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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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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87)~68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09
한국사상사학
68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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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화경』은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하는가?-세친 『법화경론』의 사종성문설을 중심으로-

저자 : 하영수 ( Ha¸ Young-su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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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일승사상은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세친의 『법화경론』을 중심으로 이 주제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세친은 그의 주석서에서 『법화경』의 성문을 퇴보리심성문(退菩提心聲聞), 응화성문(應化聲聞),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 결정성문(決定聲聞)의 네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이 사종성문설은『유가사지론』에서 설해진 사종성문의 개정(改定)이다. 세친은 이 사종성문 중에서 앞의 두 부류는 여래로부터 직접 수기를 받았지만, 나머지 두 부류의 성문은 상불경(常不輕)보살로부터 수기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본 논문에서는 『법화경』에서 이 사종성문에 대응하는 경문을 찾아 그들의 성불 여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네 부류의 성문이 모두 성불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관건이 되는 것은 유가행파에서 성불할 수 없는 성문으로 분류한 취적성문(趣寂聲聞)의 성불 여부이다. 그러나 취적 성문에 관해서는 「화성유품」에서 아라한의 죽음 이후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성불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경전에 취적성문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으므로, 세친은 수행론적 관점이 반영된 취적성문이라는 용어를 종성론적 색채가 투영된 결정성문으로 변경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변경은 『법화경』의 '일체중생의 성불'이라는 명제와 유가행파의 '종성이론' 사이의 긴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법화경』의 일승(一乘)사상을 종성론적 관점에서 표현한다면 일종성(一種姓)이 될 것이다.


The One Vehicle doctrine of the Lotus Sutra is widely known as preaching the Buddhahood of all sentient beings. In this study, I review this topic, focusing on Vasubandhu's commentary (法華經論, Fa-huaching- lun).
In his commentary, Vasubandhu classifies the śrāvakas (disciples) of the Lotus Sutra into four types: śrāvakas who have turned away from the bodhicitta (退菩提心聲聞), śrāvakas whom buddhas and bodhisattvas have transformed into the shape of disciples (應化聲聞), arrogant (or self-conceited) śrāvakas (增上慢聲聞), and śrāvakas whose gotra is in a determinative state (決定聲聞). This categorization of four types of śrāvakas is a revision of that presented in Yogācārabhūmi (瑜伽師地論). Vasubandhu explains that, among these four types of śrāvakas, the first two types received predictions directly from the Tathāgata, while the other two types of śrāvakas received predictions from the Sadāparibhūtabodhisattva (常不輕菩薩).
In this paper, I attempt to find the scriptures corresponding to these four types in the Lotus Sutra and examine whether they attained Buddhahood. The result is confirmation that all four types of śrāvakas can attain Buddhahood. In particular, the key issue is the śrāvaka who proceeds solely toward peacefulness (趣寂聲聞), who is classified as unable to attain Buddhahood in the Yogācāra tradition. As for this type of śrāvaka, however, the process after the death of Arhats is revealed, and their attainment of Buddhahood is declared in the “Parable of the Phantom City” chapter (化城喩品). Because the scripture says that this type of śrāvaka can attain Buddhahood, it is assumed that Vasubandhu changed the term “the śrāvaka who proceeds solely toward peacefulness” to “the determinative śrāvaka,” which projects the color of the gotra theory more clearly. This change can be seen as reflecting the tension between the Lotus Sutra's proposition of the enlightenment of all sentient beings and the gotra theory of the Yogācāra tradition. If the One Vehicle doctrine of the Lotus Sutra were expresse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gotra theory, it would be the One G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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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 대통사와 『법화경』 「화성유품」 신앙

저자 : 조경철 ( Jo Gyung-cheol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7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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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대통사는『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이 대통 원년(527)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웅진에 세웠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단순히 신라법흥왕을 백제 성왕으로 바꾸어 이해하고 있다. 대통을 양무제의 연호로 보았다. 필자는 예전 대통사는 무령왕의 3년 빈상이 끝나는 525년 무렵무령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고 절 이름의 대통은 『법화경』 「화성유품」의 대통불로 보았다. 「화성유품」에 의하면 전륜성왕 - 대통불[위덕세존] - 법왕/사택지적으로 이어지는데, 백제에서는 성왕 - 위덕왕 - 법왕으로 이어지고 대표적인 법화신앙자인 대좌평 사택지적이 있었다. 대통불에게는 16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출가하여 8방에 둘씩 16부처가 된다.
이 글에서는 양나라 무제의 '대통' 연호를 따서 527년 대통사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백제에서는 백제에 전륜성왕의 성왕이 있었고 불교에 돈독한 위덕왕과 법왕이 있었고 사택지적이란 인물이 있었다는 데서 ≪대통사≫가 『법화경』 「화성유품」의 대통불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백제는 대통불의 계보를 백제 왕실에 적용하여 왕권의 신성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한편 웅진시대 처음으로 연꽃 문양의 연잎 개수가 8개인 것과 16개인 것이 등장하고 사비시기 각 잎마다 2개씩 갈라진 8(x2=16)엽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를 8방에 둘씩 배치된 16부처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였다.


Baekje Daetongsa is said to have been built in Ungjin by King Beopheung of Silla in the first year(527) of Daetong era reign for the Emperor Wu of the Yang Dynasty, according to 「The Samguk Yusa」. Most People understand that King Beopheung of Silla is simply replaced with King Seong of Baekje. Daetong was regarded as the era name of the Emperor Wu. In response, I believe that Daetongsa Temple was built to pray for King Muryeong's rest in 525, when King Muryeong's three-year funeral was over, and that the name of the temple was derived from the Daetongbul of _The Lotus Sutra_ 「Hwaseong Ryupum」.
According to 「Hwaseong Ryupum」, King Jeonlyunseongwang - Daetongbul [World Honored Widok] - King Seong / Sataek Jijeok, in Baekje, it leads to King Seong - King Wideok - King Beop, and there was Daejwapyeong Sataek-Jijeok a representative Beophwa devotee. It is said that Daetongbul had 16 sons, and they later became 16 Buddhas.
In this article, even if Daetongsa was built in 527 after the era of Emperor Wu of the Yang Dynasty, Daetongsa was built in 527, but in Baekje, there was King Seong of Jeonryunseongwang, King Wideok and King Beop who were strong in Buddhism, and there was a person named Sataek-jijeok. By applying the genealogy of Daetongbul to the royal family of Baekje, it was intended to preserve the sanctity of the royal authority.
Meanwhile, for the first time in the Woongjin and Sabi period, eight lotus leaves appeared in the lotus pattern, and each leaf splits by two, taking the form of 8(8×2). This was interpreted to symbolize 16 Buddh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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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원효의 『법화경』 삼거가와 사거가의 논쟁에 대한 관점-『법화종요』를 중심으로-

저자 : 이병욱 ( Lee¸ Byung-wook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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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원효의 『법화경』 삼거가(三車家)와 사거가(四車家)에 대한 관점을 검토하였다. 『법화경』의 중요내용 가운데 하나가 삼승의 가르침이 궁극에는 일승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비유품」에서는 비유를 통해서 다시 설명하는데, 여기에 대승을 비유한 '소의 수레'와 일승을 비유한 '큰 흰 소의 수레가 등장한다. 중국의 여러 사상가들에게 '소의 수레'와 '큰 흰 소의 수레'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논쟁이 생겼다. 원효는 『법화종요』에서 이 논쟁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원효는 화쟁사상적 근거로서 말에 집착하지 않을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서 3가지 화쟁의 견해를 주장한다. 첫째, 통(通)과 별(別)의 관점에서 화쟁하는 것이다. 이는 삼거가와 사거가의 견해가 일승을 인정하는 것과 이승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삼거가의 관점에서 화쟁하는 것이다. 이는 성문과 연각이 실제가 아닌 점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고, 이 점에서 삼거가와 사거가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통교삼승'과 '별교삼승'으로 구분해서 화쟁하는 것이다. 삼거가의 주장은 '통교삼승'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고, 사거가의 주장은 '별교삼승'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삼거가와 사거가의 주장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전개된 것이므로 서로 충돌한다고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효는 3가지 화쟁의 견해를 제시하면서도 셋째의 견해에 비중을 두고 있고, 또 셋째 견해 가운데서도 '별교삼승'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원효는 '별교삼승'의 관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원효는 삼승의 인과(因果)가 일승으로 돌아가는 것을 4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별교삼승의 개념에 '인승'과 '천승'이 포함되도록 한다.


In this article, I will study on Wonhyo's perspective of Lotus sutra's three vehicle adherents and four vehicle adherents. One of the important contents of Lotus sutra is to unite three into one(會三歸一) which in Lotus sutra's the chapter of parables explains through parable of bullock cart and great white-bullock cart. The various Buddhist thinkers in China argued whether bullock cart and great white-bullock cart is the same or different. In Doctrinal Essentials of the Lotus Sutra(法華宗要), Wonhyo presents his perspective on this debate. First, Wonhyo presents not to be attached with words as the basis of harmonization thought. And Wonhyo insists three harmonization. First, three vehicle adherents and four vehicle adherents are not different in that they admit one vehicle and they do not admit two vehicle. Second, three vehicle adherents and four vehicle adherents are not different in that two vehicle is not absolute reality. Third, three vehicle adherents and four vehicle adherents are presented from different perspective. So we do not think of them as to be in conflict. Three vehicle adherents is presented from shared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 and four vehicle adherents is presented from distinct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 Wonhyo emphasizes distinct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 in third view while presents three harmonization like this. So Wonhyo explains distinct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 in detail. And Wonhyo let human vehicle and gods vehicle be included in distinct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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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이초(最澄)의 법화사상-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한 것-

저자 : 원영상 ( Won¸ Yong-sa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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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 후반에 유입된 천태종은 중세 신불교 탄생의 요람이 된다. 천태종의 역할은 사실상 근현대 다양한 불교계 신종교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일본불교의 저변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종합불교로서 신앙과 수행의 폭넓은 세계를 갖고 있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천태종은 사이초(最澄, 766~822)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는 중국에 유학하여 원ㆍ선ㆍ계ㆍ밀(圓禪戒密)의 4종(宗)을 계승했다. 귀국해서는 밀교를 도입하여 완전한 종합불교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국가로부터 독립된 독자적 대승교단 구축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천태종을 일본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사이초는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나라(奈良)를 중심으로 한 남도불교(南都佛敎)의 대표주자인 도쿠이츠(德一)와의 논쟁이다. 불성론(佛性論)을 둘러싼 논쟁에서 사이초는 심혈을 기울여『법화경』의 정신에 의거한 일승(一乘)사상을 주장했다. 말년에 나온 많은 저술은 이러한 법화사상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핵심은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개성불도(皆成佛道) 사상이다. 일본 불교의 역사를 놓고 본다면, 결국 사이초가 주장한 법화사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후이기는 하지만, 기성불교계와 국가불교로부터 독립을 성취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밀교와 더불어 종합불교의 양축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이초는 법화사상에 기반한 수행체계를 통해 대승불교의 정신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그가 「산가학생식(山家學生式)」에서 “나라의 보물을 무엇인가. 그 보물은 도심(道心)이다. 도심 있는 사람을 국보라고 한다”라고 한 것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도심은 바로 대승불교의 보살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비예산(比叡山)에 학당(學堂)을 세우고 대승의 계율을 확립했다. 후대에 사이초의 법화종단은 그가 대립했던 기성불교계와 마찬가지로 왕권과 밀착하고 마침내 분열되기는 했지만, 여러 조사들에 의해 시대를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 불교의 사상적 저수지 역할을 해내고 있다.


The Tientai Sect introduced to Japan in the latter half of the ancient Japanese times became the cradle of the medieval New Buddhism. In fact, the role of the Tientai Sect has been very strong in the base of Japanese Buddhism until various new religions of the Buddhist world have appeared in recent and modern times. It has had a great effect on them because it has the wide world of religious belief and asceticism as organized Buddhism. This Japanese Tientai Sect was established by Saichō (最澄). He studied in China and inherited 4 religions (宗) of Won, Seon, Gye, and Mil (圓禪戒密). After returning to Japan, he tried to create complete organized Buddhism by introducing Esoteric Buddhism. He also made efforts to build an independent religious body from the state during life.
Saichō was up against many brick walls in the process to settle the Tientai Sect in Japan. A representative event is a dispute with Dokuits (德一) who was a leader of Namdo Buddhism (南都佛敎) which focused on Nara (奈良).
In the dispute surrounding the Buddha-nature Treatise in four volumes (佛性論), Saichō was devoted to argue thought of One-Vehicle (一乘) based on the spirit of 『Lotus Sutra』. A lot of writing published in his later years advocated this thought of lotus blossom. The key point is thought of Gaeseongbuldo (皆成佛道) that everybody can attain the Buddhahood. Considering history of Japanese Buddhism, it can eventually be thought to be a victory of thought of lotus blossom argued by Saichō. In the end, he could achieved independence from the existing Buddhist world and the state and formed both axes of organized Buddhism with Esoteric Buddhism even though they were done after his death.
Above all, Saichō tried to spread the spirit of Mahayana Buddhism through the discipline system based on thought of lotus blossom. This is well expressed through 「Sangahaksaengsik (山家學生式)」 that he said, "What is a treasure of the state? The treasure is mind of the way (道心). The person with mind of the way are called the treasure." This mind of the way well shows the spirit of Mahayana Bodhisattva. For this, he found a school (學堂) in Mount Hiei (比叡山) and established Mahayana precepts. Saichō's religious body of lotus blossom was later close to royal authority like the existing Buddhist world that he had opposed and was eventually divided. However, it has played a role of a reservoir of Japanese Buddhism until today as it was always and newly interpreted by several investigations according to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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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삼국유사』와 최치원(崔致遠)

저자 : 김희만 ( Kim¸ Heui-ma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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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삼국유사』에 보이는 최치원 관계기사를 분석하여, 『삼국유사』의 찬술자인 일연(一然)의 최치원 인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삼국유사』에는 최치원 관련 자료가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적극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작업을 통하여 『삼국유사』의 찬술자가 왜 최치원 관련 자료를 다른 인물의 자료보다 많이 삽입하였으며, 그것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였는지를 알아보았다.
먼저, 『삼국유사』 속의 최치원 관계기사를 검토하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추출하고, 『삼국사기』에 서술된 최치원 관계 자료와 대비하여 분석해 보았다. 이를 통해 『삼국사기』 관계 자료는 최치원에 '대한(about)' 서술 위주라면, 『삼국유사』 관계기사는 최치원에 '의한(by)' 논지 전개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었다. 즉, 일연은 『삼국유사』를 찬술하면서 의도적으로 최치원 관련 자료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일연이 최치원의 말을 원용하면서 『삼국유사』의 내용은 더욱 폭넓게 찬술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연의 역사서술 태도가 유연하였기 때문이다. 일연은 불교 승려였지만, 유학(儒學)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최치원 관련 자료를 중시하여, 활용한 것이 바로 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치원은 중국에서 유학을 공부한 학자였지만, 귀국 후 왕명으로 불교 관련 비문, 특히 사산비명(四山碑銘) 등을 작성하는 등 문장가로 활약하였다. 그러므로 일연에게 있어 최치원은 유학자이면서 불교사에 정통한 인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최치원에 대한 인식이 『삼국유사』의 찬술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일연의 최치원 자료 활용과 그 인식을 규명해 보기 위해서 『삼국유사』 관계기사의 의미 또는 성격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았다. 최치원 관련 자료를 『삼국유사』에 굳이 수록하여 무엇을 밝히려고 했는 지에 대하여 검증을 시도한 것이다. 사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최치원을 한국 고대사회 및 불교와 유교에 정통하였다는 측면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기록하게 된 것이 최치원 관련 자료이며, 일연은 그 기반 위에서 『삼국유사』의 해당 부분을 저술하였던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삼국유사』의 성격을 유교와 상대되는 불교 또는 신이사관(神異史觀) 등으로 평가해 왔지만, 이 글에서는 최치원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분석한 결과, 『삼국유사』의 찬술자 일연은 불교와 유교를 접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폭넓은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할 수 있었다.


In this article, we analyzed the articles related to Choi Chi-won in 『Samgukyusa(三國遺事)』, and looked into the recognition of Choi Chiwon of Ilyeon(一然), a author of 『Samgukyusa』. In 『Samgukyusa』, there are more materials related to Choi Chi-won than other figures, but no active review has been made so far. Through this study, we investigated why the proponent of 『Samgukyusa』 inserted more materials related to Choi Chi-won than other figures, and what he was trying to convey as a result.
First, in order to examine the articles related to Choi Chi-won in 『Samgukyusa』, related data were extracted and analyzed in comparison with the data related to Choi Chi-won described in 『Samguksagi(三國史記』.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while the documents related to 『Samguksagi』 focused on 'about' to Choi Chi-won, the articles related to 『Samgukyusa』 were developed 'by' by Choi Chi-won. In other words, Ilyeon intentionally used materials related to Choi Chi-won while writing 『Samgukyusa』.
The contents of 『Samgukyusa』 could be more widely recited by Ilyeon citing Choi Chi-won's words, and this was possible because of Ilyeon's flexible attitude in writing history. Ilyeon was a Buddhist monk, but it is thought that he had an attitude to Accept Confucianism. The fact that he put importance on Choi Chi-won-related materials and utilized them shows that attitude. Choi Chi-won was a scholar who studied Confucianism in China, but after returning to Korea, he was active as a literary writer by writing Buddhist inscriptions, especially Sasanbimyeong(四山碑銘). Therefore, for Ilyeon, Choi Chi-won could be regarded as a Confucian scholar and well-versed in Buddhist history. I think that this perception of Choi Chi-won was reflected in the hymns of 『Samgukyusa』.
Next, the meaning or nature of the articles related to 『Samgukyusa』 was examined in more detail in order to investigate the use of Choi Chi-Won's data and its recognition in Ilyeon. It was an attempt to verify what he was trying to reveal by including the data related to Choi Chi-won in 『Samgukyusa』. In fact, in 『Samgukyusa』, Ilyeon acknowledged that Choi Chi-won was well versed in Korean ancient society, Buddhism and Confucianism, and actively reflected and recorded this. He wrote that part. Existing studies have evaluated the characteristics of Ilyeon as Buddhism or historical consciousness of God(神異史觀) as opposed to Confucianism. Considering that the intention to articulate is reflected, it could be suggested that a new understanding and a broader approach are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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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종 즉위 초 종친부 강화와 경복궁 내 제례 공간의 확장

저자 : 이민아 ( Lee¸ Min-ah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5-20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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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즉위와 함께 흥선대원군 주도로 경복궁이 중건되었다. 중건 경복궁은 조선 초 경복궁의 재현이 아니라 조선후기에 축적된 의례 전통이 발현된 결과물이었다. 의례 공간 중에서도 제례 공간이 확대되었다는 점은 중건 경복궁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제례 공간은 흉례(凶禮)를 위한 빈전(殯殿) ㆍ혼전(魂殿) 권역과 선왕의 어진을 봉안한 길례(吉禮) 공간인 선원전(璿源殿) 권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때 빈전, 혼전 및 선원전은 모두 종친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종친부의 정치적 권한을 확대함과 동시에 종친부 건물을 확장하였다. 종친부는 광화문 앞 의정부ㆍ삼군부와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권역을 형성했다. 종친부 내 핵심 건물은 흥선대원군의 집무실인 아재당(我在堂)과 함께 철종의 어진을 봉안한 천한전(天漢殿)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선원전에서 철종을 배제하는 대신 종친부 내에 새로운 철종 어진봉안처, 천한 전을 건립하였다. 이로써 선원전 권역이 궐 밖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와 함께 궁궐 내 빈전 및 혼전 등 흉례 공간이 궁궐 북서쪽 권역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 공간은 전체 궁궐면적의 1/5 가량을 차지하지만 건물 사이의 밀도는 매우 낮았다. 이는 중건 경복궁 내에서 흉례 공간이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선원전 및 빈전ㆍ혼전 공간은 종친부가 의례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소렴과 대렴 의식 등 흉례 의식이 진행될 때 종친이 백관과 함께 거애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국초부터 정해진 의례 절차였다. 진향 절차에서 종친은 항상 문무백관 앞에서 의식을 진행하기 때문에 빈전ㆍ혼전 공간은 자연스럽게 위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종친과 문무백관 다수가 의식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더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야 했으며, 종친이 의례를 주도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강조된 것이다. 이와 같이 중건 경복궁은 종친부 강화라는 맥락에서 종친부 공간과 연동해서 해석해야만 그 특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The ceremonial space is an important component of the palace. In particular, the ritual space was a symbolic space expressing the ideology of 'filial piety(孝)'. When Gyeongbokgung was reconstructed, the ceremonial space was expanded. The ceremonial spaces of Gyeongbokgung Palace, Binjeon(殯殿), Honjeon(魂殿), and Seonwonjeon(璿源殿) are all closely connected with Jongchinbu(宗親府).
When Heungseon Daewongun(興宣大院君) reconstructed Gyeongbokgung Palace, he expanded the Jongchinbu building. Jongchinbu is close to Uijeongbu(議政府), Samgunbu(三軍府) and Gyeongbokgung Palace(景福宮). All these spaces are connected. Ahjaedang is the office of Heungseon Daewongun, and Cheonhanjeon is the building where the portrait of King Cheoljong(哲宗) is enshrined. The portrait of King Cheoljong did not exist in the newly built Seonwonjeon Hall of Gyeongbokgung Palace. Instead, the Cheonhanjeon(天漢殿) was built to enshrin the portrait of King Cheoljong in Jongchinbu. In the end, the Seonwonjeon area was extended outside the palace through Cheonhanjeon. The Binjeon and Honjeon buildings are located in the northwest area of the palace. It occupies 20% of the total area of the palace. However, the density of each building was very low. As such, the ceremonial space occupied a high position in Gyeongbokgung Palace.
When performing the ritual, When performing the ritual, Jongchin stood in front of the king's servant. A hierarchy was formed in the sacrificial space. And because there were so many people in attendance, they needed more space.
When Heungseon Daewongun strengthened the Jongchinbu, the ancestral hall of Gyeongbokgung was expanded. The sacrificial space was emphasized because it was the space of Jong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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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평】『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 [강지은, 2021, 푸른역사]

저자 : 나종현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1-22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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