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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 update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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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7-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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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7)~32권2호(2021) |수록논문 수 : 958
시대와 철학
32권2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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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혁명적 반혁명 - 『정신현상학』에서의 헤겔의 프랑스 혁명 분석 -

저자 : 남기호 ( Nahm Kiho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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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 철학자이다. 이 글은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진단한 공포정치의 기원을 혁명적 이념의 잘못 전개된 내적 논리로서 분석하고자 한다.
헤겔이 보기에 프랑스 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머무른 것은 혁명 자체가 내재적으로 함축할 수밖에 없는 반혁명적 요소를 적절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로는 세계를 유용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계몽의 인간중심주의, 자신의 의지만을 보편의지로 내세우는 개별 의식의 완고한 관념론, 정치적 배제를 통해 현실적 보편의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당파적 권력 등이 언급될 수 있다. 이에 좀 더 근본적인 요인으로 이념적으로만 설정될 수 있는 무한한 보편과 다수로 실재하는 유한한 개별 간의 존재론적 모순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헤겔에게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의 완결 작업은 구성원 각자 자신의 개별성을 스스로 지양하며 보편의지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 질서 및 제도의 모색으로 이어져야 한다.


Hegel's philosophy grew up and developed with the French Revolution. This article attempts to analyze the origin of the Terreur, which Hegel diagnosed mainly from a critical point of view in Phenomenology of Spirit, as an wrongly unfolded, internal logic of revolutionary ideal.
In Hegel's view, the French Revolution remained unfinished because it could not adequately overcome the counterrevolutionary elements that the revolution itself immanently implies. As these elements can be mentioned the anthropocentrism of enlightenment that only views the world from the viewpoint of utility, the stubborn idealism of individual consciousness that puts only one's will as the universal will, and the factional power to exert influence as a real universal will through political exclusion, etc. And as a more fundamental factor should be considered the ontological contradiction between the infinite universal that only ideally can be set up, and the finite individual that exists in form of multiplicity.
Accordingly, for Hegel, the completing work of the French Revolution as world-historical affairs must lead to the search for a concrete order and institution in which each member of community sublates her or his own individuality and tries to realize the universal will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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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디어 퍼포먼스에 대한 감성학적 연구

저자 : 심혜련 ( Shim Hea-ryu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5-7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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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디지털 시대에서 미디어 퍼포먼스는 대표적인 예술형식이다. 미디어 퍼포먼스는 매체성과 수행성의 결합을 통해 공감각적 지각을 확장하고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매체성과 수행성 모두 감성적 지각의 확장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매체성과 수행성은 공현전의 토대로 작용한다. 퍼포먼스 예술에서는 신체적 공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매체예술에서는 매체적 현전이 중요한 문제다. 이 글에서는 매체미학 또는 퍼포먼스 미학이 아니라, 감성학이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퍼포먼스를 분석할 것을 제안할 것이다. 이를 위해 매체성과 수행성 그리고 신체적 현전과 매체적 현전을 비교 분석할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퍼포먼스에서 그리고 감성학에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매체적 현전과 신체적 현전을 구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분위기와 그 공간으로의 몰입이다. 매체적 현전과 몰입의 문제는 코로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이 비대면의 방식으로 소통되고 소비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지금, 신체적 현전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 공연예술과 전시를 전제로 한 예술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In the post-digital era, media performance is a representative art form. Media performance is trying to expand synesthesia and maximize audience immersion through the combination of “mediality” and “performativity”. Both mediality and performativity play a crucial role in the expansion of aisthesis Furthermore, mediality and performativity serve as the basis for Co-Presence. In contrast to the importance of 'body co-presence' in performance arts, 'media presence' is an important issue in media art. In this article, it will be suggested to analyze media performance under the name of “Aisthetik”, not media aesthetics or performance aesthetics. To this end, I will compare and analyze the mediality and performativity, and body presence and media presence. However, it makes no sense to distinguish the two in media performance and in aisthetik. What is more important than distinguishing between media presences and body presences is the atmosphere of space and the immersion into that space. The issue of media presence and immersion will be a very important topic in the era of Corona and beyond. Now that everything is forced to be communicated and consumed in a non-face-to-face manner, it is necessary to think about the future of art based on performing art and exhibition, which considered body presence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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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오모리 쇼조의 경우

저자 : 이정우 ( Lee Jeong-woo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0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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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본 철학자들도 존재한다. 이 생각에도 여러 유형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특히 오모리 쇼조(大森莊藏)의 논변들을 살펴 본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여부를 논하지 전에 시간이 아예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 맥타가트의 시간론을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 후에 시간이 존재하되 흐른다고 본 베르그송의 논변을 특히 과거의 네 가지 역설을 중심으로 논한다. 그리고 시간은 실재하지만 흐르지 않는다고 본 오모리의 시간론을 특히 그의 '과거의 언어 구성설(/제작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양자의 비교는 특히 과거 개념에 대한 이해에서 두드러지며,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양자를 비교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맥타가트, 베르그송, 오모리의 시간론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본다. 특히 베르그송과 오모리의 차이를 음미하면서, 이들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론적 입장 차이에서 유래하는지를 밝혀내고, 또 이들에 관련에 앞으로 논구해 볼 만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짚어 본다.


The thought “time flows” is common sensical, broadly admitted in the world. But there are philosophers who insist that time does not flow. We can discover various types of this idea. Here I'll discuss the case of Omori Shozo.
But before arguing the pro and contra regarding the flow of time, in the beginning I'll discuss the theory of time of John McTaggart who insisted the unreality of time. And then I'll discuss that of Henri Bergson who insisted that time is and flows, focusing on the famous four paradoxes of the past; then that of Omori Shozo who insisted that time is but does not flow, focusing on his theory of the “linguistic construction of the past.”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philosophers is conspicuous in the understanding of the concept of the past, and I'll focus on this point in comparing these two figures.
Finally I'll compare the theories of time of these three philosophers. Especially appreciating the difference between Bergson and Omori, I'll expose the definite ontological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figures, and point out the important problem which can be discussed to continue our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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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양철학 1세대 박치우 민주주의론의 성격과 현재적 의미

저자 : 조배준 ( Cho Bae Ju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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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양철학 1세대' 중 한 명인 박치우가 해방공간에서 제기한 민주주의 정치철학에 주목하여 그것에 내포된 성격과 가치를 현재적 관점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해방공간의 민주주의 담론장의 특성과 각 정치세력 사이에서 당시 좌익세력이 추구한 민주주의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이어서 박치우의 철학관이 드러내는 강한 실천성과 당파성이 그가 주창한 '근로인민민주주의' 개념에 어떤 영향을 남겼으며, 그의 민주주의론이 특정한 시대적 한계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파시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비판성과 '지금, 이땅에서'의 역사적 실천성과 당파성에 대한 옹호를 통해 어떻게 보편적인 민주주의 철학사상을 지향하였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박치우가 주창한 '근로인민민주주의'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발디딜 곳 없었던 '사이'의 민주주의론으로서 두 분단국가 정치론의 비무장지대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어떤 현재적 의미를 가지는지 모색한다. 결국 이 글은 형식논리에 근거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절차적 법치주의에 따른 기계적 작동만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민주정치의 전부가 아니라, 언제나 인민의 '최대 행복'을 향해 열려 있는 민주주의의 변증법적 원리와 남북통합의 가치를 그의 미완의 민주주의론에서 독해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democracy raised by Chi-woo Park, one of the first generation of Western philosophy, and tries to clarify the character and value contained in it from the present point of view. To this end, we first look at the characteristics of the democratic discourse in the liberation space and the democratic strategy pursued by the left-wing forces at that time among political forces. Subsequently, the strong practicality and partisanship of Park Chi-woo's philosophy of philosophy left a certain effect on the concept of 'working people's democracy' that he advocated. This course examines how Esau's historical practicality and advocacy for partisanship aimed at a universal democratic philosophical idea. Through this, the 'working people's democracy' advocated by Park Chi-woo is a democracy theory of 'between' that has no place in the north and south, and what it means in the sense that it belongs to the demilitarized zone of the politics of the two divided states is sought. In the end, this article is not all of the democratic politics that we can enjoy only with liberal democracy based on formal logic and procedural rule of law. Note that the value of inter-Korean integration can be read in his unfinished democracy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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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체적 수행성과 정치적인 것에 대한 상상 - 버틀러의 아렌트 독해를 중심으로 -

저자 : 조주영 ( Jo Ju Yo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8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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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의 작업들, 특히 2000년대 이후의 저작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윤리적) 규범 또는 (정치적) 조건 아래에서 삶은 가능한 것 혹은 불가능한 것이 되는가? 살만한 삶, 애도할만한 삶이 의존하는 인식론적 틀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 하에, 버틀러는 도덕을 삶을 조건짓는 정치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는 아도르노의 통찰을 이어받아, 삶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윤리-정치학을 모색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버틀러는 특히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등 아렌트의 저작들을 독해한다. 아렌트 독해를 통해 버틀러는 주체가 권력 또는 담론에 의해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던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이 어떻게 (저항적) 정치의 구심점일 수 있는지, 신체의 수행적 측면이 어떻게 해서 정치학의 토대가 될 수 있는지를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 “행위”, “공거” 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버틀러의 아렌트 독해를 통해 수행성의 정치적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버틀러가 주장하는 수행성의 정치학은 곧 나의 삶과 함께 타자의 삶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을 부과하는 공거의 윤리학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The questions that run through Butler's work, especially since the 2000s, are as follows. Under what (ethical) norms or (political) conditions does life become livable or unlivable? What is the epistemological framework upon which a livable and grievable life depends? Under these questions, Butler pursues an ethico-politics to make life livable, taking over Adorno's insight into understanding morality as being associated with the politics that condition life. For this work, Butler especially reads Arendt's works such as The Origin of Totalitarianism and Human Conditions. Through her reading of Arendt, Butler tries to explain how the concept of “performativity”, which she introduced to explain the way the subject is constituted by power or discourse, can be the central point of (resistive) politics and how the performative dimension of the body can be the basis of politics, through Arendt's concepts of “right to have rights”, “action”, and “cohabitation.” This paper seeks to consider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performativity through Butler's reading of Arendt. In conclusion, I would like to show that Butler's politics of performativity is also the ethics of cohabitation that imposes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the lives of others as well as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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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탈구축과 구조주의 사이에서 -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의 소쉬르 비판을 중심으로 -

저자 : 최원 ( Choi Wo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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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적 비판으로서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이 비판에 대해 구조주의가 줄 수 있는 가능한 답변을 사유해 봄으로써 탈구축의 철학과 구조주의 간의 쟁점을 복잡한 방식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소쉬르의 기호학에 대해 데리다가 중심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기호라는 개념 자체가 음성중심주의와 로고스중심주의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매우 발본적인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기호라는 개념은 기의와 기표의 절대적 구분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기표 없이도 기의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 기표나 에크리튀르는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는 위계적 사고와 분리 불가능하다. 기의와 기표의 절대적 구분은 소쉬르에게 있어서 기호의 자의성의 원칙에 의해 보장되는데, 이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소쉬르는 상징과 기호를 구분한다. 상징은 자신이 상징하는 것과 닮음의 관계를 갖지만 기호는 기의와 기표 간에 오직 자의적 관계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런 자의성은 생성되어 온 것으로 파악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의와 기표는 항상 어떤 동기를 통해 결합되어 있지만 기표가 갖는 타자성으로 인해 기표가 기의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비동기화”의 운동이 있으며, 이것이 기호의 자의성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데리다는 상징도 없고, 기호도 없지만, 오직 상징의 기호-되기만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상징의 비동기화의 운동에 대한 과학이 그가 말하는 그라마톨로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비동기화의 운동에 대해 (탈구축된) 발생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데리다와는 다른 구조주의적 설명도 가능하다. 반실체론적 관계론으로서의 구조주의의 견지에서 보자면, 어떤 기표가 어떤 발생의 역사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며 오직 다른 기표들과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가에 따라 상이한 기의와 결합하게 되어 가치를 부여받기에 기호의 자의성이 생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쟁점과 관련해서 푸코의 『말과 사물』은 우리의 사유를 자극하는데, 16세기의 닮음의 에피스테메 안에서 기호는 기의, 기표, 상황(닮음)의 3원론적 관점에서 사유되지만, 17세기의 재현의 에피스테메 안에서 기호는 기의와 기표의 2원론적 관점에서 사유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데리다는 16세기의 에피스테메 안에서 사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소쉬르는 17세기의 에피스테메 안에서 사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6세기로부터 17세기 에피스테메로의 이행의 질문에 답하는 데리다적 방식(상징의 비동기화)이 있을 수 있지만 구조주의적 방식 또한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발생과 돌발을 대립시키는 알튀세르에게서 찾아질 수 있다. 이 논문은 탈구축과 구조주의 사이의 긴장을 우리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This article tries to understand the debate between the philosophy of deconstruction and structuralism in a complex way, by revealing the essential problematic of Derrida's De la grammatologie as a deconstructive critique of Saussure's structuralist linguistics and by thinking about a possible reply that structuralism can give to such a critique. The central problem that Derrida raises to Saussure's semiology is a radical one: that the concept of sign itself has within itself phono-centrism and logo-centrism. According to Derrida, since it presupposes the absolute distinction between signifieds and signifyers, the concept of sign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hierarchical thinking that signifieds can be determined independently without signifyers and signifyers and writing are derived from such signifieds. The absolute distinction between signifieds and signifyers is guaranteed by the principle of the arbitrariness of signs, which Saussure explains by distinguishing symbols and signs. Symbols have a relationship of resemblance with what they symbolize, while signs only have an arbitrary relationship between signifieds and signifyers. However, Derrida argues that such arbitrariness must be thought as something that has been generated; that signifieds and signifyers are originally combined in a motive, but there begins a movement of “immotivation”, namely a movement of a signifyer breaking away from its signified due to the alterity it has. Derrida says that there are neither symbols nor signs, but only the becoming-signs of symbols. Grammatology, according to Derrida, is a science of such a movement of immotivation of symbols. But it is possible to argue that there can be a structuralist explanation of such a movement of immotivation, which is different from the one that Derrida offers from the standpoint of (decontructed) genesis. From a viewpoint of anti-substantialist relationism, one can say that, regardless of what history signifyers have, they are not substantial in themselves, and they obtain their values only by entering a certain relation with one another and thus getting combined with different signifieds. As for this issue, Foucault's The Order of Things can stimulate our thinking. In the episteme of 16c, signs were thought of from a ternary point of view as consisting of signified, signifyer, and conjuncture (resemblance), while in the episteme of 17c, they were thought of from a binary point of view as consisting of signified and signifyer only. It can be said that Derrida thinks in the episteme of 16c, while Saussure does in that of 17c. Although there might be a Derridian way to explain the transition from one episteme to the other, there might also be a structuralist way to explain it and one can be found in Althusser who opposes the problematic of eruption to that of genesis. This article argues that the tension between deconstruction and structuralism should be main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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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토의민주주의론은 포스트 정치적인 것인가?: 하버마스와 랑시에르를 중심으로

저자 : 한길석 ( Han Gilseok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간행물 : 시대와 철학 32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5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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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하버마스의 토의민주주의 이론이 포스트 정치적인 것일 수 있는 것인지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나는 하버마스적 토의민주주의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담론이론을 랑시에르적 관점에서 성찰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차이에 대해 고찰하고, 포스트 정치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명할 것이다. 또한 토의민주주의적 기획을 제도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현대 민주적 법치국가 질서가 협치의 통치 양식을 통해 포스트 정치적인 것으로 변이되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다. 이러한 변이는 합의를 목표로 삼고 있는 하버마스적 토의민주주의론에 이미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하버마스는 민주적 토의 절차를 거친 합의를 통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적 사회통합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합의 지향적 담론절차가 정치의 활력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하버마스의 이런 입장은 민주주의의 활력을 봉쇄한다. 정치적 담론의 목적을 합의로 제한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의 담론이 정치적 공간에서 본질적 계기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담론은 합의 뿐만 아니라 불화의 관점에서도 해명되어야 한다. 이는 합의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불화의 계기를 도구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하버마스는 불화의 상호 감지가 정치적 담론의 본질적 목표일 수도 있음을 수용함으로 써 합의 일변도의 담론이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whether Habermas'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is free from the suspicion of the post-political. To do this end, I try to make critical exploration of the discourse theory, which is the basis of the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Habermas believes that the democratic discourse process can resolve political disagreements and make stable democratic order. Rancière criticises political discourse with procedural rationality is not different from police. He argues that politics could be emerged only through demonstrating dissensus. But Habermas thinks the consensus-oriented discourse process could guarantee political vitality. In Rancière's view, Habermas might make us mislead or misunderstand post-politics as political.
I think Rancière's criticism aginst Habermas is significant, Habermas should introduce the element of dissensus in his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This means that extension of the Habermasian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Habermas'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should be extended to the model that consider not only the agreement-oriented discourse but also the dissensus-oriented one. This is for the egalitarian reinterpretation of Habermas' theory of deliberative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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