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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hought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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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8)~10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569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0호(2021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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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승우 시의 정신분석학적 고찰

저자 : 김미연 ( Kim Mi-ye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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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는 11권의 시집과 4권의 연구저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2012년엔 『시인 유승우』란 표제의 자서전도 출간했다. 유승우의 시세계는 11권의 시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3시집 『그리움 반짝이는 등불하나 켜들고』와 첫 저서 『한글시론』이 1983년 같은 해에 출간되었으며, 제 4시집 『나 있던 그 자리에』와 두 번째 저서인 『시문학파 연구』가 1989년에 출간되었으며, 제 4시집은 <믿음의 시선>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작 시집이 아닌 신앙시선집이다. 이 사실에서 유승우가 1979년에서 1989년까지의 10년 사이에 4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제3시집의 <하나·그림자 풀이굿> 외에는 시를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 창작은 시인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이것은 그의 시세계 특히 개인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암시한다.
유승우는 1966년 3월에서 1979년 2월까지는 한양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1979년 3월에 인천전문대학 교양국어 교수로 옮겼고, 다시 1980년 3월엔 인천대학교 교양국어 교수로 옮겼으며, 1981년에 인천대학교에 국어국문학과가 개설되면서,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자리 잡게 된다. 전공학과 교수의 책무는 전공과목의 강의이다. 유승우는 시론을 강의하기 위해 1983년에 『한글시론』을 출간했으며, 시인론을 강의하기 위해 1989년엔 『시문학파 연구』를 출간했다. 전공의 강의를 위해 저서를 출간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심리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제3시집, 제4시집이란 명목으로 시집을 출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승우의 시세계는 제1시집의 어둠의식의 세계, 제2시집 『나비야 나비야』에서 제5시집 『달빛 연구』까지의 향일의식의 세계, 제7시집 『살과 뼈는 정직하다』에서 제8시집 『물에는 뼈가 없습니다』까지는 존재탐구의 세계이며, 제9시집 『어둠의 새끼들』과 제10시집 『어느 마루턱까지』는 자연과의 교감을 형상화한 세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11시집은, “내가 금년에 80회 생일을 맞으면서, 지난 전쟁의 상처와 불구의식으로 멍든 초기의 숲에서부터 오늘의 거듭난 생명의 숲까지의 연작시를 모은 것이 『숲의 나라, 노래와 춤』이다. 슬프든 기쁘든 내 시는 내 영혼의 노래와 춤이다.”라는 '시인의 말'과 함께, 「한숲 유승우 연작시 모음」이란 제목으로 시집 뒷 표지에 제시한 글에서 보듯이 시선집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6.25라는 우리민족의 불행한 역사의 상처로 인해, '어둠과 불구의식'의 세계에서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빛의 세계로 올라온 것이 유승우의 시세계임을 살펴봤다. 그 결과 유승우 시인이 '외팔이 고아소년'이라는 불행의 상징에서 '문학박사 교수시인'이라는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정신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첫째가 시인이라는 자부심이었고, 그 둘째가 기독교라는 신앙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유승우는 그의 자서전에서, “외팔이 고아에게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라는 것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터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인이 되겠다는 고백에, 그런 외적조건이 무슨 상관이냐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승우와 사귄 현재의 아내를 만나고부터 유승우는 어둠의 골짜기에서 빛을 향해 올라왔다는 것이다. 유승우는 오늘날의 자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현실적으로는 아내의 헌신적인 돌봄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문단에서도 이들 부부야말로 대표적인 아름다운 잉꼬부부라고들 말한다.


Yoo, Seungwoo published 11 collections of poems and 4 study books. And he also did his autobiography titled 『Poet Yoo, Seungwoo』 in 2012. Yoo, Seungwoo's poetry world is composed of 11 collections of poems. By the way, his third collection of poems, 『Lighting a Lamp that Yearning Twinkles』 and his first book, 『Korean Poetics』 were published in the same year (1983) and his fourth collection of poems, 『Where I was』 and his second book, 『A Study on Simunhakpa』 were done in 1989. The fourth collection of poems is the selected poems of religious belief, not his new collection of poems as evidenced by the subtitle < The Viewpoint of Faith >. This fact has found that Yoo, Seungwoo published 4 books for 10 years from 1979 to 1989, but he could not write poetry except his third collection of poem, < One· Shadow Shaman Ritual >. Writing poetry is like life to poets. By the way, why? It implies that this is the very important issue in relation to his poetry world, especially, his personal affairs.
Yoo, Seungwoo was a teacher to teach Korean language at Hanyang Middle School from March 1966 to February 1979, a professor of Korean language as liberal arts at Junior College of Inchon in March 1979, and a professor of Korean language as liberal arts at Incheon National University in 1981 and then became a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Korean and Korean Literature as it was opened at Incheon National University in 1981. Major professors' duty is lectures of majors. Yoo, Seungwoo published 『Korean Poetics』 to teach poetics in 1983 and 『A Study on Simunhakp a』 to do discussions on poets in 1989. He published his collections of poems under the name of the third and fourth collections of poems to solve psychological burdens as a poet as he did books for major lectures. So Yoo, Seungwoo's poetry world can be found to embody darkness consciousness for the first collection of poems, anti-Japanese consciousness for the second collection of poems, 『Butterfly Butterfly』 to the fifth collection of poems, 『Moonlight Research』, research of the existence for the seventh collection of poems, 『Flesh and Bone are Honesty』 to the eighth collection of poems 『There Is No Bone in Water.』, and interaction with the nature for the ninth collection of poems, 『Sons of Darkness』 to the tenth collection of poems 『To the Top』. And the eleventh collection of poems, 『The Country of Forests, Songs and Dance』 can be found to be a form of his selected poems as presented in the back cover with the title, 「Collections of Serial Poetries by Hansup Yoo, Seungwoo」, saying, "I collected serial poetries from the initial forest damaged by wounds and crippled consciousness of the past war to the present forest of life that was born again in 『The Country of Forests, Songs and Dance』 celebrating his 80th birthday this year. My poems are my soul's songs and dance regardless of being happy or sad."
It examined Yoo Seungwoo's poetry world that moved from the world of 'darkness and crippled consciousness' due to wounds of Korean unhappy history called the Korean War to the world of light through 'interaction with the nature' called 'Conversation with God'. The result has found to be Yoo, Seungwoo's psychological background from a symbol of bad luck called 'a one-armed orphan boy' to 'a doctor of literature, professor, and poet.' First, it was the poet's pride. Second, it was faith called Christianity. Yoo, Seungwoo said that his biggest concern was 'who would marry the one-armed orphan' since puberty in his autobiography. After meeting his wife who heard his words to be a poet, said that his external conditions did not matter, and dated him in defiance of her parents' opposition, Yoo, Seungwoo moved from the valley of darkness to light. He confesses that he is now by the grace of God and realistically his wife's devoted care. And the literary circle says that this couple is a representative beautiful devoted couple.

2반계 유형원 유적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승대 ( Kim Seung-d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7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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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유형원은 실학의 비조로 그가 부안 우반동에서 남긴 『반계수록』은 새로운 조선 사회로의 개혁을 주창하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학자 연구에 있어 상대적으로 부족한 '반계학' 연구의 한 축으로 진행되는 반계 유형원의 유적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반계 유형원의 유적은 그의 삶의 족적과 남겨진 유산을 중심으로 몇 가지 성격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반계 유형원 삶의 중심무대였던 부안 우반동(반계서당, 반계고택, 군사 훈련장, 정사암터), 둘째 반계의 휴식처이자 사회·경제적 활동영역으로 확인되는 부안의 변산 자락(변산 일원, 우금암 암각서, 동진·상서농장터, 김서경 묘소, 송시추 묘소), 셋째 반계의 가계와 학맥 관련 유적(백광저·신태제 묘소), 하정 유관 묘소, 김세렴 묘소, 이광정 신도비, 휴정서원, 유문원·유제원 묘소, 배상유 묘소, 미수 허목 묘소), 반계 사후에 조성된 추숭 관련 유적(반계 유형원 묘소, 동림서원터, 반계수록 교정처, 풍영정) 등을 들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반계의 유적은 총 22개소의 유적으로 정리된다. 반계의 유적은 유적지별로 향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적 측면의 다양한 과제가 도출된다. 학술적인 고증 연구, 주변 정비, 문화재 지정 검토, 관광 자원화, 스토리텔링 등이다. 특히, '부안의 반계길', '반계 유적지 답사길' 조성은 향후 문화콘텐츠를 활용에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된다.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was a pioneer of realism(實學) and had written the Banguesoorok(磻溪隧錄) in Buan which is arepresentative masterpiece of assessment advocated a reform of a new society.
The study of him is 'Bangyehak(磻溪學).' A full-fledged study of this can start from the remains he left behind. There are several pieces of information about his remains. First, the Uban-dong in Buan, Jeolla-do is the central region. There was an old house in Uban-dong where he lived. There is also a study room where he taught students. There are places where he trained the army.
Second, the Buan Byeonsan area as a resting place for his life. This is where the beautiful scenery and Sanha are located. It is also where his economic foundation is. He owned a farm here. There was also a social foundation. There is also a cultural heritage of his friends and disciples.
Third, it is a place related to his family and school relationship. It is a place related to his descendants, friends, teachers, etc. Fourth, it is a place where he misses and respects him after his death. A total of 22 sites have been identified so far. Various challenges ahead will be derived for this. They include academic research, arrangement of surrounding areas, cultural assets, tourism resources, and storytelling. In particular, plans to make 'Bangue-gil' useful are also considered.

3순조 후반기의 성균관과 유생에 대한 시각 - 유소에 대한 비답을 중심으로 -

저자 : 장재천 ( Chang Jae-che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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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들의 성균관에 대한 시각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세종과 같이 성균관 교육을 중시하는 쪽이었고, 또 하나는 연산군처럼 경시하는 쪽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그런저런 국왕들로 중시도 경시도 아닌 그 중간 수준이었다.
본고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심했던 순조 재위기를 택해 전반기 연구에 이어 이번에는 후반기를 연구하였으며, 성균관 상소나 성균관 유생들의 유소에 대한 순조의 비답을 통해 순조의 성균관과 성균관 유생들에 대한 시각을 살펴보았다. 그 시각은 곧 순조의 교육관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인재양성에 대한 애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많은 문헌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비답을 통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순조 재위기가 전반이든 후반이든 세도정치가 워낙 심해서 순조가 과연 주관적 견해를 피력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비답의 전후맥락과 아울러 소신이 있는 내용을 말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순조의 생각을 추측할 수가 있었다. 전반기에는 순조가 성균관과 성균관 유생들을 그다지 존중하지도 않았고 사실상 거의 무시한 결과로 나왔었는데, 순조의 후반기에도 전반기처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In the Joseon Dynasty, Sungkyunkwan was clearly the nation's leading educational institution, and it was a place where people from all over the country gathered to cultivate the backbone of Korea. For example, some kings, such as Sejong, Seongjong, and Jungjong, also tried to promote Sungkyunkwan education, but on the contrary, kings like Yeonsangun, rather, suppressed Sungkyunkwan by virtue of criticizing the king. We are well aware of the historical facts that they have made or even devastated Yusang(儒生) and nearly devastated them. If so, there will be many kings who are not this or not, that is, indifferent or little effort. This paper will first look at the Sungkyunkwan and Yusang who are studying there. However, it is important to keep in mind that the Joseon Dynasty, as we know well, was a Subordinates(臣權) era, in fact, the power of kings was not absolute except for the minority. Nevertheless, kings should not always be considered scarecrows. No matter how severe the presidency was in the world of officials, the term “Subordinates” could not be used. Subordinates and Sedo(勢道) politics are too different concepts. In this context, Sunjo considered what he thought of Sungkyunkwan and Yusang in his own way, and found that Sunjo did not respect and almost ignored Sungkyunkwan and Yusang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4공자의 인(仁)사상과 효(孝)교육문화를 통한 인격·인성교육 정책방향(4)

저자 : 김익수 ( Kim Ik-soo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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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유사상이 있지만 중국 공자의 인(仁)사상과 효(孝)교육문화의 영향을 받아 우리 사상형성과 가치관 교육에 큰 힘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자의 인사상은 매우 다의적(多義的)이지만 최고의 핵심사상은 인이요, 효교육 사상도 그 근본적 배경이 『주역』계사전에 잘 명시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의 공자의 인사상은 선생의 제자인 안회, 중궁, 사마우, 번지와의 인에 대한 질문에 답한 것이다. 그리고 공자의 주요 가치 덕목인 효에 대한 몇 편의 글이 곁들여졌다.
이제 우리나라의 과제는 우리 사상과 문화교육의 뿌리를 되찾아 정착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근래 우리 학계의 동향은 남의 나라의 빈곤한 철학과 천박한 문화를 비판없이 수용했었다. 이제는 우리 사상과 문화를 제자리를 찾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계인은 가장 한국적인 우리사상과 정신문화를 배우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주체를 살리고 우리 사상과 정신문화를 되살리기 위하여 과감한 혁신성장으로 교육발전과 국민총화를 이루고 우리나라에 먼저 정착시키고 전 세계로 전개해 나가자.


Korea has its own thought. But our thought was formed and education of values was done being influenced by and taking great strength from Chinese Confucius' benevolence (仁) thought and filial piety (孝) educational culture.
Confucius' benevolence thought has very various meanings (多義的). But its core thought is benevolence (仁) and the basics of its educational thought of filial piety were specified in Commentary on the Appended Words of 『Zhou's Book of Changes』.
Confucius' benevolence thought in this study was about his answers to questions about benevolence by Yan Hui, Junggung, Samau, and Beonji who were his students. And several texts about filial piety, Confucius' cardinal virtue, were added to it.
Now, our main task is to regain the root of our thought and cultural education and make them settle.
Recently, for the trend of our academic circles, they accepted poor philosophy and culture of other countries without judgement.
Cosmopolitans try to learn our thought and spiritual culture that are the most Korean.
We should lead to national consensus and make it spread all over the world by drastic and innovative growth to save our people's main agent and regain our thought and spiritual culture.

5유가 경전에 나타난 효 관념 연구

저자 : 조민환 ( Jo Min-hwa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7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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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착된 농경사회에서 형성된 조상숭배와 혈연의 연속성 강조 및 종법제도 하의 가국동체(家國同體) 관념에서 형성된 효 관념은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국가사회의 안정과 화목을 추구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끼친 점이 있다. 이런 효 관념 형성에는 유가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담겨 있다. 
효는 기본적으로 부모가 평소 지향한 뜻과 마음을 존숭하며 따르는 것이면서 아울러 부모님이 잘난 자식을 낳았다는 자랑거리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부모를 욕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에 대한 '양지(養志)'를 강조하면서 공경함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음식봉양을 통한 효행을 '기른다[養]'는 차원으로 이해한 것은 효행에서의 공경함이 갖는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구체적 실천과 관련된 효의 행위는 모두 예에 맞아야 하였다.
유가가 강조한 효와 '불효(不孝)' 및 '비효(非孝)'는 살아있는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에 모두 적용되었다. 불효와 비효 사유는 그만큼 참된 효를 실천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점은 천자로부터 서인들에까지 모두 적용되었는데, 그 바탕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이루는데 효가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였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런 사유는 천자나 한 개인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선왕 및 부모라는 존재와 연계하여 이해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집단속의 개인'이란 점도 보여준다.
증자(曾子)는 효는 어떤 내용으로 실천했느냐에 따라 '대효(大孝)', '중효(中孝)', '하효(下孝)'로 구분하는데, 특히 순(舜)의 효는 '대효',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의 효는 '달효(達孝)'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효에 대한 차별화된 의미를 부여하였다. 효에 관한 다양한 사유 중에 '삼불효(三不孝)'를 말하면서 가운데 '후사(後嗣)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無後]'을 가장 큰 불효라고 여긴 것에는 가부장적 차원에서 혈연의 연속성을 중시한다는 사유가 담겨 있다.
사친의 효를 사군의 충으로 연결시킨 사유는 가국동체에 의한 종법제도가 작동한 결과다. 부모에 대한 효라도 제왕이 행하는 효와 일반 백성들이 행하는 효는 달랐다. 이 경우 제왕이 행하는 효행은 단순 제왕 그 자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하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런 점에서 유가에서는 제왕의 효가 갖는 치국·평천하의 효용성을 강조하였다.
이상 살펴본 다양한 차원의 효를 실천했을 때 나타난 효용성은 종교적 측면, 윤리적 측면, 정치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모든 부분에 적용되었고, 이에 유가의 효 이념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적용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결국 종법적 동형구조체에서 출발하여 전통적인 덕치(德治) 이외의 효치(孝治)를 대일통(大一統)을 이루고자 하는 사유가 담겨 있고, 이 같은 효관념을 이해하는 것은 종법적 동형구조체의 봉건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임을 알 수 있다.


An idea of filial piety was created from the idea that families and countries are the same (家國同體) under the descent-line heir system and as ancestor worship and continuity of blood ties created in agrarian society settled in the past were emphasized. The idea of filial piety that began from a family had a positive effect on the stability and harmony of countries' society. The creation of this idea of filial piety includes a desirable human character that School of Ru pursued. Basically, filial piety is to respect and follow will and hearts of parents who usually pursue and make them proud of and happy for their good children who were born from them. In addition, Children must not bring shame on or risk their parents. The point that filial piety was understood at the level of emphasizing 'liang-zhi (養志)' for parents and 'practicing [養]' filial behavior through the provision of meals without respect is to emphasize the importance of respect in filial behavior. Filial behavior related to specific action must match manners. Filial piety, 'lack of filial piety (不孝)', and 'non-filial piety (非孝)' emphasized by School of Ru were applied to both of living and dead parents. Reason of lack of filial piety and non-filial piety means to be difficult to practice true filial piety. This point was applied to all of sons of heaven and commoners. It shows that filial piety was a powerful mechanism for improving yourself, establishing harmony in the family, governing the realm, and making the world peaceful in it. In addition, this reason shows so-called 'individuals in a group' in that it is understood being always connected to late kings and parents, not that sons of heaven or individuals independently exist. Zengzi (曾子) classified filial piety into 'great filial piety (大孝)', 'middle filial piety (中孝)', and 'low filial piety (下孝)' depending on practicing them for what contents. Especially, filial piety of Shun (舜) had differentiated meanings from others by using terms of 'great filial piety' and King Wan (文王). And filial piety of Duke of Zhou (周公) also had differentiated meanings from others by using terms of 'constant filial piety (達孝)'. Among various types of reason about filial piety, 'three types of lack of filial piety (三不孝)' are mentioned and the point that regards 'not having sons [無後] to carry on families' names (後嗣)' as the greatest lack of filial piety means to consider continuity of blood ties at the patriarchal level. Reason that tending parents with filial piety is connected to serving a sovereign with loyalty is a result that the descent-line heir system by the idea that families and countries are the same worked. For tending parents with filial piety, emperors' was different from ordinary people's. In this case, emperors' filial piety had an effect on the people in the world as well as themselves. In this sense, School of Ru emphasized efficiency of governing the realm and making the world peaceful in emperors' filial piety. Efficiency shown when practicing various levels of filial piety was applied to all the parts that men led a life including religious, ethical, political, and educational aspects. Accordingly the ideal of filial piety by School of Ru used its strong influence on all of individuals and countries. Eventually, filial piety includes reason to unite(大一統) Governing through Family Reverence (孝治) with traditional rule b virtue (德治) by beginning from the same structure of the descent-line heir system. And understanding this idea of filial piety can be found to be the core to understand feudal society of the same structure of the descent-line heir system.

616, 17세기 충청 유교 학문 발전 영향 요인 연구

저자 : 김창경 ( Kim Chang-gyu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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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은 그 중심을 흐르는 금강(錦江)의 물줄기를 따라, 예로부터 사람들의 주거지가 발달해 왔다. 금강은 지리산으로부터 발원하여 대청호로 유입하고, 대전의 중심을 감아 돌아서 조치원의 부강에서 충북지역에서 흘러내린 미호천(美湖川)과 만나 금강을 형성한다. 이러한 금강은 세종과 공주, 부여를 거쳐, 논산 강경포구를 지나 장항과 군산의 서해바다로 흘러나간다. 16, 7세기 충남은 육로보다 편리한 금강 물길을 따라 교통수단이 발달하였고, 그에 따른 조세 및 운송교역 등 모든 삶의 수단이 수로를 통해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유교학문의 발전도 금강의 물길을 따라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16세기에서 17세기로 이어지는 충청 유교학문의 발전이, 이지함과 서기, 김장생과 그 뒤를 이은 충청5현(송준길, 송시열, 이유태, 유계, 윤선거)의 학문적 배경과 강학의 터전이, 모두 금강물길 옆에 자리하고 있음에서 살필 수 있다. 이들은 기호유학의 학맥을 형성하여 오늘날까지도 한국유학사의 한 획을 이루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금강의 물길이라는 영향요인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하겠다.
본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이와 같은 금강의 물길에 따른 16, 17세기 충청지역 유교학문의 발전영향 요인을 궁구하여, 충청지역 유교문화 콘텐츠 발전을 위한 접근방법으로 활용하는 현대적 의의를 모색하고자 한다. 아울러 오늘날 청소년교육에서 유교학문의 필요성을 제고하는 문화적 접근방법의 하나로써 제시하고자 한다.


The residential area in Chungcheong region has long been developed along the stream of GeumGang(Geum River) which runs through its center. GeumGang originated from JiriSan (Jiri Mountain) flows into DaecheongHo (Daecheong Lake) and meets MihoCheon(Miho Lake) which runs down in North Chungcheong region at BuGang(Bu River) in Jochiwon after turning around the center of Daejeon. The GeumGang runs through Sejong, Gongju, Buyeo and flows into the West Sea where Janghang and Gunsan are located nearby while passing by Ganggyeong Port in Nons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developed a means of transportation along the GeumGang, which was more convenient than land route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Accordingly, most of method of living including tax, transportation and trade might have been developed through waterways.
In addition, the contemporary Confucian study was developed along the flowing of GeumGang. Its development in Chungcheong Province, in other words, the academic background and base of educational pursuit of Tojeong Yi, Ji-ham, Gocheong Seo Gi, Sagye Kim, Jang-saeng and five succeeding scholars (Song, Jun-gil, Song, Si-yeol, Yi, Yu-tae, Yu, Gye, Yun, Seon-geo) can be seen to have occurred alongside with the GeumGang from the 16th century to the 17th century. We cannot overlook the influencing factors of GeumGang area as their Confucian school called Giho Yuhak has played a prominent role in Confucianism history in Korea.
The ultimat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ek the influencing factors of the development of Confucian study in Chungcheong region nearby the GuemGang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and to pursue modern significance by using them as an approaching method for the contents of Confucian culture development. Additionally, I intend to present it as a cultural approach to enhance the necessity of Confucian learning in today's youth education.

7증주진교태백경에 반영된 상고사회인의 세계관과 삶

저자 : 박선식 ( Park Sun-sik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3-23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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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기(李沂,1848~1909)의 소작으로 알려진 『증주진교태백경(增註眞敎太白經)』(이하 증진태백경)을 통해 상고사회인의 세계관과 삶에 관하여 소략한 검토를 시도하였다. 증진태백경의 저자인 해학 이기는 한말의 우국적 활동가였으며, 왕성한 저작을 남긴 문사이기도 했다.
필자는 해학이기의 저작인 증진태백경 속에서 ➊ 이중적 존재체로서의 '진군'개념의 설정과 제시 ➋ 진군유언 ➌ 사도(師道)와 홍범(洪範) ➍ 각별한 지리·지세관의 존재 등을 적시함으로써 증진태백경 속에서 읽혀지는 상고사회와 연관된 당시 거주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코드를 제시해보았다.
필자는 또한 ➊ 기초 농경생활의 전개 ➋ 수렵과 채집활동 ➌ 직능자의 구분에 따른 역할과 노동의 분장 ➍ 이상적 도읍지의 조영 ➎ 문화의 왕성한 전파 행위 ➏ 민간신앙의 존재와 서기전 6세기경의 국제적 신앙전개 등을 거론하며 상고사회인들이 펼쳤을 삶의 실제상을 적시해보았다.
증진태백경은 일종의 경전처럼 지어진 저작물의 특징 때문에 상고사회인들의 세계관을 다소 철학적 또는 관념적으로 거론한 측면이 있지만 나름대로 한민족의 사상성과 문화적 지향성을 엿보게 하는 의미를 함께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고사회인의 삶을 적시한 결과 비교적 근래의 학문적 조사결과와 크게 어긋나기 보다는 자료적 보안작업이나 비교를 통한 구체적인 오류의 여과를 걸러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후려의 대외적 국제적인 원거리 전도행위와 같은 문제는 한국상고신앙문화사적 측면에서 매우 소중하고도 돌연한 내용이기에 향후의 관련한 융합적 검토가 뒤따르기를 기대해본다.


In Yi Gi(李沂)'s work(증주진교태백경), he established and presented the concept of "Jin-gun(眞君)" as a dual being ' presented the words left by Jin-gun(眞君有言), presented the principles of teachers(師道) and Hong-beom(洪範), and presented the perspective of the people who lived in the work(증주진교태백경).
I also mentioned the development of basic farming life, hunter-gatherer activities, division of roles and labor, the existence of folk beliefs, and the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faith in the 6th century BC.
Yi Gi(李沂)'s scriptures (증주진교태백경) are characterized as a kind of scripture, which refers to the worldview of the appellate society somewhat philosophically or ideologically. However, it also reflects the meaning of giving a glimpse into the thoughtfulness and cultural orientation of Koreans. In addition, after examining the lives of appellate society, it is relatively not inconsistent with recent academic research results, but I think it is appropriate to filter out specific errors through data security work or comparison. However, issues such as the spread of international long-distance faith to the outside world are very valuable and abrupt in terms of the cultural history of Korean appeals. It is hoped that a comprehensive review will follow.

8김집의 실용적 풍수문화 수용 - 김집 묘역을 중심으로 -

저자 : 황종태 ( Hwang Jong-T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5-27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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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 중기 김집의'실용적 풍수문화 수용'과 묘역 공간배치에 대한 풍수관을 연구한 것이다. 김집은 아버지 김장생으로부터 가학을 이어받아 예학을 완성하였고 기호학파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기호학파는 성리학적 유교관에 앞서 풍수 요소를 우선하여'실용적 풍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장생이 유명을 달리하여 진잠현 성복리 학하동에 초장 후 10여 년 지나김집 주도로 7대 조모 양천 허씨 분묘 상위에 이장하였다.
영남 일부 지역에서 묘역 공간배치와 연관 지어 후손의 무덤이 선영 상위배치 현상을 두고'역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므로 기호학파의 묘역 배치 방법에 대한 이해충돌로 나타난다. 반면 풍수에서 혈의 증거를 벗어난 유리한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우선하므로'역장'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김집의 무덤이 입지 한 장소 외 일대는 효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사폐지로 확인되고 혈장은'신후지지'로 보인다. 혈장 생김새는'유혈'로 판단되며 특징은 현무정에서 내려오는 능선의 혈장 양측에 지각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선으로 내려오는 용과 좌선 물길로 하수사가 존재한다.
묘역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신도비는 역사적·시공간적으로 묘역에 대한 역할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무덤에 대한 자연과학적 해석을 하기 위하여 3축 지자기 측정기(HMR-2300, Honeywell)를 활용하여 실시하였다. 지자기장 측정은 명당의 요소 확인과 묘실의 지하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파장을 해석하는데 참고한다.
김집 무덤에 대한 측정에서 변동 폭의 편차는 5.0mG로 나타났고 부인 덕수 이 씨 무덤에 대한 변동 폭은 4.3mG로 관측되어 풍수 관점에서 요구하는 20mG 이내 범위에 해당되므로 지자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장소로 보인다. 제시한 두 개 무덤의 용·혈·사·수에 대한 지리사과 분석과 자연과학적 해석에서 풍수적으로 이치에 부합하는 장소이며 명당으로 해석된다.


This study is about the "acceptance of practical feng shui culture" of Kim Jip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feng shui view on the arrangement of the graveyard space. Kim Jip inherited his family's learning from his father, Kim Jang-saeng, and completed his art studies and was a central figure of the Giho School. The Giho School seems to have embraced the “practical feng shui” prior to the Confucian Confucianism. After Kim Jang-saeng's death, he first built a tomb in Hakha-dong, Seongbok-ri, Jin Jam-hyun, and moved the tomb above the tomb of Heo, Yangcheon, the seventh grandmother, led by Kim Jip. In some areas of Yeongnam, the phenomenon in which the tombs of descendants are above the tombs of the ancestors in relation to the arrangement of the cemetery spaces in Yeongnam is called the "Yeogjang", and this appears as a conflict of interest in the method of arranging the cemetery of the Giho school. On the other hand, the term "Yeogjang" is not used because it takes precedence to select an advantageous location outside the evidence of hyeol in feng shui.
The area around Kim Jip's tomb was identified as Sapyeji, awarded by Hyoj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Hyeoljang appears to be “Shinfujiji”. The shape of Hyeoljang is judged as 'Yu-hyeol', and the characteristic is that the surface of the ground exists on both sides of the Hyeol of the ridgeline descending from Hyeonmujeong, and Hasusa exists as a form of a dragon that descends first and a waterway on the left. The monument in honor of the dead at the entrance of the cemetery has a high cultural value in its role in the graveyard historically and spatially. The triaxial geomagnetic meter (HMR-2300, Honeywell) was used to provide a natural scientific interpretation of the tomb. Geomagnetic field measurement is used to identify the elements of the famous place and to interpret various harmful wavelengths occurring in the basement of the tomb room. The variation in the width of the Kimjip tomb was 5.0 mG, and the variation in the wife Deoksu Lee's tomb was 4.3 mG, which is within the range of 20 mG required from the perspective of feng shui, so it seems to be a place that is rarely affected by local governments. It is a place that makes sense in terms of feng shui in geographic analysis and natural science interpretation of dragon, blood, death, and water of the two tombs presented, and is interpreted as a famou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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