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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45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515
동방학
45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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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세 한일관계 관련 물품교류 연구 현황과 과제

저자 : 이승민 ( Lee¸ Seung Mi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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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세를 대상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물품교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연구의 현황과 특징,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의 물품교류 관련 연구는 통신사·문위행 등의 외교사행과 왜관에 도항하는 일본사신 관련 물품교류 및 공·사무역 등을 통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그동안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개별 물품에 관한 연구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데, 물품의 종류는 구체적으로는 약재류·동물류·음식류·문방구류·서적류·피물류·직물류·도자류·회화류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주로 역사학계에서 이루어진 물품교류 현황에 대해 검토했지만, 사실 물품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귀속되기 어렵다. 물품은 인간의 모든 생활과 상호 교류에 쓰인 도구의 총체로서, 물품에 내재된 특징과 역사성에 따라 다양한 학문분과 간의 연구 협력을 전개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다. 따라서 물품을 키워드로 폭넓은 학제적 융합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라는 단일지역에서 탈피해 한·중·일과 더 나아가서는 동유라시아 차원으로 연구 대상 지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순한 생산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어 어떤 경로를 통해 교역·유통되고 어느 지역의 어느 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는지에 관한 총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the current status, characteristics, and future tasks of the research centered on the exchange of goods between Joseon and Japan directly and indirectly among the papers published in Korea after the 1990s.
Until now, research on commodity exchange was mainly conducted through diplomatic envoys such as Tongshinsa(通信使) and Munuihaeng(問慰行), as well as commodity exchange and public and private trade related to Japanese envoys sailing to Waegwan(倭館). Recently, it has been expanding to research on individual items that have not been studied. Specifically, the types of goods vary widely from medicinal ingredients, animals, foods, stationery, books, leather, textiles, ceramics, and paintings.
In this paper, I reviewed the current status of commodity exchanges in the historical community. In fact, however, it is difficult to attribute goods to one academic area. Goods are the aggregate of tools used in everything used in everyday life, and in every human life and interaction. Research cooperation between various academic divisions can be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and historical characteristics inherent in the goods. Therefore, a wide range of academic convergence is needed for the keyword 'goods'. It is also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analysis of goods produced, traded, distributed, and consumed at the level of East Eurasia, moving away from a single region of Korea and Japan. Also I think a holistic study is needed on what goods are being distributed and consumed, how they are produced and traded through what channels, and where and what classes they are consumed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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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시대 교(膠)의 명칭 분화와 제조·생산된 교의 종류

저자 : 김병모 ( Kim¸ Byoung-m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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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나라 교 문화 발전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관찬서와 개인 저술에 나타난 교의 명칭, 명칭의 분화, 명명법 특징, 제조·생산된 교의 종류 등에 관해 검토를 진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 문화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교에 관한 명칭이 어떠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쳐 정착, 분화되었는지 분명히 알기 어렵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몇몇 종류의 교를 출현시키며 일정한 교 문화를 형성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양상은 고려시대도 지속되어 보다 다양한 교 명칭 및 종류가 출현하고, 중국식 명명법의 수용 역시 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에 비해 교 관련 기록이 크게 증가하고 교 명칭 및 종류 역시 교려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 증가가 나타난다. 즉 관찬서와 개인 저술에서 각각 7종 내외의 교 명칭과 10종 내외의 교 제조 사실을 확인시킨다. 명명법의 경우 중국식 명명법의 지속적 수용 및 운용을 강하게 내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선 나름의 특징적 요소를 적극 반영하는 모습도 강하게 내비친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종, 다양의 토대 위에서 교 문화를 형성, 전개시켜간 것으로 파악되며, 그러한 다양, 다종의 교 문화 형성에 국가와 민간 영역 모두 상당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This study focused on Joseon Dynasty which is assumed to play a pivotal role in history of glue culture development and explored the name of glue, differentiation of name, characteristics of naming, and type of glue from governmental compilations and individual writings works.
In case of Korea, the development procedures of glue culture and historical development on settlement and differentiation of naming for glue remain vague. Still, it has been figured out that several types of glue already emerged during Three Kingdoms Dynasty and certain glue culture was formed.
Such aspect also appeared in Goryeo Dynasty and more diverse name and type of glue emerged. In addition, The Chinese naming was actively adopted during Goryeo Dynasty.
In Joseon Dynasty, the records related to glue greatly increased compared to Goryeo Dynasty and the name and type of glue remarkably increased than Goryeo Dynasty. The government compilations and individual writing works recorded 7 cases of naming glue and 10 cases of producing glue respectively. In case of naming, Joseon Dynasty continuously adopted the Chinese naming. At the same time, Joseon Dynasty tried to reflect own distinct elements actively. In other words, Joseon Dynasty formed and development glue culture with diversity and variety of glue far more than Goryeo Dynasty. Also, it has been found out that both governmental and private sectors played significant roles in forming such diverse and varied glu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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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혜적 공감의 문화정전 『논어』와 『맹자』

저자 : 안외순 ( Ahn¸ Woe So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1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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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논어』와 『맹자』의 유교 정전으로서의 위상 확립과정을 소개하고 그 위상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공자와 맹자 두 사상가는 이전 문명의 정전화(正典化)에 기여한 공헌으로 스스로의 작업들도 정전(正典)의 반열에 올랐다. 즉 공자는 중국 고대문화 텍스트들인 <육경>을 정전으로 형성하면서 자신도 그 공헌으로 유교문명권의 최고 지성과 정전의 반열에 올랐고, 맹자 역시 공자의 업적을 체계화/심화시키고 『논어』의 정전 형성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공자 다음가는 성인(聖人)이라는 의미에서 아성(亞聖)이라 일컬어지고 그의 저작 『맹자』도 경전(經傳), 곧 정전이 되었다. 두 정전은 이전 업적을 문화정전으로서 '온고(溫古)'하고 새로이 개척한 가치와 문화를 '지신(知新)'함으로써 새로운 유교문명권을 창조하였다. 그 핵심에 인(仁)이라는 호혜적 공잠의 가치와 그 확장논리인 인정(仁政) 이론과 외교론, 그리고 그 근본을 형성하는 인간의 도덕(감정)론을 새로이 구축하였다. 두 저서의 정전화 과정은 단순히 고전의 정전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전환 과정이기도 했다. 곧 패권 중심의 춘추전국시대의 현실을 극복하고 호혜적 공감의 가치, 인(仁)에 입각한 새로운 문명질서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This paper introduced the establishment of the Confucian Bible status of Analects and Mencius and examined its status and significance. Both Confucius and Mencius thinkers have contrbiuted to the biblicalization of the previous civilization, and their own works have also joined the ranks of the bible. In other words, Confucius formed the pre-ancient Chinese cultural texts "Yukgyeong" as a classic, making himself one of the highest intellects of the Confucian civilization and the Bible. The Mencius and the Mencius themselves became scriptures by contributing to Confucius' contributions and to the process of forming the Bible in the Analects. This introduced the newly pioneered cultural status and values of the two Classics, the characteristics of human values and their expansion logic, the politics and diplomatic theory, and the moral theory. In particular, this was explained mainly in parts such as Ongo (: inheriting a good tradition) and Jisin (: pioneering a new civilization) in the expression of the Analects. The two bible books' static process was not just a classic biblicalization, but also a transition to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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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간찰로 본 圭南 河百源의 仕宦期 양상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중심으로-

저자 : 나상필 ( Na¸ Sang-pil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7-14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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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남 하백원은 성리학적 이론을 학문의 근간으로 확립하고 실리를 강조하여 실학을 연구하며 한 평생을 보냈던 실학자이다. 그런데 50대 이후 관직 생활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본고는 규남박물관에 소장된 간찰 중에 사환기부터 세 아들에게 보낸 초서 간찰 63통과 『규남문집』에 수록된 간찰 2통을 탐구하여 그의 관직 생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남의 관직 생활은 중앙 직과 지방 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834년부터 창릉참봉, 의금부 도사, 순릉 직장, 형조 좌랑까지 중앙에서 관직을 역임했고, 1840년 경기전 령, 석성 현감까지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1842년에 충남 보령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해배된다. 약 9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간찰을 통해 안부 및 처지, 근무지의 상황, 조정의 사건사고 등 관직 생활 중 경험하였던 소식을 전달하지만,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일어난 집안의 문제, 자식의 성장, 전통의 계승 등 많은 일에 관여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규남이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분석하여 규남의 관직 생활 중 다양한 양상을 논구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부모의 리더십을 발휘한 점에 살펴보았다.


Gyu-Nam Ha Baek-won is a Silhak scholar who has studied Silhak for the rest of his life, emphasizing practicality, based on Neo-Confucian theories. However, after the age of 50, he has a second life due to his public office.
This paper was studied using 63 cursive letters that he sent to his three sons from the beginning of his public office and two letters from the Collection of Gyu-Nam's Works from among the many other letters in the collection of the Gyunam Museum.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the life of his official life and to consider how he leads his family as the head of a family.
His official life is divided into central and local positions. From 1834, he served as a central government official from Changneung Chambong, Uigeum Budosa, Sunneung Jikjang, and Hyeongjo Jwarang. In 1840, he served as an official in the provinces until Gyeonggi Jeonyeong and Seokseong Hyeon-gam. In 1842, he was exiled to Boryeong, South Chungcheong Province, and released the following year.
While away from his family for about 9 years, he conveyed news he had experienced during his official life, such as his safety and situation, the situation at work, and incidents and accidents at the royal court, through letters, which were the only means of communication. In addition, he was involved in many matters such as family problems that occurred while he was absent, the growth of children, and the succession of traditions.
From this point of view, he analyzed the letters he sent to his children, studied and explained various aspects of his official life, and studied the aspects of his parents' leadership as the head of a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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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충청지역 십승지지의 고찰

저자 : 한종구 ( Han¸ Jong-ko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9-18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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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십승지지에 대한 연구는 일부 이루어졌으나, 충청지역의 십승지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고는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올바른 이해를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위치에 대한 비결의 기록을 문헌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된 십승지의 현 위치를 고지도 분석 및 현장답사를 통해 비정하였다. 그리고 비정된 현 위치를 대상으로 도참서가 의존하고 있는 풍수이론을 활용하여 입지를 분석하였다.
비결 중 『감결』, 『남경암십승지』, 『서계이선생가장결』에서 한 번이라도 언급된 충청지역은 단춘, 공주, 정산, 마곡 골짜기, 계룡산 밖의 네 고을, 보은 속리산 네 증항 근처, 공주 계룡산, 유구 마곡사 사이의 8곳을 들 수 있으며 세 비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곳은 속리산 증항 근처와 공주의 유구와 마곡 사이 두 곳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들 두 지역의 대상지를 문헌 및 고지도 분석 그리고 현장답사를 통해 속리산 사증항 근처 중 적암리와 공주의 유구와 마곡사 사이의 서양골 두 곳으로 비정하고 분석하였다.
이들 지역은 본 연구를 통해서 지적했듯이 풍수적인 측면에서 부합되는 바도 많지만, 마을이 입지하는 양기풍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풍요로운 삶을 위한 합리적인 취락의 입지로서는 불리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은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서얼, 정치적으로 누명을 쓴 죄인들이나 굶주린 농민들 등이 풍수적인 길 지라는 측면보다 우선적으로 삶을 연명하기 위한 도피처로서 찾았던 곳으로 보아야 한다.


Until now, some studies on the Sipseungjiji have been conducted, but studies on the Sipseungjiji in Chungcheong area have not been properly carried out.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nhance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Sipseungjiji in Chungcheong area. To this end, the literature of secret record of the location of Sipsungjiji in Chungcheong area was surveyed and the current location of Sipsungjiji based on this literature recorded, was determined through analysis of literature survey, the old map and field survey. In addition, the location was analyzed using the Pungsu theory on which Dochamseo(圖讖書, prophetic writings) relied on.
Among the secrets, the Chungcheong area mentioned at least once in 『Gamgyeol』, 『Namgyeongamsipseungji』, 『Sogyei Lee Seonseng Gajanggyeol』 are eight places such as Danchun, Gongju, Jeongsan, Magok Valley, four villages outside Mt. Gyeryongsan, four Junghang near Boeun Mt. Songnisan, Mt. Gyeryongsan in Gongju. There are two places commonly mentioned in the three secrets such as the place near Jeunghang of Mt. Songni and the one between Yugu of Gongju and Magok. between Magoksa Temple in Yugu, Therefore, in this study, the target sites of these two regions were identified and analyzed as Jeokam-ri near the four junghangs of Mt. Songni and Seoyang-gol between Yugu and Magoksa Temple in Gongju through literature and old map analysis and field surveys.
As pointed out through this study, these regions are often consistent in terms of Pungsu, but from the perspective of Yanggi(village) Pungsu where the villages are located, it can be said to be an unfavorable location for a rational settlement for affluent life. Therefore, these areas should be viewed as a place where the desperate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politically accused sinners and hungry peasants, sought refuge in order to live their lives prior to the aspect of Pungsu auspiciou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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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엄의 사부에서 나타난 정감

저자 : 양승덕 ( Yang¸ Seoung Duk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1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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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엄은 남조(南朝) 사부사(辭賦史)의 명가로 현존하는 부가 28편인데, 모두 서정 영물부이다. 강엄의 사부는 고부에서 변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부에는 한위(漢魏) 고부(古賦)의 순박함과 후세 변부(騈賦)의 화려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강엄의 사부는 한부의 “현인실지(贤人失志)”와 “영물(詠物)” 두 가지 주제를 계승하여 내재적인 감정 묘사를 주로 하는 서정(抒情)소부와 정감 표현으로 뛰어난 체물(體物)소부로 발전시켰다. 그는 한부(漢賦)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그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슬픔을 사부에 융합시켜 슬픈 정감을 묘사하는 데에 뛰어났다.
강엄은 구체적인 유형의 정감 묘사에 뛰어나 심오한 정감을 세밀하게 나타냈고, 또한 그의 부는 진실한 감정과 현실 인생의 조우로 인한 강건하고 구슬픈 정취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감동을 준다.
강엄은 사부에서 사도의 실의로 인한 고통과 인생의 실의로 인한 슬픔을 남김없이 다 드러냈고, 정감과 사물에 대한 묘사에는 작자의 심사와 철학적 사고가 내재하여있어 비정(悲情)의 풍격이 나타나 몽롱하고 심원하며 떨쳐 버릴 수 없는 근심과 이별의 정이 가득 차 있어 감상적이지만, 강건한 기세 역시 잘 나타나 있다.


The Ci-Fu of King Nam Dynasty in China showed a tendency to beautify the art. In this period, the scholars paid great attention to the exquisite work of pairing, the refinement of words and phrases and the harmony of phoneme.
Jiang-Yan is a masterpiece of King Nan-Dynasty masterpieces and has 28 volumes, all of which are written by the Western Ministry of Culture and Culture.
Jiang-Yan revealed all the pain caused by apostle's disappointment and sorrow caused by life's disappointment in the master, and the description of affection and things is inherent in the author's examination and philosophical thinking.
In general, Jiang-Yan's master has the appearance of 의, but he is both sentimental and strong.
Jiang-Yan's Ci-Fu are of great significance in the course of transformation from ancient fu to Pian-Fu, and the simplicity of Han and Wei ancient fu and the splendor of later generations. Ci-Fu is famous for its sorrowful expression, which is full of vague and deep feelings, and is good at copying the specific types of emotions and expressing them delica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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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춘정 변계량의 삶의 자세와 학문의 목표-한시를 통해 본 여말선초 지식인의 학적 지향과 내면 행로-

저자 : 김남이 ( Kim¸ Nam Y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4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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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표는 여말 선초의 격변기를 살았던 관료 문인으로서 춘정 변계량의 면모를 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설정한 주요 논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춘정집』에 부쳐진 서발문자를 자료로 하여 춘정의 학문과 문학을 당대 및 후대에 어떻게 평가했는지 살피는 것이다. 둘째, 춘정 생애의 중요한 국면과 그때 쓰여진 작품들을 연계하여 내적 행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몇 개의 필기 잡록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내내 재생산되었던 춘정에 대한 편향된 평가의 실체를 재검토하고, 그의 상(像)을 다시 재구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춘정집』의 서발문을 자료로 춘정에 대한 평가를 살폈다. 춘정의 학문 계보는 정몽주-이숭인-권근으로 표명되는데, 특히 『대학』 『중용』이 강조되었다. 이는 양촌-춘정 사이에 계승된 학맥의 실체를 보여준다. Ⅲ장에서는 춘정의 한시 중 연대를 추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내면 행로와 가치관을 분석하였다. 고려-조선의 역사적 변혁에서 춘정은 대의와 애민이라는 유교적 명분을 자신의 행로를 결정하는 가치로 삼으면서 유학자로서 실천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관료로서의 생활은 자기 내면의 지향과 현실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 또한 철저한 학적 자세를 견지한 반본(返本)과 경세의 강한 의지로 해소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여말 선초 역사의 갈림길에서, 자기 내면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유학적 가치를 근간으로 현실과 분투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 행로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the character of Chunjeong, who was a literature bureaucrat who lived in a tremulous time of history during the end of the Goryeon Dynasty and start of the Joseon Dynasty, in a more comprehensive and dimensional manner. There are two main subjects for this. The first is to examine how Chunjeong's academics and literature were evaluated using the prologues and epilogues attached to the Chungjeongjip(春亭集). The second is on tracking the internal journeys by linking the major incidents of Chunjeong's life and the works that he wrote during those times. Through this, the biased evaluations on Chunjeong that were reproduced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focusing on his free-flowing essays and pamphlets were reviewed in order to create an opportunity to reorganize his image. In Chapter II, evaluations on Chunjeong were made using the prologue and epilogue of Chunjeongjip and various records. The academic pedigree of Chunjeong is best represented by Jung Mong-joo, Lee Seung-in and Kwon Geun, and they especially emphasized daxue(大學) and zhongyong(中庸). This is related to the academic features of Kwon Geun writing the Iphakdoseol to help beginning scholars study daxue and zhongyong, and therefore, it clearly shows the academic pedigree relations. Chapter III analyzed his inner journeys and values focusing on works that could track the timeline among the Hansi(漢詩) of Chunjeong. During the historical revolution of changing from Goryeo to Joseon, Chunjeong set the Confucian ideals of great cause and sympathy for the common people as the value that would determine his actions, and taught by example as a Confucian scholar. He also expressed his life as a Joseon person and Joseon bureaucrat that began through a Hansi(漢詩), and the conflicts he experienced due to the differences of his inner inclinations and reality became clear. But this was also accepted as his will to achieve his hopes to use fundamental values as the basis for all actions and thoughts, and to awaken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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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韓·中·日 고전문학 속의 여성(女性)과 바다

저자 : 이경미 ( Lee¸ Kyung M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3-26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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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가부장제가 사회의 근간이었던 고대 한중일 삼국에서 바다는 '금녀(禁女)의 공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한중일 고전문학 작품 속의 일부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바다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다에 도달한 여성들에게 그곳은 어느 하나로 규정 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로 펼쳐졌다. 가부장사회로부터 추방되어 마주한 바다는 이별과 죽음이라는 단절의 공간이기도 하였지만. 한편 당시 사회의 현실적 제약과 금기를 허물고 주도적으로 바다로 나아갔던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만남과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고, 때로는 고난을 극복하여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재생과 구제의 기적까지도 이루어 내기도 하였다.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효녀', '열부', '현모양처'라는 가부장체제의 규획된 틀 속에서 소리 없이 흑백의 삶을 살았던 고대 한중일 여성들에게 바다는 역동적이며 출렁이는 물소리와 함께 총천연색으로 펼쳐진 문학의 공간이었다.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where feudal patriarchy was the foundation of society, the sea was so much the sphere of men that it was considered an area forbidden for women. Nevertheless, some women in classical literature of the three Asian countries attempted to face the sea for various reasons. Thus, the sea came to these women as various images that could not otherwise be defined as one. For them, the sea, which they faced after being expelled from the patriarchal society, was a place of separation, death, and disconnection.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 sea was also a new chapter full of new opportunities and enjoyable challenges for women who took the initiative in breaking down the limitations and taboos of society. At sea, after overcoming hardships, those adventurous women experienced happy endings in their lives, and they even achieved miraculous reincarnation and salvation. From their birth, women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were strictly regulated and characterized under the patriarchal framework through notions of filial daughter (Hyo-nyeo), obedient and virtuous wife (Yeol-bu), and a good wife and wise mother (Hyun mo yang cheo). Eventually, despite these obstacles, for those women, the sea was not only a dynamic area with new experiences and opportunities but also the setting for the literature about their lives. In essence, the sea was where women in ancient societies could recover the colors they lost in their lives only painted in black and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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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윤희순 의사의 작품을 통해 본 의병활동과 선비정신의 상관성

저자 : 이학주 ( Lee¸ Hak Ju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7-29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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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윤희순 의사가 생전에 남긴 16편의 작품을 통해서 의병활동과 선비정신의 상관성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작품을 분석해 본 결과 윤희순 의사는 선비정신인 공동체의 사랑과 의리를 실천하기 위해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윤희순 의사는 기존에 갖고 있던 조선 선비의 정신이 아니라, 윤희순식의 선비정신으로 의병활동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윤희순 의사가 노래를 지어 민중들이 의병의식을 갖도록 했으며, 경고문을 통해 조선 선비의 아내가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희순과 함께 의병활동을 한 사람들이 안사람 위주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어렵지 않은 일상어를 사실적으로 사용하였다. 노래의 양식도 일상에서 많이 불러봤던 강원도아리랑조였을 것이고, 긴 것은 가사처럼 읊조렸을 것이다.
윤희순은 글의 작성자란에 '조선선비의 아내 윤희순', '조선 안사람 대표' 등의 문구를 넣었다. 그리고 노래와 경고문 내용에 '선비'라는 표현이 있음에 착안하여 윤희순의 의병활동 정신과 방식을 살폈다. 윤희순은 일본인에게는 '조선 선비'라 하여 '조선'이라는 말을 넣고, 일제앞잡이에게는 '선비'라는 표현을 썼다. 아울러 선학(先學)들의 연구에 따라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결과에 따라 윤희순도 같은 선비정신으로 임했는데, 그는 선비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선비의 안사람'자격으로 의병을 했음이 드러났다.


This study is to search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patriotic martial activities and spirit of Scholar through 16 works of Martyr Yun Huisun. Analysis of her works reveals that she did patriotic martial activities to practice community love and fidelity not in traditional spirit of scholar of Chosun but in her own spirit of scholar.
She made songs to encourage for the public to have patriotic martial mind and revealed the will of scholar's wife to resist Japanese colonialization through warning posters. She used common colloquial language for the people, many of whom are wives, who did activities with her. Her songs might have been Gangwondo Arirang style, and she might have chanted long songs as libretto[歌辭].
She put "Chosun scholar's wife, Yun Huisun" or "Representative of Chosun wives" as a pen name. Noticing that she used the word "scholar" in songs and warning posters, it studies her patriotic martial activities spirit and methods. She used Chosun to Japanese, scholar to agents for Japanese. As preceding scholars did patriotic martial activities, she did but not as a scholar but as a wife of Chosun scholar.

KCI등재

10가사(歌辭)에 수용된 속담(俗談)의 성격과 의미

저자 : 서보현 ( Seo¸ Bohye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5-31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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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가사에 수용된 속담들을 문맥 안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성격에 따라 구분하여 살피고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속담은 간결한 표현으로 일상 체험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텍스트 내에 수용된 속담의 성격은 작품의 문체적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이에 따라 2장에서는 가사의 장르적 특성을 염두하여 가사에 수용된 속담을 제시되는 전후 상황에 밀착하여 다음 서술을 전개하는 '서술 확장적 속담'과 상황을 요약·정리하고 그 상황의 요점을 기술함으로써 그 성격을 규정하는 '서술 집약적 속담'으로 분류하여 텍스트 내 수용된 양상을 분석하였다. 3장에서는 신문이라는 매체에 기반하여 창작된 계몽가사에 쓰인 속담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인쇄매체의 특성에 따라 문어적 성격이 강화된 속담의 양상과 속담이 근대적 자각을 고취하고 대중적 설득을 얻기 위한 표현기법으로 사용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verbs accepted in the Gasa according to their role and character in the context, and clarifies their meaning. The proverb is a concise expression, figuratively expressing the wisdom of life gained from everyday experiences. However, the character of the proverb accepted in the text appears differentiated according to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work. Therefore, Chapter 2 examined the 'Narrative-expansion proverbs' that develop the following descriptions in close proximity to the context in which proverbs accepted in the Gasa presented with the genre characteristics of the lyrics in mind. In addition, the entity analyzed 'Narrative-intensive proverbs' that define their nature by summarising and organizing the situation and describing the main points of the situation. Chapter 3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proverbs used in enlightenment-gasa based on the media of newspapers. It was confirmed that the aspects of proverbs, whose written characteristics were strengthened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int media, and that proverbs were used as expression techniques for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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