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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British Studies

  • : 영국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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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8135
  • : 2713-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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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4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26
영국 연구
47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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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김중락 ( Kim Joonglak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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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귀신론』(1597)의 분석을 통해 16세기 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어떻게 왕권의 신성화를 추구하였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귀신론』은 형식적으로는 마녀술의 존재와 마녀처벌을 주장하는 것이지만 암묵적으로는 왕권의 신성화를 추구하고 있다. 제임스는 마녀들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악마의 하수인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신과의 언약에 들어간 자신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제임스는 『스코틀랜드 소식』에서 왕을 “신의 기름부은 받은 자”인 동시에 “악마의 가장 큰 대적”으로 언급하였는데 이는 『귀신론』에서 “신의 정당한 대리인”으로 묘사되었다. 제임스에게 있어서 왕권이란 신의 대리인으로서 악마를 대적하는 존재로 정의된 것이다.
『귀신론』에서 마녀술은 국왕에 대한 반역보다 더 무거운 최고의 반역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신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왕의 최우선적이고 진정한 역할은 마녀를 엄격히 처벌하는 것이다. 마녀술에 대한 처벌은 오직 신에게만 책임을 지는 국왕의 참된 모습이다. 『귀신론』은 제임스가 마녀처벌에 열심인 자신을 이상적인 군주로 내세우는 전략이었다.


This study examines how King James VI of Scotland justified the divine right of the kingship by analysing his Daemonologie (1597). James VI defined his kingship theory in the True Law of the Free Monarchy (1598). But it began from Newes From Scotland, a report of the North Berwick Witch-hunt of 1591. Daemonologie serves as the most important bridge in the making of his divine kingship theory.
James VI's Daemonologie appears to asserts the existence of witchcraft and the punishment of witches, but implicitly seeks to emphasize the divine kingship. By arguing that witches became the devil's servants through pacts with the devil, James reveals himself as a covenanted king with the God. In Newes From Scotland, James referred to the king as both “God's anointed one” and “the devil's greatest enemy”, which is described in Daemonologie as “God's rightful lieutenant”. For James, a king could be defined as a lieutenant of God with a duty to opposes the devil.
In Daemonologie, witchcraft is described as a high treason, heavier than a treason against the king, because it is rebellion against the God. Thus, James sees the king's primary and true role as punishing witches. In Daemonologie, the concept that the king is solely responsible to the God is defined in terms of the punishment of the witches rather than the exemption of responsibility toward the subjects. This was a strategy to present himself as an ideal monarch, as he had been passionate about punishing wi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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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덕희 ( Yun Dukhe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7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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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유럽에 전쟁이 격화되면서 각국에서 전쟁과 군사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잉글랜드에서도 이 시기에 많은 군사서적들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이 시기 잉글랜드의 군사 서적들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군사 사상은 복고적이었으며 유럽 대륙에서 일어나던 '군사 혁명'과 유리되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이러한 복고주의가 잉글랜드의 군사와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으며, 이러한 장애는 17세기 말, 명예혁명을 전후해서 유럽 대륙의 선진 사상이 본격적으로 유입됨으로서야 해소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본고는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출간되었으며 널리 읽힌 군사 서적들을 검토함으로서 이러한 기존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널리 읽힌 군사 서적들이 취한 태도는 복고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책들의 저자들은 대부분 유럽 대륙에서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군인들이었으며, 당시 전쟁의 급변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잉글랜드의 전략적, 전술적 현실에 맞추어 새로운 이론과 과거의 교훈을 조화시키고자 하였으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잉글랜드는 당시 유럽 군사문화의 확고한 일원이었다.


War was a central concern for the early-modern state, and seventeenth-century England was no exception. Regular conflict, combined with the growth of literary community, stimulated a boom of publication of numerous books and treatises related to military affairs. However, this phenomenon has often been interpreted in a negative light, with a number of historians arguing that English writings on war were either based on uncritical acceptance of the authority of ancient Greek and Roman authors, or on anachronistic 'chivalric revival'. This, according to such an interpretation, resulted in the alienation of England from the Continental development and thus made England a military backwater isolated from the European 'Military Revolution'. This paper will suggest that the intellectual milieu of early-modern England concerning warfare was far more vibrant than it has often been portrayed. Many English military writings offered a cautious but critical approach towards ancient and contemporaneous European military authorities, far from uncritical acceptance of them. While many English writers were open to their influences, they applied such influences to the existing military tradition of England in a gradual and eclectic manner. In this sense, England was very much a part of contemporary European-wide military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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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창민 ( Lee Changmi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1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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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세기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발생한 클라이브 스캔들과 영국 사회의 반응을 제국의 구조 변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연구이다. 특히 공론장의 확대 속에서 동인도회사의 영토 획득과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스캔들으로 발전했는지를 확인했다. 또한 본 논문은 클라이브 스캔들의 본질을 당시 영 제국의 구조 변화로 인해 발생한 제국관의 차이에서 발견해 스캔들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클라이브 스캔들의 기저에는 1688년 혁명 이후 토리와 휘그로 나뉜 영국인들의 정치경제관이 있었다. 휘그주의자들은 클라이브의 통치 방식이 전제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토리주의자들은 클라이브의 방식처럼 군사력과 행정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와의 패권 다툼에서 패배할 수 있다며 클라이브를 지지했다. 그 결과 클라이브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지만, 인도에서 영 제국은 그가 구상했던 바와 같이 신토리적인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동인도회사의 내부 문제와 영 제국의 구조 변화 속에서 클라이브라는 상징적 인물이 일으킨 논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This paper examines the Clive Scandal in the 18th Century East India Company and the reaction of British society through the perspective of the structural change of the empire. In particular, this paper explained how the East India Company's acquisition of territory and the problems caused by the company's acquisition attracted many people's attention and developed into a famous scandal. In addition,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essence of the scandal by discovering the causes of the Clive scandal from the difference in imperial views during the structural change of the British Empire.
The division of the British political-economic view into Tories and Whigs after the revolution of 1688 was the start of the Clive Scandal. Whigs warned that Clive's way of governing could lead British empire to despotic and corrupt way. At the same time, Tories supported Clive, saying that if he did not strengthen th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power of the company, the British Empire could have lost the hegemony during the 7 years' war. As a result, Clive faced severe criticism, but in India, the British Empire and East India Company expanded their power in the New Tory way, as Clive had envisioned. This paper demonstrates the meaning of the controversy caused by the symbolic figure of East India Company, Lord Clive, amid the complicated internal problems of the East India Company and the structural change of the British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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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철기 ( Kim Chulki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15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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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혁명기 아일랜드 의회독립 운동의 등장은 기존 역사 서술에서 1780년 자유무역 쟁취 이후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으로 다뤄졌다. 미국 혁명기 전까지 일반적이었던 사고방식은 자유무역과 합방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일랜드에서 자유무역 이후 의회독립 운동의 등장은 문제시되고 설명되어야 할 역사적 현상이다. 이 글은 아일랜드인의 광범위한 군사적·정치적 참여가 의회독립 운동의 주요 동력이 되었으나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경제적 관계 때문에 의회독립이라는 정치의식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1778년 영국사회가 영국의회를 로비하여 아일랜드 자유무역 법안을 좌초시킨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의 지도적인 애국파와 의용군은 영국의회를 본질적으로 영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느라 아일랜드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기관으로 불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1779년에 자유무역을 요구하며 합방에 반대했고, 1780년에 자유무역을 얻고서는 의회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둘은, 즉 자유무역과 반(反)합방 그리고 의회독립은 영국사회에 대한 영국의회의 불신이라는 점에서 같은 인식의 다른 시기적 표현이었다.


The emergence of the Irish Parliamentary independence movement, which achieved its aim in 1782, has been treated in existing scholarship as a more or less natural phenomenon subsequent to the 'Free Trade' obtained in 1780. Yet the emergence of the Irish Parliamentary independence movement have to be explained rather than taken for granted, given the fact that the typical thinking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 had been Free Trade and the British-Irish Union, This article argues that while the wide military and political participation of the Irish was the main dynamics of Irish popular politics, political economic relationships between Britain and Ireland fundamentally reshaped the political consciousness of Ireland's Parliament independence. Decisive was British society's lobbying that successfully obstructed in 1778 the Irish free trade bill of the British Parliament. This event had Irish Volunteers and Patriots distrust the nature of the British Parliament in ways in which it put priority on and was easily Influenced by the interests of the British, not those of the Irish. Therefore, they demanded Free Trade and no British-Irish Union and, after the acquisition of Free Trade in 1780, advanced the cause of Ireland's Parliamentary independence from the British Parliament. These two perceptions, Free Trade with no Union or Parliamentary Independence, were two different expressions of the same understanding of distrust in the British and their Parli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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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혜승 ( Kim Hyeseu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8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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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는 공업화와 도시화, 인구 밀집으로 인해 콜레라나 티푸스, 홍역, 천연두 등의 전염병이 일상화되어 도시의 공중위생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이 잇따라 제정되었다. 한편 그러한 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개별 가정의 열악한 위생 문제 역시 개인의 보건문제를 넘어 중요한 사회적 과제였다. 1857년 런던에서는 사회적 과제로서의 개별 가정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계급 여성들을 중심으로 자선 활동의 성격을 띠는 '여성위생협회(Ladies' Sanitary Association)'가 설립되었다. “모든 계급에 위생에 관한 지식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협회는 위생 지식에 관한 소책자의 발행, 강연회·강습회의 개최, 위생 관련 도서실의 운영 등과 함께, 가정 방문 활동을 통해 각 가정에 위생 지식을 직접 전달해 나갔다. 본 연구에서는 개별 가정의 위생 문제와 영유아 사망률의 문제를 중심으로, 19세기 영국에서 가족 구성원의 보건에 대한 책임이 성별 역할 분담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반해 여성에게 주로 요구되고 있던 점에 주목한다. 전염병이 만연하던 시대에 '여성위생협회'는 각 가정에 위생 지식을 직접 전파하며 청소나 환기, 개인 위생, 적절한 영양 섭취 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나갔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여성위생협회'의 활동을 검토함으로써 전염병이 확산하는 시기에 돌봄 노동에 대한 의무가 여성에게만 불균등하게 요구되는 문제의 역사성과 현재성에 대해 고찰한다.


In nineteenth-century England, epidemic diseases such as cholera, typhus, typhoid, measles, and smallpox swept through the country. This was due to the dense population of manufacturing towns which was led by industrialisation and urbanisation. As the sanitary conditions of towns became a social problem, a series of public health acts were legislated to ameliorate the situation. Insufficient reach of the acts to individual households, sanitary conditions of working-class families were at great risk of exposure to infectious diseases. Thus, the improvement of their conditions was an urgent issue not only for individual families but also for the whole society. Established in London 1857 as a substantially charitable society of middle-class women, the Ladies' Sanitary Association endeavoured to improve sanitary conditions of working-class home. According to its initial “aims at the diffusion of Sanitary Knowledge among all classes,” the association published tracts, provided lectures and classes, ran libraries, and visited individual houses to deliver sanitary knowledge. Focusing on sanitary conditions of individual households and concern about infant mortality, this research explores that the ideology of gender division of labor required women to take most responsibility for their family members' health. During the time of infectious diseases, cleaning, ventilation, personal hygiene, and adequate nutrition became important and the association emphasised those needs to women as their duties. Examining the association's activities, this paper investigates the past and present of women's heavier burden for housework and care work, especially in the period of epide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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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인성 ( Bae In-su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2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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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애니 베산트의 『성경에 따른 여성 지위』를 중심으로 성경과 빅토리아 사회에 만연된 젠더 차별과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성경 해석의 일면을 조명하는 데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경과 '여성 문제'의 프레임 속에서 여성의 지위, 결혼제도, 간통, 섹슈얼리티, 교육 등에 관한 베산트의 견해를 자유사상이라는 지적 조류와 연결시켜 검토한다. 베산트에 따르면, 여성의 지위를 살펴보는 것은 문명의 척도를 가늠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그녀는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로 이어지는 여성 지위의 궤적을 추적하였다. 구약시대 여성의 강등된 지위는 신약시대에 와서 좀 더 향상되지만 여성은 여전히 예속적인 존재였다. 기혼 여성의 예속 상태는 구약시대의 율법과 이를 수용하는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거쳐 빅토리아 시대로까지 이어졌다. 베산트의 성경 해석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기독교 중심의 빅토리아 사회에서 감지되는 세속화의 일면과 자유사상가로서의 페미니즘 시각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베산트에게 성경 해석은 가부장적 질서, 여성 혐오, 남성 중심적인 성경 내용이 빅토리아 사회 여성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고 기독교 신화에서 벗어나 진정한 여성 평등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기능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ible and gender discrimination prevalent in Victorian Society, focusing on the Annie Besant's Woman's position according to the Bible. More specifically, in the frame of the Bible and Woman Question, I examined Annie Besant's views on women's position, marriage system, adultery, sexuality, and education in connection with the intellectual trend of freethought. For her, investigating the position of women was a prerequisite for measuring the scale of civilization. She traced the trajectory of women's position from the Old Testament to the New Testament and into the Victorian era. According to her, the degraded status of women in the Old Testament was better in the New Testament, but women were still subjugated. In particular, the subjugation position of married women led to the Victorian era through the laws of the Old Testment and the apostles of the New Testament era. The historical approach to the biblical interpretation for her was important in that it could explore one aspect of secularization sensed in Christian-centered Victorian society and the perspective of feminism as a freethinker. For her, Biblical interpretation served as a useful tool to realize that patriarchal order, misogyny, and male-centered Bible content were deeply involved in the lives of women in Victorian society and to convey the message to put into practice the true life of female 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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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지윤 ( Goo Jiyoon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5-25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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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협회(Museums Association)는 박물관 간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1889년 영국 요크(York)에서 설립된 단체로 1901년부터 『뮤지엄 저널』(The Museums Journal)을 발간하고 있다. 당대의 많은 박물관 관계자들이 박물관에 관한 의견을 활발히 교환했던 『뮤지엄 저널』은 19세기 말 영국의 박물관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뮤지엄 저널』에 대한 분석을 통해 19세기 말 영국의 박물관이 영제국의 확산과 유지에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관여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엄 저널』은 유럽 중심주의의 여러 사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표현과 같이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분류하고 관찰”하려 했던 문화 제국주의의 양상을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물관 협회와 『뮤지엄 저널』이 19세기 영국의 박물관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상당함에도 『뮤지엄 저널』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된 경우는 없었는데 본 논문을 통해 박물관의 제국주의적 분석에 있어서 『뮤지엄 저널』이 가지고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탐색하고자 한다.


Museums Association was founded in 1889 in York, England, to promote exchanges between museums and has published Museums Journal since 1901. Museums Journal, in which many museum workers of the time actively exchanged opinions on museums, is an important source for the study of museums in England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is research attempts to examine how actively British museums were involved in the spread of imperialism and the maintenance of the British Empire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rough the analysis of Museums Journal. This publication illustrates several examples of Euro-centrism, as well as explicit aspects of cultural imperialism, which, as Edward W. Said put it, “relentlessly codified and observed everything." Although Museums Association and Museums Journal played an important part in the history of museums in the 19th century, Museums Journal itself has not been scrutinized thoroughly yet. Thus, this paper will explore the value of Museums Journal as a historical material for the analysis of British museums in terms of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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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민경 ( Lee Min-kyoung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9-29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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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에릭 홉스봄의 사망 10주년을 기억하며 그의 저작 가운데 많은 토론이 일지 않은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를 검토하여 홉스봄의 역사 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시도이다. 무엇보다 홉스봄이 다룬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사적 현상들로부터 복합적인 사회상을 넘어 역사의 질곡을 건드리는 총체적인 역사를 다시 만나보고자 한다.
우선, 본 글은 이 저서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오며 그가 천착해온 '아래로부터의 역사' 그리고 '전체사'로서의 역사를 읽게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개개 인간을 주목하며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의 역사를 총체적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모두의 역사로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파악하는 과정에서 단절된 역사의 한 장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갈등을 내포하는 개별 역사의 현실을 통해 역사의식을 사색하게 하는 동시에 발전적 고민을 타진하는 홉스봄의 통찰을 주목한다.


This essay tries to have an opportunity to re-illuminate the historical world of Eric Hobsbawm by reviewing his Uncommon People, which has not been much discussed. Through the 'uncommon people' and their stories, it looks at the path of modern history, and gives a chance to meet again the overall history that touches the historical ordeal, going beyond the complex social images.
First of all, it reveals that Uncommon People draws on the stories of people who were not common and makes it possible to read the history as a 'history from below' and 'total history' that he has focused on. It also shows that the history of people with diversity, centering on individuals' lives, can be understood as the history of everyone with the perspective of the 'total history'. Above all, it notes the insights of Hobsbawm, who does not make us see a single chapter of history that is cut off in the process of trying to grasp human life in the time and space of various histories, but rather contemplates consciousness through individual historical realities that contain specific conflicts and at the same time explores developmental conc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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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은재 ( Park Eunjae )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2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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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 앤 칩스는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으로 손꼽힌다. 이 '소박하고(humble)' '포만감을 주는(filling)' 음식은 유구한 세월 속에서 영국인들의 삶 속에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비교적 최근의 음식이다. 피시 앤 칩스는 산업혁명기의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노동자들의 주식으로서 널리 보급되었다. 20세기 전반은 피시 앤 칩스의 전성기였다. 피시 앤 칩스는 노동계급을 넘어 중간계급 이상으로 소비 저변을 확장하면서 국민음식(national dish)으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위생 개선으로 피시 앤 칩스의 평판이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피시 앤 칩스 업계는 영국인의 영양과 사기를 지탱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피시 앤 칩스는 명실상부한 영국 대표 음식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로 인한 식생활의 다변화라는 배경이 존재했다. 또 피시 앤 칩스 판매에 이민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다문화 사회와 피시 앤칩스의 밀접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영국의 '국민음식'이라는 피시 앤 칩스의 역사에는 계급적·민족적 측면에서의 비주류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With its humble and filling virtue, fish and chips is deemed the most national dish of Britain. Its origin, however, goes back to no more tha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hence the food being a relatively recent tradition. Fish and chips rapidly spread and was established throughout the UK, particularly among the working class as its main consumers. As the technological developments made by the industrial revolution, such as trains and steam-trawlers, enabled nation-wide spread of the food, we can call fish and chips a product of the modern industrializatio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as the heyday for fish and chips, when it reached the middle-class, expanding its previous consumer-pool consisting of working classes. Moreover, the discourses mentioning fish and chips as Britain's national dish appeared. These changes were made possible by improved hygienes of many chip shops and the food's perceived contribution to the victory in the two world wars by keeping civilians' morale. Since the mid-twentieth century fish and chips solidly established itself as 'the national food', against the background of diversification of British diet brought in by the immigration of peoples from various regions. These immigrant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selling fish and chips, contributing the continuance of its existence in every corner of the British Isles. In conclusion, fish and chips, which is 'the national dish' of Britain, contains in its history the characters of 'otherness' in terms of class and ethn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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