행위도 변모하면서 현재(現在)한다. 편재된 점복행위의 현재성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사회 점복행위의 양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향후 점복행위의 변모에 대한 통찰을 준다.
이 연구는 한국사회 점복행위의 현재성에 집중하여 사회적 맥락에 따른 현대사회의 전면화된 불안과 점복행위의 양상을 고찰하는 데 연구목적을 둔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가 전면화된 2000년 이후 점복인의 유입과정과 문점인의 연령변화 그리고 점복행위 실행성향과 문점내용에서 어떠한 변화와 특성이 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점복인과 점복연관업에 대한 계량적 조사와 기초자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적절한 성과가 없어 연구자의 현장경험에 입각한 점복인들의 심층면접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첫째, '제2의 직업형' 점복인이 등장한다. 노동유연성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고용방식의 특성에 의해 고학력자의 퇴사 시기가 빨라진다. 이로 인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고 은퇴시기가 없는 '제2의 직업형 점복인'으로 점복업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둘째, 대졸자의 비율이 높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점복업으로 유입되면서 점복인의 학력이 상승되었다. 점복인의 학력이 상승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대우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진입을 쉽게 할 수 있는 점복영역으로 유입과 이동이 많아져서 점복영역의 중층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외형적으로는 트렌디한 변화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상업화의 한 단면이다. 기존 점복인들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서양 점술을 배워서 진입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넷째, 불안의 전면화로 인해 점복행위로 접근하는 연령이 특정 세대로 국한되지 않고 전 연령대에 걸쳐 있다. 특히 대중매체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고 변화에 적응력이 높은 연령층이 타로와 같은 새로운 점복에 수용적이다.
다섯째,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문점인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점복을 맹신하기보다는 점복의 위락적·위안적 성격이 부각된다. 현대인들은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선택부재의 상황이 되면 불안을 호소하고 위무를 찾고자 점복행위를 하는데, 이는 점복위무적 기능으로 표면화된다.


For all ages and countries, divination is omnipresent as human finiteness and the desire for prediction coexist. Just as Korean society changes, divination exists, changing along with the society. Understanding the existence of ubiquitous divination helps apprehend the aspects of divination in modern society, and gives insight into changes in divination in the future.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interpret the transformation and social context of divination. The researcher interprets the trans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influx of diviners, the change in the age of diviners, the tendency of divinatory practice, and the content of divination through in-depth interviews of diviners.
First, the 'Diviner as the Second Occupation' type emerges. The resignation of highly educated is accelerated by the flexibility of labor, which i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employment in neoliberalism. As a result, more people choose the divinatory field as their 'second occupation', due to its relatively low entry barriers and the fact that there is no retirement.
Second, the educational degree of diviners is appreciated as people born after the 1980s, where the percentage of college graduates is high, flow into the divinatory field. The social treatment of diviners tends to improve as the diviners have higher degrees.
Third, due to the influx and migration into the divinatory field with its low entry barriers, the phenomenon of layering in divination appears. The phenomenon appears to be a trendy change on the outside, but internally is an aspect of commercialization. The tendency of existing diviners re-entering the field by learning divination that is relatively easier is growing.
Fourth, due to the generalization of anxiety, the age group of people approaching divination is not limited to a specific generation. In particular, the age group which uses mass media relatively freely and is highly adaptable to changes is receptive to new types of divination, such as tarot.
Fifth, as the mass media develops and the educational background of diviners has appreciated overall, the entertainment and consolation of divination rather than blind faith in divination is highlighted. The public seeks divination to vent their anxiety and to find consolation. They require divination when facing null option due to the overflow of information of modern society. Therefore, divination has surfaced as a consolation f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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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경욱 ( Jeon Kyung-wook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7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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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은 백 명 이상의 연희자들, 대규모의 피파드(Pipad) 오케스트라, 낭송자들, 코러스를 포함한다. <콘>의 내용은 인도의 서사시 < 라마야나(Ramayana) >를 개작한 < 라마끼안(Ramakien) >에 기초하고 있는데, 연희자들은 낭송자의 낭송과 노래에 맞춰 무언으로 연기한다. <콘>은 궁정에서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가면과 의상이 매우 화려하고 멋지며, 춤과 음악도 매우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콘>의 성립에는 궁정 군사 의식, 무용·음악 같은 태국 전통의 공연 문화가 기반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 1431년 태국이 크메르를 점령했을 때 가져온 크메르의 궁정공연예술 < 라컨(Lakon) 콜(Khol) >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그림자 인형극 < 낭(Nang) >의 연희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특히 라마 1세(재위: 1782~1809)가 저작한 <라마끼안>은 <라마야나>의 커다란 서사구조의 틀 안에서 주요 사건만 남겨놓았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태국적 특징을 반영해 개작했다. 그러므로 이에 바탕을 둔 <콘>도 점차 크메르의 <라컨 콜>과는 다른 독자적 모습을 갖춰 갔던 것으로 나타난다.
<라마끼안>에 나오는 배역은 (1) 왕, 왕자처럼 정성 들여 꾸민 남자들이나 신적 존재들, (2) 여신들, 공주들, 혹은 세련된 여자들, (3) 난폭하거나 강력한 악마들, (4) 원숭이들 등 네 유형으로 나뉜다.
<콘>은 전승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거쳐 ① 콘(Khon) 끌랑(Klang) 쁠랭(Plang), ② 콘(Khon) 롱(Rong) 넉(Nok) 또는 콘(Khon) 낭(Nang) 라우(Rao), ③ 콘(Khon) 나(Na) 쩌(Jo), ④ 콘(Khon) 롱(Rong) 나이(Nai), ⑤ 콘(Khon) 착(Chak), ⑥ 콘(Khon) 착(Chak) 럭(Rok)의 여섯 가지 유형이 있다. 이처럼 <콘>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계속 변모하면서 새로운 유형을 창출했다.
프라 람의 군대와 톳싸깐 마왕의 군대는 바로 선악(善惡)의 대결을 상징한다. <라마야나>가 인도 서사시라는 점을 생각할 때, 프라 람의 군대가 결국 톳싸깐 마왕의 군대를 이기는 것은 선(善)이 결국 악(惡)을 이긴다는 것을 되새기며 경배하는 힌두 사상의 반영이다.


Khon is comprised of more than a hundred performers, a large-scale Pipad orchestra, reciters, and chorus. The story of Khon is based on Ramakien, an adaptation of the Indian epic Ramayana and the performers act in silence to the reciters' recitation and singing. Khon having been passed down in the royal court, the masks and costumes are extremely fancy and splendid, and the dance and music also have a very sophisticated form.
The establishment of Khon must have been based on the traditional Thai performance culture like the royal military ritual, dance, and music. Here, 'Lakon Khol', the royal performance arts of Khmer brought back from when Thailand occupied Khmer in 1431 had an immense influence, and the performance in the shadow puppet play 'Nang' seems to have also played a role in the development of Khon. Ramakien, written by the Rama I(1782~1809), has especially been adapted to reflect the Thai characteristics in its content details, and only the main events of the huge narrative structure from Ramayana remained. Thus, Khon that has its basis on Ramakien gradually started to possess individuality independent from Lakon Khol of Khmer.
The roles in Ramakien can be divided into four types: (1) men or divine beings elaborately decorated like kings and princes, (2) goddesses, princes, or sophisticated women, (3) violent or powerful demons, and (4) monkeys.
Khon has gone through numerous changes in the process of passing on that there are six types: ① Khon Klang Plang, ② Khon) Rong Nok or Khon Nang Rao, ③ Khon Na Jo, ④ Khon Rong Nai, ⑤ Khon Chak, and ⑥ Khon Chak Rok.
The armed forces of Phra Ram and the demon King Thotsakan represent the fight between good and evil. Considering the fact that Ramayana is an Indian epic poem, the army of Phra Ram defeating that of the demon King Thotsakan is the reflection of the Hindu idea, worshiping and ruminating on the eventual triumph of the good over the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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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혜정 ( Jung Hye-jung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7-31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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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순천지역의 판소리 전승을 살펴보면 명창들보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창자들인 향창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순천지역 내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순천 판소리 전승의 맥을 이어왔다. 순천지역에는 세습무계 출신을 중심으로 판소리 창자들이 대다수 있었고, 자신만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명창에 비해 소리제의 전승이 약하고, 주 활동무대가 지역으로 국한되어 있어 지금까지 판소리 연구에서 지역 기반 창자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 판소리 문화의 지형을 면밀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했던 창자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 글에서는 근현대 순천지역의 판소리 문화를 살피기 위해 향창 성창렬에 주목하여 논의를 펼쳤다. 성창렬은 1946년부터 1980년대까지 순천지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해방 후 순천국악원을 설립하는 등에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생애와 가계, 판소리와 국악학습을 정리하였고, 순천지역에서 활동했던 판소리와 민속예능 관련 활동들을 살폈다.
성창렬은 순천지역의 무형문화 전승자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지속적인 판소리 교육활동을 통해 지역 판소리 전승에서 큰 몫을 하였다. 지역 향창들의 중심에서 그들을 결집하고 지역창극단 활동과 연행 활동을 이어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민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해주었다. 또 창극 <흥부전>의 '돌남이 막'을 순천지역에 전승하였다. 마지막으로 순천지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인 '순천오장상여소리'와 '순천삼설양굿'의 전승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Looking at the Pansori tradition of the Suncheon area i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Hyang Changs, who were active in the area, played a leading role rather than master singers. Although they did not gain national fame, they maintained their place in the Suncheon area and continued the tradition of the Suncheon pansori tradition. In the Suncheon area, the majority of pansori singers were mainly from the field of hereditary martial arts, and they faithfully performed their roles.
Compared to the master singers, the tradition of 'Sori-je' is weak, and the main stage of activities is limited to the area, so areaal-based singers have not received much attention in pansori research so far. However, in order to closely read the topography of local pansori culture, it is necessary to study the intestines who were active in the area.
Therefore, in this article, to examine the pansori culture of the modern and contemporary Suncheon area, we focused on the 'Hyang chang' 'Sung Chang-ryul' and discussed it. From 1946 to the 1980s, 'Sung Chang-ryeol' continued his activities in the Suncheon area. In particular, despite remarkable achievement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the 'Suncheon Kukjakwon' after liberation, little is known about it. His life and ancestry, pansori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studies are summarized, and pansori and folk entertainment-related activities in the Suncheon area are reviewed.
'Sung Chang-ryul' played a major role as a proponent of intangible culture in the Suncheon area. Through continuous pansori educational activities, h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tradition of local pansori. He gathered them at the center of the local Hyang Changs and continued the activities of the local changgeuk troupe and performing activities. Through these activities, the artistic needs of the local people were satisfied. Also, 'Dolnami Mak' of the changgeuk < Heungbujeon > was transmitted to the Suncheon area. Lastly, it played a big role in the transmission of the 'Suncheon OhJangsangYeosori' and 'Suncheon Samseolyanggut', which ar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representing the Suncheo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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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서희 ( Han Seo-hui )

발행기관 : 남도민속학회 간행물 : 남도민속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7-35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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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구술 생애담에서 결핍의 기억이 구술자의 서사구연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이를 위해 먼저 생애담 속 결핍의 구체적 양상과 그것을 통해 형성된 생애담의 서사구조에 대해 알아보았다.
1928년에 전북 고창의 죽도라는 작은 섬에서 삼대독자로 태어난 안성만은 병역을 기피하게 되면서 굴곡진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생애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결핍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학교교육의 부재'와 '군 기피자'로서의 삶, 그리고 그로 인해 겪어야했던 '가난'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결핍을 통해 이루어진 안성만의 생애담은 '고난-고난의 극복'이라는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고, 이 서사구조는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구술 생애담의 일반적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기꾼의 경험이 그의 이야기 목록에 영향을 미치듯이, 생애담 구연자의 지난 삶의 경험은 생애담의 서사구연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성만의 생애담에서 특징적인 서사구연 방식으로는 먼저 고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들 수 있다. 특히 군 기피자로 숨어 살다가 군경에게 잡히던 순간의 구연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긴박감과 현장감을 함께 느끼게 해주고 있다. 또한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자신의 심경에 대한 묘사 역시 '풍상에 노그라진 어머니의 마포치마'에 비유하는 등 문학적 형상화에 노력하고 있는 모습도 서사구연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안성만 생애담의 두 번째 서사구연방식의 특징은 반복적 구연을 통해 아쉬움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 특징은 군 기피자라는 결핍이 만들어낸 서사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내 호가 나이롱 기피자여.”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구연함으로써 군 기피자라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와 그것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 해결해야만 했던 아쉬움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성만 생애담을 통해 드러난 세 번째 서사구연방식의 특징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통한 자기애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안성만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쯤에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과 신뢰를 드러내는 구연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결핍으로 인한 고난의 상황을 자기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한 이가 가질 수 있는 여유일 것이며, 이러한 구연방식을 통해 안성만이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생애담의 서사구연방식에서 보이는 특징은 구연자의 지난 삶의 지문과 같다. 따라서 생애담의 서사구연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삶에 대한 인식과 스스로에 대한 판단 등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진실일 수밖에 없다. 생애담의 서사구연방식은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기에, 앞으로도 생애담을 통한 인간이해의 심화를 위해서도 서사구연방식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effect of the memory of deficiency on the narrative's way of expression in The Oral Life Story.
To this end, we first investigated the pattern of deficiency in the life story and the narrative structure. His deficiency in his life story can be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These are the 'absence of school education', life as a 'military evasion', and the 'poverty' they had to endure.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Ahn Seong-man's life story, which was made through these three deficiencies, has a narrative structure of 'hardship - overcoming hardship', and that this narrative structure follows the general narrative structure of oral life stories.
The narrator's past life experiences affect the narrative's way of expression of life stories. The first characteristic of the narrative's way of expression is the detailed description of the difficult situation. In particular, the moment when he was caught by the police while hiding as a 'military evasion' is described very specifically, giving the listener a sense of urgency and presence. In addition, it can be seen that he is forming a literary figure by describing in detail his feelings about his life, which he had to live like that.
The second characteristic of the narrative's way expression is that it expresses the emotion of regret through repeated narratives. This characteristic is more prominent in the narrative created by the deficiency of a 'military avoider', and by repeating the expression 'My nickname is a false-military evasion', he expresses the emotion of regret for his shameful past.
The third characteristic of the narrative's way expression is the expression of self-love through positive expressions. At the end of a story about a topic, Ahn Seong-man always takes a narrative style that reveals his acceptance and trust in himself, which is an opportunity that can be afforded to those who have overcome hardship due to lack through their own efforts.
The characteristics of the narrative's way expression of the life story are the same as the fingerprints of the speaker's past life. Therefore, the perception of life and judgment about oneself, which are revealed through the narrative's way expression of the life story, must be true, at least for him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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