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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4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36
동방학
47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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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영문 ( Joung Young-mo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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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강항의 「간양록」, 정희득의 「월봉해상록」, 노인의 「금계일기」를 중심으로 피로인들의 체험과 그들의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조선 시대에 해양(海洋)은 생활의 터전이 아니었으므로 삶의 공간이기보다는 완상(玩賞)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피로인 실기를 기록한 지식인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한순간에 피로인(被擄人)이 되어 바다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바다를 통곡의 공간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현해탄을 건너 육지에 도착한 지식인들이 발견한 일본은 야만의 땅도 선계(仙界)의 세상도 아닌 조선과 별다르지 않은 현실 속 생활공간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며 일본의 승려, 문사들과 교류하였다. 조선의 지식인 중 일부가 한문학을 매개로 교류하던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조선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현재 전하는 피로인 실기는 당시 조선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지식인들의 체험담(體驗談)을 기록한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피로인이 되어 일본에 머물렀지만, 그들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이런 교류를 통해 일본의 실상도 알게 되었다.
피로인이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생환하는 여정에서 해양(海洋)은 그들에게 고통과 환희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으로 귀환한 조선 지식인들의 운명은 쇄환으로 귀국한 피로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충정을 내보여야 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experiences of the captivated intellectuals and their perceptions focusing on Kang Hang's 「Ganyangrok」, Jeong Heedeuk's 「 Wolbonghaesangrok」, and Noh In's 「Geumgyeilgi(Diary)」. In the Joseon Dynasty, the ocean was not the place of living, so it stayed in the space of appreciation rather than the space of life. The intellectual who recorded the actual experience of being captivated became the captivated person in an instant due to the Imjin War, witnessed death at sea and experienced frustration. Such experience was enough to recognize the sea as a space of wailing.
Japan, discovered by intellectuals who crossed the Hyeonhaetan and arrived on land, was not the a savage world or fairy world, but a living space in reality that was no different from that of Joseon. They lived there and interacted with Japanese monks and scholars. Some of Joseon's intellectuals were able to return to Joseon with the help of the Japanese who had exchanged with them through a medium of Chinese literature. The actual record of the captivated people, which is currently passed down, is a record of the experiences of the intellectuals who were able to return to Joseon at the time. Although Joseon's intellectuals stayed in Japan as captivated people, they were able to interact with other people in the same situation through their own information network, and through these exchanges, they learned the reality of Japan.
The ocean functioned as of pain and exultation space in the journey of being brought back to life after being taken captive to Japan. But, The fate of the Joseon's intellectuals who return to Joseon after the Imjin Warren wa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people who returned to Joseon by repatriation of captive, and they had to constantly show their loy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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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홍식 ( Lee Hong-shik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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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황중윤이 1620년 주문사행(奏聞使行)의 결과를 정리한 『서정일록』의 사행문학적 가치를 천착한 논문이다. 최근까지 황중윤의 문학 관련 연구는 주로 한문소설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의 사행문학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서정일록』의 형식과 내용과 서술의 특징 등을 종합하여 17세기 초반 사행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황중윤의 『서정일록』은 1620년 주문사행의 유일한 기록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사대와 기미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하여 시와 산문으로 구분하여 사행기록을 정리함으로써 17세기 초반 사행기록의 형식적 전변 양상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형식적 연원을 황여일의 『은사일록』·『은사록시』를 넘어 김성일의 『조천일기』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어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주문사의 시선으로 정리한 명과 후금 관련 기록들은 17세기 초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시문에 투영된 황중윤의 인식과 욕망을 함께 읽어내면 향후 그의 정치·외교적 인식을 점검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This paper is a paper that examines the envoy travel literary value of SeojeongIlrok, which summarizes the results of Hwang Joong-yoon's 1620 mission. Until recently, Hwang's literature-related research was mainly limited to Korean chinese literature novels. so His envoy travel literature was poorly illuminated. Therefore, this paper attempted to derive the meaning of the envoy travel literature in the early 17th century by synthesizing the form, content, and description of the SeojeongIlrok.
As a result, Hwang's SeojeongIlrok was the only record of the envoy travel in 1620, and it was confirmed that it was a meaningful data symbolically showing the situation of Joseon, which had no choice but to maintain the policy of generation and taste between Ming and Hugeum. In addition, by organizing envoy travel records by dividing them into poems and prose, it not only shows the formal transformation of envoy travel records in the early 17th century, The formal origin can be extended beyond Hwang Yeo-il's Eunsailok and Eunsaaloksi to Kim Seong-il's JocheonIlgi, confirming that it is also meaningful in literary history.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at the records of the Ming and Hugeum from Jumunsa's perspective can provide important data to understand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East Asia in the early 17th century, and that reading Hwang Joong-yoon's perception and desire reflected in the poem can provide important data to check his political and diplomatic perception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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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경미 ( Lee Kyung M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1-8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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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의 악기연주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가부장 체제의 구획된 틀 속에서, 무음(無音)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었지만 문학의 세계에서는 자신만의 선율과 리듬을 발견하여 삶의 애환과 그리움, 간절함과 내세를 향한 희구(希求)를 은은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먼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에서 악기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매개(媒介)'로서 작용하여 사랑하는 임을 만나는 소통창구가 되기도 하였으나, 때로는 과감한 유혹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시대의 한계 상황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악기연주를 통해 발산하면서 여성과 악기가 '합일(合一)'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순수한 예술성의 추구와 신의 세계에 이르는 '초월(超越)'의 모습으로 천상의 소리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악기연주는 당시 가부장 사회의 틀 속에서 강요된 행위라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으나, 그 틈새를 통해 여성들은 타인과의 만남의 매개(媒介)로, 감정이입을 통한 합일(合一)로, 예술과 신의 경지로 들어서게 되는 초월(超越)이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delves into types of narratives about women playing musical instruments in the ancient East Asian literature. Though women under a patriarchal system led their lives in silence, they discovered their melodies and rhythms within the literary world and subtly rendered the songs about their joys and sorrows, nostalgia, eagerness and hope for the afterlife. In the society where the voices of women were suppressed, musical instruments - as they helped women express their identities- were channels for romantic relationships and sometimes even were seduction techniques. Occasions of women reaching the stage of unity with musical instruments were shown as they expressed emotions controlled under a patriarchal system. Moreover, they played heavenly sounds through the pursuit of pure artistry and the achievement of transcendence. It is undeniable that the images of women playing musical instruments are evidence of coercion. Yet, by using a musical instrument as a catalyst for interaction, a way to achieve unity with music through empathy and an adventure to their afterlife, they composed their own masterpiecesthei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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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빛나라 ( Choi Bitnara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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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왕취교(王翠翹)를 중심으로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일대기의 전승을 거쳐 소설 작품의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인물 형상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역사 기록 속 왕취교는 서해 막하의 일개 기생으로서 그 존재가 미미했으나,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승ㆍ창작되는 과정에서 점차 풍부한 내력 서사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화를 기록하고 평을 덧붙인 '왕취교전'에서는 왕취교의 출신부터 기생 생활, 남성 인물들과의 인연, 그리고 죽음이라는 결말을 통해 온전한 생애 서사를 부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소설 작품에서는 왕취교의 출신성분, 기생이 된 사연, 죽음 이후의 결말을 새롭게 바꾸어 왕취교의 형상을 변화시켰다. 왕취교는 이야기의 전승과 창작 과정을 통해 희대의 간녀(奸女)로, 다시 의협녀(義俠女)로 정체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주목받았던 '왕취교'의 자취를 살펴본 이번 연구는 장차 '왕취교전'이 동아시아 서사물로서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재조명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This paper attempte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haracter shape seen in the process of transforming an actual figure in history into a protagonist of a novel through the transmission of a biography, centering on Wang Cuiqiao.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Wang Cuiqiao in the historical record was insignificant as a Gisaeng, but gradually became the main character of a rich narrative in the process of transmission and creation of stories related to her. In biography of Wang Cuiqiao, which rrecorded the oral narrative and added reviews, a complete life narrative was given through Wang Cuiqiao's origins, gisaeng life, relationships with male characters, and death. In the novel work created based on this, the composition of Wang Cuiqiao's origin, the story of becoming a gisaeng, and the ending after death were changed to change the shape of Wang Cuiqiao. Wang Cuiqiao, whose name was only mentioned in the historical records, became a rare wicked woman and a chivalrous woman through the transmission and creation process of the narrative. The study, which looked at the traces of Wang Cuiqiao which has drawn attention throughout East Asia,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re-examining the universality and specificity of biography of Wang Cuiqiao as an East Asian narrative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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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나윤 ( Kim Nayu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13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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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리인(利仁) 개념에 대한 해석을 살펴봄으로써 주자학의 윤리학적 특색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리인 개념은 『논어』 「이인」 편에 등장한다. 주자 이전의 리인에 대한 해석들 다수가 대개 의義와 리利의 대립이라는 전통 유학의 이분법적 도식에 갇혀 '리인'이 함축하는 보다 복합적인 도덕실천적 의미를 간과했으며, 이러한 해석의 한계는 정이천을 거쳐 주자에 이르러서야 해소될 수 있었다. 리인 개념은 주자의 해석학적 전환을 거치면서 새로운 윤리적 함축을 얻었고, 나아가 주자 윤리학의 특징과 관점을 드러내는 적절한 실례가 되었다. 이 연구는 리인 개념에 대한 주자의 긍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리인은 도덕 인식과 실천에서 행위자와 법칙의 명확한 구분을 함축한다. 둘째, 이러한 구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지적인 능력에 근거한다. 그러한 지적 능력은 윤리적 인간됨의 필수 요건이다. 셋째, 리인은 타고난 도덕적 모범, 즉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이 아니라 범인의 윤리, 일상의 윤리학과 관계한다. 주자는 인간이 윤리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지적인 능력에 주목하였다. 그것은 리인의 태도, 즉인을 승인하는 동시에 현실 속에서 이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와 맞닿아있다. 주자의 윤리학은 이러한 승인과 지향을 지속적으로 견인하여 주체가 도덕적 당위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게끔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사태마다 구체적인 도덕적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This study aims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Ethics of Zhuzi(朱子) by examining the interpretation of 'The wise desire virtue(知者利仁)'. The concept of 'The wise desire virtue' appears in Analects. Before Zhuzi, interpretations of 'The wise desire virtue' generally did not show its practical meaning due to the influence of 'distinction between righteousness(義) and interests(利)'. These limitations could not be resolved until Zhuzi passed through YiChuan(伊川). The concept of 'The wise desire virtue' gained new ethical implications through the hermeneutic transformation of Zhuzi, and further became an appropriate concept that well expressed the characteristics of ethics of Zhuzi. This study argues as follows. First, 'The wise desire virtue' implie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agent and principle in moral perception and practice. Second, this distinction is based on the intellectual ability to make humans human. Such intellectual ability is an essential requirement for ethical humanity. Third, 'The wise desire virtue' is not related to a sage, but general public. Zhuzi paid attention to human intellectual abilities. It is connected to the attitude of 'The wise desire virus'. Zhuzi's ethics allows the agent to move toward morality by approving ren(仁) and making people continue to aim for this. In addition, It is urged to become a moral agent in each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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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다진 ( Park Da-ji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6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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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 제시한 경학(經學)의 특징적 양상을 확인하였다. 기정진의 경전 인식에서는 '수사지교(洙泗之敎)'로서의 경문을 성리설의 근본으로 규정하고, 경문에 내재한 의미를 체득하는 실천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주요 경학적 관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은 '사서(四書)'와 같은 경전의 원문이 인사(人事)에 절실한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도 그 자체로 성리학적 진리를 실현한다는 생각을 통해 이론적 논의에만 치중하는 학인들을 경계하려는 목적성을 띤다. 기정진은 학인들이 이론적 논의에 천착하는 것을 '수사지교'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경전공부에서 견지해야 본질적인 태도이자 방법인 '반구저기(反求諸己)'와 '간득절기(看得切己)'를 제시하였다. 기정진의 경학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경학'에 해당하지만, 당대의 시대적 상황 등 여러 맥락적 조건을 통해 나름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기정진의 경학은 19세기 조선의 현실적 상황에서 당대 성리학 지식계의 재정향(再定向)을 촉구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e Nosa Ki Jung-jin's study on Chinese Classics. The characteristic perspectives of Ki Jung-jin's interpretation of the Chinese Classics is to regard the original text defined as 'teaching of Susa(洙泗之敎)' as the source of noe-confucianism and to pursue practical understanding that directly realizes the meaning of original text. These perspectives were presented for the purpose of cautioning scholars who focus only on theoretical discussions, and the basis is that the original text of 'Four Books(四書)' realizes the truth of Neo-Confucianism in itself while its content mainly focuses on the Life-World. Ki Jung-jin criticized that scholars had a superficial understanding of the 'teaching of Susa' for the situation buried in theoretical discussions, and suggested 'Searching reason in oneself(反求諸己)' and 'Reading in self-scrutiny(看得切己)', which are the essential attitudes and methods of studying Confucian classics. Ki Jeong-jin's study on Chinese Classics is classified as 'Study of Neo-Confucian Classics', nevertheless, it has its own differentiation due to contextual conditions such as the situation of the times in which he lived. The significance of Ki Jeong-jin's study on Chinese Classics can be found in that he urged the reorientation of the intellectual community of Neo-Confucianism of the time and laid the foundation for concrete practice in the realistic situation of Joseon(朝鮮)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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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낙진 ( Kim Nakji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19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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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상의 심즉리설이 능동성, 주체성, 활동성, 의지 등을 강조한 이론이라는 견해가 있다. 본성보다는 마음을 중시한 이론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이런 해석은 자칫 주관적인 마음가짐을 객관 법칙처럼 여기는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자들의 반박 내용을 그의 학문이 지닌 특징으로 오인시킬 가능성이 있다. 심즉리설의 함의를 재검토하려는 본고는 그의 위정척사의 신념과 애용했던 자연 개념에 주목한다. 자연은 인위적으로 의도하지 않음에도, 리(理) 또는 본성이 있는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 실현된다는 말이다. 이진상은 이런 마음의 현상을 골라내어 심즉리라고 표현한다. 마음의 대본은 리라고 하거나, 마음의 본체는 성이라고 하거나, 마음의 주재는 리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명목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실현된다고도 본 그는 보통사람에게도 미발의 중이나 사단의 현상이 있음을 증거로 든다. 또 그렇게 되는 이유를 추리하여 리가 주재하는 현상이 마음의 이면에 늘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학문연원을 같이 하는 퇴계학단과의 갈등이 발생한 지점이다. 그러나 그는 혼탁한 마음 또는 가치 붕괴의 상태에 처했더라도, 자연으로서의 주재하는 마음이 늘 이면에 있기에 유교적 도리와 본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보면 다른 유학자들처럼 의지를 중시했더라도, 마음에 있는 자연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회복하는가가 이진상의 주된 관심사였다. 심즉리설은 그 관심을 반영한 이론인데, 위정척사의 심성론적 근거였던 셈이다.


There were several opinions that the mind theory of Yi Jinsang is a theory that emphasizes individual activity, subjectivity, activity, and will. In the same context, there were also explanations that the theory emphasized the mind rather than the innate character. Such interpretations have the potential to admit the criticism that Yi Jinsang made the mistake of treating the subjective mind as an objective law. This paper, which intends to reexamine the implications of his mind theory, focused on the concept of nature that he favored. Nature is a concept with the meaning that it is realized by itself as it is, even though it is not artificially intended. Yi Jinsang picked out these mental phenomena and expressed them as 'mind is principle'. He explained that the great foundation of mind is Li, the body of mind is innate character, or the dominion of mind is the dominion of Li. He thought that the true mind is not in a fictitious name, he also thought that the true mind are sometimes realized. Also imagining why this is so, he insisted that the phenomenon of dominion of Li is always real in the mind. The last imagination caused a conflict with the Toegye Academy, which had the same academic background. However, he believed that even when the values of Confucianism were in a state of collapse, the mind as nature always existed, so that the world in which Confucian doctrine prevailed could be restored. Looking at this, his main concern was how to recognize and restore the innate character of the human mind. His mind theory was the psychological basis of the doctrine of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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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장경희 ( Jang Kyung-hee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5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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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는 조선을 대표하는 특산품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부채는 중국의 칙사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중국에 사행을 가는 사신들이 예단으로 가져가거나 국왕이 신하들에게 단오 선물로 하사하는 공예품이었다. 이것을 수급하기 위해 조선은 장인제도를 정비하여 공조에는 경공장인 원선장과 첩선장을, 전라도와 경상도에는 외공장인 선자장을 두어 부채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이러한 장인제도가 무너져 국가적 수요에 필요한 부채를 생산할 대책 마련이 요구되었다. 이에 왕실 의례를 치르고자 설치한 도감에서는 장인을 징발하여 부채를 제작하였다. 그들의 사회적 처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 17세기에는 서울에 사는 장인들이 왕실용 부채를 제작했고, 전라도나 경상도의 특산물로 국왕에게 부채를 진상하였다. 18세기 왕실용 부채는 관청에 전속되어 10년 이상 활동하던 장인들이 도감에 동원되어 부채를 제작하였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령들은 부채를 강제로 징수하도록 하였다. 18세기 말 이후 19세기에 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복정제를 폐지하고 대신 국가용 부채는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 조달하였다. 왕실용 부채를 제작하는 장인 또한 사적 생산에 종사하는 장인이 생산하였다.


The fan was a local specialty representing Joseon.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fans were given as gifts to Chinese envoys, Joseon envoys took them as gifts whenever they went to China, or the king gave them as Dano gifts. In order to supply this, the artisan system was reorganized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raftsmen of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were the original captain and the concubine captain, and the Seonjajang made fans in Jeolla-do and Gyeongsang-do in the region. However, two wars destroyed the system. According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temporary organization (dogam) was installed to hold royal rituals, and craftsmen were mobilized to produce fans. Their social situation and role changed with the times. In the 17th century, it was produced by craftsmen living in Seoul, or it was a special product of Jeolla-do or Gyeongsang-do, and it was a debt to the king. In the 18th century, royal fans were exclusive to the government office and were drafted into the book for more than 10 years to produce fans. It caused social controversy by forcing the heads of Jeolla-do and Gyeongsang-do to collect debts. From the end of the 18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craftsmen who made royal fans with the development of the commodity economy were those who produced private products. At that time, the fans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by scholars also increased, and it was made into a product and changed to a method of selling it in the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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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병모 ( Kim Byoung-m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1-28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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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세종실록』 지리지를 포함하여 『경상도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기록된 어교 공납과각 군현별 산출 어종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어교 생산지와 산출 어교에 관해 검토를 진행한 것이다.
경상도 지역의 어교 생산지는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언급한 어교 분정지역 이외에 다양한 지역이 생산지로 상정되었다. 즉 분정 대상으로 언급된 동래현, 김해도호부, 창원도호부, 고성현, 사천현, 진해현 이외에 경주부, 울산군, 기장현 등이 생산지로 추가 파악되었다. 이외에 바다에 인접한 여러 군현 역시 생산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고려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륙에 위치한 군현 역시 어교 생산을 일정하게 고려해야 하는 경우들을 상당수 포함했다.
산출 어교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민어교의 상정을 개진하기 어려웠다. 그 다음으로 기대되는 석수어교의 경우도 진주목 관할 군현에 한정해서 고려되었다. 대신 산출 어종 및 기타 지역에서 전개된 제조 사례 등을 토대로 연어교, 해삼교, 은어교 등의 산출 가능성을 새롭게 상정했다.
이상의 검토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서 향후 기타 지역의 어교 생산지와 산출 어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경우 간과할 수 없는 연구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조선시대 어교 생산지와 산출 어교에 대한 담론 구조 및 경계를 새롭게 하는데도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This study reviewed the production area of fish glue and the type of fish glue produced based on the collection of fish glue and the types of fish recorded in various geography books of the Joseon Dynasty, including Geography Section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In the Gyeongsang-do area, Gyeongju-bu, Ulsan-gun, and Gijang-hyeon were added to the fish glue production areas in addition to Dongnae-hyeon, Gimhae-dohobu, Changwon-dohobu, Goseong-hyeon, Sacheon-hyeon, and Jinhae-hyeon, which were recorded as collected areas in Geography Section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In addition, several areas adjacent to the sea were also assumed to be areas with very high production potential. In addition, the inland region also included many cases in which the production of fish glue had to be considered constantly.
As a type of fish glue produced, it was difficult to consider the production of Nibe croaker glue generally expected. Next, the expected production of Croaker glue was also considered limited to the jurisdiction of Jinju-mok. Instead, based on the types of fish produced and the manufacturing cases of fish glue produced in other regions, the possibility of production of Salmon glue, Sea cucumber glue, and Sweetfish glue was newly considered.
The above review is quite different from what was expected, and it is expected to provide a research perspective that can not be overlooked if research is conducted on the production areas of fish glue and the types of fish glue produced in other regions in the future. In addition,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renewal of the discourse structure and boundaries on the place of production of fish glue and the type of fish glue produced during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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