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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update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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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49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639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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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악당(最樂堂) 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 시조의 전승 양상에 관하여

저자 : 송태규 ( Song Tae-kyu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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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最樂堂 朗原君 李偘(1640∼1699) 시조 작품의 가집 수록 및 전승 양상을 계보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승 개념 즉, 최초로 수록된 문헌에서의 작품 텍스트에 대한 원형적 보존을 전승으로 이해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텍스트의 변개와 斷章取義, 작자 명기의 변화 등 분절적인 형태로의 전승까지도 포괄하는 '확장적 전승'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대안적 전승 개념의 필요는 다음과 같다. 주시하다시피 20세기 이후 국민문학 담론 속에서 '문학으로서의 시조'가 대두함에 따라 시조 또한 근대문학작품의 형식이 요구하는 고정된 작품텍스트, 개인으로서의 작가 정체성, 1:1의 작가-작품 관계를 갖고 있거나 혹은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은 기존의 이해 방식은 시조의 정체성과 향유방식을 감안하지 못하며, 시조 갈래 자체가 내포한 유동성을 오히려 소거 또는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확장적 전승 개념을 통해 재고된 낭원군 이간의 시조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19세기 이후에도 전승을 지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승 과정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초 수록문헌인『청구영언진본』에서의 付記가 이후 가집들에서는 탈락하는 양상을 보이며 이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가 변화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되던 작품 군집들이 전승 과정에서 해체되어 독립적인 개별 작품으로 인식되어 후대 가집에서 재배치되는 양상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후대 가집에서 전승이 지속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전승의 의도, 성격, 형태 등이 균질하지 않으며 작품에 대한 수용 맥락과 이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그간 고정불변의 1:1 대응 관계로 간주된 작가-작품의 관계와 더불어 시조 전승의 개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collection and transmission aspects of the poetry collections of 最樂堂 朗原君 李偘(1640∼1699) from a genealogical perspective. In this process, it breaks away from the existing concept of transmission, that is, the method of understanding the archetypal preservation of work texts in the first documented literature as a tradition, and embraces the transformation of texts, 斷章取righteous, changes in the author's specification, and even the transmission in a segmental form. 'Expanded inheritance' is presented as an alternative.
The need for an alternative concept of inheritance is as follows. As you can see, with the rise of 'Sijo as literature' in the discourse of national literature since the 20th century, Sijo also has a fixed work text, individual author identity, and a 1:1 author-work relationship required by the form of modern literary works. understood to exist or to have. Such existing understanding methods do not take into account the identity and enjoyment of the Sijo, and have resulted in the elimination or weakening of the fluidity inherent in the Sijo branch itself. Contrary to conventional wisdom, it can be seen that the ancestors of Nangwon-gun Igan, reconsidered through the concept of extended transmission, continued to be transmitted even after the 19th century.
In addition, if we look at the aspects of the transmission process, we can find that the 付記 in the first recorded document, 'Chunggeongyeongeon Jinbon', is dropped from the later collections,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work changes accordingly. It can also be seen that groups of works, which were understood as a group, are dismantled in the process of transmission and are recognized as independent individual works and rearranged. In other words, even if it is a work that has been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 acceptance context and understanding of the work is changing.
Through this observation,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possible to provide a clue for reflective reflection on the concept of sijo tradition along with the artist-work relationship, which has been regarded as a fixed and unchanging one-to-one correspo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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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학치료관점에서 본 유배시조 - 『금강영언록』을 대상으로

저자 : 강성주 ( Kang Seong-ju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5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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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금강영언록』의 연군 소재 시조를 대상으로 시조 창작의 치유적 효과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김이익의 가문적 배경과 금갑도 유배의 삶을 살펴보고,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김이익의 유배시조를 재해석하여 정조 승하와 유배라는 상흔을 회복하는 과정을 살폈다.
김이익(金履翼, 1743∼1830)은 정순왕후와 벽파에 의해 정조를 기망했다는 죄목으로 1800년 12월 25일 진도 금갑도에 정배된다. 이후 1802년 8월 11일부터 9월 8일까지 진도 금갑도에서 시조집 『금강영언록』을 창작하였다. 『금강영언록』은 이전 이성 유배시기 창작한 『관성잡록』과 달리 작품의 주제가 섞여 제시된다는 점에서 일련의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배치한 것이 아닌 창작의 순서대로 수록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소재들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로 보아, 각각 단절적인 의미를 형성하는 텍스트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소재를 통해 묶이게 되면 하나의 계기적 서사를 가질 수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전체 작품 중 연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문학치료 관점에 따라 '진단 단계-해소 단계-회복 단계'로 분류하고 갈등과 치유의 양상이 드러남을 검토하였다.
나아가 『금강영언록』은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진단과 해소의 단계를 거쳐 회복의 단계까지 이르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작품 속에서 단계별 치유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문학치료의 효과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김이익이 『금강영언록』 창작을 통해 문학치료적 과정을 체험했음을 보여주는 것에 더 나아가 유배시조의 창작이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효과적임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healing effect of creating Sijo based on 『Keumgangyengeunrok』. To this end, we looked at the family background of Kim Yi - ik and the life of exile to Geumgapdo, and reinterpreted Kim Yi - ik's exile from the perspective of literary therapy to restore the scars of King Jeongjo's death and Kim Yi - ik's exile.
Kim Yi - ik(1743-1830) was exiled to Geumgapdo in Jindo on December 25, 1800 on the charge of deceiving King Jeongjo by Queen Jeongsun and Byeokpa. After that, from August 11 to September 8, 1802, he created a collection of Sijo books 『Keumgangyengeunrok』 in Geumgapdo, Jindo. Unlike 『Gwanseongjabrok』, which were created during the previous exile to Iseong, the themes of the works were mixed and presented, so it can be inferred that the works were not arranged with a series of intentions, but included in the order of creation. In addition, certain materials were repeatedly presented. In view of this, each text forms a disconnected meaning, but if it is grouped through repeatedly presented materials, it can have an instrumental narrative. Therefore, in this article, among all works, works on the theme of yearning for the king were classified as "diagnosis stage-resolution stage-recovery stage"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of literary therapy and reviewed that conflict and healing were revealed.
Furthermore, 『Keumgangyengeunrok』 clearly showed the process of reaching the stage of recovery through the stage of diagnosis and resolution from the perspective of literary therapy.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healing patterns of each stage in the works and to confirm the effectiveness of literary therapy. These results further show that Kim Yi -ik experienced the literary therapy process through the creation of 『Keumgangyengeunrok』, and can be said to be an example of proving that the creation of exile Sijo is effective from the perspective of literary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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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암 김응정의 가곡집과 시조

저자 : 김신중 ( Kim Shin-ch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7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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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 김응정(1527∼1620)은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한 시조 작가이다. 그의 시조는 사후 70년이 지나 『해암가곡집』으로 엮어졌다. 그렇지만 이 문헌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그의 시조 8수만이 『해암문집』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런 김응정의 가곡집과 시조에 대해 고찰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 『해암가곡집』의 편찬과 행방에 대해 살폈다. 이를 통해 『해암가곡집』은 김응정의 5대손 김이호가 숙종16년(1690)에 편찬하였으며, 이때 수습한 작품 수는 현전하는 『해암문집』 초간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후 숙종35년(1709)에 김이호가 다시 『해암가곡집』을 『해암선생집』으로 확대 개편하였음을 밝혔다. 이 일을 이어받아 영조 49년(1773)에는 6대손 김명언이 『해암문집』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그러므로 『해암가곡집』은 일실된 것이 아니라, 실은 『해암선생집』을 거쳐 『해암문집』으로 개편되어 전한다는 것이 이 글의 입장이다.
이어 제3장에서 『해암가곡집』과 관련된 해암시조의 몇 가지 문제를 조명하였다. 먼저 해암시조의 제목들이 작가가 창작 당시에 직접 붙인 것이 아니라, 『해암가곡집』과 같은 문헌 편찬 과정에서 후인에 의해 붙여진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 제목들이 작품 이해의 결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특히 작품 <문반정(聞反正)>을 그런 경우로 보고, 이 작품을 '반정'과는 무관한 입장에서 다시 해석하였다. 즉 광해군의 즉위와 그에 따른 소북파의 축출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시켜 해석하였다.
해암시조 중에서도 <문반정>은 유독 작품 이해에 의문이 많은 작품이다. 이 글은 그런 의문을 구체적으로 해명하였다는 데에 주된 의의가 있다. 또 『해암가곡집』과 해암시조의 제목에 대한 고찰 역시 이 글에서 처음으로 시도하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Haeam Kim Eung-jeong(1527∼1620) was a Sijo writer who was active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70 years after his death, his works were woven into Haeamgagokjip(懈菴歌曲集). However, this document has not been handed down at present, and only his eight Sijos have been handed down through Haeammunjip(懈菴文集). This article examines Kim Eung-jeong's Gagokjip and Sijo.
First, in Chapter 2, I looked into the compilation and whereabouts of Haeamgagokjip. Through this, it was estimated that Haeamgagokjip was compiled in the 16th year(1690) of King Sukjong by Kim Eung-jeong's fifth-generation descendant Kim I-ho, and the number of works recovered at this time would not have been much different from that of the first edition of the Haeammunjip. And it was revealed that Haeamgagokjip was again expanded and reorganized into the Haeamseonsaengjip(懈菴先生集), in the 35th year(1709) of King Sukjong by also Kim I-ho. In succession to this work, in the 49th year(1773) of King Yeongjo, the sixth-generation descendant Kim Myeong-eon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Haeammunjip. Therefore, the argument of this article is that the Haeamgagokjip is not lost, but, in fact, has been reorganized and delivered through the Haeamseonsaengjip as the Haeammunjip.
Then, in Chapter 3, some problems of the Sijo of Haeam related to Haeamgagokjip were highlighted. First, it was revealed that the title of Haeam Sijo were not given directly by the author at the time of creation, but were given by later generations during the compilation of documents such as Haeamgagokjip. Therefore, it was considered that these titles cannot be the decisive basis for understanding the work. In particular, I viewed his work < Moonbanjeong(聞反正) > as such a case, and reinterpreted this work from a standpoint irrelevant to 'Restoration(反正)'. In other words, it was interpreted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situation at the time of the enthronement of Gwanghaegun and the subsequent expulsion of the Sobuk faction.
Among the sijo of Haeam, < Moonbanjeong > is a work with many questions about understanding the meaning. The main significance of this article is that it specifically clarified such a question. Also, it is meaningful in that this article tried for the first time the study of Haeamgagokjip and the title of Haeam Si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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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노처녀가>에 나타난 여성의 목소리와 그 의미

저자 : 김용찬 ( Kim Yong-cha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10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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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중요한 과정마다 그에 걸맞은 의례들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통과의례라고 한다. 그 가운데 결혼은 사람들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계기로 여겨졌기에, 예로부터 결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지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결혼을 한 사람만이 비로소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리하여 당시의 지배 계급이었던 양반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두 집안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제도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적령기를 넘겨서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에는 제때 결혼하지 못한 이들에게 어떤 '결함'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늦더라도 결혼을 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겠다.
특히 적령기를 넘겨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들은 집안에서조차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당시의 사회에서도 노처녀는 '구휼(救恤)의 대상으로 여겨졌기에, 그들의 현실적 욕구는 결혼의 성취에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노처녀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올라 국가 정책의 하나로 거론되면서, 이른바 '노처녀 담론'을 형성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사 <노처녀가>는 가난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양반 가문의 노처녀가 화자로 등장하여, 1인칭 독백의 형식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작품에 드러난 여성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따져보고, 노처녀의 형상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점검해 보았다.
이 작품은 신세 한탄으로 일관하는 노처녀의 진술이 이어지면서, 어떠한 반전도 없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화자의 체념으로 종결되고 있다. 화자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노처녀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혼자 사설'을 토로하고 있는데, 작품 곳곳에서 자신의 결혼에 무관심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양반 가문임에도 곤궁한 경제 사정에 처해있음을 인지하고, 부모에 대한 비판의 어조는 다소 누그러들기도 한다. 체념적인 어조로 종결짓는 작품의 결말은 당대 여성들이 각자의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수 없었던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노처녀의 형상을 통해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견고하게 작동하던 조선시대의 문화와 제도의 이면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There is a series of ceremonies, called the rites of passage, that people have each time when they undergo important changes of status. Among them, marriage has been regarded as the most important event in one's life and hence has been called 'Illyunjidaesa', meaning an important event of life. During the Chosun Dynasty, only married people, regardless of sex, were recognized as sound social members. Therefore, Yangbans, the rulling-class people of the Chosun Dynasty, used marriage as the institution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between two families. Owing to various reasons such as economic environment, however, some people could not get married at appropriate age. Because of the social perception regarding the unmarried as 'defective' persons, to get married, even if late,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goals of life.
In particular, 'old maids' were treated as if they did not do their share even in family life. Because they were regarded as the objects of relief in those days, the practical desire of old maids may have been the achievement of marriage.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the issue of old maids became a social concern and was mentioned for national policy, forming so-called 'old-maid discourse'. In the gasa < Nocheonyeoga >, meaning a song of an old maid, a noble old maid who could not get married because of poverty laments her misfortune in the first-person view. In the present article, a review on < Nocheonyeoga > is presented with a focus on women's voice contained in the work to inspect the social meaning of the images of old maids.
In the work, a testimony of an old maid consistently lamenting her misfortune ends up with her resignation stemming from the realization of her circumstance, without any reversals. The narrator expresses her feelings on her circumstance as an old maid, even blaming her parents who are not interested in her marriage. Recognizing difficult household finances in spite of noble family, however, the blaming tone toward her parents is mollified a little. The despaired settlement of the work demonstrates the helplessness of women of the time who could not make their independent living. The hidden side of the cultural system of the Chosun Dynasty, during which a strong patriarchal system was being operated, can be read from the images of old ma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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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삼당시 '석양' 의상과 조사 양상 - 최경창과 이달

저자 : 김영국 ( Kim Young-kook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9-13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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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릉성세기의 삼당시인 백광훈, 최경창, 이달은 까다로운 수사와 난해한 전고의 사용 등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정서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하였다.
이들은 정과 경이 하나로 융합된 평범한 의상의 시어를 찾아 압운(rhyme)에 따른 미적 배치[措辭]를 통해 짧은 절구에 함축(implication)시켜 자신의 청징한 정서를 한껏 담아내었다. 이 글에서는 그 대표적 의상(意象)인 '석양'의 정·경 융합이 당대의 다른 시인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삼당시인들만의 특성인바 이의 절구에서의 수사학적(rhetoric) 조사 양상을 살펴 그 특징을 규명하려고 하였다.
최경창은 日夕, 暮, 落日, 晩, 夕陽, 黃昏 등의 '석양' 이미지를 조사하여 閑情, 외로움, 여정, 이별 등의 정서를 서글프게 그려냈고, 이달은 暮, 日夕, 夕陽, 落日, 黃昏, 夕暉 등을 조사하여 閑情, 외로움, 여수 등의 느낌을 덤덤하게 형상화하였다. 최경창의 '석양' 의상은 백광훈의 '석양' 의상 無奈의 서글픔과 상통하고 삼당시인 모두 '석양' 의상으로 산수전원의 閑情을 그려냈다.


Paek Gwang-Hun, Choi Gyeong-Chang and Lee Dal as Samdangsi poets in Mongnengsungseki did not use difficult rhetoric and authentic precedents but used easy words derived from their life.
They implicated common poetic words for which emotion is combined into scenery in short phrases through aesthetic arrangements according to rhyme. This study aimed to investigate the aspect and characteristics of rhetoric expression in characteristics phrases of Samdangsi poets for which emotion is combined with scenery as their representative meaning image.
Choi Gyeong-Chang investigated the images of sunset such as evening, Mo, setting sun, Man(night), sunset and twilight to express sad feeling such as idleness, loneliness, journey and separation. Lee Dal used Mo, evening, sunset, setting sun and twilight to calmly configure feelings of idleness, loneliness and melancholy. Choi Gyeong-Chang's sunset image had a something in common with Paek Gwang-Hun's Munae. All of the Samdangsi poets expressed idleness of rivers and mountains through images of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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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소쇄원 원림과 고암 양자징의 문학

저자 : 김대현 ( Kim Dae-hyu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5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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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은 16세기에 조영된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원림이다. 소쇄원은 창건자 이후로도 많은 후손들이 신경을 써서 원림을 가꾸어 나갔다. 이 글에서 소쇄공 양산보의 아들인 고암 양자징(梁子澂, 1523∼1594)의 문학에 대한 연구를 간단하게 하려고 한다. 이는 고암의 문학에 대하여 처음으로 살펴 본 것이다. 고암은 여러 면에서 많은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더구나 다 알다시피 하서 김인후 선생의 사위였기 때문에, 관련 문헌들도 어느 정도 남아있다.
고암은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현재 몇 수가 남아 있는 그의 절구 시들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탁월한 작품이 있었다. 지금 고암의 작품은 한시 작품이 모두 10여수가 남아 있고, 산문은 3편이 남아 있다.
남아있는 작품들이 한시에서는 여섯 수나 하서와 관련된 작품이고, 산문으로는 하서에 대한 「행장」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하서와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의 남아있는 문학작품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다 큰 의미가 있다. 산문에서도 기록문학으로서의 하서의 「행장」을 처음으로 지은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밖에 「무등산 기우제문」이나, 「계문」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도 그의 문학이 다양하게 폭넓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작품들이다. 비록 적은 수의 작품이 남아 있지만, 그의 문학이 다양한 주제로 전개되고 있었음을 유추하여 볼 수가 있다. 고암은 16세기 소쇄원 원림문학의 큰 문인이었다. 이 글에서는 남아 있는 고암의 작품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그의 문학을 살펴보았다.


Soswaewon(瀟灑園)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private gardens in South Korea established in the 16th century. After the founding of Soswaewon, many descendants took care of the garden. In this article, I will examine the characteristic of literature of Goam(鼓巖) Yang Ja-jing(梁子澂, 1523∼1594), son of SoswaeGong(瀟灑公) Yang San-bo(梁山甫),
This thesis is the first to examine the literature of Goam. Goam was a person who was respected by many later students in many ways. Moreover, as we all know, he was the son-in-law of Kim In-Hoo (金麟厚), so there are some related documents.
Goam has been engaged in various literary activities in his entire life, and has written works related to various themes. Among the works left by Goam, some poems lyrically express the beauty of nature. As mentioned above, 10 poems and 3 prose works remain in Goam's works.
It was possible because of his deep relationship with Haseo(河西) that the remaining works were related to the six poetry, and the “Haengjang(行狀)” about Haseo in prose. All of his remaining literary works are of great significance to each other. In addition, the remaining parts of 「Mudeungsan Kiwoojemun(無等山 祈雨祭文)」 show that his literature was developing in various ways. Although a small number of works remain, it can be inferred that his literature was developed on various themes.
Goam was not only a great poet of Soswaewon-Wonlim(瀟灑園園林) literature in the 16th century, but also seems to have played a major role along with his teacher Haseo, so that Honam literature(湖南文學) flourished in the 16th century.
In this article, I briefly reviewed Goam's literature focusing on the remaining works of G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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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세기 초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의 한시 시조화(時調化) 양상과 그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이은상이 시도한 한시 시조화의 제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 글은 우선 그의 시론과 시조관을 고찰하였다. 시조를 위시한 서정시론을 발표한 그는 시조의 사상보다 서정시적 정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또한, 시조를 근대적 시문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중국 문학의 문체, 수사법, 민중적 특성 등을 아울러 고찰하기도 하였다. 시조 문단계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고심했던 것이다.
한시 시조화에 있어서는 예외없이 5언 절구의 唐詩가 원시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형식보다는 시조의 구조적 통일성을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시조화가 이루어졌다. 한시의 의경과 주제는 수용하되 표현, 정서적 측면에서 적극적 변이를 보인 점이 특징이었다. 원시 자체를 번역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조의 미감을 고려하여 그 완성도를 높이는 데 더욱 몰두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이은상이 20세기 초 시조의 근대적 서정시로의 수립과 그 문학 세계 확장을 위해 한시 시조화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Lee Eun-sang's translating works of Chinese poem to Sijo(時調) in the early 20th century. In order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anslation attempted by Lee Eun-sang, this article firstly considered his poetry theory and perspectives of Sijo. After submitting lyrical poetry representing Sijo, he showed special interest in lyrical sentiment rather than the idea of Sijo. In addition, he predicted that the Sijo could be developed into modern poetry literature. To do this, he also even considered the style, rhetoric, and popular characteristics of Chinese literature. He struggled in various ways to find a way out for the Sijo to proceed to the literary world.
Without exception, the poetry of Tang Dynasty was selected as the original, and the Sijo was made in a way that emphasized the structural unity of the Sijo more than its form. Besides, it was characterized by the fact that the Chinese poetry's meanings and themes were accepted but actively changed in terms of expression and emotion. Lee Eun-sang did not remain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the original poems, but focused more on improving their completeness in consideration of the aesthetics of the Sijo. Through this study, it can be seen that Lee Eun-sang attempted to translate Chinese poem to Sijo in order to establish the modern lyrical poems and expand them to the literary world in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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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옥국재 가사 <순창가>의 송사 서사 성격과 진술 특징

저자 : 신현웅 ( Shin Hyun-woo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9-2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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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옥국재(玉局齋) 이운영(李運永, 1722∼1794)이 창작한 <순창가>의 송사 서사 성격과 진술 특징을 분석해 옥국재 가사의 창작 원리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데에 있다. 옥국재 가사는 가사 양식의 외연을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바, 본고의 논의는 사대부 가사의 상대적으로 견고한 양식 경계가 이운영의 창작에서 어떠한 이유로 약화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상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작중 송사 서사와 진술 특징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작중 송사가 당대 송사 절차에서 벗어난 점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착은 송사 사건이 어떠한 관점으로 활용되었는지를 밝히는 단초가 된다. 내용과 진술 특징의 긴밀성을 고려한다면 작중 송사 절차의 이례성은 진술 특징에 대한 분석을 요한다.
본고의 문제 제기에 따라 2장에서는 작중 송사 서사의 성격을, 3장에서는 진술 특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작중 송사 과정이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법제화된 재판절차에서 벗어나 있었다. 작중 절차의 이례성은 정식 절차의 생략과 변형으로 인해 일어났다. 이로써 시간차를 두고 진행된 송사 사건이 <순창가>에서는 하루 동안 한 장소에서 일어난 듯이 진술된다. 3장에서 진술 특징을 분석한 결과, <순창가>에서는 사건 전개나 장면에 대한 진술이 최소화되면서 작중 인물의 발화에 기대어 사건이 제시되며, 발화 장소가 고정된 채 극 양식에 주로 발견되는 장면 전환 진술 방식이 발견되었다.
3장에서 발견된 진술 특징은 당대 18세기 중반 호남에서 향유된 판소리라는 관습적 장르의 진술 방식과 유관했다. 담양 부사의 생일잔치 광경, 기생의 변명 등은 판소리 양식의 '부분의 독자성'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에 더해 담양과 순창이라는 작중 배경, 하층민의 송사라는 제재, 그것을 다루는 희극적이고도 해학적인 미감을 고려한다면 <순창가>는 18세기 중반의 호남 지역 판소리 향유 문화의 자장에 놓여 있다고 추론된다. 이는 <순창가>에 나타나는 가사 양식의 외연 확장이 서사를 가창하는 판소리 혹은 그에 준하는 노래문학 양식에 대한 인식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이운영이 창작한 6편의 작품 가운데 노래를 포함한 연행문학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4편에서 5편으로 늘어난다.


This paper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gasa(歌辭) and pansori in the 18th century: Lee Un-young(李運永, 1722-1794)'s work Sunchangga(淳昌歌). He wrote Sunchangga(淳昌歌) at Sunchang-gun(淳昌郡) in Jeollabuk-do Province(全羅北道) around 1760 CE. The theme on the work is the lawsuit between the government employee, Choi Yoonjae and four gisaengs.
First, judicial process in the work is deviated from the legalized trial proceedings of local government offices in the Joseon Dynasty. The anomalies of the procedure are caused by omission and modification of the procedure. As a result, the lawsuit in the work, which took place over time, is stated in Sunchangga as a song that took place in one place for a day.
Second, due to the omission and modification of the litigation procedure during the work, statements about the development or scene of the case are minimized, and the case is presented against the utterance of the person in the work. In addition, scene-changing statements, which are mainly found in the drama style, were found with the ignition site fixed.
Lastly, the characteristics of statements found in Chapter 3 were related to the customary genre of statements called pansori enjoyed in Honam(湖南) in the mid-18th century of the time. The part of the birthday party in Damyang(潭陽) and Gisaeng's excuses in the work show similar characteristics to the uniqueness of the part in pansori. In addition to these characteristics, considering the background of Damyang(潭陽) and Sunchang(淳昌), the sanctions of lawsuit of the lower class, and the comical and humorous aesthetics dealing with them, it is reasonable to infer that Sunchangga is in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This means that the extension of the Gasa in Sunchangga was carried out in the recognition of the pansori singing the narrative or the equivalent style of song literature. As a result, among the six works created by Lee Un-young, the number of works influenced by performance literature, including songs, will be expanded from four to five.

KCI등재

9명효(明皛)의 『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 소재 게송(偈頌)에 나타난 깨달음과 실천

저자 : 서철원 ( Seo Cheol-w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5-24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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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의 게송 3편은 그간의 문학 연구에서는 거론된 적이 드물지만, 의상과 균여 사이의 시대에서 화엄 시학의 성취를 보여준다는 가치가 있다. 본 작품은 서시(序詩)와 본문인 다라니송(陀羅尼頌), 마지막의 회향게(廻向偈) 등으로 이루어졌다. 서시에서는 근본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곧 깨달음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모든 중생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자비의 실천을 내세웠다. 본문인 다라니송에서는 생사와 번뇌가 곧 열반과 보리의 원인이라고 했다. 현실 속의 인간이라면 삶과 죽음을 거듭하는 윤회, 번뇌에 빠졌다가 참회하는 체험을, 열반과 보리를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어서이다. 이렇게 인과 관계를 동시의 것, 인접한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한다거나, 여러 세상의 다양성을 포용하거나, 크고 작은 존재들이 무한한 공간 안에서 평등하다고 간주하거나, 일념으로 무한한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등의 통섭적 발상이 필요했다. 이런 발상 그 자체가 화엄 사상의 평등과 조화를 포함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회향시는 본문에서 깨달은 내용을 이론과 실천의 양쪽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정리해 주었다. 한편 본문에 덧붙은 론에서는 아만(我慢)을 경계하고 참회를 강조했다. 다라니송의 간명함은 자칫 아만의 계기가 될 과도한 지식을 경계한 것이었다고 한다. 화엄 사상의 특징과 해인삼매의 대의는 최대한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그 대신 현실적인 실천과 수행을 더 중시했다. 끝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남들과 공유하려는 문학적 시도를 긍정하며 수행 방법으로서 참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앞으로의 과제로서 인접한 시기 화엄 사상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앞 시기 의상의 <법성게>에 비하면 『해인삼매론』은 본문의 생사-열반과 번뇌-보리, 서시와 회향시의 자비, 론의 참회 등 여러 주제가 서로 의존적이면서도 자립적이었다. 또한 참법(懺法)으로 보현행원을 분석했던 시각을 토대로, 본 작품의 실천과 참회, 화엄 교학의 참법 등을 <보현십원가>와 견주어 거론할 필요가 있다.


Gathas of Haeinsammaeron is worth showing the achievement of Hwaeom Poetry between Uisang and Gyunyo. The contents of this work are as follows. In the beginning poem, the practice of mercy was put forward to publicize to all people that the journey back to the foundation was a process of enlightenment. In the main text, life, death, and anguish were said to be the causes of nirvana and enlightenment. This is because human beings in reality must experience reincarnation and anguish to gain nirvana and enlightenment. To explain this process, you must understand the part and the whole, the diversity of various worlds, equality of all beings, and awareness of time. This also included equality and harmony in Hwaeom thought. The editorial added to the text also said not to be arrogant and to always repent. Realistic practice and performance were more important. He affirmed his attempt to share his enlightenment with others, and said that penance was important as a way to perform. The future task is to compare this work with the works of other Hwaeom thinkers. Compared to Uisang's Beopsongge, several topics are dependent on each other and independent. In addition, the possibility of comparing Gyunyeo's Bohyunsiwona with the method of penance was op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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