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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hought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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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8)~105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586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0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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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明平孜 ( Pyoung-ja Myou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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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은 급변하던 18세기에 정치사적·실학사적·종교사적·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 논문은 이 중 문학사적 측면, 특히 금대의 시 창작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금대의 시 창작 배경에는 가학(家學) 중 특히 18세기 중후반의 문단을 주도했던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혜환과 금대는 일종의 파격시라 할 수 있는 육언시(六言詩)의 창작에 마음을 쏟았고, 공통적으로 개성을 강조하는 시풍을 견지하며 청신(淸新)의 품격을 추구하였다. 또한 육경(六經)과 역사서(歷史書)를 학문의 근간으로 삼아 당우·삼대의 시대의 사상을 이해하고 성인들의 치도 이념을 체득하여 요순지치(堯舜之治)·삼대지치(三代之治)를 회복하려 하였고, 경세의 관점에서 경세제민, 애민긍휼의 시들을 다수 창작하였다.
금대의 김화 유배 역시 금대의 시 창작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김화 유배가 안겨준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도리어 금대로 하여금 삶을 관조하며 현실을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 시로 승화되어 표현되었다. 금대는 정주 목사 시절에 20편 가까이 시를 지었고, 김화 유배 시기에 그가 남긴 시 작품 중 절반 가까운 시를 창작하였다. 김화(金化) 유배를 계기로 금대는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게 되면서, 그가 목도한 백성들의 현실을 백성의 입장에서 소리 높여 고발하였다.
금대의 시 창작활동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활발한 시사(詩社) 및 시회(詩會) 활동을 들 수 있다. 금대는 천수경(千壽慶)이 중심이 되어 만든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비롯하여 옥계시사(玉溪詩社)에서 활동하였다. 이 중 송석원시사는 규약을 정하고 시사를 결성하여 정기적인 시모임을 가졌던 시 공동체로서 금대는 이 모임을 계기로 다양한 시사(詩社) 또는 시회(詩會)에 가입하여 동인들과 시로서 교유하였다. 금대는 또 화산시사(華山詩社)나 채제공(蔡濟恭)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번리시사(樊里詩社)에도 참여하고 정약용이 문인들과 함께 만든 죽란시사(竹欄詩社)의 동인들과도 교유하였으며, 18인의 기로(耆老)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백사(白社)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 등 시사(詩社) 또는 시회(詩會) 활동을 하는 중에 다수의 시를 창작하였다.


Geumdae (錦帶) Lee Ga-hwan (李家煥, 1742~1801) was a figure positioned importantly in the 18th century when things were changing rapidly in the aspects of political history, Silhak history, religious history, or literary history. Among them, this thesis is aimed to examine the aspects of literary history, particularly the background of Geumdae's creation of poems.
The background of Geumdae's creation of poems was influenced by Gahak (家學), particularly Hyehwan (惠寰) Lee Yong-hyu (李用休) who led literary circles in the mid- to late 18th century. Both Hyehwan and Geumdae were immersed into writing Yukeon-si (六言詩) that can be said to have been a sensational form of poetry then, and they both adhered to the poetic style stressing individuality and pursued the dignity of Cheongsin (淸新). Also, they understood ideas in the times of Dangwoo · Samdae having six scriptures (六經) and books on history (歷史書) as the grounds of their learning, tried to recover Yosunjichi (堯舜之治) and Samdaejichi (三代之治) by acquiring saints' ideology of ruling, and created a number of poems regarding Gyeongsejemin or Aemingeunghyul from the perspective of ruling the world.
Geumdae's exile in Gimhwa (金化), too, formed a crucial background of his creation of poems. Mental composure he regained through his exile in Gimhwa having enough time to spare rather allowed him to have chance to meditate on life and think about the reality in a new way, and this was expressed in his poems through sublimation. Geumdae composed up to 20 pieces of poems while he was appointed as Jeongju Moksa, and he wrote almost half of the works he left during his exile in Gimhwa. Taking his exile in Gimhwa as an opportunity, Geumdae could watch the scenes of the people's lives right next to them and disclosed the people's reality he witnessed vociferously from their standpoint.
Another background of Geumdae's creation of pomes is his positive involvement in Sisa (詩社) or Sihoe (詩會) activities. Geumdae joined in Okgyesisa (玉溪詩社) including Songseokwonsisa (松石園詩社) which was formed by Cheon Su-gyeong (千壽慶) as its lead. Among the societies, Songseokwonsisa was a poetry community having regular gatherings for poetry after establishing rules and organizing Sisa, and with the chance of being engaged in the society, Geumdae joined in many other Sisa (詩社) or Sihoe (詩會), too, to exchange with the members through poetry. Geumdae also participated in Beonrisisa (樊里詩社) organized by Hwasansisa (華山詩社) or Chae Jae-gong (蔡濟恭) as its pivot, associated with the members of Jukransisa (竹欄詩社), too, which was formed by Jeong Yak-yong with other literary persons, and hardly missed to attend the gatherings of Baeksa (白社), too, which was organized by 18 Giro (耆老) as its pivot. While he was involved in Sisa (詩社) or Sihoe (詩會) activities in that way, he created a number of poems.

저자 : 장정태 ( Jang Jeong-t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5-7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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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화쟁사상은 붓다가 활동하던 인도 사회에서 인도 원주민을 정복한 아리한(Aryans)의 종교는 자기보다 낮은 종교를 무시하거나, 그 존재를 말살하기 위하여 싸우거나 하지 않았다. 그가 만나는 새로운 힘들은 자기 안으로 융화시키고 유일하고 자신들의 종교가 유일한 참된 종교라는 배타적 광신은 없었다. 이러한 인도인들의 사유 경향이 붓다에게 이어져 불교에서 和의 사상을 있게 하였다. 붓다에서 싹이 나타났으며 붓다 이후 1200여 년 만의 신라 통일기에 나타난 원효가 실천을 중시하면서 화쟁사상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은 바로 붓다 이후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和의 정신의 시대적 재현이다.
원효는 화합과 통일의 사상, 조화와 평등의 원리를 가지고 서로 다른 주장으로 갈려 있는 불교 이론을 화쟁하며 왜곡된 불교 풍토를 쟁화(諍化)하려 하였다. 이처럼 간절한 염원이 담긴 화쟁적 논리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 상황 속에서 마치 불난 집처럼 온갖 갈등과 대립과 모순과 아집으로 가득 찬 현실사회를 구출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화기(和氣)를 불어넣고 조화회통(調和會通)의 대도를 열어 이 동녘 해돋이 땅에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무애한 원력을 발하였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까지도 화쟁하려 하였던 원효불교의 이상은 실로 심물일원(心物一元)에 있고 개전불이(個全不二)에 있으며 나아가 심주물종(心主物從)의 세계를 추구하고 심체물용(心體物用)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도 원효의 화쟁주의는 세계사상에 도전하는 동양 정신의 종합된 표현이며 따라서 그것은 유현한 동양사상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이론이 아니고 실천행이었던 화쟁론이야말로 매우 진보적인 사상인 까닭에 그것이 이 시대에 충만할 때 물질우위, 인간비하의 정신풍토는 치유될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사회의 영원한 평화는 성취될 수 있다.
화쟁사상은 단순히 화해이론이 아니라 견해들의 차이를 모아놓음으로써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소통이론이라는 관점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원효가 '화쟁'이라는 말로써 풀어보려고 했던 문제 상황은, 단지 '교설에 대한 다른 견해들의 존재'라기보다 '다른 견해들의 배타적 대립과 불통'이라는 '이견(異見)들의 비생산적, 소모적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In the Indian society where Buddha was active, the religion of Arians, who conquered indigenous Indians, did not ignore lower religions or fight to destroy their existence. The new powers he meets integrate into himself and there was no exclusive fanaticism that their religion was the only true religion. This Indian tendency to think led to Buddha, which led to the idea of wawa in Buddhism. Buds appeared in Buddha, and it is the reenactment of the spirit of wawa from Buddha to Mahayana Buddhism that Wonhyo, who appeared in the Unified Silla Period more than 1,200 years after Buddha, raised the banner of Hwajeon ideology.
Wonhyo tried to dispute the distorted Buddhist climate by arguing the Buddhist theory divided by different arguments with the idea of harmony and unification, harmony and equality. The controversial logic with such a desperate desire was, above all, to rescue a real society filled with all kinds of conflicts, confrontations, contradictions, and stubbornness like a house of fire in the current situation of his own. Thus, he breathed in the spirit of fire and opened a large road of the Harmony Hoetong to create an ideal society on the land of the sunrise at the dawn of the east.
The ideal of Wonhyo Buddhism, which even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tried to argue, was indeed in the Simmul area, in the open war, and furthermore, in pursuit of the world of Simjubuljong and establishing a system of mind-body use. For that reason, Wonhyo's controversialism is a comprehensive expression of the oriental spirit challenging world thought, and therefore, it can be said to be the essence of fluent Eastern thought. Since the theory of controversy, which was not a theory but an act of practice, is a very progressive idea, when it is filled in this era, the spirit of material superiority and human degradation can be cured, and furthermore, eternal peace in human society can be achieved.
This is not just a reconciliation theory, but a communication theory that aims to increase the possibility of communication by collecting differences in opinions. However, it would be more appropriate to view the problem situation that Wonhyo tried to solve with the word "war" as an unproductive and consumptive relationship of differences, such as "exclusive confrontation and discommunication of different views," rather than just "the existence of different views on the doctrine."

저자 : 장재천 ( Chang Jae-che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9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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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균관은 조선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교육과 관련하여 그 역할 즉 기능들을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고, 또한 어떤 형태로 교육활동들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많은 문화들이 발전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와 관련하여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누구나 쉽게 성균관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선왕조실록』, 『태학성전』, 『태학지』, 『승정원일기』, 『반중잡영』, 『증보문헌비고』 등을 중심으로 성균관의 대체적이고 필요한 전모를 알아보려 하였다. 사실 그 외의 문헌들에서는 성균관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든 것들이므로 위의 문헌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성균관의 역할을 먼저 탐색해보고 관련해서 교육이념과 이상적인 인물을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신 신성한 성역으로서의 문묘와 제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한편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살펴보고 이로 인해 파생된 문화들을 반촌까지 다루었으며 에피소드들을 끝에 첨가해 어느 정도 성균관의 전반적인 것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까지 내용들을 구성하였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참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였고,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교육활동과 문화들을 생산하였다고 본다. 이에 지금도 시사점을 많이 주고 있으므로 오늘날의 대학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As the history of Joseon is long, Sungkyunkwan in the Joseon Dynasty needs to recognize its roles, functions, and also to examine what forms of educational activities there were. As many cultures are developed naturally when they are engaged in educational activities, this study examined roughly.
Thus, the role of Sungkyunkwan was explored first, and the educational ideology and ideal characters were briefly examined as sacred sanctuary including Confucius and the rituals.
On the other hand, I looked at the overall things about education, dealt with the derived cultures to Banchon, and added the episodes to the end to understand and understand the overall things of Sungkyunkwan to some extent.
Sungkyunkwan in the Joseon Dynasty played a variety of roles and produced educational activities and cultures as the best educational institution. As it still gives a lot of implications, you will know that there are many things to refer to in today's universities.

저자 : 김승대 ( Kim Seung D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37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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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유형원에 대한 유적 연구는 부안 우반동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경기 지역과 충청, 경상지역까지 지역적 범주가 확대되고 있다. 서울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경기는 그의 선대와 연계된 반계의 세거지였다. 특히, 서울 소정릉동은 그의 외가인 여주이씨와 관련된 유적이 중심이고, 경기 용문은 아버지 유흠과 관련된 유적이 확인된다. 부안 우반동은 반계의 사회·경제적 활동영역의 중심지로서 향후 문화콘텐츠와 하드웨어 건립 등이 검토된다. 아울러 반계학단에 대한 연구와 관련 사료 번역작업도 필요하다 충청, 경상지역에서 주목되는 유적으로는 충주 김세렴과 공주의 양득중 유적 등이다. 또한, 김천의 배상유 유적과 『반계수록』이 간행된 경상감영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반계 유형원에 대한 지역학적 차원의 본격적인 확장 연구가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관련 유적지별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적 측면에 대한 진지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was a pioneer of realism(實學) and had written the Banguesoorok(磻溪隧錄) in Buan which is arepresentative masterpiece of assessment advocated a reform of a new society.
Research on the remains of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is being actively conducted in Uban-dong, Buan. Recently, research is ongoing by expanding the regional scope to Seoul and Gyeonggi regions, as well as Chungcheong and Gyeongsang regions. Seoul is the place where he was born and raised, and Gyeonggi-do is confirmed as a place of rebellion linked to his predecessor. In particular, in Sojeongneung-dong, Seoul, relics related to his maternal family, the Yeoju Lee clan, are centered, and in Yongmun, Gyeonggi, relics related to his father Yu-heum are confirmed. Uban-dong, Buan, is the center of social and economic activity in Bangue(磻溪), and the construction of cultural contents and hardware will be considered in the future. In addition, research on the Bangue(磻溪) Academy and translation of related historical materials are also required. Among the relics that are noteworthy in Chungcheong and Gyeongsang are the remains of Kim Se-ryeom(金世濂) in Chungju and Yang Deuk-jung(梁得中) in Gongju. Also noteworthy are the studies on the remains of Bae Sang-yu(배상유(裵尙瑜) in Gimcheon and Gyeongsang Gamyeong, which was published in Bangue(磻溪) Collection. A full-fledged expansion of the regional level of the Bangue(磻溪) type circle is necessary. In addition, a serious review of the software and hardware aspects of each relevant historical site is also required.

저자 : 金益洙 ( Kim Iksoo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77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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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고유의 인(仁) 사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승한 공자(孔子)의 언행록(言行錄)인 『논어(論語)』에는 인자(仁字)가 109회나 나온다, 이를 보면 얼마나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실행을 주장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논어』는 우리나라 삼국(三國)시대 고구려 소수림2년에 중국(당(唐)에서 전래되어 최초의 중앙교육기관 대학인 태학(太學)의 공통필수 교재이었다.
이 일이야말로 한국사상사, 한국유학사, 경학사, 교육사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기록이며 역사적 사실이다.
상고해보면 백제의 태학, 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 조선조의 성균관으로까지 이어졌다.
논어의 인(仁)은 맹자(孟子), 순자(荀子)로 이어지고 송(宋)나라의 성리학에서도 중시되었고, 한국의 성리학자인 퇴계(1501~1570)와 율곡(1536~1584) 선생도 아주 중요시하여 연구하였다. 근대에 서구사상의 범람으로 세계적인 한국사상과 철학이 실종되고 과학과 물질을 발전시켜 현대인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였으나 정신문화가 무너졌다.
공자의 위대한 인(仁) 사상을 현대에 재 조명함은 국가적 과제이며 교육혁신의 길이다.


Korea is a nation with a continuous history in the world and they say that it had its own benevolence thought. The truly good (仁字) appears 109 times in 『Analects (論語)』, the worlds and deeds (言行錄) of Confucius (孔子) who inherited this. Considering this, he very much emphasized it and argued its practice to his students.
By the way, 『Analects』 was introduced into Goguryeo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三國) from China in the 2nd year of the reign of Sosurim of Goguryeo and became a common required teaching material of the National Confucian Academy (太學), the first central educational university in Korea.
This is the record and historical fact which cannot be excluded in history of Korean thought, Korean Confucianism, Classical Studies, and education.
Thinking over it, it was connected to Taehak of Baekje, National Confucian College (國學) of Silla, National University of Goryeo, Sungkyunkwan (National Academy) of the Joseon Dynasty.
Confucius' Benevolence (仁) in 『Analects』 was connected to Mencius (孟子) and Xun Kuang (荀子) and was regarded as important even in Neo-Confucianism of the Song (宋) Dynasty. And Yi Hwang (Toegye)(1501~1570) and Yi I (Yulgok)(1536~1584), the Korean Confucian scholars, studied it considering it very important. a flood of Western ideas made Global Korean thought and philosophy disappear and science and materials develop so that modern people's life got to be convenient. But moral culture collapsed.
New light on Great Confucius' Benevolence (仁) thought in modern times is a national task and way of innovation.

저자 : 오철우 ( Oh¸ Cheol-woo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10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1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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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차명상을 기반으로 창작된 '다선일여'의 시문학에 나타난 심신치유와 건강과 행복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와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데 있다. 오늘날, 'Covid-19' 팬데믹으로 겪는 단절의 외로움과 상실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어울림과 소통을 통한 심신치유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에 차명상과 이를 기반 한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시문학은 그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명상은 사물의 본질을 깊게 통찰하여 변화된 삶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차에는 약리 효과뿐만 아니라 각성 효과가 있어 마음의 본성을 직관하게 하는 매개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차를 준비하고 마시며 명상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반으로 생산된 시문학에는 육근 청정, 어울림과 소통, 비움의 충만, 위로와 공감을 일깨워 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 심신을 편안하게 함은 물론 열린 마음을 지향하게 한다 할 수 있다. 이는 곧 건강과 행복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의 본질적 기능인 심리적 치유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차명상을 기반 한 다선일여의 시문학이 심리치료와 복지 향상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고찰하였다. 즉, 차명상의 의미와 특징, 그리고 차명상을 기반으로 창작된 다선일여의 시문학에 나타난 심신치유와 복지향상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Tea Meditation" and Welfare of Mental and Physical Healing, focusing on the poetry of Daseonilyeo(茶禪一如) created based on Tea meditation. Today, the need for overcoming the loneliness and anxiety arising from disconnection and mental and physical healing through communication and sympathy in the COVID-19 Situation are being urgently requested. Accordingly, 'Tea Meditation' and 'Daseonilyeo's poetry' based on tea meditation can be a viable alternative to them.
Meditation enables a changed life by deeply insight into the nature of things, and tea has not only pharmacological effects but also awakening effects. Hence, tea is understood as a medium that makes the nature of the mind intuitive due to its awakening effect. Therefore, poetry literature produced based on a series of processes of preparing tea and meditating contains elements that clean mind and body as well as awaken comfort and empathy, which not only relax the mind and body but also aim for an open mind. This is in line with the purpose of social welfare aimed at health and happiness. This is because it implies psychological healing, an essential function of literature. Therefore, in this article, I suggested that Daseonilyeo's poetry based on tea meditation can be used as a tool for psychotherapy and welfare improvement. In other words, I looked into the meaning and characteristics of tea meditatio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ental and physical healing in Daseonilyeo's poetry literature and social wel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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