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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

  • : 한국유교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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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6-7082
  • : 2765-5806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6)~88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086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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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근 ( Park Gun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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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학파는 자득을 우선으로 하는 학문적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당대 도학자들, 소학파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즉 존심양성(存心養性)이후에 자득이 이루어지는 것이 도학의 정도인데 반해 만약 자득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면, 이는 이단으로 빠질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송당학파는 자득을 우선으로 하여야 조존양성(操存養性)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득하지 않으면 무엇을 조존양성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송당학파에서 주장하는 자득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를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득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신당의 자득을 위한 전제가 철저한 위기지학에 있었으며, 철저한 위기지학의 학문적 경향은 한훤당의 진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위기지학의 기(己)의 실체는 송당에게 있어서는 치지(致知)라 할 수 있다. 치지를 통해 활연관통에 도달하는 것으로 자득을 삼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송당학파의 자득은 심중의 치지처를 전승하는 것이 전제되었던 것이다. 송당학파에 있어 자득은 존심양성을 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송당학파의 위기지학은 일재에 의해 도학의 궁극인 태극에 도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송당학파의 자득의 정당성은 입증될 수 있으며 자득의 전제조건이 철저한 위기지학이었음은 확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송당학파의 학문적 방법이 당시로써는 보편화되기 어려운 것은 송당학파의 바탕에는 무인적 자질, 즉 곧은 기상과 무예수련, 활쏘기를 통한 경법(敬法)의 체득이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가 선행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The Songdang School had an academic tendency to prioritize enlightenment on its own. This academic trend was also the subject of criticism by scholars of the time. In other words, it is the degree of learning to reach enlightenment after self-discipline, whereas if enlightenment is given priority by oneself, it is because it falls into heresy. However, the Songdang School argues that self-discipline can only be achieved by self-awareness. They argue that if they don't realize it, what will they be able to train with? Therefore, this study attempted to develop a study on what enlightenment the Songdang School claims. And I tried to find a premise to reach enlightenment. Through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the premise for enlightenment was thorough inner observation, and the academic trend of thorough inner observation was Kim Goeng-pil's progress. At this time, the substance of inner observation can be said to be Park Young's arrival of the idea of knowing. If so, the enlightenment of the Songdang School presupposed the transmission of the idea of knowing in the heart. This thorough inner observation of the Songdang School confirmed that Lee Hang was reaching the ultimate Taegeuk of academics. This can prove the academic tendency to prioritize the enlightenment of the Songdang school,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prerequisite for this was thorough internal observation. However, I think the reason why this academic method of the Songdang School was difficult to become common at the time was that the foundation of the Songdang School was equipped with unmanned qualities, that is, upright spirit and acquisition of martial art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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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현우 ( Kim Hyon Woo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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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 문명을 통한 교화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고 통치를 강화하고 자 하였다. 이 교화는 바로 유교의 세속화로써 그중 하나가 효자, 열녀를 기리는 정려(旌閭) 문화이다. 이런 정려 문화는 유교의 세속화와 이효위충(以孝爲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근거로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에도 이어졌다.
조선에서는 초기부터 고려의 정려 문화를 계승하고 효열을 강조하는 유교의 세속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자세히 나타나 있는데, 전자에 280건, 후자에 435건이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155건의 차이가 있는데, 앞의 책에는 신라, 고려와 조선 성종까지의 정려를 모두 망라한 것이라는 점에서 뒤에 책에 추가된 155건은 대체로 중종 재임 시의 내려진 정려였다. 이는 중종과 집권층이 연산군의 학정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과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방편으로 효행 정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려 기록에는 위 두 목적 이외에도 유교 세속화의 방향과 방법까지도 잘 나타나 있다. 우선 당대까지 남아 있던 불교풍의 효행을 유풍(儒風)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기에 극단적 효행이라고 비판받는 할고단지(割股斷指)식의 효행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죽는 극단적 열행 역시 많지 않았다. 그 밖에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지어진 효자전도 그 원형적 형식도 이 안에 들어 있었다.
효자, 열녀는 유교가 지향하는 세속화, 교화, 문화이자 생명 존중의 현실적 실체이다. 하지만 전통 효문화는 '할고단지와 극단적 절행을 장려한다'하여 비과학적이고 극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는 지금부터 3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이 역시 당시 지식인들에게 많은 비판과 검증을 받았다. 나아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효열 정려 기록은, 죽거나 만들어진 전통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세대 간 차이를 극복하고 타 국민과 화합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공생과 배려의 가치로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Joseon tried to stabilize society and strengthen its rule through Confucian civilization. This culture is the secularization of Confucianism, and one of them is a culture that honors devoted son(孝子) and fierce wife(烈女). This culture continued through Silla and Goryeo to Joseon, but its ideological foundation is based on thinking of ruling with filial piety(孝).
In Joseon, Confucian culture of Goryeo was inherited from the beginning, and Confucianism, which emphasized filial piety, was secularized. This is detailed in the Donggukyeojiseungram(東國輿地勝覽) and the advanced Donggukyeoji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but the latter contains 155 more than half of the former 280 cases. The reason for this is that King Jungjong promoted filial piety as a way to calm public sentiment and stabilize state affairs and the people's livelihood.
In particular, the advanced Donggukyeojiseungram is a comprehensive national report of the devoted son and fierce wife from all over the country, showing the direction and method of Confucian secularization in the middle of Joseon. Even that time the filial piety of the Buddhist style still lingered, and secularization work was carried out simultaneously to transform it into a Confucian style.
Kings also commended about extreme filial piety, but the ratio was not high, and there were not many wives who were extremely incised to die with their husbands. In addition, the Story of devoted son, which was built active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able to find its original form.
Devoted son and fierce wife were the secularizations that Confucianism aspired to. And the records of them in the advanced Donggukyeojiseungram are not traditions that are made or died, but still lead to a sense of awe for life, and will be an important basis for our efforts to create the traditions necessary for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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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제균 ( Park Je Gyun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9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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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조의 군사론(君師論)을 검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정조는 '군(君)'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황극 개념을 동원했다. 그는 사대부의 상징인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보다 군사(君師)인 우임금으로부터 비롯된 상수학(象數學)의 황극론을 활용했다. 정조는 이를 통해 군신(君臣)간의 우위를 점하고 왕권의 위상을 확립하려 했다.
정조는 '사(師)'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초계문신(抄啟文臣)들과 함께 경사강의(經史講義)를 통해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었다. 정조는 초계문신, 성균관 및 사학(私學)기관, 지방의 유생들과 학문 토론을 거듭하며 수천 권에 달하는 어정서(御定書) 및 명찬서(命撰書)를 편찬하면서 '사(師)'의 면모를 보였다. 끝내는 『대학』·『대학연의』·『대학연의보』를 연구하여 군도(君道)와 사도(師道)를 통합한 정조의 군사론이 투영된 『대학유의』를 편찬했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정조는 자신의 군주관인 군사(君師)를 실현하고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을 공표하며 사업을 완수했다.
이 작업은 실재가 주(主)가 되고, 관념은 부(副)가 되는 정조의 세계관을 보여주며, 조선 후기 학문의 변동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King Jeongho's Theory of Gunsa(君師論). King Jeongjo used the concept of Hwanggeuk(皇極) as a standard for the king to establish the status of the 'Gun(君)'. He used the Hwanggeuk theory of the science of xiangshu(象數學) derived from the Gunsa king Wu rather than the Li-ki theory of Neo-Confucianism, the symbol of the nobleman, to give the effect of gaining an advantage among monarch and liege. Through this, King Jeongjo tried to establish the status of royal authority by gaining the upper hand among monarch and liege.
In order to establish its status as a 'Sa(師)', King Jeongjo opened a new chapter of learning through a lecture Gyeongsa-Gangui(經史講義) with Chogyemunsin(抄啟文臣). King Jeongjo continued to hold academic discussions with scholars from Chogyemunsin, Seonggyungwan, and the private school and local student of Confucianism, showing the aspect of 'Sa(師)' and compiled thousands of Eojeongseo(御定書) and Myeongchanseo(命撰書). Conclusively, King Jeongjo studied The Great Learning(大學), The Extended Meaning of The Great Learning(大學衍義), and The Extended Meaning Assistant of The Great Learning(大學衍義補) with Munsin and student of Confucianism, and compiled The Kind Meaning of The Great Learning(大學類義) that integrated the Gundo(君道) and the Sado(師道). Through a series of efforts, King Jeongjo realized his monarchy, GunSa(君師), and completed the project by announcing the Master of Ten Thousand Rivers and the Moon(萬川明月主人翁).
This work shows the worldview of King Jeongjo, where reality becomes the main focus and ideology becomes assistant, and becomes an example of the changes in study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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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원일 ( Cho Wonil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1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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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형양은 유가에서 중시하는 전통적인 제사와 경천사상을 상당히 주목하는 한편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형양이 유가의 제례를 긍정했다는 것은 기정된 사실임을 감안했을 때 이러한 제사의 대상이 되는 객체, 즉 천지나 조상 및 성현 등과 같은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해서도 의미상에 있어서 긍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자면 그가 「달성론」에서 한 “세 제후가 하늘에 계신다고 한 것은 정령이 승천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라고 하는 언급에서 “세 제후가 하늘에 계신다.”라고 하는 언급은 『시경』, 「대아ㆍ문왕」편에 나오는 것으로 본래 세 제후는 대왕ㆍ왕계ㆍ문왕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세 제후가 죽은 후에 그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에 있으면서 주나라를 보우해준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하형양의 이러한 견해는 조상신을 결코 부정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귀신이나 심지어 정령의 존재까지도 긍정하는 태도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 측 인사들은 신멸론을 주장한다면 이론적으로 당연히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형양은 신멸론을 주장하면서 또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니 이는 신멸론 사상의 자기모순인 셈이다. 이에 반하여 유가의 제례의식에서는 귀신을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귀신이 살아 있는 사람과 서로 감응하고 통할 수 있는 까닭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감각ㆍ인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선대 사람과 후대 사람의 기쁨이나 노여움ㆍ슬픔이나 즐거움과 같은 것들이 모두가 서로 같은 정신작용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의 제례는 제사를 올리는 사람이 조상이나 성현의 은혜와 은덕에 대한 보답과 자신 생명의 뿌리로 돌아가고 그 뿌리를 잊지 않는다고 하는 정신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He hengyang focused her attention on the traditional ancestral rites and the thought of honoring the heavens, which were valued in Confucianism. The fact that He hengyang affirmed the rites of Confucianism indicates that he affirmed the heaven and earth, ancestors, and great people as the object of the sacrifice. This is not to say that He hengyang never denies the ancestral spirit. It can also be said that he is sufficient to explain an attitude that affirms the existence of ghosts and even spirits.
The Buddhists thought that if he insisted on Shenmielun(神滅論), theoretically, the existence of ghosts should be denied. However, He hengyang also acknowledged the existence of ghosts while asserting Shenmielun. This is a self-contradiction of Shenmielun thought. However, the rites of Confucianism affirm ghosts. Therefore, it is said that the ghost can respond and communicate with living people. The reason is not based on the senses and perceptions that the dead had while they were alive. This is because the joys, anger, sorrows, and joys of ancestors and descendants are all based on the same mental operation. Therefore, in the rite of Confucianism, the person offering the ancestral rite is in return for the grace and benevolence of an ancestor or a great person. It also focuses on the spirit of returning to the root of one's life and not forgetting the r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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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선병삼 ( Sun Byeongsam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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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月川) 조단(曹端, 1376-1434)은 한국 학계에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명대 전기 이학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역대로 조단은 명대 이학의 종장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명대의 주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본 논문은 조단의 이학사상을 「태극도설술해」와 「통서술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태극도설」과 「통서」가 주돈이 이학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처럼, 「태극도설술해」와 「통서술해」는 조단 이학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첫째로 「태극도설술해」는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태극도 그림과 태극도설 문자의 술해이다. '도(圖)' 술해는 주자의 태극도 해설 원문을 그대로 차용하고, 조단자신의 생각을 소주로 밝혔다. '설(說)' 술해는 주자의 주해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면서 조단 자신의 견해를 기술했다. '태극은 리'라는 입장과 '태극은 활리(活理)'라는 입장을 중심으로 논했다. 둘째로 「통서술해」는 '통서총론', 「통서」에 대한 술해, '통서후록'으로 이루어져있다. '통서총론'은 「통서」와 「태극도설」에 대한 전현들의 평을 전재하여, 조단 자신이 「태극도설」과 「통서」를 이해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밝힌다. '통서후록'에서 조단은 이정이 주돈이의 이학을 계승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는 송대 이학의 종장으로 주돈이를 확립하는 문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誠), 천도와 인도의 일관'에 관한 입장과 '주정(主靜) 공부'에 관한 입장을 중심으로 논했다.


Cao Duan(1376-1434) is a one of greatest scholars in the early Ming Dynasty. He isn't well known to the Korean academic world studying Confucianism, but he is always mentioned in many books and essays dealing with Confucianism in the early Ming Dynasty. He is appreciated as the founder of Confucianism in the Ming Dynasty. He is also regarded as a Zhou Dunyi(周敦頤) in the Ming Dynasty, who is appreciated as the founder of Confucianism in the Song Dynasty. In this paper, I do a comprehensive review on Cao Duan's Lixue analyzing his tai ji tu shuo shu jie(太極圖說述解) and tong shu shu jie(通書述解) which are the commentary Zhou Dunyi's great works of tai ji tu shuo(太極圖說) and tong shu(通書). The first, in the tai ji tu shuo shu jie(太極圖說述解), I lay a stress on two aspects to confirm the stereotype of Cao Duan's Lixue. One is tai ji(太極) is li(理) not qi(氣). the other is tai ji(太極) is huo li(活理) not si li(死理) analyzing his work of bian li(辨戾) in which he asks a question of Zhu Xi(朱熹)'s comments about tai ji dong jing(太極動靜). The second, in the tong shu shu jie(通書述解), I focus to discovering his cultivation theory of zhu jing(主靜), which is mentioned in tai ji tu shuo (太極圖說) by Zhou Dunyi. Most Neo-Confucian scholars know that zhu jing(主靜) is akin to Taoism and Buddhism's self-discipline theory, so replacing it with ju jing(居敬). Cao Duan is using the expression of dong gu jing(靜固靜) and dong yi jing(動亦靜) to articulate his notion of self-discipline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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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도일 ( Doil Kim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5-16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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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동아시아 유가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그 전통적 면모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덕목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이자 행동 양식이다. 중국 고대부터 이어져온 덕목인 “겸(謙)”은 송(宋)나라 때의 사상가들, 특히 정이천(程伊川)과 주희(朱熹) 등을 통하여 개념적으로 더 심화된다. 이 둘을 위시한 중세 사상가들은 “겸”을 “유순(柔順)”과 “유이불거(有而不居)”와 연계함으로써, 그 덕성을 유가 사상 내에서 더 정합적으로 개념화시킨다. 또한, 겸을 “무아(無我)”와 연결함으로써 특정한 정신적 경지와 직결시킨다. 이렇게 심화된 개념을 고대의 “겸”과 구분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겸손(謙遜)”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송대 철학자들의 개념적 심화를 통해 겸손의 자기 수양적 기능 역시 강화되었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즉 이 개념적 심화를 통해 우리가 겸손함으로써 어떻게 더 이상적인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가 더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겸손의 자기 수양적 기능은 불교적 수행과 상당히 유사하다. 바로 이 점을 본고는 겸손과 혜능(慧能)의 『단경(壇經)』에 나오는 소위 삼무(三無), 즉 “무념(無念)”, “무상(無相)”, 그리고 “무주(無住)”를 비교를 통해 밝힌다. 특히 중세의 겸손에 연결된 유이불거가 그 수행적 기능에 있어서 무주에 비교될 수 있고, 또 한편으로 진정한 겸손은 유가적 관점에서의 궁극적 경지이자 상태에 도달한 사람만이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념이 지닌 개념적 위상에 비견될 수 있음을 설명할 것이다.


Qian xun (謙遜), Confucian humility, is one of the still-vital traditional virtues in the East Asian culture. Nevertheless, it is also one of the virtues whose traditional aspects are not fully understood today. This paper seeks to find out one of such traditional characteristics of Confucian humility by raising the question of how Confucian humility helps one develop oneself to become a better person in the Confucian sense. This virtue is widely understood as an attitude, a behavior, or a tendency not to boast of one's merits but instead to respect others by lowering oneself. Its original form, qian (謙), had been passed down since ancient times in China, and it was conceptually further deepened by neo-Confucian thinkers in the Song Dynasty, such as Zheng Yichuan (程伊川) and Zhu Xi (朱熹). They conceptualized Confucian humility more coherently within the Confucian system of thought by linking it with new ideas such as “roushun (柔順)” and “you er buju (有而不居).” These two expressions can be translated as the attitude or behavior of “being gently adaptive” and that of “having something without dwelling in it,” respectively. In addition, the neo-Confucians related Confucian humility to the idea of wuwo (無我), which can refer to the mental state reached by the ideal human being, shengren (聖人), namely no-self. This paper argues that this conceptual development by the neo-Confucians also served to strengthen the function of self-cultivation embedded in the practice of Confucian humility. That is, the three ideas added newly to Confucian humility enables us to get a better sense about how one can transform into a more ideal human being by being humble in the Confucian sense. Interestingly, as this paper shows, the function of Confucian humility that helps one's self-cultivation is comparable to the traditional Buddhist concept and practice of the so-called “three nothingness (三無)” in the Platform Sūtra of the Sixth Patriarch (六祖壇經). Three nothingness is a convenient label referring to no-thought (wunian 無念), no-form (wu xiang 無相), and no-stay (wuzhu 無住), which the sixth Zen patriarch Huineng (慧能) presents as three cardinal methods of Zen meditation. This paper first shows that an important aspect of qian, the original form of Confucian humility, resembles the Buddhist way of self-cultivation through no-form, and that you er buju, one of the aforementioned ideas added to Confucian humility in neo-Confucian thought, is similar to the Buddhist way of self-cultivation through no-stay. Finally, this paper also explains in what sense the Buddhist idea of no-thought is partly, though meaningfully, comparable to the ideal state that one can obtain by being humble.
However,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above comparison is not intended to determine any historical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 humility and Buddhist three nothingness. Rather, the comparison is methodologically adopted to understand how Confucian humility can help in self-culti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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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진무 ( Kim Jin Moo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19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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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유학의 교섭관계는 바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로부터 발생하여 남북조(南北朝)시기를 거치면서 유불융합(儒佛融合)의 기본 틀이 형성되었고, 수대(隋代)로부터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유학자들이 '유불융합'을 제창하였고, 유불도 '삼교일치론'까지 출현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사상으로부터 말하면, 불교가 유가로부터 받은 영향은 바로 '불성론(佛性論)'의 출현이고, '불성론'은 다시 유가의 심성론에 영향을 미쳐 '심학(心學)'과 '이학(理學)'을 출현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가의 적극적인 '입세(入世)'의 정신은 '출세(出世)'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를 변화시켜 '입세'를 중시하도록 전환시켰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유학과 불교의 융합과정을 논하고, 나아가 『육조단경』과 육구연의 심학(心學), 왕수인(王守仁)의 양명학(陽明學)의 사상적 교섭관계를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육구연이나 왕수인은 모두 『육조단경』에서 제시하는 선사상을 수용한 측면이 두드러져 보이고 있다. 육구연이 제창한 '절기자반(切己自反)'이나 '도불외색(道不外索)'의 사상은 『단경』에서 연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왕수인이 제창한 '양지(良知)'와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 등의 사상의 배후에는 바로 『단경』의 '자성(自性)'이나 '정혜등학(定慧等學)'이 작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육왕(陸王)의 심학(心學) 계열에서 『육조단경』의 사상을 수용하여 융합한 것은 전체적인 불교와 유학의 융합과정을 통관한다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양명학의 유행은 명말 극도로 쇠락한 불교에 '사대고승'이 출현하게 하여 중흥을 이루어 중국불교의 정맥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육왕 심학이 조사선에 대한 사상적 채무를 충분히 갚았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 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The negotiating relationship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originated from the early days of Buddhism's introduction to China. During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period, the basic framework for the fusion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was formed. From the Sui dynasty to the Tang dynasty, the Confucian scholars rather advocated the fus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theory of unity of three religions also appeared. Speaking from a large frame of thought, it can be said that Buddhism was influenced by Confucianism with the emergence of 'Buddha-nature theory', and the investigation of such 'Buddha-nature theory' again influenced appearance of the Confucian XinXue(心學) and LiXue(理學). In addition, it can be said that Confucianism's emphasis on 'worldly action' changed Buddhism centered on 'supra-worldly action' and changed it to emphasize 'worldly action' as well.
This paper discusses the process of fus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after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o China, and further briefly examines the ideological negotiation relationship of 'The Platform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LiuJiuYuan(陸九淵)'s XinXue, and WangYangming(王陽明)'s YangMingXue(陽明學).
Both Liu and Wang showed remarkable acceptance of the Seon ideas presented in 'The Platform Sutra of the Six Patriarch'. It can be seen that the idea of 'QueJiZiFan(切己自反)' or 'DaoBuWaiSuo(道不外索)' propounded by Liu is highly likely to have originated from the 'The Platform Sutra'. Also, behind the ideas of 'YangJi(良知)', 'ZhiYangJi(致良知)', and 'integration of wisdom and action(知行合一)' proposed by Wang is it possible to presume that 'self-nature' and 'DingHuiDengXue(定慧等學)' worked.
The acceptance and fusion of the ideas of 'The Platform Sutra' in the LiuWang Xinxue can be a natural result if the overall process of fusion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is cleared. However, the fashion of Yangming Studies made it possible to succeed in Chinese Buddhism through the appearance of 'four great monks' in Buddhism, which was extremely declining at the end of the Ming Dynasty. From this point of view,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a point that can be evaluated as having fully paid off his ideological debt to the Patriarchal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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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석길암 ( Gil-am Seok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1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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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어난 불교와 유교의 교섭 과정에서 불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불성을 주목한다. 하지만, 불성이 인도불교 본래의 사유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동일한 관점에서 불교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인성을 주목하지만, 인성이라는 개념이 본래의 유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것인지도 의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은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의 교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접점이다. 유불교섭 이후의 사상사에서 각각의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불성과 인성이 주목된다.
두 사유의 접촉과 변용 과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불성 개념에 대한 이해의 변화이다. 중국 불교인들은 불성 혹은 여래장을 심식설(心識說)과 결부시켜 이해하였으며, 이것은 불성 혹은 여래장의 개념을 오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러한 오해가 불성 혹은 여래장이라는 개념을 중국의 인성론과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불성 혹은 여래장 개념과 중국 전통의 인성 개념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본 논문은 이고(李翶)의 『복성서(復性書)』에 보이는 것과 같은 중국 유학의 인성 이해가, 불교의 불성[혹은 여래장] 개념에 대한 오해와 착종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유교의 전통적 인성론과 불교의 불성론이 교섭한 결과, 유교의 인성론에 대한 이해도 불교의 불성론에 대한 이해에도 역시 변용이 있었음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This article focuses on Buddha-nature as a concept representing Buddhist thought in the process of negotiation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China, Buddha-nature, However, does not represent the original thought of Indian Buddhism. From the same point of view, this article focuses on human nature as a concept representing Confucian thought in the process of its negotiating with Buddhism, but there is also a question as to whether the concept of human nature represents original Confucian thought in China. Nevertheless, the two concepts are representative points of contact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China. In the history of East-Asian thought since the initial meeting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Buddha nature and human nature have been noteworthy as concepts representing their essential thoughts.
Especially, noteworthy in the process of the contact and transformation between Buddhist and Confucian thoughts is the change in East-Asian understanding of the concept of Buddha nature. Chinese Buddhists have understood Buddha nature or tathāgatagarbha in conjunction with the theory of mind-consciousness (心識說), resulting into a kind of misunderstanding of the concept of Buddha nature or tathāgatagarbha. From another point of view, however, it might be considered that this misunderstanding has led to East-Asian active contact between the Chinese theory of the concept of human nature and Buddha nature or tathāgatagarbha, transforming the concept of Buddha-nature and tathāgatagarbha in the history of Chinese traditional thought.
This article identified that, in the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such as that shown in Li Ao (李翱, 772-841)'s book entitled On the Recovery of Human Nature (復性書), Chinese Confucianism has reflected one aspect of misunderstanding and erroneous entanglements with the Buddhist concept of Buddha nature [or tathāgatagarbha]. Further, as a result of the negotiation between human nature in traditional Confucianism and Buddha nature in Chinese Buddhism, this article purported to articulate that there have been transformations in East-Asian understanding of Confucian human nature as well as in Buddhist understanding of Buddha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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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원석 ( Wonseok Lee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4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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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초년 시절의 스승인 유자휘(劉子翬, 1101-1147)는 젊은 시절 대혜종고(大慧宗杲)로부터 학문적 비판을 받고 이후 자신의 사상적 내용을 수정함으로써 유불조화론(儒佛調和論)의 한 양상을 보여준 인물이다. 대혜가 보기에 유자휘가 취한 수행법의 문제점은, 묵조선적 선정(禪定)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성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유자휘는 『주역』의 주요 구절을 『금강경』의 주요 구절에 대응시키려 했는데, 그가 이런 오류를 범한 까닭은 생사의 관문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혜는 지적했다. 본론에서 분석한 유자휘의 「성전론(聖傳論)」은 그가 대혜의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유자휘는 도(道)에 대해, 그것이 단지 고요하고 공허한 동일적 본체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원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마음'은 본래 적막하여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것이지만 외물과 감응하여 적절한 감정을 낼 수 있는 것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본성과 감정을 정밀하게 변별하는 주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보았다. 그다음, 유자휘는 사려 및 호오의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대신 선을 사유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유자휘는 이상적 모범으로서 공자를 제시하되, 생사의 관문을 깬 인물로 그를 재해석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유자휘의 논변 이면에서 장재(張載)의 철학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유자휘는 도와 세계의 본질을 일기(一氣)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주지하다시피 장재는 기론(氣論)의 명실상부한 대표자였다. 둘째, 마음 개념에 대한 유자휘의 설명이 장재의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과 매우 유사하다. 장재는 “본성과 지각을 합한 것이 마음”이라고 규정하였고 유자휘 역시 본성과 감정을 정밀하게 변별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여겨,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부각했다. 이 글은 마지막으로 유자휘와 장재 사이의 연관성을 양자 사이의 인적 관계에 의해서 뒷받침했다.


Liu Zihui(劉子翬, 1101-1147), a teacher in the early days of Zhu Xi, was criticized academically by Dahui Zongao(大慧 宗杲) when he was young and later revised his Confucian theory based on the criticism. In Daehui's view, the problem with the cultivative practices taken by Lui Zihui was to pursue that of Silent-Penetrative Seon(黙照 禪) while also pursuing a conceptual understanding of it. In addition, according to Dahui, Liu Zihui mistakenly considered that Zhouyi's key phrases corresponds to those of the Diamond Sutra. Dahui pointed out that Liu Zihui committed such an error because he did not understand life and death problems. Liu Zihui's “Thesis on Saint's Transmission(聖傳 論)” indirectly shows that he accepted Dahui's criticism to some extent. First of all, Liu argued about Dao(道) that it is not only a still and empty identical body, but also a principle of diversity. In addition, he saw that Mind is inherently silent, but it can create appropriate emotions in response to objects outside the mind, and more importantly, it plays the role of the presiding one which accurately distinguishes human nature and emotions. Liu then argued that it is neither desirable nor possible to calm the mind by removing thoughts and emotions, and that instead, you should think about good and change your mind to like it. Finally, Liu presented Confucius as an ideal example, but reinterpreted him as a person who solved the problems of life and death. First, Liu explains Dao and the essence of the world through the concept of Yi Qi(一氣), and as is well known, Zhang Zai was a representative of the theory of Qi. Second, Liu's explanation of the concept of mind is very similar to that of Zhang Zai. Zhang Zai stipulated that "the sum of nature and perception is the mind," and Liu also thought it was the mind to accurately distinguish between human nature and emotion, so both relatively highlighted the role of the mind. Finally, I supported the connection between Liu and Zhang by the human network between the two.

KCI등재

저자 : 이해임 ( Lee Haeim )

발행기관 : 한국유교학회 간행물 : 유교사상문화연구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9-27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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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성은 격물을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이정의 격물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은 외부 대상으로 나아간다기보다 내면의 선한 본성을 확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양시가 격물을 내면의 선을 밝힘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울러 선한 본성을 확인한 마음은 사물의 모습을 온전하게 비추어내는 것으로,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도 어떤 상황에서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예컨대 내 마음이 선한 본성을 확인하는 순간 경전의 이치 또한 자연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때 성인이든 범인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어진다. 장구성은 이를 물격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대혜종고가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를 논한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다만 장구성이 본성을 인의예지로 규정한다면 대혜종고가 이를 공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장구성은 북송대 성리학과 선불교의 논의를 토대로 격물과 물격의 의미를 정립한 것이다.


Zhang Jiu-cheng defines gewu as investigation for the principle of things. This is the acceptance of the Cheng brothers' concept of gewu. In addition, the investigation for the principle of things is focused on finding the innate moral nature rather than getting to the external information. This is similar to Yangshi's definition of gewu as finding the innate moral nature. In addition, the mind that has found the innate moral nature knows the essence of things, and it can deal with any situation correctly without relying on anything. For example, the moment the mind identifies the innate moral nature, I naturally have a through knowledge of the scriptures. And at this time, there is no difference whether it is a saint or an ordinary man. Zhang Jiu-cheng defines it as wuge. This is a similar logic to the state of reaching enlightenment by Dahuizonggao. However, there is an essential difference in that if Zhang Jiu-cheng defines the essence of human being as the four moral nature, then Dahuizonggao defines it as emptiness. Therefore, Zhang Jiu-cheng established the meaning of gewu and wuge based on the discussion of Neo-Confucianism and Zen Buddhism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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