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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ournal of History Physical Education, Sports and Dance

  • : 한국체육사학회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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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1호(1996)~27권4호(2022) |수록논문 수 : 644
체육사학회지
27권4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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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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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무용 교육의 양태를 고찰함으로써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여 한국 근대무용 교육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전북지역의 일제강점기 여학교 및 권번의 설립과 교육 활동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 여학교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사립여학교와 관제에 의한 공립여학교가 설립되어 공통적으로 체조가 교육되었고 율동, 유희를 통해 운동회와 학예 등 특별활동으로 행해졌음이 드러났다. 반면 권번에서 시작된 실용목적의 예술무용 교육은 전통무용뿐만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서양무용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무용 교육은 학교에서는 주된 교육없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권번에서의 무용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여성이 공식적으로 사회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무용문화에 역할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modern dance education in Korea by examining the patterns of dance education in Jeollabuk-do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to identify its characteristics and features. In order to achieve this purpos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the women's school and Gwonbeon, a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rain Gisaengs, established in Jeollabuk-do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found as follows. First, most of the girls' schools in Jeollabuk-do consisted of private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Christian missionary groups and public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the government, where gymnastics was taught, sports events and arts were conducted as special activities, but there was no evidence that dance was taught. On the other hand, it was found that art dance education for practical purposes, which began in Gwonbeon, had been conduct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Western dance, reflecting the era as well as traditional dance. Through this study, it was revealed that dance educ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passive without systematic education in schools, but rather, it was thoroughly conducted in Gwonbeon, providing women with an opportunity to officially enter society and contributing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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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승수 ( Lee Seung-s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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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하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살펴보는데 있었다. 이를 위해 유도의 해외 보급 현황, 유도 지도자의 조선 진출,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고찰했다. 연구방법은 문헌자료를 토대로 분석했고 선행연구를 원용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의 유도의 급격한 성장은 해외 보급의 초석이 되었고, 가노(嘉納)와 그의 제자들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유도 보급, 진흥에 노력했다. 유도 지도자는 경찰의 유도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대회 심사, 강연,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고, 한편 경찰은 유도 지도자의 활동과 관련한 제도적 지원을 했다. 이는 경찰과 유도 지도자가 상호 협력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식민지 정책을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찰과 유도 지도자들에 의해 유도가 유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일본 유도의 해외 진출 역사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유도 발달사를 재고하는데 의미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judo coaches associated with the polic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in connection with the situations of the time. About research methods, literatures were analyzed, and advanced studies were quoted. The followings are the results. The rapid growth of judo in Japan formed in distributing and promoting judo in Joseon. Judo coaches did various activities such as judging at competitions, lecturing, and writing to meet the police's needs for judo while the police provided institutional support related to their activities. This means that the police and the judo coaches were in a mutually cooperative relationship. It also implies that judo was utilized by the police and judo coaches as a means of developing colonial policies favorably.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will contribute to reviewing the history of Japanese judo' overseas expansion and reconsidering the history of judo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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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지연 ( Kim Ji Yeon ) , 양현석 ( Yang Hyun Suk ) , 윤정욱 ( Yoon Jung Wo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4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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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달사 연구로 국내 치어리딩 종목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 및 심층 면담의 연구방법을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치어리딩 종목은 2003년 대한치어리딩협회가 창설되면서 본격화 되었으며 치어업 코리아 치어리딩 페스티벌(치어업코리아오픈 치어리딩 대회),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치어리딩 축전 등의 대회로 치어리딩 종목이 도입, 발전되었다. 둘째, 대한치어리딩협회 창설 후 2014년 9개의 산하 협회가 신설되었는데 그중 인천 치어리딩 협회는 2018년부터 남동구, 부평구, 미추홀구, 연수구 등의 지부를 신설하면서 인천 내 치어리딩 종목에 많은 발전을 꾀했다. 또한 올스타팀 스콜피온의 대회참가 및 공연, 각 초, 중,고등학교의 스포츠클럽팀의 활동이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인천 치어리딩은 협회, 산하 지부, 각종 학교 스포츠클럽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천지역 치어리딩 종목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치어리딩 종목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This study of the development history of cheerleading in Incheon conducted a literature study and in-depth interviews centering on the Incheon area, which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Korea and obtained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in Korea, the sport of cheerleading began in earnes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in 2003, and has been further developed through competitions, such as Cheer Up! Korea! Cheerleading Festival and the national cheerleading festivals among students' sports clubs. Second, after the foundation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nine new affiliated associations were established in 2014. Among them, the Incheon Cheerleading Association has created its branches in Namdong-gu, Bupyeong-gu, Michuhol-gu, and Yeonsu-gu since 2018, trying to further advance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 addition, the all-star team Scorpion's participation in competitions and performances, and the activitie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sports club teams significantly affected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cheon Cheerleading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the region through the active activities of associations, affiliated organizations, and various school sports clubs. Going forward, it is expected to further accelerate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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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6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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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효시인 전조선씨름대회가 한국 씨름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 것으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기존 전조선씨름대회의 역사에는 개최 시기와 해석에 있어 오류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YMCA(1927-1937)와 조선씨름협회(1929-1934)가 각각 전조선씨름대회라는 동명의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한 결과였다. 두 전조선씨름대회는 씨름 경기의 대중적 인기와 근대적 조직화를 위한 자극제가 되었고, 씨름 인재들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전조선씨름대회는 한국 씨름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핵심적인 근간이 됨과 동시에 향후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모태로 기능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impact of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the forerunner of th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ssireum,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ere errors in the timing and interpretation of the previous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This is because the YMCA (1927-1937) and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1929-1934) each held the tournament under the same name a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two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served as a stimulus for the popularity and modern organization of ssireum matches, and became the foundation for systematic fostering of ssireum talent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rved as a key foundation for the transmission and spread of Korean ssireum, and at the same time served as the basis for futur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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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근 ( Park G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8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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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은 향사례의 구체적 시행을 위하여 유향소 복원을 성종에게 건의하게 된다. 따라서 복원된 유향소는 향사당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이후 향사당과 향사례는 현재 활터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론된다. 본 연구는 향사당의 변천과정 속에서 향사례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활쏘기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16세기에는 향사당의 전국적 분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사당의 교육적 기능 위주의 유형과, 유향소적 기능 위주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모두 _주례_의 향대부를 체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향사당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사당과 유향소가 분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1593년 영현지역에 나타난 사계는 향사례를 복원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향사당의 변형적 형태인 것으로 확인된다.


In the early Joseon Dynasty, Kim Jong-jik suggested Seongjong to restore the Yuhyangso for the specific implementation of the Hyangsarye. Therefore, the restored Yuhyangso is called Hyangsadang. Since then, it is inferred that Hyangsadang and Hyangsarye may have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current live site.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changes in Hyangsarye in the transition process of Hyangsadang, and to examine the transition process of traditional archery through thi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confirmed that Hyangsadang was distributed nationwide in the 16th century. It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the educational function-oriented type of Hyangsadang and the Yuhyangso function-oriented type, and both use the Hyangdeabu of _Jurye_ as a sieve. However, it is confirmed that there were many differences by region in the method of applying this. However, it is judged that Hyangsadang and Yuhyangso are not separated because they adhere to the name of Hyangsadang. In particular, the Sagye that appeared in the Younghyun area in 1593 was made to restore the Hyangsarye and is confirmed to be a modified form of the Hyangs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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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귀순 ( Park Cindy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9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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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통해서 진·한조시기의 무예의 형성 배경 및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진·한시기 무예의 전개변화 요인과 그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밝혔다. 진조시기에는 군사무예가 크게 발전했으며, '군공작'이라는 제도를 통해 병사의 훈련과 참전을 장려했다. 진조의 금무정책으로 민간의 병기 소유가 금지되면서 도수무예인 각저가 발달했는데, 오락·유희·관람적 요소의 특징을 나타냈다. 한조시기에는 각저와 수박 등은 유희·오락·관람적 요소와 무예적 요소의 특징이 내포되어 전개되었으며, 새로운 병기무예가 출현했고, 일본에 영향을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두 왕조의 무예가 다르게 전개된 변화 요인은 첫째, 국가 통일 과정 중의 주변 환경적 요인, 둘째, 중앙집권체제의 실천 방법에 따른 요인, 셋째, 중앙 조정의 정책과 제도 시행에 따른 요인. 넷째, 국내 대내·외에 대한 외교 교류 변화에 따른 요인에 있었다. 이를 통해서 두 왕조의 무예의 교육적 가치, 교류 가치 및 계승적 가치를 내포한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Through this, the factors of martial arts change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and its martial arts value were revealed. During the Qin dynasty, military martial arts developed greatly, and the training and participation of soldiers were encouraged through a system. As the private sector was banned from owning weapons due to Qin's a prohibit weapon policy, Jiaodi, a provincial martial arts, developed, which showed the characteristics of entertainment and viewing elements. During the Han dynasty, various types of martial arts were developed, and Jiaodi and watermelons were formed by includ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elements of entertainment, viewing and martial arts. Through the factors of change in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Qin and Han martial arts, it was possible to find the educational value, exchange value, and successive value of martial arts in both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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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복희 ( Kim Bok-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0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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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중세 토너먼트(tournament)의 초기 용어와 확산, 교회의 토너먼트 경기 금지 및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을 파악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너먼트라는 용어는 처음에 기사도 편력의 특징인 십자로, 도전을 통한 게임의 요소가 언급되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토너먼트와 퀸틴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며, 토너먼트는 프랑스의 기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교회는 토너먼트 경기를 금지시키기 위해 참여자를 파문하고 교회 묘지에 매장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했으나, 토너먼트 경기에서 사망한 대부분의 기사들은 고해성사, 수도사의 도움 등으로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외에도 교회는 교화, 설교 등을 실시했지만 토너먼트 경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은 경기에 참여한 군주와 기사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사례를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중세 교회의 토너먼트 금지와 위험성은 쥬스트(Jousts)를 등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early term and spread of tournament in the Middle Ages, the church's prohibition of tournament play, and the dangers of tournament.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term tournament was first mentioned as a crossroads, a characteristic of chivalry, and elements of games through challenges. In the First Crusade, the terms tournament and quintin appeared. spread to other regions of the The medieval church promulgated a decree to excommunicate participants and not to bury them in church cemeteries in order to ban tournament games, but most of the knights who died in tournament games were buried in church cemeteries with the help of confessions and monks. In addition, the church conducted edification and sermons, but could not stop the tournament. The dangers of tournament games have been confirmed through cases in which monarchs and knights who participated in the games were killed or injured. Therefore, the medieval church's prohibition and danger of tournaments became a factor in the emergence of Jou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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