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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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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2765-558X
  • : 한국학논집(~2009) → 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9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933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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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민주 ( Han Min-ju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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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혁신적인 근대국가 건설과 아동기, 아동의 인권 발명 사이의 얽힌 관계에 '과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깊이 관여하며 근대 아동의 정체성과 문화 형성에 기여한 바를 살펴보려 한다. 특히 이 논문은 1920~30년대 근대 아동 잡지인 『어린이』에 집중하여, 근대 조선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과학교육의 특징을 밝힌다. 그것은 곧 주술적인 전근대의 속성을 벗어나 탈마법화를 추구하는 근대 과학의 세계 속에 여전히 잔존하는 마술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될 것이며, 또 당대 아동문화와 교육제도가 어떻게 마술을 통합하고 생산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920~30년대 『어린이』는 과학자와 발명가들을 역할 모델로 삼아 연구태도를 가르치고, 신기한 이과요술들을 알려주어 실험을 훈련시켰고, 귀신같은 탐정활동을 재현한 탐정소설과 귀신ㆍ도깨비 이야기들을 통해 합리적 사유를 배우도록 도왔다. 특히 과학을 응용한 속임수 기술인 마술의 탈마법화와 재마법화는 과학의 권위를 더 강화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어린이』는 마술의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며 아동에게 실습하도록 촉구하였다. 타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기술인 마술을 활용한 실험과학 담론은 아동에게 '구경꾼을 속이는 속임수의 주체가 되라'라는 명령을 하며 실험주체를 근대의 일상 속으로 세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관객의 공감을 유도하는 마술의 특징은 아동의 윤리 도덕적 공감 교육으로 이어진다.
당시 소년운동의 토대인 『어린이』를 통해 한 자리에 모인 조선의 소년 소녀 공동체에게 강조되었던 것은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과 공감의 형성이었다. 방정환의 탐정소설에서 우정과 의리로 뭉친 소년 소녀 탐정들은 귀신같은 기지와 꾀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지이자 같은 민족이라는 이념적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 정립한 '인류애(人類愛)의 과학'은 근대 초기 조선 민족과 어린이가 살아가는 생존법칙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ideological deep involvement of 'science' in the intertwined relationship between the construction of an innovative modern state, childhood, and the invention of children's human rights, contributing to the formation of modern children's identity and culture. In particular, this paper focuses on “Children,” a modern children's magazine in the 1920s and 30s, revealing the characteristics of children's science education for children in modern Joseon.
“Children” taught research attitudes using scientists and inventors as role models and trained experiments by teaching novel science tricks. And it helped children learn rational thinking through detective stories and ghost and goblin stories that reproduced ghostly detective activities. In particular, it is confirmed that the dis-enchanting and re-enchanting of magic, which is a deception technique that applied science, further strengthened the authority of science. The characteristic of magic that induces audience empathy leads to education of children's ethical and moral empathy.
What was emphasized to the Joseon boys and girls community gathered in one place through “Children,” the foundation of the youth movement, was the formation of sympathy and empathy that felt sorry for each other. In Bang Jung-hwan's detective novel, the boys and girls detectives, united by friendship and loyalty, were composed of ideological groups that share thoughts and emotions by solving cases with ghostly wit and tricks. The 'science of love for humanity' established by Kropotkin's 'mutual aid theory' was the theoretical basis for the survival laws of the Joseon people and children in the early moder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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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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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출신의 서주 김사진은 식민지가 되어 버린 조국을 벗어나 유도(儒道)와 민족의 진로를 찾기 위해 중국 봉천 지역으로 이주했던 근대 유림이다. 1917년 2월, 동문수학했던 도암 정돈섭과 함께 봉천에 도착한 그는 그곳을 가거지(可居地)로 삼고, 이역을 전전하는 동포들과 함께 머물 공간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현지 지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에게 그곳 생활은 쉽지 않았고 당시 봉천의 정치ㆍ사회적 상황도 불안하여 결국 10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다. 이주에서 귀환까지, 그의 일상과 내면은 「요행일기(遼行日記)」에 대단히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그의 중국 체험이 반영된 한시는 '망국에 의한 이산의 통한과 이역 생활의 곤란, 고국에 대한 그리움' 등을 표출하고 있었다. 또한 비록 이산자의 신분이지만 유자(儒者)의 정체성과 민족적 전통을 견지하려는 의지도 동시에 담겨 있었다. 결국 그의 중국행은 불의와 패도의 시대를 '은거와 자정(自靖)'이라는 유교적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학문과 심성의 '근본'으로 돌아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했던 선유들의 의리 구현의 계승이자 공간적 확대를 의미했다. 더불어 이산에 의한 향수와 '동포애'가 결합 된 그의 시 세계는 근대기 한시에서 발견되는 매우 특수한 국면이었다. 요컨대 그의 「요행일기」는 봉천을 포함한 이른바 서간도라는 장소가, 한국 유학사뿐만 아니라 한국 한문학사에서도 상당히 유의미한 '공간'으로 설정되어야 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A modern Confucian scholar from Yeongju, Kim Sa-jin left his country and moved to the Fengtian area of China, which was aimed at finding the path of Confucianism and Nationality. In February 1917, Kim decided to live in Fengtian with his friend, Jeong don-seop, and tried to find a place to stay with Korean compatriots. However, because he lacked migrant capital and was not familiar with the topographical features, life there was very difficult. And the continued political turmoil in Fengtian, so he returned home 10 months later. during this period, His daily life and inner self were reflected in his poems. The main contents were 'the collapse of the country and the sorrow of separation, in addition the pain of living in a foreign country and longing for the home country'. It also includes the identity of Confucian intellectuals and the willingness to inherit national traditions. In summary, his poems are valuable works as special phases that can be found in Modern Sino-Korean literature. In addition, what his symbolizes of 「Yohang-Ilgi」 is that Seogando, which includes the Fengtian area, should be set as a very meaningful 'space' not only i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but also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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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근세 ( Lee Keun-s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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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강원도 천주교를 중심으로 지역의 개념적 의미를 살펴보고 지역문화의 연구 및 활성화 방안을 논구한다. 지역문화는 물리적 장소로 환원되지 않는 역사성과 정서적 특성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지역의 물리적 기반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하지만 지역의 가시성은 지역민과 방문자의 상상 및 정서적 투영을 가능케 하는 물적 토대로 기능한다. 지역은 실존의 지평을 여는 역사 문화 공간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 논문은 강원도 천주교의 역사성을 개관한다. 강원도 천주교는 일견 지엽적 역사의 산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동서교섭사 및 조선천주교사 전체가 그 안을 관통하는 일종의 개체적 전체이다. 한국 최초의 신앙촌이라는 위상을 가진 강원도 천주교는 박해기의 시련과 교우촌(敎友村)의 잠재력 강화를 거쳐 풍수원 본당으로 제도화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나타낸다. 동시에 강원도 천주교는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문화보편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에 매몰될 위험을 내포하는바 지역문화와 관련한 미래적 가치와 윤리적 태도를 요청한다. 중심과 주변의 이원성, 문화보편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를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본 논문은 문화적 정체성 개념을 지양하고 문화의 자원 개념에 의거한 문화 공동체를 제안한다. 문화 공동체는 다양한 문화 자원을 서로 맞대면시킴으로써 서로를 활성화하고 생명력을 확장하는 문화 네트워크이다. 자원 개념에 기반한 문화 공동체는 각각의 문화 자원을 서로 소환하고 활성화하는 대화 공동체이기 때문에 문화 생태계를 강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This study examines the conceptual meaning of the region with a focus on Gangwon province's Catholicism and discusses the way to research local culture and to promote it. Local culture should be understood through historical and emotional characteristics that are not reduced to a physical place. Although the physical basis of the region must be acknowledged, the visibility of the region functions as a material foundation that enables local residents and visitors to get the experiences of the imagination and emotional projection. A region is a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 that opens the horizon of existence. In this perspective, this study provides an overview of the historicity of Gangwon province's Catholicism. Even if Gangwon province's Catholicism appears to be merely a minor branch of history, it is in reality an individual totality through which the history of East-West relation and the Joseon Catholic penetrates. Gangwon province's Catholicism, having the reputation of the first religious village in Korea, represents a series of processes that reach the institutionalization of Pungsuwon, passing through the ordeal of persecution and the strengthening of the potential in Kyo-u-chon. On the other hand, as Gangwon province's Catholicism connotes a risk of being sunk in the dilemma of cultural universalism and cultural relativism, it calls for the certain kinds of future values and ethical attitudes related to local culture. In order to solve the dilemma of duality between center and periphery, cultural universalism and cultural relativism, this study proposes a cultural community based on the concept of cultural resources, avoiding the concept of cultural identity. A cultural community is a kind of network that revitalizes various cultural resources and, therefore, expands their vitality by bringing them face to face. A cultural community based on the concept of resources has the function of strengthening the cultural ecosystem because it is a dialogue community that summons and activates each cultural resource to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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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수경 ( Oh Sookyung ) , 鄭蘇文 ( Zheng Suwe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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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출신 작가이자 대학자인 구준이 1450년에 남희 <오륜전비기>를 창작하였다는 사실은, 15세기 이전부터 해남 지역에 풍부한 연극 문화가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어려서부터 남희를 접하지 않았다면 30세에 그러한 희곡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해남의 연극 문화 형성 양상을 살필 필요를 느꼈다. 본문에서는 주로 해남 광동 지역 지방지를 통해 한족 지역 연극의 해남 전파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지금까지 해남 지역의 연극은 흔히 원대 潮州에서 온 인형극단(傀儡戲班)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후 명대의 잡극이 수용되었으나 그 시간은 비교적 늦은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남방 소수민족인 黎族 지역으로 일찍부터 가무가 즐겨지던 곳이며, 송원대부터는 한족 지역과의 빈번한 왕래와 함께 군대와 이민을 통한 문화 전파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명청 지방지에 언급된 해남의 공연문화는 훨씬 더 풍부하다. 이러한 문헌 자료들을 통해 宋元 이래 중원 연극이 몇 가지 경로를 통해 해남으로 전파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분명한 세 가지 경로의 맥을 짚어보는 데 본문의 목적이 있다. 첫째는 춘절을 비롯한 명절 기간에 행했던 다양한 가무와 “僧、道、獅、鮑老” 등의 분장 행렬로 구성된 송 잡극과 舞隊의 형태이다. 둘째는 중원 지역에서 온 군대가 장기 주둔하면서 연행한 북방의 雜劇故事다. 셋째는 閩南과 潮州 지역의 이민들이 가져온 “閩廣劇”으로, 민남 방언을 사용하여 연창되는 남희다. 이러한 연극 형식들은 명대에 이미 해남에서 관찰된 것들로, 그 후 해남의 土戲로 자리잡았으며, 근대에 와서는 瓊劇이 대표 지방극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다양한 극종들은 지금까지도 冼夫人 신앙, 關羽 신앙, 媽祖 신앙 등의 제의적 환경 속에서 전승되면서 해남 연극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남희와 잡극의 전파가 해남에까지 이르렀음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중국연극사의 확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Through the study on < WuLunQuanBei-Ji(五倫全備記) > by Qiu Jun(丘濬), I got to the sense that there should be pretty matured theatre tradition in Hainan(海南) in 15th century of Early Ming Period. Because if he had not contacted Nanxi(南戲) in his early age, he could not write the Nanxi play in his thirty. I tried to research how the theatre of Hainan was grown up through tracing the spreading of Chinese theatre of Song and Yuan period through the records of local history(地方誌) of Ming and Qing around the Hainan province. Though the materials are not sufficient, but very precious to understand the situation of Hainan of early Ming period.
As it is known that the origin of Hainan theatre is the puppet troupe of Yuan dynasty, but I found that three route of formation of Hainan theatre. Mainly the Chinese Confucious culture began to reach to Hainan in Tang Song Period through the exiled literati. From the end of Song dynasty and in whole Yuan dynasty, Army brought the theatre of northern China. During Ming and Qing Dynasty, pretty much immigrant from Fujian(福建) and Guangdong(廣東) province moved into Hainan, mainly for business and trade. Through these routes, the various theatre including Song zaju(雜劇), especially Wudui(舞隊), Yuan zaju, and Nanxi, especially 'MinGuang-ju(閩廣劇)', enter Hainan island and formed the local theatre(土戲) of Hainan. On the base, the local theatre including the Qiongju(瓊劇) was formed in Qing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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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임미주 ( Im Mi-ju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13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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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 6대 전설 중 하나인 '양축이야기[梁祝故事]'와 '동영 이야기[董永故事]'를 희곡작품화 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인 명 전기(傳奇) <동창기(同窓記)> 와 <직금기(織錦記)> 에 나타난 이별 방식의 유사점에 착안하여, 두 작품의 상호 연관성을 검토하고, 나아가 그 속에 드러나는 중국인들의 이별 장면 묘사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동창기> 속 '십팔상송'과 <직금기> 속 '괴음분별' 대목에서는 이별을 앞둔 상황에서, 여자 주인공은 여러 사물을 들어 남자 주인공에게 거듭 이별의 상황을 암시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전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동문서답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이는 두 작품이 오랜 세월 민간전설로 구두 전승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중국을 대표하는 민간전설인 두 이야기에서 이별을 다루는 방식이나 이별을 비유하는 공통된 방법들은 곧 오랜 세월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고 일상화된 이별의 표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이별 장면에서 풍경을 빌어 감정을 노래하며, 사물에 의탁해 뜻을 전하는 비유법과 중국 전통의 '해음(諧音)' 수사법이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인물 형상화에 있어서, 어리숙한 남성에 반해 주도적인 여성이라는 성격적 특징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중국 전통 전설에서 자주 발견되는 여성 주체적인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 <직금기>에서는 '홰나무'라는 표상을 활용하여 출세하고 아들을 낳는 민간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동창기>와 같은 양축희에서 점차 이러한 '나무'의 표상을 수용하고 참고하여 '버드나무'가 중요한 장소배경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인류가 풍속, 욕망, 사상을 신화전설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시대 변화 속에서 이야기가 점차 세속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양축전설과 동영전설은 오랜 시간 중국 여러 지역에서 널리 전승되고 변화 발전하며, 민간 문화의 주요한 매개체로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회풍속을 가장 민감하고 직접적으로 반영하였다. 따라서 두 전설을 모티브로 한 연극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전통 이별 장면 묘사의 특징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The Story of Liang Zhu and The Story of Dong Yong are both Chinese folk tales that have been transmitted for many years. They have long been adapted as plays and performed in the private sector.
The earliest works that recorded and established these plays were written in Ming, and they are Tongchuangji, which tells the story of Liang Zhu, and Zhijinji, which tells the story of Dong Yong. It is unusual that the situation before the parting of the male and female protagonists is described in very similar ways between “18 Phases of Sending” in Tongchuangji and “Farewell under the Locust Tree's Shade” in Zhijinji.
This study examined the similar depictions of a breakup scene between “18 Phases of Sending” in Tongchuangji and “Farewell under the Locust Tree's Shade” in Zhijinji from Ming and analyzed their common features. Both the works used a metaphor to sing about emotions through landscapes and convey intentions through objects and the traditional Chinese “homophonic” rhetoric in the breakup scene. In the embodiment of a character, both the works depict the man to be naive and the woman to be self-initiated, which is in the line with the female-initiated characteristic often found in the traditional myths of China. In Zhijinji, the “spindle tree” symbol is used to reflect the ideal of making it in the world and having a son among civilians. In Liang Zhu stories such as Tongchuangji, this symbol of “tree” is gradually accepted and consulted until the willow tree is used as an important place backdrop. This outcome comes from the practice of mankind to reflect their customs, desires, and ideas in myths and legends. It shows the gradual secularization process of stories amid the changes of the times. That is, the tale of Liang Zhu and the tale of Dong Yong have long changed and developed, being transmitted broadly across many regions of China, and reflected the new spirit of the times and the customs of society in the most sensitive and direct ways as major media of civilian culture. The common features found in theatrical works based on the motifs of these two tales will help to deepen the understanding of the traditional Chinese culture even fu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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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민경 ( Choi Minkyu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7-16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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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부터 1970년에 걸쳐 점령지역구제자금(GARIOA) 원조로 진행된 도미(渡美)유학은 제도의 지속기간, 배출 유학생 수 및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 등을 보았을 때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창(窓) 중 하나이다. 본 연구에서는 특히 유학생들이 귀국 후 조직한 친목단체인 금문클럽(金門クラブ, Golden Gate Club)의 활동에 주목하여 오키나와-미국-일본 본토라는 '삼각관계' 속에 착종하던 미군정기 오키나와에서 GARIOA 유학이 지녔던 사회적 의미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금문클럽은 어디까지나 귀국한 GARIOA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으로 설립 과정에 류큐열도 미국 민정부(USCAR) 등의 요청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금문클럽의 활동을 통해 USCAR 관계자와의 교류가 이뤄졌고, USCAR에서는 이를 통치에 적극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미군정기 오키나와 일반에서 보았을 때 금문클럽은 특수한 존재이자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금문클럽이 '친미엘리트', '미군친위대'라는 '시선'과 마주한 방법은 스스로의 비정치성을 강조하고 외부적 유연성과 내부적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지닌 금문클럽의 존재는 미군정기 오키나와에서 당시 사회 전체를 집어 삼켰던 '친미 대 반미'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말해준다. 즉, 일반적으로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이야기할 때 전제로 하는 '큰 이야기'로는 설명되지 않는 주체들의 집단으로서 금문클럽은 존재했던 것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고뇌와 행동이 뒤얽힌 '사람'이 살아간 사회로서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The study abroad program to the United States, which was conducted from 1949 to 1970, with the aid of the GARIOA, is one of the important windows to look at Okinawa under the U.S. military occupation, given the duration, the number of students, and their social status and activities. In this study,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the Golden Gate Club, a social organization organized by GARIOA students after their returning, social meaning of GAIORA study abroad program in Okinawa under the U.S. military occupation which was complicated under the 'triangle relationship (Okinawa-US-Japan) is analyzed. The Golden Gate Club is an organization voluntarily founded by GARIOA students who returned home, and USCAR did not intervene in the establishment process. However, through the activities of the Golden Gate Club, exchanges with USCAR officials were made, and USCAR wanted to actively use it for governance, so the Golden Gate Club was a special existence and subject of criticism in general in Okinawa. In the midst of this situation, the way the Golden Gate Club faced the gaze of 'pro-military elite' and 'bodyguards to US Army' was to emphasize its apolitical nature and to confirm external flexibility and internal diversity. And the existence of the Golden Gate Club tells us that the dichotomy of 'pro-American versus anti-American' that engulfed the entire Okinawa society at the time of the U.S. military occupation is by no means absolute. In other words, the Golden Gate Club existed as a group of subjects that could not be explained by the 'big story' that is premised when talking about Okinawa under the U.S. military occupation generally. And through this, it is possible to re-understand Okinawa under the U.S. military occupation as a society in which 'people' lived with various anguishes and actions intertw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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