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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update

ORIENTAL ART

  • : 한국동양예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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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5-0927
  • :
  • : 한국동양예술학회지(~2000) → 동양예술(200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5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628
동양예술
53권0호(2021년 11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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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상사를 보면 동일한 인물이라도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그 인물의 사유와 행적이 달리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공자 제자 가운데 그런 인물을 고른다면, 바로 공자의 수제자이면서 덕행으로 일컬어지는 顔回를 거론할 수 있다. 復聖으로 추앙받지만 短命하였기에 제대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지 못한 顔回에 대해서는 朱熹가 이해한 안회 형상이 주로 거론된다. 안회에 대한 주희의 이런 견해는 일정정도 유가의 道統觀과 闢異端의식이 담겨 있다. 이런 주희의 안회에 대한 제한된 수용과 배제는 미학적 차원에서 볼 때 안회가 지향한 은일적 삶과 그 은일적 삶에 담긴 미학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안회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으로 어떤 입장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장자』와 玄學化된 안회에 대한 이해다. 다음, 二程과 朱熹를 중심으로 한 송대 程朱理學者들에게 나타난 안회에 대한 이해다. 마지막으로 王守仁등 양명학자에 의해 이해된 안회다. 이런 점을 본고는 『論語』 「先進」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안회는 도에 가까웠고, 자주 끼니를 굶었다[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라고 말한 것에 적용하여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屢空'의 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안회가 추구한 세계관이 달리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같은 안회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는 유가가 지향한 미학적 삶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미학 차원에서 본다면, '簞食瓢飮'하면서 그 즐거움을 놓지 않았고 '屢空'했던 안회의 삶은 이후 문인사대부들이 지향한 隱逸적 삶의 한 전형이 된다. 이런 점에서 안회가 지향한 루공의 삶은 후대에 유학자들이 지향한 미학적 삶의 한 전형을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아울러 양명학이나 노장 차원에서 이해한 안회의 삶과 관련된 미학 차원의 재인식이 요청된다.


Looking at the history of Chinese history, even the same person can find a person whose reasons and actions can be understood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criteria for evaluating the person. If such a person is selected among Confucius' disciples, Yan Hui, who is called Confucius' student and virtue, can be mentioned. As for Yan Hui, who was revered as a 'restoration' but failed to properly unfold his thoughts, the form of Yan Hui, which Zhū Xī understood, is mentioned. Zhū Xī's view of Yan Hui contains Neo-Confucianism sage orthodoxy and Opposing heresy consciousness in Neo-Confucianism. Zhū Xī's limited acceptance and exclusion of Yan Hui raised the problem of not properly identifying the aesthetics of Yan Hui's aim for live in seclusion and its live in seclusion from an aesthetic level. The understanding of Yan Hui can be approached from three main perspectives, depending on what position you understand historically. First, it is an understanding of 『Zhungzi』 and Yan Hui in metaphysical dimension. Next, it is an understanding of Yan Hui that appeared in the new Confucian scholars of the Song Dynasty centered on Zhū Xī. Finally, it is Yan Hui understood by Yangming Scholar such as Wángshóurén. This point is intended to be clarified by applying it to what Confucius said in Analect, “Yan Hui was close to Tao and often starved for meals.” In particular, we tried to pay attention to the possibility that the worldview pursued by Yan Hui could be understood differently depending on how we understand the 'emptiness' of “repeated emptiness”. This is because the various understandings related to Yan Hui's life suggest a very important point in understanding a part of the aesthetic life that Confucian scholars are aiming for. From an aesthetic point of view, Yan Hui's life, which did not let go of its joy while saying 'live simple on a bamboo dish of rice and agourd of drink,' and also 'repeated efficiency,' becomes a epitome of the life of live in seclusion that literati aims for afterwards. In this respect, the life of 'repeated emptiness' aimed at Yan Hui is meaningful in that it will form a model of the aesthetic life aimed at Confucian scholars in future generations, and re-recognition of Yan Hui's life is required at the level of philosophy by Yangming Scholar and Taoism is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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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후기 왕족의 남아 돌복에 나타난 문양에 관한 연구 - 조선후기 궁중복식 문헌 중심으로 -

저자 : 전희정 ( Jeon Hi Jeo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5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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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갖추어 입히는 의례복을 돌복이라고 하며 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관습이나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어 사상이나 가치관 등의 삶의 방식이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남아 선호사상을 선호하였기에 남아 돌복이 가지는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돌복을 주제로 다룬 연구도 부족하지만, 특히 돌복에 나타난 문양을 독립적으로 다룬 연구는 아주 미미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문헌에 나타나 있는 조선 후기 왕실 왕자의 돌복을 중심으로 남아 돌복에 나타난 문양, 상징성, 시문 방법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기가 태어나서 1주년 되는 날을 돌이라 말하며 이를 초도일(初度日)·수일(晬日)·주년(周年) 등이라고도 부른다. 돌을 맞은 아이는 남녀 구별을 하기 시작하면서 남아에게는 남색 고름, 여아에게는 홍색고름을 하여 특별히 만들어 입히는 옷을 돌복이라고 하며, 돌복은 아기가 입는 옷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차림으로 현재까지도 전래하고 있다.
둘째, 반가나 민간의 돌복이 반드시 정형화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여건 등의 차이를 제외하면 왕실의 돌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셋째, 돌복에서 저고리, 두루마기의 고름을 길게 하여 돌려 맨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돌상에 국수나 무명실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넷째, 전통복식에 나타난 문양은 유교적, 주술적, 무속적인 면이 혼합되어 자연문이 주를 이루며, 돌복에 시문된 문양은 한 가지만을 사용한 경우는 드물고 동물문과 식물문, 동물문과 길상문, 식물문과 기하문, 자연문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문양의 출현 빈도를 보면 길상문과 길상 어문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화(花)문양의 순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시문 방법에서도 복식에 직문법 한 가지만을 사용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직문법과 금박법을 혼합하여 사용하였고, 금박만 사용한 것은 쓰개와 다홍전대이며 자수법은 버선에만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있다.
본 연구 결과 남아 돌복에 사용된 여러 가지 문양과 상징성, 이들에 사용된 시문방법들에 관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돌복이 갖는 전통적인 가치와 의미, 조상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의 극대화를 엿볼 수 있었으며 첫돌 의례는 전통문화로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The ritual clothes worn for the first time in life are called DolBok. It can be seen that traditional customs or symbolic meanings of the Korean people have been given, indicating that ideas, values, and ways of life have been passed down.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Korea, the preference for boys was preferred, so it can be said that the meaning of boys' DolBok was greater and important. There was not only a lack of research on the theme of DolBok, but also research dealing independently with the patterns on DolBok were very insignificant. Therefore, this research analyzed the patterns, symbolism, and Shimoon methods that appeared on DolBok which focusing on DolBok from the royal pr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sults of the study can be described as follows.
First, the day of a year after birth is called a Dol. Dol also can be called Chodoil (初度日), Suil (晬日), Junyeon(周年) or Suil(晬日). Baby who just became Dol began to distinguish between men and women, and Dolbok for boys was worn with navy Goreum. Dolbok was the most representative clothes worn by babies and are still handed down to these days.
Second, Yangban and civil's Dolbok was not necessarily formalized, but it wa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royal Dolbok except for differences in economic conditions.
Third, wearing the Goreum of Jeogori and Durumagi from Dolbok is a wish for longevity and can be seen as the same meaning as using noodles or cotton thread on the Dol.
Fourth, it was rare to use only one pattern on DolBok, and it was used in combination of animal and plant patterns, animal and Gilsangmun characters' patterns, plants and geometric patterns, and nature patterns. In particular, Gilsangmun and Gilsanguhmun were the most frequently appeared, followed by Hwamun.
Fifth, in the method of Shimoon, only one direct method was used for costume, followed by a mixture of direct method and gold foil, and only gold foil was used for the use of the Ssgae and the Dahongjeon, and embroidery method was used only for the Busun.
As a result of this study, we were able to confirm the various patterns and symbols used in DolBok and the traditional value and meaning of DolBok. Also, we were able to know the heart that the ancestors love and care for their children were seen. Therefore, the first Dol ritual should continue as a tradition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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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춤의 '삭임' 기능에 관한 미학적 사유와 의미론적 소고

저자 : 김지원 ( Kim Ji Wo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3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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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춤에서 '삭임'에 관한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해석의 구조의 틀을 체계화해 보고 있다. 춤사위의 시간적 한풀이는 다양한 신명의 갈래로 해석되며 이는 성장과정이라는 삭임의 형태에서 기능한다. 결국 맺음에서 풀음까지의 춤의 심층구조에는 한 맺힘의 문제로부터 신명에 이르기까지 '일탈'이라는 자아의 변이로 인해 예술적 기능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맺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삭임의 시공간은 예술적 일탈과 자유의지에 의한 탈자아의 경험이다. 그리고 몰입과 재미의 유희체험은 한의 응어리를 중화하여 삭이는 과정에서 현세를 잊게 만드는 또 다른 세계화다. 따라서 삭임의 예술적 기능은 표층적 구조에서 보이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며 춤의 미학적 의미를 규정짓는 메타의미로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s trying to systematize the structure of the temporal meaning and spatial interpretation of 'Sagim(삭임)' in Korean dance. The temporal strife of the dance moves is interpreted as a branch of various divine names, and it functions in the form of 'Sagim' of the growth process. In the end, in the deep structure of the dance, from 'Han(한)' to 'Shinmyeong(신명)', the artistic function was different due to the transformation of the ego called deviance.
Therefore, in the process of forming and unraveling, the time and space of deletion is an experience of artistic deviance and self-deprivation through free will. And the play experience of immersion and fun is another globalization that makes people forget about the present in the process of neutralizing the core of Han.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the artistic function of 'Sagim' is an experience of another dimension seen in the superficial structure and a meta-meaning that defines the aesthetic meaning of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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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본의 전통도예에서 조선도공의 영향과 그 미학적 의의 -피로사기장(被虜沙器匠)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신나경 ( Shin Na Kyu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5-9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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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들의 삶과 작업의 변화과정을 알아보고 그들이 일본의 도자 문화에 끼친 영향과 그 미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연구의 범위는 임진왜란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으로 피랍되어 도자기를 만들었던 대표적인 조선도공의 삶과 예술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하였고, 특히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그들의 작품과 일본인의 미의식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자 하였다. 현재 조선인 도공이 세운 가마로서 규슈에 기반을 둔 주요 요업지는 7여 개소가 있으나 그 중 가장 활발하게 운용되었던 가마로서 이마리 가마와 사츠마 가마를 들 수 있다.
이마리 도자기의 조형적 특징은 초기이마리, 고이마리, 가키에몬, 나베시마 양식 등으로 구분되며, 사츠마 도자기는 구로몬과 시로몬, 그리고 채색 도자기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이마리는 기존연구에서는 단순한 조선식 백자로 알려져 왔으나, 그 문양은 주로 중국의 도자기를 모범으로 제작되었고,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토끼 문양의 도자기가 많이 남아있어, 조선도자기와는 확연하게 차별화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일본의 조선도공 피랍은, 단순히 이도다완과 같은 조선도자기의 획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국의 도자기 산업을 도자기 종주국이었던 중국 이상으로 번영시키고자 의도한 일본의 기획된 산물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피로사기장의 가마와 그들 작품의 발전과정을 미루어 볼 때, 초기에는 초기이마리 도자기나 사츠마의 <히바카리테>와 도자기에서는, 확연하게 조선인의 미의식이나 정취가 간취되는데,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드문 조선 도자기 문양의 특징인 초화문양이나, 왜곡된 형태와 전체가 灰味(재빛)을 띠는 발색, 그릇 표면의 흑갈색 반점이나 흠집, 실금 그리고 소지나 채색의 불안정한 발색 등이 그 특징이다. 이것은 아마도 다양한 도자기 기술습득의 미비도 하나의 이유이겠으나 시기적으로 17세기 전반에는 일본에서도 와비, 사비 취향을 강조한 다도미학의 영향이 강하여, 이도다완 등 조선도자기를 애호하던 당시 일본지배층의 기호와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아리타와 사츠마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독자적인 도자기술을 기반으로 일본특유의 미적 감성을 표현한 독특한 도자기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징더전 가마의 장인들이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중국의 영향도 함께 흡수하면서 그 시기 유럽을 매료시킨 독특한 동양적 미를 지닌 도자기를 널리 확산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교와 색채면에서 다채롭고 화려한 기물이 많이 보이며, 또한 일본의 육고요(六古窯)와 같이 중세적 미를 지향하는 가마들과는 달리 규슈의 가마들에서는 현대적 일본적 미의 특색이라 할 장식성, 형식성, 인공성 등이 점점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nges in life and work of potters abducted to Japan during the Imjin War and Jeongyu War, and examine their influence on Japanese ceramics culture and their aesthetic significance. Therefore, the scope of the study is to focus on the life and art of representative Joseon potters who made pottery in Kyushu from the Imjin War to modern times. In particular, I tried to focu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work, which changes with the times, and the Japanese sense of beauty. In this study, the Arita-Imari kiln and the Satsuma kiln were mainly considered as the kilns that were most actively operated among the major ceramic kilns based in Kyushu as the kilns built by Korean potters.From what I have studied so far, the works of the Joseon potters in Kyushu show a lot of Korean aesthetics in the early days of their settlement. However, from the late 17th century to the early 18th century, huge amounts of Arita and Satsuma ceramics were exported to Europe, mainly by the East India Company. For that reason, Joseon potters with excellent skills began to produce unique ceramics that expressed Japanese aesthetic sensibility to suit European tastes.
In particular, during this period, as the Ming Dynasty fell and the craftsmen of the Jingdejeon kilns in China came to Japan, they also absorbed the influence of China and spread the unique oriental porcelain that fascinated Europe at that time. Thus, in the ceramics of the Kyushu region of the 18th century, we can see a lot of colorful ceramics of various techniques that we had never seen in Joseon. The beauty of such pottery is a very different kind of beauty from pottery oriented toward medieval beauty, such as Japanese Yukkoyo(六古窯). I think that the aesthetic qualities of such ceramics are decorativeness, formality, and artificiality, which are 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beauty since the Ed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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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밀양 영남루 일원의 유(儒)ㆍ불(佛)ㆍ도(道) 융복합적 문화 예술의 양상

저자 : 설경희 ( Seol Kyeong Hee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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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s the aspects of culture and art convergence betwee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of Miryang Yeongnamnu Pavilion and its neighboring area, located in 324, Jungang-ro, Miryang-si, Gyeongsangnam-do. Yeongnamnu Pavilion is government-run pavilion belonging to the local government of the Miryang reg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a building that welcomed envoys and guests or held public banquets while viewing the magnificent scenery. Moreover, from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o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many famous people such as Mogeun Yi Saek, Toegye Yi Hwang, and Samyeon Kim Chang-heup left behind many poems, so its humanistic value is significant. In addition, Yeongnamnu Pavilion uses creative modeling not used in general pavilion dancheong, which adds to the elegance of Yeongnamnu Pavilion. In the precincts of Yeongnamnu Pavilion, there are Mubongsa, Cheonjingung, and Aranggak, making it a space of convergence betwee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Such various cultures characterize the culture and art of Miryang-si and Yeongnamnu Pavilion, and the 'Miryang Arirang Festival' is held based on this, becoming a place of harmony where culture and art flourish.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ignificance of the Miryang Yeongnamnu Pavilion and its neighboring area lies in the three spirits, namely, Jeompiljae Kim Jong-jik's knowledge and virtue, Preceptor Samyeong's loyalty and righteousness, and Arang Yun Dong-ok's fidelity and sincerity. These spirits have established themselves as a unique culture of Miryang, which offers festivals by consecrating embers to the altar of Dangun in Cheonjingung. And it is accompanied by the suffering and joy of the nation and its turbulent times. The culture and art of the convergence betwee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in the Yeongnamnu Pavilion and its neighboring area are also related to its unique life attitude and life conduct based on the Confucian realities and tendencies. It has become a spiritual and artistic practice along with the sufferings of history with a creative spirit that has not lost its ideological characteristics while accommodating the religious features rather than confrontation and conflict. Furthermore, it has been fully developed with the 'Miryang Arirang Festival' and is becoming a place of exquisite Pungryu. I expect that this study will help improve the cultural elements of local cultural festivals and content pl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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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17세기 의학서적에 관한 한글자형의 조형미 고찰

저자 : 정복동 ( Jeong Bok Do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1-17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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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6~17세기에 간행된 의학서적의 자료를 집대성하고, 서체가 우수한 자료 15종을 선정, 이에 대한 판형의 배행 및 배자, 행별 장법, 자음과 모음의 용필, 단일문자의 결구에 관한 조형미를 시기별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한글서예변천사의 기초 토대자료를 보완하는데 목적이 있는 연구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총 15종(16세기 3종, 17세기 9종, 17세기~18세기 초 3종)의 의학서적에 작성된 서지목록을 토대로 서체의 필법요소를 표로 제시하여 연구하였다.
첫째, 판면 구성 및 행별 장법미. 판면 구성은 16세기부터 한자 원문보다 한글 언해문을 한 글자 내려서 배자 하였고, 한자원문과 한글 언해문을 구별하여 일정한 선안에 썼기 때문에 판형의 배열이 지극히 규칙적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은 변화를 주었으나 행간이 정연하여 단정한 심미감이 느껴진다. 한글 자형은 약 90%가 정자체이며, 한자 서체는 100% 한글과 어울리는 다양한 서풍의 해서체가 사용되었다. 행별 장법의 경우, 단일문자의 겉모양을 중심으로 중심축을 파악한 결과, 16세기에는 약 90%, 17세기에는 73%, 18세기에는 38%가 정방형 혹은 가로가 큰 자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17세기 중반에 간행한 『구황촬요』부터 중심축이 우측 세로획〔ㅣ〕으로 일부 이동되는 장방형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은 한자와 같이 중심축이 중앙인 정방형의 형태를 보인다. 17세기의 『벽온신방언해』ㆍ『구황보유방』ㆍ『언해납약증치방』 등 3종과 18세기 『치종비방부언해』는 각각 미려함과 장엄한을 지닌 서풍이며, 『언해납약증치방』은 특히 자간이 긴밀ㆍ정연한 우수한 서체이다.
둘째, 자ㆍ모음자의 용필미, 자음자는 16세기부터 가로ㆍ세로획과 자음의 위치에 따라 붓을 일으키는 부분과 붓을 거두어들일 때의 운필방법과 굵기ㆍ크기의 변화가 있다. 가로ㆍ세로획의 시작부분은 모두 방필형이 많고, 마치는 부분은 원필형이 많다. 운필 방향은 17세기중반 『벽온신방언해』부터 가로획이 왼쪽보다 오른쪽을 올려 생동감이 있고, 'マ'에서 'ㄱ'의 세로획을 안쪽으로 기울이는데 이후 보편화된다. 18세기 이후 정형화된 궁체의 특징은 'ㅅ'자 외에는 적게 나타난다.
셋째, 단일문자의 결구미, 의학서적 15종에 사용된 초·중성 합자, 초ㆍ중ㆍ종성합자, 'ㅂ·ㅅ' 병서자 512글자를 선정하여 문자의 '균제ㆍ균형ㆍ변형원리'를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자음자와 모음자의 크기는 모음자를 크게 하여 좌우 크기 대비를 변화 있게 나타냈고, 자음자의 위치는 모음자의 중앙에 위치시켜 균형을 이루었다. 병서자는 자음자의 가로ㆍ세로ㆍ사획이 만날 때에 공간안배를 시각적으로 동일해 보이도록 균형을 이루었으나, 간접문자 'ㅅㆍㅂ'은 17세기부터 왼쪽을 크게 독립적으로 나타내므로 문자의 실용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종성자는 'ㅅ'자를 제외한 7종〔ㄱㆍㄴㆍㄷㆍㄹㆍㅁㆍㅂㆍㅇ〕의 획이 17세기부터 모음의 폭보다 작아진 것이 일반화되었다. 종성 가로획이 2개 이상인 'ㄷㆍㄹ'등은 가로폭의 길이를 각각 다르게 하여 공간변화를 주었다.
이상 16~17세기 의학서적의 간본문헌은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도형에 가까운 자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체계를 갖추어 보편화 되었고, 18세기 이후 형성된 궁체필사본과 판본문헌의 조형적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 실용에 의한 의학서적의 간본문헌은 국내외에 다양하게 소장되어 있다. 앞으로 수진본이나 지방판, 해외본 등을 발굴하여 실용성 외에 예술적 측면에서 다양한 연구가 논의되길 기대한다.


This thesis is a compilation of materials from medical books published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and after selecting 15 types of materials with excellent typeface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pplement the basic material for the changing history of Hangeul chirography by comparatively analyzing the layout and letter arrangement of the plate type, the arrangement of lines by line, the brushing of consonants and vowels, the beauty of a single character conclusion. The resul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Based on the bibliographic list of 15 medical books (3 books in the 16th century, 9 books in the 17th century, and 3 books in the 17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the calligraphic elements of the typeface were presented in a table and studied. First, Plate composition and the beauty of line-by-line arrangement. Since the 16th century, the Hangul-Unhaemun has been placed one character lower than the original Chinese text, and the original Chinese text and the Hangul-Unhaemun have been written in a certain line, so the board layout is extremely regular. Although the space between the letters was changed, the lines between the lines were orderly, giving a neat aesthetic feeling. About 90% of Hangeul characters are Jeongjache, and 100% of Chinese fonts are HaeseoChe that matches Hangul. In the case of line-by-line grammar, as a result of identifying the central axis based on the outer shape of a single character, it was found that about 90% of the characters in the 16th century, 73% in the 17th century, and 38% in the 18th century were square or wide horizontal letter. From 『Guhwangchwalyo』 published in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e characteristic of a rectangle in which the central axis is partially shifted to the right vertical stroke [ㅣ] begins to appear, but most of them show a square shape like Chinese characters. Three kinds of 17th century 『ByukOnSinBangUnHae』 『GuHwangBoYuBang』 『UnHaeNapYakJungChiBang』 and 18th century 『ChiJongBiBangBuUnHae』 is a calligraphy style with beauty&elegance and majesty, among these 『UnHaeNapYakJungChiBang』 is an excellent typeface with tight and regular letter spacing. Second, The beauty of brush strokes of consonants and vowels. In the case of consonants, since the 16th century there are changes in the thickness and size of the part that raises the brush and the brush stroke method when the brush is placed, depending on the position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images and consonants. The beginning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trokes is a square brush type, but the ending is a circle brush type, so it has a soft and strong aesthetic sense. The change in the direction of brush began in the mid-17th century in 『ByukOnSinBangUnHae』, where the horizontal strokes were raised to the right rather than the left, and the vertical strokes from 'マ' to 'ㄱ' were tilted inward, and it became common thereafter. Since the 18th century, the standardized characteristics of Gung(court) font are few except for the letter 'ㅅ'. Third, the beauty of a single character conclusion. 512 letters consisting of innitial·middle consonants, initialㆍmiddleㆍfinal consonants, and Byeongseo 'ㅅ' used in 15 types of medical books were selected and analyzed based on the 'symmetry, balance, and transformation principle' of the letters. As for the size of consonants and vowels, the contrast between the left and right sizes was changed by making the vowels larger. The position of the consonants was balanced by placing them in the center of the vowels. Byeongseo letters balanced the horizontal, vertical, and event of the consonants so that they would look visually the same, but the indirect letters 'ㅅㆍㅂ' became largely independent from the 17th century on the left. It became common that the final consonants width of the seven strokes 'ㄱㄴㄷㄹㅁㅂㅇ' excluding the 'ㅅ' character less than the width of the vowel since the 17th century. For 'ㄷㆍㄹ' with two or more horizontal strokes of the the final consonants, By varying the width and length, the blank space is displayed in a variable way.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the manuscripts of medical books were universalized with a new formative system, away from the shape close to the figure in the early days of the creation of Hunminjeongeum, and the value of research in that they be came the formative source of the GungChe manuscripts and Panbon library formed after the 18th century. The simplified literature of medical books for practical use are stored in various domestic and foreign collections. It is expected that various studies will be discussed in terms of artistic aspects in addition to practicality by excavating portable editions, local editions, and overseas e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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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청대(淸代) 차문화(茶文化)의 예술성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은정 ( Kim Eun Ju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1-19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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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대의 황실과 문인들의 茶문화에 나타난 창작물의 탄생 배경과 예술적 특징에 관한 연구이다. 중국 茶문화 역사에서 청대는 전대의 茶문화를 모두 수용하여 계승 발전한 정점의 시기임과 동시에 서양과의 교류로 인한 변혁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飮茶문화가 민간에 널리 퍼져 세속화되었으나, 이는 넓은 의미의 茶문화 전파로 본다. 청대는 茶생산량의 증가와 茶산업의 발전으로 많은 종류의 名茶가 탄생되었고, 황실 귀족들의 貢茶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만족이 세운 청 황실의 奶茶의 보편화는 청 황실만이 갖는 풍습이었다. 이러한 황실의 飮茶事와 함께 황실 茶宴의 특성에 맞게 제작된 茶器蓋碗의 탄생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茶器를 보관하는 茶籝의 실용성과 장식의 예술성에 대하여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문인 茶畵와 茶具를 부각 시킨 清供茶畵, 문인 대표 茶具인 자사호 등에 나타난 청대만의 다양한 형태의 예술성에 관한 飮茶事예술작품을 茶畵와 사진으로 찾아보고 분석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였다. 청대에는 전대 茶문화의 계급성이 타파되었고 번거로운 飮茶 기구로부터 점차 간소화되어 紫沙壺, 개완 등을 이용한 민간의 茶우림 방법이 등장하였다. 청대에 나타난 다양한 名茶는 製茶기술의 발전을 거듭하며 품질을 향상시켰고, 飮茶방법은 간소화되었다. 또한 청대 飮茶事에 쓰이는 茶具의 예술 작품들은 현재에도 모방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청대 茶문화에 나타난 예술성은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background and artistic characteristics of the creation in the tea culture of the imperial family and writers of the Qing Dynasty. In the history of Chinese tea culture, Qing Dynasty is not only the peak period of succession and development by accepting all the traditional cultures of previous generation, but also a period of transformation due to exchanges with the West. During this period, the Drinking tea culture was spread widely to the private sector and became secularized, but this is considered as the spread of tea culture in a broad sense. In Qing Dynasty, many types of famous tea were created due to the increase in the production of tea and the development of the industry, and imperial aristocrats were highly dependent on 'Goncha'. In particular, the universalization of the milk blending tea of the Qing Dynasty's imperial family established by Manchu people was a custom that only the Qing Dynasty's imperial family had. In addition to the drinking tea of the imperial family, we studied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the birth of tea bowl 'Gaewan', which was made to suit the characteristics of the imperial tea party.
Furthermore, we looked at the practicality and artistry of decoration of 'Dayoung', which stores tea set. Next, we found and analyzed tea paintings and photographs of various forms of artistry of Qing Dynasty portrayed in 'Cheonggongdahwa' that gives prominence to the writers' tea paintings and 'Jasaho', the symbol of writers tea pot, to understand the meaning.
In Qing Dynasty, the class of the tea culture of previous generation was broken down and the cumbersome tea drinking equipments were gradually simplified and the p ivate method of brewing tea using 'Jasaho' and 'Gaewan' was appeared.
Therefore, this paper noted the fact that the Qing Dynasty's tea culture and arts reached the present day. Various famous tea that appeared in the Qing Dynasty improved quality through the development of 'Jeddah' technology, and the method of drinking tea was simplified to the present day. In addition, the works of art of tea set used in tea drinking in Qing Dynasty are imitated and used in the present day. In light of these facts, it can be seen that the artistry that appeared in the Qing Dynasty culture has a very high research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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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당대(當代) 공필화(工筆畫)의 중용사상(中庸思想) 가치 구성

저자 : 로옌웨이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1-2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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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은 유가사상의 기초이자 최고의 도덕적 기준이며 중요한 방법론적 원칙이다. 이것의 핵심은 '균형'과 '각종 대립 관계를 조화시켜 사물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윤리도덕 등에 광범위하게 응용된다. 중국 공필화 또한 오랜 기간 중용사상의 영향을 體現하였다. 본 논문은 중국 유가 중용사상의 배경, 내포된 미학 원칙, 창작사유, 심미취향, 회화적 체현, 화가의 품격수양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공필화는 여러 중국 전통회화 중 비교적 일찍 성숙된 회화 종류이다. 공필화는 평면성과 장식성의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환경 및 심미특징과 관련 있다. 어떠한 예술형식도 현실환경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전통 공필화는 중국의 특정 역사적 조건과 사회문화의 산물이며 지리환경, 경제적 상황, 문화 유전자, 풍속 관습의 영향을 받고 나아가 민족정신을 반영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객관적인 물상을 체득한 뒤 중국문화를 주제로 한 공필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정세에서 공필화가가 중점적으로 노력해야 할 방향이다. 시대의 변천은 반드시 전통회화에 새로운 시련을 줄 것이며 전통과 당대의 거리감 및 부적응을 생성할 것이다. 또한 전통적 사회심리와 예술양식은 오늘날의 사회현실에 완전히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 공필화를 계승하는 바탕 위에서 충분한 보완과 보충을 진행해야만 시대적 특색과 민족 정식이 깃든 공필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중용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변덕이 심하고[見異思遷], 전통을 버리며 이단을 구하는 것을[棄傳統而求異端] 추구하게 하지 않는다. 공필화가는 곤경에 처한 후 깊은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데 중용적 사유방식으로써 자신과 다른, 심지어 대립하는 각종 예술 형태를 직면하고 그 안에서 서로 보충할 수 있는 영양분을 탐구해 공필화의 발전경로를 확장시켰다.


中庸不仅是儒家思想的基础和最高道德标准, 还是重要的方法论原则。其关键之处在于平衡和协调各种对立关系促进事物的和谐发展, 其广泛应用于政治、经济、文化、教育和伦理道德等方面, 中国工笔画同样长期体现着中庸思想的熏陶。本文着重从中国儒家中庸思想的背景、含义美学原则、创作思维、审美取向、绘画功用以及对画家的品格修养等方面的影响上来论述。
工笔画是传统绘画中成熟比较早的画种, 呈现出的是一种平面性、装饰性的视觉效果, 这些都是与中国独特的文化环境和审美特征相联系的。任何一种艺术形式都无法脱离现实环境而孤立存在。传统工笔画是中国特定历史条件、社会文化下的产物, 深受中国地理环境、经济状况、文化基因、风俗习惯的影响, 是中华民族整体精神的反映。用这种精神去体悟客观物象后生成以中国文化为主体的工笔画作品, 才是新形势下工笔画家重点努力的方向。时代的变迁必然会给传统绘画以新的考验, 肯定会产生传统与当代的距离感与不适应性, 传统的社会心理、艺术模式不能完全适应当今的社会现实。必须在继承传统工笔画基础上进行丰富、完善与补充, 以此才能创作出既有时代特色又饱含民族精神的工笔画作品。
中庸思想让我们不再见异思迁, 弃传统而求异端。要求每一位工笔画家当陷入困境后深刻的自我反省, 用中庸的思维方式去面对各种与己不同甚至是对立的艺术形态, 并从中寻求到可以互补的营养来拓宽工笔画的发展路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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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Research on the Expression Language of New Fine Brushwork Paintings - A Case Study of Xu Lei's Paintings -

저자 : Liu Wen Jing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1-24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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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이후 중국의 신 회화 양식은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 회화 양식은 중국 전통 회화에 새로운 언어를 부여했다. 서양 미술의 영향을 받아 중국 전통 회화에 대한 사람들의 미적 방식도 변화했다. 중국과 서양의 문화 교류와 충돌, 통합 과정에서 중국 전통화가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와 발을 맞추는 가운데 현 시대적 특징을 지닌 '신회화' 양식을 형성하고 있다.
한 무리의 화가들이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신회화'의 길을 모색하며, 독특한 표현을 탐구한다.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전통적인 회화의 경계를 넓히고, 당대에 활력이 넘치는 전통적인 발전을 이루며, 미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다.
1990년대 중반, 쉬레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통적인 고운 꽃과 새의 회화을 바탕으로 서양 미술의 개념과 미술 형식을 중국 회화의 창작에 접목 시켰다. 전통적인 고운 회화는 정교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쉬 화백의 그림은 전통적인 미세한 경계를 허물고 현대 "신 회화"의 탐구와 혁신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 글은 쉬레이의 그림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회화 창작 기법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림의 색채 기법과 표현 형태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전통적인 회화양식과 비교 분석해 '신 회화'의 표현 언어 특성을 요약하고 현대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Since the 21st century, Chinese fine brushwork painting has presented a new look to the public. The new era has given a new language to traditional Chinese painting. Under the influence of the impact of Western art forms, people's aesthetic way of traditional Chinese painting has also changed. In the process of cultural exchange, collision, and integration between China and the West, traditional Chinese painting inherits the tradition and keeps pace with the times, and forms the style of "new fine brushwork" with the features of the times under the new cultural background.
A group of painters are constantly trying to break through the shackles of tradition, seeking the path of "new fine brushwork," and exploring the unique expression of "new fine brushwork." Their new attempt expands the boundaries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makes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full of vitality in the contemporary era, and presents the possibility of the future development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In the mid-1990s, Xu Lei began to innovate himself constantly. Based on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s of flowers and birds, he integrated Western art concepts and art forms into the creation of Chinese painting. The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was painted with exquisite brushwork, with dyeing layer by layer. After many overlaying dyeing, the color is thick and deep, while the picture is exquisite and neat. Xu's paintings, however, break through the boundaries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and play a role in guiding the exploration and innovation of contemporary "new fine brushwork" painting.
This article takes Xu's painting works as the research objects. Based on the study of painting creation techniques, an analysis is carried out on the paintings' color techniques and forms of expression. In the meantime, a comparative analysis is made on the line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painting and the new one, summarizing characteristics of expression language of the "new fine brushwork" paintings and providing more clues for the development of contemporary "new fine brush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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